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1581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1581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무책임의 정치 구조, 근대 일본 천황제의 실상을 해부한다
천황은 누구인가. 이것은 근대 일본국가의 정체와 경로를 규명하기 위해, 일본이 근대세계에 행한 범죄의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해, 그리고 식민지 이후의 한일관계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일본사회와 그 지성계에서도 오랫동안 ‘천황’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쇼와천황의 사망을 둘러싼 ‘붐’이 지나간 뒤로는 누구도 이 불편하고 복잡한 질문에 맞서고자 하지 않는다.
'세 천황 이야기-메이지, 다이쇼, 쇼와의 정치사'가 지니는 의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저자 야스다 히로시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일본의 세 천황, 무쓰히토(睦仁, 메이지).요시히토(嘉仁, 다이쇼).히로히토(裕仁, 쇼와)가 각각 무엇을 하고자 했고,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으며, 또한 어떤 역할을 할 수 없었는지 섬세하고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를 통해 최종적으로 ‘보필’과 ‘친재’의 동상이몽 속에 역사를 방기하는 무책임한 정치구조로 달려갔던 근대 일본의 정치사가 통렬하게 폭로되는 것이다.
“근대 천황제 국가는 ‘전통’적 군주라 여겨진 천황을 주축으로 함으로써, 급속한 권력 집중과 획일적인 국민 통합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 천황은 친정군주이며 정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절대적 권위로 출발했기 때문에, 전제군주제로서의 정치적 무책임성을 일차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다. 입헌제가 도입되어도 천황의 이러한 자리매김은 변함이 없었다. (…) 이미 메이지 시기부터 ‘군명’의 이름을 빌어 정치 책임의 회피가 일어나고 있었다. 천황은 이따금 친정을 실시하면서 ‘입헌군주’로서 보필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신하는 보필에 의해 천황을 움직이려 하면서도 천황의 명에 의해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양식이 일반화되었다. 이로써 ‘군신 상호의존의 구조’라 불러야 할 거대한 무책임의 체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야스다 히로시,〈나오며〉중에서
궁중과 정계의 음모와 갈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저자 야스다 히로시가 세 천황을 둘러싼 근대 일본의 행로를 추적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사료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그 사료는 기존의 장황한 연구서들이나 지루한 공식 연대기가 아니다. 천황을 비롯해 근대 일본을 이끌었던 최상층부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며 주고받은 내밀한 서신들, 천황의 최측근들이 의회나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남긴 비공개 문서들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적 인물들 스스로 입을 열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방식을 통해, 독자들은 직접 그 시대로 돌아가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격랑에 휩쓸리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막부 타도의 상징적 구심으로 내세워졌던 ‘어린 천자’ 무쓰히토가 군사군주로서 친정의 의지를 드러내며 메이지 천황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군주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다이쇼 덕분에 전전긍긍하는 중신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 ‘어전회의’를 통해 정세를 이끌고자 했던 쇼와천황의 시도가 번번이 원로에 의해 저지되는 와중에, 천황 권력의 허상을 업은 군부의 주도로 일본이 전쟁을 향해 질주하는 과정 등이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메이지, 친정 군주의 탄생
“짐이 한번 발걸음을 떼자 놀란 나머지 각종 의혹이 생기고 의견이 분분하나, 그로 인해 짐이 뜻을 펴지 못한다면 이는 짐의 임금으로서의 길을 막는 일이다.”
“자주 시종들에게 말씀하시길 짐 스스로가 대원수여야 한다고 하시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능숙하게 소대를 지휘하셨습니다.”
천황 친정은 처음부터 ‘명목’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정책 결정은 다양한 파벌 출신의 중신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명목으로나마 천황의 ‘친정’이 설정됨으로써 메이지 천황은 군사군주이자 개화군주로서의 자기 지향을 분명히 추구했고, 이는 고비 때마다 정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이쇼, 흔들리는 천황의 권위
“육해군의 담당자가 강의하는 군사상의 일은, 황송하지만 전혀 이해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폐하도 물정을 모르십니다. 말씀을 드려도 대소경중의 식별이 없으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요시히토가 천황의 자리에 오르자, 메이지 시기 강력하게 내세워졌던 천황의 절대적 권위와 실제 사이에 괴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중신들은 당황했다. 다이쇼의 잘못된 정치 판단이 정국을 꼬아버릴지 모르지만, 대놓고 천황의 권위를 부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쇼와, 전쟁으로 돌진하는 무책임의 정치구조
“소위 어전회의라는 것은 이상하다. 출석자 모두는 이미 의견일치를 거쳐 출석하고 있기에 중과부적이라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천황에게는 회의의 분위기를 지배할 결정권이 없다.”
“총리는 통수부 혹은 육군대신으로부터 작전에 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오히려 폐하에게 여쭸다. 여쭙고 난 뒤 다시 작전의 양상이 바뀌어도 그것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
제국주의적 침략 정책은 애초 쇼와천황이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군사군주로서의 천황에게만 귀속될 뿐, 의회와 내각의 명에 따르지 않음을 내세운 군부는 급기야 천황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대륙으로 총부리를 세운다. 천황은 군부를 통제하지 못한 채 방기함으로써, 그 자신의 권위로부터 스스로 소외되기에 이르렀다.
한국 독자만을 위해 배치된 몇 가지 요소들
'세 천황 이야기'에는 식민지 역사로 얽혀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비판적 지성의 연대를 호소하는 저자의 새로운 서문이 추가되었을 뿐 아니라, 원서에 없는 수많은 역주들이 일본 근대사 흐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새롭게 덧붙었다. 또 본문에 등장하는 복잡한 관제의 변화, 다양한 파벌을 대표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력을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하여 부록에 담았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에 알맞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천황은 누구인가. 이것은 근대 일본국가의 정체와 경로를 규명하기 위해, 일본이 근대세계에 행한 범죄의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해, 그리고 식민지 이후의 한일관계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일본사회와 그 지성계에서도 오랫동안 ‘천황’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쇼와천황의 사망을 둘러싼 ‘붐’이 지나간 뒤로는 누구도 이 불편하고 복잡한 질문에 맞서고자 하지 않는다.
'세 천황 이야기-메이지, 다이쇼, 쇼와의 정치사'가 지니는 의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저자 야스다 히로시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일본의 세 천황, 무쓰히토(睦仁, 메이지).요시히토(嘉仁, 다이쇼).히로히토(裕仁, 쇼와)가 각각 무엇을 하고자 했고,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으며, 또한 어떤 역할을 할 수 없었는지 섬세하고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를 통해 최종적으로 ‘보필’과 ‘친재’의 동상이몽 속에 역사를 방기하는 무책임한 정치구조로 달려갔던 근대 일본의 정치사가 통렬하게 폭로되는 것이다.
“근대 천황제 국가는 ‘전통’적 군주라 여겨진 천황을 주축으로 함으로써, 급속한 권력 집중과 획일적인 국민 통합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 천황은 친정군주이며 정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절대적 권위로 출발했기 때문에, 전제군주제로서의 정치적 무책임성을 일차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다. 입헌제가 도입되어도 천황의 이러한 자리매김은 변함이 없었다. (…) 이미 메이지 시기부터 ‘군명’의 이름을 빌어 정치 책임의 회피가 일어나고 있었다. 천황은 이따금 친정을 실시하면서 ‘입헌군주’로서 보필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신하는 보필에 의해 천황을 움직이려 하면서도 천황의 명에 의해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양식이 일반화되었다. 이로써 ‘군신 상호의존의 구조’라 불러야 할 거대한 무책임의 체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야스다 히로시,〈나오며〉중에서
궁중과 정계의 음모와 갈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저자 야스다 히로시가 세 천황을 둘러싼 근대 일본의 행로를 추적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사료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그 사료는 기존의 장황한 연구서들이나 지루한 공식 연대기가 아니다. 천황을 비롯해 근대 일본을 이끌었던 최상층부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며 주고받은 내밀한 서신들, 천황의 최측근들이 의회나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남긴 비공개 문서들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적 인물들 스스로 입을 열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방식을 통해, 독자들은 직접 그 시대로 돌아가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격랑에 휩쓸리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막부 타도의 상징적 구심으로 내세워졌던 ‘어린 천자’ 무쓰히토가 군사군주로서 친정의 의지를 드러내며 메이지 천황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군주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다이쇼 덕분에 전전긍긍하는 중신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 ‘어전회의’를 통해 정세를 이끌고자 했던 쇼와천황의 시도가 번번이 원로에 의해 저지되는 와중에, 천황 권력의 허상을 업은 군부의 주도로 일본이 전쟁을 향해 질주하는 과정 등이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메이지, 친정 군주의 탄생
“짐이 한번 발걸음을 떼자 놀란 나머지 각종 의혹이 생기고 의견이 분분하나, 그로 인해 짐이 뜻을 펴지 못한다면 이는 짐의 임금으로서의 길을 막는 일이다.”
“자주 시종들에게 말씀하시길 짐 스스로가 대원수여야 한다고 하시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능숙하게 소대를 지휘하셨습니다.”
천황 친정은 처음부터 ‘명목’에 불과했고 실질적인 정책 결정은 다양한 파벌 출신의 중신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명목으로나마 천황의 ‘친정’이 설정됨으로써 메이지 천황은 군사군주이자 개화군주로서의 자기 지향을 분명히 추구했고, 이는 고비 때마다 정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이쇼, 흔들리는 천황의 권위
“육해군의 담당자가 강의하는 군사상의 일은, 황송하지만 전혀 이해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폐하도 물정을 모르십니다. 말씀을 드려도 대소경중의 식별이 없으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요시히토가 천황의 자리에 오르자, 메이지 시기 강력하게 내세워졌던 천황의 절대적 권위와 실제 사이에 괴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중신들은 당황했다. 다이쇼의 잘못된 정치 판단이 정국을 꼬아버릴지 모르지만, 대놓고 천황의 권위를 부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쇼와, 전쟁으로 돌진하는 무책임의 정치구조
“소위 어전회의라는 것은 이상하다. 출석자 모두는 이미 의견일치를 거쳐 출석하고 있기에 중과부적이라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천황에게는 회의의 분위기를 지배할 결정권이 없다.”
“총리는 통수부 혹은 육군대신으로부터 작전에 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오히려 폐하에게 여쭸다. 여쭙고 난 뒤 다시 작전의 양상이 바뀌어도 그것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
제국주의적 침략 정책은 애초 쇼와천황이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군사군주로서의 천황에게만 귀속될 뿐, 의회와 내각의 명에 따르지 않음을 내세운 군부는 급기야 천황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대륙으로 총부리를 세운다. 천황은 군부를 통제하지 못한 채 방기함으로써, 그 자신의 권위로부터 스스로 소외되기에 이르렀다.
한국 독자만을 위해 배치된 몇 가지 요소들
'세 천황 이야기'에는 식민지 역사로 얽혀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비판적 지성의 연대를 호소하는 저자의 새로운 서문이 추가되었을 뿐 아니라, 원서에 없는 수많은 역주들이 일본 근대사 흐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새롭게 덧붙었다. 또 본문에 등장하는 복잡한 관제의 변화, 다양한 파벌을 대표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력을 알기 쉽게 표로 정리하여 부록에 담았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에 알맞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목차
독자에게 한국어판을 내며
1장 근대 천황의 탄생
1. 왕정복고 쿠데타와 ‘어린 천자’ 2. 천황 친정의 실상 3. 메이지 천황의 ‘자립’
2장 헌법체제하의 메이지 천황―입헌군주의 친정
1. 내각과 천황 2. 초기 의회기의 천황 3. 청일 전쟁 이후의 천황 친정
3장 다이쇼 천황과 정당내각제
1. 다이쇼 천황 계승과 정치 변동 2. 천황의 병환 공표와 정당내각 3. 정당내각제의 실태
4장 쇼와 천황의 즉위와 ‘전향’―친정군주의 재등장과 ‘입헌군주’화
1. 쇼와 천황과 정당내각 2. 천황과 군부의 갈등 3. 쇼와 천황의 천황상 역전
나오며 역자 후기 보론
부록 도표로 보는 관제 변화 메이지 시대 주요 인물들 인용한 자료 그 밖의 참고문헌 후주 인명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