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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마천, 이태백, 소동파처럼 그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메이저급 작가에서부터, 예형이나 서문장, 이탁오처럼 살아서나 죽어서나 소수 마니아층만 거느린 광인, 하심은이나 진자룡, 하완순처럼 지식인으로서는 드물게 뜨거운 삶을 살다 간 혁명가의 최후를 두루 다루었다.
2002년 산문대상, 중어권 문학 미디어 대상
인생의 뒤안길에서 문인의 죽음을 가지고 치열하게 씨름한 중국 문단의 거물 리궈원(79)은 그 자신 역시 정치 희생양이 되었던 인물이다.
1957년 혈기왕성한 나이에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단편소설 <재선거>를 세상에 내놓은 그는 이내 독자들의 큰 호응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그 작품으로 인해 ‘우파’로 낙인찍혔고, 하루아침에 삶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상개조 작업의 일환으로 철도공사의 인부가 된 그는 무려 20여 년의 세월 동안 붓을 꺾고 살다가 사인방(장칭, 야오원위안, 왕훙원, 장춘차오)이 축출된 1976년에서야 다시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 온갖 인생역정을 겪은 작가에게 중국 문단은 제1회 마오둔 문학상을 비롯해 루쉰 문학상, 올해의 산문대상 등 많은 상을 안겨줬고, 이 작품 역시 ‘중어권 문학 미디어 대상’, ‘산문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리궈원은 그 모진 문화대혁명의 경험을 되살려 문인으로 산다는 것의 가식과 허상, 자긍과 오만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싶었다고 말한다.
‘문재가 조금 모자란’ 황제의 질투
중국 역사에는 삼백 명이 넘는 황제가 군림했지만 문인을 제대로 대우한 황제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왜 그토록 문인에게 잔인하게 굴었을까. 첫째는 ▲황제의 질투심, 둘째는 ▲황제의 사회규범을 무시했기 때문, 셋째는 ▲사회금기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지껄였기 때문이다.
천하를 호령했던 황제에게 ‘질투심’이라니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나 저자는 특히 중국 문화사에서 기이한 현상 가운데 하나로 황제에 오른 사람이면 누구나 시를 썼다는 점을 꼽는다. 머리에 먹물이 들었든 아예 먹물과는 거리가 멀고 무력으로 즉위했든, 즉위만 하면 모두 시를 쓰려고 안달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황소黃巢?이자성李自成?장헌충張獻忠?홍수전洪秀全 같은 민중 혁명가들도 보위에 오르기 전에 시를 몇 구절 읊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유방은 황제가 되자마자 갑자기 “큰 바람 불고 구름 일어나니”를 내뱉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진시황과 한 무제는 문재文才가 조금 모자랐고”라는 구절에서 저자는 한 무제가 사마천을 ‘궁’형에 처한 이유를 읽어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최대의 약점인 ‘질투’라는 이 저열한 근성은 황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가 잘리는 것은 아플 뿐이고……”
“빈 산 빈 계곡에 황금 만 냥과 미인 한 명이 있는데, 누군가 그대에게 마음이 동하지 않겠는가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명말 청초의 문예비평가 김성탄(?~1661)은 이 ‘동한다動’는 글자를 무려 39개나 씀으로써 세상에 대한 조롱을 표현했을 만큼 새 왕조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의 죽음은 ‘보는 대로 말하다가는 죽임을 면치 못하리라’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수호전》을 《장자》와 ‘두시杜詩’와 나란히 쳤는데, 벼슬아치도 평민도 아닌 한 문인이 마음대로 작품의 서열을 논하고 비평한 행동은 시건방지게 함부로 지껄인 것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공맹지도孔孟之道를 어긴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누가 앞장서고 누가 뒤를 따라야 할지, 누가 먼저 입을 열고 누가 그 후에 의견을 말해야 하는지, 누가 먼저 오케이 사인을 할지, 누가 먼저 잔을 들고 누가 먼저 숟가락을 대는 것인지에 관한 질서가 불문율로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양산박의 형제들도 평소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충의당에 모일 때에도 언제나 순서와 자리를 따졌다. 흑선풍 이규가 아무리 막돼먹은 사내라 할지라도 급시우 송강의 의자에 큰 대자로 앉는 법은 없었다. 당시 윗사람을 넘어서려는 외람된 행동은 그 윗사람뿐 아니라 아랫사람까지도 용납하지 않았으니, 게임의 법칙을 무시하는 행동을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 이런 게임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여긴 문인들은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광인이자 유쾌한 사람이었던 그가 세상을 경멸하고 우습게 여기던 태도는 죽으면서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김성탄은 형장으로 가는 길에 “머리가 잘리는 것은 아플 뿐이고, 가산을 몰수당하는 것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나 성탄이 뜻하지 않은 일로 그리된 것은 참으로 괴이하도다!”라고 소리친 다음 웃으며 형을 받았다.
“이욱이 시를 짓는 정성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어찌 나의 포로가 되었겠는가?”
배워서 뛰어나면 관직에 나아간다는 ‘학이우즉사學而優則仕’를 목표로 분투하는 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권력을 좋아하고 관직을 향해 영합하며 통치계급에 빌붙고 권력다툼의 현장에서 떡고물이라도 얻어먹고자 하는 심리가 뼛속 깊이 녹아 있었다. 중국 지식인들은 일이 잘못돼 목을 내놓을지언정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차마 억제하지 못하고 ‘관직’에 대한 갈망으로 괴롭고도 열정적이며 애타면서도 전전긍긍 불안하면서도 위세를 부렸다. 지칠 줄 모르는 권력 추구, 일종의 ‘관직 콤플렉스’다.
그래서 문인이 정치병에 걸리면 약도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 “시인이 황제 자리를 겸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어긴 이욱(937~978.8.15)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시인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으니, 첫 번째는 남보다 끓는점이 낮아서 쉽게 흥분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강도가 약해서 쉽게 낙담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참을성이 부족해서 분노를 잘 터뜨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를 시인의 손에 맡기면 결국 다 함께 밥숟가락을 놓게 되고 만다.” 이 말에 등장하는 시인 이욱은 급박한 정치정세에 대책을 못 세우고 주연에 빠져 결국 송나라에 나라를 빼앗기는 결과를 낳았다. 채조의 《서청시화西淸詩話》에 ‘이욱이 시를 짓는 정성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어찌 나(송 태조 조광윤)의 포로가 되었겠는가?’라는 기록대로 이욱은 중국 남당南唐의 마지막 왕(937~978)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욱을 독살한 송 태종을 잔인한 인물로 묘사한다. “그가 한 사람의 제왕을 축출한 일은 별것 아니지만 문학사적 관점에서 한 사람의 시인을 죽인 것은 타격이 큰 일이었다. 천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불세출의 시인을 죽였기 때문이다.”
목차
추천사
지은이 서문
1. 궁형의 고통을 《사기》로 승화시킨 위대한 역사가 - 사마천
2. 누런 개를 데리고 동문으로 사냥 가던 때가 기억나느냐 - 이사·육기
3. 동탁을 위해 운 죄가 그리도 컸던가! - 채옹
4.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가 조조에게 목숨을 잃은 명사들 - 예형.공융.최염.양수
5. 탕무를 부정하고 공자를 가벼이 여긴 혁신가 - 혜강
6. 성도착증에 빠진 금지옥엽의 귀공자 - 하안
7. 천하를 그르칠 자, 바로 이 아이로구나! - 왕연
8. 광기가 지나쳐 목이 달아난 시인 - 사령운
9. 두 번 배신으로 구렁텅이에 빠지다 - 사조
10. 관직의 미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천재 시인 - 이백
11. 황제보다 시인의 이름이 어울렸던 남자 - 이후주
12. 위선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개혁가 - 왕안석
13. 시대에 순응하지 않은 위대한 문장가 - 소식
14.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 여류시인 - 이청조
15. 살인의 광기에 빠진 군주를 만나다 - 고계
16. 책 속에 사는 백면서생의 한계 - 방효유
17. 재주도 분수를 지켜야 빛을 발한다 - 해진
18. 시대를 앞서간 공산주의의 선구자 - 하심은
19. 죽어서 화를 당한 대쪽 성품의 명재상 - 장거정
20. 송곳으로 제 귀를 찌른 광기 어린 천재 - 서위
21. 역사에서 잊힐까 두려워한 희대의 괴짜 - 이지
22. 풍류에 빠져 매독으로 생을 마감한 극작가 - 도융
23. 뛰어난 재주를 엉뚱하게 쓴 간신 - 완대성
24. 우국충정의 대명사로 각인된 문인 - 진자룡
25. 통쾌한 광인의 해학 가득한 죽음 - 김성탄
26. 변절을 후회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다 - 오위업
27. 최연소 문인 열사의 준엄한 꾸짖음 - 하완순
28. 문자옥의 희생양이 된 비극의 주인공 - 장정롱?홍방사
29. 사랑해선 안 될 여인을 사랑한 순정파 시인 - 공자진
30. 10년 전에 죽었으면 완벽했을 사람 - 오옥요
31. 미스터리를 남기고 곤명호로 뛰어들다 - 왕궈웨이
옮긴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