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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원고지 2,500매, 840쪽 방대한 분량에 정리한 유럽 교양의 역사
이른바 ‘교양’이 유행하는 시대다. 또한 이 말은 교양이 없는 시대임을 스스로 반증한다. 그렇다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양이란 무엇이며 교양인이란 진정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이 물음은 고도의 기술산업 정보사회에서 존재의 망각, 인간 상실현상이 날로 격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더욱 더 절박한 문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대학사와 지성사를 비롯해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를 평생에 걸쳐 이어온 서양사학자 이광주 교수(인제대 명예교수)가 이 문제를 『교양의 탄생: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에서 폭넓은 시각과 깊은 통찰력으로 파헤쳤다. 부제가 말해주듯 ‘교양’은 결국 ‘인문정신’의 구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8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전쟁과 혁명의 시대인 19, 20세기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시기에 걸쳐 유럽 휴머니즘의 계보를 정리하고 있다. 즉, 유럽 문화의 특징을 교양과 교양인의 위상을 통해, 그 형성과 타작의 과정을 주요한 상징적 표현 형태인 고전, 대학, 서재, 교육, 살롱, 극장, 여행, 도시, 지식인 등 갖가지 토포스와 관련해서 해박하게 톺아내고 있다. 또한 각 시대마다 정신의 사표가 되는 유럽의 대표적인 인문주의자들―플라톤, 소크라테스, 키케로, 페트라르카, 단테, 몽테뉴, 토머스 모어, 에라스뮈스, 루소, 괴테, 훔볼트, 지드, 졸라―을 종횡으로 엮어내면서 그들이 추구했던 삶의 원칙과 정신을 통해 이상적인 교양인상을 다채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상적 인간, 그것은 교양인이었다
비록 이 책이 유럽에 국한되어 설명되고 있지만,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동서양 모두 ‘교양인’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어느 국민 어느 사회나 예로부터 ‘이상적 인간’을 염원하고 형성해왔는데, 유교문명권인 중국이나 우리는 선비와 군자를,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오네톰이나 영국의 젠틀맨을 그런 인간상으로 여겼다. 이들은 모두 교양인이었으며, 한 사회의 도덕성과 문화의 이상(理想)을 상징하고 구현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문화 엘리트 또는 권력 엘리트와도 구별되었다. 유럽의 경우 교양은 옛 그리스-로마의 고전 중심의 인문학적인 배움과 취향이며, 교양인은 고전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마음과 몸, 삶 전체의 반듯하고 조화로운 구현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실현을 파이데이아(교양)와 후마니타스의 지(知)를 뜻하는 인문학에서 찾았다. 그만큼 그들이 자각한 교양의 핵심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문제였다.
교양, 어떠한 도그마나 권위도 부정하며 이웃과 사회를 의식한다
저자는 교양(인)에 대한 정의를 다음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교양(culture, education, Bildung)이란 문자 그대로 ‘경작’ ‘교육’ ‘형성’을 뜻하며, 결코 자명한 규범 혹은 이상, 영구불변의 보편적 원리가 아니며 시공과 역사적 상황에 따라 조각탁마되고 자기변모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양이라는 텍스트는 역사의 진운에 슬기롭게 응답함으로써 새로 쓰이고 그 콘텐츠와 이념의 지평을 확대하고 심화해야 한다.” 둘째, 교양인이란 파우스트처럼 끊임없이 묻고 탐색하는 인간이며, 그 배움은 광장이나 살롱에서 나누는 담론을 통해 배양되므로 교양인은 단순히 서재에 갖힌 인간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릴 것도 없이 교양인은 개인인 동시에 ‘사교적, 사회적’(sociables) 존재이다.” “교양으로 인해 사람은 자유에 눈뜨고 자유로 인해 사람은 이웃과 사회를 의식한다.” 셋째, 교양은 어떠한 도그마나 권위도 부정하며 그것들이 깔아놓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의 후예인 페트라르카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이 스콜라주의의 어둠을 파헤친 치열한 인문주의 정신, 종교개혁 속에서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었던 에라스뮈스와 몽테뉴가 신구 양파의 성전에 맞섰던 고독한 싸움 등.
폴리스의 정치체제 속에서 싹튼 그리스적 교양
그리스는 ‘폴리스’라는 그 뜻대로 시민의 공동체, 시민국가로 규정된다. 한나 아렌트는 폴리스를 가리켜 “함께 활동하고 함께 담론함으로써 생겨난 사람들(자유민)의 조직”이라고 했다. 이른바 그리스인들은 소크라테스를 닮아 담론과 사교를 즐기는 정치참여적인 민족이었다. 아고라, 극장, 올림피아 등 폴리스의 크고 작은 모든 시설이 인간을 형성하는 시설, 교양 형성의 토포스요 터전이었다. 그리스의 교양은 플라톤에게 덕을 지향하는 교육이었으며, 뛰어난 웅변술의 교사였던 이소크라테스에게 말(logos)과 언어에 관한 능력 함양이었다. 이는 모두 정치에 참여하고 국가 공공의 일에 종사하는 ‘폴리스를 사랑하는 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파이데이아, 즉 그리스적 교양은 이상적 개인을 공동체의 이미지(모델)로서 만들고자 했으며, 그리스적 휴머니즘이란 그것이 공동체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데서 탁월성이 나타났다. 교양이 추구한 인간상은 결코 관념적 추상적인 진공 속 인간상이 아니라, 그리스의 풍토 특히 폴리스의 정치체제 속에서 싹트고 자란 살아 있는 이상이었다. 인간적 교양과 깊이 관련된 국가공동체의 자각은 이념 국가, 교육 국가의 이상을 창출했으며, 일찍이 호메로스의 영웅시대에 싹튼 그 이상은 플라톤의 철인 국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교양 있는 로마의 변론가 키케로의 후마니타스
초기 로마 교육은 실용주의적이어서 순수한 지적 개발이나 교양에는 무관심했다. 좋은 예로서 그리스 사람들이 이론 기하학에 관심을 드러낸 것과는 달리 로마 사람들은 기하학을 실용적인 토지측량에 필요한 기술 정도로 배울 뿐, 순수이론으로 배우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의 걸출한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가 발전시킨 변론술(수사학)로 ‘인간적인 학예’(humanae ars)가 꽃을 피웠다. “만약 모든 학문과 인생이 중대사에 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변론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실용적 기술이나 특정한 지식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조하는 원리’를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뛰어난 변론가란 “문제를 잘 다듬고 풍부한 지식을 말하는” 사람이다. 지식이 풍부하다고 함은 교양이 풍부함을 뜻한다. 키케로의 이상을 충족시키고 그것을 밝히는 것은 교양교육을 의미하는 ‘후마니타스’였다. 후마니타스란 교양 있는 개인의 지적?도덕적 표현인 동시에 시민적 사회적인 일상생활의 덕성도 의미했다. 로마 사회가 내세우는 덕(virtus)은 그리스의 아레테 이상으로 공적 영역의, 품격?품위?위신 등 사회적인 덕목이었다.
중세 대학의 탄생과 르네상스 교양 계층의 탄생
중세 1천 년은 ‘암흑의 중세’라는 오명 속에서도 불구하고, 유럽이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의 유럽임을, 유럽 공동체를 확립하고 유럽 역사의 연속성에 이바지한, 고대나 근대와도 비길 만한 빛나는 독자적 도정이었다. 특히, 도시와 도시문화의 성립 및 그를 배경으로 탄생한 대학의 발전은 이 책의 주제인 지식과 교양, 문화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중세 수도원의 사본 공방은 책의 산실이었다. 중세와 더불어 고대 ‘목소리의 문화’(orality)에 종지부가 찍히고 ‘문자의 문화’(literacy), 책의 시대가 열렸다.
14세기 후반에서 16세기까지 범유럽적으로 전개된 르네상스 운동은 ‘인간성의 새로운 발견’이었다는 점에서 유럽 휴머니즘 계보의 큰 축을 이룬다. 저자는 특히, 대학을 능가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문주의자들의 탈권위적?비판적 활동에 주목한다. 그들은 “현실의 모든 분야에 대한 탐구자이며 실험자, 숨겨진 진리, 신비적 계시에 대한 동경자이자 아그리파와 같은 마술사, 브루노와 같은 진리의 증인이다. 그들은 새 탐구, 새 문화활동, 새로운 생활방식의 길을 지향하는 삶의 교사, 모럴리스트였다” 한편,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중세의 고전학 교사들과 다른 점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시, 산문, 역사서술의 내용이나 문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거기에 담긴 사람다움(humanitas)을 귀히 여기며 그것을 모범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르네상스적 인간 단테는 출생에 의한 귀족보다 인간적 지성적 우위의 자질, 즉 교양을 갖춘 인간을 최고의 인간으로 이해했으며, “르네상스는 망명가들의 심성에서 태어났다”는 말에 합당한 체제개혁적인 시민적 인문주의자의 전형이었다.
18세기 ‘백과전서적 교양인’에서 20세기 ‘교양 있는 좌파’까지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스트들이 고전 고대의 이미지로써 그들에 앞선 중세를 암흑시대로 여기고 막연히 이상향 아르카디아를 꿈꾼 것과는 달리 18세기가 내세운 계몽(lumiere)은 정신을 비추는 빛, 바로 지식을 뜻했다. 어둠을 헤치는 빛으로의 지식, 지성은 어떠한 역사적 세계로부터도 자유로운, 명석한 이성(raison)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더불어 담론했다. 데카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 그의 세례를 받은 이성의 신봉자는 날로 증대되고 지식사회라는 큰 공동체를 이룬다. 볼테르가 스스로 “행동하기 위해 쓴다”며 실천하는 철학자에 관해 언급한 것에 알 수 있듯이, 인식의 세계에만 머물 수 없는 철학자의 사회적 기능을, 실천적 지(知)의 사회적 연대를 강조했다. 18세기 철학자들은 스콜라주의적 서재인의 풍모는 물론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과도 딴판이었다. 또한 180명이 넘는 집필진이 참여하고 21년 만에 완결된 지성의 기념비적 성과 『백과전서』의 간행은 18세기를 규정한다. 우리는 여기서 백과전서적 안목을 지닌 지식인, 교양인을 발견한다. 볼테르, 루소, 달랑베르, 디드로처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인, 작가, 비평가, 수학자, 물리학자에 신문?잡지의 편집자였다. 그만큼 그들은 상식과 에스프리의 공화국의 주민이며 시민이었다. 근대적 시민계층의 사회적 정념을 문명의 핵심으로 높인 것은 바로 이 백과전서파였다.
한편, 근대 저널리즘의 발전 및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은 공중(公衆)의 폭을 날로 넓혀 문학적 공중은 사상적?정치적인 공중으로 변신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사회참가를 서슴지 않는 ‘모반하는 교양인’이 집단적으로 탄생했다. 교양인은 이제 더 이상 ‘선민’(the elite)이 아니었다. 사회 속에서 우애의 인간, 연대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1789년 이래 여러 혁명을 겪으면서 시민계급과 함께 인권과 인민주권을 부르짖었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사회주의자 및 유대인과 연대했다. 1920년대 30년대의 인민전선과 스페인 전쟁에서는 교양 있는 좌파로서 반파시즘 운동에 앞장섰다.
이른바 ‘교양’이 유행하는 시대다. 또한 이 말은 교양이 없는 시대임을 스스로 반증한다. 그렇다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양이란 무엇이며 교양인이란 진정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이 물음은 고도의 기술산업 정보사회에서 존재의 망각, 인간 상실현상이 날로 격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더욱 더 절박한 문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대학사와 지성사를 비롯해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를 평생에 걸쳐 이어온 서양사학자 이광주 교수(인제대 명예교수)가 이 문제를 『교양의 탄생: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에서 폭넓은 시각과 깊은 통찰력으로 파헤쳤다. 부제가 말해주듯 ‘교양’은 결국 ‘인문정신’의 구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8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전쟁과 혁명의 시대인 19, 20세기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시기에 걸쳐 유럽 휴머니즘의 계보를 정리하고 있다. 즉, 유럽 문화의 특징을 교양과 교양인의 위상을 통해, 그 형성과 타작의 과정을 주요한 상징적 표현 형태인 고전, 대학, 서재, 교육, 살롱, 극장, 여행, 도시, 지식인 등 갖가지 토포스와 관련해서 해박하게 톺아내고 있다. 또한 각 시대마다 정신의 사표가 되는 유럽의 대표적인 인문주의자들―플라톤, 소크라테스, 키케로, 페트라르카, 단테, 몽테뉴, 토머스 모어, 에라스뮈스, 루소, 괴테, 훔볼트, 지드, 졸라―을 종횡으로 엮어내면서 그들이 추구했던 삶의 원칙과 정신을 통해 이상적인 교양인상을 다채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상적 인간, 그것은 교양인이었다
비록 이 책이 유럽에 국한되어 설명되고 있지만,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동서양 모두 ‘교양인’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어느 국민 어느 사회나 예로부터 ‘이상적 인간’을 염원하고 형성해왔는데, 유교문명권인 중국이나 우리는 선비와 군자를,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오네톰이나 영국의 젠틀맨을 그런 인간상으로 여겼다. 이들은 모두 교양인이었으며, 한 사회의 도덕성과 문화의 이상(理想)을 상징하고 구현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문화 엘리트 또는 권력 엘리트와도 구별되었다. 유럽의 경우 교양은 옛 그리스-로마의 고전 중심의 인문학적인 배움과 취향이며, 교양인은 고전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리스-로마 사람들은 마음과 몸, 삶 전체의 반듯하고 조화로운 구현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실현을 파이데이아(교양)와 후마니타스의 지(知)를 뜻하는 인문학에서 찾았다. 그만큼 그들이 자각한 교양의 핵심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문제였다.
교양, 어떠한 도그마나 권위도 부정하며 이웃과 사회를 의식한다
저자는 교양(인)에 대한 정의를 다음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교양(culture, education, Bildung)이란 문자 그대로 ‘경작’ ‘교육’ ‘형성’을 뜻하며, 결코 자명한 규범 혹은 이상, 영구불변의 보편적 원리가 아니며 시공과 역사적 상황에 따라 조각탁마되고 자기변모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양이라는 텍스트는 역사의 진운에 슬기롭게 응답함으로써 새로 쓰이고 그 콘텐츠와 이념의 지평을 확대하고 심화해야 한다.” 둘째, 교양인이란 파우스트처럼 끊임없이 묻고 탐색하는 인간이며, 그 배움은 광장이나 살롱에서 나누는 담론을 통해 배양되므로 교양인은 단순히 서재에 갖힌 인간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릴 것도 없이 교양인은 개인인 동시에 ‘사교적, 사회적’(sociables) 존재이다.” “교양으로 인해 사람은 자유에 눈뜨고 자유로 인해 사람은 이웃과 사회를 의식한다.” 셋째, 교양은 어떠한 도그마나 권위도 부정하며 그것들이 깔아놓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의 후예인 페트라르카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이 스콜라주의의 어둠을 파헤친 치열한 인문주의 정신, 종교개혁 속에서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었던 에라스뮈스와 몽테뉴가 신구 양파의 성전에 맞섰던 고독한 싸움 등.
폴리스의 정치체제 속에서 싹튼 그리스적 교양
그리스는 ‘폴리스’라는 그 뜻대로 시민의 공동체, 시민국가로 규정된다. 한나 아렌트는 폴리스를 가리켜 “함께 활동하고 함께 담론함으로써 생겨난 사람들(자유민)의 조직”이라고 했다. 이른바 그리스인들은 소크라테스를 닮아 담론과 사교를 즐기는 정치참여적인 민족이었다. 아고라, 극장, 올림피아 등 폴리스의 크고 작은 모든 시설이 인간을 형성하는 시설, 교양 형성의 토포스요 터전이었다. 그리스의 교양은 플라톤에게 덕을 지향하는 교육이었으며, 뛰어난 웅변술의 교사였던 이소크라테스에게 말(logos)과 언어에 관한 능력 함양이었다. 이는 모두 정치에 참여하고 국가 공공의 일에 종사하는 ‘폴리스를 사랑하는 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파이데이아, 즉 그리스적 교양은 이상적 개인을 공동체의 이미지(모델)로서 만들고자 했으며, 그리스적 휴머니즘이란 그것이 공동체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데서 탁월성이 나타났다. 교양이 추구한 인간상은 결코 관념적 추상적인 진공 속 인간상이 아니라, 그리스의 풍토 특히 폴리스의 정치체제 속에서 싹트고 자란 살아 있는 이상이었다. 인간적 교양과 깊이 관련된 국가공동체의 자각은 이념 국가, 교육 국가의 이상을 창출했으며, 일찍이 호메로스의 영웅시대에 싹튼 그 이상은 플라톤의 철인 국가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교양 있는 로마의 변론가 키케로의 후마니타스
초기 로마 교육은 실용주의적이어서 순수한 지적 개발이나 교양에는 무관심했다. 좋은 예로서 그리스 사람들이 이론 기하학에 관심을 드러낸 것과는 달리 로마 사람들은 기하학을 실용적인 토지측량에 필요한 기술 정도로 배울 뿐, 순수이론으로 배우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의 걸출한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가 발전시킨 변론술(수사학)로 ‘인간적인 학예’(humanae ars)가 꽃을 피웠다. “만약 모든 학문과 인생이 중대사에 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변론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실용적 기술이나 특정한 지식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조하는 원리’를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뛰어난 변론가란 “문제를 잘 다듬고 풍부한 지식을 말하는” 사람이다. 지식이 풍부하다고 함은 교양이 풍부함을 뜻한다. 키케로의 이상을 충족시키고 그것을 밝히는 것은 교양교육을 의미하는 ‘후마니타스’였다. 후마니타스란 교양 있는 개인의 지적?도덕적 표현인 동시에 시민적 사회적인 일상생활의 덕성도 의미했다. 로마 사회가 내세우는 덕(virtus)은 그리스의 아레테 이상으로 공적 영역의, 품격?품위?위신 등 사회적인 덕목이었다.
중세 대학의 탄생과 르네상스 교양 계층의 탄생
중세 1천 년은 ‘암흑의 중세’라는 오명 속에서도 불구하고, 유럽이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의 유럽임을, 유럽 공동체를 확립하고 유럽 역사의 연속성에 이바지한, 고대나 근대와도 비길 만한 빛나는 독자적 도정이었다. 특히, 도시와 도시문화의 성립 및 그를 배경으로 탄생한 대학의 발전은 이 책의 주제인 지식과 교양, 문화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중세 수도원의 사본 공방은 책의 산실이었다. 중세와 더불어 고대 ‘목소리의 문화’(orality)에 종지부가 찍히고 ‘문자의 문화’(literacy), 책의 시대가 열렸다.
14세기 후반에서 16세기까지 범유럽적으로 전개된 르네상스 운동은 ‘인간성의 새로운 발견’이었다는 점에서 유럽 휴머니즘 계보의 큰 축을 이룬다. 저자는 특히, 대학을 능가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문주의자들의 탈권위적?비판적 활동에 주목한다. 그들은 “현실의 모든 분야에 대한 탐구자이며 실험자, 숨겨진 진리, 신비적 계시에 대한 동경자이자 아그리파와 같은 마술사, 브루노와 같은 진리의 증인이다. 그들은 새 탐구, 새 문화활동, 새로운 생활방식의 길을 지향하는 삶의 교사, 모럴리스트였다” 한편,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중세의 고전학 교사들과 다른 점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시, 산문, 역사서술의 내용이나 문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거기에 담긴 사람다움(humanitas)을 귀히 여기며 그것을 모범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르네상스적 인간 단테는 출생에 의한 귀족보다 인간적 지성적 우위의 자질, 즉 교양을 갖춘 인간을 최고의 인간으로 이해했으며, “르네상스는 망명가들의 심성에서 태어났다”는 말에 합당한 체제개혁적인 시민적 인문주의자의 전형이었다.
18세기 ‘백과전서적 교양인’에서 20세기 ‘교양 있는 좌파’까지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스트들이 고전 고대의 이미지로써 그들에 앞선 중세를 암흑시대로 여기고 막연히 이상향 아르카디아를 꿈꾼 것과는 달리 18세기가 내세운 계몽(lumiere)은 정신을 비추는 빛, 바로 지식을 뜻했다. 어둠을 헤치는 빛으로의 지식, 지성은 어떠한 역사적 세계로부터도 자유로운, 명석한 이성(raison)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더불어 담론했다. 데카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 그의 세례를 받은 이성의 신봉자는 날로 증대되고 지식사회라는 큰 공동체를 이룬다. 볼테르가 스스로 “행동하기 위해 쓴다”며 실천하는 철학자에 관해 언급한 것에 알 수 있듯이, 인식의 세계에만 머물 수 없는 철학자의 사회적 기능을, 실천적 지(知)의 사회적 연대를 강조했다. 18세기 철학자들은 스콜라주의적 서재인의 풍모는 물론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과도 딴판이었다. 또한 180명이 넘는 집필진이 참여하고 21년 만에 완결된 지성의 기념비적 성과 『백과전서』의 간행은 18세기를 규정한다. 우리는 여기서 백과전서적 안목을 지닌 지식인, 교양인을 발견한다. 볼테르, 루소, 달랑베르, 디드로처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인, 작가, 비평가, 수학자, 물리학자에 신문?잡지의 편집자였다. 그만큼 그들은 상식과 에스프리의 공화국의 주민이며 시민이었다. 근대적 시민계층의 사회적 정념을 문명의 핵심으로 높인 것은 바로 이 백과전서파였다.
한편, 근대 저널리즘의 발전 및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은 공중(公衆)의 폭을 날로 넓혀 문학적 공중은 사상적?정치적인 공중으로 변신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사회참가를 서슴지 않는 ‘모반하는 교양인’이 집단적으로 탄생했다. 교양인은 이제 더 이상 ‘선민’(the elite)이 아니었다. 사회 속에서 우애의 인간, 연대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1789년 이래 여러 혁명을 겪으면서 시민계급과 함께 인권과 인민주권을 부르짖었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사회주의자 및 유대인과 연대했다. 1920년대 30년대의 인민전선과 스페인 전쟁에서는 교양 있는 좌파로서 반파시즘 운동에 앞장섰다.
목차
책을 내면서|이광주
1 그리스, 교양과 지식의 탄생
2 극장, 디오니소스적인 도취
3 키케로의 후마니타스와 시민적 휴머니즘
4 수도원과 주교좌성당, 초기그리스도교의 문화
5 12세기 르네상스와 대학에 이르는 길
6 중세의 대학
7 철학은 신학의 하녀인가
8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
9 사랑의 발명과 궁정풍 교양
10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교양 계층의 탄생
11 보티첼리의 '봄'
12 프랑스 르네상스와 몽테뉴의 에스프리
13 북방 인문주의와 에라스뮈스
14 종교개혁과 종파 이데올로기
15 서재의 미학
16 근대소설과 변신하는 여인
17 극장, 유혹하는 무대 혹은 카타르시스의 공간
18 살롱 또는 담론하는 사교장
19 아카데미와 백과전서적 교양
20 근대 과학의 성립과 패러다임의 전환
21 전문학과 전문직, 사회 속의 교양
22 신문과 잡지, 모반을 꿈꾸는 말과 문자
23 여행, 편력하는 삶의 토포스
42 18세기 계몽주의, 문명의 숲, 사회 속의 연대
25 프랑스 혁명과 독일 지식인
26 베를린 대학과 학문을 통한 교양
27 미국의 대학과 기술산업사회의 허구와 진실
28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정치참여
29 스페인 전쟁과 교양 있는 좌파
30 1968년 5월,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다"
y형에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