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민 이주사 1949~1989: 분단 독일,동독민은 어떻게 서독에 정착했는가?
- 개인저자
- 최승완 지음
- 발행사항
- 파주 : 서해문집, 2019
- 형태사항
- 568 p. : 삽화 ; 21 cm
- ISBN
- 9788974839802
- 청구기호
- 925.075 최58ㄷ
- 서지주기
- 참고문헌 및 색인(p. 538-568) 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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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 장으로 기록될 의미가 충분히 있다!
분단 40여 년간 동독을 이탈한 동독인은 많게는 약 457만 명, 적게는 약 357만 명에 달했다. 이들의 다수는 젊고, 전문직업교육을 받은 숙련인력이었다. 이 책은 1949년부터 1989년까지 서독으로 넘어 온 동독 이탈주민을 다루고 있다. 우리와 달리 분단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가 서독 사회에 통합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더불어 많은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동독 이탈주민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서독으로 갔을까? 서독은 도대체 그 많은 이탈주민을 어떻게 다 받아들이고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 수백만 명에 달하는 동독 이탈주민은 독일 분단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동독 이탈주민이 분단국의 이주민으로 갖는 특수성은 무엇인가?
우리의 현실 또한 마찬가지다. 북한 이탈 주민의 남한 사회 정착은 대부분 순탄치 못하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성장한 이들이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남한 정부의 북한 이탈 주민 수용 정책도 이들을 신속하게 안정된 상황으로 이끌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북한 이탈 주민을 바라보는 남한 사회의 편견 혹은 무관심의 벽도 만만찮다. 앞으로 남한으로 유입되는 북한 이탈 주민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니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이탈 주민 문제를 겪은 독일의 사례가 궁금해진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동독 이탈 주민에 대한 국내외 전문 연구 성과는 여전히 부족하고, 이들의 동독 이탈과 서독 정착을 분단 40년 역사 속에서 상세히 다룬 연구서는 더더욱 없는 상황이다. 독일 현대사 연구자인 저자가 이 점에 주목해 동독 이탈 주민을 역사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독일에서 또 다른 독일로: 동독 주민의 이탈 행렬
1950년대 동독 이탈은 주로 베를린을 통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 4개국 공동관리지역이라는 특수성에 힘입어 동서 베를린 간에 지하철과 도시고속전철이 운행되고 주민 왕래도 가능했다. 이에 따라 동독인은 일일 방문을 가장해 서베를린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이러한 이탈 행렬이 1950년대에 연평균 약 30만 명이라는 대규모로 지속되자 국가존립의 위기에 처한 동독 정권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축조했다.
장벽으로 인해 베를린이 더 이상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동독 이탈주민은 땅굴, 여권위조, 열기구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인권보장(특히 거주이전의 자유)의 의무를 내세워 서독으로 이주를 신청해 합법적으로 동독을 떠났다.
1989년 후반 다시 1950년대와 같은 대규모 이탈 사태가 발생했다. 동독 정권의 정치적 경직성과 동독이 처한 심각한 경제 위기 등에 실망하고 등을 돌린 동독인들이 1989년 여름 이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탈출했다.
1989년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대규모 탈출행렬은 남아있는 자에게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고, 나아가 이를 동독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결집시켜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이끌어내는 주요 동인으로 작용했다. 탈출자들은 단지 서독으로 가려고 했을 뿐 통사당 지배 체제에 저항하거나 정권붕괴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대규모 동독 이탈은 불안하게 소용돌이치는 동독의 정치적 위기를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고, 동독 붕괴로 이어지는 정치적 대변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동독 이탈 주민에서 서독 시민으로
수백만 명에 달하는 동독이탈 주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서독으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1950년대 초반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심각한 사회적 충돌 없이 이들을 서독 사회에 통합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크게 네 가지다.
- 기본적으로 이들이 같은 독일인이었다는 점이 이탈주민 수용과 정착 지원을 놓고 서독 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 서독 정부가 동독 이탈 주민에게 같은 국적을 부여해 서독인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정착 지원에 따른 논란의 소지를 차단하고, 다양한 정착 지원제도를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한 것이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서독 정부는 오랫동안 동독 이탈주민을 정치적 난민으로 이미지화하며 동독 체제의 부당성과 서독 체제의 우위를 입증하는 증거로 내세웠다.
- 이탈 주민 문제를 서독 연방정부가 전담하지 않고 주정부, 종교 단체를 비롯한 민간 사회단체와의 유기적 협력과 책임 분담을 통해 효율적으로 풀어간 점, 이탈 주민 특별 대책을 따로 마련하기보다는 이들을 기존 사회보장제도 안으로 흡수해 정착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서독인의 반발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한 점도 주효했다.
- 무엇보다 대규모 동독 이탈주민이 쇄도한 1950년대 이들의 사회 통합을 뒷받침한 핵심 원동력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서독의 경제 발전이었다. 그 덕분에 대규모 이탈 주민을 노동시장으로 흡수하고, 각종 정착 지원의 물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대규모 탈동독 행렬과 서독 경제의 폭발적 확장이 병행된 것은 이탈 주민과 서독 사회 모두에게 행운이었다.
성공 신화의 이면
이탈 주민 통합의 성공 신화 이면에는 이들이 개인적으로 겪은 난관이 있었다. 젊고 숙련된 인력이 다수라 실제로는 서독 경제 발전에 기여했음에도 서독 사회가 부양해야 하는 짐스러운 존재로 보는 서독 사회의 불신과 편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을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경쟁자로 여기는 서독인도 적잖았다. 나아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회화된 동독 이탈 주민이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익히고 적응해야 했던 것 역시 어려운 도전이었다. 원주민 사회의 편견, 재사회화의 어려움, 이탈 주민의 사회적 고립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 점에서 볼 때 이탈주민의 사회적 통합은 경제적 통합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는 과제였다.
또 다른 이탈 행렬: 서독 주민의 동독 이주
분단 시기 서독 주민 역시 동독으로 이주한 이들이 약 50만 명에 달했다. 이들의 약 2/3는 동독 이탈 주민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부적응과 서독에서 직면한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서독 이탈 주민이 되어 동독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1/3은 서독 원주민 출신으로,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동기가 되는 경우는 낮았다. 1950년대에 연평균 7만 5000명 정도가 동독으로 이주했지만, 계속 줄어들어 1980년대에는 약 2000여 명 정도였다. 이처럼 줄어든 이유는, 동독 정권이 이탈 주민을 가장한 서독 간첩의 침투에 대한 강박적 불안감, 서독 이탈 주민의 대다수가 동독 정권이 기대한 전문 인력이 아닌데다 범죄자까지 넘어오는 것에 실망해 철저히 기준에 맞는 사람만 선별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분단 독일의 가교 역할을 하다
동독 이탈 주민은 비록 동독을 떠났지만 대부분 동독에 두고 온 가족 친지와 편지, 소포, 상호 방문을 통해 교류를 이어갔다. 동독 이탈주민이 보낸 소포는 주로 동독에서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커피, 초콜릿, 나일론 제품, 여성 의류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이탈 주민의 수가 워낙 많아 전체적으로는 막대한 양이라 동독 경제의 만성적 결핍을 부분적으로 메워주는 역할도 했다. 심지어 동독 정권은 이를 반영해 경제 계획을 수립했다.
나아가 본격적으로 동서독의 관계 개선이 진전된 1970년대 이후 상호방문 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동독 이탈주민은 동독의 가족 친지와 직접 만나고 왕래하면서 동서독의 교류를 이어갔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동독 이탈주민은 분단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동서독이 단절되지 않도록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했다. 독일 분단 극복이 1970년대 동서독 관계 정상화와 동서독교류를 촉진한 정치적 차원의 노력에 힘입은 바도 크지만 동서 진영 간, 동서독 간의 정치적 부침에도 일상의 영역에서 아래로부터 부단히 지속된 이러한 교류와 소통이 갖는 의미 역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독 이탈주민은 실향민답게 다양한 정치, 문화 활동을 통해 동서독이 하나의 민족임을 널리 알리고, 통일 의지를 일깨우려고 노력했다. 이를 위해 향우회, 동향단, 중부 독일인 연맹과 같은 이탈주민 단체는 서독 정부와 정치인들을 직접 만나거나 이들에게 편지, 성명서 등을 보내 통일이 현안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압력을 가했다. 또한 자신들을 1700만 동독인의 대변자로 인식하고 동독 정권의 탄압에 고통 받는 동독인, 혹은 베를린 장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는 동독인에 대한 발포로 인한 사망 등 동독인의 인권문제도 이슈화했다.
분단 시기 내내 지속된 동독 이탈 행렬은 독일 분단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는 베를린 장벽의 수립, 베를린 장벽의 붕괴의 중요 동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수백만 명에 달하는 동독 이탈 주민은 분단 상황에서 동서독이 단절되지 않도록 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이렇게 볼 때 동독 이탈 주민의 역사는 독일 분단사의 한 장으로 기록될 의미가 충분히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4
1. 독일에서 또 다른 독일로: 분단 시기 동독 주민의 이탈 행렬
동독 이탈 주민의 규모
1950년대 탈동독 행렬과 베를린 장벽
사회주의로의 체제 변혁과 대규모 동독 이탈 | 서독으로 가는 길
불법 탈출에서 합법 이주로: 베를린 장벽 수립 이후
체제 안정의 외피, 그러나 계속되는 주민 이탈 | 장벽을 넘어 또 다른 독일로 가는 길
동독 이탈 주민의 사회적 프로필과 이탈 동기
성별, 연령, 직업, 학력으로 본 탈동독민 | 개인적 이탈 동기
권력을 가진 자의 무력함: 동독 정부의 대응
이탈 주민 문제에 대한 동독 정부의 기본 인식 | 이데올로기적 해결의 늪으로
동독 붕괴의 서막: 1989년의 대규모 동독 탈출
2. 동독 이탈 주민에서 서독 시민으로
동독 이탈 주민의 수용 원칙
긴급수용법, 선 난민 후 동일국적주의 | 희망과 좌절이 교차한 수용 심사 | 완화된 수용 기준
정착에 필요한 서독의 제도적 지원
1950년대 정착지원제도 | 베를린 장벽 수립 이후 개선과 보완
서독 민간단체의 정착 지원 활동
시민사회는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다 | 가장 시급했던 수용소 설립 |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한 수용 심사 | 법률 전문가의 도움 | 정착지원제도 개선을 요구하다 | 물질적 지원: 성금과 물품 | 상담, 정보 제공 그리고 계몽 | 가정 방문: 이탈 주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다 | 민간단체의 활동에 미친 반공주의의 여파
동독 이탈 주민 단체의 지원 활동
성공 신화의 빛과 그림자
1950년대 성공적 통합의 이면 | 베를린 장벽 수립 이후 이탈 주민 통합 문제
3. 또 다른 이탈 행렬: 서독 주민의 동독 이주
잊힌 존재: 서독 이탈 주민
서독 이탈 주민의 사회적 프로필
서독 이탈 주민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 시기별로 다른 이탈 추이 | 사회적 프로필
서독 주민이 왜 동독으로 이주했을까
서독 원주민 | 동독 출신 귀환자 | 보론: 성직자의 서독 이탈
서독 주민 유치를 위한 선전 정책
대중매체를 통한 홍보 | 공개 행사에 동원한 서독 이탈 주민 | 서독 주민 유치를 위한 견학 행사
서독 이탈 주민의 수용 절차
까다로운 수용 심사 | 수용소의 일상
동독 정착: 취업과 주택 마련을 중심으로
쉽지 않은 취업 | 역시 쉽지 않은 주택 마련 | 동독 주민의 부정적 시선 | 동독 스파이의 정착 사례: 기욤과 바크스 | 다시 서독으로: 재이탈
4. 분단 독일의 가교: 동독 이탈 주민
우편을 통한 동서독의 대화
편지 왕래 | 소포 교류
동서독의 방문 교류
통일을 위한 노력: 향우회, 동향단, 중부독일인연맹을 중심으로
통일과 동독 주민의 인권 보장 요구 | 동서독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문화 활동 | 평화의 교란자와 통일의 파수꾼 사이에서
나오는 말
동독 이탈 주민 문제의 연구 동향
주
참고 문헌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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