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설계자 덩샤오핑
- 대등서명
- Deng Xiaoping
- 발행사항
- 서울 :,Alma(알마 출판사),,2018
- 형태사항
- 837 p. : 지도 ; 24 cm
- ISBN
- 9791159922299
- 청구기호
- 340.99 P198d
- 일반주기
- 권말부록: 덩샤오핑 가계도 원저자명: Alexander V. Pantsov, Steven I. Levine
- 서지주기
- 참고문헌(p. 747-805), \"덩샤오핑 연표\"와 색인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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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6848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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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00016848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중국이 가는 길을 알고 싶다면 읽어야 할 단 한 사람
덩샤오핑 생애의 집대성,
이토록 세심하고 공정한 평전은 지금껏 없었다
“중국은 자국 젊은이들의 피로 수도 베이징의 거리를 얼룩지게
만들지 않았더라도 경제적 정점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덩샤오핑이라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도 연결되어 있다.”
성공적인 시장사회주의 국가의 설계자,
덩샤오핑의 생애를 복원하다
시장경제체제와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중국을 지금의 위상에 이르게 만든 덩샤오핑. 그 전 생애를 객관적으로 서술해낸 전기 《설계자 덩샤오핑》이 알마에서 출간되었다. 《설계자 덩샤오핑》은 저자인 알렉산더 판초프와 스티븐 레빈이 중국식 시장사회주의를 만들어낸 정치 지도자 덩샤오핑의 일생을 공정하게 서술해낸 책이다. 저자들은 기존 자료와 더불어 모스크바에서 새로 발견된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에 대한 구소련의 미공개 문서들까지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여타 평전들과의 차별성을 꾀했다.
전작 《마오쩌둥 평전》에서 중국공산당을 창립한 걸출한 지도자 마오쩌둥의 사실적인 초상화를 그려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저자들은 지금의 성공적인 시장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만들어낸 덩샤오핑의 전 생애를 《설계자 덩샤오핑》에 담아냈다. 덩샤오핑이 청년 시절에 어떻게 공산당원으로 성장하고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군인으로 활동했는지, 또 마오쩌둥 사후에 어떻게 최고지도자에 올랐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 인민의 열망을 부서뜨렸는지, 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톈안먼 사태 이후의 행보까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전기가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에서 대거 발굴된 덩샤오핑의 광범위한 개인 기록 서류와 그의 가족들의 개인 기록 서류뿐 아니라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천윈 등 중국의 주요 공산주의자들의 개인 기록 문서 3,300여 건을 처음으로 이용한 전기다. 그동안 덩샤오핑과 마오쩌둥에 관한 평전의 기초 자료로는 중국에서 발간된 ‘선집’과 함께 미국과 일본, 타이완 등에서 발굴된 서류와 증언들이 주로 활용되었다. 어록이나 선집을 통해 지도자의 이미지를 다듬는 전통이 있는 중국공산당 지도부에서 특히 덩샤오핑은 개인사에 대한 스스로의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 이전의 평전들은 개인 비서로 활동한 막내딸 덩룽의 기록에 많이 기대야 했다. 그러나 두 저자는 《설계자 덩샤오핑》에 지금까지의 덩샤오핑 평전에서 볼 수 없었던 구소련의 자료를 담아냈다. 그것은 중국공산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공산주의를 배우고 개인숭배를 바탕으로 한 국가경영 모델을 학습한 과정, 흐루쇼프 이후 중소 갈등 상황에서 활약한 바를 관찰한 자료들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에 주목한 전기는 많았으나 연구 대상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에 실패하고 무비판적이며 지나치게 긍정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국공 내전 당시에 스스로 “결국 나는 공산주의자이고, 그래서 낙관주의자다”라고 충실한 공산주의자를 자임한 당시의 덩샤오핑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마오쩌둥과 흐루쇼프가 스탈린 사후에 벌인 중국과 구소련 간 외교전에서 덩샤오핑이 마오의 대리자로서 활약하는 모습은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다. 1904년에 태어나 1997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위대한 혁명가이자 개혁가로 살아온 덩샤오핑의 개인사는 곧 중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의 기나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중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으며 천두슈(진독수), 스탈린, 흐루쇼프, 부하린, 저우언라이(주은래), 펑더화이(팽덕회), 류샤오치, 자오쯔양, 장쩌민, 후야오방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인물들의 뜻밖의 활약과 변모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지금 덩샤오핑을 읽어야 하는가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숨가쁜 외교전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는 북한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까? 그 전범典範이 될 만한 곳이 덩샤오핑이 최고지도자로 있던 당시의 중국이다. 덩샤오핑은 스스로 “마오와 중국 혁명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믿으며 중국과 구소련의 외교 대립에서 마오의 지시에 따라 맹활약하던 심복이었다가 결국 거대한 기아를 본 후 마오쩌둥의 대약진 정책을 전환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마오쩌둥 사후에는 후계 다툼에서 이겨 ‘위대한 조타수(마오쩌둥)’의 경제정책과 문화대혁명의 과오를 결국 수정해냈다. 그는 계획경제 대신 서구와의 외교 개선을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동시에 자유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1989년 톈안먼 사태에서 주저앉히면서도 마오의 공과까지 담아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를 확립시키고 이후 현대 중국의 길을 닦아놓은 실용주의자다.
현재 중국의 3대 금기인 타이완, 티베트, 톈안먼에 대한 정책 노선에는 모두 덩샤오핑의 흔적이 가득하다. 덩샤오핑은 1913년에 티베트가 독립을 선포한 이후 티베트를 ‘재통일’하기로 한 중국공산당의 결의를 서남국의 책임자로서 완수했고, 1989년에는 자신의 후계자로 예정해둔 자오쯔양까지 실각시키며 수도 한복판 톈안먼 광장에서 다당제를 요구한 학생 시위를 군대로 진압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1979년에 경제개혁의 성과를 바탕으로 홍콩, 마카오에 이어 타이완을 재통일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일국양제 원칙은 지금도 중국 외교의 지향점이다.
중국공산당 창립자 마오쩌둥은 대기아를 부른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실패가 보여주듯 과오가 매우 뚜렷한데도 국공 내전 승리의 단초가 된 대장정으로 인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중국공산당 지도자다. 그런 반면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실패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중국을 가난에서 구해낸 공이 있음에도 왜 중국인들에게 너그러이 평가되지 않을까? 마오쩌둥의 후계자 화궈펑을 무너뜨리고 범시론파와의 경쟁에서 이긴 후 덩샤오핑은 경제개혁과 언론의 자유 등을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1979년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 후 경제개혁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새로운 발전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변화에 전 세계적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덩샤오핑에게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체구는 작지만 강력한 지도자. 세 번의 불명예를 당한 후에도 다시 정계에 발을 디뎌 결국 최고권력자에 오른 덩샤오핑은 수많은 사람에게 중국이 결국 문명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는 희망 가득한 영감을 주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은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사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타임》 표지에 등장했을 때처럼 알 수 없는 행보를 보인 적이 많았다. 스스로 “나는 다른 사상의 영향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나는 곧장 공산주의에 도달했다”고 언급할 정도로 공산주의 외의 다른 사상을 공부한 적이 없으면서도 “고양이가 검은지 노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쥐를 잡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고양이입니다”라며 마오쩌둥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약진 실행 단위인 인민공사 대신 가족도급제를 지지해서 중국 인민을 기아에서 구해냈다. 마오 치하의 베이징으로 복귀한 뒤 오랜 친구 저우언라이를 비판했으면서도 저우언라이가 제시한 4개 현대화를 이어받았고, 자신을 세 번 실각시킨 마오에 대해 “중국 혁명의 전체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마오쩌둥 동지의 영광스러운 이미지를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모두를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 시각에서’ 평가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마오쩌둥을 드높였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려면 덩샤오핑을 읽어라
지금 미국과 무역 분쟁이 한창일 정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은 향후 100년은 ‘도광양회’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설계자요 실행자조차 중국이 이렇게까지 시장경제와 공산당 독재체제의 결합으로 성공적인 세계의 공장이 되리라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또한 마오쩌둥 개인숭배와 1인 집권 체제가 불러온 문화대혁명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은 이후 덩샤오핑이 도입한 집단지도체제를 현재 지도자 시진핑이 ‘중국의 꿈’과 ‘일대일로’를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무너뜨리기 시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설계자 덩샤오핑》은 가깝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웃 나라의 권력 핵심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충실한 관찰의 기록이다. “덩에게 있어 또 다른 기념물은, 그가 일생을 통해 의도적으로 강화시킨, 공산당이 조종하는 강력한 권위주의 기계이다. 중국이 21세기에, 그 지도자들이 여전히 마르크스와 레닌뿐만 아니라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까지 충성하는 유일한 공산주의 대국으로 남아 있는 것은, 특히 마오 사후에, 그가 기울인 노력 덕분이다.” “사회주의의 길, 무산계급의 독재, 공산당의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4항 기본원칙”을 내세워 자유화를 탄압하면서도 “인민의 민주는 적에 대한 독재 그리고 민주에 기초한 중앙집권과 분리될 수 없다”고 여긴 덩샤오핑의 생애를 담은 《설계자 덩샤오핑》은 중국에서 최고 권력이 작동하는 은밀한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안내서이다.
덩샤오핑 생애의 집대성,
이토록 세심하고 공정한 평전은 지금껏 없었다
“중국은 자국 젊은이들의 피로 수도 베이징의 거리를 얼룩지게
만들지 않았더라도 경제적 정점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그 답은 덩샤오핑이라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도 연결되어 있다.”
성공적인 시장사회주의 국가의 설계자,
덩샤오핑의 생애를 복원하다
시장경제체제와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중국을 지금의 위상에 이르게 만든 덩샤오핑. 그 전 생애를 객관적으로 서술해낸 전기 《설계자 덩샤오핑》이 알마에서 출간되었다. 《설계자 덩샤오핑》은 저자인 알렉산더 판초프와 스티븐 레빈이 중국식 시장사회주의를 만들어낸 정치 지도자 덩샤오핑의 일생을 공정하게 서술해낸 책이다. 저자들은 기존 자료와 더불어 모스크바에서 새로 발견된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에 대한 구소련의 미공개 문서들까지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여타 평전들과의 차별성을 꾀했다.
전작 《마오쩌둥 평전》에서 중국공산당을 창립한 걸출한 지도자 마오쩌둥의 사실적인 초상화를 그려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저자들은 지금의 성공적인 시장사회주의 국가 중국을 만들어낸 덩샤오핑의 전 생애를 《설계자 덩샤오핑》에 담아냈다. 덩샤오핑이 청년 시절에 어떻게 공산당원으로 성장하고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에서 군인으로 활동했는지, 또 마오쩌둥 사후에 어떻게 최고지도자에 올랐으며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 인민의 열망을 부서뜨렸는지, 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톈안먼 사태 이후의 행보까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전기가 탄생한 것이다.
이 책은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에서 대거 발굴된 덩샤오핑의 광범위한 개인 기록 서류와 그의 가족들의 개인 기록 서류뿐 아니라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 천윈 등 중국의 주요 공산주의자들의 개인 기록 문서 3,300여 건을 처음으로 이용한 전기다. 그동안 덩샤오핑과 마오쩌둥에 관한 평전의 기초 자료로는 중국에서 발간된 ‘선집’과 함께 미국과 일본, 타이완 등에서 발굴된 서류와 증언들이 주로 활용되었다. 어록이나 선집을 통해 지도자의 이미지를 다듬는 전통이 있는 중국공산당 지도부에서 특히 덩샤오핑은 개인사에 대한 스스로의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 이전의 평전들은 개인 비서로 활동한 막내딸 덩룽의 기록에 많이 기대야 했다. 그러나 두 저자는 《설계자 덩샤오핑》에 지금까지의 덩샤오핑 평전에서 볼 수 없었던 구소련의 자료를 담아냈다. 그것은 중국공산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공산주의를 배우고 개인숭배를 바탕으로 한 국가경영 모델을 학습한 과정, 흐루쇼프 이후 중소 갈등 상황에서 활약한 바를 관찰한 자료들이다.
지금까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에 주목한 전기는 많았으나 연구 대상과의 적당한 거리 두기에 실패하고 무비판적이며 지나치게 긍정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국공 내전 당시에 스스로 “결국 나는 공산주의자이고, 그래서 낙관주의자다”라고 충실한 공산주의자를 자임한 당시의 덩샤오핑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마오쩌둥과 흐루쇼프가 스탈린 사후에 벌인 중국과 구소련 간 외교전에서 덩샤오핑이 마오의 대리자로서 활약하는 모습은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다. 1904년에 태어나 1997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위대한 혁명가이자 개혁가로 살아온 덩샤오핑의 개인사는 곧 중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의 기나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본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중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으며 천두슈(진독수), 스탈린, 흐루쇼프, 부하린, 저우언라이(주은래), 펑더화이(팽덕회), 류샤오치, 자오쯔양, 장쩌민, 후야오방 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인물들의 뜻밖의 활약과 변모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지금 덩샤오핑을 읽어야 하는가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숨가쁜 외교전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는 북한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까? 그 전범典範이 될 만한 곳이 덩샤오핑이 최고지도자로 있던 당시의 중국이다. 덩샤오핑은 스스로 “마오와 중국 혁명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믿으며 중국과 구소련의 외교 대립에서 마오의 지시에 따라 맹활약하던 심복이었다가 결국 거대한 기아를 본 후 마오쩌둥의 대약진 정책을 전환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마오쩌둥 사후에는 후계 다툼에서 이겨 ‘위대한 조타수(마오쩌둥)’의 경제정책과 문화대혁명의 과오를 결국 수정해냈다. 그는 계획경제 대신 서구와의 외교 개선을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동시에 자유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1989년 톈안먼 사태에서 주저앉히면서도 마오의 공과까지 담아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를 확립시키고 이후 현대 중국의 길을 닦아놓은 실용주의자다.
현재 중국의 3대 금기인 타이완, 티베트, 톈안먼에 대한 정책 노선에는 모두 덩샤오핑의 흔적이 가득하다. 덩샤오핑은 1913년에 티베트가 독립을 선포한 이후 티베트를 ‘재통일’하기로 한 중국공산당의 결의를 서남국의 책임자로서 완수했고, 1989년에는 자신의 후계자로 예정해둔 자오쯔양까지 실각시키며 수도 한복판 톈안먼 광장에서 다당제를 요구한 학생 시위를 군대로 진압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1979년에 경제개혁의 성과를 바탕으로 홍콩, 마카오에 이어 타이완을 재통일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일국양제 원칙은 지금도 중국 외교의 지향점이다.
중국공산당 창립자 마오쩌둥은 대기아를 부른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실패가 보여주듯 과오가 매우 뚜렷한데도 국공 내전 승리의 단초가 된 대장정으로 인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중국공산당 지도자다. 그런 반면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실패한 경제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중국을 가난에서 구해낸 공이 있음에도 왜 중국인들에게 너그러이 평가되지 않을까? 마오쩌둥의 후계자 화궈펑을 무너뜨리고 범시론파와의 경쟁에서 이긴 후 덩샤오핑은 경제개혁과 언론의 자유 등을 이뤄낸 성과를 바탕으로 1979년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중국은 덩샤오핑 집권 후 경제개혁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며 새로운 발전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변화에 전 세계적의 관심이 고조되었다. 덩샤오핑에게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체구는 작지만 강력한 지도자. 세 번의 불명예를 당한 후에도 다시 정계에 발을 디뎌 결국 최고권력자에 오른 덩샤오핑은 수많은 사람에게 중국이 결국 문명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는 희망 가득한 영감을 주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은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사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타임》 표지에 등장했을 때처럼 알 수 없는 행보를 보인 적이 많았다. 스스로 “나는 다른 사상의 영향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나는 곧장 공산주의에 도달했다”고 언급할 정도로 공산주의 외의 다른 사상을 공부한 적이 없으면서도 “고양이가 검은지 노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쥐를 잡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고양이입니다”라며 마오쩌둥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약진 실행 단위인 인민공사 대신 가족도급제를 지지해서 중국 인민을 기아에서 구해냈다. 마오 치하의 베이징으로 복귀한 뒤 오랜 친구 저우언라이를 비판했으면서도 저우언라이가 제시한 4개 현대화를 이어받았고, 자신을 세 번 실각시킨 마오에 대해 “중국 혁명의 전체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마오쩌둥 동지의 영광스러운 이미지를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모두를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 시각에서’ 평가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마오쩌둥을 드높였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려면 덩샤오핑을 읽어라
지금 미국과 무역 분쟁이 한창일 정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은 향후 100년은 ‘도광양회’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설계자요 실행자조차 중국이 이렇게까지 시장경제와 공산당 독재체제의 결합으로 성공적인 세계의 공장이 되리라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또한 마오쩌둥 개인숭배와 1인 집권 체제가 불러온 문화대혁명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은 이후 덩샤오핑이 도입한 집단지도체제를 현재 지도자 시진핑이 ‘중국의 꿈’과 ‘일대일로’를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무너뜨리기 시작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설계자 덩샤오핑》은 가깝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웃 나라의 권력 핵심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충실한 관찰의 기록이다. “덩에게 있어 또 다른 기념물은, 그가 일생을 통해 의도적으로 강화시킨, 공산당이 조종하는 강력한 권위주의 기계이다. 중국이 21세기에, 그 지도자들이 여전히 마르크스와 레닌뿐만 아니라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까지 충성하는 유일한 공산주의 대국으로 남아 있는 것은, 특히 마오 사후에, 그가 기울인 노력 덕분이다.” “사회주의의 길, 무산계급의 독재, 공산당의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4항 기본원칙”을 내세워 자유화를 탄압하면서도 “인민의 민주는 적에 대한 독재 그리고 민주에 기초한 중앙집권과 분리될 수 없다”고 여긴 덩샤오핑의 생애를 담은 《설계자 덩샤오핑》은 중국에서 최고 권력이 작동하는 은밀한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안내서이다.
목차
감사의 말
주요 인물
서문
1부 볼셰비키
1. 용의 해에 태어나다 | 2. 파리에서 모스크바로: 볼셰비즘의 교훈 | 3. 시안에서 상하이로 | 4. 광시에서의 시험
2부 마오주의자
5. ‘5불파’의 정신 | 6. 타이항산맥의 지배자 | 7. 신민주주의 혁명의 선봉에서 | 8. 서남 지역의 책임자 | 9. 베이징 경마장 | 10. ‘개인숭배 비판’ 그리고 그 결과 | 11. 위대한 성장 역량 | 12. 존재와 의식 | 13. 노란 고양이, 검은 고양이 | 14. 제2호 주자파 | 15. 체포 그리고 유배
3부 실용주의자
16. ‘솜처럼 부드럽고, 바늘처럼 날카로운’ | 17. 새로운 시험 | 18. ‘실천이 진리 검증의 기준’ | 19. 기본 원칙 | 20. ‘일부 사람들이 먼저 부유해지도록 하라’ | 21.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 22. 개혁 그리고 민주주의 |
23. 톈안먼의 비극 | 24. 은퇴한 가부장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덩샤오핑 연표
덩샤오핑 가계도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