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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노자의 새 책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가 출간됐다. 지난 2006년 이후 신문과 잡지 등의 매체와 박 교수의 개인 블로그에 써온 글을 추려내 엮은 이 책에서 박노자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공공성의 한국’ ‘복지국가로서의 한국’으로 가야만 하는 ‘한국 진보 정치’의 현재와 방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다.
박노자가 가진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현재의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데 있다. 아직도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꼽는 이들이 가장 많으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50~55퍼센트로 고정화되어 있는 한국은, 자본주의(돈)가 나라의 제1 종교가 된 지 오래며, ‘돈’ ‘성공’ ‘성장률’ ‘땅값’에 대한 신앙이 뿌리 깊게 내린 ‘무한경쟁’의 왕국이다. 설상가상 이명박 정권의 등장에 따른 수출?토건 경제로의 올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 공안 정치의 부활, 적대적 남북 관계로의 회귀 등과 세계 경제의 공황적 상황은, ‘복지 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전망을 절망하게 한다. 주목할 것은 MB 정권의 실정은 현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그것이 아무리 최악이라고 해도) 하나의 변수일 뿐이라는 박노자의 관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MB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갑자기 밝아질 리는 결코 없다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상식’의 근거를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MB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을 멍들게 하는 것은 대통령”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은 그나마 국민의 손으로 선출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영혼을 상실한 검찰과 사법 권력은 어찌할 것인가? 정권이 교체된 후 ‘코드’에 맞게끔 검찰총장을 인선하고, 대법관을 추천한다고 해서, 권력친화적 사법 시스템의 고질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부자들의 독식이 노골화되어가는 고등 교육 시스템과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소위 명문 대학의 ‘대학업자’들, 하나님과 부처님을 팔아 치부하는 종교업자들, 관성적으로 깃발만 나부끼고 있는 남성 정규직 위주의 썩어빠진 노조 관료들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자본 권력’의 횡포는, 이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높디높은 성역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보수주의자 A 대신에 보수주의자 B가” 집권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설령 B가 자유주의적인 개혁 성향(예를 들자면 김대중, 노무현과 같은)의 인물이라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박노자의 진단이다.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 방식에 대한 그의 비판은 신랄한 듯 느껴지지만,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 진행된 ‘부동산 광풍’ ‘부에 대한 맹목적 추종’ ‘한미 FTA 추진’ ‘이라크 파병’ 등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화?보수화를 돌이켜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 <미녀들의 수다>에 출현한 핀란드 출신 여성 ‘따루’는 “한국의 좌파는 핀란드의 우파 같아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의 과제로 언급되어온 국가보안법 등의 악법 폐지, 각종 토착 비리 척결을 통한 관료제의 합리적 개선, 삼성과 조중동을 비롯한 대자본에 대한 국가적 견제,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 같은 목표들은 지난 자유주의 정권의 10년 집권 기간 동안 여지없이 실패했다. “자유주의적 ‘개혁론’의 기본적 문제점은, ‘자유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이상, 아주 ‘온건한’ 목표들도 사실상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슬픈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가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급진적인 ‘왼쪽’으로의 행진에 의해서만 어느 정도 빛이 있을 거라는 것이 박노자의 주장이다. 그 험난한 왼쪽으로의 행진 끝에 도달해야 할 곳은 “양육?교육?의료를 공동체가 책임지는 나라”로 표현될 수 있는, 공공성의 국가, 복지국가로의 대전환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를 흘리지 않는 선에서의 전면적인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급진적 개혁’을 통해서만 겨우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지금 한국의 현실을 보면 ‘제3의 길’이나 ‘기우뚱한 균형’,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간다’는 식의 중립지향의 언설은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하기가 불가능하다. 보수 언론과 극우 정권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중도’ 운운의 담론이고, 그런 이야기들은 그들이 구색 맞추기 정도의 용도로 써먹다가 현 시스템 안에서 수렴, 순치시키기 딱 좋은 먹잇감이 아닌가. 박노자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는 구호와 실천을 선명히 내세우는 까닭은, 워낙에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흐름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왼쪽으로 기울어져야 비로소 좌우의 날개를 갖고 나는 새의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류에 위험한, 불온한 흐름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중간 지점’에마저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타결될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먼저 부르는 게 흥정의 원칙이 아닌가?(p.72)” 박노자는 그 근거로 현실에서 복지국가의 모범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라는 고귀한 열매를 지배자들의 순순한 양보 하에 얻어낸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예로 든다. 가령 노르웨이 노동당의 왼쪽 흐름은 “구소련의 독재를 거부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혁명적 공산주의를 주장했었다. 그 정도의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 북구의 지배층이 불가피하게 양보를 해서 ‘복지 시스템’ 건설에 동의한 것이다.
물론 ‘왼쪽으로의 행진’을 뒷받침해줄 여러 여건은 녹록치 않다. 외부 환경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내 진보 세력의 역량 자체가 미약한 게 사실이고, 현실적 지지 세력의 숫자도 절대적으로 소수이다. “가시밭길, 하지만 꼭 가야할 가시밭길”이라 인정하고 있듯이, 우선 진보 정당이 제대로 된 복지형 국가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현실적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라는, 멀기만 한 선행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근거한 ‘계급적 투표’ 관행이 한국 정치 메커니즘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각성의 실마리는 결국 현실에서 나올 것이다. 무수한 대학 졸업생들이 맥없이 ‘백수의 대열’에 서게 되는 까닭이 자신들의 ‘무능력’이나 ‘스펙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 각 개인과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교육비와 의료비 부담 수준이 임계 상황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오늘의 번듯한 자영업자가 내일의 철거민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 등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지펴낼 것이며, 그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왼쪽으로부터의 저항과 압박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게 박노자의 판단이다.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대한민국과 그 주변부에 대한 시선
최근 ‘손바닥 아트’라는 장르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박재동 화백의 그림 가운데 하나는, 무심히 길을 걷다 동남아시아계 ‘이주 노동자’ 무리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아니 저것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떠들고 있나!’, 라고 짜증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엄청 놀랐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박 화백 자신 속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위계 의식이 있다는 부끄러운 발견!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 등 박노자의 책을 읽어온 많은 한국인들이 경험한 놀라움이 바로 같은 맥락의 것이 아니었을까? 박노자는 이번 책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에서도, 우리가 부끄러워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혹은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실 자체에 무지했던, 한국 사회의 폐부를 콕콕 찌른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보편적 한국인의 마음을 깊숙이 관리하고 있는 삼성 문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보다 ‘장난감 선물’에 더 의미를 두는 대다수 부모들의 의도적 무심함,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등 북방 사극 속에 담겨 있는 감성적 민족주의와 페니스 파시즘, 탈북자를 양산하는 북한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미국(약 19만 명)과 일본(약 5만 명) 등 30만 명에 육박하는 불법적 해외 체류자들인 ‘탈남자’의 존재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낙태를 문제시 하지 않는 한국의 종교인들, 진보 진영조차 빠지고는 하는 ‘신성한 국토’, 독도에 대한 주술 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한국 사회의 비이성적 빈틈과 타성을 박노자는 여전히 거침없이 짚어낸다. 더불어 이번 책에서는 지난 2008년 가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전 지구적인 중층의 시각, 소수 약자의 대변인을 상징하며 미국의 대통령이 된 ‘착한’ 오바마가 더 이상 ‘착할 수 없는’ 정책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세계 질서 내의 미국에 대한 속 깊은 성찰 등을 읽어낼 수 있다.
그의 성찰과 글이 한국 사회에 여전한 울림을 주는 것은, 그것이 국외자의 별다른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라, 누구의 것보다도 치열한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매번 우리의 무딘 마음과 타성적 정신을 베어내는 칼날이 될지언정, 그 아픔으로 새롭게 세상에 대해 눈뜨는, 귀한 기회를 얻게 되지 않는가.
박노자가 가진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현재의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데 있다. 아직도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꼽는 이들이 가장 많으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50~55퍼센트로 고정화되어 있는 한국은, 자본주의(돈)가 나라의 제1 종교가 된 지 오래며, ‘돈’ ‘성공’ ‘성장률’ ‘땅값’에 대한 신앙이 뿌리 깊게 내린 ‘무한경쟁’의 왕국이다. 설상가상 이명박 정권의 등장에 따른 수출?토건 경제로의 올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후퇴, 공안 정치의 부활, 적대적 남북 관계로의 회귀 등과 세계 경제의 공황적 상황은, ‘복지 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전망을 절망하게 한다. 주목할 것은 MB 정권의 실정은 현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그것이 아무리 최악이라고 해도) 하나의 변수일 뿐이라는 박노자의 관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MB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갑자기 밝아질 리는 결코 없다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상식’의 근거를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MB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그가 보기에 “대한민국을 멍들게 하는 것은 대통령” 한 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은 그나마 국민의 손으로 선출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국민의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영혼을 상실한 검찰과 사법 권력은 어찌할 것인가? 정권이 교체된 후 ‘코드’에 맞게끔 검찰총장을 인선하고, 대법관을 추천한다고 해서, 권력친화적 사법 시스템의 고질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부자들의 독식이 노골화되어가는 고등 교육 시스템과 그것을 부추기고 있는 소위 명문 대학의 ‘대학업자’들, 하나님과 부처님을 팔아 치부하는 종교업자들, 관성적으로 깃발만 나부끼고 있는 남성 정규직 위주의 썩어빠진 노조 관료들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자본 권력’의 횡포는, 이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높디높은 성역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보수주의자 A 대신에 보수주의자 B가” 집권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설령 B가 자유주의적인 개혁 성향(예를 들자면 김대중, 노무현과 같은)의 인물이라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박노자의 진단이다.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 방식에 대한 그의 비판은 신랄한 듯 느껴지지만,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 진행된 ‘부동산 광풍’ ‘부에 대한 맹목적 추종’ ‘한미 FTA 추진’ ‘이라크 파병’ 등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화?보수화를 돌이켜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 <미녀들의 수다>에 출현한 핀란드 출신 여성 ‘따루’는 “한국의 좌파는 핀란드의 우파 같아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의 과제로 언급되어온 국가보안법 등의 악법 폐지, 각종 토착 비리 척결을 통한 관료제의 합리적 개선, 삼성과 조중동을 비롯한 대자본에 대한 국가적 견제,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 같은 목표들은 지난 자유주의 정권의 10년 집권 기간 동안 여지없이 실패했다. “자유주의적 ‘개혁론’의 기본적 문제점은, ‘자유주의’라는 틀에 갇혀 있는 이상, 아주 ‘온건한’ 목표들도 사실상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슬픈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가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급진적인 ‘왼쪽’으로의 행진에 의해서만 어느 정도 빛이 있을 거라는 것이 박노자의 주장이다. 그 험난한 왼쪽으로의 행진 끝에 도달해야 할 곳은 “양육?교육?의료를 공동체가 책임지는 나라”로 표현될 수 있는, 공공성의 국가, 복지국가로의 대전환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를 흘리지 않는 선에서의 전면적인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급진적 개혁’을 통해서만 겨우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지금 한국의 현실을 보면 ‘제3의 길’이나 ‘기우뚱한 균형’,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간다’는 식의 중립지향의 언설은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하기가 불가능하다. 보수 언론과 극우 정권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 ‘중도’ 운운의 담론이고, 그런 이야기들은 그들이 구색 맞추기 정도의 용도로 써먹다가 현 시스템 안에서 수렴, 순치시키기 딱 좋은 먹잇감이 아닌가. 박노자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는 구호와 실천을 선명히 내세우는 까닭은, 워낙에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흐름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왼쪽으로 기울어져야 비로소 좌우의 날개를 갖고 나는 새의 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주류에 위험한, 불온한 흐름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중간 지점’에마저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타결될 가격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먼저 부르는 게 흥정의 원칙이 아닌가?(p.72)” 박노자는 그 근거로 현실에서 복지국가의 모범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라는 고귀한 열매를 지배자들의 순순한 양보 하에 얻어낸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예로 든다. 가령 노르웨이 노동당의 왼쪽 흐름은 “구소련의 독재를 거부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혁명적 공산주의를 주장했었다. 그 정도의 왼쪽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었기 북구의 지배층이 불가피하게 양보를 해서 ‘복지 시스템’ 건설에 동의한 것이다.
물론 ‘왼쪽으로의 행진’을 뒷받침해줄 여러 여건은 녹록치 않다. 외부 환경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내 진보 세력의 역량 자체가 미약한 게 사실이고, 현실적 지지 세력의 숫자도 절대적으로 소수이다. “가시밭길, 하지만 꼭 가야할 가시밭길”이라 인정하고 있듯이, 우선 진보 정당이 제대로 된 복지형 국가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현실적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라는, 멀기만 한 선행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근거한 ‘계급적 투표’ 관행이 한국 정치 메커니즘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각성의 실마리는 결국 현실에서 나올 것이다. 무수한 대학 졸업생들이 맥없이 ‘백수의 대열’에 서게 되는 까닭이 자신들의 ‘무능력’이나 ‘스펙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 각 개인과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교육비와 의료비 부담 수준이 임계 상황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오늘의 번듯한 자영업자가 내일의 철거민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 등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지펴낼 것이며, 그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왼쪽으로부터의 저항과 압박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게 박노자의 판단이다.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대한민국과 그 주변부에 대한 시선
최근 ‘손바닥 아트’라는 장르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박재동 화백의 그림 가운데 하나는, 무심히 길을 걷다 동남아시아계 ‘이주 노동자’ 무리들이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아니 저것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떠들고 있나!’, 라고 짜증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엄청 놀랐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진보적이라 생각했던 박 화백 자신 속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위계 의식이 있다는 부끄러운 발견!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 등 박노자의 책을 읽어온 많은 한국인들이 경험한 놀라움이 바로 같은 맥락의 것이 아니었을까? 박노자는 이번 책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에서도, 우리가 부끄러워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혹은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사실 자체에 무지했던, 한국 사회의 폐부를 콕콕 찌른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보편적 한국인의 마음을 깊숙이 관리하고 있는 삼성 문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보다 ‘장난감 선물’에 더 의미를 두는 대다수 부모들의 의도적 무심함,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등 북방 사극 속에 담겨 있는 감성적 민족주의와 페니스 파시즘, 탈북자를 양산하는 북한의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미국(약 19만 명)과 일본(약 5만 명) 등 30만 명에 육박하는 불법적 해외 체류자들인 ‘탈남자’의 존재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낙태를 문제시 하지 않는 한국의 종교인들, 진보 진영조차 빠지고는 하는 ‘신성한 국토’, 독도에 대한 주술 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한국 사회의 비이성적 빈틈과 타성을 박노자는 여전히 거침없이 짚어낸다. 더불어 이번 책에서는 지난 2008년 가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전 지구적인 중층의 시각, 소수 약자의 대변인을 상징하며 미국의 대통령이 된 ‘착한’ 오바마가 더 이상 ‘착할 수 없는’ 정책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세계 질서 내의 미국에 대한 속 깊은 성찰 등을 읽어낼 수 있다.
그의 성찰과 글이 한국 사회에 여전한 울림을 주는 것은, 그것이 국외자의 별다른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라, 누구의 것보다도 치열한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매번 우리의 무딘 마음과 타성적 정신을 베어내는 칼날이 될지언정, 그 아픔으로 새롭게 세상에 대해 눈뜨는, 귀한 기회를 얻게 되지 않는가.
목차
1부 가시밭길, 하지만 갈 수밖에 없는 길
-한국에 진보정당이 꼭 필요한 까닭
가난한 사람들이 왜 이명박을 지지하나
'좌파 민족주의'와의 거리두기
젊은이들은 왜 등을 돌렸을까
한국인, 정말 보수적인가
한국에서 계급 정당을 하기 어려운 이유들
새해를 앞두고 부르주아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깨닫다
이명박만 없어지면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까
자유주의적 온건 개혁의 미망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며,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
'국가 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다
계급적 투표가 절실하다
-혁명이냐 개혁이냐
비겁한 개량주의자(?)의 고백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싸움터이다
'독재 타도'를 넘어선 진짜 시민사회의 필요성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을 버려라
혁명이냐 급진적 개혁이냐
'이론'의 기준은 현실과 실천이다
나의 혁명론 1 - 자발적 동의의 양날
나의 혁명론 2 - 개인적 반란자들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나의 혁명론 3 - 혁명의 조건
나의 혁명론 4 - 반란의 핵, 세계의 준주변부
나의 혁명론 5 - 2009년은 반란의 해가 될 것인가
나의 혁명론 6 - 나라가 망해도 혁명은 없었다
나의 혁명론 7 - 자기 상품화를 즐기는 인간들?
나의 혁명론 8 - 결론을 대신하여
2부 공포공화국을 작동시키는 톱니바퀴들
-우리들의 마음 관리자, 자본의 폭력
여승무원들에게 절을 바친다
내가 왜 자본주의를 혐오하는가
강성 노조가 국민 경제를 좀 먹는가
KTX 여승무원, 그리고 허울 좋은 '민주화'
개인의 경쟁력 vs. 개인의 생명력
삼성, 우리 마음의 '관리자'
끝내 미국에 가지 않은 이유
광우병 논란의 뿌리, '광(狂)개발병'
자전거형 사회·경제 모델
가난뱅이는 죽어도 싼가
한국, 발 붙이고 싶어도 붙일 데가 없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위대한 쿨함'의 제국, 만세!
-국가의 폭력, 일상의 폭력
더 많은 인권이 필요하다
'말을 잘 안 듣는 아이'을 위하여
우리에게 없는 것, 일터 민주주의
'북방 사극' 속의 '페니스 파시즘'
한국은 왜 이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가
'무지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양심적 병역 거부권, 더 많은 투쟁이 필요하다
애써 외면하는 탈남의 행렬
서울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청소부와 장관을 동등하게 대하기
서구인들은 정(情)이 없다고?
공권력은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 장사' '부처님 장사' 하는 이들에게
배제와 차별이야말로 '지옥'이다
왜 한국 기독교는 참회하지 않나
교회, 장기적 보수화의 일등공신
한국 종교인들은 왜 낙태에 반대하지 않나
부처님은 죽이라고 했는가
평화의 아들이 전장에 나가도 되는가
3부 정신의 거세에 맞서는 냉철한 시선
-누가 역사를 왜곡하는가
탈민족 담론의 문제점
'건국절' 궤변을 반대하는 이유
긍지를 가르치겠다는 뉴라이트의 역사관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한 거시적 단상
-다시 대듦의 정신이 필요하다
외국 저널의 숭배, 지식 권력의 신비화
페렐만이 괴짜라고?
한 러시아 지한파 지식인의 비극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
세계적 대학을 만들자면
오리엔탈리즘의 현주소
이놈들아, 나를 매장시켜봐라!
신자유주의 한국, 대학이라는 이름의 폐허
-주변을 보는 성찰적 시선
한반도 생존의 길
일본의 우경화와 우리들의 우경화
용서할 줄 아는 것도 '힘'이다
무소불위의 단어, '피해자'
독일에서 '반일 감정'을 사색하다
중국 독재에 대한 논쟁
역사의 ‘진보’는 늘 인간의 '선'인가
'신성한 국토', 20세기 피비린내의 산물
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이 하나된 이스라엘의 위험성
대한민국과 그리스 젊은이들의 반란
미 제국 패권의 몰락의 속도
'착한' 오바마와 '착할 수 없는' 미국 대통령
대공황의 법칙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