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20세기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광기와 암흑, 혁명과 회색의 20세기
- 발행사항
- 서울 : Humanist(휴머니스트 출판그룹), 2014
- 형태사항
- 134 p. :. 천연색삽도, 지도, 도표 ;. 30 cm
- ISBN
- 9788958627272
- 청구기호
- 909.5 르35ㄹ
소장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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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20세기 인류는 과거의 수많은 철학자와 혁명가가 세운 목표들 중 많은 것을 달성했다. 하지만 많은 길을 에둘러 갔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통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 책은 인류가 계몽주의에서 출발하여 혁명과 반혁명을 거듭하면서 공존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그 구불구불한 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절대왕정의 압제에서부터 제국의 몰락과 국가의 폭력, 시민사회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텍스트와 도표를 차분히 음미하다 보면, 광기로 시작된 근대 역사가 어떻게 암흑과 적색과 회색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으며, 앞으로 우리 인류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성찰의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이 땅의 모든 ‘회색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
1. ‘기억과의 전쟁’에 나선 모든 이를 위한 지침서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인 《르몽드 세계사(1, 2, 3)》을 기획해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시선이 이번에는 20세기 과거로 향했다. 20세기는 어떤 시대였을까? 일반적으로 20세기는 파시즘과 전쟁, 대량 학살로 점철된 폭력의 시대와 냉전으로 인한 양극화를 거쳐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로 끝맺은 시대인 동시에, 교통.통신 등 과학기술의 발전뿐 아니라 합리주의와 민주주의, 평등과 인권 사상이 발전한 시대로 기억된다. 20세기로부터 벗어난 지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 100년의 역사는 오늘날 지구촌이 앓고 있는 문제점들의 맹아를 모두 담고 있기에, 20세기를 다시금 돌아보며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이 책 《르몽드 20세기사》는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광기와 암흑, 혁명과 회색의 20세기에 관한 기록을 담은 역사 평론서이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20세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을 이끈 쿠르스크 전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동부전선에 최정예부대를 배치한 독일군을 소련군이 대파한 이 전투 덕분에 연합국은 서부전선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1944년 가을, 막 해방을 맞이한 파리 시민을 대상으로 한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이 ‘어떤 국가가 승전에 가장 많이 기여했는가’를 물었다. 응답자의 61%가 소련, 29%가 미국이라 답했는데, 60년 뒤 같은 기관에서 동일한 조사를 했을 때는 응답자의 58%가 미국, 20%가 소련이라 답했다. 《르몽드 20세기사》 서문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이는, 실제 역사와 멀어져가는 기억에 대한 소소한 언급일 수도 있지만, 기억은 결국 승리한 자, 권력을 쥔 세력이 차지하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역사는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성찰케 하는 에피소드다.
이렇듯 기억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재구성되는 법이며, 역사 또한 재구성되고 새롭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한때 역사수정주의는 사회주의 국가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좌우 이념에 상관없이 모든 권력에 복무한다. 일찍이 조지 오웰이 말했듯이 “과거를 지배한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한 자가 과거를 지배”하는 것이다. “기억은 기록의 메커니즘이라기보다 선택의 메커니즘”이며, “현재의 욕망을 과거 속에서 읽게 해준다”는 에릭 홉스봄의 언명처럼, 현재가 우리와 함께하는 한 20세기 역사 또한 끊임없이 재구성되며 계속될 것이다. 20세기를 제대로 알고 가까이 두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 《르몽드 20세기사》는 기억과 역사가 괴리되어 잊히거나 누락된 지난 100년의 역사에 주목하며, 이들 역사가 말하는 함의가 무엇인지, 이면을 읽어낼 것을 요청한다.
이 책이 목적은 간명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를 축하하는, 전체주의적인 담론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한다. 한마디로 이 책의 목적은 특정 사실들을 복원하고 잊힌 사건들을 부활하며, 지적인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머리말 <‘자신만을 위한 역사’>) 특히 최근 ‘기억과의 전쟁’이 한창인 한국 사회로서는 지난 20세기 역사가 어느 정도까지 도구화되고 지배자의 선전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지, 망각을 조작하고 새로운 지배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훌륭한 반면교사 역할을 할 것이다. 아울러 기억과의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적 답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20세기는 이제 끝난, 과거의 세기일까? 우리는 그 시대와 진정 결별했을까? 안타깝게도 20세기가 낳은 광기는 여전히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일례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시기는 1940년대이지만 이 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취급되고 있다. 20세기와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인종과 종교 갈등으로 크고 작은 국지전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아직도 20세기의 연장선에서 살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리하여 20세기를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데, 마침 20세기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역사 평론서가 출간되었다. 바로《르몽드 20세기사》다. ― <기억과의 전쟁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해>(6쪽) 중에서
2. 광기, 암흑, 적색, 회색의 키워드로 읽는 20세기사
이 책 《르몽드 20세기사》는 지난 20세기를 네 시기로 구분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부터 1929년 대공황까지를 다룬 ‘광기의 시대’, 대공황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는 1945년까지를 다룬 ‘암흑의 시대’, 1950년대 냉전과 제3세계 국가들의 해방을 다룬 ‘적색의 시대’, 그리고 영국 광부들의 파업과 베를린 장벽 붕괴를 거쳐 아시아에서의 금융 위기까지를 다룬 ‘회색의 시대’가 그것이다.
이 책은 각 시대별 주요한 기억의 재구성뿐 아니라 기억에서 사라진 역사를 다시금 불러들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부유럽의 제국들이 붕괴된 까닭,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숨겨진 역사와 파시스트와 니치스 체제를 후원한 기업들, 뉴딜 정책이 예술가를 후원함으로써 일어난 변화와 카메룬의 알려지지 않은 전쟁,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불러온 자유세계와 독재의 결탁 등에 관한 주제는 우리가 몰랐던 20세기를 새롭게 들려준다. 국제 분쟁, 식민제국, 식민지 독립전쟁과 대공황, 대량 학살과 혁명, 냉전, 세계화 등을 다룬 전체 41개 주제는 20세기 역사를 가감 없이 들려줌으로써 현재까지 이어지는 모순된 상황에 대한 현상적 이해를 넘어 본질적인 갈등의 뿌리를 이해하게 한다.
더불어 《르몽드 20세기사》는 의학의 발달과 무기의 발전사뿐 아니라 교통·통신의 발달, 도시의 변천, 종교의 세계화, 인구 불평등, 양성 평등 문제와 에너지 경쟁 등과 같은 거시적인 주제의 역사적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은 해당 주제를 보편적 입장에서 접근하기보다 지역과 문화, 역사적 배경에 따라 주제에 담긴 함의 또한 천차만별이므로, 개별 문제에 대한 접근은 지역마다 적합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20세기에 관한 텍스트뿐 아니라 이를 수치화하고 도표화한 데이터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1부 <더 많이 죽이기 위해 더 많은 지능이 동원되다>에는 다이너마이트에서 요격 미사일로 변화 발전한 무기의변천사를 도표로 시각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쟁의 기술이 얼마나 정교해지고, 학살의 규모가 얼마나 커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술의 진보가 과연 인간의 행복을 지속적으로 보장해주는가 하는 철학적 질문과 마주하게 한다. 이러한 지도와 그래프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들이다.
이 책은 한국 독자를 고려해 해제와 용어 해설을 덧붙였다. 특히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교수가 들려주는 짧지만 강렬한 해제는 독자로 하여금 각 시대별 특징과 문제의식을 깊이 있게 해석하는 눈을 가지게 할 것이다. 한국 독자에게는 생소한 역사 사건과 인물, 단체에 대해 상세히 정리한 ‘용어 해설’ 또한 독자의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3. 20세기의 첫 20년, 혁명에 대한 공포가 불러온 ‘광기의 시대’ - 이 책의 주요 내용 1
이 책의 1부는 20세기의 첫 20년의 시기를 ‘광기의 시대’로 명명한다. 세계대전으로 피투성이가 된 데다 세상에 강요한 유럽의 질서가 내부로부터 흔들린 이 시기는 ‘광기’란 단어와 잘 어울린다. 이 시기 굵직한 사건으로는 러시아제국, 독일제국, 오스만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같은 거대 제국의 몰락을 들 수 있다. 제국의 몰락으로 인한 힘의 공백기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성공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성공에는 민주국가를 표방한 10개 연합국이 공산주의의 확산이 두려워 황제파인 ‘백군’을 지지하자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러시아를 지켜내기 위해 러시아 민중이 볼셰비키를 지지한 덕분에 가능했다. 이 책은 특히 러시아 혁명의 성공에 따른 서구에서의 혁명의 물결과 이로부터 파생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이후 냉전의 시대가 출현한 배경이 되고 있음을 상세히 논하고 있다. 이 시기 우리가 몰랐던 역사로 이 책은 1915~18년 사이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을 들려준다. 최소 100만 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국가가 자국민을 대량 학살한 첫 사례로, ‘20세기 최초의 대량 학살’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터키를 비롯한 많은 국가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군 지휘를 맡은 조제프 조프르 장군에 관한 희극적 비사를 싣고 있는데, 거짓 정보를 활용해 전쟁 영웅으로 탈바꿈한 조프르 장군에 관한 이야기는 단지 프랑스에만 한정된 과거 사건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 약 140차례의 분쟁이 일어났으며, 그중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15차례의 주요 분쟁으로 100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특히 1939년 이전에 20여 차례였던 분쟁이 1945년 이후에는 100여 회에 이르렀다. 새롭고 더 값비싼, 강력하고 정교한 무기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가속화된 ‘진보’로 인해 인간의 자기결정권은 계속해서 침해받고 있다. ― <더 많이 죽이기 위해 더 많은 지능이 동원되다>(16쪽) 중에서
1915년 4월 24일 오스만제국 경찰은 수백 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계 지식인들을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
불에서 체포한 뒤 강제 이송해 암살했다. 5월에는 오스만제국 내 아르메니아 주민을 시리아 사막으로 이주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믿을 만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그들 중 절반 이상인 100만 명가량이 집단 학살로 죽거나, 강제 이주 도중에 탈진해 사망하거나, 난민수용소에서 기아나 질병으로 숨졌다. 국가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인의 재산을 몰수했다. 강제 이주와 처형, 학대로 아르메니아인 그리스 정교회 신자와 동쪽 지방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수천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이러한 사실은 조직적인 인종 학살 계획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 <아르메니아인 대량 학살, 범죄 그리고 범죄의 부정>(19쪽) 중에서
4.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암흑의 시대’의 빛과 그림자 - 이 책의 주요 내용 2
2부는 1930년대와 40년대 암흑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1929년 대공황에서 시작된 이 시기에 이탈리아에서는 파시즘이, 독일에서는 나치즘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기업 경영자, 은행가, 지주 등의 재정적 지원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2차 세계대전은 기업과 정치권이 결탁한 정경유착이 불러온 참사라 하겠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한 줄기 빛은 있었으니, 에스파냐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 전 세계에서 모여든 지원병으로 구성된 국제여단이 그러하다. 3만 5,000명에 이르렀던 이들은 1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창설 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이들의 패배는 제2차 세계대전과 대량 학살의 전주곡과도 같았지만, 이들의 정신은 알제리 독립을 도운 프랑스인과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활동가들을 통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이 기존 역사서와 다른 점은 미국의 경기부양책인 뉴딜 정책을 설명한 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자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지원한 이 정책 덕분에 빈민가의 모습을 담은 포토 르포르타주 분야가 발달하고 흑인 음악과 포크송이 발굴되고 민중 연극과 회화가 빛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해석은 뉴딜 정책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게 한다. 2부에서는 기억이 변화하듯 역사적 해석이 달라지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2009년 유럽의회는 1939년의 독소불가침조약을 근거로 나치즘과 함께 공산주의를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자로 규정했는데, 과연 이것이 발전된 역사 해석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1929년 대공황으로 실업 상태에 빠진 수백만 명의 노동자 중에는 수천 명의 예술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예술가들도 빠뜨리지 않고 정부기관에서 그들을 고용해 보수를 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 덕분에 자유롭고 풍요로운 창조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예술이 대중에게 봉사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 <뉴딜정책, 예술가들도 지원하다>(42쪽) 중에서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총리에 지명되면서 대기업 회장들은 나치스와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1933년 2월 20일 기업가들은 샤흐트의 충고에 따라 새 총리의 경제 정책을 듣기 위해 헤르만
괴링의 초대에 응했으며, 나치스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후원자들’>(45쪽) 중에서
1936년 11월 7일, 에스파냐 마드리드. 국제여단은 에스파냐공화국 군대 편에 서서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그 뒤 2년이 채 안 된 1938년 9월 23일 마지막 국제여단 단원이 전선을 떠났다. ‘라 파시오나리아(열정의 꽃)’라 불리는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는 그들에게 “자랑스레 떠나도 좋습니다. 당신은 역사입니다. 당신은 전설입니다. 당신은 연대감과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보여준 영웅적 사례입니다”라고 말했다. 앙드레 말로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들을 보세요. 이것은 전설입니다.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국제여단 단원은 3만 5,000명이었고, 그들중 1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초기에 그들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부름에 응했지만, 이 운동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노동조합 활동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화주의자 등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에스파냐의 자유를 수호하러 온 것이다. ― <에스파냐의 국제여단부터 ‘짐꾼’까지>(46쪽) 중에서
2009년까지 일본, 이탈리아,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명백한 주범이었다. 그러나 유럽의회는 8월 23일을‘추모의 날’로 지정하면서 다른 관점의 결정을 내렸다. 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했던‘나치즘과 공산주의’를 전쟁 책임자로 규정한 것이다. ― <독소불가침조약과 역사 수정주의>(48쪽) 중에서
5. 자유와 반공이 동의어로 불리던 ‘적색의 시대’ - 이 책의 주요 내용 3
3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동안의 시대를 ‘적색의 시대’라 명명한다. 냉전 상황에서도 제3세계에서 일어난 민족해방운동을 저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연 적색의 시대였을 것이다. 냉전 시기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체제라도 지원했다. 특히 인도차이나 반도와 한국에서 냉전 상황이 열전으로 비화하자 서유럽과 일본을 부흥시켜 소련을 견제했으며, 프랑코의 에스파냐와도 상호원조조약을 맺고, 니카라과의 소모사 정권, 도미니카, 쿠바, 베네수엘라 등의 독재정권을 비호했다. 당시 미국에서 ‘자유’는 ‘반공’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고, 인권은 무시되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정책) 반대 운동에 반대한 미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정규군을 지원했으며,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앙골라를 침범하기도 했다.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독재와 인종 차별을 묵인한 미국의 정책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지금도 자유와 반공이 동의어로 읽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눈여겨보아야 할 시대이기도 하다.
1939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소모사는 누군가의 아들이겠지만 우리의 아들이기도 하다”면서 니카라과의 독재자를 옹호했다. 이 발언은 냉전 시대 미국의 대외정책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이 소련의 압제에 맞설 최후의 보루로 상정한 ‘자유세계’에는 많은 독재국가가 포함되었다. 독재국가들은 반공주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도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정권의 위기 상황에 미국의 개입을 요청할 수 있었다. ― <‘자유세계’와 독재>(64쪽) 중에서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와는 반대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들은 평온 속에서, 그리고 예전의 본국과 무난한 합의하에 독립을 맞이했다. 그런데 카메룬은 이런 공식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프랑스가 카메룬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혈 참극을 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룬전쟁은 알제리 문제에 묻혀 간과되고 말았다. ― <카메룬, 알려지지 않은 전쟁(1955~71)>(68쪽) 중에서
6. 20세기 후반, 망각의 역사가 회색으로 시대를 물들이다 - 이 책의 주요 내용 4
4부에서는 20세기 후반을 ‘회색의 시대’라 부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지만, 그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며,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시기 대두한 신자유주의는 수십 년에 걸친 사회운동의 성과를 갉아먹었다. 파업을 일으킨 광산 노동자들을 ‘국내의 적’으로 간주하며 강경 진압한 영국 대처 정부의 대응은 신자유주의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그간 쌓아온 세계 노동운동의 성과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20세기를 회색의 시대로 물들이는 요인 중 하나는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발트 3국을 비롯한 우크라이나에서는 애국주의적 국민 저항을 높이 평가하며 소련의 적군과 싸운 동지들을 기리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극우 민족주의자이자 나치스 협력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영웅화는 곧 파시스트 독재에 대한 향수로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에스파냐 내전에 참여한 국제여단 단원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역사를 어떻게 도구화하고 있는지를 이 책은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또한 브라질, 중국,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제3세계의 도약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들 국가가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세계 경제의 주요 부분을 담당함으로써 권력의 다극화를 주도하고 있는 밑바탕에는 오랜 기간에 걸친 투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소극적 불매운동에서 적극적인 단식과 분신자살과 같이 다양한 항의 방식을 들려준다. 이러한 항의를 통해서만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힘의 균형을 되돌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 뒤에 무엇이 있었을까? 알다시피 그곳은 비밀경찰에 의한 감시와 독재가 횡행함과 동시에 하나의 국가와 국민, 그리고 하나의 기괴한 체제가 존재했다. 한쪽에서는 이러한 역사를 지워버리려고 시도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기억의 의무’를 제기하는데, 과연 이 두 입장이 무리 없이 양립할 수 있을까? ― <동독은 존재했을까?>(90쪽) 중에서
신생 발트 3국(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과 빅토르 유시첸코 대통령이 이끌던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점령’과 볼셰비키가 자행한 테러를 격렬히 비난하는 연구소와 박물관을 대대적으로 건립하고, 1941년부터 45년까지 이어진 ‘애국적 저항’을 높이 평가하며 ‘국민적 기억’을 되살렸다. 또 같은 방식으로 소련의 적군(赤軍)과 맞서 싸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단(OUN)을 기리기 시작했다. 이 조직은 주요
지도자들이 나치스 독일과 손을 잡았던 친파시즘 성향의 극우 민족주의 조직이었다. (중략) 루마니아에서는 파시스트 독재자였던 이온 안토네스쿠에 대한 기억을 ‘복원했다’. 폴란드에서는 에스파냐 내전에 참전했던 국제여단 소속 옛 전투원들을 ‘범죄자’로 취급했다. (중략) ‘기억과 관련된’ 조치들은 옛 소련을 대신해 현재의 러시아와 진행 중인 보상 요구와 맞물려 있다. 라트비아는 ‘소련 점령’에 대한 대가로 6억 6,600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의 냉전’ 분위기에서, ‘과거사’와 관련된 정책들은 역사를 알리기보다 역사를 도구화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나치스 협력자들의 복권>(92~93쪽) 중에서
1984∼85년 광부들의 파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분쟁이었다. 당시 파업은 고용자와 피고용자 간의 충돌이라기보다 내전에 가까운 양상을 띠었다. 파업 규모와 기간, 영향력 차원에서 이 사건은 지금까지 전 세계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파업 사례로 남아 있다.(중략) 논평가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정부의 끝장을 보자는 식의 공권력 행사로 인해 광부들은 과격한 방식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부는 그들이 수용할 만한 그 어떤 해법도 제시하지 않았다. (중략) 파업 참가자들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현장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곧 에너지 분야의 민영화로 광산노조에 위기가 예고되었다. 파업으로 인해 현재 금액으로 300억 파운드 이상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했지만, 이것은 추후 청정 석탄 기술의 발전과 같은 보다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 수립에 소요될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그리고 마거릿 대처는 노조를 무너뜨렸다>(98~99쪽) 중에서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선택된 폭력 행위는 자기 신체에 대한 학대가 될 수도 있다. 간디가 대중화한 단식 농성은 알제리에서 프랑스 군대에 억류된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 투사들이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포로들 사이에서 자주 벌어졌다. 단식은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상대를 위협하는 행위로, 실제로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중략) 극단적이고 때로는 절망적인 항의 방식인 폭력은 난공불락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심각한 비대칭적 충돌 상황에서 등장한다. (중략) 20세기는 자유주의 질서가 마침내 전 세계에 자리잡은 시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수한 투쟁이 벌어진 무대이기도 하다. 애당초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음에도 투쟁을 통해 민중의 열망은 승리를 거두었다. ― <항의하라, 하지만 어떻게?>(106~107쪽) 중에서
목차
‘자신만을 위한 역사’ - 세르주 알리미
기억과의 전쟁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해 - 이상빈
1 광기의 시대
유럽이 세상의 부와 세계를 지배했을 때
더 많이 죽이기 위해 더 많은 지능이 동원되다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 범죄 그리고 범죄의 부정
사자들을 지휘한 당나귀 조프르
제국의 몰락
러시아 혁명에 맞선 10개국 군대
그래도 유럽은 쓰러지지 않았다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의 시대
신은 죽었을까, 부활했을까?
세상은 어떻게 하나의 도시가 되었을까?
[해제] 혁명에 대한 공포가 불러온 ‘광기의 시대’
2 암흑의 시대
나치즘과 인민전선을 불러온 1929년 대공황
교통.통신 혁명
뉴딜 정책, 예술가들도 지원하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후원자들’
에스파냐의 국제여단부터 ‘짐꾼’까지
독소불가침조약과 역사수정주의
여러 개의 ‘제2차 대전’
일본의 승리와 패배
‘인구 폭탄’은 터지지 않을 것이다
[해제] 공포를 넘겨받은 ‘암흑의 시대’
3 적색의 시대
냉전의 악순환 속에서
미완의 양성평등 혁명
‘자유세계’와 독재
권력을 향한 마오쩌둥의 대장정
카메룬, 알려지지 않은 전쟁(1955∼71)
라틴아메리카의 암흑기
인도차이나, 1946~75: 20세기에 가장 길었던 전쟁
서구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지했을 때
서남아시아 분쟁의 중요성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급진 무슬림과 손잡다
자원 고갈과 에너지 경쟁
[해제] 자유와 반공이 동의어인 ‘적색의 시대’
4 회색의 시대
사회적 유럽이 거대 시장에 녹아들다
건강의 증진, 사회 진보의 결실
동독은 존재했을까?
나치스 협력자들의 복권
걸프전, 범아랍주의의 새 장을 열다
북아메리카자유무역협정: 백악관은 의회를 어떻게 매수했을까?
그리고 마거릿 대처는 노조를 무너뜨렸다
다국적 기업의 민낯
제3세계의 삶과 죽음
1998년 아시아 위기, 2008년 세계적 위기
항의하라, 하지만 어떻게?
[해제] 망각의 역사가 시대를 회색으로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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