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안홀트의 장소브랜딩
- 대등서명
- Places
- 개인저자
- 사이먼 안홀트 지음 ; 김유경, 이유나, 정윤재 옮김
- 발행사항
- 서울 : Huine :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2015
- 형태사항
- 231 p. ; 23 cm
- ISBN
- 9788974641191
- 청구기호
- 325.571 A596p
- 일반주기
- 원저자명: Simon Anholt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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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8250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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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00018250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머리말]
먼저 분명히 밝혀두겠다. ‘국가 브랜딩’ 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신이고, 심지어 위험한 발상이다. 지난 몇 년간 필자는 책과 논문, 강연을 통해 이런 생각을 누차 밝혀왔다. 너무 자주 얘기한 탓에 이제는 내 생각을 설명할 때보다 해명할 때가 더 많고, ‘국가 브랜드’란 무엇인가를 얘기할 때보다 무엇이 ‘아닌가’에 대해 얘기할 때가 더 많다.
이는 당황스럽긴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어찌 보면 필자는 14년 전 별 뜻 없이 신조어를 만든 대가를 지금까지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국가 브랜드’라는 말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국가’와 ‘브랜드’, 두 단어의 조합이 가지는 파급력을 미처 예상치 못했다. 또한 ‘브랜드’ 라는 개념이 국가나 도시, 지역에 적용되었을 때 얼마나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한편으로 ‘브랜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각 장소들이 재화와 서비스, 이벤트와 아이디어, 방문객과 인적자원, 투자 유치를 두고 벌이는 경쟁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이다. 이것은 세계화의 현실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브랜드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피상적인 마케팅 속임수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는 오해이며 많은 이유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필자는 ‘브랜드’ 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 않지만, 여전히 이것은 유용한 메타포이기에 완전히 생략하기는 어렵다. ‘브랜드’는 이 책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데, 책에 포함된 몇몇 에세이들이 내가 2004년 발간해 편집을 맡고 있는 저널 ‘장소 브랜딩과 공공외교(Place Branding and Public Diplomacy)’ 의 서문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2005년부터 주관하고 있는 국제 연구 프로그램인 ‘안홀트 국가브랜드지수(Anholt Nation Brands Index)’와 안홀트 도시브랜드지수(Anholt City Brands Index)’ 도 자주 언급되며, 기존의 저작인 『Brand New Justice』와 『Brand America』1에서 인용한 부분도 있다. 이처럼 ‘브랜드’는 필자의 연구와 너무 깊숙이 연관되어 있어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이 단어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혹자는 그 단어를 회피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볼 수도 있으나, 단어 선택은 중요한 것이다. 겉치레의 대명사처럼 냉소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실제로는 전혀 그 반대인 분야에 쓰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필자의 저작을 즐겨 읽었던 독자들에게 사과를 전하며, 다시 한번 장소와 평판에 관한 기본적 입장을 간단히 설명할까 한다.
국가는 평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가 기업과 제품에 중요한 것만큼이나 국가 평판 또한 국가의 발전과 번영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제품을 브랜딩하듯 국가를(혹은 도시나 지역을) ‘브랜딩한다’ 는 것은 효과도 없을뿐더러 바보 같은 발상이다. 이 분야에서 일한 지 15년이 됐음에도, 여태껏 어떤 장소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을 직접적으로 바꿔놓은 성공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이나 슬로건, 로고가 있다는 증거나 제대로 된 사례연구를 보지 못했다.
사실 그 반대를 입증하는 증거들은 제법 있다. 안홀트 국가 브랜드 지수(Anholt Nation Brands Index) 가 처음 나왔던 2005년과 최근 연구된 2009년 사이를 살펴보면, ‘국가 브랜딩 캠페인’ 과 국가이미지의 변화는 이렇다 할 상관관계가 없었다. 이 기간 중 통상적인 관광 홍보나 투자 유치 홍보 외의 마케팅을 하지 않은 몇몇 국가들이 오히려 전반적 이미지에서 눈에 띄는 향상이 있었고, 광고나 PR 캠페인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은 국가들의 브랜드 가치는 변화가 없거나 심지어 하락했다.
필자가 국가브랜드의 허구성을 말하고 또 말하는 이유에는 누군가 반박을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국가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실제로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획기적인 일이며 놀라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데다 그 사실을 지지하는 어떤 설득력 있는 논거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관광’ 캠페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 국가로 휴가를 떠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당연한 말이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가끔은 ‘국가 브랜딩’ 캠페인을 접한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인지도와 회상도가 높아진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뻔한 이야기이다. 어떤 슬로건에 자주 노출되면 결국 그것을 인지하게 되고 누군가 물어보면 그대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지 또는 회상할 수 있는 것과, 그 국가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바뀌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마다, 도시마다 이런 마케팅 캠페인들을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수십 억 달러의 세금이 그런 캠페인을 개발하고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데 사용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실 국가브랜드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다. 국가에 브랜드를 부여하는 것은 여론이며, 이는 국가를 빈약하고 단순하며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의 틀에 묶어 향후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국제 여론이 자국에 브랜드를 부여하는 것을 장려하기보다 막을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가가 한낱 브랜드로 인식되게 할 것이 아니라, 세계인이 자국의 풍부한 전통과 역사, 상품과 자원 등을 복합적이고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필자가 1996년 처음 ‘국가브랜드’ 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을 때, 많은 정부에서 이를 빈약하거나 부정적인 국가이미지를 일거에 쇄신할 수는 해결책으로 보고 흥분하는 분위기였다. ‘국가’와 ‘브랜드’의 조합이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장소의 ‘이미지’가 실제로 그 장소의 발전과 번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이다.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시장과 같고, 모든 국가와 도시, 지역은 정치와 경제 및 사회·문화적 교류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구매 결정의 지름길 역할을 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의 효과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긍정적인 평판을 획득한 국가나 도시, 그곳의 국민들은 국제 무대에서 많은 것들을 쉽게 이룰 수 있다. 브랜드가 앞장서서 신뢰와 존경을 얻어내며, 경쟁력과 신뢰도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으며, 후진적인데다 부패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나라와 그 곳의 국민은 외부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이미지와 실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는다. 예를 들어 스웨덴 출신 매니저와 이란 출신 매니저가 글로벌 인재시장에서 구직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혹은 방글라데시 출신 수출업자와 캐나다 출신 수출업자가 겪을 고충을 비교해 봐도 좋겠다. 평판이 나쁜 국가에 있는 천혜의 관광지보다, 평판이 좋은 국가에 있는 그저 그런 리조트가 미디어 노출도가 더 높으며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하기도 쉽다.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소비자 입장에서, 똑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라면 일본 제품과 한국 제품 중 어떤 것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까? 둘 다 같은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해도 말이다. 국제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공정하고 부유하며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나라의 정부가 내놓은 그저 그런 정책과,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철된 나라의 정부가 내놓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 중 어느 쪽이 더 호의적으로 보도될까? 물론 전자이고, 후자는 보도되지 않거나 오히려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 일쑤다.
한마디로 모든 장소는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계화 시대의 특징인 국가 간 경쟁에서 그 이미지가 승패를 가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브랜드’ 자체가 아닌, 장소를 브랜드화(化)하는 ‘브랜딩’에 매달리는 것이다.
만약 장소를 브랜딩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참 편한 일이다. 마케팅에 거액의 예산을 배정하고 최고의 PR 대행사를 쓰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며, 국가 이미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만들어질 수도, 바뀔 수도 없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그렇게 효과적이라면, 국가나 도시에 적용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자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효과적이지 않다. 멋진 광고와 매력적인 로고, 잘 기억되는 슬로건이 강력한 상업 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는 맞지만, 브랜드의 저력이 거기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가 힘을 얻는 것은 제품이 판매되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때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실제로 사용했을 때, 그 제품이 브랜드가 약속하는 바를 잘 이행한다면 신뢰가 형성된다. 광고 캠페인은 판매를 촉진함으로써 브랜드 구축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뿐이다.
국가나 도시는 판매의 대상이 아니기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은 공허한 선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제품을 써 보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이 나라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세요’라고 말하는 메시지는 빗나갈 뿐이다.
상업적 영역에서의 브랜드 관리는 그 브랜드를 관리하는 회사가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대해 높은 수준의 통제력을 가지고,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제품의 모습과 소비자의 제품 경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성과를 낸다. 좋은 제품을 보유한 좋은 회사는 충분한 기량과 시간, 자원을 활용해 제품에 걸맞은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단, 제품의 실체가 뒷받침되는 선에서 말이다.
장소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어떤 조직도 장소의 물리적 실체와 외부 소통 채널을 그 정도로 통제할 수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작은 마을이라 해도 그 안에 담긴 다양성과 복잡성은 가장 큰 기업을 능가한다. 게다가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는 기업과 달리, 제각기 다른 구성원들이 모인 장소는 훨씬 비(非) 동질적이며 다원적이다. 기업의 경우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사훈(社訓)이 있는 반면장소의 구성원들은 단일한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고용계약은 주로 쌍방의 의무를 말하고 있으나 사회적 계약은 구성원들의 권리를 말하고 있다. 물론, 국가를 기업처럼 경영하는 지도자는 언제나 있어왔고, 그들은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통제함으로써 장소 브랜드를 관리하려 한다. 그러나 프로파간다를 통한 이런 종류의 통제는 완전히 폐쇄된 사회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 중 필자는 미디어의 발달로 끊임없는 소통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 프로파간다는 더 이상 불가능한 만큼, 큰 해악을 끼치지 못한다.
국가나 도시 이미지가 쉽게 바뀔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지가 너무나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브랜드 지수(Nation Brand Index)가 보여주듯이 국가 이미지는 놀라울 정도로 변동이 없으며 유동 자금이라기보다는 고정 자산에 가깝다. 모두들 국가와 도시들을 분류해 놓고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바꾸지 않는 편리한 고정관념이 필요한 듯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국가에 대해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남아공, 인도네시아 사람이 네덜란드를 생각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일 년에 몇 분이다. 그러니 네덜란드의 이미지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한 외국에 대한 인식은 인식 주체가 가진 문화의 일부이다. 즉, 독일 국민이 느끼는 네덜란드는 독일 문화의 일부이며, 네덜란드 국민이 느끼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국가 이미지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획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이미지가 한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오산이다. 이 시점에서 ‘더 좋은 평판을 얻는 길은, 남에게 보여지기 원하는 모습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정부가 다른 국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는 없다 해도, 좋은 국가 평판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 첫째, 주요 국가와 분야를 선별해 그 곳에서 자국의 국가 이미지가 어떤지를 모니터링 해야 한다. 정밀하고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 자국의 이미지가 정확히 그 나라의 어떤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해 국익에 영향을 주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 둘째, 기업 및 시민 사회와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터놓고 협력한다면, 국가 전략과 내러티브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볼 수 있으며, 이는 일반 국민의 아이디어와 의지, 기량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서 내러티브란 국가란 무엇이며 지향점은 어디인지, 목표는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설명하는 일종의 ‘스토리’ 이다.
· 셋째, 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자국의 제품, 서비스, 정책 및 기업정신이 그 혁신성과 화제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적 관심과 찬탄을 이끌어내고, 내러티브의 진실성을 입증하고, 바람직한 국가 평판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증명해 보이는 방법이다.
어떤 지역의 평판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다른 지역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늘리는 것보다 더 많은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
‘국가 평판’은 단지 지적으로 매력적인 개념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국의 국가 평판이 어떠하며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어떤 국가는 국가 평판을 적절한 개입을 통해 관리하려 하고, 어떤 국가는 여론에 맡기고 내버려두기도 한다. 후자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국가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니며 모든 국민이 신경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장소의 브랜드 이미지는 단순히 그 장소의 인기 여부를 넘어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국가 평판의 힘을 무시할 배짱이 있는 국가는 국제사회에 참여할 생각이 없거나, 좋은 국가 평판이 가져다 줄 경제적·문화적 이익이나 자국민들이 누릴 혜택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국민이 정부를 믿고 국가평판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맡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임기 동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이 맡긴 그 자산을 잘 관리해 좋은 평판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적어도 평판을 훼손하지 않은 채로 최대한 훌륭한 평판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만약 세계 각국의 정부가 현명한 기업들이 평판관리를 위해 쏟는 노력의 절반만큼이라도 평판에 신경을 썼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장소와 장소의 정체성, 평판 및 이미지에 대한 논의가 매우 가치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중요하고 매혹적인 논의에 진정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장소 브랜딩’ 혹은 ‘경쟁력 있는 정체성’이 마케팅의 일부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국정운영과 경제 발전, 국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이제 필자의 지난 에세이들 중 몇 편을 골라, 이 멋진 주제의 외연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역자 서문]
국가의 기본 단위를 주권, 영토, 국민이라고 한다면, 장소브랜드의 소재는 영토이다. 18세기 유럽과 북미의 산업화는 도시화를 기조로 발전되어 왔으며, 주거지로서의 지역과 도시를 마케팅 수단으로 촉진하기에 이르렀다. 산업화의 종말에서 글로벌화는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가와 도시와 지역이 경쟁개념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비재를 판매하는 기술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지만 그 도전은 정확하게도 똑같다. 브랜드라는 마케팅 개념이 도입되어 장소에까지 파급되면서 사적 영역의 브랜드 자산구축이 공적영역에 까지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곧 장소브랜딩이라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이 시기에 국가브랜드의 권위자 사이몬 안홀트는 스스로 국가와 장소를 브랜딩했다는 자책감을 토로했다. 브랜딩이라고 불리는 신뢰 확산전파 시스템은 상업계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종종 상거래와 연관되곤 한다. 그러나 정치, 사회, 문화, 공식적, 비공식적 부문을 포함한 공적이거나 사적인 삶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장소 브랜딩에 대한 개념은 국가, 도시, 또는 지역이 ‘브랜딩’ 효과를 실현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행정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장소와 관련된 것이지 장소 브랜딩에서 장소를 빼더라도 브랜딩의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소 또한 기업과 마찬가지로 브랜딩 효과의 영향을 받는다. 조직은 대내외적으로 요약될 수 있는 실체로 인식되며, 이에 따라 ‘브랜드 이미지’를 지닌다. 조직의 안녕과 번영은 이 이미지에 크게 의존한다. 국가 도시 등의 장소 브랜드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브랜드 이미지가 긍정적인 경우에는 해당 집단에 소속되었다고 인지되는 사람들이 ‘고가치 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이고, 브랜드 이미지가 부정적인 경우에는 ‘저가치 상거래’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안홀트는 국가 이미지의 생성, 개선 또는 변경을 위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브랜딩의 개념은 다르다. 브랜드란 이전 단계인 의미와 본질을 부여하는 과정의 전반을 가르킨다. 다시말해, 국가에 ‘브랜드’를 부여하고자 하는 정부들은 ‘우리나라를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묻지말고, ‘우리나라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이전에 외국인들이 해당 국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장소를 브랜드화하는 이유는 도시나 지역이 경쟁적 정체성을 발굴하는 노력을 강조하고 이를 의미화하는 노력(Brandization)에 더욱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패러다임은 각 나라와 지역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경쟁적 차원에서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인정하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과거의 브랜드 활동은 미디어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형 브랜드 관리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민초와 서민에서 출발하는 참여형 관리를 강조해야 한다. 예컨대, 서울시는 최근 그동안 사용해왔던 “하이 서울” 등과 관련한 일련의 브랜드 상징을 버리면서 시민의 참여와 공유를 강조하는 “참여형 통합브랜드” 만들기에 돌입했다. 이는 과거의 것이 노후화됐다든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전락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진화의 의미를 더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장소는 혁신(Innovation)이나, 대체(replacement)가 아니라, 진화(Evolution)요, 공존(Coexistence)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완성된 장소 슬로건이나, 메시지 보다, 이들을 완성해가는 절차와 과정에 더욱 의미를 두어야 하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안홀트가 보는 장소의 브랜드화는 다양한 관점을 포괄하고는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Brand New Justice가 출간됐을 당시 많은 개도국과 신생공화국들의 반향을 돌이켜 보면 안홀트의 업적과 그의 기여도는 상상이상이다. 글로벌 시대에 “장소브랜드라는” 글로벌 아젠다를 세계 곳곳에서 꽃피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가, 도시, 지역의 브랜드가치를 평가하여 국가는 국가끼리, 도시는 도시끼리 개별 경쟁 패러다임을 갖추도록 제도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8년 이명박 정부에 들어 국가브랜드 개념이 민관산학에 확산되었고, 제도권 속에서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국가와 도시, 지역을 발전시켜왔다. 더 이상 이들 용어가 정치적 예속관계로 불리워지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먼저 분명히 밝혀두겠다. ‘국가 브랜딩’ 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신이고, 심지어 위험한 발상이다. 지난 몇 년간 필자는 책과 논문, 강연을 통해 이런 생각을 누차 밝혀왔다. 너무 자주 얘기한 탓에 이제는 내 생각을 설명할 때보다 해명할 때가 더 많고, ‘국가 브랜드’란 무엇인가를 얘기할 때보다 무엇이 ‘아닌가’에 대해 얘기할 때가 더 많다.
이는 당황스럽긴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어찌 보면 필자는 14년 전 별 뜻 없이 신조어를 만든 대가를 지금까지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국가 브랜드’라는 말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국가’와 ‘브랜드’, 두 단어의 조합이 가지는 파급력을 미처 예상치 못했다. 또한 ‘브랜드’ 라는 개념이 국가나 도시, 지역에 적용되었을 때 얼마나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한편으로 ‘브랜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각 장소들이 재화와 서비스, 이벤트와 아이디어, 방문객과 인적자원, 투자 유치를 두고 벌이는 경쟁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이다. 이것은 세계화의 현실이며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브랜드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피상적인 마케팅 속임수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는 오해이며 많은 이유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요즘 필자는 ‘브랜드’ 라는 말을 가급적 쓰지 않지만, 여전히 이것은 유용한 메타포이기에 완전히 생략하기는 어렵다. ‘브랜드’는 이 책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데, 책에 포함된 몇몇 에세이들이 내가 2004년 발간해 편집을 맡고 있는 저널 ‘장소 브랜딩과 공공외교(Place Branding and Public Diplomacy)’ 의 서문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2005년부터 주관하고 있는 국제 연구 프로그램인 ‘안홀트 국가브랜드지수(Anholt Nation Brands Index)’와 안홀트 도시브랜드지수(Anholt City Brands Index)’ 도 자주 언급되며, 기존의 저작인 『Brand New Justice』와 『Brand America』1에서 인용한 부분도 있다. 이처럼 ‘브랜드’는 필자의 연구와 너무 깊숙이 연관되어 있어 최대한 노력했음에도 이 단어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혹자는 그 단어를 회피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볼 수도 있으나, 단어 선택은 중요한 것이다. 겉치레의 대명사처럼 냉소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실제로는 전혀 그 반대인 분야에 쓰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필자의 저작을 즐겨 읽었던 독자들에게 사과를 전하며, 다시 한번 장소와 평판에 관한 기본적 입장을 간단히 설명할까 한다.
국가는 평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브랜드 이미지가 기업과 제품에 중요한 것만큼이나 국가 평판 또한 국가의 발전과 번영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제품을 브랜딩하듯 국가를(혹은 도시나 지역을) ‘브랜딩한다’ 는 것은 효과도 없을뿐더러 바보 같은 발상이다. 이 분야에서 일한 지 15년이 됐음에도, 여태껏 어떤 장소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을 직접적으로 바꿔놓은 성공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이나 슬로건, 로고가 있다는 증거나 제대로 된 사례연구를 보지 못했다.
사실 그 반대를 입증하는 증거들은 제법 있다. 안홀트 국가 브랜드 지수(Anholt Nation Brands Index) 가 처음 나왔던 2005년과 최근 연구된 2009년 사이를 살펴보면, ‘국가 브랜딩 캠페인’ 과 국가이미지의 변화는 이렇다 할 상관관계가 없었다. 이 기간 중 통상적인 관광 홍보나 투자 유치 홍보 외의 마케팅을 하지 않은 몇몇 국가들이 오히려 전반적 이미지에서 눈에 띄는 향상이 있었고, 광고나 PR 캠페인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은 국가들의 브랜드 가치는 변화가 없거나 심지어 하락했다.
필자가 국가브랜드의 허구성을 말하고 또 말하는 이유에는 누군가 반박을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국가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실제로 바꿔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획기적인 일이며 놀라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데다 그 사실을 지지하는 어떤 설득력 있는 논거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관광’ 캠페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 국가로 휴가를 떠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당연한 말이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가끔은 ‘국가 브랜딩’ 캠페인을 접한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인지도와 회상도가 높아진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뻔한 이야기이다. 어떤 슬로건에 자주 노출되면 결국 그것을 인지하게 되고 누군가 물어보면 그대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지 또는 회상할 수 있는 것과, 그 국가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가 바뀌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마다, 도시마다 이런 마케팅 캠페인들을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수십 억 달러의 세금이 그런 캠페인을 개발하고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데 사용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실 국가브랜드는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다. 국가에 브랜드를 부여하는 것은 여론이며, 이는 국가를 빈약하고 단순하며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의 틀에 묶어 향후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국제 여론이 자국에 브랜드를 부여하는 것을 장려하기보다 막을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국가가 한낱 브랜드로 인식되게 할 것이 아니라, 세계인이 자국의 풍부한 전통과 역사, 상품과 자원 등을 복합적이고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필자가 1996년 처음 ‘국가브랜드’ 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을 때, 많은 정부에서 이를 빈약하거나 부정적인 국가이미지를 일거에 쇄신할 수는 해결책으로 보고 흥분하는 분위기였다. ‘국가’와 ‘브랜드’의 조합이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장소의 ‘이미지’가 실제로 그 장소의 발전과 번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이다.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시장과 같고, 모든 국가와 도시, 지역은 정치와 경제 및 사회·문화적 교류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는 구매 결정의 지름길 역할을 하는 브랜드 이미지가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의 효과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긍정적인 평판을 획득한 국가나 도시, 그곳의 국민들은 국제 무대에서 많은 것들을 쉽게 이룰 수 있다. 브랜드가 앞장서서 신뢰와 존경을 얻어내며, 경쟁력과 신뢰도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으며, 후진적인데다 부패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나라와 그 곳의 국민은 외부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이미지와 실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까지 떠안는다. 예를 들어 스웨덴 출신 매니저와 이란 출신 매니저가 글로벌 인재시장에서 구직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혹은 방글라데시 출신 수출업자와 캐나다 출신 수출업자가 겪을 고충을 비교해 봐도 좋겠다. 평판이 나쁜 국가에 있는 천혜의 관광지보다, 평판이 좋은 국가에 있는 그저 그런 리조트가 미디어 노출도가 더 높으며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하기도 쉽다.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소비자 입장에서, 똑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라면 일본 제품과 한국 제품 중 어떤 것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까? 둘 다 같은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해도 말이다. 국제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공정하고 부유하며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나라의 정부가 내놓은 그저 그런 정책과, 부정적인 이미지로 점철된 나라의 정부가 내놓은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 중 어느 쪽이 더 호의적으로 보도될까? 물론 전자이고, 후자는 보도되지 않거나 오히려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 일쑤다.
한마디로 모든 장소는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계화 시대의 특징인 국가 간 경쟁에서 그 이미지가 승패를 가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브랜드’ 자체가 아닌, 장소를 브랜드화(化)하는 ‘브랜딩’에 매달리는 것이다.
만약 장소를 브랜딩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참 편한 일이다. 마케팅에 거액의 예산을 배정하고 최고의 PR 대행사를 쓰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며, 국가 이미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만들어질 수도, 바뀔 수도 없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그렇게 효과적이라면, 국가나 도시에 적용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인가?
그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자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효과적이지 않다. 멋진 광고와 매력적인 로고, 잘 기억되는 슬로건이 강력한 상업 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는 맞지만, 브랜드의 저력이 거기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가 힘을 얻는 것은 제품이 판매되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때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실제로 사용했을 때, 그 제품이 브랜드가 약속하는 바를 잘 이행한다면 신뢰가 형성된다. 광고 캠페인은 판매를 촉진함으로써 브랜드 구축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뿐이다.
국가나 도시는 판매의 대상이 아니기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은 공허한 선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제품을 써 보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이 나라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세요’라고 말하는 메시지는 빗나갈 뿐이다.
상업적 영역에서의 브랜드 관리는 그 브랜드를 관리하는 회사가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대해 높은 수준의 통제력을 가지고,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제품의 모습과 소비자의 제품 경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성과를 낸다. 좋은 제품을 보유한 좋은 회사는 충분한 기량과 시간, 자원을 활용해 제품에 걸맞은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단, 제품의 실체가 뒷받침되는 선에서 말이다.
장소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어떤 조직도 장소의 물리적 실체와 외부 소통 채널을 그 정도로 통제할 수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작은 마을이라 해도 그 안에 담긴 다양성과 복잡성은 가장 큰 기업을 능가한다. 게다가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는 기업과 달리, 제각기 다른 구성원들이 모인 장소는 훨씬 비(非) 동질적이며 다원적이다. 기업의 경우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사훈(社訓)이 있는 반면장소의 구성원들은 단일한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고용계약은 주로 쌍방의 의무를 말하고 있으나 사회적 계약은 구성원들의 권리를 말하고 있다. 물론, 국가를 기업처럼 경영하는 지도자는 언제나 있어왔고, 그들은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통제함으로써 장소 브랜드를 관리하려 한다. 그러나 프로파간다를 통한 이런 종류의 통제는 완전히 폐쇄된 사회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세계화의 긍정적인 측면 중 필자는 미디어의 발달로 끊임없는 소통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 프로파간다는 더 이상 불가능한 만큼, 큰 해악을 끼치지 못한다.
국가나 도시 이미지가 쉽게 바뀔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지가 너무나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브랜드 지수(Nation Brand Index)가 보여주듯이 국가 이미지는 놀라울 정도로 변동이 없으며 유동 자금이라기보다는 고정 자산에 가깝다. 모두들 국가와 도시들을 분류해 놓고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바꾸지 않는 편리한 고정관념이 필요한 듯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국가에 대해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남아공, 인도네시아 사람이 네덜란드를 생각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일 년에 몇 분이다. 그러니 네덜란드의 이미지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또한 외국에 대한 인식은 인식 주체가 가진 문화의 일부이다. 즉, 독일 국민이 느끼는 네덜란드는 독일 문화의 일부이며, 네덜란드 국민이 느끼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국가 이미지는 만들어질 수 없으며, 오로지 획득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이미지가 한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오산이다. 이 시점에서 ‘더 좋은 평판을 얻는 길은, 남에게 보여지기 원하는 모습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정부가 다른 국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는 없다 해도, 좋은 국가 평판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 첫째, 주요 국가와 분야를 선별해 그 곳에서 자국의 국가 이미지가 어떤지를 모니터링 해야 한다. 정밀하고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 자국의 이미지가 정확히 그 나라의 어떤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해 국익에 영향을 주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 둘째, 기업 및 시민 사회와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터놓고 협력한다면, 국가 전략과 내러티브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볼 수 있으며, 이는 일반 국민의 아이디어와 의지, 기량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서 내러티브란 국가란 무엇이며 지향점은 어디인지, 목표는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설명하는 일종의 ‘스토리’ 이다.
· 셋째, 정부는 모든 분야에서 자국의 제품, 서비스, 정책 및 기업정신이 그 혁신성과 화제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적 관심과 찬탄을 이끌어내고, 내러티브의 진실성을 입증하고, 바람직한 국가 평판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증명해 보이는 방법이다.
어떤 지역의 평판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다른 지역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늘리는 것보다 더 많은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
‘국가 평판’은 단지 지적으로 매력적인 개념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국의 국가 평판이 어떠하며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어떤 국가는 국가 평판을 적절한 개입을 통해 관리하려 하고, 어떤 국가는 여론에 맡기고 내버려두기도 한다. 후자가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모든 국가가 국제사회의 인정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니며 모든 국민이 신경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어떤 장소의 브랜드 이미지는 단순히 그 장소의 인기 여부를 넘어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국가 평판의 힘을 무시할 배짱이 있는 국가는 국제사회에 참여할 생각이 없거나, 좋은 국가 평판이 가져다 줄 경제적·문화적 이익이나 자국민들이 누릴 혜택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국민이 정부를 믿고 국가평판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맡긴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임기 동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이 맡긴 그 자산을 잘 관리해 좋은 평판을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적어도 평판을 훼손하지 않은 채로 최대한 훌륭한 평판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만약 세계 각국의 정부가 현명한 기업들이 평판관리를 위해 쏟는 노력의 절반만큼이라도 평판에 신경을 썼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장소와 장소의 정체성, 평판 및 이미지에 대한 논의가 매우 가치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중요하고 매혹적인 논의에 진정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장소 브랜딩’ 혹은 ‘경쟁력 있는 정체성’이 마케팅의 일부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국정운영과 경제 발전, 국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이제 필자의 지난 에세이들 중 몇 편을 골라, 이 멋진 주제의 외연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역자 서문]
국가의 기본 단위를 주권, 영토, 국민이라고 한다면, 장소브랜드의 소재는 영토이다. 18세기 유럽과 북미의 산업화는 도시화를 기조로 발전되어 왔으며, 주거지로서의 지역과 도시를 마케팅 수단으로 촉진하기에 이르렀다. 산업화의 종말에서 글로벌화는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가와 도시와 지역이 경쟁개념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비재를 판매하는 기술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지만 그 도전은 정확하게도 똑같다. 브랜드라는 마케팅 개념이 도입되어 장소에까지 파급되면서 사적 영역의 브랜드 자산구축이 공적영역에 까지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곧 장소브랜딩이라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이 시기에 국가브랜드의 권위자 사이몬 안홀트는 스스로 국가와 장소를 브랜딩했다는 자책감을 토로했다. 브랜딩이라고 불리는 신뢰 확산전파 시스템은 상업계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종종 상거래와 연관되곤 한다. 그러나 정치, 사회, 문화, 공식적, 비공식적 부문을 포함한 공적이거나 사적인 삶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장소 브랜딩에 대한 개념은 국가, 도시, 또는 지역이 ‘브랜딩’ 효과를 실현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행정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장소와 관련된 것이지 장소 브랜딩에서 장소를 빼더라도 브랜딩의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소 또한 기업과 마찬가지로 브랜딩 효과의 영향을 받는다. 조직은 대내외적으로 요약될 수 있는 실체로 인식되며, 이에 따라 ‘브랜드 이미지’를 지닌다. 조직의 안녕과 번영은 이 이미지에 크게 의존한다. 국가 도시 등의 장소 브랜드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브랜드 이미지가 긍정적인 경우에는 해당 집단에 소속되었다고 인지되는 사람들이 ‘고가치 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이고, 브랜드 이미지가 부정적인 경우에는 ‘저가치 상거래’를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안홀트는 국가 이미지의 생성, 개선 또는 변경을 위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브랜딩의 개념은 다르다. 브랜드란 이전 단계인 의미와 본질을 부여하는 과정의 전반을 가르킨다. 다시말해, 국가에 ‘브랜드’를 부여하고자 하는 정부들은 ‘우리나라를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묻지말고, ‘우리나라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이전에 외국인들이 해당 국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장소를 브랜드화하는 이유는 도시나 지역이 경쟁적 정체성을 발굴하는 노력을 강조하고 이를 의미화하는 노력(Brandization)에 더욱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패러다임은 각 나라와 지역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경쟁적 차원에서 형상화하려는 노력을 인정하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과거의 브랜드 활동은 미디어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형 브랜드 관리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민초와 서민에서 출발하는 참여형 관리를 강조해야 한다. 예컨대, 서울시는 최근 그동안 사용해왔던 “하이 서울” 등과 관련한 일련의 브랜드 상징을 버리면서 시민의 참여와 공유를 강조하는 “참여형 통합브랜드” 만들기에 돌입했다. 이는 과거의 것이 노후화됐다든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전락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진화의 의미를 더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장소는 혁신(Innovation)이나, 대체(replacement)가 아니라, 진화(Evolution)요, 공존(Coexistence)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완성된 장소 슬로건이나, 메시지 보다, 이들을 완성해가는 절차와 과정에 더욱 의미를 두어야 하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안홀트가 보는 장소의 브랜드화는 다양한 관점을 포괄하고는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Brand New Justice가 출간됐을 당시 많은 개도국과 신생공화국들의 반향을 돌이켜 보면 안홀트의 업적과 그의 기여도는 상상이상이다. 글로벌 시대에 “장소브랜드라는” 글로벌 아젠다를 세계 곳곳에서 꽃피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가, 도시, 지역의 브랜드가치를 평가하여 국가는 국가끼리, 도시는 도시끼리 개별 경쟁 패러다임을 갖추도록 제도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8년 이명박 정부에 들어 국가브랜드 개념이 민관산학에 확산되었고, 제도권 속에서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국가와 도시, 지역을 발전시켜왔다. 더 이상 이들 용어가 정치적 예속관계로 불리워지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목차
머리말 / 5
역자 서문 / 15
Chapter 01 장소 이미지 : 마케팅인가 아닌가? / 25
Chapter 02 이미지와 신뢰에 대하여 / 41
Chapter 03 국가 정체성: 원인 혹은 결과? / 55
Chapter 04 장소들은 단순한 이미지를 지녀야 하는가? / 65
Chapter 05 국가이미지와 정체성 스케치 / 77
Chapter 06 마케팅은 언제 타당성을 확보하는가? / 119
Chapter 07 공공외교와 장소브랜딩: 연결지점은 어디인가? / 133
Chapter 08 “유럽 브랜드” - 다음은 어디? / 143
Chapter 09 공공영역, 사적 영역 / 163
Chapter 10 미디어와 국가 이미지 / 175
Chapter 11 이것이 나에 관한 것인가? - 관련성에 관한 중요한 이슈 / 203
Chapter 12 결론 / 221
역자 소개 /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