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6268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6268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외교관이자 정보전략가인 그레그 前 주한 미 대사가 회고하는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아시아의 격동하는 현대사
『역사의 파편들』(원제: Pot Shards: Fragments of a Life Lived in CIA, the White House, and the Two Koreas)은 도널드 그레그 前 주한 미 대사가 80여년 생을 돌아보며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엮어낸 개인의 역사이자 동시대 미국과 한반도 역사의 복원이다. 그레그는 1973년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국장으로 부임한 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관과 조지 H. W. 부시 부통령 안보보좌관을 거쳐 1989~93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내며 직간접적으로 한국 현대사와 관련을 맺어왔다. 두차례 김대중 구명(救命)에 관여했고, 노태우정부의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 팀스피릿 한미군사훈련 중단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에는 또한, 미국의 주요 외교현장에서 일한 저자의 진솔한 회고를 통해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실상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자신이 직접 접한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60여년간의 외교경험과 통찰력으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베트남전, 이란 콘트라 스캔들, 쿠바 핵위기 등의 역사상을 복원해낸다. 개인의 기억을 중시하면서도 객관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 뛰어난 감성과 유머감각을 겸비한 이야기 솜씨는 흡입력을 더해준다. 무엇보다 과거형에 머무르지 않는 미래지향적인 시선은 여타의 회고록들과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 개인의 기억 조각들이 빚어낸, 한국과 아시아의 근현대사
그레그는 자신의 전생애를 섬세하면서도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주로 한 개인사와 그 가치를 중시하는 저자의 시선이 회고록 전체에 일관된다. 하지만 스스로 “파란만장한 생애”라 표현하는 그의 시대는 ‘전환기 세계사’라 할 수 있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연속이었고, 실제로 그는 때로는 목격자로 때로는 주역으로 그 무대에 서 있었다. 특히 이 책은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미국의 외교관이자 정보국 인사의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정보·외교·방위정책 등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사료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동시대 저명인사가 대거 등장한다. 케네디, 닉슨, 카터, 레이건, 조지 H. W. 부시, 조지 W. 부시, 마거릿 대처,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아끼히또 천황, 보리스 옐찐, 리콴유 등 국가 수반을 비롯하여 로버트 맥나마라,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리처드 홀브룩 같은 일급 외교관, 커티스 르메이, 크레이턴 에이브럼스, 홀링스워스 등 베트남전의 주역 장성, 리처드 헬름스, 윌리엄 콜비, 터너 CIA 국장, 이란 콘트라 스캔들의 올리버 노스 중령 등 당시 언론의 한 면을 장식하던 인물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단순히 관찰대상이 아니라 그레그 자신의 긴 인생 속의 기쁨과 고통의 순간들과 생생히 연계되면서 각각의 사건에 실감을 더한다. 이때 저자 자신의 역사의식이 성장하는 과정도 눈여겨볼 만한데, 일례로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전장에 도착해서 현장에서 여러 체험을 통해 그 실상을 깨우쳐가는 과정, 내부자로서 비판적 시선을 키워가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그레그는 1962년부터 64년까지 워싱턴에서 베트남 담당부서 책임자로 근무하고, 1970년부터 72년까지 싸이공 외곽의 지역담당관으로 일하면서 베트남전을 몸소 체험한다. 2만명 수준의 소규모 주둔에서 50만명의 미군 전투병이 실전에 배치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부자의 시각에서 왜 미국이 베트남에서 실패했는가를 진솔하게 토로한다. 정책 결정자들의 오만과 편견, 관료적 편의주의, 일방주의적 사고가 정보와 정책 면에서 참담한 실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이해 부족, 베트남 민족해방의 성격에 대한 무지도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레그는 다른 장에서 호찌민의 경우와 더불어 미국이 사담 후세인, 김정은에 대해 악마화라는 오류를 범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우리가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지도자나 집단을 무조적 악마화하려는 경향이 우리를 끊임없이 곤경에 몰아넣는 원인이라는 점이다. (…) 그 결과는 악선전과 선동정치에 의해 커져버린 상호적대감, 관련된 모든 상대에게 돌아가는 피해뿐”이라고 강조한다.
김대중 구명과 팀스피릿 훈련 중지, 광주시민에 대한 사과
그레그는 1952년 한국인들과 처음 인연을 맺고(초기 CIA 정보원팀 양성과정) 이후 민주화과정에서 2000년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국사회를 목격해오면서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박정희정권의 김대중 납치사건과 전두환정권의 김대중 사형집행을 막아낸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CIA 지국장이었던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대학 시위가 격화되고, 중앙정보부(KCIA)에 의해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고문치사에 이르는 사태에 강력히 항의하여 워싱턴에 보고했다가 “한국인을 한국인으로부터 구하는 일은 중단하고 사실만 보고”하는 데 집중하라는 명령을 받고 중대한 도덕적 위기를 느꼈음을 실토한다. 그레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부 지시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박종규를 찾아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국민들을 고문하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런 조직과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고, 결과적으로 당시 권력실세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해임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기술한다.
이런 극적인 일화 외에 한국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자못 흥미롭다. 박정희에게는 ‘나쁜 소식 전담 장관’을 두었어야 했다는 표현으로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을 비판한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 대해서는 “만나자마다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고 할 정도로 매우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 반면 박종규 경호실장에 대해서는 진정한 충복이라고 우호적 평가를 한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1980년 방미 과정을 설명하면서 “백악관 쪽에서는 솔직히 잔혹한 독재자 전두환을 형편없이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면서 “김대중의 생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지만 않았다면 백악관에 초대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반면 한국인들이 노태우정부의 업적에 대해 너무 인색하다고 지적하며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눈여겨볼 대목으로, 그레그의 주한 미 대사 시절의 상황과 더불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책의 발문(문정인 교수)에 잘 정리되어 있다.
“아마 그레그 대사는 역대 한국 대사 중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구도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 전진배치됐던 전술핵 철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로버트 리스카시 장군과 더불어 워싱턴을 설득, 1991년 12월 팀스피릿 한미군사훈련을 전격적으로 중단시킨 바 있다. 그 결과 ‘남북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는 등 남북한관계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뿐만 아니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한소 수교 등에도 결정적 공헌을 했다.”
하지만 당시 미 국방장관 딕 체니가 “한마디 상의 없이” 팀스피릿 훈련을 부활시키고 북한이 이에 대한 반발로 93년 3월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자 결국 제1차 핵위기로까지 번지게 된다. 그레그는 체니의 이러한 결정을 “자신의 재임 중 미국이 범한 가장 큰 외교적 실책”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레그의 대사시절 회고 가운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광주 방문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에 미국이 관여했을 거라는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CIA 경력으로 반미감정의 대상 자체인 그가 반미시위가 확산되어가던 1990년 당시 광주에 직접 내려가 시민대표들과 만나 “5·18에 너무 대처가 늦었던 것에 사과한다”며 그들을 설득한 에피소드는 이 책의 명장면 중 하나다. 당시 대화를 돌이켜보며 한국인이 갖는 ‘한(恨)’의 의미를 설명한 부분에서는 한국인을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을 실감할 수 있다.
“북한문제는 미 정보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어온 실패 사례다”
그레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코리아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와 태평양세기연구소(Pacific Century Institute)의 대표로서 북한을 여섯차례 방문한다. 그 여정은 1995년 북한 공직자 두명을 뉴욕으로 초청하여 미국의 정책을 설명한 것부터 시작하지만, 이 일로 당시 김영삼정부의 보수강경파들로부터 대대적인 비난을 받게 된다.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그레그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평양방문 허가를 요청하여 성사되는 과정, 북한에서의 대화 내용 등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평양방문 이후 백악관의 보수강경 태도를 보며 그레그는 조지 W. 부시의 “이념적이고 오도된 접근방식은 그동안 한국과 미국정부가 합작해서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위해 마련했던 뜻깊은 발전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부당하게 중단시켜버렸다”고 평가한다. 부시가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부르는 것을 듣고는 “1962년의 베트남으로 다시 끌려가서 하킨스 장군이 ‘우리는 6개월이면 군사적인 대승리를 거두고 여기서 철수할 것이다’라고 오판한 것을 다시 듣는 것만 같았다”고 토로하며 북한문제야말로 “미국 정보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살아 있는 실패 사례”이며 그 실패의 근원에는 미국정부가 북한의 지도자를 ‘악마화’하는 데 있다고 단언한다.
반면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 ‘악마화’의 패턴을 벗어난 예외적 존재라고 평가한다. 안보보좌관으로 가까이서 봐온 조지 H. W. 부시에 대한 평가는 존경과 찬사가 주를 이루는데, 실제로 부시가 소련에서 새롭게 등장한 고르바초프의 입장을 존중하고 관계를 잘 풀어간 덕분에 냉전 종식에 일조했다고 본다.
그레그는 이후에도 대북관계 개선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근자에 국내 언론들에 소개되었듯이 2009년 여름 김정은이 평양의 공개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한반도의 중대 변화가 임박했음을 알렸을 때, 조지 바이든 부통령에게 김정은을 미국으로 초빙하자고 편지를 썼다가 거절당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레그는 민간외교를 계속하며 남북 그리고 북미 간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 자신이 기여할 바를 찾아가는 중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끝낼 수 있고 또 반드시 끝내야 하는 비극이다. 그것은 서로 계속하고 있는 악마화가 대화로 바뀌고 화해가 이뤄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는 말로 회고록 전체를 마무리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레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고백하는 이란 콘트라 스캔들 연루에 대한 해명 부분도 눈여겨볼 장이다(그는 레이건 정부의 불법 무기판매, 반군 지원에 관여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스스로 “지하에서 뱀과 보낸 7년”이라고 표현하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 결국 그의 결백이 입증되었지만 이 스캔들과 관련된 그의 회고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백악관·관료·의회·언론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줄 뿐 아니라 우정과 배신, 그리고 신뢰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 정치의 내면을 깊이있고 실감나게 파헤친다.
도널드 그레그는 책략가인가, 자유주의자인가, 친북인사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의 이념적 견해에 따라 그레그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오해나 편견을 투사해왔다. 이 책의 발문에서 문정인 교수가 간명하게 정리하듯이 그레그에 대해서는 세가지 전혀 다른 이미지가 있다. 첫째, 미 CIA 출신으로 미국의 배타적 국익에만 충실했던 외교관 이미지다. 둘째, 한국 민주주의와 대북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자유주의자 이미지다. 셋째로 북한을 여섯번이나 다녀오고 북한 입장을 옹호, 대변하는 ‘반정부·친북’ 인사 이미지다.
오랫동안 그와 교유해온 문정인 교수에 따르면 그레그는 보수반동도 아니고 친북인사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 미국을 사랑하고 국익을 중요시하는 애국자이며, 그에게 미국의 국익은 민주주의·인권·평화라는 가치의 신장이다. 그가 한국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애쓴 노력 또한 근대 이래 인류가 지켜온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그레그는 그런 가치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이제 평가는 이 책을 가감없이 읽어낸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아시아의 격동하는 현대사
『역사의 파편들』(원제: Pot Shards: Fragments of a Life Lived in CIA, the White House, and the Two Koreas)은 도널드 그레그 前 주한 미 대사가 80여년 생을 돌아보며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엮어낸 개인의 역사이자 동시대 미국과 한반도 역사의 복원이다. 그레그는 1973년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국장으로 부임한 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관과 조지 H. W. 부시 부통령 안보보좌관을 거쳐 1989~93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내며 직간접적으로 한국 현대사와 관련을 맺어왔다. 두차례 김대중 구명(救命)에 관여했고, 노태우정부의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 팀스피릿 한미군사훈련 중단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에는 또한, 미국의 주요 외교현장에서 일한 저자의 진솔한 회고를 통해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실상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자신이 직접 접한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60여년간의 외교경험과 통찰력으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베트남전, 이란 콘트라 스캔들, 쿠바 핵위기 등의 역사상을 복원해낸다. 개인의 기억을 중시하면서도 객관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 뛰어난 감성과 유머감각을 겸비한 이야기 솜씨는 흡입력을 더해준다. 무엇보다 과거형에 머무르지 않는 미래지향적인 시선은 여타의 회고록들과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 개인의 기억 조각들이 빚어낸, 한국과 아시아의 근현대사
그레그는 자신의 전생애를 섬세하면서도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주로 한 개인사와 그 가치를 중시하는 저자의 시선이 회고록 전체에 일관된다. 하지만 스스로 “파란만장한 생애”라 표현하는 그의 시대는 ‘전환기 세계사’라 할 수 있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연속이었고, 실제로 그는 때로는 목격자로 때로는 주역으로 그 무대에 서 있었다. 특히 이 책은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미국의 외교관이자 정보국 인사의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정보·외교·방위정책 등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사료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동시대 저명인사가 대거 등장한다. 케네디, 닉슨, 카터, 레이건, 조지 H. W. 부시, 조지 W. 부시, 마거릿 대처,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아끼히또 천황, 보리스 옐찐, 리콴유 등 국가 수반을 비롯하여 로버트 맥나마라,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리처드 홀브룩 같은 일급 외교관, 커티스 르메이, 크레이턴 에이브럼스, 홀링스워스 등 베트남전의 주역 장성, 리처드 헬름스, 윌리엄 콜비, 터너 CIA 국장, 이란 콘트라 스캔들의 올리버 노스 중령 등 당시 언론의 한 면을 장식하던 인물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단순히 관찰대상이 아니라 그레그 자신의 긴 인생 속의 기쁨과 고통의 순간들과 생생히 연계되면서 각각의 사건에 실감을 더한다. 이때 저자 자신의 역사의식이 성장하는 과정도 눈여겨볼 만한데, 일례로 베트남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전장에 도착해서 현장에서 여러 체험을 통해 그 실상을 깨우쳐가는 과정, 내부자로서 비판적 시선을 키워가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그레그는 1962년부터 64년까지 워싱턴에서 베트남 담당부서 책임자로 근무하고, 1970년부터 72년까지 싸이공 외곽의 지역담당관으로 일하면서 베트남전을 몸소 체험한다. 2만명 수준의 소규모 주둔에서 50만명의 미군 전투병이 실전에 배치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부자의 시각에서 왜 미국이 베트남에서 실패했는가를 진솔하게 토로한다. 정책 결정자들의 오만과 편견, 관료적 편의주의, 일방주의적 사고가 정보와 정책 면에서 참담한 실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이해 부족, 베트남 민족해방의 성격에 대한 무지도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레그는 다른 장에서 호찌민의 경우와 더불어 미국이 사담 후세인, 김정은에 대해 악마화라는 오류를 범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우리가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지도자나 집단을 무조적 악마화하려는 경향이 우리를 끊임없이 곤경에 몰아넣는 원인이라는 점이다. (…) 그 결과는 악선전과 선동정치에 의해 커져버린 상호적대감, 관련된 모든 상대에게 돌아가는 피해뿐”이라고 강조한다.
김대중 구명과 팀스피릿 훈련 중지, 광주시민에 대한 사과
그레그는 1952년 한국인들과 처음 인연을 맺고(초기 CIA 정보원팀 양성과정) 이후 민주화과정에서 2000년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한국사회를 목격해오면서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박정희정권의 김대중 납치사건과 전두환정권의 김대중 사형집행을 막아낸 일화는 유명하다.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CIA 지국장이었던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대학 시위가 격화되고, 중앙정보부(KCIA)에 의해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고문치사에 이르는 사태에 강력히 항의하여 워싱턴에 보고했다가 “한국인을 한국인으로부터 구하는 일은 중단하고 사실만 보고”하는 데 집중하라는 명령을 받고 중대한 도덕적 위기를 느꼈음을 실토한다. 그레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부 지시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박종규를 찾아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국민들을 고문하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런 조직과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고 말했고, 결과적으로 당시 권력실세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해임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기술한다.
이런 극적인 일화 외에 한국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자못 흥미롭다. 박정희에게는 ‘나쁜 소식 전담 장관’을 두었어야 했다는 표현으로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을 비판한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 대해서는 “만나자마다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고 할 정도로 매우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 반면 박종규 경호실장에 대해서는 진정한 충복이라고 우호적 평가를 한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1980년 방미 과정을 설명하면서 “백악관 쪽에서는 솔직히 잔혹한 독재자 전두환을 형편없이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면서 “김대중의 생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지만 않았다면 백악관에 초대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반면 한국인들이 노태우정부의 업적에 대해 너무 인색하다고 지적하며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눈여겨볼 대목으로, 그레그의 주한 미 대사 시절의 상황과 더불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책의 발문(문정인 교수)에 잘 정리되어 있다.
“아마 그레그 대사는 역대 한국 대사 중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구도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 전진배치됐던 전술핵 철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로버트 리스카시 장군과 더불어 워싱턴을 설득, 1991년 12월 팀스피릿 한미군사훈련을 전격적으로 중단시킨 바 있다. 그 결과 ‘남북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는 등 남북한관계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뿐만 아니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한소 수교 등에도 결정적 공헌을 했다.”
하지만 당시 미 국방장관 딕 체니가 “한마디 상의 없이” 팀스피릿 훈련을 부활시키고 북한이 이에 대한 반발로 93년 3월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자 결국 제1차 핵위기로까지 번지게 된다. 그레그는 체니의 이러한 결정을 “자신의 재임 중 미국이 범한 가장 큰 외교적 실책”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레그의 대사시절 회고 가운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광주 방문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 광주 민중항쟁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에 미국이 관여했을 거라는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CIA 경력으로 반미감정의 대상 자체인 그가 반미시위가 확산되어가던 1990년 당시 광주에 직접 내려가 시민대표들과 만나 “5·18에 너무 대처가 늦었던 것에 사과한다”며 그들을 설득한 에피소드는 이 책의 명장면 중 하나다. 당시 대화를 돌이켜보며 한국인이 갖는 ‘한(恨)’의 의미를 설명한 부분에서는 한국인을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을 실감할 수 있다.
“북한문제는 미 정보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어온 실패 사례다”
그레그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코리아소사이어티(The Korea Society)와 태평양세기연구소(Pacific Century Institute)의 대표로서 북한을 여섯차례 방문한다. 그 여정은 1995년 북한 공직자 두명을 뉴욕으로 초청하여 미국의 정책을 설명한 것부터 시작하지만, 이 일로 당시 김영삼정부의 보수강경파들로부터 대대적인 비난을 받게 된다.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그레그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평양방문 허가를 요청하여 성사되는 과정, 북한에서의 대화 내용 등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평양방문 이후 백악관의 보수강경 태도를 보며 그레그는 조지 W. 부시의 “이념적이고 오도된 접근방식은 그동안 한국과 미국정부가 합작해서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위해 마련했던 뜻깊은 발전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부당하게 중단시켜버렸다”고 평가한다. 부시가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부르는 것을 듣고는 “1962년의 베트남으로 다시 끌려가서 하킨스 장군이 ‘우리는 6개월이면 군사적인 대승리를 거두고 여기서 철수할 것이다’라고 오판한 것을 다시 듣는 것만 같았다”고 토로하며 북한문제야말로 “미국 정보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살아 있는 실패 사례”이며 그 실패의 근원에는 미국정부가 북한의 지도자를 ‘악마화’하는 데 있다고 단언한다.
반면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 ‘악마화’의 패턴을 벗어난 예외적 존재라고 평가한다. 안보보좌관으로 가까이서 봐온 조지 H. W. 부시에 대한 평가는 존경과 찬사가 주를 이루는데, 실제로 부시가 소련에서 새롭게 등장한 고르바초프의 입장을 존중하고 관계를 잘 풀어간 덕분에 냉전 종식에 일조했다고 본다.
그레그는 이후에도 대북관계 개선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근자에 국내 언론들에 소개되었듯이 2009년 여름 김정은이 평양의 공개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한반도의 중대 변화가 임박했음을 알렸을 때, 조지 바이든 부통령에게 김정은을 미국으로 초빙하자고 편지를 썼다가 거절당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레그는 민간외교를 계속하며 남북 그리고 북미 간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 자신이 기여할 바를 찾아가는 중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끝낼 수 있고 또 반드시 끝내야 하는 비극이다. 그것은 서로 계속하고 있는 악마화가 대화로 바뀌고 화해가 이뤄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는 말로 회고록 전체를 마무리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레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고백하는 이란 콘트라 스캔들 연루에 대한 해명 부분도 눈여겨볼 장이다(그는 레이건 정부의 불법 무기판매, 반군 지원에 관여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스스로 “지하에서 뱀과 보낸 7년”이라고 표현하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 결국 그의 결백이 입증되었지만 이 스캔들과 관련된 그의 회고는 미국의 외교정책을 둘러싼 백악관·관료·의회·언론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줄 뿐 아니라 우정과 배신, 그리고 신뢰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 정치의 내면을 깊이있고 실감나게 파헤친다.
도널드 그레그는 책략가인가, 자유주의자인가, 친북인사인가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의 이념적 견해에 따라 그레그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오해나 편견을 투사해왔다. 이 책의 발문에서 문정인 교수가 간명하게 정리하듯이 그레그에 대해서는 세가지 전혀 다른 이미지가 있다. 첫째, 미 CIA 출신으로 미국의 배타적 국익에만 충실했던 외교관 이미지다. 둘째, 한국 민주주의와 대북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자유주의자 이미지다. 셋째로 북한을 여섯번이나 다녀오고 북한 입장을 옹호, 대변하는 ‘반정부·친북’ 인사 이미지다.
오랫동안 그와 교유해온 문정인 교수에 따르면 그레그는 보수반동도 아니고 친북인사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 미국을 사랑하고 국익을 중요시하는 애국자이며, 그에게 미국의 국익은 민주주의·인권·평화라는 가치의 신장이다. 그가 한국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애쓴 노력 또한 근대 이래 인류가 지켜온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그레그는 그런 가치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이제 평가는 이 책을 가감없이 읽어낸 독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목차
제1부 | 어린 시절
1. 아베나키족의 머릿가죽과 써클빌의 결투
2. 텍사스 막말과 타께시따의 승리
3. 윌리엄스대 철학과와 남학생 클럽
제2부 | 정보활동
4. CIA를 위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5. 택시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6. 아이다호의 어치새에게서 무한성을 엿보다
7. 잭 다우니의 비극적 임무
8. 일본에서 행복했던 시절
9. JFK와 베트남
10. 베트남전쟁의 파국
11. 버마에서 보낸 나날들
12. 다리를 저는 아이를 찾아 나서다
13. 다시 베트남으로
14. 김대중 납치사건
15.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
16. 파이크위원회와 카터의 백악관
제3부 | 백악관 시절
17. 레이건, 부시와 함께한 백악관 시절
18. 부시와 함께한 외교순방
19. 데니스 대처와 사라진 브래지어
20. 리처드 닉슨, 그 난해한 인물
21. 핀란드 커넥션
제4부 | 외교관 시절
22. 주한 미국대사로 서울에
23. 이란 콘트라 - 지하실의 뱀과 7년
24. 옥토버 써프라이즈
제5부 | 민간인으로 돌아와서
25. 코리아소사이어티 시절
26. ‘키즈 투 코리아’ 사업
27. 롱비치에서의 깨달음
28. 여섯번의 평양 여행
29. 재즈
30. 골드만삭스와의 짧은 인연
31. 악마화가 부르는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