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프리즘 총서 20
인민
- 개인저자
- 마거릿 캐노번 저, 김만권 옮김
- 발행사항
- 서울: 그린비, 2015
- 형태사항
- 267p. : 23cm
- 총서사항
- 프리즘 총서
- ISBN
- 9788976827906
- 청구기호
- 340.1 캐195ㅇ
- 주제
- 인민
- 키워드
- 인민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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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5614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5614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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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자료실
책 소개
그린비 프리즘 총서 20번째 책으로 출간된 『인민』은 영미권에서 인민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거의 유일무이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인민’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 폭넓은 유럽 사상을 집약하고 있으며, ‘인민’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다의성 및 그와 결부된 다양한 문제를 해명한다. 더불어 과거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지구화 시대에 새롭게 확장된 인민의 의미와도 씨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정치적 쟁점과 인민 주권의 역사, 정치가들의 이해관계 등을 살펴보며 지금껏 확실히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던 인민의 다양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정치에서 인민은 어떻게 상상되어 왔는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기도 한
인민의 정체성을 파헤치는 단 하나의 체계적 연구서!!
‘인민’.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순한 사전적 정의를 지닌 이 단어는 모든 근대 민주주의 정치와 이론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민 개념이 지닌 핵심적인 중요성이 오히려 그 의미의 다양함과 모호함의 근원이 된다. 정치 세력이나 사건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마다 자신이 ‘인민을 대변’한다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은 크게는 한 국가의 시민을 뜻하지만 때로는 초국적 시민이나 한정된 민족.인종을 뜻하기도 하며, 종종 무력하게 정치가들에게 이용당하는 존재로 머물러 있지만 때로는 기존의 법과 정치에 저항해 집단적으로 자신을 표출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 시위대는 자신들이 서독 주민들과 함께 ‘하나의 인민’이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 몰락 후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내전 시기에는 각각의 소수 민족이 자신들을 ‘인민’이라 지칭했다. 독재 정권은 늘 자신을 정당화하며 ‘인민의 의지’를 들먹인다. 권력의 압제에 맞서 거리에 나서는 시민들은 ‘인민 주권’을 외친다. 이 모든 사례에서 각 세력은 자신을 ‘인민’과 동일시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인민의 의미는 매우 상이하다. 이처럼 인민은 정치적 역사 속에서 시시각각 모습을 변형시키는, 개방적이고 확고하게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방성 때문인지 인민은 정치학자들이 여간해서 손대고 싶어 하지 않는 개념이다. 최고 주권자이자 소외된 계급이며, 개별 민족과 인류 전체를 동시에 뜻하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개념인 인민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이유로 인민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학술적 논의는 사실상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마거릿 캐노번(Margaret Canovan)의 『인민』(The People, 2005)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린비 프리즘 총서 20번째 책으로 출간된 『인민』은 영미권에서 인민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거의 유일무이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인민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 폭넓은 유럽 사상을 집약하고 있으며, 인민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다의성 및 그와 결부된 다양한 문제를 해명한다. 더불어 과거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지구화 시대에 새롭게 확장된 인민의 의미와도 씨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정치적 쟁점과 인민 주권의 역사, 정치가들의 이해관계 등을 살펴보며 지금껏 확실히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던 인민의 다양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민』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마거릿 캐노번은 서구 학계에서 이미 한나 아렌트에 관한 연구자로 정평이 나 있다. 아렌트 연구와 더불어 인민과 이들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대중영합주의(populism)에 관심을 두고 있는 캐노번은 정치 이론이 ‘인민’과 ‘민족’을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역설한다. 캐노번이 인민을 늘 경계하고 때로는 경멸했으며 주권이란 개념을 멀리한 아렌트 연구자로 명성을 얻었음을 생각해 보면, 주권 인민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뜻밖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 곳곳에 숨겨진 아렌트와의 접점을 발견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인민이란 무엇인가?
‘우리, 미국 인민’(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이 자신들의 권위를 미국 헌법에 부여한 지 200년 이상 지났다. 이후 인민의 동의가 정당한 정부의 기반이라는 생각은 상식이 되었고, 민주주의에서 ‘인민 주권’은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정치적 권위의 궁극적 원천을 형성하는 ‘인민’이란 과연 무엇일까? 2부 「인민과 그 역사」에서 캐노번은 영국 내전과 미국 혁명 등을 거치며 인민의 의미가 긴 논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천해 온 역사를 살펴본다.
영미 정치 이론에서 ‘people’의 의미는 다음의 두 가지 정치적 모호성을 유발한다. 첫째, ‘people’은 ‘주권 인민’이 특정 기간 동안 일시적인 삶을 함께 영위하는 개인들의 단발적 집합체(a collection of individuals)일 뿐 아니라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집단적인 결속체(a collective body)라는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둘째, ‘people’은 보편적 인류를 뜻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선 집단 간 경계를 만들어 ‘시민권’과 유사한 의미의 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인민의 모호함이 오히려 정치가들에게는 유용한 도구가 된 것일까? 서로 다른 정치적 대의명분이 자신의 입장에 맞춰 제각각의 용법으로 인민을 ‘이용’해 온 탓에 이 개념에는 정치적 갈등의 역사과 쟁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인민의 범위와 관련된 ‘경계’와 주권 인민의 ‘권위’라는 쟁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인민’과 타자의 경계
인민의 범위를 국경으로 규정하는 것은 분명 편리한 기준이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 주듯 국경과 인민의 범위가 늘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하나의 국민이나 민족이 국경을 넘나들며 산재해 있음은 물론, 각각이 고유한 민족이라 주장하는 인민‘들’이 한 나라 안에 분포한 경우도 존재한다. 캐노번은 3장 「우리 자신과 타자들」에서 인민과 민족 간의 연결고리를 살피는 동시에 초국가적 인민들을 건설했던 유럽연합의 사례를 예로 들며 인민의 ‘경계’에 관한 쟁점들을 탐구한다. 그녀는 인민 주권관이 최초로 명확하게 제시된 곳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나 페니키아와 같은 내외부 경계가 명확한 도시국가였음을 떠올린다면, 민족적-인종문화적 관점에서 인민을 이해하고 있는 독일과 유고슬라비아의 사례는 의아한 것이 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한다. 서로 다른 영토를 밟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인민이다’(We are the one people)라고 외치며 자신들이 서독의 주민들과 함께 하나의 독일 인민임을 표명한 1989년 동독 시위대의 구호, 스스로를 분리된 또 다른 종류의 인민(민족)이라 주장하며 같은 국경 내 다른 민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유고슬라비아 내전은 인민의 경계가 지극히 모호함을 드러낸 대표적인 예다.
한편 인민의 ‘범주’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는 4장 「부분과 전체」에서 다루어진다. 여기서 캐노번은 인민이 정치 공동체의 부분과 전체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대중영합주의의 역동성 및 대중영합주의와 현대 민주주의의 불편한 관계를 고찰한다. 전체 인구 구성원(population)을 지칭하는 동시에 그 내부의 특정 집단(시대에 따라 정치 엘리트를 의미하기도 하고 이들로부터 배제된 ‘평민’을 의미하기도 했던)을 지칭하기도 하는 인민 개념의 양의성을 지적하며, 그녀는 이러한 양의성이 정치가들에게 유용한 지렛대가 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특히 정치가들로부터 빼앗긴 권력을 인민에게 되돌려 주자고 외치는 대중영합주의자들의 요구는 인민이 정치적 권력을 쥔 자들과는 구별되는 세력으로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반되게 전체로서 주권 인민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확대되는 모호함을 이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일상적 부재와 일시적 현존 사이, 주권 인민의 신화를 찾아서
서구 정치학자들에게 인민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존재로 일컬어지기 일쑤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인민이 정치 권력 투쟁에 이용만 당할 뿐 일상에서는 어떤 권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을 냉소하는 말에 가깝다. 한마디로 ‘인민 권력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인민은 직접 행동에 나서며 주권 인민의 권위를 드러낼까? 현실적으로 이런 권위가 행사될 수는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를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을까?
5장 「우리 주권 인민」에서 캐노번은 특정 기간 동안 일시적인 삶.이익.견해를 공유하는 개인들의 ‘집합체’와 개별 구성원을 초월해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결속체’ 양자 모두의 의미가 주권 인민 개념에 녹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게다가 이런 결속체는 평상시에는 추상적 영역에서 예비적 권력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고 권위 있는 정치적 행위 속에서는 그 현존을 느끼게끔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밝힌다. 이 점과 관련해 그녀는 인민의 권력을 ‘일상적 부재’와 ‘일시적 현존’ 사이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며, 인민이 일상의 침묵에서 깨어나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동원의 순간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초일상적 동원’이 부재하던 인민을 현존하는 권력으로 변모하게끔 만든다는 캐노번의 접근은 매우 설득력 있는데, 이는 권력은 공공장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만 존재한다는 아렌트의 ‘현상학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나아가 캐노번은 이런 인민의 초일상적 동원을 ‘정치 신화’라는 입장에서 분석한다. 그녀는 사회계약이라는 보편적 신화, 미국 건설이라는 지역적 건국 신화 모두가 이런 초일상적 동원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화들은 모두 인민이 어떻게 침묵에서 깨어나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정체를 형성하며 스스로를 구원했는지에 대해 말한다고 주장한다. 즉 주권자로서의 인민이 정치체의 건설자이자 구원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캐노번은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던 순간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예로 들며, 인민에게는 공통의 목적을 지니고 하나의 결속된 집단체로 변모해 행동에 나서는 초일상적 순간을 만들어 낼 잠재력이 있음을 역설한다. 전체 인구 집단으로서의 인민이 ‘구원적 현존’으로서의 신화적 인민으로 변모되는 이중적 삶과, 이런 이중적 삶이 제기하는 허구 및 진정성과 관련된 쟁점은 6장 「주권 인민의 신화」에 정리되어 있다.
이처럼 인민은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모호한 정치 개념 중 하나다. 그런데 인민 개념에 내재한 바로 이 불명확성과 모호성 때문에 모든 정치적 대의명분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개념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여러 근대 정치 체제들은 모두 인민 주권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형태는 상이했는데, 이 역시 인민이 개방적이고 확고하게 정의되지 않는 개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민의 무정형성이 이러한 다양성의 근거가 된 셈이다.
인민이라는 개념, 그리고 이 용어와 결부된 수많은 신념과 담론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는 있겠지만, 오늘날 이 개념을 성찰하지 않고서 정치를 실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민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지구화와 통일 시대, 그리고 인민
인민만큼이나 모호함으로 악명이 높은 ‘민족’까지 언급하며, 캐노번은 인민을 살피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해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2005),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2007), 『정치가 떠난 자리』(2013) 등을 펴내며 공화주의 이론, 정의론, 민주주의 이론, 정치철학사에 관심을 갖고 ‘삶의 방식으로서 정치 철학’에 깊은 애정을 두고 있는 옮긴이 김만권은 우리 사회가 『인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지구화 시대의 문제가 있다. 이는 다시 두 가지 쟁점으로 나뉘는데 이주의 문제와 정치적 지역주의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인류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자고 외치다가도 우리 내부로 들어오고자 하는 이주자들에게는 적대적인 것이 전 세계의 공통적인 태도다. 경제적.정치적 난민이 되어 세계를 떠도는 이주자의 수가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가장 많은 이주자들이 드나들고 있지만, 이들을 어떻게 하나의 ‘우리 인민’으로 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현실이다. 또한 정치적 지역주의의 문제도 적지 않다. 통합된 공동체를 위해 각 연합국의 구성원을 하나의 ‘유럽 인민’으로 묶어 ‘유럽 시민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를 부여한 유럽연합처럼, 동아시아에서도 지역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거나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는 유럽의 경우처럼 새로운 인민을 건설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 건설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각종 도전들까지 체계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인민』은 우리가 앞으로 착수할 수도 있을 과제에 필요한 단초들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인민』은 통일 문제를 생각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 준다. 한반도에는 자신이야말로 고유한 민족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두 개의 국가로 분열된 ‘하나의 인민’이 존재한다. 통일 시대가 왔을 때 남북한 양자 간의 정체성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우리 인민’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민의 다양한 개념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야만 할 것이다.
근대 정치에서 인민은 어떻게 상상되어 왔는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기도 한
인민의 정체성을 파헤치는 단 하나의 체계적 연구서!!
‘인민’.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순한 사전적 정의를 지닌 이 단어는 모든 근대 민주주의 정치와 이론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민 개념이 지닌 핵심적인 중요성이 오히려 그 의미의 다양함과 모호함의 근원이 된다. 정치 세력이나 사건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마다 자신이 ‘인민을 대변’한다고 외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은 크게는 한 국가의 시민을 뜻하지만 때로는 초국적 시민이나 한정된 민족.인종을 뜻하기도 하며, 종종 무력하게 정치가들에게 이용당하는 존재로 머물러 있지만 때로는 기존의 법과 정치에 저항해 집단적으로 자신을 표출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 시위대는 자신들이 서독 주민들과 함께 ‘하나의 인민’이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 몰락 후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내전 시기에는 각각의 소수 민족이 자신들을 ‘인민’이라 지칭했다. 독재 정권은 늘 자신을 정당화하며 ‘인민의 의지’를 들먹인다. 권력의 압제에 맞서 거리에 나서는 시민들은 ‘인민 주권’을 외친다. 이 모든 사례에서 각 세력은 자신을 ‘인민’과 동일시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인민의 의미는 매우 상이하다. 이처럼 인민은 정치적 역사 속에서 시시각각 모습을 변형시키는, 개방적이고 확고하게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방성 때문인지 인민은 정치학자들이 여간해서 손대고 싶어 하지 않는 개념이다. 최고 주권자이자 소외된 계급이며, 개별 민족과 인류 전체를 동시에 뜻하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개념인 인민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이유로 인민 개념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학술적 논의는 사실상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마거릿 캐노번(Margaret Canovan)의 『인민』(The People, 2005)은 큰 의미를 지닌다. 그린비 프리즘 총서 20번째 책으로 출간된 『인민』은 영미권에서 인민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거의 유일무이한 연구서이다. 이 책은 인민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 폭넓은 유럽 사상을 집약하고 있으며, 인민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다의성 및 그와 결부된 다양한 문제를 해명한다. 더불어 과거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지구화 시대에 새롭게 확장된 인민의 의미와도 씨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정치적 쟁점과 인민 주권의 역사, 정치가들의 이해관계 등을 살펴보며 지금껏 확실히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던 인민의 다양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민』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마거릿 캐노번은 서구 학계에서 이미 한나 아렌트에 관한 연구자로 정평이 나 있다. 아렌트 연구와 더불어 인민과 이들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대중영합주의(populism)에 관심을 두고 있는 캐노번은 정치 이론이 ‘인민’과 ‘민족’을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역설한다. 캐노번이 인민을 늘 경계하고 때로는 경멸했으며 주권이란 개념을 멀리한 아렌트 연구자로 명성을 얻었음을 생각해 보면, 주권 인민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뜻밖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 곳곳에 숨겨진 아렌트와의 접점을 발견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인민이란 무엇인가?
‘우리, 미국 인민’(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이 자신들의 권위를 미국 헌법에 부여한 지 200년 이상 지났다. 이후 인민의 동의가 정당한 정부의 기반이라는 생각은 상식이 되었고, 민주주의에서 ‘인민 주권’은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정치적 권위의 궁극적 원천을 형성하는 ‘인민’이란 과연 무엇일까? 2부 「인민과 그 역사」에서 캐노번은 영국 내전과 미국 혁명 등을 거치며 인민의 의미가 긴 논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천해 온 역사를 살펴본다.
영미 정치 이론에서 ‘people’의 의미는 다음의 두 가지 정치적 모호성을 유발한다. 첫째, ‘people’은 ‘주권 인민’이 특정 기간 동안 일시적인 삶을 함께 영위하는 개인들의 단발적 집합체(a collection of individuals)일 뿐 아니라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집단적인 결속체(a collective body)라는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둘째, ‘people’은 보편적 인류를 뜻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선 집단 간 경계를 만들어 ‘시민권’과 유사한 의미의 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러한 인민의 모호함이 오히려 정치가들에게는 유용한 도구가 된 것일까? 서로 다른 정치적 대의명분이 자신의 입장에 맞춰 제각각의 용법으로 인민을 ‘이용’해 온 탓에 이 개념에는 정치적 갈등의 역사과 쟁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인민의 범위와 관련된 ‘경계’와 주권 인민의 ‘권위’라는 쟁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인민’과 타자의 경계
인민의 범위를 국경으로 규정하는 것은 분명 편리한 기준이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 주듯 국경과 인민의 범위가 늘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하나의 국민이나 민족이 국경을 넘나들며 산재해 있음은 물론, 각각이 고유한 민족이라 주장하는 인민‘들’이 한 나라 안에 분포한 경우도 존재한다. 캐노번은 3장 「우리 자신과 타자들」에서 인민과 민족 간의 연결고리를 살피는 동시에 초국가적 인민들을 건설했던 유럽연합의 사례를 예로 들며 인민의 ‘경계’에 관한 쟁점들을 탐구한다. 그녀는 인민 주권관이 최초로 명확하게 제시된 곳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나 페니키아와 같은 내외부 경계가 명확한 도시국가였음을 떠올린다면, 민족적-인종문화적 관점에서 인민을 이해하고 있는 독일과 유고슬라비아의 사례는 의아한 것이 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한다. 서로 다른 영토를 밟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인민이다’(We are the one people)라고 외치며 자신들이 서독의 주민들과 함께 하나의 독일 인민임을 표명한 1989년 동독 시위대의 구호, 스스로를 분리된 또 다른 종류의 인민(민족)이라 주장하며 같은 국경 내 다른 민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 유고슬라비아 내전은 인민의 경계가 지극히 모호함을 드러낸 대표적인 예다.
한편 인민의 ‘범주’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는 4장 「부분과 전체」에서 다루어진다. 여기서 캐노번은 인민이 정치 공동체의 부분과 전체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대중영합주의의 역동성 및 대중영합주의와 현대 민주주의의 불편한 관계를 고찰한다. 전체 인구 구성원(population)을 지칭하는 동시에 그 내부의 특정 집단(시대에 따라 정치 엘리트를 의미하기도 하고 이들로부터 배제된 ‘평민’을 의미하기도 했던)을 지칭하기도 하는 인민 개념의 양의성을 지적하며, 그녀는 이러한 양의성이 정치가들에게 유용한 지렛대가 되어 왔음을 시사한다. 특히 정치가들로부터 빼앗긴 권력을 인민에게 되돌려 주자고 외치는 대중영합주의자들의 요구는 인민이 정치적 권력을 쥔 자들과는 구별되는 세력으로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반되게 전체로서 주권 인민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확대되는 모호함을 이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일상적 부재와 일시적 현존 사이, 주권 인민의 신화를 찾아서
서구 정치학자들에게 인민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존재로 일컬어지기 일쑤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인민이 정치 권력 투쟁에 이용만 당할 뿐 일상에서는 어떤 권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을 냉소하는 말에 가깝다. 한마디로 ‘인민 권력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인민은 직접 행동에 나서며 주권 인민의 권위를 드러낼까? 현실적으로 이런 권위가 행사될 수는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를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을까?
5장 「우리 주권 인민」에서 캐노번은 특정 기간 동안 일시적인 삶.이익.견해를 공유하는 개인들의 ‘집합체’와 개별 구성원을 초월해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결속체’ 양자 모두의 의미가 주권 인민 개념에 녹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게다가 이런 결속체는 평상시에는 추상적 영역에서 예비적 권력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고 권위 있는 정치적 행위 속에서는 그 현존을 느끼게끔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밝힌다. 이 점과 관련해 그녀는 인민의 권력을 ‘일상적 부재’와 ‘일시적 현존’ 사이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며, 인민이 일상의 침묵에서 깨어나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동원의 순간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초일상적 동원’이 부재하던 인민을 현존하는 권력으로 변모하게끔 만든다는 캐노번의 접근은 매우 설득력 있는데, 이는 권력은 공공장에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만 존재한다는 아렌트의 ‘현상학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나아가 캐노번은 이런 인민의 초일상적 동원을 ‘정치 신화’라는 입장에서 분석한다. 그녀는 사회계약이라는 보편적 신화, 미국 건설이라는 지역적 건국 신화 모두가 이런 초일상적 동원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화들은 모두 인민이 어떻게 침묵에서 깨어나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정체를 형성하며 스스로를 구원했는지에 대해 말한다고 주장한다. 즉 주권자로서의 인민이 정치체의 건설자이자 구원자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캐노번은 동구 공산권이 무너지던 순간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예로 들며, 인민에게는 공통의 목적을 지니고 하나의 결속된 집단체로 변모해 행동에 나서는 초일상적 순간을 만들어 낼 잠재력이 있음을 역설한다. 전체 인구 집단으로서의 인민이 ‘구원적 현존’으로서의 신화적 인민으로 변모되는 이중적 삶과, 이런 이중적 삶이 제기하는 허구 및 진정성과 관련된 쟁점은 6장 「주권 인민의 신화」에 정리되어 있다.
이처럼 인민은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모호한 정치 개념 중 하나다. 그런데 인민 개념에 내재한 바로 이 불명확성과 모호성 때문에 모든 정치적 대의명분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개념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여러 근대 정치 체제들은 모두 인민 주권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 형태는 상이했는데, 이 역시 인민이 개방적이고 확고하게 정의되지 않는 개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인민의 무정형성이 이러한 다양성의 근거가 된 셈이다.
인민이라는 개념, 그리고 이 용어와 결부된 수많은 신념과 담론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는 있겠지만, 오늘날 이 개념을 성찰하지 않고서 정치를 실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민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지구화와 통일 시대, 그리고 인민
인민만큼이나 모호함으로 악명이 높은 ‘민족’까지 언급하며, 캐노번은 인민을 살피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해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2005),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2007), 『정치가 떠난 자리』(2013) 등을 펴내며 공화주의 이론, 정의론, 민주주의 이론, 정치철학사에 관심을 갖고 ‘삶의 방식으로서 정치 철학’에 깊은 애정을 두고 있는 옮긴이 김만권은 우리 사회가 『인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지구화 시대의 문제가 있다. 이는 다시 두 가지 쟁점으로 나뉘는데 이주의 문제와 정치적 지역주의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인류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자고 외치다가도 우리 내부로 들어오고자 하는 이주자들에게는 적대적인 것이 전 세계의 공통적인 태도다. 경제적.정치적 난민이 되어 세계를 떠도는 이주자의 수가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가장 많은 이주자들이 드나들고 있지만, 이들을 어떻게 하나의 ‘우리 인민’으로 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현실이다. 또한 정치적 지역주의의 문제도 적지 않다. 통합된 공동체를 위해 각 연합국의 구성원을 하나의 ‘유럽 인민’으로 묶어 ‘유럽 시민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를 부여한 유럽연합처럼, 동아시아에서도 지역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거나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는 유럽의 경우처럼 새로운 인민을 건설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 건설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각종 도전들까지 체계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인민』은 우리가 앞으로 착수할 수도 있을 과제에 필요한 단초들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인민』은 통일 문제를 생각하는 데도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 준다. 한반도에는 자신이야말로 고유한 민족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두 개의 국가로 분열된 ‘하나의 인민’이 존재한다. 통일 시대가 왔을 때 남북한 양자 간의 정체성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우리 인민’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민의 다양한 개념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야만 할 것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1장 / 서론
1. 인민의 정체성 찾기
2. 행위하는 주권 인민과 신화로서 주권 인민
2장 / 인민과 그 역사
1. 로마에서의 서곡: 행위하는 인민
2. 예비적 권력으로서 인민: 그림자에서 실체로
3. 영국 내전에서 미국 혁명으로: 저항에 나선 영국 인민
4. 우리, 인민 : 미국 혁명과 그 중요성
5. 인민 주권과 19세기 영국의 의회 개혁
6. 인민 정부와 인민
결론
3장 / 우리 자신과 타자들: 인민, 민족, 인류
1. 인민과 민족
2. 인민-건설
3. 인민들과 사람들
4장 / 부분과 전체: 인민, 대중영합주의, 민주주의
1. 평민
2. 당대 자유민주정체들에 나타나는 대중영합주의
3. 대중영합주의의 정체성 찾기
4. 대중영합주의, 민주주의, 인민
5장 / 우리 주권 인민
1. 인민 주권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2. 인민 주권은 행사될 수 있는 것인가?
결론
6장 / 주권 인민의 신화
1. 인민의 신화들
2. 꾸며 낸 이야기로서 인민
3. 신화와 정치적 실재로서 인민
결론
7장 /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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