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성의 정치를 뒤집는 감정의 정치학
- 대등서명
- 感情の政治学
- 개인저자
- 요시다 도오루 지음 ; 김상운 옮김
- 발행사항
- 서울 : 2015
- 형태사항
- 342 p. : 표 ; 23 cm
- ISBN
- 9788955617818
- 청구기호
- 340.2 길73ㅈ
- 일반주기
- 원저자명: 吉田撤
- 서지주기
- 참고문헌(p. 310-322)과 색인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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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6930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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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태/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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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자료실
책 소개
근대의 인문사회과학은 인간의 감정을 충분하게 시야에 넣지 않은 채 발전되었다. 감정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거기에 마이너스 측면만 있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이 책에서 전개되듯이, 인간의 ‘플러스’ 감정이 뭔지를 상상하고, 그것에 빛을 쪼이고 그것을 높이 받들고 칭찬함으로써 더욱더 인간에 가까운 정치에 관한 말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개개인이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생각해 행동한다면 세상이 좋아지리라는 사고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는 되지 않는 타자를 전제로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다시 짜려고 한다면, 우리는 타자에 대해 열린 존재로 변모되지 않을까? -본문에서
정치가 홀대해 온 감정의 힘!
정치를 움직이는 진짜 메커니즘 분석
정치는 왜, 어떻게 생겨났을까.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의 저자 요시다 도오루는 영화 <스타트렉>이야말로 그 질문에 충실히 답해 주는 작품이라고 본다. <스타트렉>에서 인상적인 등장인물이 스팍 박사와 커크 선장이다. 스팍 박사는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엔터프라이즈호 총책임자인 커크 선장은 오히려 직감과 정에 따라 행동하는 열혈한이다. 우리가 익히 배워 온 바에 따르면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판단이 늘 옳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엔터프라이즈호가 어떤 수수께끼 같은 생명체에 납치될 뻔한 에피소드를 보더라도 그렇다. 이때 스팍은 “수수께끼 생명체의 해악을 판단할 만큼의 정보가 아직 없어 의견을 말할 수 없다”며 머뭇거린다. 하지만 그 생명체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알 때까지 기다린다면, 엔터프라이즈호는 파괴될지도 모른다. 이런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면, 합리성을 전제로 한 판단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이 에피소드에서 엔터프라이즈호는 그 생명체의 약점을 직감적으로 파악한 커크 선장의 재치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경우, 유한한 조건 아래서 공동체 구성원의 안전을 도모하고 다른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승무원이 스팍 박사 혼자였다면 문제는 없었을지 모른다. 판단의 결과는 스팍 혼자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백 명이 탄 우주선 안에서는 온갖 정보가 난무하고, 각각의 주장이나 의견이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질투나 원한도 생겨난다. 이런 공간을 스팍처럼 합리적인 의견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다. 한정된 시간 안에 승무원의 감정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설득이나 회유 같은 수단을 통해 함선 내의 조화를 꾀해야 한다. 요시다 도오루는 바로 이것이 정치라고 말한다.
이성의 정치가 보지 못한 정치의 측면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정치를 이성이 아닌 감정의 측면에서 조명한 책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주로 던진 기존 정치 관련 책들과 결이 다르다. 정치란 왜, 어떻게 생겨났는지 정치의 원형을 묻기 때문이다.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정치학도 이성과 합리성 중심이었다. 정치철학이나 사상사의 일부를 제하곤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인간을 전제로 모델이나 가설을 세워 온 게 사실이다. 이성을 떠받든 만큼 감정 영역은 홀대해 왔다. 그러나 사회학자 만하임이 말했듯이 “정치는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고, 늘 인간의 인위에 의해 움직여진다.” 일례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서는 이 정당과 저 정당의 정책은 여기가 다르니 저기가 다르니 논하면서 이것에 능통한 것이 훌륭한 시민인 양 하지만, 주권자가 정책에 대해 잘 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정치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즉 유권자가 개인으로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더 좋은 해법이 나오리라 보는 정치관에는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실제 정치를 움직이는 것이 이성보다는 감정임을 보여 준다. 그동안 간과했던 정치가 지닌 비합리성 혹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 때문에 생겨나는 정치의 측면을 밝힌다. 그렇게 정치를 파악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의 측면을 밝히기 위해 저자는 여러 학자의 이론과 사례, 한나 아렌트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의 담론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
무의식적인 전제에 눈을 돌려라
사실 사람들이 정치적 태도나 의견을 갖는 데에는 대단히 복잡한 경로를 거친다. 그리고 그런 태도와 의견은 ‘진공’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이나 맥락과 얽혀 있다.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나 환경적 변수에 영향을 쉽게 받는다. 특히 가정과 부모에게서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무의식적인 전제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정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례로 캠벨 등은 1950년대에 ‘정당 귀속 의식’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정치적 사회화’되는지를 연구했다. ‘정당 귀속 의식’ 개념의 핵심은 아이는 비교적 이른 단계부터 부모와 똑같은 정당에 애착을 갖고 이것이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된다는 것이다. 캠벨 등이 이 개념을 고안하게 된 것은 실제의 유권자를 조사해 봤더니 미국인은 결코 정치에 정통한 것도, 정치 참여에 열심인 것도 아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마치 자동차 회사의 충실한 사용자처럼, ‘??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 정당 후보자에게 투표하더라는 것이다.
미국만 이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미국처럼 양원제가 아니지만 ‘보수’와 ‘좌파’ 진영이 견고한 정치·사회적인 대립 축으로 존재한다. 이 분단선은 세대를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2000년대 조사 결과를 봐도 프랑스인의 사실상 41퍼센트가 부모와 같은 정치 진영(부모가 보수라면 보수, 좌파라면 좌파)에 속해 있다. 여기에다 어느 진영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무당파까지 더하면 그 비율은 65퍼센트까지 상승한다. 즉, 결과적으로 프랑스인의 3분의 2가 부모와 같은 정치적 가치를 갖게 된다. 이처럼 친밀한 관계일수록 정치적 태도는 비슷하다.
그러므로 ‘사적 공간’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정치와 관계를 맺고 자신의 의식을 발전시키는가에 관해 계속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정치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잠복해 있다. 이 ‘사적’인 공간에서 정치적인 것은 타인과 맺는 관계성 속에서 생성되고 교육되고 전개된다. 타인과 맺는 관계가 자신에게 또다시 영향을 미치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치의식이 형성된다. 정치 자체라고 해도 좋은 이 미시적이고 유동적인 관계성이 정치의 핵심이다. 민주주의에 내재된 역동성은 이 순환적인 영향을 주는 반복 운동의 진폭에 달려 있다. 이 역동성은 타인에게 동화되거나 타인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양자의 혼합에서 생겨난다.
만약 정치 참여나 정치 행위에 합리성이 깃들어 있다면, 합리성은 개개인이 정당 공약을 열심히 읽는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공약에 왜 찬성하는지, 왜 반대하는지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나와 타자의 간극을 조율하는 건 이성보다 감정
그럼, 정치는 왜 생기는 걸까. 타자가 있어서다. 이 타자는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존재다.
정치란 자기 이외의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이런 사람들과 협력하거나 거래하거나, 이들에 반발하거나 이들을 강제하여, 공동체에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끈질기게 실현해 가는 것이다. “자신에게 좋은 것”이 “타인에게 좋은 것”, 즉 “공동체에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메울 수 없는 차이를 어떻게든 메우려고 하는 것이 정치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9쪽에서
저자는 나와 타자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고 메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감정이야말로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를 만들어 내고, 넓은 의미의 정치 참여를 가능케 해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정치 참여의 동기를 마련하려면 반드시 사람들의 감정을 도입해야 한다. 정치는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전제해 버리면, 유권자들이 소화할 수 없는 합리적 판단을 이들에게 요구해 버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정치에 참여하고 싶다는 동기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뿐 아니라 정치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민만이 담당하며 또 담당해야 한다는 규범적인 의견은 정치 참여의 자격 조건을 설정해 버려 참여 의욕을 감퇴시킨다. -244쪽에서
‘신뢰’는 발명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감정을 걸쇠로 삼아 어떤 사회를 지금부터 만들어 내야 할 것인지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특히 ‘신뢰’라는 감정에 그리고 신뢰와 민주주의 관계에 주목한다.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메커니즘이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그다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민주정치란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관련된 사항을 우리 자신의 의견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정치인데, 이런 우리의 대표인 정치가나 정당을 신뢰할 수 없다면 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결과적으로 해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278쪽에서
결과적으로 저자는 “사회가 사회이려면 신뢰는 불가결하다”고 단언한다. 사람들 사이에 신뢰관계가 먼저 있고 그런 후에 사람들이 신뢰를 보내는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공평무사한 제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신뢰가 생겨난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 한, 사회 속에서 신뢰를 높이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신뢰를 높이는 것은 실증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뛰어나게 윤리적이고 논리적인 과제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평한 보편주의적 정책이 있고 이런 정책이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는 인과관계를 가정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뢰는 ‘거기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것이며, 없다면 “발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 있어서 공감과 연대, 동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애덤 스미스, 파스칼, 뒤르켐 같은 많은 사상가가 부르짖은 것이기도 했다. 이들의 사상은 신뢰를 근대에서 복권시키려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근대라는 시대는 사회에 신뢰가 없으면 개인의 자유도 성립하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음을 공통적으로 이해했다. 개인이 자연(신)의 공동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면, 사람은 이를 대신해 안전과 자유를 자신에게 보장해 줄 것을 찾아내고 자기 손으로 창출해 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신뢰는 있느냐 없느냐, 혹은 있어야 하느냐 아니냐 같은 차원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사회이려면 신뢰는 불가결하다. 타인 자유의 증대가 자기 자유의 축소를 의미하지 않는 사회, 즉 타인을 신뢰함으로써 자신의 자유가 확대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만일 타인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창출되어야 한다. 만약 창출할 수 없다면, 발명되어야 한다. -298쪽에서
그렇다고 저자가 이성과 감정의 뚜렷한 이분법을 지향하는 건 아니다. 양자를 접속시킴으로써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상호 반응성을 높이고,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경계선을 다시 물을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다시 부상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에 참여할 동기나 타인과 관계를 구축할 동기가 강해지면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생겨나리라 저자는 기대한다.
[책의 구성]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은 사람들이 정치에 연루되는 데 있어서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또 이로부터 어떤 정치가 생겨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1장의 요지는 정치를 합리성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며, 정치를 합리성에만 입각해 볼 경우에는 사실상 볼 수 없는 것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2장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어떤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 정치적인 의식을 갖게 되는가, 즉 정치적 각성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여러 가지 현상이나 논의를 살피면서 확인한다. 여기서는 사적 공간에서 생성되는 정치적 의식의 싹이 가까운 타자를 통해 공적인 정치 참여 의식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지적한다.
사람들의 정치의식의 생성을 확인한 다음에는, 사람들이 정치에 어떻게, 왜 참여하는가에 관해 고찰한다(3장). 여기서의 열쇳말은 ‘관계성’이다. 애초부터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은 반드시 자신이 타자와 맺는 관계 속에서야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4장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해설한다. 여기서 검토되는 테제는 사람들이 무리를 져 행동할 때 정치의 목적과 수단이 뒤얽히고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언제나 좋은 것만 가져다준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측면과 관련해서 사람들의 공포가 정치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관찰하기도 한다(5장). 실제로 정치에서 ‘공포’는 마이너스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플러스로 작용한다고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6장에서는, 궁극적으로 정치, 특히 민주주의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정치와 신뢰는 얼핏 보면 서로 동떨어져 있으나 가만 보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치와 신뢰를 얼마나 나누기 어렵게 만들 것인가가 정치를 우리 것으로 삼으려 할 때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가 홀대해 온 감정의 힘!
정치를 움직이는 진짜 메커니즘 분석
정치는 왜, 어떻게 생겨났을까.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의 저자 요시다 도오루는 영화 <스타트렉>이야말로 그 질문에 충실히 답해 주는 작품이라고 본다. <스타트렉>에서 인상적인 등장인물이 스팍 박사와 커크 선장이다. 스팍 박사는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엔터프라이즈호 총책임자인 커크 선장은 오히려 직감과 정에 따라 행동하는 열혈한이다. 우리가 익히 배워 온 바에 따르면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판단이 늘 옳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엔터프라이즈호가 어떤 수수께끼 같은 생명체에 납치될 뻔한 에피소드를 보더라도 그렇다. 이때 스팍은 “수수께끼 생명체의 해악을 판단할 만큼의 정보가 아직 없어 의견을 말할 수 없다”며 머뭇거린다. 하지만 그 생명체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알 때까지 기다린다면, 엔터프라이즈호는 파괴될지도 모른다. 이런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면, 합리성을 전제로 한 판단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이 에피소드에서 엔터프라이즈호는 그 생명체의 약점을 직감적으로 파악한 커크 선장의 재치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경우, 유한한 조건 아래서 공동체 구성원의 안전을 도모하고 다른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승무원이 스팍 박사 혼자였다면 문제는 없었을지 모른다. 판단의 결과는 스팍 혼자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백 명이 탄 우주선 안에서는 온갖 정보가 난무하고, 각각의 주장이나 의견이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질투나 원한도 생겨난다. 이런 공간을 스팍처럼 합리적인 의견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다. 한정된 시간 안에 승무원의 감정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설득이나 회유 같은 수단을 통해 함선 내의 조화를 꾀해야 한다. 요시다 도오루는 바로 이것이 정치라고 말한다.
이성의 정치가 보지 못한 정치의 측면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정치를 이성이 아닌 감정의 측면에서 조명한 책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주로 던진 기존 정치 관련 책들과 결이 다르다. 정치란 왜, 어떻게 생겨났는지 정치의 원형을 묻기 때문이다.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정치학도 이성과 합리성 중심이었다. 정치철학이나 사상사의 일부를 제하곤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인간을 전제로 모델이나 가설을 세워 온 게 사실이다. 이성을 떠받든 만큼 감정 영역은 홀대해 왔다. 그러나 사회학자 만하임이 말했듯이 “정치는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고, 늘 인간의 인위에 의해 움직여진다.” 일례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서는 이 정당과 저 정당의 정책은 여기가 다르니 저기가 다르니 논하면서 이것에 능통한 것이 훌륭한 시민인 양 하지만, 주권자가 정책에 대해 잘 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정치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즉 유권자가 개인으로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더 좋은 해법이 나오리라 보는 정치관에는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실제 정치를 움직이는 것이 이성보다는 감정임을 보여 준다. 그동안 간과했던 정치가 지닌 비합리성 혹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 때문에 생겨나는 정치의 측면을 밝힌다. 그렇게 정치를 파악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의 측면을 밝히기 위해 저자는 여러 학자의 이론과 사례, 한나 아렌트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의 담론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
무의식적인 전제에 눈을 돌려라
사실 사람들이 정치적 태도나 의견을 갖는 데에는 대단히 복잡한 경로를 거친다. 그리고 그런 태도와 의견은 ‘진공’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이나 맥락과 얽혀 있다.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나 환경적 변수에 영향을 쉽게 받는다. 특히 가정과 부모에게서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무의식적인 전제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정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례로 캠벨 등은 1950년대에 ‘정당 귀속 의식’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정치적 사회화’되는지를 연구했다. ‘정당 귀속 의식’ 개념의 핵심은 아이는 비교적 이른 단계부터 부모와 똑같은 정당에 애착을 갖고 이것이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된다는 것이다. 캠벨 등이 이 개념을 고안하게 된 것은 실제의 유권자를 조사해 봤더니 미국인은 결코 정치에 정통한 것도, 정치 참여에 열심인 것도 아님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마치 자동차 회사의 충실한 사용자처럼, ‘??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 정당 후보자에게 투표하더라는 것이다.
미국만 이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미국처럼 양원제가 아니지만 ‘보수’와 ‘좌파’ 진영이 견고한 정치·사회적인 대립 축으로 존재한다. 이 분단선은 세대를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2000년대 조사 결과를 봐도 프랑스인의 사실상 41퍼센트가 부모와 같은 정치 진영(부모가 보수라면 보수, 좌파라면 좌파)에 속해 있다. 여기에다 어느 진영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무당파까지 더하면 그 비율은 65퍼센트까지 상승한다. 즉, 결과적으로 프랑스인의 3분의 2가 부모와 같은 정치적 가치를 갖게 된다. 이처럼 친밀한 관계일수록 정치적 태도는 비슷하다.
그러므로 ‘사적 공간’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정치와 관계를 맺고 자신의 의식을 발전시키는가에 관해 계속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정치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잠복해 있다. 이 ‘사적’인 공간에서 정치적인 것은 타인과 맺는 관계성 속에서 생성되고 교육되고 전개된다. 타인과 맺는 관계가 자신에게 또다시 영향을 미치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치의식이 형성된다. 정치 자체라고 해도 좋은 이 미시적이고 유동적인 관계성이 정치의 핵심이다. 민주주의에 내재된 역동성은 이 순환적인 영향을 주는 반복 운동의 진폭에 달려 있다. 이 역동성은 타인에게 동화되거나 타인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양자의 혼합에서 생겨난다.
만약 정치 참여나 정치 행위에 합리성이 깃들어 있다면, 합리성은 개개인이 정당 공약을 열심히 읽는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공약에 왜 찬성하는지, 왜 반대하는지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나와 타자의 간극을 조율하는 건 이성보다 감정
그럼, 정치는 왜 생기는 걸까. 타자가 있어서다. 이 타자는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존재다.
정치란 자기 이외의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이런 사람들과 협력하거나 거래하거나, 이들에 반발하거나 이들을 강제하여, 공동체에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끈질기게 실현해 가는 것이다. “자신에게 좋은 것”이 “타인에게 좋은 것”, 즉 “공동체에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메울 수 없는 차이를 어떻게든 메우려고 하는 것이 정치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9쪽에서
저자는 나와 타자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고 메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감정이야말로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를 만들어 내고, 넓은 의미의 정치 참여를 가능케 해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정치 참여의 동기를 마련하려면 반드시 사람들의 감정을 도입해야 한다. 정치는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전제해 버리면, 유권자들이 소화할 수 없는 합리적 판단을 이들에게 요구해 버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정치에 참여하고 싶다는 동기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이뿐 아니라 정치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민만이 담당하며 또 담당해야 한다는 규범적인 의견은 정치 참여의 자격 조건을 설정해 버려 참여 의욕을 감퇴시킨다. -244쪽에서
‘신뢰’는 발명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감정을 걸쇠로 삼아 어떤 사회를 지금부터 만들어 내야 할 것인지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특히 ‘신뢰’라는 감정에 그리고 신뢰와 민주주의 관계에 주목한다.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메커니즘이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그다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민주정치란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관련된 사항을 우리 자신의 의견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정치인데, 이런 우리의 대표인 정치가나 정당을 신뢰할 수 없다면 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결과적으로 해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278쪽에서
결과적으로 저자는 “사회가 사회이려면 신뢰는 불가결하다”고 단언한다. 사람들 사이에 신뢰관계가 먼저 있고 그런 후에 사람들이 신뢰를 보내는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공평무사한 제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신뢰가 생겨난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는 한, 사회 속에서 신뢰를 높이기란 어렵다고 말한다. 신뢰를 높이는 것은 실증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뛰어나게 윤리적이고 논리적인 과제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공평한 보편주의적 정책이 있고 이런 정책이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는 인과관계를 가정하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뢰는 ‘거기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것이며, 없다면 “발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 있어서 공감과 연대, 동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애덤 스미스, 파스칼, 뒤르켐 같은 많은 사상가가 부르짖은 것이기도 했다. 이들의 사상은 신뢰를 근대에서 복권시키려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근대라는 시대는 사회에 신뢰가 없으면 개인의 자유도 성립하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음을 공통적으로 이해했다. 개인이 자연(신)의 공동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면, 사람은 이를 대신해 안전과 자유를 자신에게 보장해 줄 것을 찾아내고 자기 손으로 창출해 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신뢰는 있느냐 없느냐, 혹은 있어야 하느냐 아니냐 같은 차원에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사회이려면 신뢰는 불가결하다. 타인 자유의 증대가 자기 자유의 축소를 의미하지 않는 사회, 즉 타인을 신뢰함으로써 자신의 자유가 확대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만일 타인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창출되어야 한다. 만약 창출할 수 없다면, 발명되어야 한다. -298쪽에서
그렇다고 저자가 이성과 감정의 뚜렷한 이분법을 지향하는 건 아니다. 양자를 접속시킴으로써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상호 반응성을 높이고,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의 경계선을 다시 물을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다시 부상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에 참여할 동기나 타인과 관계를 구축할 동기가 강해지면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생겨나리라 저자는 기대한다.
[책의 구성]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은 사람들이 정치에 연루되는 데 있어서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또 이로부터 어떤 정치가 생겨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1장의 요지는 정치를 합리성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며, 정치를 합리성에만 입각해 볼 경우에는 사실상 볼 수 없는 것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2장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어떤 체험이나 경험을 통해 정치적인 의식을 갖게 되는가, 즉 정치적 각성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여러 가지 현상이나 논의를 살피면서 확인한다. 여기서는 사적 공간에서 생성되는 정치적 의식의 싹이 가까운 타자를 통해 공적인 정치 참여 의식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지적한다.
사람들의 정치의식의 생성을 확인한 다음에는, 사람들이 정치에 어떻게, 왜 참여하는가에 관해 고찰한다(3장). 여기서의 열쇳말은 ‘관계성’이다. 애초부터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은 반드시 자신이 타자와 맺는 관계 속에서야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4장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해설한다. 여기서 검토되는 테제는 사람들이 무리를 져 행동할 때 정치의 목적과 수단이 뒤얽히고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언제나 좋은 것만 가져다준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측면과 관련해서 사람들의 공포가 정치에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관찰하기도 한다(5장). 실제로 정치에서 ‘공포’는 마이너스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플러스로 작용한다고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6장에서는, 궁극적으로 정치, 특히 민주주의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정치와 신뢰는 얼핏 보면 서로 동떨어져 있으나 가만 보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치와 신뢰를 얼마나 나누기 어렵게 만들 것인가가 정치를 우리 것으로 삼으려 할 때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목차
서론
1장 정치의 조건
2장 되기 : 사람은 어떻게 정치와 관련을 맺는가
3장 사이 : 관계성의 정치로 신자유주의의 정치를 대체하기
4장 무리 : 무리 지어 행동한다는 것
5장 공포 :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가
6장 믿음 : 정치에서 신뢰는 왜 필요해지는가
저자 후기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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