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더 선, 1
- 대등서명
- Son
- 개인저자
- 필립 마이어 지음 ; 임재서 옮김
- 발행사항
- 서울: 올, 2013
- 형태사항
- 445 p. ; 23 cm
- ISBN
- 9788965881803(1)
- 청구기호
- 843 마69ㄷ
- 일반주기
- 원저자명: Philipp Meyer
- 키워드
- 미국현대소설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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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4656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4656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 아마존, NYT 베스트셀러
★ 아마존 선정 2013년 6월의 책 / 2013년 올해의 책 후보
★ 현재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 중
몰락한 철강 마을을 배경으로 절박한 선택에 내몰린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린 <아메리칸 러스트>로 강렬하게 데뷔한 미국 문학의 총아 필립 마이어가 대작 <더 선>으로 돌아왔다. 무려 5년에 걸친 창작의 고투 끝에 스케일은 훨씬 커지고 이야기의 박진감에는 더욱 힘이 붙었으며 성찰은 한층 깊어졌다.
이야기의 무대는 텍사스. 주인공은 매컬로 집안의 세 인물. 시간적 배경은 1832년부터 2012년까지. 거의 2백 년에 걸친 한 집안의 파란만장한 연대기가 세 인물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삶은 투쟁이다! 아름답고 장엄한 핏빛 투쟁!
설사 그 대가가 비극일지라도!
1849년 봄, 신생 텍사스 공화국에서 맨 처음 태어난 사내 아이 엘리 매컬로는 열세 살이고 그의 집을 습격한 코만치 인디언들에게 형과 함께 납치당한다. 코만치들이 어머니와 누나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한 엘리는 그들의 본거지로 끌려가는 도중에 형마저 잃게 되지만, 점차 코만치의 생활에 적응하고 그들과 운명을 함께한다. 새로운 이름을 얻고 버펄로 사냥에 나서고 인디언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다른 부족의 인디언이나 멕시코인, 심지어 백인마저 적으로 상대하며 전도유망한 코만치 전사로 성장하지만, 질병과 굶주림, 백인들의 서부 개척에 따른 인디언 부족 전체의 몰락이라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동료들을 거의 전멸시키기에 이른다. 엘리는 다시 백인 사회로 돌아오지만, 인디언도 백인도 아니고 야생의 삶에도 문명의 삶에도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채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분투한다. 얄궂게도 인디언을 잡는 텍사스 순찰대에 들어가고 목장주가 되고…… 1백 년에 걸친 엘리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담력과 행운으로 헤쳐 온 모험에 찬 삶이 “침대에 꼼짝없이 묶여 갓난애처럼 똥이나 싸지르는” 처지에 이른 엘리 자신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2012년 3월, 엘리의 증손녀이자 텍사스의 손꼽히는 석유 부호인 진 앤 매컬로는 여든여섯 살이고 목장 저택의 대형 거실에서 이란의 샤에게서 선물로 받은 양탄자 위에 꼼짝달싹 못한 채 홀로 누워 있다. 몸은 “플러그가 뽑힌 것”처럼 마비되었지만 “정신만은 완벽하게 깨어 있는” 지니는 분명히 누군가 자기를 일부러 이렇게 해놓았다는 확신이 든다. 그런데 누가? 그리고 왜?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의 눈앞에 전 생애가 파노라마로 스쳐가듯이, 이따금 비몽사몽을 헤매는 지니의 의식 속에서 집안의 역사가, 지니의 지난 생애가 영사막에 투사되는 영화 장면처럼 명료하게 재연된다. 제2차 세계대전, 목축업의 몰락, 석유 산업의 부흥, 케네디의 죽음, 9.11 사건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지니의 개인사와 매컬로 집안의 가족사가 입체적으로 부조된다. 그리하여 빈털터리 인디언 꼬마 소년에게서 비롯된 집안이 어떻게 텍사스의 손꼽히는 석유 부호로 성장하는지가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그 과정은 텍사스 역사뿐 아니라 미국 역사의 축약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진 앤 매컬로를 이렇게 만든 것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1915년 8월, 엘리의 막내아들이자 지니의 할아버지인 피터 매컬로는 아버지가 백인 동료들을 이끌고 이웃 목장주이자 라틴 혈통의 정착민인 페드로 가르시아네로 쳐들어가 그들을 몰살시키는 장면을 목격하고 괴로워한다. 페드로는 그의 아버지보다 먼저 이 땅에 정착한 토박이인데, 아버지는 대체 어쩌자고 저토록 잔혹한 짓을 눈도 깜박하지 않고 해치우는지 피터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자기 아들이 총상을 입었는데도 동물적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대신 상황을 차분하게, 그러나 음울하게 관조하는 그는 양심과 성찰의 표상이다. 아버지 엘리에게는 ‘내 파멸의 씨앗 같은’ ‘집안의 수치’일 뿐이지만, 근방에 ‘제정신인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피터는 ‘우리 집안의 내력을 담은 유일한 진실의 기록’을 일기로 남긴다. 그 일기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이 작품을 두고 “미 제국에 대한 슈펭글러 식 접근”(뉴욕타임스)이라고 평가한 것은 바로 피터 매컬로의 일기를 염두에 둔 것이다.
평단의 극찬, 독자의 열광!
영미 평단은 극찬 일색이고 독자들의 반응도 열광적이다. 미국 내에서조차 이국적인 지역으로 치부되는 텍사스가 무대이고 잔혹한 장면은 종종 비위에 거슬릴 지경이며 방대한 스케일에 숨이 막히기 십상인 이 작품이 이토록 놀라운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미국의 건국 신화를 새로 쓰겠다는 작가의 대담한 야심이 미국 독자들의 심저에 있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마이어는 건국 신화를 냉소적으로 탈신비화하지도 않고 몽롱하게 재신화화지도 않는 제3의 방식으로 건국 신화를 새로 썼다. 미국 정신의 종말, 아메리칸 드림의 종언이 상투어가 되어 버린 시대에 건국 신화를 새로 쓴다면, 날 것의 사실 자체가 말하게 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있을까? 작가는 묻힌 기록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잊힌 기억들을 발굴해 이 방대한 이야기에 정교하게 녹여냄으로써 독자들의 상투적인 인식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프론티어 정신’이 20세기 후반기 내내 세계의 수많은 대중의 심성에 깊이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부 장르물의 광범위한 파급에 있었다. 그리고 존 웨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에서 케빈 코스트너에 이르는 서부물의 모든 아이콘들의 정수에는 미국의 건국 신화(혹은 탈신화화된 건국 신화)가 깔려 있었다. 필립 마이어의 <더 선>은 그 모든 신화들의 저변에 있는 거친 현실을 그 모든 치부와 더불어 날 것 그대로 조형해냄으로써 미국 건국 신화의 21세기식 판본, 가장 최신의, 가장 탁월한 판본을 창조한 것이다.
두 번째는 텍사스의 문화와 역사, 코만치 인디언의 풍습에 대한 오랜 취재를 통해 작품 내에 정교한 디테일(이를테면, 코만치 인디언들의 정착지 습격, 버펄로 사냥, 미혼 처녀들의 성생활 등에 대한 상세하고 생생한 묘사)이 확보되었고, 언뜻 미스터리 소설을 닮은 듯한 플롯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방대하고 대담한 서사, 멈출 수 없는 흡인력”(NPR)이라는 평가는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대중적 호소력의 근거를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고전의 품격을 두루 갖춘 패밀리 사가의 진수이자
미국의 건국 신화를 새로 쓴 역사 소설의 최고봉
고전의 특징이 넓은 시야, 방대한 스케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생생한 캐릭터 등에 있는 것이라면, <더 선>은 고전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백 년 가까운 매컬로 집안의 연대기가 세 주인공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전개되면서 전체 서사와 인물들은 삼차원의 입체감을 획득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의 서로 엇갈리는 육성은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건국 신화란 ‘종교 박해를 피해 신세계로 이주한 청교도들’, ‘자유를 추구하는 건국의 아버지들’, ‘불굴의 의지로 황야의 서부를 개척한 영웅들’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클리셰가 전면적인 거짓은 아니겠지만, 전면적인 진실도 당연히 아니다. <더 선>은 미국 건국 신화의 최신판본인 텍사스 개척을 무대로 삼아 잔혹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의 불가해한 암흑을 파헤친 작품이 되었다.
존 웨인 vs. 케빈 코스트너
악한 인디언을 착한 백인 카우보이가 해치우는 존 웨인의 서부극이 거짓이라면, 인디언은 원래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무구한 종족이었다는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도 거짓이긴 마찬가지다. <더 선>은 두 거짓 사이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냉철한 시선으로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코만치 인디언들의 풍습이 인류학적 보고서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세하게 묘사된다.
록 허드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리고 제임스 딘의 <자이언트>
이 영화에서는 딱 두 장면에서 가혹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첫째, 록 허드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처음 만났을 때, 테일러가 하는 말. “텍사스는 멕시코인들한테 빼앗은 땅 아닌가요?” 둘째, 허드슨과 테일러가 결혼해서 텍사스 집으로 온 후에 목동 제임스 딘이 테일러에게 하는 말. “이거 다 헐값에 사들인 땅이에요.”
<더 선>은 <자이언트>가 얼버무린 역사적 진실을 자세하게 복원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북셀러)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미국을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 아마존 선정 2013년 6월의 책 / 2013년 올해의 책 후보
★ 현재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 중
몰락한 철강 마을을 배경으로 절박한 선택에 내몰린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린 <아메리칸 러스트>로 강렬하게 데뷔한 미국 문학의 총아 필립 마이어가 대작 <더 선>으로 돌아왔다. 무려 5년에 걸친 창작의 고투 끝에 스케일은 훨씬 커지고 이야기의 박진감에는 더욱 힘이 붙었으며 성찰은 한층 깊어졌다.
이야기의 무대는 텍사스. 주인공은 매컬로 집안의 세 인물. 시간적 배경은 1832년부터 2012년까지. 거의 2백 년에 걸친 한 집안의 파란만장한 연대기가 세 인물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삶은 투쟁이다! 아름답고 장엄한 핏빛 투쟁!
설사 그 대가가 비극일지라도!
1849년 봄, 신생 텍사스 공화국에서 맨 처음 태어난 사내 아이 엘리 매컬로는 열세 살이고 그의 집을 습격한 코만치 인디언들에게 형과 함께 납치당한다. 코만치들이 어머니와 누나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목격한 엘리는 그들의 본거지로 끌려가는 도중에 형마저 잃게 되지만, 점차 코만치의 생활에 적응하고 그들과 운명을 함께한다. 새로운 이름을 얻고 버펄로 사냥에 나서고 인디언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다른 부족의 인디언이나 멕시코인, 심지어 백인마저 적으로 상대하며 전도유망한 코만치 전사로 성장하지만, 질병과 굶주림, 백인들의 서부 개척에 따른 인디언 부족 전체의 몰락이라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동료들을 거의 전멸시키기에 이른다. 엘리는 다시 백인 사회로 돌아오지만, 인디언도 백인도 아니고 야생의 삶에도 문명의 삶에도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채 자기만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분투한다. 얄궂게도 인디언을 잡는 텍사스 순찰대에 들어가고 목장주가 되고…… 1백 년에 걸친 엘리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담력과 행운으로 헤쳐 온 모험에 찬 삶이 “침대에 꼼짝없이 묶여 갓난애처럼 똥이나 싸지르는” 처지에 이른 엘리 자신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2012년 3월, 엘리의 증손녀이자 텍사스의 손꼽히는 석유 부호인 진 앤 매컬로는 여든여섯 살이고 목장 저택의 대형 거실에서 이란의 샤에게서 선물로 받은 양탄자 위에 꼼짝달싹 못한 채 홀로 누워 있다. 몸은 “플러그가 뽑힌 것”처럼 마비되었지만 “정신만은 완벽하게 깨어 있는” 지니는 분명히 누군가 자기를 일부러 이렇게 해놓았다는 확신이 든다. 그런데 누가? 그리고 왜?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의 눈앞에 전 생애가 파노라마로 스쳐가듯이, 이따금 비몽사몽을 헤매는 지니의 의식 속에서 집안의 역사가, 지니의 지난 생애가 영사막에 투사되는 영화 장면처럼 명료하게 재연된다. 제2차 세계대전, 목축업의 몰락, 석유 산업의 부흥, 케네디의 죽음, 9.11 사건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지니의 개인사와 매컬로 집안의 가족사가 입체적으로 부조된다. 그리하여 빈털터리 인디언 꼬마 소년에게서 비롯된 집안이 어떻게 텍사스의 손꼽히는 석유 부호로 성장하는지가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그 과정은 텍사스 역사뿐 아니라 미국 역사의 축약본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진 앤 매컬로를 이렇게 만든 것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1915년 8월, 엘리의 막내아들이자 지니의 할아버지인 피터 매컬로는 아버지가 백인 동료들을 이끌고 이웃 목장주이자 라틴 혈통의 정착민인 페드로 가르시아네로 쳐들어가 그들을 몰살시키는 장면을 목격하고 괴로워한다. 페드로는 그의 아버지보다 먼저 이 땅에 정착한 토박이인데, 아버지는 대체 어쩌자고 저토록 잔혹한 짓을 눈도 깜박하지 않고 해치우는지 피터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자기 아들이 총상을 입었는데도 동물적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대신 상황을 차분하게, 그러나 음울하게 관조하는 그는 양심과 성찰의 표상이다. 아버지 엘리에게는 ‘내 파멸의 씨앗 같은’ ‘집안의 수치’일 뿐이지만, 근방에 ‘제정신인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피터는 ‘우리 집안의 내력을 담은 유일한 진실의 기록’을 일기로 남긴다. 그 일기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이 작품을 두고 “미 제국에 대한 슈펭글러 식 접근”(뉴욕타임스)이라고 평가한 것은 바로 피터 매컬로의 일기를 염두에 둔 것이다.
평단의 극찬, 독자의 열광!
영미 평단은 극찬 일색이고 독자들의 반응도 열광적이다. 미국 내에서조차 이국적인 지역으로 치부되는 텍사스가 무대이고 잔혹한 장면은 종종 비위에 거슬릴 지경이며 방대한 스케일에 숨이 막히기 십상인 이 작품이 이토록 놀라운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미국의 건국 신화를 새로 쓰겠다는 작가의 대담한 야심이 미국 독자들의 심저에 있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마이어는 건국 신화를 냉소적으로 탈신비화하지도 않고 몽롱하게 재신화화지도 않는 제3의 방식으로 건국 신화를 새로 썼다. 미국 정신의 종말, 아메리칸 드림의 종언이 상투어가 되어 버린 시대에 건국 신화를 새로 쓴다면, 날 것의 사실 자체가 말하게 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있을까? 작가는 묻힌 기록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잊힌 기억들을 발굴해 이 방대한 이야기에 정교하게 녹여냄으로써 독자들의 상투적인 인식을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프론티어 정신’이 20세기 후반기 내내 세계의 수많은 대중의 심성에 깊이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부 장르물의 광범위한 파급에 있었다. 그리고 존 웨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에서 케빈 코스트너에 이르는 서부물의 모든 아이콘들의 정수에는 미국의 건국 신화(혹은 탈신화화된 건국 신화)가 깔려 있었다. 필립 마이어의 <더 선>은 그 모든 신화들의 저변에 있는 거친 현실을 그 모든 치부와 더불어 날 것 그대로 조형해냄으로써 미국 건국 신화의 21세기식 판본, 가장 최신의, 가장 탁월한 판본을 창조한 것이다.
두 번째는 텍사스의 문화와 역사, 코만치 인디언의 풍습에 대한 오랜 취재를 통해 작품 내에 정교한 디테일(이를테면, 코만치 인디언들의 정착지 습격, 버펄로 사냥, 미혼 처녀들의 성생활 등에 대한 상세하고 생생한 묘사)이 확보되었고, 언뜻 미스터리 소설을 닮은 듯한 플롯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방대하고 대담한 서사, 멈출 수 없는 흡인력”(NPR)이라는 평가는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대중적 호소력의 근거를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고전의 품격을 두루 갖춘 패밀리 사가의 진수이자
미국의 건국 신화를 새로 쓴 역사 소설의 최고봉
고전의 특징이 넓은 시야, 방대한 스케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생생한 캐릭터 등에 있는 것이라면, <더 선>은 고전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2백 년 가까운 매컬로 집안의 연대기가 세 주인공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전개되면서 전체 서사와 인물들은 삼차원의 입체감을 획득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의 서로 엇갈리는 육성은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건국 신화란 ‘종교 박해를 피해 신세계로 이주한 청교도들’, ‘자유를 추구하는 건국의 아버지들’, ‘불굴의 의지로 황야의 서부를 개척한 영웅들’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클리셰가 전면적인 거짓은 아니겠지만, 전면적인 진실도 당연히 아니다. <더 선>은 미국 건국 신화의 최신판본인 텍사스 개척을 무대로 삼아 잔혹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의 불가해한 암흑을 파헤친 작품이 되었다.
존 웨인 vs. 케빈 코스트너
악한 인디언을 착한 백인 카우보이가 해치우는 존 웨인의 서부극이 거짓이라면, 인디언은 원래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무구한 종족이었다는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도 거짓이긴 마찬가지다. <더 선>은 두 거짓 사이에 있는 ‘불편한’ 진실을 냉철한 시선으로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코만치 인디언들의 풍습이 인류학적 보고서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상세하게 묘사된다.
록 허드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리고 제임스 딘의 <자이언트>
이 영화에서는 딱 두 장면에서 가혹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첫째, 록 허드슨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처음 만났을 때, 테일러가 하는 말. “텍사스는 멕시코인들한테 빼앗은 땅 아닌가요?” 둘째, 허드슨과 테일러가 결혼해서 텍사스 집으로 온 후에 목동 제임스 딘이 테일러에게 하는 말. “이거 다 헐값에 사들인 땅이에요.”
<더 선>은 <자이언트>가 얼버무린 역사적 진실을 자세하게 복원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북셀러)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미국을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목차
1 엘리 매컬로 대령
2 진 앤 매컬로
3 피터 매컬로의 일기
4 엘리 매컬로
5 진 앤 매컬로
6 피터 매컬로의 일기
7 엘리 매컬로 대령
8 진 앤 매컬로
9 피터 매컬로의 일기
10 엘리 매컬로
11 진 앤 매컬로
12 피터 매컬로의 일기
13 엘리/티에테티
14 지니 매컬로
15 피터 매컬로의 일기
16 엘리/티에테티
17 지니 매컬로
18 피터 매컬로의 일기
19 엘리/티에테티
20 지니 매컬로
21 피터 매컬로의 일기
22 엘리/티에테티
23 지니
24 피터 매컬로의 일기
25 엘리/티에테티
26 지니
27 피터 매컬로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