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2009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2009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통쾌하고 기발한 논쟁 필승 가이드북!
한네스 슈타인, 토론의 최강자가 되는 노하우를 공개하다.
지난 6월, 국내 처음으로 존엄사 인정 판결을 받은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호흡기 없이 100여 일을 견뎌 10월 현재까지 자가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일년 여에 걸친 재판과 항소, 법정 바깥의 무수한 설전에도 불구하고 존엄사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체 누구를 위한 ‘존엄한’ 혹은 ‘안락한’ 죽음일까? 자결권 역시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논리와, ‘안락사 논의’는 결국 생명을 유지하는 데 지불되는 ‘비용’ 문제로 귀결된다는 데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의견은 아직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리고 10월, 극장판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개봉되었다. 점점 따뜻해지는 지구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생명체들의 이야기, <북극의 눈물>이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조용한 환호 속에, 바로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자초했다는 뼈아픈 반성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여기에 따라붙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구는 주기적으로 기후변화를 겪어왔으며,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 전지구적 항온장치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인간중심적 오만함의 극치라고 반박하는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굳이 성향이 다른 신문 사설과 인터넷 토론방에 주렁주렁 매달린 댓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특정 사안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명확해 보이는 사안에도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갖춘 반대 논리들은 움트고, 평화롭고 우아하게 살고 싶은 우리를 짜증나는 설전의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끝나지 않는 말싸움 앞에서, 상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을 도리 없다.
“아, 저것들 확 쓸어버릴 순 없나?”
이 책만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나 옳다!
자, 이제는 더이상 고민하지 말자. 아이러니와 패러디로 무장하고 여러 해 동안 허위에 가득 찬 지식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데 열중해온 한네스 슈타인이 세계 최초의 ‘논쟁 가이드’로 돌아왔으니까. 지성의 무용함을 주장하면서 역설적으로 참된 지성을 선동했던 첫 번째 책 《생각 없이 살기》와 일상에서 마주치는‘사이비 지성’에 대해 조롱의 칼날을 들이댄 《일상고통 걷어차기》에 이어, 이번에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겠다며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책 《정당하게 이기기 위한 대화 교본》은 여러 해 동안 지속돼온 저자의 지식인 비판 시리즈 완결편이다. 한네스 슈타인은 책 속에서 토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갖가지 규칙뿐 아니라 문화, 경제, 정치, 종교, 섹스 등의 41개 주제에 대해 정반대 견해로 논박하는 글들을 펼쳐낸다. 육식이냐 채식이냐, 주식이냐 예금이냐, 비틀스냐 롤링스톤스냐를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원자력, 사형제도, 낙태, 안락사 찬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는 삶을 구성하는 소소한 문제들과 인터넷 공론장을 달구는 ‘뜨거운 감자’들을 톡 쏘는 위트와 아이러니로 정복해나간다. 전작에서도 이미 보여주었지만,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관찰력, 신랄한 풍자와 유머는 독자들에게 통찰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저자는 이 책이 어떠한 대화나 토론에서도 상대를 일격에 물리칠 수 있게 해주고 멋진 애인까지 구해주는 궁극의 논쟁 가이드라고 뻥뻥 큰소리친다. 하지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이러니의 본질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말과 속내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그렇다면 이번에는 대체 무슨 꿍꿍이속일까?
논쟁에서 100퍼센트 승리하는 방법
책을 펼치자마자, 상대를 수사학적으로 제압하는 현란한 전술들이 등장한다. 청중을 휘어잡았던 고대 연사들의 수사술에서부터 온갖 치사한 트릭들까지. 한네스 슈타인에 따르면,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할 황금률은 세 가지다. 첫째 다툴 사람을 세심하게 선정하고(미래의 장인이나 직장 상사를 적으로 골랐다면 당신은 논쟁이 뭔지도 모르는 초짜다!), 둘째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를 고른다. 세 번째 요령이 핵심인데,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물쩡거리다 본의 아니게 골리앗이 되어버린다면, 그 전투는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다. 그러니 자신이 늘 억압받는 소수파임을 내세우자. “나는 할아버지 때까지 앨러배마 들판에서 면화 노동을 한 유대교도 쿠르드인으로서…….”라며 종족 카드를 꺼내드는 것도 훌륭한 작전이다.
하지만 이런 규칙들을 지켰는데도 상대에게 통하지 않았다면? 걱정하지 말라. 한네스 슈타인은 이를 보완해줄 몇 가지 ‘세련된’ 술책을 숨겨두고 있으니. 예를 들어 대화 상대를 무고하는 방법. 상대가 입도 뻥긋하지 않은 주장을 그가 내세운 것처럼 뒤집어씌우자. 그 족쇄에서 벗어나느라 상대가 진땀 빼는 사이, 당신은 유유히 결정타를 날리면 된다. 권위자의 말을 빌려오는 것도 괜찮다. 사람들은 종종 (실은 엄청 자주) 인용과 실제 증거를 착각한다. 생각나는 게 없다면 다음과 같은 틀을 이용해 아무거나 하나 지어내자. “이미 괴테도 인스턴트 수프가 맛있다고 했지요.” (거기에 “다들 아시다시피”라고 덧붙이면 금상첨화!) 그래도 안 되면 논점에서 이탈해 엉뚱한 얘기를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를 모욕하는 방법도 있다. 90퍼센트 이상 승패가 결정된 싸움에서조차 이런 술책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대역전극을 연출해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 토론은 필요 없어
한네스 슈타인이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상당히 치사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명절 날 TV를 보며 큰아버지와 벌이던 설전(주로 훈계로 끝나지만), 심야 토론 프로그램, 연인과의 반복되는 다툼들이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지 않던가? 저자는 “전혀 무익한 토론”과 “헛된 노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제 누구도 불필요한 토론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인간이라는 종의 주요 관심사”에 해당하는 논쟁들을 그가 이미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야들야들한 어린 송아지 고기를 못 먹게 하려는 도덕주의자들에겐 당근이나 꽃상추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응수하면 되고, 채식 식단이 무미건조하다는 상투적인 불평 앞에는 중동 지역 음식인 ‘후머스’나 인도 음식인 ‘달’을 들이밀면 된다. 예금 통장을 버리고 주식을 사라고 꼬드기는 자들에겐 예금 이자의 굳건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세계적 경제 흐름에 뒤처져 예금 통장만 들여다보며 히죽대는 바보들에겐 펀드 수익률을 보여주자. 체르노빌의 재앙을 까맣게 잊어버린 “구제불능”들에겐 “악마의 물건” 플루토늄의 위험성과 해결되지 않은 핵폐기물 문제를, 대안도 없이 이산화탄소 감축만 외치는 고루한 환경주의자들에겐 원자력 발전소의 놀라운 안전성에 대해 일러주면 될 일이다.
한네스 슈타인은 비본질적인 문제들, 취향의 영역에도 날카로운 칼날을 겨눈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바그너. 그의 오페라가 “청자의 감성뿐 아니라 지성에도 엄청난 호소력을” 미친다는 상찬 뒤에는, 그가 이뤄놓은 예술가적 업적이라곤 자신의 작품들을 “깔끔하고 교묘하게” 반유대주의의 도구로 이용한 것뿐이라는 맹비난이 이어진다. 카푸치노를 두고 “이탈리아인들이 세계 문화유산에 기여한 최대의 업적”이라며 경탄하는 커피 애호가들에게 홍차는 쓴 맛밖에 나지 않는 갈색 물에 불과하고, 홍차를 즐기는 “더 영민하고 용기 있고 탁월한 사람”들에게 커피는 시시해빠진 음료일 뿐이다. “종종 신경증적 성향까지 보이는 고양이 애호가에 비해 개 주인들은 강건하고 균형잡혀 있다”는 주장을 개 예찬론자들이 내놓으면, 고양이 애호가 측에선 “개 주인은 언제나 독재자의 성향을” 지녔으며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아나키스트라고 반박한다.
독자 여러분은 이 남자가 패러디와 아이러니를 수족처럼 부릴 줄 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무언가를 상찬하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냉소의 지뢰는 여지없이 펑펑 터져나오니까. 세계를 이끌 강대국으로 중국이 적당한 이유는 군사적 강경책을 사용해야 할 순간에 “도덕적 규정들, 가령 민간인을 최대한 보호하라는 고귀한 원칙 따위”로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느물대고,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의 억울함을 고발하는 척하며 모두에게 노골적인 조롱을 보낸다.
이쯤 되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세상의 모든 허위를 비웃고 할퀴고 꼬집고 비틀어온 이 남자가 ‘궁극의’ 논쟁 가이드를 쓴 이유는 대체 뭘까?
상대주의 시대의 생존법
몇 해 전 이야기다. <슈피겔>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을 거치며 언론인으로 잔뼈가 굵은 한네스 슈타인의 눈에 신문 사설 한 편이 들어왔다. 헤센 주의 선거 결과를 다룬 그 사설은 사회민주당이 선거에서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선거에서 패배한 보수 정당도 겸허하게 반성할 것이 많다고 덧붙였다. “탁월한 균형 감각을 갖추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이 글은 한마디로 사설의 “멋진 표본”이라고 칭찬할 만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은 오류가 하나 있었다. 문제의 그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은 가까스로 이긴 것이 아니라, “대패”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너무도 명백했다. 미리 준비한 두 편의 사설 중 선거 결과와 어긋난 사설이 인쇄된 것이다. 언론인으로 지내며 양비론의 효용과 폐해를 지긋지긋하리만치 실감나게 체험했던 한네스 슈타인에게, 퍼뜩 이 책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독자들에게, 사실 이 책은 (부분적으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썼다고 고백한다. 그 역시 지독한 독선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며 자기 입장만 방어했던 철없는 지식인이었기에. 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와 나름의 정당성, 아집을 잠시 뒤로 하고 상대의 의견에 귀기울여본 사람이라면 안다. 모든 국면에는 ‘여기’의 생각과 전혀 다르지만 동등한 무게를 가진 또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네스 슈타인 역시 좀더 공부하고 세월에 담금질당하는 동안, 사물의 다른 면을 볼 때 그것이 더 흥미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자들은 이 책 《정당하게 이기기 위한 대화 교본》을 토론의 최강자가 되기 위한 대화 가이드북으로 읽을 수도, 저자 자신이 그랬듯 독선을 치유하고 상대주의적 관용을 체득하게 해주는 철학 에세이로 읽을 수도 있다. 한네스 슈타인이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매콤한 위트와 거침없는 패러디에 낄낄거리든, 뜨거운 반성과 성찰의 호수를 떠다니든 책장을 덮은 독자들에겐 이제 만만찮은 과제 하나가 던져진 셈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견해를 경청하고 수긍하는 ‘상대주의적 관용’이라는 과제. 조금만 더 겸허한 마음으로 찬찬히 책장을 넘기다보면, 한네스 슈타인이 이 책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진짜 ‘꿍꿍이속’이 무엇인지, 말 많은 우리 세상에서 진정한 승자로 가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은 선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한네스 슈타인, 토론의 최강자가 되는 노하우를 공개하다.
지난 6월, 국내 처음으로 존엄사 인정 판결을 받은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호흡기 없이 100여 일을 견뎌 10월 현재까지 자가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일년 여에 걸친 재판과 항소, 법정 바깥의 무수한 설전에도 불구하고 존엄사 논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체 누구를 위한 ‘존엄한’ 혹은 ‘안락한’ 죽음일까? 자결권 역시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논리와, ‘안락사 논의’는 결국 생명을 유지하는 데 지불되는 ‘비용’ 문제로 귀결된다는 데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의견은 아직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리고 10월, 극장판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개봉되었다. 점점 따뜻해지는 지구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생명체들의 이야기, <북극의 눈물>이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조용한 환호 속에, 바로 우리가 지구온난화를 자초했다는 뼈아픈 반성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여기에 따라붙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구는 주기적으로 기후변화를 겪어왔으며,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 전지구적 항온장치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인간중심적 오만함의 극치라고 반박하는 목소리 역시 존재한다.
굳이 성향이 다른 신문 사설과 인터넷 토론방에 주렁주렁 매달린 댓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특정 사안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명확해 보이는 사안에도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갖춘 반대 논리들은 움트고, 평화롭고 우아하게 살고 싶은 우리를 짜증나는 설전의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끝나지 않는 말싸움 앞에서, 상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을 도리 없다.
“아, 저것들 확 쓸어버릴 순 없나?”
이 책만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언제나 옳다!
자, 이제는 더이상 고민하지 말자. 아이러니와 패러디로 무장하고 여러 해 동안 허위에 가득 찬 지식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데 열중해온 한네스 슈타인이 세계 최초의 ‘논쟁 가이드’로 돌아왔으니까. 지성의 무용함을 주장하면서 역설적으로 참된 지성을 선동했던 첫 번째 책 《생각 없이 살기》와 일상에서 마주치는‘사이비 지성’에 대해 조롱의 칼날을 들이댄 《일상고통 걷어차기》에 이어, 이번에는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겠다며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책 《정당하게 이기기 위한 대화 교본》은 여러 해 동안 지속돼온 저자의 지식인 비판 시리즈 완결편이다. 한네스 슈타인은 책 속에서 토론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갖가지 규칙뿐 아니라 문화, 경제, 정치, 종교, 섹스 등의 41개 주제에 대해 정반대 견해로 논박하는 글들을 펼쳐낸다. 육식이냐 채식이냐, 주식이냐 예금이냐, 비틀스냐 롤링스톤스냐를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원자력, 사형제도, 낙태, 안락사 찬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는 삶을 구성하는 소소한 문제들과 인터넷 공론장을 달구는 ‘뜨거운 감자’들을 톡 쏘는 위트와 아이러니로 정복해나간다. 전작에서도 이미 보여주었지만,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관찰력, 신랄한 풍자와 유머는 독자들에게 통찰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저자는 이 책이 어떠한 대화나 토론에서도 상대를 일격에 물리칠 수 있게 해주고 멋진 애인까지 구해주는 궁극의 논쟁 가이드라고 뻥뻥 큰소리친다. 하지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아이러니의 본질이 그러한 것처럼, 그의 말과 속내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그렇다면 이번에는 대체 무슨 꿍꿍이속일까?
논쟁에서 100퍼센트 승리하는 방법
책을 펼치자마자, 상대를 수사학적으로 제압하는 현란한 전술들이 등장한다. 청중을 휘어잡았던 고대 연사들의 수사술에서부터 온갖 치사한 트릭들까지. 한네스 슈타인에 따르면,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할 황금률은 세 가지다. 첫째 다툴 사람을 세심하게 선정하고(미래의 장인이나 직장 상사를 적으로 골랐다면 당신은 논쟁이 뭔지도 모르는 초짜다!), 둘째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를 고른다. 세 번째 요령이 핵심인데,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물쩡거리다 본의 아니게 골리앗이 되어버린다면, 그 전투는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다. 그러니 자신이 늘 억압받는 소수파임을 내세우자. “나는 할아버지 때까지 앨러배마 들판에서 면화 노동을 한 유대교도 쿠르드인으로서…….”라며 종족 카드를 꺼내드는 것도 훌륭한 작전이다.
하지만 이런 규칙들을 지켰는데도 상대에게 통하지 않았다면? 걱정하지 말라. 한네스 슈타인은 이를 보완해줄 몇 가지 ‘세련된’ 술책을 숨겨두고 있으니. 예를 들어 대화 상대를 무고하는 방법. 상대가 입도 뻥긋하지 않은 주장을 그가 내세운 것처럼 뒤집어씌우자. 그 족쇄에서 벗어나느라 상대가 진땀 빼는 사이, 당신은 유유히 결정타를 날리면 된다. 권위자의 말을 빌려오는 것도 괜찮다. 사람들은 종종 (실은 엄청 자주) 인용과 실제 증거를 착각한다. 생각나는 게 없다면 다음과 같은 틀을 이용해 아무거나 하나 지어내자. “이미 괴테도 인스턴트 수프가 맛있다고 했지요.” (거기에 “다들 아시다시피”라고 덧붙이면 금상첨화!) 그래도 안 되면 논점에서 이탈해 엉뚱한 얘기를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를 모욕하는 방법도 있다. 90퍼센트 이상 승패가 결정된 싸움에서조차 이런 술책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대역전극을 연출해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 토론은 필요 없어
한네스 슈타인이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상당히 치사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명절 날 TV를 보며 큰아버지와 벌이던 설전(주로 훈계로 끝나지만), 심야 토론 프로그램, 연인과의 반복되는 다툼들이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지 않던가? 저자는 “전혀 무익한 토론”과 “헛된 노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이제 누구도 불필요한 토론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인간이라는 종의 주요 관심사”에 해당하는 논쟁들을 그가 이미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야들야들한 어린 송아지 고기를 못 먹게 하려는 도덕주의자들에겐 당근이나 꽃상추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응수하면 되고, 채식 식단이 무미건조하다는 상투적인 불평 앞에는 중동 지역 음식인 ‘후머스’나 인도 음식인 ‘달’을 들이밀면 된다. 예금 통장을 버리고 주식을 사라고 꼬드기는 자들에겐 예금 이자의 굳건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세계적 경제 흐름에 뒤처져 예금 통장만 들여다보며 히죽대는 바보들에겐 펀드 수익률을 보여주자. 체르노빌의 재앙을 까맣게 잊어버린 “구제불능”들에겐 “악마의 물건” 플루토늄의 위험성과 해결되지 않은 핵폐기물 문제를, 대안도 없이 이산화탄소 감축만 외치는 고루한 환경주의자들에겐 원자력 발전소의 놀라운 안전성에 대해 일러주면 될 일이다.
한네스 슈타인은 비본질적인 문제들, 취향의 영역에도 날카로운 칼날을 겨눈다. 그 말 많고 탈 많은 바그너. 그의 오페라가 “청자의 감성뿐 아니라 지성에도 엄청난 호소력을” 미친다는 상찬 뒤에는, 그가 이뤄놓은 예술가적 업적이라곤 자신의 작품들을 “깔끔하고 교묘하게” 반유대주의의 도구로 이용한 것뿐이라는 맹비난이 이어진다. 카푸치노를 두고 “이탈리아인들이 세계 문화유산에 기여한 최대의 업적”이라며 경탄하는 커피 애호가들에게 홍차는 쓴 맛밖에 나지 않는 갈색 물에 불과하고, 홍차를 즐기는 “더 영민하고 용기 있고 탁월한 사람”들에게 커피는 시시해빠진 음료일 뿐이다. “종종 신경증적 성향까지 보이는 고양이 애호가에 비해 개 주인들은 강건하고 균형잡혀 있다”는 주장을 개 예찬론자들이 내놓으면, 고양이 애호가 측에선 “개 주인은 언제나 독재자의 성향을” 지녔으며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아나키스트라고 반박한다.
독자 여러분은 이 남자가 패러디와 아이러니를 수족처럼 부릴 줄 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무언가를 상찬하는 듯 보이는 순간에도 냉소의 지뢰는 여지없이 펑펑 터져나오니까. 세계를 이끌 강대국으로 중국이 적당한 이유는 군사적 강경책을 사용해야 할 순간에 “도덕적 규정들, 가령 민간인을 최대한 보호하라는 고귀한 원칙 따위”로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느물대고,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의 억울함을 고발하는 척하며 모두에게 노골적인 조롱을 보낸다.
이쯤 되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세상의 모든 허위를 비웃고 할퀴고 꼬집고 비틀어온 이 남자가 ‘궁극의’ 논쟁 가이드를 쓴 이유는 대체 뭘까?
상대주의 시대의 생존법
몇 해 전 이야기다. <슈피겔>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을 거치며 언론인으로 잔뼈가 굵은 한네스 슈타인의 눈에 신문 사설 한 편이 들어왔다. 헤센 주의 선거 결과를 다룬 그 사설은 사회민주당이 선거에서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선거에서 패배한 보수 정당도 겸허하게 반성할 것이 많다고 덧붙였다. “탁월한 균형 감각을 갖추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이 글은 한마디로 사설의 “멋진 표본”이라고 칭찬할 만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은 오류가 하나 있었다. 문제의 그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은 가까스로 이긴 것이 아니라, “대패”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너무도 명백했다. 미리 준비한 두 편의 사설 중 선거 결과와 어긋난 사설이 인쇄된 것이다. 언론인으로 지내며 양비론의 효용과 폐해를 지긋지긋하리만치 실감나게 체험했던 한네스 슈타인에게, 퍼뜩 이 책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독자들에게, 사실 이 책은 (부분적으로)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썼다고 고백한다. 그 역시 지독한 독선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이빨과 손톱을 드러내며 자기 입장만 방어했던 철없는 지식인이었기에. 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와 나름의 정당성, 아집을 잠시 뒤로 하고 상대의 의견에 귀기울여본 사람이라면 안다. 모든 국면에는 ‘여기’의 생각과 전혀 다르지만 동등한 무게를 가진 또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네스 슈타인 역시 좀더 공부하고 세월에 담금질당하는 동안, 사물의 다른 면을 볼 때 그것이 더 흥미로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자들은 이 책 《정당하게 이기기 위한 대화 교본》을 토론의 최강자가 되기 위한 대화 가이드북으로 읽을 수도, 저자 자신이 그랬듯 독선을 치유하고 상대주의적 관용을 체득하게 해주는 철학 에세이로 읽을 수도 있다. 한네스 슈타인이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매콤한 위트와 거침없는 패러디에 낄낄거리든, 뜨거운 반성과 성찰의 호수를 떠다니든 책장을 덮은 독자들에겐 이제 만만찮은 과제 하나가 던져진 셈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견해를 경청하고 수긍하는 ‘상대주의적 관용’이라는 과제. 조금만 더 겸허한 마음으로 찬찬히 책장을 넘기다보면, 한네스 슈타인이 이 책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진짜 ‘꿍꿍이속’이 무엇인지, 말 많은 우리 세상에서 진정한 승자로 가는 길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은 선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론
서문"수프가 너무 짜다"
문화적 입장들
경제적인 고려들
정치적 토론들
종교 문제들
성적 쾌락들
후기를 대신하여
감사의 말
역자후기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