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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홉스의 세계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지독히 현실주의적인 이 책은 왜 다시 출간되었는가
로버트 카플란은 이 책을 미래의 미국 지도자들을 위해 썼다. 냉전 승리 이후에도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어떤 도덕관과 세계관, 그리고 그에 따른 어떤 대외정책을 가져야 하는가가 이 책의 주요 관심사다. 이 책은 9•11 테러 직후에 출간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전에 원고가 완성되었다. 로버트 카플란은 냉전이 끝나고 역사의 종말이 온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대로 소련 제국이 무너진 이후에도 세계는 안전하지 않았고 미국은 9•11 테러라는 대참사를 경험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9•11 테러 직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 이라크 전쟁을 결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로버트 카플란은 <애틀랜틱> 지의 해외 특파원으로 25년 가까이 활동했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 중동, 발칸 반도 같은 지역에서 근무했다. 그가 목도한 세계는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투쟁하는 홉스의 세계 그 자체였다. 격변과 전쟁, 가난은 하나의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그 결과 그는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었고, 그에게 질서가 무너진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위선처럼 느껴졌다. 무질서를 바로잡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지도자가 그에게는 가장 도덕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지도자들이 무질서의 세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내고자 했고, 처칠이 그랬고, 마키아벨리가 그랬듯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지적 성찰, 즉 고전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오늘날 한국이 직면하게 될 세계 역시 홉스의 세계에 가깝다. 규범이 아니라 힘이, 선의보다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지배하는 세계다. 집단안보와 자유로운 시장 접근이 점차 사라지고 지정학적 충돌과 보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7년 전보다 지금의 세계가 홉스의 세계에 더 가까워졌다. 당시 이슬람 세계와 제3세계가 혼란과 무질서의 근원이었다면, 지금 세계는 이념과 가치의 동맹 체제가 무너지고 불안정한 세력균형과 지정학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처음 출간되고 1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어판이 다시 나오게 된 이유이다.
국제정치에 대한 통찰력과 선견력은 어디서 오는가
국제정치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고대로 돌아가라
마키아벨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자 하는 사람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고대 시대에 그와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처칠이 국제정치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고대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현대 세계란 고대 세계의 연속일 뿐이며, 세상사에 대한 통찰은 오래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위대한 통찰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투키디데스이다.
이 책에서 투키디데스를 하나의 장에서 다루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책의 중심에 있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세계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으로 분열되어 끝없는 전쟁에 빠져들었다. 아테네의 장군이기도 했던 투키디데스는 암피폴리스 함락의 책임을 지고 본국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그리스 세계가 어떻게 어찌할 수 없는 힘과 이기심의 충돌로 무너져가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보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역사 기록을 인류를 위한 ‘영원한 재산(eternal possesion)’이라 불렀다. 그는 두려움과 이기심, 명예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 조건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고,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책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조지 마셜 장군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테네 몰락의 시대를 되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기본적인 국제 문제들에 대해 지혜와 확신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21세기의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정치가들은 그 강성했던 해양 제국 아테네의 성장과 몰락에서 깊은 정치적 영감을 얻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어떤 국가는 영광을 반복하고, 어떤 국가는 실패를 반복한다.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 세계가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아테네의 정치가들이 오만과 자만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 국가의 운명은 주어진 조건과 선택이 합쳐진 결과이다. 지도자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국가는 실패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면 국가는 성공한다. 우리가 과거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왜 투키디데스를 읽어야 하는가 1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의 시원: 이기심과 권력 그리고 정의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의 시원이다.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현실주의의 주요 요소들이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투키디데스는 일관되게 이기심(self-interest)에 초점을 맞춘다. 고대 그리스의 국가들은 상대를 설득할 때 정의나 이상보다는 이기심에 호소한다.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가 국가들이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투키디데스는 ‘밀로스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정의’가 아니라 권력과 이기심이 국가 관계를 지배하는지를 보여준다. 막강한 아테네 함선이 밀로스 섬에 들이닥쳤을 때 밀로스인들은 아테네의 침략을 비난하며 말한다. “정의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정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테네는 언젠가 정의를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보복 받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러자 아테네인들은 냉정하게 말한다. “정의라는 것은 오직 힘이 동등한 나라들 사이에서나 따질 일이다. 강한 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약한 자는 자신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을 감내할 뿐이다.”
하지만 투키디데스는 무분별한 힘의 사용이 파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자신들의 힘에 대한 자만심에 눈이 멀었던 아테네인들은 밀로스에 참혹한 승리를 거둔지 3년도 안 되어 시칠리아에서 심각한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투키디데스는 그 패배에 대해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이 거둔 엄청난 성공 때문에 그들의 강점과 희망을 혼동한 결과라고 말했다.
우리는 왜 투키디데스를 읽어야 하는가 2
투키디데스의 함정: 미중 패권 경쟁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투키디데스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버드 대학 그레이엄 엘리슨이 말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떠올리게 된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에 전쟁은 필연적이었다고 보았다. 아테네는 제국의 팽창을 멈출 수 없었고 스파르타는 그것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두 진영의 대결에서 아테네가 패배했으나 스파르타도 진정한 승자가 되지 못했다. 결국 30년 내전은 그리스 세계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21세기의 세계 패권을 놓고 격돌하고 있다. 중국은 패권에 대한 열망에,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그 종착점은 어디가 될 것인가? 당연히 이 책에서 이 문제는 다뤄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사고하고 예측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의 말을 빌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전쟁이 지속되면 대개 우연의 지배를 받게 되어 사태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 전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은 그리스 세계의 몰락으로 이어진 아테네-스파르타의 대결과 같은 양상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로마의 지중해 세계 지배로 이어진 로마-카르타고의 대결과 좀더 유사할지도 모른다. 미중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 놓여져 있는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자신의 통찰력과 선견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왜 투키디데스를 읽어야 하는가 3
약소국의 선택과 운명: 밀로스. 미틸레네, 케르키라
고대 그리스의 밀로스인들은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서 중립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우리는 해양 제국으로서 해양에서 계속 강한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섬나라인 밀로스를 우리의 제국에 굴복시켜야만 한다. 만약 우리가 당신 같은 조그만 섬나라 하나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약한 국가로 세상에 인식될 것이며, 이는 제국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밀로스인들 역시 아테네에 항복하기를 거부했다. 밀로스의 성인 남자들은 모두 학살되었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미틸레네는 페르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아테네와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페르시아가 물러가자 아테네가 물리는 과중한 동맹세 때문에 아테네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했다. 미틸레네는 다른 해양 국가들과는 달리 자체 해군력을 보유했고 스파르타와도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지원군은 끝내 오지 않았고 아테네를 이길 수는 없었다. 다만 아테네는 미틸레네에 ‘자비’를 베풀어 수천 명의 주동자들만을 죽였다.
케르키라는 스파르타와 가까운 코린트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아테네를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케르키라인들은 아테네를 찾아가 말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로 건너가는 해안 항로의 요충지에 있습니다. 친구가 되면 더없이 소중하지만 적이 되면 더없이 위험한 우리를 동맹으로 삼지 않는다면 아테네를 위해 미리 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적은 수의 함선만을 보냈지만, 그것이 케르키라-코린트 전쟁의 승패를 바꾸어 놓았다.
밀로스인들은 아테네의 의도를 오판함으로써, 미틸레네인들은 아테네의 힘을 오판함으로써 참혹한 운명을 맞이했다. 반면 케르키라인들은 아테네를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코린트 연합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국제정치의 핵심은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친구와 적을 선택하는 것이다. 미틸레네와 밀로스 그리고 케르키라는 거기에서 운명이 갈렸다.
우리는 왜 리비우스를 읽어야 하는가
패권국의 조건: 애국주의, 관용, 민주주의
아테네 제국은 왜 패배했는가? 이것은 오랫동안 미국 정치가들의 생각을 사로잡아온 주제이다. 미국은 자신과 같은 해양 제국이었던 아테네의 영광과 몰락에서 정치적 영감을 얻어왔다. 그러나 미국의 궁극적인 모델이 된 것은 아테네가 아니라 로마였다. 로마 시대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로마 공화정이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시민들의 애국주의에 있다고 보았다. 국가의 강함은 결국 시민 개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희생할 결의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과거 역사와 그 성취에 대한 자부심으로부터 나온다”고 리비우스는 말한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군대에 의해 칸네 전투에서 대패를 했다. 하지만 로마는 살아남았고 궁극적으로 승리했다. 로마가 멸망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던, 동맹시들에 대한 로마의 관대한 정책 때문이기도 했다. 로마의 동맹시들은 칸네 패배 후에도 로마로부터 이탈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르타고가 따라올 수 없었던 것은 로마의 정치제도였다. 로마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혼란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건강한 정치적 역동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다만 로마는 아테네와 달리 민주기관인 민회와 과두정인 원로원이 공존하는 체제였다. 전시에는 원로원이 최고 전쟁위원회가 되었고, 민중의 여론에 휩쓸리지 않았다.
로마가 포에니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세계의 패권국으로 떠올랐듯이,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되었다. 패권국이 된 미국이 로마의 많은 부분에서 정치적 영감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왜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가
지도자 요건: 불안한 선견력, 힘 그리고 결과의 도덕성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는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은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고 보고, 지도자의 미덕(virtue)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성과 달라야 했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그 의도나 방법보다는 그 결과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무리 선한 지도자라도 나라를 혼란과 위기에 빠뜨린다면 결코 도덕적인 지도자라 할 수 없었다.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악한 수단도 쓸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지도자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2가지는 불안한 선견력(anxious foresight)과 힘이다. 마키아벨리는 “힘있는 모든 예언자는 성공한 반면, 힘없는 예언자는 실패하고 만다”고 말했다. 지도자는 선견력과 힘을 가져야 한다.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떤 정책도 실패한다. 지도자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낙관적인 선견력이 아니라 비관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둔 불안한 선견력이다. 그러나 지도자가 항상 충분한 힘을 가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현재 상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직 자신이 손에 쥔 것을 가지고 일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는 또한 지금 자신이 손에 쥔 것을 가지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국은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적인 권력 충돌의 한가운데 놓인 한국의 처지는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보다 덜 위중하지 않다. 힘있는 예언자만이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한국은 과연 결과의 도덕성과 선견력 그리고 현실을 변화시킬 힘을 가진 지도자를 갖게 될 것인가?
미국의 현실주의자들은 21세기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리바이어던, 패권 체제 그리고 티베리우스
미국의 현실주의자 로버트 카플란은 21세기의 세계가 무질서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본다. 냉전이 끝나면서 기존 동맹 체제도 붕괴된다. 도시 빈곤 지역이 확대되면서 핸드폰과 폭탄으로 무장한 새로운 전사계급이 등장한다. 전쟁은 국가들끼리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도 치러지게 된다. 이게 현실화된 게 9•11 테러다.
카플란은 무질서한 세계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곧 리바이어던이다. 하지만 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 사회에 리바이어던은 가능한가? 미국은 자신의 규칙을 강제할 권위를 가진 리바이어던이 아니다. 유엔과 같은 세계 기구도 그런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 국제 사회에 리바이어던이 존재하기 어렵다면 국가들은 전쟁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카플란은 기원천 3천년 수메르의 도시국가들, 기원전 2세기 중국의 한 제국에서 세계 지배구조의 단서를 찾는다. 하나의 제국 안에 국가들이 교역과 정치적 동맹을 통해 느슨하게 결합된 형태의 지배구조 말이다. 카플란은 그것을 통해 각국의 행동을 규제하고 유사한 도덕적 기준을 가지도록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 구조는 패권국이 존재했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강력한 패권국 없이는 수많은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체제 유지라는 더 큰 이해관계로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패권국 미국은 어떻게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것인가? 카플란은 21세기 미국 대외정책의 모델을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에서 발견한다. 티베리우스는 새로운 도시를 세우지도, 영토를 넓히지도 않았고,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는 군사기지를 보강함으로써 로마의 영토를 더욱 굳건히 했고, 로마에 유리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외교와 무력의 위협을 병행했다. “변방을 지키는 로마 병사들의 임무는 국경 너머의 민족들이 서로를 파괴하는 것을 지켜만 보는 것에 국한되었다.”
카플란은 말한다. 미국은 모든 국제 문제에 개입할 수는 없다. 미국은 자신의 힘의 한계를 인식해야 하며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 미국은 단지 도덕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올바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국제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신중하면 신중할수록, 미국은 더욱더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통찰력과 선견력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처칠과 체임벌린 그리고 한국의 지도자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1598년 끝났다. 1636년에 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나 2달만에 조선의 항복으로 끝났다. 조선의 지도자들은 일본이나 청의 침입을 예상했는가? 아마도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불안한 선견력’만이 아니었다. 미래를 주의 깊게 내다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정책을 변화시킬 힘마저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도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백성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다시 반복되고 있다.
동아시아에 홉스의 세계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충돌하고 러시아와 일본이 그 틈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한다. 북한은 하나의 국가로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한국을 위협한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진영의 수호자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과 세력균형에 충실한 전통적인 패권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제정치가 냉혹해지는 만큼 한국인들 스스로도 냉혹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냉정히 선택해야 한다. 지도자의 통찰력과 선견력이 중요한 이유이다.
영국의 처칠이 위대한 지도자인 것은 그가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체임벌린도 현실주의자였다. 체임벌린은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히틀러의 야심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처칠은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를 무너뜨리기 위해 서구 진영을 지휘한 영국의 전쟁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히틀러를 저지하기 위해 소련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유럽 대륙을 장악한 히틀러의 압도적 위력 앞에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미국이 곧 참전하게 될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칠은 이미 20대의 나이에 <강의 전쟁>이라는 방대한 역사서를 저술했다. 처칠의 위대함은 세상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도자가 불완전한 세계에서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차악과도 손을 잡을 수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어진 현실을 바꾸려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처칠이 히틀러에 맞서 소련과 동맹을 맺었듯이 말이다. 그것은 통찰력 있는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라의 안위와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지독히 현실주의적인 이 책은 왜 다시 출간되었는가
로버트 카플란은 이 책을 미래의 미국 지도자들을 위해 썼다. 냉전 승리 이후에도 여전히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어떤 도덕관과 세계관, 그리고 그에 따른 어떤 대외정책을 가져야 하는가가 이 책의 주요 관심사다. 이 책은 9•11 테러 직후에 출간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전에 원고가 완성되었다. 로버트 카플란은 냉전이 끝나고 역사의 종말이 온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언대로 소련 제국이 무너진 이후에도 세계는 안전하지 않았고 미국은 9•11 테러라는 대참사를 경험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9•11 테러 직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 이라크 전쟁을 결심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로버트 카플란은 <애틀랜틱> 지의 해외 특파원으로 25년 가까이 활동했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 중동, 발칸 반도 같은 지역에서 근무했다. 그가 목도한 세계는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투쟁하는 홉스의 세계 그 자체였다. 격변과 전쟁, 가난은 하나의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그 결과 그는 지독한 현실주의자가 되었고, 그에게 질서가 무너진 세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위선처럼 느껴졌다. 무질서를 바로잡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지도자가 그에게는 가장 도덕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지도자들이 무질서의 세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내고자 했고, 처칠이 그랬고, 마키아벨리가 그랬듯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지적 성찰, 즉 고전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오늘날 한국이 직면하게 될 세계 역시 홉스의 세계에 가깝다. 규범이 아니라 힘이, 선의보다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지배하는 세계다. 집단안보와 자유로운 시장 접근이 점차 사라지고 지정학적 충돌과 보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7년 전보다 지금의 세계가 홉스의 세계에 더 가까워졌다. 당시 이슬람 세계와 제3세계가 혼란과 무질서의 근원이었다면, 지금 세계는 이념과 가치의 동맹 체제가 무너지고 불안정한 세력균형과 지정학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처음 출간되고 1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어판이 다시 나오게 된 이유이다.
국제정치에 대한 통찰력과 선견력은 어디서 오는가
국제정치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고대로 돌아가라
마키아벨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자 하는 사람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고대 시대에 그와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처칠이 국제정치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고대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현대 세계란 고대 세계의 연속일 뿐이며, 세상사에 대한 통찰은 오래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위대한 통찰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투키디데스이다.
이 책에서 투키디데스를 하나의 장에서 다루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책의 중심에 있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세계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으로 분열되어 끝없는 전쟁에 빠져들었다. 아테네의 장군이기도 했던 투키디데스는 암피폴리스 함락의 책임을 지고 본국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그리스 세계가 어떻게 어찌할 수 없는 힘과 이기심의 충돌로 무너져가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보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역사 기록을 인류를 위한 ‘영원한 재산(eternal possesion)’이라 불렀다. 그는 두려움과 이기심, 명예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 조건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고,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책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조지 마셜 장군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테네 몰락의 시대를 되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기본적인 국제 문제들에 대해 지혜와 확신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21세기의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정치가들은 그 강성했던 해양 제국 아테네의 성장과 몰락에서 깊은 정치적 영감을 얻는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어떤 국가는 영광을 반복하고, 어떤 국가는 실패를 반복한다.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 세계가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아테네의 정치가들이 오만과 자만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 국가의 운명은 주어진 조건과 선택이 합쳐진 결과이다. 지도자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국가는 실패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면 국가는 성공한다. 우리가 과거 역사에서 영감을 얻어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왜 투키디데스를 읽어야 하는가 1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의 시원: 이기심과 권력 그리고 정의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현실주의 국제정치관의 시원이다. 국제정치를 바라보는 현실주의의 주요 요소들이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투키디데스는 일관되게 이기심(self-interest)에 초점을 맞춘다. 고대 그리스의 국가들은 상대를 설득할 때 정의나 이상보다는 이기심에 호소한다. 무엇이 이익이 되는가가 국가들이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투키디데스는 ‘밀로스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정의’가 아니라 권력과 이기심이 국가 관계를 지배하는지를 보여준다. 막강한 아테네 함선이 밀로스 섬에 들이닥쳤을 때 밀로스인들은 아테네의 침략을 비난하며 말한다. “정의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정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테네는 언젠가 정의를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보복 받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러자 아테네인들은 냉정하게 말한다. “정의라는 것은 오직 힘이 동등한 나라들 사이에서나 따질 일이다. 강한 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고, 약한 자는 자신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을 감내할 뿐이다.”
하지만 투키디데스는 무분별한 힘의 사용이 파멸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자신들의 힘에 대한 자만심에 눈이 멀었던 아테네인들은 밀로스에 참혹한 승리를 거둔지 3년도 안 되어 시칠리아에서 심각한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투키디데스는 그 패배에 대해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이 거둔 엄청난 성공 때문에 그들의 강점과 희망을 혼동한 결과라고 말했다.
우리는 왜 투키디데스를 읽어야 하는가 2
투키디데스의 함정: 미중 패권 경쟁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투키디데스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버드 대학 그레이엄 엘리슨이 말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떠올리게 된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에 전쟁은 필연적이었다고 보았다. 아테네는 제국의 팽창을 멈출 수 없었고 스파르타는 그것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두 진영의 대결에서 아테네가 패배했으나 스파르타도 진정한 승자가 되지 못했다. 결국 30년 내전은 그리스 세계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21세기의 세계 패권을 놓고 격돌하고 있다. 중국은 패권에 대한 열망에,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그 종착점은 어디가 될 것인가? 당연히 이 책에서 이 문제는 다뤄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사고하고 예측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의 말을 빌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전쟁이 지속되면 대개 우연의 지배를 받게 되어 사태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이 전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은 그리스 세계의 몰락으로 이어진 아테네-스파르타의 대결과 같은 양상으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로마의 지중해 세계 지배로 이어진 로마-카르타고의 대결과 좀더 유사할지도 모른다. 미중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 놓여져 있는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자신의 통찰력과 선견력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왜 투키디데스를 읽어야 하는가 3
약소국의 선택과 운명: 밀로스. 미틸레네, 케르키라
고대 그리스의 밀로스인들은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서 중립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우리는 해양 제국으로서 해양에서 계속 강한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섬나라인 밀로스를 우리의 제국에 굴복시켜야만 한다. 만약 우리가 당신 같은 조그만 섬나라 하나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약한 국가로 세상에 인식될 것이며, 이는 제국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밀로스인들 역시 아테네에 항복하기를 거부했다. 밀로스의 성인 남자들은 모두 학살되었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미틸레네는 페르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아테네와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페르시아가 물러가자 아테네가 물리는 과중한 동맹세 때문에 아테네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했다. 미틸레네는 다른 해양 국가들과는 달리 자체 해군력을 보유했고 스파르타와도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지원군은 끝내 오지 않았고 아테네를 이길 수는 없었다. 다만 아테네는 미틸레네에 ‘자비’를 베풀어 수천 명의 주동자들만을 죽였다.
케르키라는 스파르타와 가까운 코린트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아테네를 동맹으로 끌어들였다. 케르키라인들은 아테네를 찾아가 말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로 건너가는 해안 항로의 요충지에 있습니다. 친구가 되면 더없이 소중하지만 적이 되면 더없이 위험한 우리를 동맹으로 삼지 않는다면 아테네를 위해 미리 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적은 수의 함선만을 보냈지만, 그것이 케르키라-코린트 전쟁의 승패를 바꾸어 놓았다.
밀로스인들은 아테네의 의도를 오판함으로써, 미틸레네인들은 아테네의 힘을 오판함으로써 참혹한 운명을 맞이했다. 반면 케르키라인들은 아테네를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코린트 연합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국제정치의 핵심은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친구와 적을 선택하는 것이다. 미틸레네와 밀로스 그리고 케르키라는 거기에서 운명이 갈렸다.
우리는 왜 리비우스를 읽어야 하는가
패권국의 조건: 애국주의, 관용, 민주주의
아테네 제국은 왜 패배했는가? 이것은 오랫동안 미국 정치가들의 생각을 사로잡아온 주제이다. 미국은 자신과 같은 해양 제국이었던 아테네의 영광과 몰락에서 정치적 영감을 얻어왔다. 그러나 미국의 궁극적인 모델이 된 것은 아테네가 아니라 로마였다. 로마 시대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로마 공화정이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시민들의 애국주의에 있다고 보았다. 국가의 강함은 결국 시민 개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희생할 결의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과거 역사와 그 성취에 대한 자부심으로부터 나온다”고 리비우스는 말한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군대에 의해 칸네 전투에서 대패를 했다. 하지만 로마는 살아남았고 궁극적으로 승리했다. 로마가 멸망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던, 동맹시들에 대한 로마의 관대한 정책 때문이기도 했다. 로마의 동맹시들은 칸네 패배 후에도 로마로부터 이탈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르타고가 따라올 수 없었던 것은 로마의 정치제도였다. 로마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혼란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건강한 정치적 역동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다만 로마는 아테네와 달리 민주기관인 민회와 과두정인 원로원이 공존하는 체제였다. 전시에는 원로원이 최고 전쟁위원회가 되었고, 민중의 여론에 휩쓸리지 않았다.
로마가 포에니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세계의 패권국으로 떠올랐듯이,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 되었다. 패권국이 된 미국이 로마의 많은 부분에서 정치적 영감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왜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가
지도자 요건: 불안한 선견력, 힘 그리고 결과의 도덕성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는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외세의 간섭을 물리치고 통일을 이루는 것은 지도자에게 달려 있다고 보고, 지도자의 미덕(virtue)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성과 달라야 했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그 의도나 방법보다는 그 결과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무리 선한 지도자라도 나라를 혼란과 위기에 빠뜨린다면 결코 도덕적인 지도자라 할 수 없었다.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악한 수단도 쓸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지도자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2가지는 불안한 선견력(anxious foresight)과 힘이다. 마키아벨리는 “힘있는 모든 예언자는 성공한 반면, 힘없는 예언자는 실패하고 만다”고 말했다. 지도자는 선견력과 힘을 가져야 한다.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떤 정책도 실패한다. 지도자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낙관적인 선견력이 아니라 비관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둔 불안한 선견력이다. 그러나 지도자가 항상 충분한 힘을 가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현재 상태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직 자신이 손에 쥔 것을 가지고 일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는 또한 지금 자신이 손에 쥔 것을 가지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국은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적인 권력 충돌의 한가운데 놓인 한국의 처지는 마키아벨리의 이탈리아보다 덜 위중하지 않다. 힘있는 예언자만이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한국은 과연 결과의 도덕성과 선견력 그리고 현실을 변화시킬 힘을 가진 지도자를 갖게 될 것인가?
미국의 현실주의자들은 21세기 세계 질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리바이어던, 패권 체제 그리고 티베리우스
미국의 현실주의자 로버트 카플란은 21세기의 세계가 무질서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본다. 냉전이 끝나면서 기존 동맹 체제도 붕괴된다. 도시 빈곤 지역이 확대되면서 핸드폰과 폭탄으로 무장한 새로운 전사계급이 등장한다. 전쟁은 국가들끼리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도 치러지게 된다. 이게 현실화된 게 9•11 테러다.
카플란은 무질서한 세계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곧 리바이어던이다. 하지만 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 사회에 리바이어던은 가능한가? 미국은 자신의 규칙을 강제할 권위를 가진 리바이어던이 아니다. 유엔과 같은 세계 기구도 그런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 국제 사회에 리바이어던이 존재하기 어렵다면 국가들은 전쟁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카플란은 기원천 3천년 수메르의 도시국가들, 기원전 2세기 중국의 한 제국에서 세계 지배구조의 단서를 찾는다. 하나의 제국 안에 국가들이 교역과 정치적 동맹을 통해 느슨하게 결합된 형태의 지배구조 말이다. 카플란은 그것을 통해 각국의 행동을 규제하고 유사한 도덕적 기준을 가지도록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 구조는 패권국이 존재했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강력한 패권국 없이는 수많은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체제 유지라는 더 큰 이해관계로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패권국 미국은 어떻게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것인가? 카플란은 21세기 미국 대외정책의 모델을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에서 발견한다. 티베리우스는 새로운 도시를 세우지도, 영토를 넓히지도 않았고,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는 군사기지를 보강함으로써 로마의 영토를 더욱 굳건히 했고, 로마에 유리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외교와 무력의 위협을 병행했다. “변방을 지키는 로마 병사들의 임무는 국경 너머의 민족들이 서로를 파괴하는 것을 지켜만 보는 것에 국한되었다.”
카플란은 말한다. 미국은 모든 국제 문제에 개입할 수는 없다. 미국은 자신의 힘의 한계를 인식해야 하며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 미국은 단지 도덕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올바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국제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신중하면 신중할수록, 미국은 더욱더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통찰력과 선견력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처칠과 체임벌린 그리고 한국의 지도자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1598년 끝났다. 1636년에 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나 2달만에 조선의 항복으로 끝났다. 조선의 지도자들은 일본이나 청의 침입을 예상했는가? 아마도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불안한 선견력’만이 아니었다. 미래를 주의 깊게 내다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정책을 변화시킬 힘마저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도 없었다. 그것은 오로지 백성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다시 반복되고 있다.
동아시아에 홉스의 세계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충돌하고 러시아와 일본이 그 틈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한다. 북한은 하나의 국가로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한국을 위협한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진영의 수호자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과 세력균형에 충실한 전통적인 패권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제정치가 냉혹해지는 만큼 한국인들 스스로도 냉혹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냉정히 선택해야 한다. 지도자의 통찰력과 선견력이 중요한 이유이다.
영국의 처칠이 위대한 지도자인 것은 그가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체임벌린도 현실주의자였다. 체임벌린은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히틀러의 야심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처칠은 러시아 내전에서 볼셰비키를 무너뜨리기 위해 서구 진영을 지휘한 영국의 전쟁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히틀러를 저지하기 위해 소련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유럽 대륙을 장악한 히틀러의 압도적 위력 앞에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미국이 곧 참전하게 될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칠은 이미 20대의 나이에 <강의 전쟁>이라는 방대한 역사서를 저술했다. 처칠의 위대함은 세상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도자가 불완전한 세계에서 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차악과도 손을 잡을 수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어진 현실을 바꾸려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처칠이 히틀러에 맞서 소련과 동맹을 맺었듯이 말이다. 그것은 통찰력 있는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라의 안위와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의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목차
01 '현대' 세계란 없다
02 처칠의 '강의 전쟁'
03 리비우스의 '포에니 전쟁'
04 손자와 투키디데스
05 마키아벨리의 미덕
06 운명 결정론과 개입: 국제 문제에 개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07 위대한 교란자들: 홉스와 맬서스
08 홀로코스트, 현실주의 그리고 칸트
09 아킬레우스의 세계: 고대의 군인들, 현대의 전사들
10 춘추전국시대 중국과 세계 지배구조
11 티베리우스 황제: 미국은 21세기의 로마 제국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