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그녀는 괴테가, 그는 아인슈타인이 좋다고 말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네버앤딩 지식 배틀
- 대등서명
- Goethes Faust & Einsteins Haken
- 발행사항
- [서울] : 항해, 2018
- 형태사항
- 276 p. ; 19 cm
- ISBN
- 9791196075743
- 청구기호
- 104 B864g
- 일반주기
- 원저자명: Annika Brockschmidt, Dennis Schulz
- 서지주기
- 참고문헌: p. 271-276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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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6948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6948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인문학과 자연과학 세게 한판 붙다!
전통적으로 인문학 전공자와 자연과학 전공자 사이에는 뿌리 깊은 선입견이 있다. 인문학 전공자는 숫자를 모르고 현실적 문제 해결에 무능하며, 자연과학 전공자는 사회적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며 괴짜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이 선입견의 타당성을 알아보고 각자 자기 학문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두 분야의 대표 트레이너가 나서서 ‘지식 배틀’의 장을 꾸렸다. 바로 역사와 독문학을 전공한 그녀, 아니카 브로크슈미트와 저온물리학 박사인 그, 데니스 슐츠가 그들이다. 아니카는 인쇄술과 각종 문화 기록물에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데니스는 독일의 과학 경진 대회인 ‘사이언스 슬램Science ?Slam’의 남독일 지역 챔피언이다. 이 두 사람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주제로 ‘사이언스 파이Science Pie’라는 팟캐스트(www.sciencepie.org)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두 명의 트레이너는 각자 자기 분야의 명망 높은 학자들을 내세워, 총 10라운드의 경기를 치른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넓지만 얕은 지식’
이 책은 인문학 전공자와 자연과학 전공자가 서로에 대해 가지는 편견을 직격하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너드nerd’나 ‘덕후’ 정도로 보며 상대편의 기행을 비웃지만, 실은 두 학문 전공자 모두 내심 자신들의 기벽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두 학문사 최고의 기인을 알아보는 것으로 첫 라운드를 여는 것은 꽤 설득력이 있다. 이어지는 ‘관용구 대 공식’의 대결도 마찬가지다. 이 대결을 통해, 수학 및 과학 공식을 보면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고 생각하는 ‘수포자’들은 이과인들이 그토록 애정하는 공식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세상 이치를 간명하면서도 격조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관용구들이 사실 인문학사의 많은 일화와 저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과인들이 손쉽게 말장난이라 치부하는 인문학적 정신의 언어가 사실 우리의 일상 표현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가볍지만 의외로 핵심을 찌르는 이 책의 대결 주제와 거기서 펼쳐지는 ‘넓지만 얕은’ 지식과 역사적 일화의 향연들은, 아직은 서로를 잘 모르고 어색해하나 상대에게 호기심 어린 선망을 가지고 있는 두 학문 분야의 독자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태초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하나였다
사실 기나긴 학문의 역사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분리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대표적 이과 학문으로 통하는 의학의 역사는 인문학에 속한다. 고대에 의사는 의술만 행하지 않고 수학, 철학, 역사, 문학 등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중세까지만 해도 학문의 영역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원에서도 의학을 가르쳤다. 한편 수학은 어떤가? 수학은 언어가 아닌 수를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수학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사고 모델이다. 따라서 논리가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학은 순수하게 이론적인 인문학 모델로도 볼 수 있다. ‘활판 인쇄술’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세상을 변혁시킨 대발명 중 하나로 기록된다. 한편 그것의 세계사적 의미를 빼고 오로지 기술 자체만을 봤을 때, 활판 인쇄술은 기술사에 속한다.
어게인, 박학자의 시대
역사적으로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학자들은 특정 학문 영역으로 규정하기 힘든 박학자였다. 가령 우리에게 철학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 전반에도 능통했다. 괴테도 마찬가지다. 괴테는 흔히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등을 쓴 문학가로 기억되지만, 광물학, 동물학, 식물학, 화학, 광학, 색채론, 유리 제조에 능통한 르네상스인이었다. 이는 자연과학계의 대표 인물 뉴턴도 마찬가지여서, 뉴턴은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미신이라고 여기는 연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런 박학자를 찾기 위해서 굳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흔히 20세기 최고 지성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논리학자이자 수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저술가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박학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새로운 연구가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학문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 분야도 극도로 세분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한 사람이 여러 학문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인위적 구분이 만들어내는 학문적 부작용이나, 궁극적으로 온전하게 이 세계를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학문의 역할임을 상기해볼 때 두 학문 사이에는 가교가 필요하며, 이 책은 그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를 이해해보라고 손짓을 보낸다.
전통적으로 인문학 전공자와 자연과학 전공자 사이에는 뿌리 깊은 선입견이 있다. 인문학 전공자는 숫자를 모르고 현실적 문제 해결에 무능하며, 자연과학 전공자는 사회적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며 괴짜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이 선입견의 타당성을 알아보고 각자 자기 학문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두 분야의 대표 트레이너가 나서서 ‘지식 배틀’의 장을 꾸렸다. 바로 역사와 독문학을 전공한 그녀, 아니카 브로크슈미트와 저온물리학 박사인 그, 데니스 슐츠가 그들이다. 아니카는 인쇄술과 각종 문화 기록물에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데니스는 독일의 과학 경진 대회인 ‘사이언스 슬램Science ?Slam’의 남독일 지역 챔피언이다. 이 두 사람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주제로 ‘사이언스 파이Science Pie’라는 팟캐스트(www.sciencepie.org)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두 명의 트레이너는 각자 자기 분야의 명망 높은 학자들을 내세워, 총 10라운드의 경기를 치른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넓지만 얕은 지식’
이 책은 인문학 전공자와 자연과학 전공자가 서로에 대해 가지는 편견을 직격하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를 ‘너드nerd’나 ‘덕후’ 정도로 보며 상대편의 기행을 비웃지만, 실은 두 학문 전공자 모두 내심 자신들의 기벽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두 학문사 최고의 기인을 알아보는 것으로 첫 라운드를 여는 것은 꽤 설득력이 있다. 이어지는 ‘관용구 대 공식’의 대결도 마찬가지다. 이 대결을 통해, 수학 및 과학 공식을 보면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고 생각하는 ‘수포자’들은 이과인들이 그토록 애정하는 공식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세상 이치를 간명하면서도 격조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많은 관용구들이 사실 인문학사의 많은 일화와 저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과인들이 손쉽게 말장난이라 치부하는 인문학적 정신의 언어가 사실 우리의 일상 표현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가볍지만 의외로 핵심을 찌르는 이 책의 대결 주제와 거기서 펼쳐지는 ‘넓지만 얕은’ 지식과 역사적 일화의 향연들은, 아직은 서로를 잘 모르고 어색해하나 상대에게 호기심 어린 선망을 가지고 있는 두 학문 분야의 독자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태초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하나였다
사실 기나긴 학문의 역사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분리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오늘날 대표적 이과 학문으로 통하는 의학의 역사는 인문학에 속한다. 고대에 의사는 의술만 행하지 않고 수학, 철학, 역사, 문학 등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중세까지만 해도 학문의 영역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원에서도 의학을 가르쳤다. 한편 수학은 어떤가? 수학은 언어가 아닌 수를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수학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사고 모델이다. 따라서 논리가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학은 순수하게 이론적인 인문학 모델로도 볼 수 있다. ‘활판 인쇄술’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세상을 변혁시킨 대발명 중 하나로 기록된다. 한편 그것의 세계사적 의미를 빼고 오로지 기술 자체만을 봤을 때, 활판 인쇄술은 기술사에 속한다.
어게인, 박학자의 시대
역사적으로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학자들은 특정 학문 영역으로 규정하기 힘든 박학자였다. 가령 우리에게 철학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 전반에도 능통했다. 괴테도 마찬가지다. 괴테는 흔히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등을 쓴 문학가로 기억되지만, 광물학, 동물학, 식물학, 화학, 광학, 색채론, 유리 제조에 능통한 르네상스인이었다. 이는 자연과학계의 대표 인물 뉴턴도 마찬가지여서, 뉴턴은 심지어 오늘날 우리가 미신이라고 여기는 연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런 박학자를 찾기 위해서 굳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흔히 20세기 최고 지성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논리학자이자 수학자, 역사학자, 철학자, 저술가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박학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새로운 연구가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학문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 분야도 극도로 세분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제 한 사람이 여러 학문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인위적 구분이 만들어내는 학문적 부작용이나, 궁극적으로 온전하게 이 세계를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학문의 역할임을 상기해볼 때 두 학문 사이에는 가교가 필요하며, 이 책은 그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를 이해해보라고 손짓을 보낸다.
목차
누가누가 더 낫나?
ROUND 1 기인 열전
독설하는 과학자, 침묵하는 수학자
댄디와 몽상가
ROUND 2 관용구 vs. 공식
인문학자는 언어로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공식은 아름답고 심오하며 때로 정치적이다
ROUND 3 혈통 대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왕좌의 게임 시즌 2
ROUND 4 최고의 디스
모욕은 혼자 오지 않는다
독설가의 어깨에 올라서서
ROUND 5 사이비 이론 열전
실수는 ‘비’인간적이다
오류는 ‘부’자연스럽다
ROUND 6 두 학문의 혁명적 순간
병에 걸린 튤립, 건강한 연금술
역사는 힘이 세다
ROUND 7 최고의 악인
언어의 위력
최고의 환경 파괴꾼
ROUND 8 창조하는 자는 훔친다
최초 발견자는 외면받는다
생각보다 오래된 저작권의 역사
ROUND 9 실수와 오판의 역사
실수는 반복된다
암이 생길 만한 실수
ROUND 10 두 학문의 위대한 드라마
인문학의 홈그라운드, 희곡
자연과학사 최고의 비극
최후의 승자는?
참고 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