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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자기 기만과 허위의 정치에 관해 풍자한다. 사기꾼들은 임금님의 새 옷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무능하고 멍청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기대감에 차서 사기꾼들의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지 않게 된다. 모두들 자신의 눈에 아름다운 새 옷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돌아보는 대신에 멍청하고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받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보이지도 않는 옷이 아름답다고 소리 높여 칭송한다.
독일의 작가인 잉고 슐체(Ingo Schulze)는 이 이야기에 빗대어 사유화와 영리화ㆍ시장경쟁체제의 확대가 절대적 진리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현실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러한 절대적 규칙에 스스로 얽매인 허위의 정치에서 벗어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다양한 대안들을 스스로 모색해갈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되찾자고 강조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새 옷’이라는 이 책의 제목도 《벌거벗은 임금님》의 원래 제목인 ‘임금님의 새 옷(Emperor's New Clothes)’에서 비롯된 것이다.
잉고 슐체는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문학의 형식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의 작가이다.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 동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심플 스토리』, 『아담과 에블린』 등의 작품들을 통해서 통일로 재구성된 독일의 사회 현실과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독일에서 김나지움의 필독서로 지정되어 있으며, 2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폭넓게 읽히고 있다.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지난해에 그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만해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한 항의
글쓴이가 머리말 부분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은 2011년 12월 18일에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 in Berlin)에서 열린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하나의 항의’라는 집회에서 비롯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하랄트 벨처(Harald Welzer)와 시사평론가 카롤린 엠케(Carolin Emcke), 작가 로저 빌렘젠(Roger Willemsen) 등이 주축이 되어 열린 이 집회는 금융위기 이후 유로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각국에서 긴축재정을 강요하며 저질러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파괴 행위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잉고 슐체도 이 집회에 연사로 참여해 강연을 했는데, 그 강연 내용은 유럽의 주요 언론들에 소개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 주제에 관해 2012년 2월 26일 드레스덴에서 다시 강연을 했고, 강연 원고를 좀 더 자세히 보완해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 이 작품이다.
이처럼 이 글은 강연 원고에 기초하고 있어서 마치 글쓴이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쉽고 친숙하며 분량도 길지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퇴보,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개인주의와 패배주의의 만연 등 오늘날 우리 시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에 관한 그의 비판은 청중들의 격정을 끌어내려는 듯이 날카로우며,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소리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때라고 웅변하는 그의 목소리는 비장하다.
기만과 허위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잉고 슐체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이 붕괴되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하나의 사고방식이 ‘임금님의 새 옷’처럼 우리를 자기 기만의 동굴에 가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린 ‘우리의 새 옷’은 지나친 사유화나 독점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던 전통적인 자유주의조차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며 이윤 추구만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것은 시장경제를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자연법이자 절대 진리로 선언했고, 이를 거스르거나 의문을 나타내는 일은 멍청하고 무능한 짓으로 규정했다. 시장경쟁체제의 확대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규칙이 되었으며, 그 이외의 어떠한 대안이나 선택의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치를 경제성장과 이윤추구의 목적 아래 종속시켰고, 규제 철폐가 만능의 열쇠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자유가 커질수록 복지도 커진다는 생각이 맹목적으로 신봉되었다. 동유럽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사유화와 시장경제에 반대하는 모든 경향들이 단번에 무력화되면서 이러한 ‘우리의 새 옷’은 스스로를 역사의 최종 승리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세계화의 과정에서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로 기능하며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1년에 만들어낸 ‘시장 동형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정치와 민주주의조차도 시장에 종속시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본모습을 잘 보여준다. ‘시장(markt)’이라는 단어에 ‘같은 모양의, 일치하는’ 등의 뜻을 나타내는 ‘동형(同形, konform)’이라는 낱말을 붙여서 만들어낸 ‘시장 동형적(marktkonforme)’이라는 표현은 ‘시장과 같은 모양의’, ‘시장과 일치하는’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결국 사회적 합의와 공공성을 구성해가는 민주주의조차도 시장 원리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러한 ‘우리의 아름다운 새 옷’이 지배한 지난 20여 년 동안 교육ㆍ의료ㆍ대중교통ㆍ예술 등 인간의 삶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사유화와 영리화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사회복지는 복지병 치유라는 명목으로 축소되었고, 고용은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나날이 불안정해졌다. 성장을 위한 투자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기업과 자산가들의 세금이 인하되었고, 노동조합과의 사회적 협약은 성장의 장애물로 배격되었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사회가 양극화하였고, 모든 사회마다 맹목적인 극우주의가 확대되면서 정치적 갈등도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기 기만과 허위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도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벌거벗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국제경쟁력이나 선진화와 같은 아름다운 새 옷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나 폐단 등을 신중히 검토해보고 옳고 그름을 따져 다른 대안을 최대한 풍부히 찾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일사불란한 행동을 강조하고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 더 열중하기 일쑤이다.
시장에 종속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사람들을 지배하던 두려움과 자기 기만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는 한 아이의 외침으로 본모습이 드러난다. 잉고 슐체는 이제는 우리도 두려움과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경제라는 절대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말고 현실의 문제를 직시해 다양한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초로서 그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있는 그대로 말하기(legein ta eonta)’의 태도를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이 보고 판단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공공의 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물론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아이의 외침 이후에도 임금님과 신하들이 태연히 행진을 계속했던 것처럼 진실을 외치는 한 사람의 용기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판단한 것을 믿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힘을 모아서 바로잡으려고 노력할 때 대안과 선택의 가능성은 확대된다.
그리고 그는 시장의 논리에 침해되지 않는 참된 민주주의의 회복을 강조한다. 잉고 슐체는 ‘통제 가능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닌 것처럼, ‘시장 동형적 민주주의’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시장에 전권을 준 결과 지난 20여 년 동안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되어왔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투기적인 금융자본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공공 자금을 쏟아붓거나, 국민들에게 삶의 조건들을 악화시키는 긴축정책을 강요해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정의롭지 못한 구조만을 형성해 왔을 뿐이다.
따라서 잉고 슐체는 현재의 사회적ㆍ윤리적ㆍ생태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민주주의가 시장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민주주의에 종속되어야 한다며 ‘민주주의 동형적 시장’을 강조한다. 민주주의 동형적 시장이란, 의심스러운 금융상품이든 식량투기든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허용하는 그런 시장이 아닌 시장, 아무리 돈벌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ㆍ윤리적ㆍ생태적 규범만큼은 내팽개치지 않는 시장, 사회적ㆍ윤리적ㆍ생태적 규범 속에서 경제를 실현하는 시장, 바로 그런 시장이다. 그리고 그런 시장을 건설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경제성장에 종속시키지 않는 정치라고 역설한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이다
이와 같은 잉고 슐체의 말은 얼핏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너무 개개인들의 자발성에만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잉고 슐체가 동독 출신이며 그의 강연이 이루어진 드레스덴도 과거 동독 지역이었다는 것을 돌아보면, 그의 말이 지니는 긴장과 설득력은 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동독 출신인 자신이 통일 이후에 겪어야 했던 심리적 압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동구의 붕괴와 함께 이미 확고부동하게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서구가 행한 것은 옳은 것이고, 동구가 행한 것은 그른 것입니다. 그른 것은 버리고 옳은 것을 취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테지요.”(69쪽) “따라서 우리는 이제 사람들이 그토록 입을 모아 아름답다고 말하는 옷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상한 현실을 돌아보는 대신에, 나 자신을 돌아보며 누가 나를 능력 없는 자라고 비웃지나 않을까, 멍청하다고 손가락질을 하지나 않을까, 다시 동독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침을 뱉지나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합니다.”(58쪽)
사람들이 자신을 그 끔찍했던 동독 체제를 그리워하는 얼빠진 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잉고 슐체의 고백은 그가 왜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로 말을 풀어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 안에 담긴 오랜 고뇌와 결연함을 짐작케 해준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그 경직된 사회가 아니라면 우리가 살 수 있는 세상은 모든 것이 사유화ㆍ상업화된 그런 세상밖에 없는 것일까요? 1989년 가을에 우리는 사유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지도 않았고, 노동자의 권익을 축소하라는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였습니다.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만약 효율성과 결부된 문제라면 모든 생산수단이 사회화되어 있던 과거 동독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꿋꿋하게 생산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차이스-예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는지요?”(77∼78쪽) “이제는 말해야 할 때입니다. 1989년 가을, 우리가 국민이라고 외쳤던 그때의 함성을 박물관에만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됩니다.”(138쪽)
독일의 작가인 잉고 슐체(Ingo Schulze)는 이 이야기에 빗대어 사유화와 영리화ㆍ시장경쟁체제의 확대가 절대적 진리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현실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러한 절대적 규칙에 스스로 얽매인 허위의 정치에서 벗어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다양한 대안들을 스스로 모색해갈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되찾자고 강조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새 옷’이라는 이 책의 제목도 《벌거벗은 임금님》의 원래 제목인 ‘임금님의 새 옷(Emperor's New Clothes)’에서 비롯된 것이다.
잉고 슐체는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문학의 형식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의 작가이다.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에 동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심플 스토리』, 『아담과 에블린』 등의 작품들을 통해서 통일로 재구성된 독일의 사회 현실과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독일에서 김나지움의 필독서로 지정되어 있으며, 2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폭넓게 읽히고 있다.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지난해에 그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만해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파괴에 대한 항의
글쓴이가 머리말 부분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은 2011년 12월 18일에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 in Berlin)에서 열린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하나의 항의’라는 집회에서 비롯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하랄트 벨처(Harald Welzer)와 시사평론가 카롤린 엠케(Carolin Emcke), 작가 로저 빌렘젠(Roger Willemsen) 등이 주축이 되어 열린 이 집회는 금융위기 이후 유로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각국에서 긴축재정을 강요하며 저질러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파괴 행위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잉고 슐체도 이 집회에 연사로 참여해 강연을 했는데, 그 강연 내용은 유럽의 주요 언론들에 소개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 주제에 관해 2012년 2월 26일 드레스덴에서 다시 강연을 했고, 강연 원고를 좀 더 자세히 보완해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 이 작품이다.
이처럼 이 글은 강연 원고에 기초하고 있어서 마치 글쓴이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쉽고 친숙하며 분량도 길지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퇴보,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개인주의와 패배주의의 만연 등 오늘날 우리 시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에 관한 그의 비판은 청중들의 격정을 끌어내려는 듯이 날카로우며,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소리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때라고 웅변하는 그의 목소리는 비장하다.
기만과 허위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잉고 슐체는 베를린 장벽과 소련이 붕괴되면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하나의 사고방식이 ‘임금님의 새 옷’처럼 우리를 자기 기만의 동굴에 가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린 ‘우리의 새 옷’은 지나친 사유화나 독점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던 전통적인 자유주의조차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몰아붙이며 이윤 추구만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것은 시장경제를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자연법이자 절대 진리로 선언했고, 이를 거스르거나 의문을 나타내는 일은 멍청하고 무능한 짓으로 규정했다. 시장경쟁체제의 확대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규칙이 되었으며, 그 이외의 어떠한 대안이나 선택의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치를 경제성장과 이윤추구의 목적 아래 종속시켰고, 규제 철폐가 만능의 열쇠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자유가 커질수록 복지도 커진다는 생각이 맹목적으로 신봉되었다. 동유럽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사유화와 시장경제에 반대하는 모든 경향들이 단번에 무력화되면서 이러한 ‘우리의 새 옷’은 스스로를 역사의 최종 승리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세계화의 과정에서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로 기능하며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11년에 만들어낸 ‘시장 동형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정치와 민주주의조차도 시장에 종속시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본모습을 잘 보여준다. ‘시장(markt)’이라는 단어에 ‘같은 모양의, 일치하는’ 등의 뜻을 나타내는 ‘동형(同形, konform)’이라는 낱말을 붙여서 만들어낸 ‘시장 동형적(marktkonforme)’이라는 표현은 ‘시장과 같은 모양의’, ‘시장과 일치하는’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결국 사회적 합의와 공공성을 구성해가는 민주주의조차도 시장 원리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그러한 ‘우리의 아름다운 새 옷’이 지배한 지난 20여 년 동안 교육ㆍ의료ㆍ대중교통ㆍ예술 등 인간의 삶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사유화와 영리화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사회복지는 복지병 치유라는 명목으로 축소되었고, 고용은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나날이 불안정해졌다. 성장을 위한 투자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기업과 자산가들의 세금이 인하되었고, 노동조합과의 사회적 협약은 성장의 장애물로 배격되었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사회가 양극화하였고, 모든 사회마다 맹목적인 극우주의가 확대되면서 정치적 갈등도 커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기 기만과 허위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도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벌거벗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국제경쟁력이나 선진화와 같은 아름다운 새 옷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나 폐단 등을 신중히 검토해보고 옳고 그름을 따져 다른 대안을 최대한 풍부히 찾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일사불란한 행동을 강조하고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데 더 열중하기 일쑤이다.
시장에 종속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사람들을 지배하던 두려움과 자기 기만은 “임금님은 벌거숭이”라는 한 아이의 외침으로 본모습이 드러난다. 잉고 슐체는 이제는 우리도 두려움과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경제라는 절대적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말고 현실의 문제를 직시해 다양한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기초로서 그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있는 그대로 말하기(legein ta eonta)’의 태도를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이 보고 판단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공공의 힘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물론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아이의 외침 이후에도 임금님과 신하들이 태연히 행진을 계속했던 것처럼 진실을 외치는 한 사람의 용기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판단한 것을 믿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힘을 모아서 바로잡으려고 노력할 때 대안과 선택의 가능성은 확대된다.
그리고 그는 시장의 논리에 침해되지 않는 참된 민주주의의 회복을 강조한다. 잉고 슐체는 ‘통제 가능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닌 것처럼, ‘시장 동형적 민주주의’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시장에 전권을 준 결과 지난 20여 년 동안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훼손되어왔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투기적인 금융자본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공공 자금을 쏟아붓거나, 국민들에게 삶의 조건들을 악화시키는 긴축정책을 강요해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정의롭지 못한 구조만을 형성해 왔을 뿐이다.
따라서 잉고 슐체는 현재의 사회적ㆍ윤리적ㆍ생태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민주주의가 시장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민주주의에 종속되어야 한다며 ‘민주주의 동형적 시장’을 강조한다. 민주주의 동형적 시장이란, 의심스러운 금융상품이든 식량투기든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허용하는 그런 시장이 아닌 시장, 아무리 돈벌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ㆍ윤리적ㆍ생태적 규범만큼은 내팽개치지 않는 시장, 사회적ㆍ윤리적ㆍ생태적 규범 속에서 경제를 실현하는 시장, 바로 그런 시장이다. 그리고 그런 시장을 건설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경제성장에 종속시키지 않는 정치라고 역설한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이다
이와 같은 잉고 슐체의 말은 얼핏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너무 개개인들의 자발성에만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잉고 슐체가 동독 출신이며 그의 강연이 이루어진 드레스덴도 과거 동독 지역이었다는 것을 돌아보면, 그의 말이 지니는 긴장과 설득력은 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동독 출신인 자신이 통일 이후에 겪어야 했던 심리적 압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동구의 붕괴와 함께 이미 확고부동하게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서구가 행한 것은 옳은 것이고, 동구가 행한 것은 그른 것입니다. 그른 것은 버리고 옳은 것을 취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테지요.”(69쪽) “따라서 우리는 이제 사람들이 그토록 입을 모아 아름답다고 말하는 옷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상한 현실을 돌아보는 대신에, 나 자신을 돌아보며 누가 나를 능력 없는 자라고 비웃지나 않을까, 멍청하다고 손가락질을 하지나 않을까, 다시 동독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침을 뱉지나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합니다.”(58쪽)
사람들이 자신을 그 끔찍했던 동독 체제를 그리워하는 얼빠진 놈으로 보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잉고 슐체의 고백은 그가 왜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로 말을 풀어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 안에 담긴 오랜 고뇌와 결연함을 짐작케 해준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그 경직된 사회가 아니라면 우리가 살 수 있는 세상은 모든 것이 사유화ㆍ상업화된 그런 세상밖에 없는 것일까요? 1989년 가을에 우리는 사유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지도 않았고, 노동자의 권익을 축소하라는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였습니다.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만약 효율성과 결부된 문제라면 모든 생산수단이 사회화되어 있던 과거 동독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꿋꿋하게 생산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차이스-예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는지요?”(77∼78쪽) “이제는 말해야 할 때입니다. 1989년 가을, 우리가 국민이라고 외쳤던 그때의 함성을 박물관에만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됩니다.”(138쪽)
목차
●머리말을 대신하여 : 개념의 끝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다
●우리의 아름다운 새옷 : 시장 동형적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 동형적 시장으로
작가의 주
책 속의 인물들
옮긴이의 말
글쓴이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