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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걸작 논픽션 005

1942 대기근: 삼백만 명이 굶어죽은 허난 대기근을 추적하다

1942 experience great famine

대등서명
一九四二 飢餓中國
발행사항
서울: 글항아리, 2013
형태사항
410 p. : 삽화, 초상 ; 22 cm
총서사항
걸작 논픽션
ISBN
9788967350611
청구기호
912.072 맹236ㅇ
일반주기
원저자명: 孟磊, 關國峰, 郭小陽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7702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7702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1942 식인사회…끝도 없는 죽음의 노선
짐승 같은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중국 정부가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던 대참사.
뼛속 깊이 새겨진 기억을 오랜 추적 끝에 복원하다.


사상 최대의 아사자가 발생한 1942년 중국 허난河南 대기근.
기러기 똥을 먹고, 흙을 먹고, 짐승 가죽을 끓여 먹고, 사람고기를
먹은 자들도 결국은 모두 굶어 죽었다.
생존자의 기억을 일일이 모아 이어붙인 『1942 대기근』.
참사를 직접 겪은 당사자들이 들려주는 처참한 현장의 고통.
완전히 바뀌어버린 개인과 가족의 운명은 어떤 영화보다도 생생하다.
중국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추적.

너무 참혹하여 비현실적인 인육의 추억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설국열차』를 보면 맨 끝 칸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매일 사람을 사냥해 인육을 먹었다는 고백이 등장한다. 극한의 배고픔에 내몰린 사람들은 인육을 먹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육人肉을 상징적 식품 또는 상식常食으로 먹는 풍습”을 카니발리즘이라 할 때 이것은 카니발리즘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1942년 중국 허난성에 몰아닥친 대기근은 결국 인육을 위한 인간 도살 끝에 3백 만 명 이상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왜 이리 참혹한 일이 벌어졌을까? 당시 중국의 허난성은 설국열차의 맨 끝 칸과 다를 바 없었다. 엄청난 가뭄이 이 지역을 덮었고, 작물은 전부 타들어갔으며, 그럼에도 정부는 군량미를 거둬 갔다. 이 넓은 지역에서 먹을 것이 모두 증발해버렸다. 성 정부는 정부에 거짓보고를 올렸고 주변의 다른 성 사람들은 허난의 상황을 제대로 몰랐다. 논 몇마지기를 팔아 하루 먹을 양식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푸성귀는 물론 나무껍질조차 몽땅 사라져버렸다. 거짓말 같은 일이 저 먼 하늘의 먹구름처럼 피어오르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메뚜기 떼가 되어 허난 주민들 앞에 견딜 수 없는 현실로 펼쳐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먹자 배가 불러오고 얼굴이 누렇게 떴다. 가죽까지 끓여먹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피난민들은 손톱을 씹고서야 자신이 먹은 것이 인육으로 만든 만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누구도 상관하는 이가 없었다. (…) 서쪽으로 가는 기차가 퉁관 역으로 들어오는데, 그 양옆에 ‘인육 덩어리’를 가득 매달고 있었다. 바람에 말라서 베이컨처럼 납작해진 것도 있었다. (…) 차오리 사에 기거하던 어느 부부는 친딸을 먹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잡아먹힐 것이 무서워 어두운 밤을 틈타 도망가다가 길에서 굶어 죽었다. 성 동쪽에 있는 다왕 사당에 살던 여자는 더우후잉 마을에 사는 소년이 문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집 안으로 꾀어 들인 뒤 삶아 먹었다. (…) 야생의 성질을 되찾은 들개 무리가 여기저기서 시체를 제멋대로 뜯어먹고 있었다. 가장 오싹한 장면은 친자식을 삶아 먹는 어머니였다. 어느 집은 가산을 모두 내다 팔아 마지막 한 끼를 배불리 먹은 뒤 일가족이 자살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확신이 사람들의 심리를 휩싼 이후 허난 대탈출이 감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허난성을 빠져나갔다. 사실 ‘기차를 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생존자 마오 할머니는 당시 서쪽으로 피난을 가는 사람이 무척 많아서 그의 가족은 기차 지붕에도 올라타지 못하고 기차 밑바닥에 있는 차축을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기차가 출발하는 순간 어머니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꼭 붙들어라. 놓치면 죽는다.”

2012년 펑샤오강 감독의 장편영화 「Back to 1942」가 개봉되어 이 참상을 대중들이 널리 접하게 됐다. 앞서 중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런민대 교수인 류전윈劉震云이 2009년에 펴낸 장편소설 『1942를 돌아보며?故一九四二』를 영화한 것이다. 이 소설은 류전윈의 개인적 취재를 바탕으로 쓰여진 사실 기반 소설로 한 가족이 허난 대기근에 휩쓸려 어떻게 비극적 삶을 연출했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류전윈의 소설은 허난 지역 언론인들을 자극했음 직하다. 『허난상보』는 특별취재팀을 꾸려 1942년에 이 땅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역사자료는 없었다. 공식적인 역사에서는 이 시기가 공백으로 처리되었고, 기자들은 당시 지식인들이 간헐적으로 남겨놓은 취재기와 지방지 등에 몇 줄로 남아있는 사실들을 근거로 참상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그림은 류전윈이 그려줬지만 세부적인 수많은 디테일들이 생존자 인터뷰 등을 통해 날것 그대로 복원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2012년 영화 개봉에 앞서 『1942 대기근』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을 펴낸 곳은 중국 국학의 메카인 중화서국이다. 감추고 싶은 과거를 중국을 대표하는 국학 전문 출판사에서 펴냈다는 것은 여러모로 정치적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 비극이 ‘국민당의 수괴 장제스의 실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입장에서는 이제 대만까지 포섭하려는 제국 의지를 발동시키는 현실 앞에서 오랜 숙적의 결정적인 잘못을 환기시켜 대만의 존재가치를 역사적으로 무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최근 중국 정부는 『마오의 인육정권』과 『톈안먼 도살』을 연달아 출간한 독립 저자 두빈杜斌을 최근 구속수감했다. 미국에서 잠깐 베이징에 귀국했을 때 전격적으로 체포되었다. 이는 글항아리가 위의 두 책 판권을 계약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로, 홍콩에 근거지를 두고 미국에서 출판활동을 하는 명경明鏡출판사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역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1938년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장제스蔣介石는 일본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정저우 근방 황하의 둑인 ‘화위안커우 제방’을 폭파하기로 결정한다. 이 조치로 89만 명이 사망하고 1250만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것이 바로 ‘화위안커우花園口 사건’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때의 희생자 숫자는 9만 명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그 숫자가 89만 명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허난 지역 주민에게도 제방 폭파는 일본군이 한 짓이니 욕을 하려거든 모두 일본인에게 하라며 일축했다. 화위안커우 제방이 폭파되고 황하가 동남쪽으로 범람하자 일본군은 서진을 잠시 중단했다. 그러나 1938년 9월, 일본군은 방향을 틀어 허난 성 남부 지역으로 쳐들어가 순식간에 상청商城, 광산光山, 황촨
潢川, 구스固始, 뤄산羅山, 신양信陽 등지를 점령했다. 1백만 명의 백성들의 목숨을 희생시켜 일본군의 진군을 ‘약간’ 지연시킨 이 ‘지도자의 결정’ 앞에서 우리는 그만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장제스의 잘못된 ‘화위안커우 제방 폭파 사건’과 1942년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허난 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이었던 왕취안잉王全營은 이 시기의 역사를 연구해서 이전에 『허난 중일전쟁사』를 썼다. 당시 허난에서 69군데 현이 국민당 통치지역이고, 나머지 42군데 현이 일본군이 점령한 지역이었다. 전쟁으로 많은 것이 무너지고 경제적 피해도 막심했다. 가뜩이나 공업이 낙후된 허난 성에서 그나마 규모가 큰 기업과 공장이 모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1936년에 5만2000제곱킬로미터였던 식량 재배 면적이 1942년에 1만8600제곱킬로미터로 줄어들었고 생산량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농지와 수로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버려지고 우물을 파는 이도 없었으며, 가축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이 책은 이렇듯 1938년의 잘못된 결정으로 허난 성의 농지면적이 급속히 줄어든 것, 그 이후 시작한 지독한 가뭄을 1942년의 대기근과 연결시키는 근거들을 계속 제시한다. 메뚜기 떼의 습격, 자식을 팔아넘기는 부모, 피난의 행렬, 탐욕스럽고 무책임한 정부와 맞선 사람들 이야기, 버림받은 백성들의 반격 등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런 뒤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인터뷰에서 얻어낸 일화를 일일이 현장을 찾아다니며 대조함으로써 사라진 역사를 복원한다.
『1942 대기근』은 3백 만명이 죽은 대기아가 결코 자연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무책임함으로 비롯된 인재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무엇보다 그것은 잘 흐르고 있는 강을 잘못 건드려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인간을 초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이른바 정치지도자들의 존재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가 끝내 잊는다면, 또 다른 대기근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1942: 잃어버린 역사

|제1장| 산산이 부서진 산하

|제2장| 무심한 하늘
제1절 남김없이 먹고 팔아버리다
제2절 호황을 맞은 골동품 시장
제3절 어느 마을의 죽음

|제3장| 대참사
제1절 메뚜기 떼의 습격
제2절 자식을 팔아넘기는 부모
제3절 인육을 먹는 사람들

|제4장| 피난
제1절 사방이 사별과 생이별
제2절 계속 서쪽을 향해

|제5장| 힘겨루기
제1절 정부에 맞서다
제2절 탐욕으로 부패한 연회

|제5장| 힘겨루기
제1절 정부에 맞서다
제2절 탐욕으로 부패한 연회

|제6장| 분노
제1절 나라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
제2절 민초들의 반격

|제7장| 재방문-다시 찾은 역사의 현장
제1절 사라진 대기근
제2절 방공호의 ‘아귀’
제3절 동굴을 파면 그것이 곧 내 집
제4절 남편을 찾으러 나갔다가 팔려간 여인
제5절 황량해진 기차역
제6절 옛길이 남긴 깊은 흔적
제7절 기차 양옆에 걸린 인육 덩어리
제8절 일본군 포대를 찾아서
제9절 피난민이었던 소년이 어느새 증손자를 둔 할아버지로
제10절 차축을 끌어안고 죽을 위험에서 벗어나다
제11절 도깨비시장에서의 삶
제12절 창샹위의 은혜
제13절 피난 행렬이 멈춰 선 곳

|제8장| 질문

|부록|
●대기근 속에 피어난 인정과 인간미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_쑹즈신 인터뷰
●사람이 살면서 한두 가지 일만 완수하면 돼 _궈안칭 인터뷰
●주제 관련 열람 자료

되찾아야 할 기억들 _403
옮긴이의 말 _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