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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 논의: 아바나의 속셈과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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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석호
발행일 20141229 주제
출처(출판사) 극동문제연구소
분류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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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54
  • 내용
 필자가 박사학위 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2007년 11월 쿠바를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만난 쿠바인들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피력했다. 한 경제계 인사는 “카스트로 정부가 침체된 쿠바 경제를 획기적으로 되살리려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 해 미국인과 미국 자본을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바의 민족주의적인 지식인들은 “1959년 혁명 이전 미국은 쿠바를 속속들이 수탈했다. 미국이 다시 쿠바에 들어오면 돈이 되는 모든 것과 잘 생긴 쿠바 여성들을 다시 독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과 각을 세우는 카스트로 형제의 반미 고립 정책이 옳다고 말했다.

  민족주의적인 지식인들의 우려대로라면 12월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격적인 국교 정상화 협상 개시를 선언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경제 개선을 위해 대미 종속과 나아가 독재체제 와해라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는 도박을 하는 셈이다. 라울 평의회장의 도박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서 오는 경제적 이익을 쿠바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지지층에 대한 혜택으로 돌려 체제유지를 위한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으며 대미 관계를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제비어 코랄레스는 2004년 라울의 이런 믿음을 가능케 하는 구조를 ‘문지기 국가(Gatekeeper state)’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1990년대 경제위기와 그 극복과정에서 쿠바 정부는 불가피한 개혁과 개방으로 수익성이 높아진 부분을 지배세력에게 나눠 줘 충성심을 유발, 오히려 국가의 힘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로 미국인의 쿠바 관광이 확대될 경우 그 이익은 쿠바 관광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군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국 내 쿠바인들의 고향 송금이 현재의 연간 25억 달러보다 더 늘어나게 되면 국가의 송금 수수료 수입은 물론 국영 외화상점의 수입 또한 증가하게 된다.

  이처럼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가 결국 카스트로 독재체제의 생존을 연장할 것이라는 믿음은 공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보수층이 이번 조치를 반대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공화당 1인자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오하이오)은 양국의 합의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는 (쿠바의) 잔인한 독재자에게 어리석은 양보를 해준 또 하나의 사례”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라울 정부도 대미관계 개선으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불평등과 ‘쿠바 사회주의적 가치’의 훼손, 사회갈등 증폭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마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인 2002년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2003년 종합시장 도입이라는 제한적이나마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했지만 시장메커니즘이 초래하는 경제적 불평등 현상에 대한 보수 지배층의 반발에 부딪혀 3년 만에 뒷걸음질 친 것과 같은 사태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울 의장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국교정상화 합의 발표 사흘 뒤인 12월 20일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인민권력국가회의 정례회의에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쿠바가 힘들게 지켜온 가치들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미국에 정치체제를 바꾸라고 하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도 우리의 체제를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따라 ‘적대적 공존관계’의 정치적 이익이 사라지는 것도 아바나의 고민일 것이다. 미국 발 ‘햇볕정책’으로 정치·경제적 실정의 핑계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주민들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현 정권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타코 인스티튜트의 더그 반다우 선임연구원은 12월 19일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그동안 미국의 쿠바 경제봉쇄는 카스트로 형제에게 정책 실패의 핑계거리를 제공했다”며 “양국 관계가 정상화됨에 따라 쿠바 독재체제의 붕괴는 필연적이 됐고 언제인지만 남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이 이번 국교 정상화 조치의 일환으로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반면 김정은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의 제작사 소니픽처스를 해킹한 혐의를 받고 있는 북한은 오히려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말도 있다. 사회주의 우방국인 쿠바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형국이다. 미국이 실제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쿠바는 끌어안고 북한은 더 압박하는 외교정책 기조는 2015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조치를 발표한 다음 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과 쿠바는 다르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그는 “북한은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라며 “미국과 인접국, 국제사회에 성가신 정책상의 어려움을 던져주고 있는 게 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북한과 쿠바는 각각 1948년과 1959년 건국 이후 아시아와 중남미라는 제3세계 변방에서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 기대어 사는 ‘종속적 사회주의 발전’ 전략을 추진해 왔다. 1990년대 당시 소련의 체제전환으로 경제위기를 겪었지만, 중국 및 베트남과는 달리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을 거부해왔다. 미국과의 ‘적대적 공존관계’ 역시 그들의 공통분모였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들은 “일부 공화당 보수파의 반발이 있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대 쿠바 데탕트 정책은 대체적인 여론의 지지 속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