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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소수만 행복하고 다수에게는 지옥 같은 지구가 될 것인가
냉철한 분석, 근본적인 대안
―<가디언The Guardian>
머지 않아 도래할 ‘침묵의 봄’을 경고하는 탁월한 분석
―제프리 세인트 클레어Jeffrey St. Clair, 저널리스트
오늘날 전세계를 배회하고 있는 유령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친환경, 생태친화 등으로 불리는 이른바 ‘녹색’이란 은유적 색깔일 것이다. 바야흐로 녹색의 시대인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의 전유물인줄로만 알았던 이 색깔은 몇몇 눈치 빠른 기업들에 의해 마케팅의 수법으로 차용되기 시작하더니, 이를 참칭하는 휘황찬란한 말들의 잔치에 의해 이제 그 가치는 바닥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일종의 ‘녹색인플레이션’인 셈이다. 세상은 온통 녹색 풍경으로 가득 차 있지만 당의(糖衣)에 불과한 그 ‘녹색’은 누구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책은 현재 한국이 처해 있고 또 (최악의 경우) 앞으로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즉 ‘녹색뉴딜’이라는 기형적 단어가 난무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녹색성장의 유혹』은 바로 이러한 녹색 당의에 은폐된 우리들의 일상과 이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다.
미국의 식물유전학 박사이자 이미 20년 이상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생태문제를 연구해왔던 저자 스탠 콕스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는 친환경, 생태 등의 기치를 내걸고 뒤로는 지구와 인간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를 고발한다. 『녹색성장의 유혹』에서 주요한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의료와 식품이라는 인간 삶에 필수적인 구성요소들이지만, 그 안에는 병원, 제약, 식품, 농업, 화학, 천연가스, 심지어는 다이어트 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결국 이 책은 무한 성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시장이 어떻게 녹색이란 단어를 악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와 기업의 이익을 자유자재로 뒤섞는” 자본주의시장의 자유분방함을 비판하면서, 사람 살리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 하는 의료산업과 식품산업이 사람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는 군수산업의 행태와 비교 대상이 될 만큼 타락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기업들은 참으로 다양한데, 월마트, 타이슨푸드, 홀푸드마켓,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노바티스, 엘리릴리앤드컴퍼니, 몬산토 등과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와 거대식품기업 등이 세계 전체의 인간과 작물의 건강에 입히는 엄청난 해악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스탠 콕스는 이들에 관한 충격적 진실에 대해 과학자다운 냉정한 자세로 실증적이고 분석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며, 때로는 마치 탐사보도를 하는 기자와 같이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남아시아의 식수오염 문제에서부터 천연가스 고갈 및 천연가스 고갈이 전지구적 식량공급에 가하는 위협 같은 다양한 문제를 넘나들면서, 이윤 추구가 언제나 공공의 이익보다 우선시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덕분에 지구와 인간의 삶은 더욱 가난해지고 병들어가게 되는데, 독자들은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를 통해서만 지탱될 수 있는 풍요로움의 세계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바라건대, 이 책을 읽은 독자의 마음에 병들고 움츠러든 지구 위에 자본주의가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고 불가피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으면 한다. (「서문」, 22쪽)
녹색과 자본주의의 기만적 동거
따지고 보면 ‘회색성장’과 ‘녹색성장’의 거리는 생각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현실의 상황이 모순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은 스스로 그 모순의 실타래를 풀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자본주의사회가 ‘성장’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동시에 그 ‘성장’이 점차 인간과 지구의 삶을 지속불가능하게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모두 사실이다. 어쨌거나 ‘성장’의 전략 자체가 문제의 원흉인 셈인데,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성장’하자고 주장하기도 쉽지는 않다. 그것을 구출해내기 위해서는 나름의 명분이 필요했는데, 바로 이 난감한 상황을 얼버무리기 위한 ‘녹색’의 언어가 바로 ‘녹색성장’의 전략인 것이다.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현재의 어떤 계획에서도 경제규모의 축소는 그것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필요성조차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형편이다. 심지어 환경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쓴 처방이라고 해도 성장세를 약간 더 느리게 하거나 ‘더 합리적으로’ 만드는 데 몰두할 뿐이다. 게다가 전지구적 경제활동을 관장하는 의사결정자들은 경제활동의 과감한 축소와 관련된 논의를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지속적인 소비규모의 확장에 철저히 의존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장 병원산업의 탐욕적 성장」, 39~40쪽)
물론 말이 쉽지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절박하게 ‘성장’을 해야만 하는 자들 앞에서 생태적 가치 운운하는 일은, 자칫 가진 자들의 흰소리로 들리기 십상이기도 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는 과제를 앞에 둔 우리에게는 일종의 진퇴양난이라고 할 문제가 놓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장이란 부의 사닥다리 맨 밑바닥에 위치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필요와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의 무한한 욕구 사이에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갈등을 회피하려는 사회에 손쉬운 해결책이 되어준다. 정치인이나 전문가라면 (…) 경제가 생산하는 파이의 크기는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기 때문에 각자가 받을 조각도 커질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것이다. (「10장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270쪽)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대놓고 성장타령을 하거나 우아한 척하며 녹색타령을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지구를 잿빛으로 만드는 주역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건 이것이 바로 그 합리성의 룰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의 문제, 그리고 권력의 불균등한 배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합리성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닌 셈이다. 그래서 바로 그와 같은 이중성이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라 지구자본주의가 지탱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구성요소가 된다는 점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녹색’과 ‘성장’이 자본주의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만적인 동거를 하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두 가지의 커다란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의 삶의 배후에 존재하는 체계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며, 다른 하나는 지구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어떠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지구가,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병들어가고 있다
이 책은 먼저 1장에서는 병원산업을 다루고, 2장과 3장에서는 제약산업을, 4장에서는 다이어트산업을, 5장에서는 산업화된 농업을, 6장에서는 에너지산업을, 7장에서는 기후변화와 양극화를, 8장에서는 산업화된 유기농과 양극화된 식품소비패턴을, 9장에서는 일상 속에서 사용되는 화학제품의 문제를 다룬다.
1장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의료산업을 다룬다. 인간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산업의 실제 모습은 초라하다. 인간의 건강보다 더 중시하는 것은 이윤율의 제고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몸에 대한 정보는 비대칭적이며, 따라서 환자는 의사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불안을 이용한 의료행위인 셈이다. 덕분에 과잉진료나 불필요한 검사를 통해 고가의 의료기계구입비용을 뽑는 일은 시간문제가 된다. 또 이 과정에서 어떻게 병원이 심각한 오염원이 되는지를 파헤친다.
2장에서는 병원산업과 발맞춰 성장 일로에 있는 제약산업을 다룬다. 환자가 많아야 이윤을 낼 수 있는 제약회사의 탐욕은 도를 넘어서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환자의 수를 늘리고 의사들이 자사의 약을 처방하도록 할 것인지에 있다.
3장에서는 다국적 제약회사에 원료를 공급하는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 인도의 환경오염을 다룬다. 저자는 인도의 벌크의약품 제조공장이 뿜어내는 오염에 노출된 사람들이 시달리는 증상을 고발한다. 그것은 느슨한 규제 속에서 생산된 수출용 의약품이 인도 밖에서 치료한다고 하는 바로 그 증상이라는 것이다.
4장에서는 자연상태의 식품보다 식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따로 만들어 판매하는 다이어트식품이나 영양제 시장의 과잉성장을 비판한다. 이는 인간에게 얼마간의 건강상의 혜택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로부터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기업이 있다는 사실이며, 또 생태계에 엄청난 교란과 무리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5장에서는 미국의 농업정책을 비판적으로 다룬다. 미국은 ‘테러리스트’의 음모에 맞서 산업화된 농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지만, 산업화된 공장식 농업은 ‘테러리스트’가 계획하고 있다는 바로 그러한 종류의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6장에서는 천연가스와 질소의 과다한 생산과 소비로 인해 초래될 위험성을 경고한다. 대부분의 경우 천연가스를 이용하여 생산되는 질소비료의 과잉소비로 인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한 인구의 수준을 훨씬 상회하게 되었다. 결국 이와 같은 악순환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고안된 경제체계가 야기할 파국적 결과는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7장에서는 서구에서의 산업화과정을 모방하여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어가고 있는 비서구의 신흥경제대국의 성장전략에 대해 우려를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의 그 많은 인구가 모두 미국과 비슷하게 자원을 사용하는 길을 따라간다면 그 생태적 충격은 지구상의 66억 인구가 132억으로 늘어났을 때의 충격과 비슷할 것”이라고 한다.
8장에서는 산업화된 유기농 식품유통시장의 문제를 짚는다. 문제의 핵심은 유기농식품을 판매하기 위한 귀족마케팅이 자사노동자에 대한 임금착취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생태파괴적인 방식으로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어울릴 수 없었으며, 그래서도 안 되는 ‘유기농’과 ‘대량생산’이 결합되었기 때문에 초래된 문제인 것이다. 결국 공장식으로 운영되는 농장이나 유기농과는 거리가 있는 중국산 농산물을 수입하여 유기농 딱지를 붙여서 판매하는 식으로까지 나아간다. 유기농의 의미가 형해화되고 있는 중이다.
9장에서는 인간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화학제품의 문제를 고발한다.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미끄러운 물질인 테플론의 상품화에 성공한 듀폰사의 탐욕을 알리고자 한다. 그것은 단 하루도 코팅된 프라이팬으로 조리된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고, 테플론의 위험성 또한 이미 상당한 근거를 통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광우병정국 때 제기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화학제품에 대해 인간이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사전예방원칙’, 즉 새로운 합성화학물질은 물론 모든 신기술은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이 입증될 때까지는 유해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는 시스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라
이어지는 10장에서 저자는 위대한 세 명의 사상가에 주목한다.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무한한 성장에 기초해서만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다고 설파한 칼 마르크스, 또 모든 경제활동이 자원고갈과 쓰레기 양산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해 생태계는 병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논증한 니콜라스 제오르제스쿠-뢰겐(Nicholas Georgescu-Roegen), 그리고 자원이용의 효율성의 증대가 반드시 생태적 지속가능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결과를 논증해보인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 의 사상적 궤적을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저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다음과 같은 말에도 같은 우려가 담겨 있다.
전지구적 경제혼란의 징후가 처음으로 나타났던 2008년 9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녹색 거품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루기 위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시행할 일련의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계획은 바이오연료, 태양전지, 연료전지, 원자력에너지, ‘청정’석탄, ‘친환경’ 자동차, LED전구, 바이오신약, 소프트웨어, 디자인 등의 영역을 아우릅니다. 만일 그 계획이 성공한다면, 높아진 에너지 효율성은 경제 확장에 기여해서 결국 더 많은 에너지 소비나 더 많은 탄소 배출로 이어진다는 제본스 패러독스Jevons Paradox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시도는 구시대적이고 무모한 산업 확장을 녹색 페인트와 첨단기술로 포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8~9쪽)
저자는 또한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가지고 있는 유럽사회에 대한 이해가 상당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빠뜨리지 않는다. 대량운송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식품의 ‘생산-유통-소비’ 체계로 인해 증대되는 ‘생태발자국’의 문제뿐만 아니라, 유전자조작식품이나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감안한다면 유럽이 미국보다 특별히 낫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사 유럽이 미국보다 좀더 인간적인 경제구조를 추구해왔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전제를 감안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오늘날 널리 존경받는 유럽의 제도와 정책이 저절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온 인간과 자원의 착취, 러시아의 천연가스, 페르시아만과 중앙아시아의 석유가 유럽이 원하는 곳으로 흐르도록 지켜주는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무언의 의존 등이 유럽의 제도와 정책의 기초를 이루며, 여기에는 과거 잔인했던 식민주의도 포함된다. (「10장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283쪽)
무엇을 할 것인가?
자본주의사회가 애당초 불신에 기초하여 구성된 사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연하게도 자본주의사회 속에서 그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할 것이며, 상대방을 속여서라도 이익을 추구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상대를 대책 없이 믿을 수는 없다. 불신을 전제로 한 합리적인 거래규칙의 마련.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셈인데, 그것 또한 만만치는 않다. 어쨌거나 그렇게라도 해야만 모두는 안녕을 실제로 보장받을 수 있거나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합리성의 매트릭스’ 속에서 마음속 불편함을 지워내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불안감은 일견 해소된 듯하지만 이런 식의 불안의 해소는 일종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현실은 여전히 위험하며 그 정도는 더 커져만 간다.
저자는 앞서 제기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정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자본주의가 사물의 자연적인 상태도 아니고 필연적인 상태 또한 아니라는 가정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가정이다. 물론 이와 같은 가정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단칼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환경문제가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성격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인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등의 내적 모순을 안고 있고, 이러한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은 결국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생태를 파괴할 경우에는 경제위기와 유사한 종류의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체제는 철저한 재난의 시기에 직면했을 때조차 여전히 굳건한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 마치 150m 높이의 건물 꼭대기에서 140m를 떨어져 내려온 사람이라도 완전히 바닥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멀쩡한 것처럼, 자본주의 역시 파국의 순간이 오는 그 순간까지는 온전하게 기능할 것이다. (「서문」, 20~21쪽)
문제해결의 어려움은 아마 여기서 비롯된 바 클 것이다. 우리 모두는 파국적 상황을 만드는데 일정하게 기여한 공모자들일 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서부터 일찌감치 그 어려움을 고백해야 했으며, 잘못된 해결방식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두어야 했던 것이다.6
마지막 장에서조차 이 같은 곤경에서 빠져나갈, 확실하고 안전한 경로를 제시하는 희망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을 것임을 미리 말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생태적으로 건전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은 고사하고 그러한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만 해도 최소한 현재의 경제체계와 그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성장 동력이 새로운 사회의 일부로 자리해서는 안 된다는, 보다 광범한 합의가 선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서문」, 21~22쪽)
현재 지구가 처한 곤경을 악한 세력, 즉 개인적인 재물 쌓기에 열심인, 음흉한 재계 거물이 빚어낸 작품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경쟁을 우선적인 가치로 삼는 세계 속에서 기업의 거대한 성장을 위해 삶의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붓는 부지런한 자본가에게 보상을 하는 체계가 빚어낸 자연스런 산물이다. 현재 전지구가 처한 곤경을 ‘나쁜’ 기업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기업가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서문」, 19쪽)
결국 문제해결은 소박한 곳으로부터 조금씩, 그러나 확고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태주의적 시민운동조직이나 환경관련 세금의 강화,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반독점법의 시행 등을 통해서 힘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직은 건립되지 않은 친환경 보건의료센터, ‘악시온 프라테나’와 아난타푸르 지역 공동체의 노력, 오클랜드에서 활동 중인 ‘서민의 식료품점’ 같은 운동이 세계 모든 대륙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들의 목표는 소수에 불과한 소유계급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고 현존 경제 질서를 넘어서는 것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존 질서를 거부하는 순간 끔찍한 보복을 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체계의 일부를 구성할 비교적 작은 특화된 조직과 구조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그리고 (…) 물질처리량·인구·부의 불균형을 제어할 거대 제도는 자본주의 경제의 부속물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할 체계를 계승하도록 설계되어야만 한다. (「10장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289~290쪽)
이 책은 주로 미국과 인도의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설마 이를 두고 남의 일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탠 콕스는 지금 당장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보다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해 우리들의 실천을 촉구하는 저자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미래세대에게 죄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감사의 글
서문
1 병원산업의 탐욕적 성장
그들은 병원을 짓고, 우리는 병원을 채운다
불량산업
성장통
불량의료기관
‘친환경’ 보건의료?
국부 창출이라는 허상
2 괜찮으세요? 정말 안녕하세요?
질병 부풀리기
환자와 의사를 상대로 한 영업전략
3 다국적 제약회사의 두 얼굴
다채로운 나라, 인도
부작용
엄하게 다스린다고?
4 지구를 통째로 삼키다
경고 : 이 다이어트법이 몸에 안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현상과 실재
바다 속의 모든 물고기
스스로 살찌는 산업
5 공장식 농업이라는 가공할 테러
산업화된 농장경제
농산물 생산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정말로 우리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자는 누구일까?
6 천연가스에 대한 갈증
질소, 인간, 그리고 경제논리
가스: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석탄: 형편없는 두번째 계획
월풀 욕조에서 휴식하는 사람과 굶주리는 사람
질소: 모자라도 문제, 넘쳐도 문제
욕구와 결핍
7 한 점으로 수렴되는 경제
지구가 어두워져간다
어두운 지평선
거실에 앉아 있는 30톤짜리 고릴라
8 유기농, 대량생산을 탐하다
작은 골리앗 대 큰 골리앗
당신이 근무하는 매장에서 쇼핑하세요?
유기농에도 손 뻗은 산업
다른 길
허점
9 세계가 당신의 주방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질긴 분자들
테플론에 열을 가하자 밝혀진 사실
화학업계의 책무
저항을 최소화하는 기업전략
화학제품, 무죄판결을 받다
10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서
위대한 세 권의 책
효율성
신기루에 불과한 유럽
불가능의 이유
더 읽을거리
주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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