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경계선 넘기: 새로운 문학연구의 모색
- 대등서명
- Death of a discipline
- 발행사항
- 고양 : 인간사랑, 2008
- 형태사항
- 229 p. ; 22 cm
- ISBN
- 9788974182342
- 청구기호
- 809 스849ㄱ
- 일반주기
- 색인수록 원저자명: Gayatri Chakravorty Spivak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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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4794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4794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스피박의 긴급제안: 관념의 유희인가 통찰력 있는 대안인가?
지식과 자본의 영역에서 불균형과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혹은 ‘개혁적인’ 비교문학이 필요한 이유와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가야트리 스피박(1942~)은 『경계선 넘기 ― 새로운 문학연구의 모색』(원제 Death of a Discipline, 2003)에서 이런 물음을 제기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그녀의 사유체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스피박은 평등과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녀는 구미중심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니는 억압성과 폭력성을 비판의 표적으로 삼고, (비교)문학을 통한 상상력, 윤리성, 탈중심 의식을 배양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한다. 중심을 설정하는 지배 권력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동시에 그녀는 비서구의 문학과 언어 및 목소리에 관심을 촉구한다.
스피박은 북반구(제1세계)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지식생산 구도에서 비가시화 된 남반구(제3세계)의 토착공간을 가시화할 것을 긴급하게 요청한다. 그녀는 강의실에서 문학교육을 통해 ‘텔레오포이에시스’(teleopoiesis,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상상력의 힘)를 배양할 것을 주문한다. 그녀는 (비교)문학 교육이 의미의 고정성과 확실성을 거부하는 열린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녀가 ‘의미를 결정할 수 없음’(undecidability)과 ‘아마도’(perhaps)를 반복하는 것도 의미의 중심을 설정하길 거부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스피박은 구미중심의 획일적 시각을 해체하는 데 필요한 ‘위반독서’(transgressive reading)를 강조한다. 구미의 지식과 언어와 문학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고 보고, 구미중심의 교육시스템, 지식생산, 교과과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울러서 그녀는 동일성을 혼종성으로 바꾸어가는 주체의 교섭능력에 큰 기대를 건다.
원제를 직역을 하면 ‘학문의 죽음’이다. 이것은 구미중심의 기존 비교문학(전체주의 정권에서 망명한 작가들의 작품연구)을 의미한다. 이 죽음은 ‘새로운’ 혹은 ‘개혁적인’ 비교문학의 등장을 요구한다. 새로운 비교문학이란 남반구의 문학과 언어 및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원제를 과감하게 의역하여『경계선 넘기 ― 새로운 문학연구의 모색』으로 제목을 정했다. 이 책에서 스피박은 3개의 키워드, 즉 경계선 넘기, 집합성 형성, 전지구성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사유체계를 밝힌다.
스피박은 제1세계와 제3세계로 나누는 이분법을 넘어서고, 국가, 민족, 문화 간 ‘경계선 넘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 이유는 경계선 넘기가 인식의 확장과 변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녀는 주변인(여성, 하부 프롤레타리아, 소수인종, 토착민 등) 간의 ‘집합성’을 형성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읽기에서 ‘가난과 익명‘ 속의 여성들 간의 우정과 공감 및 자매애를 집합성 형성의 한 예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전(全)지구적 세상을 상상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토착적인 것에서 초국가적인 것을 찾는 것이 가능할 때 불평등과 불균형이 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황사 및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은 전지구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스피박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윤리성 확립의 문제와 직결된다. 시공간을 가로질러 타 지역과 타자를 이해하려면(단순한 재현이 아닌) 전지구적 상상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강의실 내에서 문학교육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스피박의 결론이다.
그런데 스피박의 해체전략, 문학교육, 상상력 훈련, 윤리성 갖추기가 신식민주의가 엄연히 작동하는 현실정치 속에서 유효한 대안인지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아울러서 학문간 칸막이 현상과 비교문학 연구를 홀대하는 국내현실에 비춰볼 때 스피박의 긴급제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도 있다. 국내 대학에 비교문학과는 전무한 실정이며, 영문과의 교과과정도 대부분 구미의 정전 중심으로 짜여있다. 모두가 영어를 배우려 아우성이나 문학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편이다. 남반구 문학을 번역하려는 대한 관심도 미진하다. 우리의 현실토양은 스피박이 제안하는 ‘새로운’ 혹은 ‘개혁적인’ 비교문학이 자라기에는 너무나 척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세계 시민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강의실에서 문학교육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주장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비교)문학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그녀의 사유체계가 나이브한 것인지 아니면 통찰력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이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지식과 자본의 영역에서 불균형과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혹은 ‘개혁적인’ 비교문학이 필요한 이유와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가야트리 스피박(1942~)은 『경계선 넘기 ― 새로운 문학연구의 모색』(원제 Death of a Discipline, 2003)에서 이런 물음을 제기하며 대안을 모색한다. 그녀의 사유체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스피박은 평등과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녀는 구미중심주의와 자본주의가 지니는 억압성과 폭력성을 비판의 표적으로 삼고, (비교)문학을 통한 상상력, 윤리성, 탈중심 의식을 배양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한다. 중심을 설정하는 지배 권력을 비판하고 해체하는 동시에 그녀는 비서구의 문학과 언어 및 목소리에 관심을 촉구한다.
스피박은 북반구(제1세계)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지식생산 구도에서 비가시화 된 남반구(제3세계)의 토착공간을 가시화할 것을 긴급하게 요청한다. 그녀는 강의실에서 문학교육을 통해 ‘텔레오포이에시스’(teleopoiesis,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상상력의 힘)를 배양할 것을 주문한다. 그녀는 (비교)문학 교육이 의미의 고정성과 확실성을 거부하는 열린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녀가 ‘의미를 결정할 수 없음’(undecidability)과 ‘아마도’(perhaps)를 반복하는 것도 의미의 중심을 설정하길 거부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스피박은 구미중심의 획일적 시각을 해체하는 데 필요한 ‘위반독서’(transgressive reading)를 강조한다. 구미의 지식과 언어와 문학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고 보고, 구미중심의 교육시스템, 지식생산, 교과과정에 문제를 제기한다. 아울러서 그녀는 동일성을 혼종성으로 바꾸어가는 주체의 교섭능력에 큰 기대를 건다.
원제를 직역을 하면 ‘학문의 죽음’이다. 이것은 구미중심의 기존 비교문학(전체주의 정권에서 망명한 작가들의 작품연구)을 의미한다. 이 죽음은 ‘새로운’ 혹은 ‘개혁적인’ 비교문학의 등장을 요구한다. 새로운 비교문학이란 남반구의 문학과 언어 및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원제를 과감하게 의역하여『경계선 넘기 ― 새로운 문학연구의 모색』으로 제목을 정했다. 이 책에서 스피박은 3개의 키워드, 즉 경계선 넘기, 집합성 형성, 전지구성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사유체계를 밝힌다.
스피박은 제1세계와 제3세계로 나누는 이분법을 넘어서고, 국가, 민족, 문화 간 ‘경계선 넘기’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 이유는 경계선 넘기가 인식의 확장과 변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녀는 주변인(여성, 하부 프롤레타리아, 소수인종, 토착민 등) 간의 ‘집합성’을 형성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읽기에서 ‘가난과 익명‘ 속의 여성들 간의 우정과 공감 및 자매애를 집합성 형성의 한 예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전(全)지구적 세상을 상상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토착적인 것에서 초국가적인 것을 찾는 것이 가능할 때 불평등과 불균형이 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황사 및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은 전지구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스피박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윤리성 확립의 문제와 직결된다. 시공간을 가로질러 타 지역과 타자를 이해하려면(단순한 재현이 아닌) 전지구적 상상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강의실 내에서 문학교육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스피박의 결론이다.
그런데 스피박의 해체전략, 문학교육, 상상력 훈련, 윤리성 갖추기가 신식민주의가 엄연히 작동하는 현실정치 속에서 유효한 대안인지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아울러서 학문간 칸막이 현상과 비교문학 연구를 홀대하는 국내현실에 비춰볼 때 스피박의 긴급제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도 있다. 국내 대학에 비교문학과는 전무한 실정이며, 영문과의 교과과정도 대부분 구미의 정전 중심으로 짜여있다. 모두가 영어를 배우려 아우성이나 문학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편이다. 남반구 문학을 번역하려는 대한 관심도 미진하다. 우리의 현실토양은 스피박이 제안하는 ‘새로운’ 혹은 ‘개혁적인’ 비교문학이 자라기에는 너무나 척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세계 시민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강의실에서 문학교육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주장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비교)문학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그녀의 사유체계가 나이브한 것인지 아니면 통찰력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이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목차
역자서문
감사의 글
1장 경계선 넘기
2장 집합성
3장 전지구성
주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