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도서돌베개 한국학총서 14
범애와 평등: 홍대용의 사회사상
- 개인저자
- 박희병 지음
- 발행사항
- 파주 : 돌베개, 2013
- 형태사항
- 448 p. ;. 24 cm
- 총서사항
- 돌베개 한국학총서
- ISBN
- 9788971995273
- 청구기호
- 151.58 박98ㅂ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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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G0015342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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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001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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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담헌 홍대용은 북학파의 영수, 혹은 북학파의 선도자인가?
-학계의 통설을 뒤집다
담헌은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領首), 혹은 북학파의 선도자(先導者)로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담헌 사상은 ‘북학사상’으로 명명되기도 하였다. 기왕의 모든 연구가 그런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통설을 뒤집는다. 저자는 본서에서 담헌 사상과 북학론의 관련을 재검토하고, 담헌의 사상을 ‘북학사상’으로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를 따져 묻는다.
유봉학 교수의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로 대표되는 기존의 연구는, 담헌의 ‘북학사상’이 낙론(洛論)의 사유구조 속에서 배태될 수 있었음을 해명하였다. 이런 관점은 조선 후기 사상사의 이해에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담헌의 사상을 낙론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규정해서는 담헌이 당대 조선의-나아가 당대 동아시아의-사상적 지형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이룩해 간 사상 형성 과정과 그 사상의 독특한 내질(內質)이 정당하게 포착되기 어렵다.
담헌의 사상은 사상 주체의 내적 조건과 외적 계기의 변증법적 교호작용(交互作用) 위에서 전개되어 간 측면이 강하고, 따라서 사상 주체의 대응 양상 내지 고투(苦鬪)의 양상이 각별히 주목될 필요가 있다. 담헌 북학사상의 낙론적 기초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주체적 대응 내지 고투가 사상(捨象)되고 만다. 그 결과 담헌 사상은 ‘북학사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되거나 박제화(剝製化)되어 버리며, 북학론(北學論)을 전개한 박지원이나 박제가의 사유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이해되고 말게 된다.
홍대용·박지원·박제가는 흔히 연암일파(燕巖一派) 내지 연암학파(燕巖學派)로 불리고 있으나, 그 사상의 지향점과 내질(內質)이 퍽 다르다. 박지원이나 박제가가 대체로 생산력(生産力)의 향상에 치중한 개혁론을 주장했다면, 홍대용은 그와 달리 사회적 관계의 평등을 제고(提高)하는 데 중점을 둔 개혁안을 구상하였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사상의 공통점도 없지 않지만, 그것만 강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오히려 차이에 예민하게 주목해야만 각인(各人)의 사상적 입지는 물론, 담헌 사상의 유니크한 측면이 정당하게 해명될 수 있다.
홍대용 사회사상의 핵심 키워드, ‘범애’와 ‘평등’
이 책에서는 홍대용의 사회사상에 대한 전면적 고찰이 시도된다. 근래, 주로 성리학=낙론(洛論)과의 관련 속에서 그의 사회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그런 접근법에 동의하지 않고 홍대용 사상의 형성 계기를 좀더 다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홍대용이 장자(莊子)와 묵자(墨子)를 주체적으로 원용(援用)한 데 주목하였다. 특히 홍대용 사회사상의 숙성 과정에서 묵자는 대단히 중요한 인소(因素)다. 그럼에도 이 점에 대한 해명은 종전에는 없었다.
묵자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는 조선에서 이단 중의 이단으로 간주되었으며, 전통시대의 학자 중 묵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인물은 홍대용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에서도 묵자는 잊혀진 사상가였다. 묵자가 재조명된 것은 18세기 후반, 청조(淸朝) 고증학자들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홍대용의 묵자에 대한 관심은 청조 고증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것이었다.
유가(儒家)가 묵자를 미워하며 배척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겸애’(兼愛)를 주장한 데 있다. 유가의 본령은 ‘차등애’(差等愛)에 있는데, 묵자의 겸애는 차별 없는 사랑, 곧 ‘평등애’(平等愛)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홍대용이 겸애를 진리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묵자의 겸애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한정되지만, 홍대용은 이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물론이려니와 ‘사람과 사물(즉 자연)’의 관계 및 ‘자족(自族)과 타족(他族)’의 관계로까지 확장시켜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 중에 보이는 ‘범애’(汎愛)라는 말은 홍대용에 의해 확장된 바로 이 새로운 겸애를 지칭한다. 사회와 자연을 아우르는 홍대용의 도저한 평등사상의 배후에는 바로 이 ‘범애’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이로써 홍대용의 사상은 성리학은 말할 나위도 없고 기존의 유학을 뛰어넘는 면모를 지니게 되었으며, 인간학과 자연학, 그리고 사회철학에 있어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면서 호한(浩瀚)하고 혁신적인 세계관을 정초해 낼 수 있었다. 사상의 이런 스케일과 창의성은 조선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근세 동아시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홍대용 사상 속의 ‘범애’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박애’라는 말과는 다르다. ‘박애’는 기독교적 연관을 갖는 말로서, 어디까지나 ‘인(人)-인(人)’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점에서 그것은 휴머니즘의 한계 안에 있다. 이와 달리 홍대용의 ‘범애’는 ‘인-인’만이 아니라, ‘인-물(物)’의 관계에까지 적용된다. 이 점에서, 자연에 대한 태도와 관점의 수정을 요구받고 있는-그것은 동시에 인간에 대한 관점의 수정과 연결되지만-현대인은 이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계의 통설을 뒤집다
담헌은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領首), 혹은 북학파의 선도자(先導者)로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담헌 사상은 ‘북학사상’으로 명명되기도 하였다. 기왕의 모든 연구가 그런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통설을 뒤집는다. 저자는 본서에서 담헌 사상과 북학론의 관련을 재검토하고, 담헌의 사상을 ‘북학사상’으로 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를 따져 묻는다.
유봉학 교수의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로 대표되는 기존의 연구는, 담헌의 ‘북학사상’이 낙론(洛論)의 사유구조 속에서 배태될 수 있었음을 해명하였다. 이런 관점은 조선 후기 사상사의 이해에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담헌의 사상을 낙론과의 연관성 속에서만 규정해서는 담헌이 당대 조선의-나아가 당대 동아시아의-사상적 지형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이룩해 간 사상 형성 과정과 그 사상의 독특한 내질(內質)이 정당하게 포착되기 어렵다.
담헌의 사상은 사상 주체의 내적 조건과 외적 계기의 변증법적 교호작용(交互作用) 위에서 전개되어 간 측면이 강하고, 따라서 사상 주체의 대응 양상 내지 고투(苦鬪)의 양상이 각별히 주목될 필요가 있다. 담헌 북학사상의 낙론적 기초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주체적 대응 내지 고투가 사상(捨象)되고 만다. 그 결과 담헌 사상은 ‘북학사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되거나 박제화(剝製化)되어 버리며, 북학론(北學論)을 전개한 박지원이나 박제가의 사유와 대동소이한 것으로 이해되고 말게 된다.
홍대용·박지원·박제가는 흔히 연암일파(燕巖一派) 내지 연암학파(燕巖學派)로 불리고 있으나, 그 사상의 지향점과 내질(內質)이 퍽 다르다. 박지원이나 박제가가 대체로 생산력(生産力)의 향상에 치중한 개혁론을 주장했다면, 홍대용은 그와 달리 사회적 관계의 평등을 제고(提高)하는 데 중점을 둔 개혁안을 구상하였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사상의 공통점도 없지 않지만, 그것만 강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오히려 차이에 예민하게 주목해야만 각인(各人)의 사상적 입지는 물론, 담헌 사상의 유니크한 측면이 정당하게 해명될 수 있다.
홍대용 사회사상의 핵심 키워드, ‘범애’와 ‘평등’
이 책에서는 홍대용의 사회사상에 대한 전면적 고찰이 시도된다. 근래, 주로 성리학=낙론(洛論)과의 관련 속에서 그의 사회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자는 그런 접근법에 동의하지 않고 홍대용 사상의 형성 계기를 좀더 다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홍대용이 장자(莊子)와 묵자(墨子)를 주체적으로 원용(援用)한 데 주목하였다. 특히 홍대용 사회사상의 숙성 과정에서 묵자는 대단히 중요한 인소(因素)다. 그럼에도 이 점에 대한 해명은 종전에는 없었다.
묵자는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는 조선에서 이단 중의 이단으로 간주되었으며, 전통시대의 학자 중 묵자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인물은 홍대용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에서도 묵자는 잊혀진 사상가였다. 묵자가 재조명된 것은 18세기 후반, 청조(淸朝) 고증학자들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홍대용의 묵자에 대한 관심은 청조 고증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것이었다.
유가(儒家)가 묵자를 미워하며 배척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겸애’(兼愛)를 주장한 데 있다. 유가의 본령은 ‘차등애’(差等愛)에 있는데, 묵자의 겸애는 차별 없는 사랑, 곧 ‘평등애’(平等愛)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홍대용이 겸애를 진리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묵자의 겸애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한정되지만, 홍대용은 이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물론이려니와 ‘사람과 사물(즉 자연)’의 관계 및 ‘자족(自族)과 타족(他族)’의 관계로까지 확장시켜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 중에 보이는 ‘범애’(汎愛)라는 말은 홍대용에 의해 확장된 바로 이 새로운 겸애를 지칭한다. 사회와 자연을 아우르는 홍대용의 도저한 평등사상의 배후에는 바로 이 ‘범애’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이로써 홍대용의 사상은 성리학은 말할 나위도 없고 기존의 유학을 뛰어넘는 면모를 지니게 되었으며, 인간학과 자연학, 그리고 사회철학에 있어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면서 호한(浩瀚)하고 혁신적인 세계관을 정초해 낼 수 있었다. 사상의 이런 스케일과 창의성은 조선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근세 동아시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홍대용 사상 속의 ‘범애’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박애’라는 말과는 다르다. ‘박애’는 기독교적 연관을 갖는 말로서, 어디까지나 ‘인(人)-인(人)’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점에서 그것은 휴머니즘의 한계 안에 있다. 이와 달리 홍대용의 ‘범애’는 ‘인-인’만이 아니라, ‘인-물(物)’의 관계에까지 적용된다. 이 점에서, 자연에 대한 태도와 관점의 수정을 요구받고 있는-그것은 동시에 인간에 대한 관점의 수정과 연결되지만-현대인은 이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목차
제1장 무엇이 문제며, 무엇을 할 건가
제2장 홍대용 사회사상 형성의 제 계기
1) 낙론(洛論) / 2) 유형원과 이익 / 3) 서학(西學) / 4) 중국 여행 / 5) <장자>와 <묵자> / 6) 양명학 / 7) 일본에 대한 전문(傳聞) / 8) 소결
제3장 홍대용 사회사상의 논리와 체계
1) <임하경륜>의 사회사상
2) <의산문답>의 사회사상
3) 종합적 고찰
제4장 홍대용의 사회사상과 북학론의 관련
1) ‘북학’이라는 용어
2) ‘북학파’라는 용어
3) ‘북학사상’이라는 용어
4) 북학론 형성과정에서 홍대용의 역할
5) 북학론과 홍대용 사상의 동이(同異)
6) 소결
제5장 조선 후기 사상사의 추이와 홍대용
1) 사상의 자유 추구
2) 화이론
3) 평등의 문제
제6장 비평적 전망
부록 - 아사미 케이사이와 홍대용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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