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숙청과 기억의 역사, 1944-2004
- 개인저자
- 이용우 지음
- 발행사항
- 서울 : 역사비평사, 2008
- 형태사항
- 285 p. : ill.; 24cm
- ISBN
- 9788976964113
- 청구기호
- 926 이666ㅍ
- 서지주기
- 참고문헌 및 색인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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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0470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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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청구기호(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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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프랑스의 나치독일 부역자 처벌, 1944년부터 2004년까지
이 책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주제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벌어진 프랑스의 나치독일 부역자 숙청 문제를 분석한 연구서로서, 국내 연구자에 의해 발표된 최초의 사례이다. 한국의 일제강점기의 친일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외국의 모범 사례로 언제나 거론되는 것이 프랑스이다. 타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귀감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치독일 부역자 숙청의 철저함에 있을 것이다. 단 4년간의 점령기에 대해 해방 이후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무려 60년이나 계속되었다. 해방 직후 최소한의 친일파 단죄도 이루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당시 최고위급 인사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10만 명의 나치부역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프랑스가 충분히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오늘날 프랑스에서 그 시절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최대공통점은 둘 다 해방 후에 점령국에 대한 ‘자국민 협력’ 문제가 주된 청산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협력자들(부역자 혹은 친일파)이 처벌과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는 데 있다. 투철한 신념에 따른 협력, 기회주의적 협력, 신분 상승욕에서 비롯된 협력, 물욕이 빚은 협력, 살아남기 위한 협력, 공포감으로 인한 협력, 강요된 협력, 상명하복에 따른 협력, 공무원으로서의 충실한 의무수행이 낳은 협력, 위장된 협력 등 모든 종류와 모든 동기의 협력이 두 나라에서 발견되었다. 한국에서 36년 동안 벌어졌던 변절, 전향, 오판, 체념, 광기, 도취 등이 프랑스에서는 4년간 압축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부역자 숙청 문제, 그 기억의 역사
부역자 숙청에 대한 프랑스인의 여론과 기억은 숙청이 한창 진행되던 해방 직후이든, 부역자재판소가 문을 닫은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이든 그다지 좋지 않다. 실망과 불만, 분노와 환멸이 숙청 당시와 그 직후의 반응이었다면 무관심과 침묵, 그리고 일부의 극단적 기억들이 오늘날의 주된 반응이었다. 무엇보다 부역이라는 수치스러운 이유 때문에 자국민이 자국민을 처벌했다는 행위를 어떤 기억으로 갈무리해 후대에 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해방 이후 60년이 지난 프랑스의 2004년도 역사교과서는 극히 적은 지면에 할애되었던 기존의 몇몇 건조한 서술에서 벗어나 겨우 부역자 숙청의 ‘사진’도 싣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그만큼 숙청에 대한 인식과 기억은 집단마다 다르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 기억’을 설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지배적 기억’ 역시 망각과 집단적 트라우마, 그리고 몇몇 ‘신화’에 가까운 극단적 기억들 사이에서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프랑스의 현 상황은 국가가 자국민의 숙청이라는 과거사에 대해서 어린 구성원들에게 전수하고자 하는 모종의 기억보다는 도리어 기억의 전수 자체를 꺼리게 되어버리는 숙청 이후의 후유증을 명료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부역자 숙청 작업과 한국의 친일파 청산 작업
한국과 프랑스가 처한 역사적 조건은 상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제국일본은 한국(조선)을 명백히 ‘식민지’로 지배했던 반면, 나치독일은 그저 프랑스를 영국과의 전쟁에서 우호적인 ‘협조국’이 되기를 원했다. 또한 일제의 한국 지배기간은 36년이었지만 나치독일은 단 4년간만 프랑스를 점령했을 뿐이다. 한국의 해방은 광복군의 개입 이전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갑자기 이루어진 반면, 프랑스의 해방은 연합군과 프랑스 국내외의 레지스탕스 전투를 통해 여러 달에 걸쳐 얻어낸 산물이라는 점도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들 때문에 두 나라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든가, 프랑스의 사례가 한국의 과거사 청산에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반세기에 걸친 과거사 청산 경험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동일한 과거의 기억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맥락이 변하며, 후대의 정리된 인식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과거 체험과 기억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청산해야 할 과거가 너무 많은 것에 비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청산의 성과는 너무나도 적은 한국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책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주제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벌어진 프랑스의 나치독일 부역자 숙청 문제를 분석한 연구서로서, 국내 연구자에 의해 발표된 최초의 사례이다. 한국의 일제강점기의 친일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외국의 모범 사례로 언제나 거론되는 것이 프랑스이다. 타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귀감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치독일 부역자 숙청의 철저함에 있을 것이다. 단 4년간의 점령기에 대해 해방 이후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무려 60년이나 계속되었다. 해방 직후 최소한의 친일파 단죄도 이루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당시 최고위급 인사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10만 명의 나치부역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프랑스가 충분히 부러운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오늘날 프랑스에서 그 시절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최대공통점은 둘 다 해방 후에 점령국에 대한 ‘자국민 협력’ 문제가 주된 청산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협력자들(부역자 혹은 친일파)이 처벌과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는 데 있다. 투철한 신념에 따른 협력, 기회주의적 협력, 신분 상승욕에서 비롯된 협력, 물욕이 빚은 협력, 살아남기 위한 협력, 공포감으로 인한 협력, 강요된 협력, 상명하복에 따른 협력, 공무원으로서의 충실한 의무수행이 낳은 협력, 위장된 협력 등 모든 종류와 모든 동기의 협력이 두 나라에서 발견되었다. 한국에서 36년 동안 벌어졌던 변절, 전향, 오판, 체념, 광기, 도취 등이 프랑스에서는 4년간 압축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여전히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부역자 숙청 문제, 그 기억의 역사
부역자 숙청에 대한 프랑스인의 여론과 기억은 숙청이 한창 진행되던 해방 직후이든, 부역자재판소가 문을 닫은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이든 그다지 좋지 않다. 실망과 불만, 분노와 환멸이 숙청 당시와 그 직후의 반응이었다면 무관심과 침묵, 그리고 일부의 극단적 기억들이 오늘날의 주된 반응이었다. 무엇보다 부역이라는 수치스러운 이유 때문에 자국민이 자국민을 처벌했다는 행위를 어떤 기억으로 갈무리해 후대에 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해방 이후 60년이 지난 프랑스의 2004년도 역사교과서는 극히 적은 지면에 할애되었던 기존의 몇몇 건조한 서술에서 벗어나 겨우 부역자 숙청의 ‘사진’도 싣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그만큼 숙청에 대한 인식과 기억은 집단마다 다르기 때문에 혼란을 야기하고,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 기억’을 설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소한의 ‘지배적 기억’ 역시 망각과 집단적 트라우마, 그리고 몇몇 ‘신화’에 가까운 극단적 기억들 사이에서 설 자리를 찾기 힘들다. 프랑스의 현 상황은 국가가 자국민의 숙청이라는 과거사에 대해서 어린 구성원들에게 전수하고자 하는 모종의 기억보다는 도리어 기억의 전수 자체를 꺼리게 되어버리는 숙청 이후의 후유증을 명료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부역자 숙청 작업과 한국의 친일파 청산 작업
한국과 프랑스가 처한 역사적 조건은 상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제국일본은 한국(조선)을 명백히 ‘식민지’로 지배했던 반면, 나치독일은 그저 프랑스를 영국과의 전쟁에서 우호적인 ‘협조국’이 되기를 원했다. 또한 일제의 한국 지배기간은 36년이었지만 나치독일은 단 4년간만 프랑스를 점령했을 뿐이다. 한국의 해방은 광복군의 개입 이전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갑자기 이루어진 반면, 프랑스의 해방은 연합군과 프랑스 국내외의 레지스탕스 전투를 통해 여러 달에 걸쳐 얻어낸 산물이라는 점도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들 때문에 두 나라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든가, 프랑스의 사례가 한국의 과거사 청산에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반세기에 걸친 과거사 청산 경험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동일한 과거의 기억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맥락이 변하며, 후대의 정리된 인식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과거 체험과 기억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청산해야 할 과거가 너무 많은 것에 비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청산의 성과는 너무나도 적은 한국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청산해야 할 과거: ‘암울했던 시절’(1940~1944)
1부 해방 전후의 과거사 청산
1. 숲 속과 거리에서의 응징
2. 재판을 통한 처벌
3. 공직자 숙청
4. 숙청에 들어간 사회
5. 평가
2부 반세기 만의 과거사 청산
1. 반민족행위에서 ‘반인륜범죄’로
2. 반인륜범죄의 발견: 벨디브 사건
3. 레지스탕스 기억과 유대인 기억의 충돌: 바르비 재판
4. 사법적 논리와 역사적 진실의 충돌: 투비에 재판
5. 최후의 독일강점기 재판: 파퐁 재판
6. 평가
3부 과거사 청산에 대한 여론과 기억(1944~2004)
1. 해방 직후의 여론
2. 분열된 기억
3. 기억의 매체
4. 맺음말
부록
주(註)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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