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
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7680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7680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지금 우리의 세계문학전집은 식민지 시대의 것이다!
―명작을 욕망하는 식민인에게 교양은 무엇이었고 명작은 무엇이었는가―
식민지 경성의 한복판에서 시작된 “양서는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현수막이 전 조선을 향해 나부끼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주로 무슨 책을 읽으셨어요”라고 묻는다. “어떻게 공부하셨어요”의 1930년대식 질문이다. 이 물음에 식민지 엘리트들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었다고도 하고, 도스토옙스키나 투르게네프ㄴ의 작품을 좋아한다고도 말한다. 오늘날 우리의 짐작과는 달리,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은 ‘세계문학’에 흠뻑 빠져 있었다. 경성 거리를 어정거리던 김동환이 종로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눈물 흘리며 보았던 책이 ≪윌리엄 텔≫이었고, 김동리가 문학을 하는 자의 기본으로 추천했던 책도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의 대표적 문사였던 이광수가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 꼽았던 것도 ≪레미제라블≫과 ≪테스≫ 등 세계문학이었다. 근대의 기억은 이렇게 명작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1장 “식민지의 교양, 명작의 조선” 중에서
세계문학전집 1000권의 시대다. 출판 시장이 불황인 가운데 요즘과 같은 세계문학전집의 인기는 반길 만한 뉴스다. 동서고금을 막론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 바로 세계문학이다 보니 이미 검증된 세계문학전집은 불황일수록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세계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했으며 갈망해왔을까?
이번에 출간된 ≪속물 교양의 탄생 : 명작이라는 식민의 유령≫(푸른역사)은 식민지 근대의 풍경 속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유통되는 ‘명작’과 ‘교양’에 대한 욕망의 연원을 찾는다. 저자 박숙자(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명작’에 갈급을 “여전히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세계문학이 여과 없이 명작으로 둔갑해서 필독서로 읽혀지는 풍경은 자연스럽지도 익숙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근대 지식을 자본화하는 일면과 그런 삶을 모방하면서 ‘속물적인 양태’를 가속화하는 힘으로서의 근대의 명작들을 통해 명작이 야기하는 속물적 욕망을 살핀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식민지 근대의 속물적 주체를 양산해냈던 교양의 식민성을 ‘속물 교양의 탄생’으로 명명한다.
조선인들 명작에 빠지다
―명작(fine work)이 ‘famous works’로 번역된 식민지 문화
이 책은 먼저 서구 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둔갑하는 과정과 이 세계문학을 필독서로 읽었던 식민지 세계를 조명한다. 근대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은 공공연히 ‘진서眞書’의 세계에서 ‘원서原書’의 세계로 이행했다고 말했으며, 원서로서의 명작을 읽으려 했다. 이 원서가 문명의 기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활≫의 여주인공 카튜샤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세계를 구분할 정도로 원서로서의 서구 문학은 세계문학 자체였다. 그러므로 명작이란 이 세계 안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자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생각되었으며, 교양이란 이 세계 안에 속해 있다는 보증서로 통용되었다. 명작은 ‘famous’의 가치에 기댄 인정 욕구와 보편적 가치에 대한 편입 욕망을 부추겼다.
식민지 시대 ‘교양’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지향이었다. 그런데 교양의 의미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의 교양은 ‘식민성’의 프레임과 연동하면서 ‘교양의 식민화’ 과정으로 흐르는 징후가 역력하다. 단적으로 ‘교양을 하다’의 함의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명작’의 의미가 ‘좋은 책fine work’에서 ‘유명한 책famous work’으로 변용되어 번역되었다. 명작에 담겨 있는 ‘좋은 책’이라는 의미가 ‘목적’이 되는 대신, 타인의 인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명작에 내재되어 있는 ‘좋음’의 가치가 해석되지 않은 채 서구 문명의 기호로서 인용을 위한 축어적 해석으로, 엘리트 독서의 취향으로 활용되고 소비되었다. 그 결과 교양은 고급스러운 계급의 기호로, 엘리트의 문화 자본으로 곡해되었다. 이렇게 교양이 계급과 자본의 차별과 배제의 기호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교양의 속물성이 해석되지 않은 채 ‘속물 교양’이 고급스럽고 이성적인 태도와 능력을 대변하는 차별적 원리로 정착되어 있다.
―“프롤로그 : 명작을 욕망하는 속물 교양” 중에서
세계문학전집은 교양인의 필수품?―교양의 아비투스를 모방하다
곧 식민지 조선에서 ‘세계문학’은 서구문명과 같은 말이었다. 서구문명이 바로 이 문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명작’이 문명한 것으로 상징되면서 너나할 것 없이 세계문학전집 한 질쯤은 ‘소장’하는 것이 교양 있는 자들의 필수품으로 여겨지면서 양장본은 ‘소장가치’가 높은 물신적기호로 둔갑했다. 호화롭게 양장된 원서의 세계, 세계문학전집은 엘리트의 교양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세계 명작이 번역되고, 조선에서 발간된 ‘울긋불긋한 싸구려’ 책 대신 호화본과 고가 서적의 형태로 유럽의 고전주의 스타일 서재가 식민지 조선에 들어온다. 이 서재에 꽂히는 책은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한 각종 전문 서적으로, 두껍게 양장된 외국 서적 등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식자층의 ‘교양’ 정도를 나타냈다. 이 과정에서 명작은 독서자의 생각을 연결하는 매체 기능이나 성찰 기능 대신 ‘소장’할 만한 것으로 그 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어떤 책을 소장하느냐에 따라 교양의 정도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속물 교양의 탄생≫은 이처럼 ‘좋은 책’이 자본주의적 관계 안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 과정을 좇는다.
예를 들어 어떤 시인을 설명하면서 학구적인 면모가 강하다는 비유를 들고 싶다면 어떻게 말할까? 1920년대 신문에서는 이를 “들의 시인이 아니라 서재의 시인”이라고 말했다. ‘서재’가 학구적이고 문명적인 공간의 비유로 인식되는 것인데, 그래서 자연의 비유로서 ‘들’이, 문명의 비유로서 ‘서재’가 의미의 대립을 이룬다. 이로 인해 서재에 관한 기사는 엘리트와 명망가의 교양의 척도를 보여주면서 이에 준하는 인물이 손꼽힌다.
―2장 “서재의 탄생” 중에서
문학이 국가의 문명 정도를 드러내는 문화 자본으로 인식되면서 명작의 창작에 부심하는 일면을 드러냈다. 그 과정이 ‘조선문학전집’의 기획으로 나타난다. 바야흐로 조선 문학의 ‘콜럼버스적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조선 문학’을 기획하는 순간, ‘조선적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조선적인 것’이 세계문학의 지도 안에서 호환될 수 있는지, 혹은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는지 물으면서 조선문학전집은 다양한 방식으로 길을 모색하는 듯 했다. 조선 문학과 세계문학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동양’을 발견하기도 하고, 세계문학전집의 기호화된 엑조틱한 시선으로 재구성된 ‘조선 문학’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어느 것이나 ‘조선 문학’이 식민성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세계문학 안에서 조선적인 것이 해방의 기호여야 한다는 대의가 길항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세계문학전집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명작과 전집의 프레임을 벗어나 조선 문학이 어떻게 세계 보편의 감각으로 감응될 수 있을지 묻는 한편 여기에서 더 나아가 문학이 바로 국가와 세계를,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문화 매체라는 사실을 각인하는 과정 속에서 조선 문학은 재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이지만 식민지 후반 이런 노력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서적의 물신화 현상을 대중적 ‘문고본’으로 대체하려고 하면서 명작의 시대가 야기한 엘리트 중심의 교양을 ‘만인의 문화’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그 시작의 일보이다.
―3장 “명작의 조건” 중에서
만인의 교양으로서의 명작을 말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는 명작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인 동시에 나와 다른 이들이 공명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 소통의 계기”되는 책이 명작이라고 말한다. 그 예로 명작의 의미를 새롭게 설정한 ‘학예사의 조선문고 기획’, 그중에서도 ≪원본 춘향전≫을 기획하고 발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문고’는 ‘조선문학전집’이라고 하는 이상적이고 완결되고 폐쇄된 텍스트를 구성하는 대신 오히려 다양한 명작을 집합시키는 방식으로 민중의 읽을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각종 문학 전집이 명작의 시대 속에서 호화본 서적으로 물신화될 때 조선문고가 먼저 묻는 것은 서적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별해내는 것이다. 독자를 단순히 서적의 소비자,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적이 매개하는 이야기의 주체로 보는 방식인 것이다. 또 이 관계 안에서 ‘조선적인 것’을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민중의 존재를 텍스트의 표면으로 드러내는 일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독자들의 삶을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세계문학전집의 프레임과 무관하게 조선의 명작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4장 “민중 대학으로서의 명작” 중에서
‘책’이 바로 ‘민중 대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학예사의 기획은 서적의 해방을 통해 만인의 교양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책을 어떻게 읽고 성찰해야 하는지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좋은 책’으로 가는 역사, 그 역사가 이미 우리 안에
이 책은 명작이 ‘교양의 증서’가 되는 식민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이 명작이고 명작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실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문학전집이 필독서로 읽히고 교양의 증서로 엘리트의 서재를 장식하고 있다. 책 읽기가 예전만큼 성공의 지름길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각종 명작을 폭식하듯 다독하면서 어마어마한 장서가 교양의 정도인 양 과시한다. 명작이 비싼 양장본으로 제본되어 소장 가치로 전전하는 과정은 지식을 자본화하려 했던 근대의 일면이다. 이 책은 이렇게 명작이 소비되는 과정에서 유령처럼 가라앉아 있는 속물적인 욕망을 되짚고 있다.
‘명작’이란 책 읽기를 통해서만 완성되며, ‘교양’이란 다양한 시민을 길러낼 때에만 진정한 교양이라 할 수 있다. 읽지 않고 소장되는 책, 지식으로 둔갑해서 느낌이 생략된 책은 명작도 교양서도 아니다. 비록 식민지 시기의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책을 통해 ‘시민’을 키워내려던 진짜 교양의 세계가 잠시나마 우리 역사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 자체가 아니라 독서하는 커뮤니티를 매개하는 것, 그것이 명작의 힘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 역사 안에서 그러한 가능성이 있었으며, 그렇게 책을 읽었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명작을 욕망하는 식민인에게 교양은 무엇이었고 명작은 무엇이었는가―
식민지 경성의 한복판에서 시작된 “양서는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현수막이 전 조선을 향해 나부끼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주로 무슨 책을 읽으셨어요”라고 묻는다. “어떻게 공부하셨어요”의 1930년대식 질문이다. 이 물음에 식민지 엘리트들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었다고도 하고, 도스토옙스키나 투르게네프ㄴ의 작품을 좋아한다고도 말한다. 오늘날 우리의 짐작과는 달리,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은 ‘세계문학’에 흠뻑 빠져 있었다. 경성 거리를 어정거리던 김동환이 종로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눈물 흘리며 보았던 책이 ≪윌리엄 텔≫이었고, 김동리가 문학을 하는 자의 기본으로 추천했던 책도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조선의 대표적 문사였던 이광수가 추천하고 싶은 작품으로 꼽았던 것도 ≪레미제라블≫과 ≪테스≫ 등 세계문학이었다. 근대의 기억은 이렇게 명작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1장 “식민지의 교양, 명작의 조선” 중에서
세계문학전집 1000권의 시대다. 출판 시장이 불황인 가운데 요즘과 같은 세계문학전집의 인기는 반길 만한 뉴스다. 동서고금을 막론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 바로 세계문학이다 보니 이미 검증된 세계문학전집은 불황일수록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세계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했으며 갈망해왔을까?
이번에 출간된 ≪속물 교양의 탄생 : 명작이라는 식민의 유령≫(푸른역사)은 식민지 근대의 풍경 속에서 세계문학전집으로 유통되는 ‘명작’과 ‘교양’에 대한 욕망의 연원을 찾는다. 저자 박숙자(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명작’에 갈급을 “여전히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세계문학이 여과 없이 명작으로 둔갑해서 필독서로 읽혀지는 풍경은 자연스럽지도 익숙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근대 지식을 자본화하는 일면과 그런 삶을 모방하면서 ‘속물적인 양태’를 가속화하는 힘으로서의 근대의 명작들을 통해 명작이 야기하는 속물적 욕망을 살핀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식민지 근대의 속물적 주체를 양산해냈던 교양의 식민성을 ‘속물 교양의 탄생’으로 명명한다.
조선인들 명작에 빠지다
―명작(fine work)이 ‘famous works’로 번역된 식민지 문화
이 책은 먼저 서구 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둔갑하는 과정과 이 세계문학을 필독서로 읽었던 식민지 세계를 조명한다. 근대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은 공공연히 ‘진서眞書’의 세계에서 ‘원서原書’의 세계로 이행했다고 말했으며, 원서로서의 명작을 읽으려 했다. 이 원서가 문명의 기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활≫의 여주인공 카튜샤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세계를 구분할 정도로 원서로서의 서구 문학은 세계문학 자체였다. 그러므로 명작이란 이 세계 안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자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생각되었으며, 교양이란 이 세계 안에 속해 있다는 보증서로 통용되었다. 명작은 ‘famous’의 가치에 기댄 인정 욕구와 보편적 가치에 대한 편입 욕망을 부추겼다.
식민지 시대 ‘교양’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지향이었다. 그런데 교양의 의미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식민지의 교양은 ‘식민성’의 프레임과 연동하면서 ‘교양의 식민화’ 과정으로 흐르는 징후가 역력하다. 단적으로 ‘교양을 하다’의 함의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명작’의 의미가 ‘좋은 책fine work’에서 ‘유명한 책famous work’으로 변용되어 번역되었다. 명작에 담겨 있는 ‘좋은 책’이라는 의미가 ‘목적’이 되는 대신, 타인의 인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 것이다. 명작에 내재되어 있는 ‘좋음’의 가치가 해석되지 않은 채 서구 문명의 기호로서 인용을 위한 축어적 해석으로, 엘리트 독서의 취향으로 활용되고 소비되었다. 그 결과 교양은 고급스러운 계급의 기호로, 엘리트의 문화 자본으로 곡해되었다. 이렇게 교양이 계급과 자본의 차별과 배제의 기호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교양의 속물성이 해석되지 않은 채 ‘속물 교양’이 고급스럽고 이성적인 태도와 능력을 대변하는 차별적 원리로 정착되어 있다.
―“프롤로그 : 명작을 욕망하는 속물 교양” 중에서
세계문학전집은 교양인의 필수품?―교양의 아비투스를 모방하다
곧 식민지 조선에서 ‘세계문학’은 서구문명과 같은 말이었다. 서구문명이 바로 이 문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명작’이 문명한 것으로 상징되면서 너나할 것 없이 세계문학전집 한 질쯤은 ‘소장’하는 것이 교양 있는 자들의 필수품으로 여겨지면서 양장본은 ‘소장가치’가 높은 물신적기호로 둔갑했다. 호화롭게 양장된 원서의 세계, 세계문학전집은 엘리트의 교양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세계 명작이 번역되고, 조선에서 발간된 ‘울긋불긋한 싸구려’ 책 대신 호화본과 고가 서적의 형태로 유럽의 고전주의 스타일 서재가 식민지 조선에 들어온다. 이 서재에 꽂히는 책은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한 각종 전문 서적으로, 두껍게 양장된 외국 서적 등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식자층의 ‘교양’ 정도를 나타냈다. 이 과정에서 명작은 독서자의 생각을 연결하는 매체 기능이나 성찰 기능 대신 ‘소장’할 만한 것으로 그 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어떤 책을 소장하느냐에 따라 교양의 정도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속물 교양의 탄생≫은 이처럼 ‘좋은 책’이 자본주의적 관계 안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 과정을 좇는다.
예를 들어 어떤 시인을 설명하면서 학구적인 면모가 강하다는 비유를 들고 싶다면 어떻게 말할까? 1920년대 신문에서는 이를 “들의 시인이 아니라 서재의 시인”이라고 말했다. ‘서재’가 학구적이고 문명적인 공간의 비유로 인식되는 것인데, 그래서 자연의 비유로서 ‘들’이, 문명의 비유로서 ‘서재’가 의미의 대립을 이룬다. 이로 인해 서재에 관한 기사는 엘리트와 명망가의 교양의 척도를 보여주면서 이에 준하는 인물이 손꼽힌다.
―2장 “서재의 탄생” 중에서
문학이 국가의 문명 정도를 드러내는 문화 자본으로 인식되면서 명작의 창작에 부심하는 일면을 드러냈다. 그 과정이 ‘조선문학전집’의 기획으로 나타난다. 바야흐로 조선 문학의 ‘콜럼버스적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조선 문학’을 기획하는 순간, ‘조선적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조선적인 것’이 세계문학의 지도 안에서 호환될 수 있는지, 혹은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는지 물으면서 조선문학전집은 다양한 방식으로 길을 모색하는 듯 했다. 조선 문학과 세계문학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동양’을 발견하기도 하고, 세계문학전집의 기호화된 엑조틱한 시선으로 재구성된 ‘조선 문학’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어느 것이나 ‘조선 문학’이 식민성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세계문학 안에서 조선적인 것이 해방의 기호여야 한다는 대의가 길항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세계문학전집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명작과 전집의 프레임을 벗어나 조선 문학이 어떻게 세계 보편의 감각으로 감응될 수 있을지 묻는 한편 여기에서 더 나아가 문학이 바로 국가와 세계를,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문화 매체라는 사실을 각인하는 과정 속에서 조선 문학은 재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이지만 식민지 후반 이런 노력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서적의 물신화 현상을 대중적 ‘문고본’으로 대체하려고 하면서 명작의 시대가 야기한 엘리트 중심의 교양을 ‘만인의 문화’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그 시작의 일보이다.
―3장 “명작의 조건” 중에서
만인의 교양으로서의 명작을 말하다
그렇다면 이 책이 말하는 명작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인 동시에 나와 다른 이들이 공명하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 소통의 계기”되는 책이 명작이라고 말한다. 그 예로 명작의 의미를 새롭게 설정한 ‘학예사의 조선문고 기획’, 그중에서도 ≪원본 춘향전≫을 기획하고 발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문고’는 ‘조선문학전집’이라고 하는 이상적이고 완결되고 폐쇄된 텍스트를 구성하는 대신 오히려 다양한 명작을 집합시키는 방식으로 민중의 읽을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각종 문학 전집이 명작의 시대 속에서 호화본 서적으로 물신화될 때 조선문고가 먼저 묻는 것은 서적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별해내는 것이다. 독자를 단순히 서적의 소비자,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적이 매개하는 이야기의 주체로 보는 방식인 것이다. 또 이 관계 안에서 ‘조선적인 것’을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민중의 존재를 텍스트의 표면으로 드러내는 일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독자들의 삶을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세계문학전집의 프레임과 무관하게 조선의 명작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4장 “민중 대학으로서의 명작” 중에서
‘책’이 바로 ‘민중 대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학예사의 기획은 서적의 해방을 통해 만인의 교양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책을 어떻게 읽고 성찰해야 하는지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좋은 책’으로 가는 역사, 그 역사가 이미 우리 안에
이 책은 명작이 ‘교양의 증서’가 되는 식민지의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이 명작이고 명작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실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문학전집이 필독서로 읽히고 교양의 증서로 엘리트의 서재를 장식하고 있다. 책 읽기가 예전만큼 성공의 지름길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각종 명작을 폭식하듯 다독하면서 어마어마한 장서가 교양의 정도인 양 과시한다. 명작이 비싼 양장본으로 제본되어 소장 가치로 전전하는 과정은 지식을 자본화하려 했던 근대의 일면이다. 이 책은 이렇게 명작이 소비되는 과정에서 유령처럼 가라앉아 있는 속물적인 욕망을 되짚고 있다.
‘명작’이란 책 읽기를 통해서만 완성되며, ‘교양’이란 다양한 시민을 길러낼 때에만 진정한 교양이라 할 수 있다. 읽지 않고 소장되는 책, 지식으로 둔갑해서 느낌이 생략된 책은 명작도 교양서도 아니다. 비록 식민지 시기의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책을 통해 ‘시민’을 키워내려던 진짜 교양의 세계가 잠시나마 우리 역사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 자체가 아니라 독서하는 커뮤니티를 매개하는 것, 그것이 명작의 힘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 역사 안에서 그러한 가능성이 있었으며, 그렇게 책을 읽었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 명작을 욕망하는 속물 교양
1장 식민지의 교양, 명작의 조선
조선인들은 명작을 읽는다
명사들은 명작을 읽는다
태서로부터 온 명작, 원서의 세계
명작의 기호, famous / fine
명작 사용법 : 인용, 모방, 소비
≪레미제라블≫의 삭제된 서문
2장 서재의 탄생
파우스트의 서재,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다
호화본, 양장본, 특제본
국경을 넘는 독자 서비스
노동자도 ≪킹≫을 읽는다
서재, 도서관, 학교의 명작
3장 명작의 조건 : 번역, 출판, 전집
해외 문학에서 세계문학으로
번역과 변용의 콜럼버스적 탐험
≪조도전 문학≫으로 공부하는 진정한 문예가
전집 시대, 문학 시장으로
일본에서 출판된 조선 문학
조선 문학이란 하오
세계문학전집의 프레임을 넘어
4장 민중 대학으로서의 명작
명작 혹은 고전으로서의 춘향전
만인의 문고, 민중 대학
부록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