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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나남신서 1414

5.16과 10.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

개인저자
이만섭 지음
발행사항
파주 : 나남, 2009
형태사항
271 p.: 삽화; 24 cm
총서사항
나남신서
ISBN
9788930084147 9788930080019(세트)
청구기호
340.911 이315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2804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2804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 서문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나의 정치적 스승이었다. 그리고 김재규金載圭 부장은 나의 중학교 스승이었다. 김 부장은 또한 박 대통령의 고향[慶北善山] 후배였으며 육사 2기 동기생이었다. 우리 세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63년 나는 박 대통령의 민족의식과 자립경제, 자주국방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공감하여 민정이양을 위한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후보의 당선을 위해 내 몸을 던졌다.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악랄한 사상논쟁과 미국 측이 은근히 반대하는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필승의 신념으로 이에 맞서 박정희 후보는 표차는 15만 표에 불과했으나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당하게 당선되었다.
선거 내내 박 대통령과 침식을 같이 하며 전국 유세를 다닌 나는 그 후 박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통령에 취임하신 후에도 나라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나를 불러 일일이 의논해 주셨다.

한편 김 부장은 나의 중학교 때 체육선생이었다.
나는 민족사학인 대구 대륜중학교 2학년 때 해방을 맞았으며 김 부장은 내가 중학교 4학년 때 약 1년간 나의 모교에서 체육교사로 봉직한 일이 있었다. 김 부장이 육사 2기 졸업 후 소위 시설 사정에 의해 군을 잠깐 떠나 있을 때였다. 학교에 계시는 기간은 짧았으나 김 선생은 정이 많아 제자들과 형제처럼 지냈으며 당시 농구선수이자 학업 성적도 우수한 나를 누구보다 좋아하셨다.
그래서 김 부장은 군에 복직한 후에도 대륜중학교 선생으로 있었다는 것과 특히 나를 제자로 두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나 자랑삼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김 부장은 군에 있을 때나 예편 후 민간인으로 정부 요직에 있을 때에도 나라가 어려울 때면 나와 의논했고 특히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나를 통해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박 대통령과 김 부장도 특별한 관계였다.
박 대통령은 고향 후배인 김 부장을 끔찍이 생각하여 군 인사 때마다 그를 뒤에서 챙겨 주었으며 김 부장이 예편한 후에도 그를 믿고 정부 요직을 맡기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3선 개헌을 하기 전 1960년대까지는 나와 김 부장을 자주 청와대에 불러 세 사람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일도 많았다. 그 당시 박 대통령이 김 부장을 믿는 것과 같이 김 부장의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도 한결같이 깊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1979년 김 부장이 박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다니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차지철車智澈 경호실장이었다.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의 흉탄에 맞아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돌아가신 후 박종규朴鐘圭 경호실장이 그만두고 차지철 씨가 경호실장 자리에 앉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차 실장은 군의 대선배인 김 부장과 김계원金桂元 비서실장을 철저하게 견제하였으며 심지어 김 중앙정보부장이 보고차 대통령을 만나는 것까지도 ‘경호상의 이유’를 핑계로 방해할 정도였다.
차 실장은 경호실 조직을 강화하여 정부와 여당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국회 안에도 비밀리에 자기 조직을 심어 놓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정국을 강변일변도로 끌고 갔으며 온건파인 김 부장과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었다.

부마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차 실장은 “각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탱크로 확 밀어붙이면 됩니다”라고 박 대통령에게 건의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 차 실장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김 부장은 나를 만나 “차지철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고 한탄한 일이 있고, 심지어 아주 가까운 군 동기들에게는 “차지철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 같다. 차지철을 없애야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박 대통령이 온건한 김 부장보다 강경한 차 실장을 더 신임하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차 실장은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여 마치 2인자처럼 행세했던 것이다.

김재규 부장이 재판정에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습니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김 부장은 박 대통령을 쏘았으니 분명 ‘야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김 부장은 본인 스스로 말한 것처럼 왜 ‘야수’가 되었을까? 그것은 차 실장의 안하무인격인 횡포 때문이었다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김 부장이 대통령에게 총을 겨눈 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배은망덕한 패륜아’임에 틀림없으며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대신 그 총에 맞는 한이 있어도 그것만은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극적 사건을 ‘패륜’으로만 덮어두고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그 당시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여 이를 기록에 남겨야 한다.
…올바른 역사의 평가를 위해서도,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역사적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그것은 필요하다.…
목차
머리말 : 역사의 기록을 위하여 9 -5.16 군사혁명과 동아일보 필화사건 15 -박정희 의장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 39 -‘민정 불참’에서 ‘민정 참여’로 바뀐 -역사적 순간 51 -박정희 후보의 대선 유세를 지원 59 -박 대통령, 김 장군 그리고 나, -청와대에서 자주 회동 73 -박정희 의장, 제5대 대통령에 취임 81 -혈육을 만나게 하자 93 -사카린 밀수와 ‘국회 오물투척 사건’ 105 -‘3선 개헌’ 나는 처음부터 반대 125 -“각하, 후계자가 잘하면 다시 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133 -3선 개헌의 선행조건으로 제시한 -이후락.김형욱의 퇴진 145 -박 대통령, 은밀히 약속한 -이후락.김형욱 퇴진 155 -10월 유신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체제 구축 169 -한국 경제발전의 비결 193 -10대 국회, 어렵게 등원 201 -총선 1.1% 패배가 10·26 비극의 단초 207 -김재규.차지철 사사건건 대립 217 -10.26은 왜 일어났나? 235 -10.26의 역사적 교훈 245 -김재규의 최후진술 255 -추천사 : 용기있는 정치인 이만섭 황소웅 257 -이만섭의 정치인생 50년의 발자취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