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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거듭되는 속담―하나의 산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다―의 확인과 동아시아의 미래
얼마 전 센카쿠/댜오위 열도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영토 분쟁이 국제 뉴스의 초점이 된 일이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자칫 전쟁으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한 사람이 상당수 있었으리라.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강대국이 인접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지정학적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토를 둘러싼 이 두 강대국의 충돌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론해낼 수 있을까? 단순히 영토의 주권만을 두고 충돌한 사례에 지나지 않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서로 이웃한 이 두 강대국이 지속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추적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유들이 추출된다. 또한 이는 한 지정학자의 말처럼 세계에서 폴란드와 더불어 가장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위치에 자리한 우리 대한민국이 국제 관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을 펴나가야 할지 많은 교훈을 준다.
저자인 리처드 C. 부시는 650여 쪽(번역본 기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에서 중국과 일본이 바로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충돌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역설하면서 가능하다면 서로 이해하면서 그 충돌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저자는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문제점들, 다시 말해 구조적인 문제들을 분석한다. 그러고 나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동적인 문제들을 분석한다. 그런데 후자는 각국의 정치 체제나 정권에 따라 상당히 유동적일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판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첫 번째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에서 중국과 일본의 정권이 바뀜에 따라 두 나라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끌어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미 이 책이 출간된 후 중국과 일본 모두 지도자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지속적으로 두 나라 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알아보려 한다.
지리적인 문제와 역사적인 사실들은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리적인 것과 그와 관련한 것들이 더욱 더 지속적으로 두 나라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정학적인 문제를 우선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센카쿠/댜오위 열도는 최근에야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끌고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중국도 2020년에 이르면 석유 소비량의 60∼80퍼센트를 수입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은 석유를 100퍼센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1969년에 나온 국제연합 보고서를 통해 센카쿠 열도의 석유 매장량이 상당한 규모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나라는 동중국해의 드넓은 해역이 앞으로 자기 나라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매우 긴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이곳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센카쿠/댜오위 열도와 같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몇 개의 특별한 마찰 지점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센카쿠/댜오위 열도가 자리하고 있는 광범위한 동중국해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지점에 있다. 이 두 나라의 마찰은 점차적으로 중국의 군사 전력이 성장함에 따라 더욱 증가할 것임이 틀림없다. 저자가 지적하는 특별한 마찰 지점은 네 부분이다. 첫 번째는 얼마 전 영토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댜오위/센카쿠 열도이고, 두 번째는 동중국해의 석유 및 가스 자원에 대한 개발권, 세 번째는 해협 통과의 문제이고, 네 번째는 타이완 해협의 문제이다. 사실 이 네 가지 문제를 분석해보면 왜 중국과 일본이 이 지역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네 부분의 특정 마찰 지점 가운데 앞의 세 부분에 관한 정치 및 군사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동중국해의 지리와 경쟁의 도화선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 그리고 국제법의 일부 해당 조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리를 살펴보자. 육지가 중국 본토의 해안에서 물밑으로 잠긴 다음 동쪽으로 태평양을 향해 이어진다. 500마일(약 805킬로미터)까지는 수심이 200미터를 넘지 않다가 류큐 해구에 이르러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데, 이 해구는 일본 동쪽 해안을 따라 하나의 선을 이루면서 류큐 열도를 지나 타이완으로 내려간다. 물론 대륙이 이어지는 대륙봉 지역에도 여러 가닥으로 파인 곳이 있는데, 이 가운데 중국 저장성 해안에서 1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시후(西湖) 함몰대가 있다. 류큐 열도에 다가갈수록 점점 깊어지다가 마침내 오키나와 해구에 이르러서는 수심 2000미터를 넘는 곳들도 있다. 이 거대한 여울의 거의 남쪽 끝 가장자리에 댜오위/센카쿠 열도가 자리 잡고 있다. 대체로 가스 매장량은 2000조 세제곱미터, 석유 매장량은 1000억 배럴로 여러 기관들은 추정한다. 탐사 및 시추가 이루어질 주요 지역은 시후와 오키나와 해구이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물론 각각 제 주장만 내세우면서 자원에 대한 접근 권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제법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려든다.
분쟁의 시작은 첫째로 대륙봉에 대한 정의의 문제, 둘째는 두 나라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어떻게 구획하고 정의하느냐이며, 세 번째 문제는 센카쿠/댜오위 열도가 국제연합 해양법 협약의 정의에 따라 실제로 인간이 거주할 만한 섬인가 하는 점이다. 네 번째 문제는 일부 가스전이 일본에서 주장하는 중간선의 양쪽에 걸쳐 있는가, 아니면 완전히 중국 쪽으로 들어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며, 다섯 번째 논점은 자원 개발을 고려하기에 앞서 구획 문제나 영토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이다. 여섯 번째 문제는 중국의 해양조사선들이 과학적 연구를 하는가, 아니면 자연자원을 탐사하느냐이며, 일곱 번째 문제는 해안을 끼고 있는 나라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어떤 종류의 군사 활동이 적절한가인데, 두 나라는 사사건건 이 일곱 가지 문제에 대해 자기의 이익대로 해석하고 행동해오고 있다.(111∼123쪽)
두 나라는 댜오위/센카쿠를 둘러싼 영토 분쟁, 동중국해의 유전과 가스전 문제 등 이러한 지리적인 요인들로 첨예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작은 분쟁들이 쌓여 곪아 터질 지경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두 나라의 배타적 경제 수역과 대륙봉을 구획하는 문제에서 전반적 합의를 이끌어낼 전망은 희미해 보이는 가운데 두 나라는 다같이 에너지 안보에 관심을 갖고, 일본은 특히 동아시아의 해상 교통로에서 항해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숙명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타이완 문제다. 물론 앞의 문제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타이완이라는 마찰은 훨씬 더 복잡해 두 단계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첫째, 중국과 타이완은 단순한 오판에 의해 분쟁으로 돌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동남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기대고 있는 경제적 상호 의존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둘째, 타이완이 불필요하게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미국은 타이완의 방위를 위해 개입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쿄 쪽에 원조 및 발진 기지의 제공을 기대할 것이다. 이외에도 중국과 일본이 타이완을 전략적 요지로 간주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국은 “만일 타이완이 본토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우리의 천연 해상 방어 체제가 무너질 뿐 아니라 종심을 잃게 되어 외부 세력에 바다의 관문을 열어주는 꼴이 되며 드넓은 바다의 영토는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중국의 개방과 경제 발전에 긴요한 대외 무역과 교통의 축선이 분리주의 적성 세력의 가시와 위협 앞에 노출됨으로써 중국은 서부 태평양의 첫 번째 열도로 이루어진 선의 서쪽 구석에 영원히 갇히고 말 것이다”고 확신한다.
이에 일본은 “타이완은 일본의 해로에서 몇 가지 결정적인 요소를 제공한다. 만일 타이완이 중국에 통합된다면, 남중국해는 중국의 바다가 되어 우리와 중동 및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이어주는 바닷길이 중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들어갈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일본 남방의 여러 섬과 동중국해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아질 것이다. 동중국해가 중국의 영향 아래 들어가면, 황해(서해)는 중국의 내해가 되어 공해로 나아갈 길을 잃을 것이며 한반도는 중국의 세력권으로 편입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중국은 반드시 타이완을 발판으로 태평양으로 뛰어 들 것이다. 타이완은 일본의 ‘생명선’이다”고 단언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특별한 충돌 지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문을 연 후부터 경제 부분에서는 폭 넓은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군사력 증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민족주의적 감정(중국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남)이나 상대방에 대한 불신(신사참배나 교과서 문제) 혹은 일본 헌법 9조의 조항들을 완화하려는 노력이나 일본과 미국의 동맹 관계 등에서도 두 나라는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 아시아 국가가 일본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은 새로운 장비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군사 능력의 사용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중국과 일본이 서로에 대해 과거사를 배경으로 현대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관점>
- 역사적인 문제로 사악한 일본에 희생당한 중국.
- 일본의 사죄가 과연 진실한지를 판단하는 심판자로서 중국(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생각함).
- 수없는 좌절에 부딪친 반란 세력으로서 중국. 중국인은 세계 정치에서 마땅히 차지해야 할 지위를 되찾아야 하며, 다른 나라들은 중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어 의심치 않는다.
<일본의 관점>
- 제2차 세계대전의 침략자로서 일본.
- 억울하게 제소당한 피고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서 일본 .
- 민간 주도국 또는 중진국으로서 일본. 이 견해의 핵심은 일본은 자국의 안보 환경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평화주의자라는 의미.
- 취약한 섬나라 일본.
이러한 두 나라의 충돌 개연성을 높이고 낮출 수 있는 것이 두 나라의 제도적 요인이다. 물론 충돌 직후의 사태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는데, 이 책의 7~ 9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두 나라의 군대와 경비대가 자국 민간 지도층의 통제 아래 얼마만큼의 자율을 누리고 있는지, 지휘 통제 체제는 어느 정도 집권화해 있으며, 더불어 군사력의 사용에 관한 관점 같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두 나라의 민군 관계는 대조적이다. 중국에서는 군부가 공산당의 기본 노선과 완전히 일치하는 규범을 따르지만, 자신들의 담당 영역과 관련한 정책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가질 뿐 아니라 그 분야에서 일단 채택된 정책을 수행하는 데서도 폭넓은 재량권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일본에서는 군부가 가치과 규범의 문제에 대해 좀더 독자적일 수 있지만, 정책과 작전에 대해서는 반드시 동중국해 지역이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철저하게 민간 통제 아래 놓여 있다. 두 나라의 군대와 법집행 기구는 독자적이고 되도록 공격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의 경우가 더 심하다.
또한 만일 일본과 중국의 해?공군이 서로 충돌한다면, 민간 지도층과 기구들도 이에 개입할 텐데 이들의 조정 능력이 어떠한지를 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정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기능하며, 이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분석 결과가 유용한지 등을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이들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미일 동맹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은 일본에 대한 외부 침공이 있을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중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베이징과 도쿄 사이에 연출되는 안보상의 상관관계가 워싱턴에 던져주는 의미를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이 책 13장에서 이 문제를 분석한다.
아무리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 하더라도 적어도 단기적으로, 동중국해의 전략적 현실이 쉽사리 바뀐다거나 국내 정치가 더 온건한 방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비록 충돌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일단 충돌이 일어나면 두 나라는 재앙에 가까운 손실을 입을 것이며 동아시아와 국제문제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가능한 한 조그마한 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이 책 14장에서 다룬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두 나라는 언제라도 충돌할 수 있다. 저자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의 요인과 해결 방법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 쉽게 결론 낼 수 있는 문제인가. 저자는 마지막에 ‘중일 간 복잡한 관계 풀기: 미일 동맹’이라는 단락에서 긴장이나 충돌을 완화할 수 있는 미일 동맹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다. 물론 미일 동맹은 역할을 확대해 21세기의 전략적 목표를 반영하는 쪽을 선호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일본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 즉 강대국으로 부활한 중국이라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중국의 부활이 국제 체제의 안정을 해치기보다는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워싱턴과 도쿄 모두의 관심사인 건 분명하다.
물론 국력 향상과 회복은 항상 복잡한 관계를 던진다. 일본과 미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꾸준한 군사력 증강을 바탕으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장기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중국이 국제 체제를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뒤엎을 것인가? 당연한 것이지만, 신흥 강국은 국력이 상승?축적되는 초기 단계에는 대체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나중까지 자국의 의도를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현상 파악이 더욱 복잡해진다. 지금까지 중국은 많은 면에서 국제 체제를 수용해왔지만 이는 신중한 전략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 사실 중국 스스로도 동아시아의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어야 할지에 대해 확실한 방향을 세워놓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세 나라의 군사적 역량과 타이완과 북한 같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와 관련해 중단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위험한 점은 한쪽의 중국과 다른 쪽의 미국 및 일본이 상대에 대한 우려를 바탕에 깔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돌고 도는 악순환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비극이 잠재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도쿄와 워싱턴이 중국을 국제 체제에 편입시키기를 희망해 중국의 부활을 수용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중국의 행동 때문에 양국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국제 체제를 수용하기를 원해도 일본과 미국의 행동 때문에 중국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게 될 수도 있다. 불가피한 결과는 아니라 해도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속담이 확인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미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로 하여금 힘의 경쟁을 회피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중국이 국제 체제의 현상을 수용하고 건설적인 자세로 여기에 참여할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것을 동맹의 전략적 과제로 설정하는 일이다. 물론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서로 이웃해 있는 중국과 일본 간의 숙명적 안보를 좌우하는 것이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두 정부가 이러한 숙명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면 두 나라 관계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고 정치와 제도적 취약성으로 인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위험을 줄이려면 온건한 협력 조치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호 신뢰를 촉진하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좀더 대담한 조치를 취하면서 더욱 확고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새로운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의 출범은 놓쳐서는 안 될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센카쿠/댜오위 열도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영토 분쟁이 국제 뉴스의 초점이 된 일이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자칫 전쟁으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한 사람이 상당수 있었으리라.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강대국이 인접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지정학적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토를 둘러싼 이 두 강대국의 충돌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론해낼 수 있을까? 단순히 영토의 주권만을 두고 충돌한 사례에 지나지 않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서로 이웃한 이 두 강대국이 지속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추적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유들이 추출된다. 또한 이는 한 지정학자의 말처럼 세계에서 폴란드와 더불어 가장 지정학적으로 위험한 위치에 자리한 우리 대한민국이 국제 관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을 펴나가야 할지 많은 교훈을 준다.
저자인 리처드 C. 부시는 650여 쪽(번역본 기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책에서 중국과 일본이 바로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충돌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역설하면서 가능하다면 서로 이해하면서 그 충돌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저자는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문제점들, 다시 말해 구조적인 문제들을 분석한다. 그러고 나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동적인 문제들을 분석한다. 그런데 후자는 각국의 정치 체제나 정권에 따라 상당히 유동적일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판단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첫 번째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에서 중국과 일본의 정권이 바뀜에 따라 두 나라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끌어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미 이 책이 출간된 후 중국과 일본 모두 지도자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지속적으로 두 나라 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알아보려 한다.
지리적인 문제와 역사적인 사실들은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리적인 것과 그와 관련한 것들이 더욱 더 지속적으로 두 나라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정학적인 문제를 우선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센카쿠/댜오위 열도는 최근에야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끌고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중국도 2020년에 이르면 석유 소비량의 60∼80퍼센트를 수입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은 석유를 100퍼센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1969년에 나온 국제연합 보고서를 통해 센카쿠 열도의 석유 매장량이 상당한 규모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나라는 동중국해의 드넓은 해역이 앞으로 자기 나라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매우 긴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이곳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센카쿠/댜오위 열도와 같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몇 개의 특별한 마찰 지점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센카쿠/댜오위 열도가 자리하고 있는 광범위한 동중국해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지점에 있다. 이 두 나라의 마찰은 점차적으로 중국의 군사 전력이 성장함에 따라 더욱 증가할 것임이 틀림없다. 저자가 지적하는 특별한 마찰 지점은 네 부분이다. 첫 번째는 얼마 전 영토 문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댜오위/센카쿠 열도이고, 두 번째는 동중국해의 석유 및 가스 자원에 대한 개발권, 세 번째는 해협 통과의 문제이고, 네 번째는 타이완 해협의 문제이다. 사실 이 네 가지 문제를 분석해보면 왜 중국과 일본이 이 지역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네 부분의 특정 마찰 지점 가운데 앞의 세 부분에 관한 정치 및 군사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동중국해의 지리와 경쟁의 도화선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 그리고 국제법의 일부 해당 조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리를 살펴보자. 육지가 중국 본토의 해안에서 물밑으로 잠긴 다음 동쪽으로 태평양을 향해 이어진다. 500마일(약 805킬로미터)까지는 수심이 200미터를 넘지 않다가 류큐 해구에 이르러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데, 이 해구는 일본 동쪽 해안을 따라 하나의 선을 이루면서 류큐 열도를 지나 타이완으로 내려간다. 물론 대륙이 이어지는 대륙봉 지역에도 여러 가닥으로 파인 곳이 있는데, 이 가운데 중국 저장성 해안에서 1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시후(西湖) 함몰대가 있다. 류큐 열도에 다가갈수록 점점 깊어지다가 마침내 오키나와 해구에 이르러서는 수심 2000미터를 넘는 곳들도 있다. 이 거대한 여울의 거의 남쪽 끝 가장자리에 댜오위/센카쿠 열도가 자리 잡고 있다. 대체로 가스 매장량은 2000조 세제곱미터, 석유 매장량은 1000억 배럴로 여러 기관들은 추정한다. 탐사 및 시추가 이루어질 주요 지역은 시후와 오키나와 해구이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물론 각각 제 주장만 내세우면서 자원에 대한 접근 권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제법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려든다.
분쟁의 시작은 첫째로 대륙봉에 대한 정의의 문제, 둘째는 두 나라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어떻게 구획하고 정의하느냐이며, 세 번째 문제는 센카쿠/댜오위 열도가 국제연합 해양법 협약의 정의에 따라 실제로 인간이 거주할 만한 섬인가 하는 점이다. 네 번째 문제는 일부 가스전이 일본에서 주장하는 중간선의 양쪽에 걸쳐 있는가, 아니면 완전히 중국 쪽으로 들어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며, 다섯 번째 논점은 자원 개발을 고려하기에 앞서 구획 문제나 영토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이다. 여섯 번째 문제는 중국의 해양조사선들이 과학적 연구를 하는가, 아니면 자연자원을 탐사하느냐이며, 일곱 번째 문제는 해안을 끼고 있는 나라의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어떤 종류의 군사 활동이 적절한가인데, 두 나라는 사사건건 이 일곱 가지 문제에 대해 자기의 이익대로 해석하고 행동해오고 있다.(111∼123쪽)
두 나라는 댜오위/센카쿠를 둘러싼 영토 분쟁, 동중국해의 유전과 가스전 문제 등 이러한 지리적인 요인들로 첨예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작은 분쟁들이 쌓여 곪아 터질 지경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두 나라의 배타적 경제 수역과 대륙봉을 구획하는 문제에서 전반적 합의를 이끌어낼 전망은 희미해 보이는 가운데 두 나라는 다같이 에너지 안보에 관심을 갖고, 일본은 특히 동아시아의 해상 교통로에서 항해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숙명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타이완 문제다. 물론 앞의 문제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타이완이라는 마찰은 훨씬 더 복잡해 두 단계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첫째, 중국과 타이완은 단순한 오판에 의해 분쟁으로 돌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동남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기대고 있는 경제적 상호 의존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둘째, 타이완이 불필요하게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미국은 타이완의 방위를 위해 개입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쿄 쪽에 원조 및 발진 기지의 제공을 기대할 것이다. 이외에도 중국과 일본이 타이완을 전략적 요지로 간주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중국은 “만일 타이완이 본토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우리의 천연 해상 방어 체제가 무너질 뿐 아니라 종심을 잃게 되어 외부 세력에 바다의 관문을 열어주는 꼴이 되며 드넓은 바다의 영토는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중국의 개방과 경제 발전에 긴요한 대외 무역과 교통의 축선이 분리주의 적성 세력의 가시와 위협 앞에 노출됨으로써 중국은 서부 태평양의 첫 번째 열도로 이루어진 선의 서쪽 구석에 영원히 갇히고 말 것이다”고 확신한다.
이에 일본은 “타이완은 일본의 해로에서 몇 가지 결정적인 요소를 제공한다. 만일 타이완이 중국에 통합된다면, 남중국해는 중국의 바다가 되어 우리와 중동 및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이어주는 바닷길이 중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들어갈 것이다. 아울러 중국은 일본 남방의 여러 섬과 동중국해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아질 것이다. 동중국해가 중국의 영향 아래 들어가면, 황해(서해)는 중국의 내해가 되어 공해로 나아갈 길을 잃을 것이며 한반도는 중국의 세력권으로 편입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중국은 반드시 타이완을 발판으로 태평양으로 뛰어 들 것이다. 타이완은 일본의 ‘생명선’이다”고 단언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특별한 충돌 지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문을 연 후부터 경제 부분에서는 폭 넓은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군사력 증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민족주의적 감정(중국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남)이나 상대방에 대한 불신(신사참배나 교과서 문제) 혹은 일본 헌법 9조의 조항들을 완화하려는 노력이나 일본과 미국의 동맹 관계 등에서도 두 나라는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 아시아 국가가 일본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은 새로운 장비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군사 능력의 사용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중국과 일본이 서로에 대해 과거사를 배경으로 현대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관점>
- 역사적인 문제로 사악한 일본에 희생당한 중국.
- 일본의 사죄가 과연 진실한지를 판단하는 심판자로서 중국(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생각함).
- 수없는 좌절에 부딪친 반란 세력으로서 중국. 중국인은 세계 정치에서 마땅히 차지해야 할 지위를 되찾아야 하며, 다른 나라들은 중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어 의심치 않는다.
<일본의 관점>
- 제2차 세계대전의 침략자로서 일본.
- 억울하게 제소당한 피고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로서 일본 .
- 민간 주도국 또는 중진국으로서 일본. 이 견해의 핵심은 일본은 자국의 안보 환경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 평화주의자라는 의미.
- 취약한 섬나라 일본.
이러한 두 나라의 충돌 개연성을 높이고 낮출 수 있는 것이 두 나라의 제도적 요인이다. 물론 충돌 직후의 사태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는데, 이 책의 7~ 9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두 나라의 군대와 경비대가 자국 민간 지도층의 통제 아래 얼마만큼의 자율을 누리고 있는지, 지휘 통제 체제는 어느 정도 집권화해 있으며, 더불어 군사력의 사용에 관한 관점 같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두 나라의 민군 관계는 대조적이다. 중국에서는 군부가 공산당의 기본 노선과 완전히 일치하는 규범을 따르지만, 자신들의 담당 영역과 관련한 정책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가질 뿐 아니라 그 분야에서 일단 채택된 정책을 수행하는 데서도 폭넓은 재량권을 갖고 있다. 이와 달리 일본에서는 군부가 가치과 규범의 문제에 대해 좀더 독자적일 수 있지만, 정책과 작전에 대해서는 반드시 동중국해 지역이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철저하게 민간 통제 아래 놓여 있다. 두 나라의 군대와 법집행 기구는 독자적이고 되도록 공격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의 경우가 더 심하다.
또한 만일 일본과 중국의 해?공군이 서로 충돌한다면, 민간 지도층과 기구들도 이에 개입할 텐데 이들의 조정 능력이 어떠한지를 알아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정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기능하며, 이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분석 결과가 유용한지 등을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이들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미일 동맹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은 일본에 대한 외부 침공이 있을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중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베이징과 도쿄 사이에 연출되는 안보상의 상관관계가 워싱턴에 던져주는 의미를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이 책 13장에서 이 문제를 분석한다.
아무리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 하더라도 적어도 단기적으로, 동중국해의 전략적 현실이 쉽사리 바뀐다거나 국내 정치가 더 온건한 방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비록 충돌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지만 일단 충돌이 일어나면 두 나라는 재앙에 가까운 손실을 입을 것이며 동아시아와 국제문제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가능한 한 조그마한 분쟁이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이 책 14장에서 다룬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두 나라는 언제라도 충돌할 수 있다. 저자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충돌의 요인과 해결 방법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 쉽게 결론 낼 수 있는 문제인가. 저자는 마지막에 ‘중일 간 복잡한 관계 풀기: 미일 동맹’이라는 단락에서 긴장이나 충돌을 완화할 수 있는 미일 동맹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다. 물론 미일 동맹은 역할을 확대해 21세기의 전략적 목표를 반영하는 쪽을 선호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일본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 즉 강대국으로 부활한 중국이라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중국의 부활이 국제 체제의 안정을 해치기보다는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워싱턴과 도쿄 모두의 관심사인 건 분명하다.
물론 국력 향상과 회복은 항상 복잡한 관계를 던진다. 일본과 미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꾸준한 군사력 증강을 바탕으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장기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중국이 국제 체제를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뒤엎을 것인가? 당연한 것이지만, 신흥 강국은 국력이 상승?축적되는 초기 단계에는 대체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나중까지 자국의 의도를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현상 파악이 더욱 복잡해진다. 지금까지 중국은 많은 면에서 국제 체제를 수용해왔지만 이는 신중한 전략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 사실 중국 스스로도 동아시아의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어야 할지에 대해 확실한 방향을 세워놓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세 나라의 군사적 역량과 타이완과 북한 같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와 관련해 중단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과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 위험한 점은 한쪽의 중국과 다른 쪽의 미국 및 일본이 상대에 대한 우려를 바탕에 깔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돌고 도는 악순환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비극이 잠재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도쿄와 워싱턴이 중국을 국제 체제에 편입시키기를 희망해 중국의 부활을 수용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중국의 행동 때문에 양국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국제 체제를 수용하기를 원해도 일본과 미국의 행동 때문에 중국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게 될 수도 있다. 불가피한 결과는 아니라 해도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속담이 확인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미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로 하여금 힘의 경쟁을 회피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중국이 국제 체제의 현상을 수용하고 건설적인 자세로 여기에 참여할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것을 동맹의 전략적 과제로 설정하는 일이다. 물론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서로 이웃해 있는 중국과 일본 간의 숙명적 안보를 좌우하는 것이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두 정부가 이러한 숙명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면 두 나라 관계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고 정치와 제도적 취약성으로 인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러한 위험을 줄이려면 온건한 협력 조치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호 신뢰를 촉진하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좀더 대담한 조치를 취하면서 더욱 확고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새로운 일본 정부와 중국 정부의 출범은 놓쳐서는 안 될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목차
감사의 글
01 서론
02 프롤로그: 1930년대 일본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
03 중일 관계의 간략한 회고
04 정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05 해군, 공군, 해안 경비대 및 사이버 전사들
06 인접 지점과 마찰 지점
07 중국과 일본 군사 제도의 특징
08 중국의 의사 결정
09 일본의 의사 결정
10 중일 관계를 둘러싼 중국의 국내 정치
11 중일 관계를 둘러싼 일본의 국내 정치
12 긴장 상황에서 중국 및 일본의 체제
13 미국에 미치는 영향
14 무엇을 할 것인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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