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공간의 아나키스트
- 개인저자
- 이문창 지음
- 발행사항
- 서울: 이학사, 2008
- 형태사항
- 436 p.; 24 cm
- ISBN
- 9788961471183
- 청구기호
- 340.911 이372ㅎ
- 서지주기
- 참고문헌 및 색인 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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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80대 노혁명가가 회고하는 해방 공간의 아나키스트
이 책은 현재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아나키스트 이문창이 8.15 해방 이후 10년 동안에 보고, 겪고, 배우고, 활동한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조명한 책이다. 해방 직후인 10대 후반에 아나키즘운동에 투신해 지금까지도 치열하게 아나키즘의 원리를 실현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며 아나키즘운동을 하고 있는 지은이는 한국의 2세대 아나키스트들(해방 후부터 활동한 아나키스트들) 중 마지막 주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동안 왜곡되거나 잊혀지다시피 한 아나키스트들을 하나하나 역사의 페이지로 불러내며, 해방 전후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혁명이 절실했던 혼란의 시기,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던 한 청년이 이제 80대가 되어 돌아보는 당시의 사회상을 통해 '좌와 우'라는 이분법에 가려져 그 치열한 고민과 행동의 흔적이 사라진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면모를 세세하게 엿볼 수 있다.
해방 공간에 "아나키스트가 있었다"
해방 공간에 아나키스트가 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한국 현대사는 '좌' 아니면 '우'의 이분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한반도뿐 아니라 국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세력들이 귀환하면서 다양한 사상 경향이 공존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좌와 우의 대립만 기억한다. 해방 정국을 다루는 무수히 많은 연구와 저서들에서 이 이분법을 벗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당시 한반도의 중요한 운동세력 혹은 정치세력의 중심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김구, 이승만, 여운형, 박헌영 등 좌우익의 대표들이다. 그 속에 좌도, 우도, 중도도 아닌, 기존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제3의 사상, 아나키즘의 흐름이 있었다는 설명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 아나키즘운동사를 집약한 <한국아나키즘운동사> 도 해방 전의 활동까지만 소개하고 있어 해방 후의 아나키즘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만큼 해방 초기, 즉 한국 현대사의 직접적 모체가 되는 대한민국정부 수립 시기, 그리고 6.25 전쟁을 거치는 시기에 활동했던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조명은 인색하다 못해 아예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 아나키스트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한국 독립운동의 3대 세력(민족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중의 하나였던 아나키즘은 해방 후에도 그 명맥이 면면히 이어져왔다. 당시 아나키스트들은 자주.자치.탈권위의 열망을 피력하며 혼란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중추 세력으로 활동했다. 이 책은 이렇듯 아나키스트들이 해방 후 한국 사회에 필수적인 동력을 제공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을규, 이정규, 유림, 유정렬, 박제경, 박열, 이여산, 이하유, 이종연, 김형윤, 양희석, 조한응, 이규창, 이석규 등 수많은 아나키스트들의 이름이 이 책을 통해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해방 후 최초의 아나키스트 단체인 자유사회건설자연맹의 '선언'과 '강령' 그리고 해방 후 최초의 아나키스트대회인 경남북아나키스트대회의 '대회 성명서' 전문을 실어 해방 공간에서의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이념과 비전, 자유.자치의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8.15 해방과 가슴에 꽂힌 화살, 아나키즘
아나키즘의 대부 프루동이 인쇄공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듯이, 해방 직전부터 서울 청파동의 한 학약국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문창은 신탁통치 소식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여러 운동 단체들을 기웃거리다가 아나키스트와 민족진영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던 '무명회'라는 단체를 알게 되고 이때부터 아나키즘 사상에 눈뜨게 된다. 아나키스트 선배들의 아지트였던 예관동 24번지 유정렬 선생의 집에서 기거하며 이을규, 이정규, 김지강, 김형윤, 이석규, 이규창 등 선배 아나키스트들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자유연합운동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이다. 스승인 박제경 선생과 함께 종로통과 남대문시장 등을 누비며 흑백회를 조직하고 남대문시장 자치운동을 이끌어냈으며, 1947년에는 한국혁명위원회 활동에도 참가했다. 혁명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후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냉전 구도에 꼼짝 못하고 볼모로 잡혀 있는 민족적 위기의 상황에서 직접 민주적 자주 협동의 공동체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것만이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하에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회 교양 운동 쪽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이러한 취지하에 아나키즘운동의 중심이 된 곳이 '국민문화연구소'이다. 국민문화연구소가 지난 20세기 후반 동안 일관되게 추구한 과제는 자주 협동의 자유공동체 사회를 기층에서부터 구현하는 일이었다. 이문창은 평생을 국민문화연구소의 주축으로 활동하며 자주학습운동, 문화교양운동, 농촌운동, 자유공동체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최초로 조명하는 한국혁명위원회
이 책에서 특히 눈여겨볼 점은 지은이 이문창이 아나키즘에 눈을 뜨면서 가담하게 되는 여러 활동들의 구체적인 전말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주축이 되어 추진했던 임정봉대운동과 이의 일환으로 전 민족적인 혁명 거사를 계획했던 한국혁명위원회 활동, 그리고 6.25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북한군 점령하의 서울에서 벌인 지하운동 등은 그동안 전혀 심층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타율적 정치를 배격하는 아나키스트들이 임정봉대운동에 앞장서서 급진적 혁명을 추진한 것은 임정이야말로 3.1운동에서 탄생한 전 민족의 자율기관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조선 민족을 대표할 만한 합법적 대표 기관이 절실하던 터에, 충칭임정의 상징성을 앞세워 자유연합 방식의 전국적 자치 조직에 토대하여 자주.민주.통일의 과도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이 그들의 구상이었다.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구상한 정부는 조사 통계와 기획 기능을 수행할 일종의 중앙 조정 기구로서, 철저하게 권력 및 산업의 집중화를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와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그런 자주 관리 기관이었다. 이런 구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아나키스트 진영은 한편으로는 좌익 민족주의 인사들과 동맹하여 반탁독립운동단체를 총망라한 공동전선(대한독립촉성국민회 등) 조직의 중심 역할을 하거나 전국아나키스트대회(1946년 4월)를 열어 노농정당(독립노농당) 조직을 통한 정치적 입지 강화의 길을 모색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 시민사회에 파고들어 자유사회건설자연맹 등 혁명운동의 전위가 될 자유연합 조직(농촌자치연맹, 노동자자치연맹 등)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기도 하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혁명위원회 활동이다. 한국혁명위원회는 1947년 3.1절을 기점으로 전 민족적인 거사를 추진하기 위해 아나키스트계와 민족진영 세력이 연합하여 발족한 조직이다. 지은이는 당시 한국혁명위원회의 출발을 이렇게 돌아본다.
"안호형 옹의 집에 독립운동의 총집결체라 할 독촉국민회의 청사 조성환 위원장, 위당 정인보 부위원장, 노동부장 회관 이을규, 청년부장 연해 황갑영, 조사부 차장 수곡 유정(유정렬) 외에, 우관 이정규와 기산 유창준 그리고 집주인인 안호형 옹 등 7, 8인이 모여 앉았다. 주인장과 기산 그리고 자유사회건설자연맹의 우관을 빼면 이 자리는 사실상 독촉국민회의 핵심 간부 회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성환 위원장이 굳이 이때에 안호형 옹 댁을 빌려 이 자리를 마련하게 한 것은 이제부터 독촉국민회 안팎에서 전개될 혁명운동의 구체적 전략을 협의하기 위한 속뜻에서였다."
한국혁명위원회라는 조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946년 말, 해방이 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미국과 소련의 점령 의지를 꺾을 길이 보이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에서 민족 공동체의 사활이 걸린 위기를 돌파하는 길은 직접행동밖에 없다는 혁명불가피론이 대두되었다. 임정 원로들(백범, 청사 등)을 위수로 하여 혁명적 독립운동 세력(정인보, 유창준, 안호형 등)과 자유사회건설자연맹계 아나키스트(이을규, 이정규, 유정렬 등) 지사들이 연합하여 혁명위원회를 구성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실질적인 주권 회복을 위한 거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혁명 준비가 거의 완료된 시점에 거사를 눈치 챈 미군정 측의 엄중한 경계 단속과 민족진영 내 기회주의 세력(한민당 계열)의 이반으로 결국 혁명이 좌초하고 말았다. 비록 좌절의 혁명으로 끝났지만 대한민국 주권을 자주적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혁명위원회의 활동은 우리 해방 전후사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책에서 혁명위원회를 조명하는 부분은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반탁운동의 중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뿐만 아니라 혁명위원회의 인사, 협동체, 행동 조직, 혁명정부 인선 계획, 거사의 5단계, 후속 조치 5단계 등 자료가 소실되어 그동안 구체적으로 거론될 수 없었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 전후사 연구에 중대한 사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처음으로 밝혀지는 서울의 레지스탕스
혁명이 좌절되고 이승만이 미군정을 등에 업고 정부 수반이 된 이후 한반도는 6.25 전쟁이라는 또 한 번의 시련을 겪게 된다. 이승만 정부가 수도를 떠나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을 당시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서 자유를 되찾기 위해 조직적으로 저항하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나는 묵당 선생으로부터 전해 받은 라디오를 감추어가지고 남대문시장의 은신처로 옮겼다. 평소 사람들이 북적이는 남대문시장은 내가 장사꾼인 체하고 드나들면 누구도 의심할 사람이 없어 좋았다. 흑백회 멤버들이 감싸주었고, 특히 청과상회 주인인 김인성 씨는 가게 2층에 꾸며놓은 협실을 쓰도록 해주어 내가 활동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묵당 선생이 준 수신기를 아무도 모르게 감춰놓고는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서 유엔군 방송을 청취했다. [……]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서울에 잔류한 선배들이며, 설형회, 흑백회, 선구회 등의 동지들을 찾아 자유의 소식을 전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거의 전파하는 코스가 정해져 있었다. 공덕동 내가 살던 집 근처, 마포, 아현동, 천연동, 영천, 서대문, 남대문, 종로, 원남동, 삼선교, 돈암동까지 전 시내를 헤집고 다녔다."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반침략 시민자위활동 연락망'은 자신의 생명과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민중들로 하여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버팀목이었다. 그들은 유엔군의 서울 탈환이 다가오는 시점에 맞추어, 그동안 공백 상태의 서울에서 주민들이 발휘했던 저항 역량을 자위 자치의 역량으로 전환시켜 자율적으로 시내 치안을 담당하겠다는 계획하에 '서울시민자경단본부'를 설치하기도 했다. 새 사회를 건설해보자는 꿈은 부역자처벌법 등 이승만 정부의 압정으로 다시 절망에 빠지고 말았지만 지은이는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자위 자치의 꿈을 실현하고자 몸부림치던 '서울의 레지스탕스'였다고 자부한다.
하나하나 불러내는 아나키스트들의 이름
이 책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나키스트들의 세세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관동 24번지에서 만났던 선배 아나키스트들과 1946년 전후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아나키스트 선배와 동지들(하기락, 최해청, 이동순, 양희석, 조한응, 정래동, 오남기, 채은국, 장연송 등)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남대문시장 자치운동, 흑백회, 설형회 등의 활동을 통해 만난 민초들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 진정한 운동인가를 두고 씨름하던 아나키스트 청년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은 당시 아나키스트들이 활동했던 장소들의 현재 모습도 담고 있다. 출옥동지회 사무실이 있었던 다동 114번지, 자유사회건설자연맹 사무실이 있었던 종로 장안빌딩, 아나키스트들의 아지트 예관동 24번지, 혁명 발의를 논의했던 창덕궁의 취한정, 흑백회 활동의 중심지였던 옛 영동공업소 자리, 남대문시장 자치활동의 흔적, 혁명위원회의 비밀 아지트였던 종로3가 조선 무역 자리, 독촉국민회 사무실이었던 운현궁의 양관 등을 담은 사진들은 지은이와 후배 동지들의 몇 차례의 현장 답사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또 그동안 이름조차 잘 거론되지 않았던 아나키스트들의 사진도 볼 수 있는데, 지은이와 국민문화연구소의 오래된 앨범에서 찾아내거나 유족들을 통해 구한 사진들이다. 이러한 복원 작업은 해방 전후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아나키스트들의 이름을 알리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지은이는 이렇게 한국 아나키즘운동 역사의 한 자락을 공유하는 일을 통해 젊은이들과의 연대와 새로운 전진을 꿈꾼다. 21세기 총관리 체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평등.상호부조의 사회를 실현하고, 정보화,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풀뿌리 시민사회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고 확장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자기실현의 의지가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씨알들인 미래 세대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지은이는 이 책이 절대 자유와 평등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제1장 8·15 해방: 길은 어디에?
1. 고향에서의 8·15
2. 해방 정국의 소용돌이
3. 민족 자주의 움직임: 출옥동지회와 자유사회건설자연맹
4. 중국에서의 한인 아나키스트 운동
5. 미군정, 이승만, 임시정부 그리고 북한
6. 3상 결의, 반탁, 임정 보위 무력 준비 운동
7. 해방 공간에서 만난 아나키스트의 영혼: 작고동지추도회
8. 농촌자치연맹과 노동자자치연맹
9. 경남북아나키스트대회와 전국아나키스트대회
10. 가슴에 꽂힌 화살
11. 예관동 24번지 그리고 혁명 수업의 길
제2장 자유연합의 원점에서
1. 혼란의 해방 정국, 1946년
2. 지방 유세대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3. 성자 박제경 선생
4. 중간 결산으로서의 혁명 발의
5. 자유연합의 원리
6. 3의사 유해 봉환과 국민장
7. 흑백회 발족
8. 남대문시장 자치운동
9. 예관동의 지사들
10. 아나키스트와 그 집단
제3장 혁명의 시간: 한국혁명위원회
1. 다시 얘기되기 시작한 혁명불가피론
2. 혁명위원회 발족
3. 반탁운동의 재연
4. 운현궁의 독촉국민회 풍경
5. 베트남인의 교훈
6. ?조선혁명선언?을 텍스트로
7. 경교장의 혁명 대책
8. 반탁 진영의 불협화음
9. 거사 계획 최종 점검
10. 물거품이 된 혁명 거사
11. 반성
제4장 자유 쟁취의 그날까지
1. 다시 원점에서
2. 백년대계의 문화 교양 운동
3. 성균관대학의 학풍
4. 수곡과 가내 부업 운동
5. 자아실현의 길: 설형회 발족
6. 광란의 서곡: 6·25전쟁 발발
7. 김일성의 오판과 전쟁 책임
8. 서울의 레지스탕스: 자유를 되찾으려는 몸부림
9. 1·4 후퇴 그리고 풀뿌리들
10. 폐허 위의 새싹
에필로그: '민' 중심의 사회로
부록: 해방 정국, 1946년의 한반도 상황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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