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 대등서명
- Playing our game
- 발행사항
- 파주 : 글항아리, 2011
- 형태사항
- 446 p. : 도표 ; 23 cm
- ISBN
- 9788993905489
- 청구기호
- 320.912 스831ㅇ
- 일반주기
- 원저자명: Edward S. Steinfeld 표제관련정보: 미국 MIT 최고 전문가 집단이 분석한 중국 경제의 실체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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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3241 | 대출가능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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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오늘날 왜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게 고마워하고 있는가?
왜 중국은 ‘근본적’으로 서구 시스템을 위협할 수 없는가?
◆ 변화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보다는 톈안먼사건 이후 몇 년에 집중되었다 ◆
◆ 중국 독재주의의 약화는 중국 정부 스스로의 ‘선택’과 ‘베팅’이다 ◆
◆ 세계 경제가 중국과 관계 맺고 있는 ‘분업구조의 거미줄’을 해부한다 ◆
◆ 왜 해외파 중국인들이 속속 중국에 돌아오는가? 왜 중국 공산당은 국민 눈치를 보는가 ◆
◆ 경제활동은 분산되어도 권력은 분산되지 않는 세계화의 진실을 보여주는 곳, 중국 ◆
이 책은 기존에 많이 나왔던 중국에 관한 책들, 중국의 변화에 주목하는 많은 뉴스거리들을 통해 해소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통해 중국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은 무섭도록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인들, 더 나아가 소위 ‘선진국 국민들’이 품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위기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왜 중국의 약진이 서구에 위협적이지 못한가’를 증명해나가고 있다. 특히 중국 사회의 변화 과정을 ‘제도의 아웃소싱’이라는 개념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경제나 정치 어느 한 부분에 치중된 논의를 펼치는 반면, 이 책은 경제에서 시작해 정치로 옮겨 붙은 변화의 불길을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힘있는 관점과 서술을 보여준다. 성장의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MIT 중국프로젝트의 총책임자, 미중관계전국위원회 위원장, 중국 국영기업의 자문위원 등을 거치면서 저자는 10년의 관찰과 10년의 연구 내용을 마치 한 호흡으로 써나가듯 흡인력을 발휘해, 그의 견해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왜 미국에게 이익이 되는가
서구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게임하는 중국
중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미국은 한낱 중국 제품의 소비 시장이자 중국 자금의 대출자로 전락해버렸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급부상은 서구의 몰락, 특히 미국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에드워드 스타인펠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성장은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강화시켜준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중국이 서구가 정한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현대화라는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서구의 경제질서에 자신을 통합함으로써 중국은 서구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와 규제 체제에 대한 서구의 지배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외부 세계의 영향은 대체로 중국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으나 이와 동시에 엄청난 와해 효과를 불러왔다. 중국은 여러 측면에서 국내경제 체제와 제도의 구조조정을 외국 기업과 외국의 법률 규제 기관에 아웃소싱했다. 그 결과 오늘날 중국 기업에게 글로벌 생산에 참여한다는 것은 외국의 규칙을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러한 중국 기업이 비록 제품을 조립하여 서구에 수출하기는 하지만 해당 제품의 가장 가치 있는 부품은 서구 선진국에서 들여온다. 가치로 따졌을 때 미국이 글로벌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이후 오히려 증가했다.
한편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연구 개발 시설을 세우고 중국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채용함으로써 중국의 인재들을 순수한 중국 국내의 혁신보다는 글로벌 혁신 노력에 활용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중국과 미국이 모두 이러한 상황에서 혜택을 보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중국에 가해지는 부담은 엄청나다.
중국은 미국 경제를 모델로 삼았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사실상 사회 안전망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므로 이런 행보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이른바 월마트화Walmartization는 중국이 의도했다기보다 미국이 중국을 그렇게 변화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웃소싱에서부터 에너지까지 스타인펠드는 풍부한 연구를 바탕으로 날카롭게 지적하여 일반의 통념을 무너뜨린다.
1990년대 초반에 일어난 심오한 변화, 생존의 결단
정치와 경제를 연동시켜서 중국을 관찰하라
이 책은 중국 전역을 휩쓴 지난 20년의 변화를 보다 자세히 이해시켜 준다. 특히 중국의 변화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눈부신 경제성장, 엄청난 외환 보유고는 기저에서 일어난 훨씬 심오한 변화를 외부에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이러한 근원적인 변화를 잘못 이해하거나 아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표면에 나타난 경제적인 성과마저 오해하기 쉽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중국의 세계적인 위상뿐만 아니라 미국이든 유럽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각자의 세계적인 위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기후 변화, 에너지 자원의 지속 가능성, 지정학적인 안보, 경제적 경쟁 등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중국 정부는 1978년 12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 모든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공식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은 이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톈안먼사건 직후의 몇 년 동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른 모든 혁명과 마찬가지로 정치, 사회, 경제의 변화가 모두 한데 뒤엉켜 일어났다. 저자 스타인펠드는 혁명의 범위와 폭은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심지어 1949년의 중국의 공산혁명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혁명들과도 맞먹을 만큼 넓고 깊었다고 관찰한다.
이 혁명은 세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경제적인 변화와 정치적인 변화가 맞물려 일어났다는 점이다. 중국의 개혁은 ‘경제적인 면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상투적인 인식이 지배적이다. 사실 이것만큼 틀린 말도 없다. 중국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지만,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중국에서 일어난 다른 모든 변화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두 번째, 이러한 정치경제적 변화를 주도한 것은 바로 세계화globalization였다. 중국이 세계경제에 뛰어들었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세계경제 자체가 전면적인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와 일치했다. 선진국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도 이러한 변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세계화는 사람들이 대부분 생각하는 그런 세계화가 아니다. 시장이 확대되고 경쟁 입지가 대등해지고 신흥 경제 국가가 출현하는 현상도 최근에 어느 정도 일어났지만 여기서 말하는 세계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단일 기업 내에서 치밀하게 계획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던 생산 단계를 여러 기업과 여러 국가에 분산하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새로운 글로벌 생산 구조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분업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철저한 계층구조와 통제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평평한” 세계가 아니라 적어도 상업적인 측면에서만큼은 전통적인 경제 강국에게 유리하도록 크게 기울어진 세계에 살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승했고, 그 결과 국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세 번째, 세계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중국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다시 쓰고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중국은 시대에 역행하는 정치적 이단아도 아니며, 자국의 역량을 이용해 다른 나라들을 희생시키면서 경제성장을 추진하지도 않았다. 또한 스스로의 구상대로 글로벌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경제 발전을 통해 국가의 힘을 키우려는 고전적인 의미의 중상주의를 추구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혁명은 특정한 유형의 국제적인 경제 질서를 적극 수용하여 국가가 처한 실존의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중국이 채택한 국제적인 경제 질서는 사상 최초의 진정한 글로벌 생산 체제이다. 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철두철미하게 세계적인 분업에 적극 참여했고, 그 결과 다른 어떤 나라보다 극적인 내부 변화를 겪었다.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중국은 스스로 규칙을 정해나가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선진 산업국들의 규칙을 수용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서구의 규칙에 따른 게임이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이 주도하여 규정하였고 서구의 모든 선진 산업국가가 다양한 형태로 실천해온 현대 자본주의를 뜻한다. 하지만 이것을 미국 제국주의가 거둔 또 한 차례의 승리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중국은 결코 백기를 들고 해외 지배자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상대의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겠다는 사회적인 선택을 했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발전 궤도, 나아가 서구 선진국들의 발전 궤도도 새롭게 정의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점은 중국의 이러한 변화가 중국뿐만 아니라 서구 선진국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세계적인 분업 생산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경제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세계의 가장 부유한 국가들, 특히 미국은 기술 혁신을 추진하고 상업적인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중국이 제조업으로 특화하자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의 국가들과 일본은 훨씬 따라 하기 어려운 분야인 지식 산업과 신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한국 등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중국과 연관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협력과 대립, 독자 노선 등 어떠한 조치를 취하든지,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중국의 본질적인 특징은 무엇인지, 중국이 나아가는 방향은 어디인지, 중국은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한 가정을 기준으로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가정이 정확해야 더욱 효과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중국 자체와 세계무대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어떻게 보면 서구 선진국과 선진국의 세계적인 위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경제를 아웃소싱하자 정치도 아웃소싱하게 된다
중국은 더이상 폐쇄전략을 쓸 수 없게 됐다
본론에서 저자는 중국이 세계화에 참가하게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대로 생생하게 구조적으로 묘사해준다. 여기서 세계화는 지구 끝 변경이라고 생각했던 지역을 포함하여 세계 전체가 일찍이 기업 내부에서만 운영되던 복잡한 생산 체계로 통합되는 세상을 말한다. 생산 과정을 분해하여 여러 기업과 지역으로 분산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경제 활동이 분산되었다고 해도 위계와 통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화된다.
중국은 우선 세계 경제에 합류한 이후 부랴부랴 국내에서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구색은 갖추게 된 셈이지만 이는 중국의 선택이었다기보다 글로벌 경제의 의도에 더욱 가까웠다.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아웃소싱이라는 현상을 바탕으로 중국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같이 발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의 제도를 아웃소싱했다. 즉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관리하고 형성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사회적 규칙을 정의하는 권한을 제3자에게 이양한 셈이다. 이러한 형태의 아웃소싱은 일자리나 생산 활동의 이전이 아니라 핵심적인 사회 제도를 규정하는 힘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 결과 사회 계층이 재편되었고 정부와 기업을 움직이는 엘리트의 유형도 변화했으며,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을 때 대응하는 방법의 선택 범위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초기 단계에서는 이러한 패턴이 신발, 섬유, 의류 등의 산업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최근에는 최첨단 설계와 공학 기술, 엄청난 수량의 부품, 빠른 제품 주기를 요구하는 고급 전자 제품의 제조와 정보기술(IT) 등 한층 복잡한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연구 개발(R&D)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점점 더 많이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제약, 소프트웨어, IT와 같은 산업의 연구 개발 활동 자체가 전 세계를 기반으로 수행되며, 여러 업무가 포괄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무역 제도에서 새로운 무역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스스로 제정한 고유의 제도적 장치, 즉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사이에서 제3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중국은 협상을 통해 WTO에서 정한 국제적인 표준을 순순히 받아들여 자신의 새로운 체제를 정의했다. 동시에 당시의 주룽지 총리는 WTO 가입 협약을 국가의 관료주의를 축소하고 개혁에 대한 고위 간부들의 저항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적어도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첫 번째, 생산 과정의 세부 부문이 분리되자 미시적인 제도 변화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재산법이나 계약법과 같은 영역은 아직은 전혀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생산자들이 글로벌 공급 사슬에 통합되면서 매우 실질적인 변화가 현장에서 일어났다. 사실 새로운 생산 체제가 순조롭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했다. 노동시장, 주택 시장, 의료 서비스 제공 방식, 훈련 및 교육 체계가 모두 변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생산의 새로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모든 변화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꺼번에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기업 수준에서는 글로벌 생산 체제와의 연계를 위한 분명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시간이 지나고 중국 산업에서 글로벌 지향 부문이 성장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중국의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짐에 따라 국가적인 차원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글로벌 생산 부문을 더욱 발전시키고 다른 국가에게 생산 활동의 아웃소싱 몫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다양한 거시적인 제도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에는 보다 명확한 규제 체계,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규제, 지적소유권 제도의 엄격한 적용, 유연한 노동시장으로의 개선 등이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의 여러 다른 부문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지지하는 폭넓은 사회 계층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도 제도 정비를 예전처럼 권력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정부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통화와 외환을 관리하는 주도권을 외부인에게 넘긴 것은 한층 미묘한 변화였지만 마찬가지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중국 경제가 수출업체들과 해외 공급 사슬 관리업체들에게 점점 크게 의존하게 되자 중국 정부는 더 이상 무역과 외환 허가증을 발급하는 사회주의적인 “이중 폐쇄(double airlock)” 제도로 화폐의 흐름을 통제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외환 평가 방식과 현재의 위안화 환율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지금 중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통화관리 체제가 분명히 표준 자본주의 방식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환율 관리가 정책적인 측면에서 최적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수많은 중국의 학자와 관료들, 특히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의 관리들은 현재의 통화관리 체제가 완전한 외환 자유화를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니며, 그렇게 보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고정환율제도가 최근 여러 번에 걸쳐 적합한 시장 관리 방식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본문 63쪽)
해외의 엘리트들이 중국에 귀향하는 이유
“주식상장이 대형 국가기업을 훈련시켰다”
오래전에 중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몇 년 동안 이들을 변절자로 취급했고, 직업상의 이유로 귀국하려는 경우에도 온갖 방해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제도의 아웃소싱은 이 같은 현실을 모두 바꿔놓았다. 이제는 과거에 변절자 취급을 받았던 해외파 중국인들이 새로운 국제 관행에 중국이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관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제 이들의 유입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귀국을 적극 장려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아웃소싱의 경우 일부에서 중국 경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국가의 대표 기업인 국영기업에게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기서 국가대표 기업이란 주로 금융, 에너지, 자동차, 철강 등 국가가 지배하고 있는 핵심 기간산업의 대표적 기업을 뜻한다. 그렇지만 국가 대표 기업들 역시 제도의 아웃소싱 현상과 무관할 수는 없었다. 사실 핵심 기업들과 관련된 아웃소싱은 앞에서 설명한 여러 아웃소싱보다 훨씬 극적인 정치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그것은 바로 주식상장이었다. 국가대표급 기업들의 글로벌 주식상장이 이뤄진 뒤, 상장 기업의 운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양상을 띠게 되자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더 이상 효과적인 감독을 할 수 없었다. 복잡한 국제 거래를 이해할 만한 기술과 지식을 보유한 관료라면 벌써 직업을 바꿔 해외 상장 기업의 경영진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처음에 제도의 아웃소싱은 경제 분야를 대상으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중국식 사회주의의 정치적인 기반을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했다. 일당독재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히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의 본질, 국민과의 관계, 정당성의 원천이 모두 근본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분명히 실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국가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20년간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중국 정부는 정치적인 원칙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왔다. 법의 지배라는 의제를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사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암묵적으로 용인할 것인가? 주요 국영기업과 은행을 외국의 영향력에 노출시킬 것인가 아니면 엄격한 정부의 통제 하에 그대로 둘 것인가? 시민단체를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탄압할 것인가? 기득권층에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공공연하게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전문가를 유입시킬 것인가 아니면 배제할 것인가? 이런 모든 문제에서 중국 지도부는 진보의 길을 선택했다.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주사위를 던지고 끊임없이 판돈을 올렸다.”
(본문 87~88쪽)
저자는 묻는다. 오늘날 중국과 세계경제를 바라볼 때 무역을 중심으로 보지 말고, 보다 정확한 생산 지향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는 독특한 나라라는 전제 자체를 버리고 오늘날 중국의 정치와 경제는 서로 결합되어 유기적인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세계화의 중심지로서의 중국” “자본주의를 촉진하는 중국” “제도의 아웃소싱을 추진하는 중국” “판돈을 두 배로 올리는 국가로서의 중국” “스스로 쇠퇴하기를 선택한 독재주의 국가 중국”을 말이다. 중국의 공산당과 정부는 시대를 풍미한 다른 독재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유지한다는 목표를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정부가 권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지도층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정확히 어떤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으며, 그 이해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어떻게 변해가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 정부, 보다 폭넓게 보아 중국 공산당은 한때 결단코 반대했던 제도, 개념, 인재를 수용했다. 이는 아마도 순수하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였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학자인 벤저민 슈워츠는 과거 중국의 개혁 시대(19세기 말 청나라의 개혁)를 설명하면서 당시 중국의 개혁은 단순히 요새의 바깥쪽 벽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부 성역의 문이 활짝 열린 것에 가깝다고 비유한 바 있다. 요새는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게 서있었지만 그 안에 누구를 포용하고 누구를 배척해야 하는지 경계 자체가 모호해졌다는 의미이다. 중국 정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구와의 제도적인 조화를 통해 성장을 추구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성과 이해관계가 변했다. 더 중요한 것은 현대화라는 목표를 이루겠다는 다짐을 통해 정부의 권력을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자연스러운 종착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이 책은 중국을 테마로 삼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라는 큰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덧붙여 IBM이 노트북 브랜드인 ‘씽크패드’를 중국 기업인 레노보에게 넘긴 과정과 그 안에 담근 세계시장의 큰 판도변화, R&D를 통해 넷북과 같은 신제품의 탄생 배경을 진단하는 것, 크눅CNOOC(중국해양석유총공사)이라는 덩치 큰 국영기업이 어떻게 국제와, 제도의 아웃소싱으로 거듭 태어나는가를 세밀히 묘사하는 점 등은 특히 눈길을 끈다.
왜 중국은 ‘근본적’으로 서구 시스템을 위협할 수 없는가?
◆ 변화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보다는 톈안먼사건 이후 몇 년에 집중되었다 ◆
◆ 중국 독재주의의 약화는 중국 정부 스스로의 ‘선택’과 ‘베팅’이다 ◆
◆ 세계 경제가 중국과 관계 맺고 있는 ‘분업구조의 거미줄’을 해부한다 ◆
◆ 왜 해외파 중국인들이 속속 중국에 돌아오는가? 왜 중국 공산당은 국민 눈치를 보는가 ◆
◆ 경제활동은 분산되어도 권력은 분산되지 않는 세계화의 진실을 보여주는 곳, 중국 ◆
이 책은 기존에 많이 나왔던 중국에 관한 책들, 중국의 변화에 주목하는 많은 뉴스거리들을 통해 해소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통해 중국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은 무섭도록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인들, 더 나아가 소위 ‘선진국 국민들’이 품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위기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왜 중국의 약진이 서구에 위협적이지 못한가’를 증명해나가고 있다. 특히 중국 사회의 변화 과정을 ‘제도의 아웃소싱’이라는 개념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경제나 정치 어느 한 부분에 치중된 논의를 펼치는 반면, 이 책은 경제에서 시작해 정치로 옮겨 붙은 변화의 불길을 원거리와 근거리에서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힘있는 관점과 서술을 보여준다. 성장의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MIT 중국프로젝트의 총책임자, 미중관계전국위원회 위원장, 중국 국영기업의 자문위원 등을 거치면서 저자는 10년의 관찰과 10년의 연구 내용을 마치 한 호흡으로 써나가듯 흡인력을 발휘해, 그의 견해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왜 미국에게 이익이 되는가
서구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게임하는 중국
중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미국은 한낱 중국 제품의 소비 시장이자 중국 자금의 대출자로 전락해버렸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중국의 급부상은 서구의 몰락, 특히 미국의 쇠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에드워드 스타인펠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성장은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강화시켜준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중국이 서구가 정한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현대화라는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서구의 경제질서에 자신을 통합함으로써 중국은 서구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고 있다.
따라서 경제와 규제 체제에 대한 서구의 지배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외부 세계의 영향은 대체로 중국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으나 이와 동시에 엄청난 와해 효과를 불러왔다. 중국은 여러 측면에서 국내경제 체제와 제도의 구조조정을 외국 기업과 외국의 법률 규제 기관에 아웃소싱했다. 그 결과 오늘날 중국 기업에게 글로벌 생산에 참여한다는 것은 외국의 규칙을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러한 중국 기업이 비록 제품을 조립하여 서구에 수출하기는 하지만 해당 제품의 가장 가치 있는 부품은 서구 선진국에서 들여온다. 가치로 따졌을 때 미국이 글로벌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이후 오히려 증가했다.
한편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은 중국 내에서 연구 개발 시설을 세우고 중국의 가장 뛰어난 과학자와 공학자들을 채용함으로써 중국의 인재들을 순수한 중국 국내의 혁신보다는 글로벌 혁신 노력에 활용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중국과 미국이 모두 이러한 상황에서 혜택을 보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중국에 가해지는 부담은 엄청나다.
중국은 미국 경제를 모델로 삼았는데,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사실상 사회 안전망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므로 이런 행보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이른바 월마트화Walmartization는 중국이 의도했다기보다 미국이 중국을 그렇게 변화시켰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웃소싱에서부터 에너지까지 스타인펠드는 풍부한 연구를 바탕으로 날카롭게 지적하여 일반의 통념을 무너뜨린다.
1990년대 초반에 일어난 심오한 변화, 생존의 결단
정치와 경제를 연동시켜서 중국을 관찰하라
이 책은 중국 전역을 휩쓴 지난 20년의 변화를 보다 자세히 이해시켜 준다. 특히 중국의 변화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눈부신 경제성장, 엄청난 외환 보유고는 기저에서 일어난 훨씬 심오한 변화를 외부에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이러한 근원적인 변화를 잘못 이해하거나 아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표면에 나타난 경제적인 성과마저 오해하기 쉽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중국의 세계적인 위상뿐만 아니라 미국이든 유럽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각자의 세계적인 위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기후 변화, 에너지 자원의 지속 가능성, 지정학적인 안보, 경제적 경쟁 등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중국 정부는 1978년 12월,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 모든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공식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은 이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톈안먼사건 직후의 몇 년 동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른 모든 혁명과 마찬가지로 정치, 사회, 경제의 변화가 모두 한데 뒤엉켜 일어났다. 저자 스타인펠드는 혁명의 범위와 폭은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심지어 1949년의 중국의 공산혁명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혁명들과도 맞먹을 만큼 넓고 깊었다고 관찰한다.
이 혁명은 세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경제적인 변화와 정치적인 변화가 맞물려 일어났다는 점이다. 중국의 개혁은 ‘경제적인 면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상투적인 인식이 지배적이다. 사실 이것만큼 틀린 말도 없다. 중국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지만,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중국에서 일어난 다른 모든 변화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두 번째, 이러한 정치경제적 변화를 주도한 것은 바로 세계화globalization였다. 중국이 세계경제에 뛰어들었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세계경제 자체가 전면적인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와 일치했다. 선진국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도 이러한 변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세계화는 사람들이 대부분 생각하는 그런 세계화가 아니다. 시장이 확대되고 경쟁 입지가 대등해지고 신흥 경제 국가가 출현하는 현상도 최근에 어느 정도 일어났지만 여기서 말하는 세계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단일 기업 내에서 치밀하게 계획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던 생산 단계를 여러 기업과 여러 국가에 분산하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새로운 글로벌 생산 구조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분업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철저한 계층구조와 통제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평평한” 세계가 아니라 적어도 상업적인 측면에서만큼은 전통적인 경제 강국에게 유리하도록 크게 기울어진 세계에 살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승했고, 그 결과 국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세 번째, 세계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중국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다시 쓰고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중국은 시대에 역행하는 정치적 이단아도 아니며, 자국의 역량을 이용해 다른 나라들을 희생시키면서 경제성장을 추진하지도 않았다. 또한 스스로의 구상대로 글로벌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경제 발전을 통해 국가의 힘을 키우려는 고전적인 의미의 중상주의를 추구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혁명은 특정한 유형의 국제적인 경제 질서를 적극 수용하여 국가가 처한 실존의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중국이 채택한 국제적인 경제 질서는 사상 최초의 진정한 글로벌 생산 체제이다. 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철두철미하게 세계적인 분업에 적극 참여했고, 그 결과 다른 어떤 나라보다 극적인 내부 변화를 겪었다.
기본적으로 오늘날의 중국은 스스로 규칙을 정해나가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의 선진 산업국들의 규칙을 수용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서구의 규칙에 따른 게임이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이 주도하여 규정하였고 서구의 모든 선진 산업국가가 다양한 형태로 실천해온 현대 자본주의를 뜻한다. 하지만 이것을 미국 제국주의가 거둔 또 한 차례의 승리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중국은 결코 백기를 들고 해외 지배자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상대의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겠다는 사회적인 선택을 했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발전 궤도, 나아가 서구 선진국들의 발전 궤도도 새롭게 정의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점은 중국의 이러한 변화가 중국뿐만 아니라 서구 선진국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세계적인 분업 생산 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경제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세계의 가장 부유한 국가들, 특히 미국은 기술 혁신을 추진하고 상업적인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중국이 제조업으로 특화하자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의 국가들과 일본은 훨씬 따라 하기 어려운 분야인 지식 산업과 신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한국 등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중국과 연관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협력과 대립, 독자 노선 등 어떠한 조치를 취하든지,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중국의 본질적인 특징은 무엇인지, 중국이 나아가는 방향은 어디인지, 중국은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한 가정을 기준으로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 가정이 정확해야 더욱 효과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중국 자체와 세계무대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어떻게 보면 서구 선진국과 선진국의 세계적인 위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경제를 아웃소싱하자 정치도 아웃소싱하게 된다
중국은 더이상 폐쇄전략을 쓸 수 없게 됐다
본론에서 저자는 중국이 세계화에 참가하게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대로 생생하게 구조적으로 묘사해준다. 여기서 세계화는 지구 끝 변경이라고 생각했던 지역을 포함하여 세계 전체가 일찍이 기업 내부에서만 운영되던 복잡한 생산 체계로 통합되는 세상을 말한다. 생산 과정을 분해하여 여러 기업과 지역으로 분산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경제 활동이 분산되었다고 해도 위계와 통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화된다.
중국은 우선 세계 경제에 합류한 이후 부랴부랴 국내에서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구색은 갖추게 된 셈이지만 이는 중국의 선택이었다기보다 글로벌 경제의 의도에 더욱 가까웠다.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아웃소싱이라는 현상을 바탕으로 중국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같이 발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의 제도를 아웃소싱했다. 즉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관리하고 형성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사회적 규칙을 정의하는 권한을 제3자에게 이양한 셈이다. 이러한 형태의 아웃소싱은 일자리나 생산 활동의 이전이 아니라 핵심적인 사회 제도를 규정하는 힘의 이동을 의미한다. 그 결과 사회 계층이 재편되었고 정부와 기업을 움직이는 엘리트의 유형도 변화했으며,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을 때 대응하는 방법의 선택 범위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초기 단계에서는 이러한 패턴이 신발, 섬유, 의류 등의 산업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최근에는 최첨단 설계와 공학 기술, 엄청난 수량의 부품, 빠른 제품 주기를 요구하는 고급 전자 제품의 제조와 정보기술(IT) 등 한층 복잡한 분야로까지 확대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연구 개발(R&D)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점점 더 많이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제약, 소프트웨어, IT와 같은 산업의 연구 개발 활동 자체가 전 세계를 기반으로 수행되며, 여러 업무가 포괄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다양한 지역에 분산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무역 제도에서 새로운 무역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스스로 제정한 고유의 제도적 장치, 즉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사이에서 제3의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중국은 협상을 통해 WTO에서 정한 국제적인 표준을 순순히 받아들여 자신의 새로운 체제를 정의했다. 동시에 당시의 주룽지 총리는 WTO 가입 협약을 국가의 관료주의를 축소하고 개혁에 대한 고위 간부들의 저항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적어도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첫 번째, 생산 과정의 세부 부문이 분리되자 미시적인 제도 변화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재산법이나 계약법과 같은 영역은 아직은 전혀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생산자들이 글로벌 공급 사슬에 통합되면서 매우 실질적인 변화가 현장에서 일어났다. 사실 새로운 생산 체제가 순조롭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했다. 노동시장, 주택 시장, 의료 서비스 제공 방식, 훈련 및 교육 체계가 모두 변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생산의 새로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모든 변화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꺼번에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기업 수준에서는 글로벌 생산 체제와의 연계를 위한 분명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시간이 지나고 중국 산업에서 글로벌 지향 부문이 성장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중국의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짐에 따라 국가적인 차원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글로벌 생산 부문을 더욱 발전시키고 다른 국가에게 생산 활동의 아웃소싱 몫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다양한 거시적인 제도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에는 보다 명확한 규제 체계, 국제 표준에 부합하는 규제, 지적소유권 제도의 엄격한 적용, 유연한 노동시장으로의 개선 등이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의 여러 다른 부문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지지하는 폭넓은 사회 계층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도 제도 정비를 예전처럼 권력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정부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통화와 외환을 관리하는 주도권을 외부인에게 넘긴 것은 한층 미묘한 변화였지만 마찬가지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중국 경제가 수출업체들과 해외 공급 사슬 관리업체들에게 점점 크게 의존하게 되자 중국 정부는 더 이상 무역과 외환 허가증을 발급하는 사회주의적인 “이중 폐쇄(double airlock)” 제도로 화폐의 흐름을 통제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외환 평가 방식과 현재의 위안화 환율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지금 중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통화관리 체제가 분명히 표준 자본주의 방식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환율 관리가 정책적인 측면에서 최적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수많은 중국의 학자와 관료들, 특히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의 관리들은 현재의 통화관리 체제가 완전한 외환 자유화를 위한 중간 단계가 아니며, 그렇게 보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고정환율제도가 최근 여러 번에 걸쳐 적합한 시장 관리 방식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본문 63쪽)
해외의 엘리트들이 중국에 귀향하는 이유
“주식상장이 대형 국가기업을 훈련시켰다”
오래전에 중국을 떠나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몇 년 동안 이들을 변절자로 취급했고, 직업상의 이유로 귀국하려는 경우에도 온갖 방해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제도의 아웃소싱은 이 같은 현실을 모두 바꿔놓았다. 이제는 과거에 변절자 취급을 받았던 해외파 중국인들이 새로운 국제 관행에 중국이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관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제 이들의 유입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귀국을 적극 장려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아웃소싱의 경우 일부에서 중국 경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국가의 대표 기업인 국영기업에게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기서 국가대표 기업이란 주로 금융, 에너지, 자동차, 철강 등 국가가 지배하고 있는 핵심 기간산업의 대표적 기업을 뜻한다. 그렇지만 국가 대표 기업들 역시 제도의 아웃소싱 현상과 무관할 수는 없었다. 사실 핵심 기업들과 관련된 아웃소싱은 앞에서 설명한 여러 아웃소싱보다 훨씬 극적인 정치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그것은 바로 주식상장이었다. 국가대표급 기업들의 글로벌 주식상장이 이뤄진 뒤, 상장 기업의 운영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양상을 띠게 되자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더 이상 효과적인 감독을 할 수 없었다. 복잡한 국제 거래를 이해할 만한 기술과 지식을 보유한 관료라면 벌써 직업을 바꿔 해외 상장 기업의 경영진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처음에 제도의 아웃소싱은 경제 분야를 대상으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중국식 사회주의의 정치적인 기반을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했다. 일당독재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히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의 본질, 국민과의 관계, 정당성의 원천이 모두 근본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분명히 실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국가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20년간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중국 정부는 정치적인 원칙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왔다. 법의 지배라는 의제를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사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암묵적으로 용인할 것인가? 주요 국영기업과 은행을 외국의 영향력에 노출시킬 것인가 아니면 엄격한 정부의 통제 하에 그대로 둘 것인가? 시민단체를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탄압할 것인가? 기득권층에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공공연하게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전문가를 유입시킬 것인가 아니면 배제할 것인가? 이런 모든 문제에서 중국 지도부는 진보의 길을 선택했다.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주사위를 던지고 끊임없이 판돈을 올렸다.”
(본문 87~88쪽)
저자는 묻는다. 오늘날 중국과 세계경제를 바라볼 때 무역을 중심으로 보지 말고, 보다 정확한 생산 지향적인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어 있는 독특한 나라라는 전제 자체를 버리고 오늘날 중국의 정치와 경제는 서로 결합되어 유기적인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세계화의 중심지로서의 중국” “자본주의를 촉진하는 중국” “제도의 아웃소싱을 추진하는 중국” “판돈을 두 배로 올리는 국가로서의 중국” “스스로 쇠퇴하기를 선택한 독재주의 국가 중국”을 말이다. 중국의 공산당과 정부는 시대를 풍미한 다른 독재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유지한다는 목표를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정부가 권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지도층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정확히 어떤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으며, 그 이해관계가 시간이 지남에 어떻게 변해가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 정부, 보다 폭넓게 보아 중국 공산당은 한때 결단코 반대했던 제도, 개념, 인재를 수용했다. 이는 아마도 순수하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였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학자인 벤저민 슈워츠는 과거 중국의 개혁 시대(19세기 말 청나라의 개혁)를 설명하면서 당시 중국의 개혁은 단순히 요새의 바깥쪽 벽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부 성역의 문이 활짝 열린 것에 가깝다고 비유한 바 있다. 요새는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게 서있었지만 그 안에 누구를 포용하고 누구를 배척해야 하는지 경계 자체가 모호해졌다는 의미이다. 중국 정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구와의 제도적인 조화를 통해 성장을 추구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성과 이해관계가 변했다. 더 중요한 것은 현대화라는 목표를 이루겠다는 다짐을 통해 정부의 권력을 정당화함으로써 자신의 자연스러운 종착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이 책은 중국을 테마로 삼고 있는 듯하지만, 결국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라는 큰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덧붙여 IBM이 노트북 브랜드인 ‘씽크패드’를 중국 기업인 레노보에게 넘긴 과정과 그 안에 담근 세계시장의 큰 판도변화, R&D를 통해 넷북과 같은 신제품의 탄생 배경을 진단하는 것, 크눅CNOOC(중국해양석유총공사)이라는 덩치 큰 국영기업이 어떻게 국제와, 제도의 아웃소싱으로 거듭 태어나는가를 세밀히 묘사하는 점 등은 특히 눈길을 끈다.
목차
제1장 조용한 혁명
1889~2009: 20년이라는 세월, 비약적 약진/ 전체주의의 몰락/ 혁명을 넘어서: 전체주의가 붕괴한 후의 중국/ 마오이즘에서 레이거니즘으로/ 정치적인 삶: 포로에서 시민으로/ 변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제2장 새로운 체제를 향해: 아웃소싱의 천국
세계화 이해하기/ 제도의 아웃소싱/ 국내산업의 구조조정을 외국에 맡기다/ 국제 규칙을 통째로 수입하다/ '국가대표 기업'의 지배구조를 들여오다/ 정치마저 아웃소싱/ 중국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제3장 현대화를 위한 질주
시장 개혁: 실험적인 치료법에서 국가 구제책으로/ 1989~1999: 충격의 10년/ 충격에 대한 대응: 공산당 노선, 정책, 사회 담론의 변화/ 역사의 선례들: 과거와 현재
제4장 두 개의 중국: 부상하는 산업 강국vs자본주의의 '바지 사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중국의 성공 신화/ 중국에 대한 서구의 시각이나 추정/ 제조업의 신비로움/ 의혹의 그림자: 중국의 발전에 대한 네 가지 혼란/ 글로벌 생산의 변화하는 구조/ 모듈화된 생산의 효과-장면1: 진입 장벽이 무너지다/ 미소 곡선/ 모듈화된 생산의 효과-장면2: 중국 내 외국 자본 제조업체들의 기술 발전/ 모듈화된 생산의 효과- 장면3: 중국 생산업체들의 '상향 보편화'/ 모듈화된 생산의 효과- 장면4: 선진국의 모듈화 혁신/ 결론: 중국과 모듈화 혁명
제5장 자본주의의 촉진자와 수립자
구조조정의 칼을 외국인 소유주들에게/ 사회주의의 종식과 혁명의 지속/ 외국의 '법률 적용' 관행 도입/ 미국 노사관계 관리 기법 도입/ 외국환 거래: 선진국의 거시경제 관리 기법 도입
제6장 이기기 위한 게임" 중국의 첨단기술 진출
'긍정론자'vs'회의론자'/ 연구개발 활동의 세계화/ 연구개발의 포괄적인 정의/ 제품 현지화를 위한 연구개발/ 새로운 제품 플랫폼을 창안하기 위한 연구개발/ 근본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기 위한 연구개발/ 오늘날 글로벌 연구개발 분야에서 벌어지는 게임
제7장 에너지 국가의 통제를 위한 최후의 보루?
배경: 크눅의 회사화와 상장/ 해외 주식시장 상장의 어려움: 중국인 경영자의 관점/ 해외에 상장된 기업의 경영자들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 유노컬 인수 시도/ 구애자 사이의 결투: 인수경쟁 진행 과정/ 크눅 입찰 과정의 지연/ 결론
제8장 스스로 퇴화해가는 독재주의
주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