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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6549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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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금 가장 핫한 바로 그 음식,
‘평양냉면’을 위한 최초의 본격 가이드북
지난 4월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만찬 자리에 평양 옥류관의 냉면이 오르면서 평양냉면은 폭발적인 관심의 한가운데 섰다. 평양냉면의 인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평뽕(평양냉면의 중독성을 빗댄 표현)’, ‘평부심(평양냉면 자부심)’ 등의 각종 신조어를 낳을 만큼 평양냉면은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20~30대 젊은 층을 포함한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미식의 지표로 자리매김했다. 이뿐 아니라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식초, 겨자, 다대기는 넣지 말아야 한다’, ‘면을 가위로 잘라서는 안 된다’ 등 마치 의식을 치르듯 ‘평냉’을 떠받드는 태도를 낳기까지 했다. 다른 한편 ‘밍밍한 음식’이라는 혹평이 존재할 정도로 평양냉면은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음식이다. 또한 일반 가정에서 요리해 먹을 수 없는 난이도 높은 음식이자 평균 한 그릇 가격이 1만 원이 넘는 고급 한식으로 자리 잡았고, 비교적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도 많은 편이다. 한마디로 말 많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음식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이 책은 이처럼 높은 관심과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평양냉면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음식 비평서이다. 사실 간단한 온라인 검색으로도 접할 수 있는 평양냉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난다. 게다가 거의 모든 음식점이 ‘맛집’이라 광고되는 맛집 과잉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평양냉면만큼 고유한 완성도나 나름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갖추고 있는 음식이라면 정보의 단순 나열과 조합이 아닌, 체계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분석과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더불어 (옥류관의 냉면이 재점화한 바 있는) ‘진짜’ 평양냉면을 둘러싼 실체 없는 갑론을박에서 벗어나, 현재 우리가 즐겨 소비하고 있는 동시대 평양냉면의 양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격 평양냉면 가이드북이라 할 만한 책을 읽고, 냉면을 먹고, 이야기 나누기에 더없이 시기적절한 때가 또한 바로 지금이다.
제대로 알고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미각의 원리로 그려내는 동시대 평양냉면 맛 지도
2017년 한 매체에서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기도 한 음식 비평가 이용재는 한식에서 평양냉면이 갖는 특이성과 비평적 가치를 인지하고 오랫동안 평양냉면을 다뤄왔다. 홈페이지나 잡지 기고를 통해 꾸준히 평양냉면 전문점 리뷰를 써왔고, 전작 『한식의 품격』에서는 평양냉면을 ‘한식의 거울’로 규정해 분석함으로써 한식을 위한 맛의 과학을 논하기도 했다. 이번 책은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서울?경기 지역의 본격적인 평양냉면 서른한 곳을 리뷰하며, 동시대 평양냉면의 맛 지도를 그려낸다. 요컨대 예외적인 한식 담론을 펼쳐온 저자가 예외적인 입지를 점하고 있는 평양냉면을 단독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개별 평양냉면이 내는 ‘맛’에 집중한다. 면, 국물, 고명, 반찬 등 냉면 한 그릇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메밀이 함유된 면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고소한 맛, 뜨거운 고기 국물처럼 진하게 끓일 수 없어 더 어려운 냉면 국물이 이루는 짠맛과 감칠맛의 균형, 고명으로 올라간 각종 채소와 고기의 질감, 그리고 식당의 접객 수준과 환경까지 꼼꼼히 음미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슴슴한 국물’, ‘툭툭 끊어지는 면발’과 같이 평양냉면에 대해 흔히 유통되는 표현으로 맛을 묘사하지 않는다. 나아가 흔히 슴슴하고 밍밍하다고 일컬어지는 맛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평양냉면의 정체성 또는 미덕이라고 통용되는 공식이나 관념이 맛의 기준에서 과연 최선인지 재고한다. 이를 테면 특정 계열의 냉면에 들어가는 고춧가루가 하나의 전통이자 감정적인 요소 이상으로 맛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지, 습관처럼 올라가는 삶은 달걀이 평양냉면의 세심하고 미묘한 면과 국물에 어울리는 고명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는 냉면의 현대화와 체계화를 위한 비판적 문제의식으로서 더없이 값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능수능란하게 피어나는 메밀 면의 까슬함”, “아슬아슬한 감칠맛”, “공업의 맛”, “최선을 다한 모사”처럼 귀와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의 언어를 읽다 보면 (평가 결과가 비록 부정적일 때에도) 시원한 냉면 한 사발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다시 말해 평양냉면의 세계를 실제로 깊이 있게 탐방해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은 실용적인 가이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낸다. 기본적인 식당 정보뿐 아니라 면, 국물, 고명?반찬, 접객?환경, 총평이라는 다섯 개 항목으로 구성된 평가 표를 담아내 각 평양냉면의 장단점과 특징을 한눈에 파악하고, 서로 다른 냉면을 보다 용이하게 비교해볼 수 있다. 사발 개수로 표현한 별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흥미 요소다. 이와 함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식당들의 위치를 정리한 ‘평양냉면 맛 지도’와 ‘리뷰 노트’를 수록해 직접 평양냉면 순례를 하고, 정교한 맛보기를 시도해보도록 북돋고 있다.
■ 면:
우래옥의 장점은 무엇보다 완성도의 일관성이다. 한여름 점심시간, 로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손님이 잔뜩 밀린 상황에서도 냉면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냉면, 즉 차가운 국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늘함에서 오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똬리를 튼 면에 속속들이 서려 있다. 이 면을 젓가락으로 국물에 풀어내는 순간, 청량감이 국물로 퍼지며 한 그릇의 냉면이 비로소 완성된다. 서늘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온도 위로 능수능란하게 피어나는 메밀 면의 까슬함이 돋보인다. (23쪽)
국물에 비해 면은 미묘하도록 나긋나긋해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압출, 즉 틀에 반죽을 넣고 뜨거운 물 위에 짜내는 방식으로 순간을 잘 포착했다. 가늘지만 힘이 아주 없지는 않아 적어도 한 대접을 다 비울 때까지는 버텨주는 데다가 미세하게 돋아 있는 꺼끌꺼끌함이 지루함도 막아준다. (60쪽)
■ 국물:
이론과 논리로 쌓은 맛이 있고 세월과 경험으로 쌓은 맛이 있는데, 이 국물은 후자의 완성형 같은 느낌을 준다. 조금 과장을 보태 흑마술이나 연금술이 개입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균형을 거의 완벽하게 이룬 가운데 맑음과 감칠맛의 대비가 극적으로 두드러진다. 대체로 국물이 맑다면 감칠맛이 강할수록 조미료의 거칠음roughness도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런 자취가 전혀 없다. 서늘함과 차가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다른 평양냉면 전문점보다 약간 차다 싶은 온도도 깔끔함에 한몫 보탠다. 이 모두를 감안하면 뒷맛도 깔끔하다. 가쓰오부시가 대표하는 일본식의 ‘맑지만 감칠맛의 켜가 뚜렷한 국물’에 대응하는 한국 대표로 손색이 없다. (27쪽)
국물은 짠맛 위주에 감칠맛이 아슬아슬하게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먹고 난 뒤의 꺼끌꺼끌한 여운이 좀 오래가는 편이지만 간신히 불쾌하지 않은 선에서 멈춘다. 한편 면도 살짝 질척거린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지만 의정부 계열처럼 질기지 않고, 굵기도 적당히 유쾌하다. (50쪽)
묵직하다면 묵직할 고기 국물의 균형을 동치미 국물로 절묘하게 잡았다. 두 켜가 각각 따로 흐르는 것 같다가도 머금고 또 삼키다 보면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표정이 뚜렷하고 중심이 잘 잡혀 있으니, 양념 갈비 등의 직화 구이나 딸려 나오는 여러 반찬, 특히 매운맛에도 크게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다. 면은 가닥가닥의 존재감이 까슬하니 뚜렷하면서도 한데 모여 든든함을 구축한다.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밥 같은 냉면’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53쪽)
단순히 고기 국물의 대체라고 폄하하기에 동치미 국물은 나름의 확실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고기 국물에 딱히 뒤지지 않는 자신만의 확실한 켜와 두께를 발효의 감칠맛으로 확보했을 뿐 아니라 시원함마저 갖추고 있다. 게다가 그 자체로 완결된 간을 갖추고 있으니 흔히 전해 내려오는 ‘진짜’ 평양냉면의 추억(‘긴 겨울밤에 야식으로 차가운 국물에 말아 뜨끈한 아랫목에서 먹었다. 그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경험 때문에 겨울 냉면이 참맛이다.’)은 물론, 메밀 특유의 고소함과 더 잘 공명하는 바탕일 수 있다. 또한 고기 국물과 ‘블렌딩’할 경우 결이 다른 감칠맛을 공유하는 한편, 켜와 두께를 상호 보완하고 시원함으로 마무리해줌으로써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79쪽)
긍정적인 의미에서 ‘솔직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뒷맛도 매우 깔끔하다. 마늘 같은 오신채부터 과도한 고춧가루나 화학조미료 탓에 한식의 뒷맛은 대체로 텁텁하거나 불쾌하다. 평양냉면도 텁텁함에서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평양옥의 냉면 국물은 드문 예외이다. 보란 듯 제분기를 내놓고 뽑는 메밀 100퍼센트의 ‘순면’도 국물이 깔아놓은 솔직함의 멍석 위에서 고소함과 신선함을 또렷하게 발산한다. (126쪽)
■ 고명 및 반찬:
면의 질감을 감안하면 좀 더 얇아도 좋을 쇠고기는 큰 의미가 없고, 짭짤하게 절인 오이가 의외의 ‘깜짝 스타’이다. 면의 선명함과 딱딱함, 퍼지는 듯한 국물의 감칠맛 사이에서 아주 강한 짠맛과 오돌오돌한 질감으로 균형을 잡아주면서 방점을 찍는다. 녹태가 낀 듯 노른자의 표면이 변색되고 흰자의 살점이 군데군데 뜯어진 삶은 계란과, 마늘 맛으로 되레 냉면을 방해하는 두 가지 김치(무와 열무)까지 그럭저럭 막아주니 이 절인 오이가 정인면옥 냉면의 숨은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90쪽)
능라도도 그렇게 삶은 계란을 올렸었다. 변화가 반갑다. 계란을 감안하더라도 좋은 냉면이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짠맛을 중심으로 감칠맛이 비교적 산뜻한 국물도 좋지만, 굵으면서도 부드러운 면발이 능라도의 냉면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다. 다만 그런 면과 비교하면 얇게 부쳐 가늘게 채친 계란 지단의 존재감이 특히 질감 측면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썰어 넣은 파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으니 빠졌으면 좋겠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오이와 무 모두 맛과 질감 양쪽에서 정확하게 만족스러운 한 그릇의 경험을 위해 면과 국물을 보좌한다. (93쪽)
원래 로스옥의 고기는 얇게 저민 냉동 소 등심이었다. 모든 식재료에 걸쳐 생‘ ’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고기는 냉동으로 인한 품질의 열화가 적다. 게다가 한식 직화 구이처럼 얇게 저며 불에 올릴 경우 재료의 낮은 온도가 일정 수준 과조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효과도 갖는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 얇고 뜨겁게 구운, 불맛을 품은 고기가 냉면의 또 다른 고명으로 기능할 때 온도의 강한 대조를 앞세워 강한 상승 작용을 낳을 수 있다. 평양냉면 순수론자라면 치를 떨지도 모르지만 의외의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로스옥의 조합이었다. (100~101쪽)
■ 맛의 현대화 및 체계화:
핵심은 ‘현대화’이다. 냉면을 시키면 맛보기로 내오는 제육이 실마리를 준다. 우리와 달리 서양에서는 베이컨으로나 소비되던 삼겹살을 주요리용 부위로 재발견시켜준 저온조리를 거쳤다. 덕분에 비계의 켜가 매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살코기가 뻣뻣하거나 부스러지지 않는다. (53쪽)
현대화의 손길은 면에서 가장 돋보이는데, 열쇠는 소금이다. 모든 음식과 맛의 기본이자 핵심인 소금이 신기하게도 평양냉면의 면에서는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소면부터 파스타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세계의 면에는 반죽에든 삶는 물에든 소금이 반드시 개입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신기할 정도다. 광화문국밥에서는 면의 반죽에 소금을 쓸 뿐만 아니라 삶는 물에도 간을 해 면과 물, 두 체계의 염분에 일정 수준 균형을 잡아준다. 그 결과 꼬들거리는 동시에 부드러운 질감의 형용모순적 가치를 구현한다. (139쪽)
‘논현동 평양냉면과 비교해보니 열등하다’는 평가로 결론지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어떤 의사 결정 과정이 정확히 이런 맛으로 귀결되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런 인상을 받고 약 2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똑같은 인상이었다.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원래는 정확한 복제를 목표로 삼았지만 기록된 자료로 전수되지 않은 요인이 영향을 미쳐 이런 맛이 나온 걸까? 20년 상당의 경력으로는 같은 계보에 속할 수 있지만 족보에 이름을 새길 수는 없다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냉면을 만드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112쪽)
■ 전통 또는 미덕에 대한 재고:
하나의 전통 혹은 감정적인 맛의 요소로 존중할 수는 있지만 객관적인 맛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용성인 고추나 고춧가루의 맛과 향이 찬 국물에는 잘 우러나지 않기도 하거니와, 이와 무관하게 감칠맛이 깔끔하게 두드러지는 국물의 끝에 따끔하고 까끌까끌한 여운을 남긴다. 같은 맥락에서 파도 다소 거추장스럽다. 곱게 썰어 얹은 파의 향은 보탬이 되지만 끝에 남는 쓴맛이 아무래도 거슬린다. 고춧가루와 파가 만나는 지점이 국물의 차원에서 옥의 티로 남는다. (28쪽)
‘슴슴함’은 진정 평양냉면의 미덕일까. 이를 헤아려보려면 몇 단계를 되짚어 올라가야 한다. 평양냉면의 국물은 맑고 차가워야 하니 진한 고기 국물을 쓸 수 없다. 또한 짠맛으로만 균형을 맞추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감칠맛을 소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짠맛과 감칠맛의 균형이 슴슴함의 핵심이다. 짠맛이 치고 나온다는 느낌은 주지 않아야 하지만 그만큼 감칠맛이 두툼함을 불어 넣어줘야 만족스러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웬만하면 화학조미료에게 SOS를 쳐야 한다. 실제로 냉면의 발전이 1930년대 일본발 화학조미료에게 빚졌다는, 굉장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다. (31쪽)
굳이 면이 ‘툭툭’ 끊어져야만 할까? 단언할 수 없다. 연하다고 무조건 좋은 면도, 질기다고 무조건 나쁜 면도 아니다. 다만 면의 물성은 평양냉면의 울타리를 넘어서 고민해볼 사안이다. 어떤 질감 혹은 물성의 면이 국물과 더 잘 어우러질까? 단단하기보다 연한 게, 쫄깃하기보다 부드러운 게 더 잘 섞여 넘어간다. 탄력은 품어도 최종적인 저항은 하지 않고 끊어지는 일반적인 밀가루 면의 질감도 헤아려볼 일이지만, 메밀이 글루텐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도 면의 재료로서 자기 영역을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힘없음’이다. 따라서 국물에 딸린 면이라면 재료 불문, 저항은 없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71쪽)
한식에서 작지만 의외의 위력으로 음식 전체의 경험을 망칠 수 있는 요소와 맞닥뜨릴 때마다 ‘여백의 미’에 대해서 곱씹어본다. 채움만큼이나 비움도 전체의 균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가르침이겠으나 현재의 한국 문화, 특히 음식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애초에 온갖 재료를 더하고 끓여 맛을 우려내는 것이 국물일 텐데, 그 재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런 요소를 습관적으로 더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게도 의심을 사지 않은 채 세월을 거치면서 전통인 양 굳어버린다. (65쪽)
현대화와 산업화의 태동기에는 스테인리스 주발이 가볍고 시원할뿐더러 튼튼해 배달에 제격이었지만,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특유의 비린내가 차가운 음식, 특히 평양냉면의 고기 바탕 국물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주발의 가장자리가 입과 혀에 닿는 촉감도 나쁘다. 게다가 매년 여름이면 ‘비싼 한식’의 대표 주자로 매체에서 얻어맞는 평양냉면 아닌가. 평양냉면을 서민 음식이라 보기 어렵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지만 평양냉면의 이미지가 일종의 괴리를 품고 있으며, 그 중심에 스테인리스 주발이 있다는 사실은 곱씹어봐야 한다. (49쪽)
‘평양냉면’을 위한 최초의 본격 가이드북
지난 4월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만찬 자리에 평양 옥류관의 냉면이 오르면서 평양냉면은 폭발적인 관심의 한가운데 섰다. 평양냉면의 인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평뽕(평양냉면의 중독성을 빗댄 표현)’, ‘평부심(평양냉면 자부심)’ 등의 각종 신조어를 낳을 만큼 평양냉면은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20~30대 젊은 층을 포함한 마니아층을 형성했고 미식의 지표로 자리매김했다. 이뿐 아니라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식초, 겨자, 다대기는 넣지 말아야 한다’, ‘면을 가위로 잘라서는 안 된다’ 등 마치 의식을 치르듯 ‘평냉’을 떠받드는 태도를 낳기까지 했다. 다른 한편 ‘밍밍한 음식’이라는 혹평이 존재할 정도로 평양냉면은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음식이다. 또한 일반 가정에서 요리해 먹을 수 없는 난이도 높은 음식이자 평균 한 그릇 가격이 1만 원이 넘는 고급 한식으로 자리 잡았고, 비교적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도 많은 편이다. 한마디로 말 많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음식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이 책은 이처럼 높은 관심과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평양냉면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음식 비평서이다. 사실 간단한 온라인 검색으로도 접할 수 있는 평양냉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난다. 게다가 거의 모든 음식점이 ‘맛집’이라 광고되는 맛집 과잉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평양냉면만큼 고유한 완성도나 나름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을 갖추고 있는 음식이라면 정보의 단순 나열과 조합이 아닌, 체계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분석과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더불어 (옥류관의 냉면이 재점화한 바 있는) ‘진짜’ 평양냉면을 둘러싼 실체 없는 갑론을박에서 벗어나, 현재 우리가 즐겨 소비하고 있는 동시대 평양냉면의 양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격 평양냉면 가이드북이라 할 만한 책을 읽고, 냉면을 먹고, 이야기 나누기에 더없이 시기적절한 때가 또한 바로 지금이다.
제대로 알고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미각의 원리로 그려내는 동시대 평양냉면 맛 지도
2017년 한 매체에서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기도 한 음식 비평가 이용재는 한식에서 평양냉면이 갖는 특이성과 비평적 가치를 인지하고 오랫동안 평양냉면을 다뤄왔다. 홈페이지나 잡지 기고를 통해 꾸준히 평양냉면 전문점 리뷰를 써왔고, 전작 『한식의 품격』에서는 평양냉면을 ‘한식의 거울’로 규정해 분석함으로써 한식을 위한 맛의 과학을 논하기도 했다. 이번 책은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서울?경기 지역의 본격적인 평양냉면 서른한 곳을 리뷰하며, 동시대 평양냉면의 맛 지도를 그려낸다. 요컨대 예외적인 한식 담론을 펼쳐온 저자가 예외적인 입지를 점하고 있는 평양냉면을 단독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개별 평양냉면이 내는 ‘맛’에 집중한다. 면, 국물, 고명, 반찬 등 냉면 한 그릇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메밀이 함유된 면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고소한 맛, 뜨거운 고기 국물처럼 진하게 끓일 수 없어 더 어려운 냉면 국물이 이루는 짠맛과 감칠맛의 균형, 고명으로 올라간 각종 채소와 고기의 질감, 그리고 식당의 접객 수준과 환경까지 꼼꼼히 음미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슴슴한 국물’, ‘툭툭 끊어지는 면발’과 같이 평양냉면에 대해 흔히 유통되는 표현으로 맛을 묘사하지 않는다. 나아가 흔히 슴슴하고 밍밍하다고 일컬어지는 맛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평양냉면의 정체성 또는 미덕이라고 통용되는 공식이나 관념이 맛의 기준에서 과연 최선인지 재고한다. 이를 테면 특정 계열의 냉면에 들어가는 고춧가루가 하나의 전통이자 감정적인 요소 이상으로 맛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지, 습관처럼 올라가는 삶은 달걀이 평양냉면의 세심하고 미묘한 면과 국물에 어울리는 고명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는 냉면의 현대화와 체계화를 위한 비판적 문제의식으로서 더없이 값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능수능란하게 피어나는 메밀 면의 까슬함”, “아슬아슬한 감칠맛”, “공업의 맛”, “최선을 다한 모사”처럼 귀와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의 언어를 읽다 보면 (평가 결과가 비록 부정적일 때에도) 시원한 냉면 한 사발이 간절해진다. 그럴 때를 대비하여, 다시 말해 평양냉면의 세계를 실제로 깊이 있게 탐방해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은 실용적인 가이드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낸다. 기본적인 식당 정보뿐 아니라 면, 국물, 고명?반찬, 접객?환경, 총평이라는 다섯 개 항목으로 구성된 평가 표를 담아내 각 평양냉면의 장단점과 특징을 한눈에 파악하고, 서로 다른 냉면을 보다 용이하게 비교해볼 수 있다. 사발 개수로 표현한 별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흥미 요소다. 이와 함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식당들의 위치를 정리한 ‘평양냉면 맛 지도’와 ‘리뷰 노트’를 수록해 직접 평양냉면 순례를 하고, 정교한 맛보기를 시도해보도록 북돋고 있다.
■ 면:
우래옥의 장점은 무엇보다 완성도의 일관성이다. 한여름 점심시간, 로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손님이 잔뜩 밀린 상황에서도 냉면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냉면, 즉 차가운 국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늘함에서 오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똬리를 튼 면에 속속들이 서려 있다. 이 면을 젓가락으로 국물에 풀어내는 순간, 청량감이 국물로 퍼지며 한 그릇의 냉면이 비로소 완성된다. 서늘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온도 위로 능수능란하게 피어나는 메밀 면의 까슬함이 돋보인다. (23쪽)
국물에 비해 면은 미묘하도록 나긋나긋해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압출, 즉 틀에 반죽을 넣고 뜨거운 물 위에 짜내는 방식으로 순간을 잘 포착했다. 가늘지만 힘이 아주 없지는 않아 적어도 한 대접을 다 비울 때까지는 버텨주는 데다가 미세하게 돋아 있는 꺼끌꺼끌함이 지루함도 막아준다. (60쪽)
■ 국물:
이론과 논리로 쌓은 맛이 있고 세월과 경험으로 쌓은 맛이 있는데, 이 국물은 후자의 완성형 같은 느낌을 준다. 조금 과장을 보태 흑마술이나 연금술이 개입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균형을 거의 완벽하게 이룬 가운데 맑음과 감칠맛의 대비가 극적으로 두드러진다. 대체로 국물이 맑다면 감칠맛이 강할수록 조미료의 거칠음roughness도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런 자취가 전혀 없다. 서늘함과 차가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다른 평양냉면 전문점보다 약간 차다 싶은 온도도 깔끔함에 한몫 보탠다. 이 모두를 감안하면 뒷맛도 깔끔하다. 가쓰오부시가 대표하는 일본식의 ‘맑지만 감칠맛의 켜가 뚜렷한 국물’에 대응하는 한국 대표로 손색이 없다. (27쪽)
국물은 짠맛 위주에 감칠맛이 아슬아슬하게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먹고 난 뒤의 꺼끌꺼끌한 여운이 좀 오래가는 편이지만 간신히 불쾌하지 않은 선에서 멈춘다. 한편 면도 살짝 질척거린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지만 의정부 계열처럼 질기지 않고, 굵기도 적당히 유쾌하다. (50쪽)
묵직하다면 묵직할 고기 국물의 균형을 동치미 국물로 절묘하게 잡았다. 두 켜가 각각 따로 흐르는 것 같다가도 머금고 또 삼키다 보면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표정이 뚜렷하고 중심이 잘 잡혀 있으니, 양념 갈비 등의 직화 구이나 딸려 나오는 여러 반찬, 특히 매운맛에도 크게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다. 면은 가닥가닥의 존재감이 까슬하니 뚜렷하면서도 한데 모여 든든함을 구축한다.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밥 같은 냉면’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53쪽)
단순히 고기 국물의 대체라고 폄하하기에 동치미 국물은 나름의 확실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고기 국물에 딱히 뒤지지 않는 자신만의 확실한 켜와 두께를 발효의 감칠맛으로 확보했을 뿐 아니라 시원함마저 갖추고 있다. 게다가 그 자체로 완결된 간을 갖추고 있으니 흔히 전해 내려오는 ‘진짜’ 평양냉면의 추억(‘긴 겨울밤에 야식으로 차가운 국물에 말아 뜨끈한 아랫목에서 먹었다. 그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경험 때문에 겨울 냉면이 참맛이다.’)은 물론, 메밀 특유의 고소함과 더 잘 공명하는 바탕일 수 있다. 또한 고기 국물과 ‘블렌딩’할 경우 결이 다른 감칠맛을 공유하는 한편, 켜와 두께를 상호 보완하고 시원함으로 마무리해줌으로써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79쪽)
긍정적인 의미에서 ‘솔직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뒷맛도 매우 깔끔하다. 마늘 같은 오신채부터 과도한 고춧가루나 화학조미료 탓에 한식의 뒷맛은 대체로 텁텁하거나 불쾌하다. 평양냉면도 텁텁함에서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평양옥의 냉면 국물은 드문 예외이다. 보란 듯 제분기를 내놓고 뽑는 메밀 100퍼센트의 ‘순면’도 국물이 깔아놓은 솔직함의 멍석 위에서 고소함과 신선함을 또렷하게 발산한다. (126쪽)
■ 고명 및 반찬:
면의 질감을 감안하면 좀 더 얇아도 좋을 쇠고기는 큰 의미가 없고, 짭짤하게 절인 오이가 의외의 ‘깜짝 스타’이다. 면의 선명함과 딱딱함, 퍼지는 듯한 국물의 감칠맛 사이에서 아주 강한 짠맛과 오돌오돌한 질감으로 균형을 잡아주면서 방점을 찍는다. 녹태가 낀 듯 노른자의 표면이 변색되고 흰자의 살점이 군데군데 뜯어진 삶은 계란과, 마늘 맛으로 되레 냉면을 방해하는 두 가지 김치(무와 열무)까지 그럭저럭 막아주니 이 절인 오이가 정인면옥 냉면의 숨은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90쪽)
능라도도 그렇게 삶은 계란을 올렸었다. 변화가 반갑다. 계란을 감안하더라도 좋은 냉면이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짠맛을 중심으로 감칠맛이 비교적 산뜻한 국물도 좋지만, 굵으면서도 부드러운 면발이 능라도의 냉면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다. 다만 그런 면과 비교하면 얇게 부쳐 가늘게 채친 계란 지단의 존재감이 특히 질감 측면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썰어 넣은 파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으니 빠졌으면 좋겠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오이와 무 모두 맛과 질감 양쪽에서 정확하게 만족스러운 한 그릇의 경험을 위해 면과 국물을 보좌한다. (93쪽)
원래 로스옥의 고기는 얇게 저민 냉동 소 등심이었다. 모든 식재료에 걸쳐 생‘ ’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고기는 냉동으로 인한 품질의 열화가 적다. 게다가 한식 직화 구이처럼 얇게 저며 불에 올릴 경우 재료의 낮은 온도가 일정 수준 과조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효과도 갖는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 얇고 뜨겁게 구운, 불맛을 품은 고기가 냉면의 또 다른 고명으로 기능할 때 온도의 강한 대조를 앞세워 강한 상승 작용을 낳을 수 있다. 평양냉면 순수론자라면 치를 떨지도 모르지만 의외의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로스옥의 조합이었다. (100~101쪽)
■ 맛의 현대화 및 체계화:
핵심은 ‘현대화’이다. 냉면을 시키면 맛보기로 내오는 제육이 실마리를 준다. 우리와 달리 서양에서는 베이컨으로나 소비되던 삼겹살을 주요리용 부위로 재발견시켜준 저온조리를 거쳤다. 덕분에 비계의 켜가 매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살코기가 뻣뻣하거나 부스러지지 않는다. (53쪽)
현대화의 손길은 면에서 가장 돋보이는데, 열쇠는 소금이다. 모든 음식과 맛의 기본이자 핵심인 소금이 신기하게도 평양냉면의 면에서는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소면부터 파스타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세계의 면에는 반죽에든 삶는 물에든 소금이 반드시 개입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신기할 정도다. 광화문국밥에서는 면의 반죽에 소금을 쓸 뿐만 아니라 삶는 물에도 간을 해 면과 물, 두 체계의 염분에 일정 수준 균형을 잡아준다. 그 결과 꼬들거리는 동시에 부드러운 질감의 형용모순적 가치를 구현한다. (139쪽)
‘논현동 평양냉면과 비교해보니 열등하다’는 평가로 결론지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어떤 의사 결정 과정이 정확히 이런 맛으로 귀결되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이런 인상을 받고 약 2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똑같은 인상이었다.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원래는 정확한 복제를 목표로 삼았지만 기록된 자료로 전수되지 않은 요인이 영향을 미쳐 이런 맛이 나온 걸까? 20년 상당의 경력으로는 같은 계보에 속할 수 있지만 족보에 이름을 새길 수는 없다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냉면을 만드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112쪽)
■ 전통 또는 미덕에 대한 재고:
하나의 전통 혹은 감정적인 맛의 요소로 존중할 수는 있지만 객관적인 맛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용성인 고추나 고춧가루의 맛과 향이 찬 국물에는 잘 우러나지 않기도 하거니와, 이와 무관하게 감칠맛이 깔끔하게 두드러지는 국물의 끝에 따끔하고 까끌까끌한 여운을 남긴다. 같은 맥락에서 파도 다소 거추장스럽다. 곱게 썰어 얹은 파의 향은 보탬이 되지만 끝에 남는 쓴맛이 아무래도 거슬린다. 고춧가루와 파가 만나는 지점이 국물의 차원에서 옥의 티로 남는다. (28쪽)
‘슴슴함’은 진정 평양냉면의 미덕일까. 이를 헤아려보려면 몇 단계를 되짚어 올라가야 한다. 평양냉면의 국물은 맑고 차가워야 하니 진한 고기 국물을 쓸 수 없다. 또한 짠맛으로만 균형을 맞추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감칠맛을 소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짠맛과 감칠맛의 균형이 슴슴함의 핵심이다. 짠맛이 치고 나온다는 느낌은 주지 않아야 하지만 그만큼 감칠맛이 두툼함을 불어 넣어줘야 만족스러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웬만하면 화학조미료에게 SOS를 쳐야 한다. 실제로 냉면의 발전이 1930년대 일본발 화학조미료에게 빚졌다는, 굉장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다. (31쪽)
굳이 면이 ‘툭툭’ 끊어져야만 할까? 단언할 수 없다. 연하다고 무조건 좋은 면도, 질기다고 무조건 나쁜 면도 아니다. 다만 면의 물성은 평양냉면의 울타리를 넘어서 고민해볼 사안이다. 어떤 질감 혹은 물성의 면이 국물과 더 잘 어우러질까? 단단하기보다 연한 게, 쫄깃하기보다 부드러운 게 더 잘 섞여 넘어간다. 탄력은 품어도 최종적인 저항은 하지 않고 끊어지는 일반적인 밀가루 면의 질감도 헤아려볼 일이지만, 메밀이 글루텐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도 면의 재료로서 자기 영역을 확실하게 확보하고 있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힘없음’이다. 따라서 국물에 딸린 면이라면 재료 불문, 저항은 없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71쪽)
한식에서 작지만 의외의 위력으로 음식 전체의 경험을 망칠 수 있는 요소와 맞닥뜨릴 때마다 ‘여백의 미’에 대해서 곱씹어본다. 채움만큼이나 비움도 전체의 균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가르침이겠으나 현재의 한국 문화, 특히 음식에서는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애초에 온갖 재료를 더하고 끓여 맛을 우려내는 것이 국물일 텐데, 그 재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런 요소를 습관적으로 더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게도 의심을 사지 않은 채 세월을 거치면서 전통인 양 굳어버린다. (65쪽)
현대화와 산업화의 태동기에는 스테인리스 주발이 가볍고 시원할뿐더러 튼튼해 배달에 제격이었지만,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특유의 비린내가 차가운 음식, 특히 평양냉면의 고기 바탕 국물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주발의 가장자리가 입과 혀에 닿는 촉감도 나쁘다. 게다가 매년 여름이면 ‘비싼 한식’의 대표 주자로 매체에서 얻어맞는 평양냉면 아닌가. 평양냉면을 서민 음식이라 보기 어렵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지만 평양냉면의 이미지가 일종의 괴리를 품고 있으며, 그 중심에 스테인리스 주발이 있다는 사실은 곱씹어봐야 한다. (49쪽)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 ‘평냉’의 이데아
1. 공인된 노포: 한국 평양냉면의 뿌리들
우래옥 의정부 평양면옥 장충동 평양면옥 을밀대
2. 선발 주자: 평양냉면의 가지들
을지면옥│필동면옥│논현동 평양면옥│벽제갈비-봉피양│장수원│강서면옥│
평가옥│평래옥│대동관│부원면옥│남포면옥│수원 평양면옥
3. 후발 주자: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시도들
정인면옥│능라도│배꼽집│로스옥│ 동무밥상│서경도락│진미평양냉면│
금왕평양면옥│삼도갈비│능라밥상│평양옥│평화옥
4. 느슨하게 평냉: 평양냉면의 문법을 차용한 메밀 면 요리
무삼면옥│광화문국밥│고기리 장원막국수
맺는 말: ‘평냉’의 미래
부록
평양냉면 맛 지도
평양냉면 리뷰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