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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1980년대 중국’이라는 주제로 소설가 자젠잉(査建英)이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학자.예술가 등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소설가 아청(阿城), 시인 베이다오(北島), 화가 천단칭(陳丹靑), 가수 추이젠(崔健), 영화감독 톈좡좡(田壯壯) 등 80년대 중국문화를 이끈 리더 11인과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중국을 회고하고, 중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오늘날의 중국문화를 재검토한다.
‘1980년대 중국’을 주제로 펼쳐진 ‘말’의 향연!
―문인.학자.예술가 등 중국의 대표 지식인 11인 인터뷰
이 책은 ‘1980년대 중국’이라는 주제로 소설가 자젠잉(査建英)이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학자?예술가 등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소설가 아청(阿城), 시인 베이다오(北島), 화가 천단칭(陳丹靑), 가수 추이젠(崔健), 영화감독 톈좡좡(田壯壯) 등 80년대 중국문화를 이끈 리더 11인과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중국을 회고하고, 중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오늘날의 중국문화를 재검토한다.
중국의 80년대는 문화대혁명(1966~76년)이 종결된 이후 새로운 가치관과 사유방식이 도래한 시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혁 시기에 하향(下鄕; 도시청년을 산간벽지나 농촌으로 이주시켜 생산노동에 참가하게 한 정책)되었던 지식인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각종 문학 유파와 잡지, 미술전, 5세대 영화 등이 출현한 시기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문화적 열정이 뜨거운 시기였으므로 당시를 회고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2006년) 중국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고, 중국의 대표 주간지 『신주간』(新週刊)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할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중국의 반응은 다른 한편으로는 잠재되어 있던 문화적 열정이 현재 얼마나 소실되어 있는지를 반증한다. 현재 중국은 자본주의화가 거세지면서 경제 중심의 사고로 급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빈부격차와 도농갈등,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 농민공 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가 양산되고 있다. 이에 더해 톈안먼 사건(1989년 6월 4일)을 기점으로 기층 민중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었고, 반면 민중의 자발적인 발언과 혁명적 열정은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중국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자본주의적 통제사회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로까지 읽힌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조해야 할 점은 이 책이 어쩌면 사사롭게 보이는 회고적인 이야기들 속에 냉철한 시대인식을 담고 있고, 이를 현장감 있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목소리와 표정들, 점잖게 말하거나 함축적으로 말하거나 상소리를 섞어 쓰거나 하는 말투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에 독자들은 인터뷰 현장의 분위기와 대담자들의 풍모와 개성을 느낄 수 있고, 당대를 회고하는 감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중국의 문화적 엘리트들이 문혁을 어떻게 극복하고 창조적 역량을 펼쳤는지, 자신들의 이상이 좌절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각기 다른 목소리로 들려준다. 우리로 치면 386세대라 할 수 있는 현 중국의 문화적 중추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중국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고 현대 중국의 삶과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중국의 문화적 역량을 과소평가하거나 경제적 이익의 측면에서만 그들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중국과 대화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혁명과 자본 사이의 80년대 중국
이 책의 문제의식은 80년대의 중국을 누비던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뷰어 자젠잉에 따르면 “80년대의 ‘유폐’는 사실 아주 뿌리 깊은 것이라 쉽게 일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80년대의 사람들은 건재하고 있지만 조정, 분화되는 과정에서 이들을 판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본문 11쪽)고 진단한다. 톈안먼 사건으로 언로는 차단되었고, 개혁개방 드라이브는 사람들을 물질적 측면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중국은 숨죽이고 있던 엘리트들과 기층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였다. 혁명에 대한 열정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을 때였고, 하향되었던 수많은 지식청년[知靑]들이 돌아와 사회와 문화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때였다. 정권의 통제가 느슨해진(덩샤오핑 집권 초기) 틈을 타 베이징 시단(西單)에 세워진 ‘민주의 벽’이 그것을 상징하는 예이다(156쪽과 797쪽의 화보 참조). 수많은 대자보의 물결로 이루어진 그곳은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숨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문혁 때 일어난 대자보 글쓰기가 이 당시에도 훌륭한 창구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80년대의 차별점은 책 뒤표지에 제시해 놓은 80년대?90년대의 키워드 비교에서도 잘 나타난다. ‘격정’, ‘열성’, ‘역사’, ‘문화’, ‘인문’ 등으로 이루어진 80년대와 ‘이익’, ‘시장’, ‘개인’, ‘상업’, ‘대중’ 등으로 이루어진 90년대는 두 시대 간의 명확한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중국의 80년대는 사상적 속박에 매여 있던 문혁 시기와도 선을 긋고, 물질적 소비주의 시대로 규정되는 90년대와도 차별되는 과도기적 시간이었음을 이 책은 밝힌다.
문화적 열정이 들끓었던 80년대 중국
현대 중국에서 문화를 말하려면 1980년대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왕숴(王朔).모옌(莫言) 등의 소설, 수팅(舒?).장허(江河) 등의 시, 장이머우(張藝謀).천카이거(陳凱歌) 등의 5세대 영화, 그리고 각종 잡지와 모임, 미술전 등등 새로운 문화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던 시기였다. 이 책의 대담자 11명이 모두 당시 문화생산자의 역할을 담당했고, 그 중 7명(아청.베이다오.천단칭.추이젠.리퉈.류쒀라.톈좡좡)은 직접 작품을 생산.발표하는 역할을 한 점만 보아도 80년대 중국을 ‘문화의 시대’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잡지의 창간과 문인의 부흥
이 책은 1980년대의 문화 생산, 특히 문혁 이후에 일어난 여러 문학 현상을 구체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베이다오는 자신이 주편한 『오늘』(今天)의 창간을 구체적으로 그린다(132~133쪽). 1978년 9월 동료 망커(芒克), 황루이(黃銳)와 함께 뜨락에서 술을 마시며 노닥거리다 “문학잡지 하나 창간해 보는 게 어떨까?” 하고 제의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창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종이를 슬쩍한 얘기, 인쇄를 하기 위해 등사판을 구하러 다닌 얘기, 완성된 잡지를 배포하기 위해 민주의 벽.톈안먼 광장.대학가 등지를 돌아다니며 몰래 배포한 얘기를 들려준다. 보수적인 문단에 의해 몽롱파(朦朧派)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창간한 『오늘』은 당시 가장 우수하고 영향력 있는 거의 모든 청년 시인들이 앞다퉈 작품을 발표하는 공간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당대 중국의 문학을 논하고 사상문화 건설에 앞장선 『독서』(선창원沈昌文과 신좌파의 리더 왕후이汪暉 등이 주편이었다), 1979년 장쑤성작가협회에서 창간한 문학잡지 『종산』(鐘山), 『홍두』(紅豆).『아침』(早晨) 등의 수많은 대학생 잡지 등등 80년대 중국은 바야흐로 잡지를 통해 소통의 길을 찾은 시기였다.
그리고 잡지 창간은 곧 문학이 부흥하는 계기를 불러왔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이런 잡지들을 통해 독자를 만나 문학의 거목으로 성장하였고, 앞서 소개한 몽롱시파, 아청의 「장기왕」과 한사오궁(韓少功)의 「아빠빠빠」를 비롯한 심근문학(尋根文學; 뿌리찾기), 지식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문혁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현실의 문제를 폭로한 상흔문학(傷痕文學) 등 여러 문학 유파들이 등장하였다. 또한 현 여성문학계의 선두주자인 왕안이(王安憶), 『변신인형』의 작가 왕멍(王蒙), 90년대 문학의 아이콘 왕숴 등 걸출한 문학가들이 등장하여 작품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책에 담긴 이런 잡지와 문인에 관한 이야기는 이 자체만으로도 80년대 중국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새로운 예술의 시대(미술.영화.음악)
이 책의 대담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10여 년의 세월을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중 천단칭(3장)과 리셴팅(8장)은 미술 분야, 추이젠(5장)과 류쒀라(10장)는 음악 분야, 린쉬둥(9장)과 톈좡좡(11장)은 영화 분야에서 그 당시에 일었던 새로운 움직임들을 들려준다.
먼저, 신시기를 맞이하여 여러 문학 동인이 탄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예술모임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것으로 싱싱화회(星星畵會)를 꼽을 수 있는데, 마더성(馬德生)?황루이(黃銳) 등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이 주축이 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깨고 새로운 현대미술의 장을 열었다. 이 단체와 여러 민간 조직이 자발적으로 개최한 ‘싱싱 미술전’(星星美展. 1979년 베이하이 공원에서 개최. 798쪽의 화보 참조)은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소시민의 삶에 주목, 현실생활을 반영하고 진실을 부각시키는 조류를 이끌었고, 훗날 ‘85 신사조운동’을 추동해 내기도 했다(이 미술운동은 1989년에 정부의 허가를 받아 ‘중국현대예술대전’을 이끌었다. 815쪽 화보 참조).
이외에도 무명화회(無名畵會), 이성화회(理性畵會), 동세대(同代人) 등의 미술 단체들이 활동하였고, ‘12인 회화전’(12人畵展), ‘신춘 유화풍경과 경물 전람회’(新春油畵風景和景物展覽), ‘무명화회 전람회’(無名畵會展覽) 등 각종 미술 전시가 열리면서 단번에 새로운 시야가 열리게 되었다.
한편 80년대 중국의 영화 분야는 장이머우?천카이거 등이 출현하여 ‘5세대’(베이징영화대학을 졸업한 세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의 대담자 중 하나인 톈좡좡의 경우, 장이머우나 천카이거에 비하면 상업적 성공이 덜 해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지만, 후배들에게 가장 큰 존경을 받는 영화감독으로서 실험적인 영화에 투신했다. “청년 감독들을 돕는다고 호언하는 사람은 간혹 있다. 멀리서 보면 그들이 꽃에 물을 주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사실 끓는 물을 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톈좡좡은 아니다. 그는 정말로 돕는다.”(738쪽) <햇빛 쏟아지던 날들>의 감독이자 <붉은 수수밭>의 배우인 장원(姜文)의 말이다. 톈좡좡은 80년대에 <사냥터에서>(獵場札撒, 1985), <말도둑>(盜馬賊, 1986) 등 영화언어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여 6세대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도 리메이크 영화 <작은 마을의 봄>(小城之春; 2002), 소수민족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라무 : 차마고도 시리즈>(茶馬古道系列之德拉姆, 2004), 루이나이웨이의 스승인 중국 바둑계의 기성 <우칭위안>(吳?源, 2006) 등을 발표하면서 중국 뉴시네마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은 이외에도 중국 록 음악의 탄생을 알리고 현재도 ‘라이브 공연 운동’을 벌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가수 추이젠(崔健) 등 80년대 중국문화를 선도한 이들을 인터뷰하여 당시를 풍미한 다양한 문화적 양상과 그에 대한 비평을 전해 준다.
- 새로운 지식을 갈망한 80년대 중국
“80년대 중국은 인문학적 분위기가 농후하고 문예가와 인문학적 지식인이 조류를 이끌던 시기였다.”(12쪽) 문혁 이후 정치체제와 경제구조의 변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이 당시 엘리트들을 움직이게 하였다. 이들은 한 일은 저마다 다르지만 서로 호응하면서 토론하고 비판하고 논쟁했다. 예컨대 『오늘』의 작가들은 문학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싱싱화회, 사진가 단체 사월영회(四月影會)와도 관계를 맺었으며(813쪽의 화보 참조), 천카이거 같은 영화인도 이에 합류, 낭송회에 참여하고 소설을 발표하며 한 시대의 문화를 공유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갈망한 중국의 엘리트들은 서구의 학술과 문화를 배우며 중국의 변화를 이끌고자 하였다. 서구의 문학?철학 등 각종 서적이 물밀듯이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간양(甘陽, 6장)이 주도한 ‘문화: 중국과 세계’(文化: 中國與世界), 진관타오(金觀濤)의 ‘미래를 향하여’(走向未?), 탕이제(湯一介) 등이 편찬한 ‘중국문화서원’(中國文化書院) 등 각종 총서들이 줄을 지어 탄생하면서 담론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편찬된 책을 통해 새로운 이론들이 제기되었고, 『독서』 등에서는 각종 대담과 좌담이 열리며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새로운 이론들이 생산되는 것과 궤를 같이하여 대학이 정상화되고 학위제도가 정착하면서 중국 학술은 급속히 발전하였다. 당시 학술에 대한 열기가 얼마나 컸는가 하면, 보통 번역된 철학서적이 초판을 10만 부 발행했다고 하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조차도 10만 부 발행되어 모두 팔릴 정도였다고 한다(본문 400쪽). 이와 함께 이론 지형에서의 논쟁도 촉발되어 인도주의(휴머니즘) 논쟁(1983년), 문화열?국학열 논쟁(1985년)이 벌어졌고, 이는 90년대로 이어져 인문정신 논쟁, 신좌파와 자유주의 간의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엘리트들의 등장과 활동은 문혁의 유산을 떨쳐내고 신중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톈안먼 사건을 기점으로 이 모든 열정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숙청의 열풍이 한바탕 지나간 후 작가와 출판사들은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했고, 사회는 급속한 상업화에 떠밀려 경제적 이익에 몰두하기 시작했으며, 문화의 발전은 대중문화 쪽으로 선회하였다. 5.4운동이 터진 지 90년(1919.05.04),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년(1949.10.01), 그리고 톈안먼 사건이 벌어진 지 20년 등 굵직한 10년 단위의 사건이 거론되는 2009년 현재, 중국인의 열정적인 심성이 발현된 이 책의 발간은 굴곡 많은 중국 근현대사 속에서 1980년대 중국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80년대 중국’을 주제로 펼쳐진 ‘말’의 향연!
―문인.학자.예술가 등 중국의 대표 지식인 11인 인터뷰
이 책은 ‘1980년대 중국’이라는 주제로 소설가 자젠잉(査建英)이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학자?예술가 등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소설가 아청(阿城), 시인 베이다오(北島), 화가 천단칭(陳丹靑), 가수 추이젠(崔健), 영화감독 톈좡좡(田壯壯) 등 80년대 중국문화를 이끈 리더 11인과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중국을 회고하고, 중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오늘날의 중국문화를 재검토한다.
중국의 80년대는 문화대혁명(1966~76년)이 종결된 이후 새로운 가치관과 사유방식이 도래한 시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혁 시기에 하향(下鄕; 도시청년을 산간벽지나 농촌으로 이주시켜 생산노동에 참가하게 한 정책)되었던 지식인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각종 문학 유파와 잡지, 미술전, 5세대 영화 등이 출현한 시기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문화적 열정이 뜨거운 시기였으므로 당시를 회고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2006년) 중국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고, 중국의 대표 주간지 『신주간』(新週刊)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할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중국의 반응은 다른 한편으로는 잠재되어 있던 문화적 열정이 현재 얼마나 소실되어 있는지를 반증한다. 현재 중국은 자본주의화가 거세지면서 경제 중심의 사고로 급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빈부격차와 도농갈등,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 농민공 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가 양산되고 있다. 이에 더해 톈안먼 사건(1989년 6월 4일)을 기점으로 기층 민중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었고, 반면 민중의 자발적인 발언과 혁명적 열정은 사라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중국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자본주의적 통제사회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로까지 읽힌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조해야 할 점은 이 책이 어쩌면 사사롭게 보이는 회고적인 이야기들 속에 냉철한 시대인식을 담고 있고, 이를 현장감 있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목소리와 표정들, 점잖게 말하거나 함축적으로 말하거나 상소리를 섞어 쓰거나 하는 말투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에 독자들은 인터뷰 현장의 분위기와 대담자들의 풍모와 개성을 느낄 수 있고, 당대를 회고하는 감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중국의 문화적 엘리트들이 문혁을 어떻게 극복하고 창조적 역량을 펼쳤는지, 자신들의 이상이 좌절되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각기 다른 목소리로 들려준다. 우리로 치면 386세대라 할 수 있는 현 중국의 문화적 중추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중국문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고 현대 중국의 삶과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중국의 문화적 역량을 과소평가하거나 경제적 이익의 측면에서만 그들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중국과 대화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혁명과 자본 사이의 80년대 중국
이 책의 문제의식은 80년대의 중국을 누비던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뷰어 자젠잉에 따르면 “80년대의 ‘유폐’는 사실 아주 뿌리 깊은 것이라 쉽게 일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80년대의 사람들은 건재하고 있지만 조정, 분화되는 과정에서 이들을 판별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본문 11쪽)고 진단한다. 톈안먼 사건으로 언로는 차단되었고, 개혁개방 드라이브는 사람들을 물질적 측면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중국은 숨죽이고 있던 엘리트들과 기층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였다. 혁명에 대한 열정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을 때였고, 하향되었던 수많은 지식청년[知靑]들이 돌아와 사회와 문화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때였다. 정권의 통제가 느슨해진(덩샤오핑 집권 초기) 틈을 타 베이징 시단(西單)에 세워진 ‘민주의 벽’이 그것을 상징하는 예이다(156쪽과 797쪽의 화보 참조). 수많은 대자보의 물결로 이루어진 그곳은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숨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문혁 때 일어난 대자보 글쓰기가 이 당시에도 훌륭한 창구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80년대의 차별점은 책 뒤표지에 제시해 놓은 80년대?90년대의 키워드 비교에서도 잘 나타난다. ‘격정’, ‘열성’, ‘역사’, ‘문화’, ‘인문’ 등으로 이루어진 80년대와 ‘이익’, ‘시장’, ‘개인’, ‘상업’, ‘대중’ 등으로 이루어진 90년대는 두 시대 간의 명확한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중국의 80년대는 사상적 속박에 매여 있던 문혁 시기와도 선을 긋고, 물질적 소비주의 시대로 규정되는 90년대와도 차별되는 과도기적 시간이었음을 이 책은 밝힌다.
문화적 열정이 들끓었던 80년대 중국
현대 중국에서 문화를 말하려면 1980년대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왕숴(王朔).모옌(莫言) 등의 소설, 수팅(舒?).장허(江河) 등의 시, 장이머우(張藝謀).천카이거(陳凱歌) 등의 5세대 영화, 그리고 각종 잡지와 모임, 미술전 등등 새로운 문화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던 시기였다. 이 책의 대담자 11명이 모두 당시 문화생산자의 역할을 담당했고, 그 중 7명(아청.베이다오.천단칭.추이젠.리퉈.류쒀라.톈좡좡)은 직접 작품을 생산.발표하는 역할을 한 점만 보아도 80년대 중국을 ‘문화의 시대’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 잡지의 창간과 문인의 부흥
이 책은 1980년대의 문화 생산, 특히 문혁 이후에 일어난 여러 문학 현상을 구체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베이다오는 자신이 주편한 『오늘』(今天)의 창간을 구체적으로 그린다(132~133쪽). 1978년 9월 동료 망커(芒克), 황루이(黃銳)와 함께 뜨락에서 술을 마시며 노닥거리다 “문학잡지 하나 창간해 보는 게 어떨까?” 하고 제의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창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종이를 슬쩍한 얘기, 인쇄를 하기 위해 등사판을 구하러 다닌 얘기, 완성된 잡지를 배포하기 위해 민주의 벽.톈안먼 광장.대학가 등지를 돌아다니며 몰래 배포한 얘기를 들려준다. 보수적인 문단에 의해 몽롱파(朦朧派)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렇게 창간한 『오늘』은 당시 가장 우수하고 영향력 있는 거의 모든 청년 시인들이 앞다퉈 작품을 발표하는 공간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당대 중국의 문학을 논하고 사상문화 건설에 앞장선 『독서』(선창원沈昌文과 신좌파의 리더 왕후이汪暉 등이 주편이었다), 1979년 장쑤성작가협회에서 창간한 문학잡지 『종산』(鐘山), 『홍두』(紅豆).『아침』(早晨) 등의 수많은 대학생 잡지 등등 80년대 중국은 바야흐로 잡지를 통해 소통의 길을 찾은 시기였다.
그리고 잡지 창간은 곧 문학이 부흥하는 계기를 불러왔다.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이런 잡지들을 통해 독자를 만나 문학의 거목으로 성장하였고, 앞서 소개한 몽롱시파, 아청의 「장기왕」과 한사오궁(韓少功)의 「아빠빠빠」를 비롯한 심근문학(尋根文學; 뿌리찾기), 지식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문혁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현실의 문제를 폭로한 상흔문학(傷痕文學) 등 여러 문학 유파들이 등장하였다. 또한 현 여성문학계의 선두주자인 왕안이(王安憶), 『변신인형』의 작가 왕멍(王蒙), 90년대 문학의 아이콘 왕숴 등 걸출한 문학가들이 등장하여 작품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책에 담긴 이런 잡지와 문인에 관한 이야기는 이 자체만으로도 80년대 중국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새로운 예술의 시대(미술.영화.음악)
이 책의 대담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10여 년의 세월을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중 천단칭(3장)과 리셴팅(8장)은 미술 분야, 추이젠(5장)과 류쒀라(10장)는 음악 분야, 린쉬둥(9장)과 톈좡좡(11장)은 영화 분야에서 그 당시에 일었던 새로운 움직임들을 들려준다.
먼저, 신시기를 맞이하여 여러 문학 동인이 탄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예술모임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것으로 싱싱화회(星星畵會)를 꼽을 수 있는데, 마더성(馬德生)?황루이(黃銳) 등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이 주축이 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깨고 새로운 현대미술의 장을 열었다. 이 단체와 여러 민간 조직이 자발적으로 개최한 ‘싱싱 미술전’(星星美展. 1979년 베이하이 공원에서 개최. 798쪽의 화보 참조)은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소시민의 삶에 주목, 현실생활을 반영하고 진실을 부각시키는 조류를 이끌었고, 훗날 ‘85 신사조운동’을 추동해 내기도 했다(이 미술운동은 1989년에 정부의 허가를 받아 ‘중국현대예술대전’을 이끌었다. 815쪽 화보 참조).
이외에도 무명화회(無名畵會), 이성화회(理性畵會), 동세대(同代人) 등의 미술 단체들이 활동하였고, ‘12인 회화전’(12人畵展), ‘신춘 유화풍경과 경물 전람회’(新春油畵風景和景物展覽), ‘무명화회 전람회’(無名畵會展覽) 등 각종 미술 전시가 열리면서 단번에 새로운 시야가 열리게 되었다.
한편 80년대 중국의 영화 분야는 장이머우?천카이거 등이 출현하여 ‘5세대’(베이징영화대학을 졸업한 세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의 대담자 중 하나인 톈좡좡의 경우, 장이머우나 천카이거에 비하면 상업적 성공이 덜 해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지만, 후배들에게 가장 큰 존경을 받는 영화감독으로서 실험적인 영화에 투신했다. “청년 감독들을 돕는다고 호언하는 사람은 간혹 있다. 멀리서 보면 그들이 꽃에 물을 주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사실 끓는 물을 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톈좡좡은 아니다. 그는 정말로 돕는다.”(738쪽) <햇빛 쏟아지던 날들>의 감독이자 <붉은 수수밭>의 배우인 장원(姜文)의 말이다. 톈좡좡은 80년대에 <사냥터에서>(獵場札撒, 1985), <말도둑>(盜馬賊, 1986) 등 영화언어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여 6세대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도 리메이크 영화 <작은 마을의 봄>(小城之春; 2002), 소수민족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라무 : 차마고도 시리즈>(茶馬古道系列之德拉姆, 2004), 루이나이웨이의 스승인 중국 바둑계의 기성 <우칭위안>(吳?源, 2006) 등을 발표하면서 중국 뉴시네마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은 이외에도 중국 록 음악의 탄생을 알리고 현재도 ‘라이브 공연 운동’을 벌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가수 추이젠(崔健) 등 80년대 중국문화를 선도한 이들을 인터뷰하여 당시를 풍미한 다양한 문화적 양상과 그에 대한 비평을 전해 준다.
- 새로운 지식을 갈망한 80년대 중국
“80년대 중국은 인문학적 분위기가 농후하고 문예가와 인문학적 지식인이 조류를 이끌던 시기였다.”(12쪽) 문혁 이후 정치체제와 경제구조의 변화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이 당시 엘리트들을 움직이게 하였다. 이들은 한 일은 저마다 다르지만 서로 호응하면서 토론하고 비판하고 논쟁했다. 예컨대 『오늘』의 작가들은 문학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싱싱화회, 사진가 단체 사월영회(四月影會)와도 관계를 맺었으며(813쪽의 화보 참조), 천카이거 같은 영화인도 이에 합류, 낭송회에 참여하고 소설을 발표하며 한 시대의 문화를 공유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갈망한 중국의 엘리트들은 서구의 학술과 문화를 배우며 중국의 변화를 이끌고자 하였다. 서구의 문학?철학 등 각종 서적이 물밀듯이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간양(甘陽, 6장)이 주도한 ‘문화: 중국과 세계’(文化: 中國與世界), 진관타오(金觀濤)의 ‘미래를 향하여’(走向未?), 탕이제(湯一介) 등이 편찬한 ‘중국문화서원’(中國文化書院) 등 각종 총서들이 줄을 지어 탄생하면서 담론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편찬된 책을 통해 새로운 이론들이 제기되었고, 『독서』 등에서는 각종 대담과 좌담이 열리며 활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새로운 이론들이 생산되는 것과 궤를 같이하여 대학이 정상화되고 학위제도가 정착하면서 중국 학술은 급속히 발전하였다. 당시 학술에 대한 열기가 얼마나 컸는가 하면, 보통 번역된 철학서적이 초판을 10만 부 발행했다고 하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조차도 10만 부 발행되어 모두 팔릴 정도였다고 한다(본문 400쪽). 이와 함께 이론 지형에서의 논쟁도 촉발되어 인도주의(휴머니즘) 논쟁(1983년), 문화열?국학열 논쟁(1985년)이 벌어졌고, 이는 90년대로 이어져 인문정신 논쟁, 신좌파와 자유주의 간의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엘리트들의 등장과 활동은 문혁의 유산을 떨쳐내고 신중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톈안먼 사건을 기점으로 이 모든 열정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숙청의 열풍이 한바탕 지나간 후 작가와 출판사들은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했고, 사회는 급속한 상업화에 떠밀려 경제적 이익에 몰두하기 시작했으며, 문화의 발전은 대중문화 쪽으로 선회하였다. 5.4운동이 터진 지 90년(1919.05.04),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년(1949.10.01), 그리고 톈안먼 사건이 벌어진 지 20년 등 굵직한 10년 단위의 사건이 거론되는 2009년 현재, 중국인의 열정적인 심성이 발현된 이 책의 발간은 굴곡 많은 중국 근현대사 속에서 1980년대 중국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1 아청(阿城)
2 베이다오(北島)
3 천단칭(陳丹靑)
4 천핑위안(陳平原)
5 추이젠(崔健)
6 간양(甘陽)
7 리퉈(李陀)
8 리셴팅(栗憲庭)
9 린쉬둥(林旭東)
10 류쒀라(劉索拉)
11 톈좡좡(田壯壯)
80년대 중국 화보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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