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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탈북이 드물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이탈주민은 ʻ보호ʼ의 대상이었다. 탈북은 예외적인 사건이었으며 그만큼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정치적 선전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탈북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들의 한국사회 정착 및 적응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북한이탈주민의 일방적 동화가 아닌, 남한주민이 이들을 수용하고자 함께 노력하는 사회통합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본 연구는 북한이탈주민의 한국사회 정착에 있어 지역사회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북한이탈주민이 정착 과정에서 겪는 여러 애로사항과 이를 해결하는 일차적 공간은 지역사회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서울시의 한 북한이탈주민 밀집 거주지역에 위치한 ʻ통일초등학교ʼ(가칭)라는 공간을 통해 이들이 지역사회에 통합되는 양상을 추적한다. 초등학교는 아동뿐 아니라 아동을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들의 의사소통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의 학업, 학교생활, 교우관계 등을 이유로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나눈다. 달리 말하면, 학교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본 연구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2장에서는 통일초가 위치한 통일동(가칭)이 교육과 계층에 따라 어떻게 분절되어 있는지를 탐색한다. 통일동 일대는 원래 저개발 지역이었으나 1980년대 대대적인 도시개발사업으로 수만 호의 아파트가 들어선 뒤부터는 중산층이 밀집한 주거지역으로 변모했다. 이 지역의 교육열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릴 만큼 치열한데, 이는 중산층의 교육을 통한 계층 재생산의 열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 지역에 3,000여 가구로 구성된 대단지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통일동은 교육과 계층을 둘러싼 일종의 분절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상당수의 북한이탈주민이 이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자녀를 통일초에 보내고 있으며,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통일초를 둘러싼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 간에 긴장을 유발하는 맥락을 제공한다.
제3장에서는 통일초등학교에서 탈북민 학부모가 경험하는 이 지역의 교육열과 이에 적응하는 전략을 살펴본다. 통일초에 자녀를 보내는 탈북민 학부모들은 한국사회에서 학부모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과하다고 느끼며, 특히 교육의 책임이 교사에게 있었던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학부모가 자녀교육을 책임지는 현실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민 학부모들은 남한 학부모를 ʻ관찰ʼ하며 남한의 교육문화를 배워가려 노력하는데, 남한 학부모와 적극적인 교류를 맺기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 출신임이 드러날 경우 자녀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들은 자녀의 사회적 성공보다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희구하였으며 본인 역시 한국사회에서 계층상승을 꿈꾸지 않았다. 이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 좌절하기보다는 꿈을 갖지 않음으로써 좌절 또한 없는 삶이 더 안전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들에겐 탈북민에 대한 편견과 억압이 개인의 힘으로 부술 수 없는 공고한 것으로 느껴지며, 이는 탈북민에게 무력감을 주기도 한다.
제4장에서는 통일초등학교에서 남한 학부모들이 경험하는 탈북민 학부모와의 교류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배제를 다룬다. 이 지역의 남한 학부모들은 대부분 교육열이 높은 중산층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학부모 간 적극적 교류를 통해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ʻ자녀관리ʼ의 문화를 형성하며, 여기에서 탈북민은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남한 학부모들은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탈북민의 모습을 보며 “자녀교육에 관심이 없다ˮ고 판단하고, 탈북민 학부모와 적극적으로 친하게 지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남한주민이 탈북민을 일부러 배제하거나 차별하지 않더라도, 학교가 끝나고 ʻ사교육의 시간ʼ이 찾아오면 남한 아이들과 탈북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분리되는 경향을 보인다. 남한 아이들은 학원으로, 탈북민 아이들은 학교 방과 후 수업이나 돌봄교실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한편 탈북민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기피 현상은 부동산 가격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나는데, 통일초를 배정받는 아파트는 인근 아파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 통일초 배정 아파트 주민들은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때문에 지역주민 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제5장에서는 통일초등학교라는 공간에서 사회경제적 계층과 출신배경이 전혀 다른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이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통합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조망한다. 남한주민과 탈북민이 공존하는 통일초등학교 내에서의 관계동학을 살펴보면, 통일초등학교는 사회적 계층과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집단이 자녀교육을 매개로 접촉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제공한다. 그만큼 갈등의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통일초등학교는 일부 교사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탈북민 학부모들을 교육의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또한 혁신초 전환 이후 대대적인 시설개비 및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마련을 통해 남한 학부모로부터도 큰 만족을 이끌어냈다. 통일초의 이러한 노력은 상이한 두 집단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잠시나마 서로에 대한 불신을 멈추고 이해하며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것은, 통일초가 탈북민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자칫 탈북민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북한이탈주민 지역사회통합을 증진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교의 역할을 제시한다. 북한이탈주민의 다수는 학부모로서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남한 사회를 경험하며, 이 속에서 발생하는 분리와 배제에 노출된다. 따라서 학교가 이들의 지역사회통합을 위한 거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통일초의 사례를 통해 학교라는 공간에서 잠시나마 북한이탈주민과 남한주민이 서로에 대한 경계를 멈추고 진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학교가 북한이탈주민의 지역사회통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목차
요약
Ⅰ. 서론
1. 연구목적
2. 기존 연구 검토
3. 연구방법 및 구성
Ⅱ. 통일동의 교육과 계층의 분절적 구조
1. 임대주택 단지의 등장과 지역 공간의 재편
2. 교육의 신자유주의화
3. 역지대(Liminal Space)의 가능성
4. 소결
Ⅲ. 북한이탈주민의 경험
1. 통일구의 교육환경과 탈북민의 적응
2. 탈북민 학부모의 관계 맺기
3. 탈북민의 계층인식과 자녀에 대한 꿈
4. 소결
Ⅳ. 남한주민의 경험
1. ‘학군’이라는 이름의 사회적 자본
2. 남한 학부모의 사회적 관계
3. 부동산과 계층인식
4. 소결
Ⅴ. 통일초등학교: 갈등과 이해의 공간
1. ‘역지대’로서의 통일초등학교
2. 통일전담교육사의 역할
3. 통일초등학교 내 탈북민 학생의 경험: 방과후 수업의 풍경
4. 학교 밖 탈북민 학생의 교육환경
5. 소결
Ⅵ.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