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 중국에서 목소리가 지워져간
여덟 사람의 삶을 그린 회고이자 그 삶을 재평가하는 복권의 기록

장보쥔·장이허 부녀를 비롯한
중국 지식인들의 결코 잊을 수 없는 투쟁과 인간적인 고뇌의 흔적

1957년 6월 8일, 중국공산당에서는 「우파 분자들의 난폭한 반격」이라는 글을,
같은 날 『런민일보』에서는 「무엇 때문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했다.
몇몇 우파 지식인들이 마오쩌둥을 끌어내리고 공산당을 탄압하고자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이후 중국 지식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바로 ‘반우파 투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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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붓으로 기록한 어제의 이 이야기는 여러 인물의 피눈물이 배어 있는 영혼의 궤적이다.
시인의 가슴과 역사가의 눈이 공존하는 이 책에는 『사기史記』의 유풍과
루쉰 문학의 비애감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_쑨위, 루쉰박물관 부관장

장보쥔을 비롯한 민주 인사들이 민맹의 기관지 『광밍일보』를 준비하며 느꼈을 설렘과 흥분,
판면에 쓸 글씨를 고르던 모습, 눈물을 머금고 신문을 회수하던 장면,
『광밍일보』 편집장이었던 추안핑이 1966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침통해하던 장보쥔의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쉬이 잊히지 않는다. _둥차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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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57~1979년에 걸쳐 중국에서 일어난 ‘반우파 투쟁’ 당시 우파로 지목돼 지위를 박탈당하고 사회에서 배제된 중국 지식인들의 삶을 다룬 기록이다. 1957년 2월 27일, 마오쩌둥의 정풍운동 이후 공산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중국공산당은 이를 제지하고자 반우파 투쟁을 벌였다. 중국 내 우파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공산당에 조금이라도 비판을 가하는 사람을 모조리 탄압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파를 포함한 수많은 지식인이 우파로 몰려 사회적 지위를 강등당하고 불리한 대우를 받았다. 곧 ‘우파’라는 이름은 다른 어떤 신분, 학위, 직무, 직함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한 사람을 평생토록 따라다니는 낙인으로 자리잡았다.
이 책의 저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장이허는 우파의 두목으로 지목된 장보쥔의 딸이다. 장이허 역시 그 자신도 20대 말에 우파로 몰려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61세가 되던 2002년부터 자신이 어린 시절 직접 보고 생각하고 기억한 것들, 부모님과 교유한 지식인, 스승, 문인, 예술가들의 고난을 유려한 문체로 써내려가기 시작해 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중국에서 출간되었다가 현재까지 공개가 금지된 현대사를 다룬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되었고, 이후 홍콩에서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장이허가 만년의 눈으로 더듬어보는 인물 중에는 역사적으로 무거운 자취를 남긴 사람도 있고, 평범한 세속의 인물도 있다. 아버지 장보쥔을 포함해 저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여덟 명의 인물(스량, 추안핑, 장보쥐, 판쑤, 캉퉁비, 뤄이펑, 녜간누, 뤄룽지)과 그들의 형상은 중국 현대사에 매우 귀중한 단면을 제공한다. 이 책은 픽션이 아닌 실제 있었던 기억의 산물인데도 저자의 유려한 문체로 인해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중국 지식인의 내면의 역사를 그리는 이 책은 당대 중국 역사의 한 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복잡미묘한 인성까지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이들의 면면을 되비추고 그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동시에 삶에 대한 귀중한 사색과 교감을 제공한다.

1957년,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1957년은 당대 중국 지식인들과 민주당파(민맹)들에게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격변의 해였다. 그해 2월 시작된 마오쩌둥의 ‘정풍운동’은 중국의 정치적 단결을 도모하고, 철저한 비판과 쇄신을 거쳐 재단결하는 과정을 수행하며, 중국공산당과 민주당파는 ‘장기공존, 상호감독’의 원칙을 지키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중국공산당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 쏟아졌고 마오쩌둥은 이를 탄압하기 위해 중국 내 우파를 제거한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중국공산당에 조금이라도 비판을 가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기한 사람을 모조리 ‘우파’ 분자라 규정짓고, 이들을 사회적·정치적으로 몰락, 고립시켰다. 저자의 아버지인 ‘장보쥔’ 역시 이때 우파가 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장보쥔은 중국 내 민주세력의 연합체인 ‘중국민주동맹’(민맹)의 실질적 책임자이자 교통부장, 정협 부주석, 『광밍일보』 사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었다. 민맹을 비롯한 8개의 민주당파는 형식상 야당이었지만 중국공산당을 옹호하며 협력해왔는데, 민맹의 책임자였던 장보쥔 역시 정풍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장보쥔은 스량과 함께 육육육 교수회의(6월 6일에 여섯 명의 교수가 모여 정풍운동에 대한 대응을 논의한 회의)를 열었고, 그간 열정적으로 운동에 참여했던 스량이 그날 저녁 저우언라이 총리를 만나 상황을 전했다. 스량은 장보쥔과 뜻을 같이했던 동지였다.
그러던 중 6월 8일, 중국공산당에서는 「우파 분자들의 난폭한 반격」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같은 날 『런민일보』에서도 「무엇 때문인가?」라는 사설을 발표했다. 몇몇 우파 분자들이 마오쩌둥을 끌어내리고 중국공산당을 탄압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들을 읽고 맥이 풀려버린 장보쥔은 스량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뭔가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만큼 장보쥔은 스량을 신뢰했다. 이후 『런민일보』는 다시 「적극적인 비판만이 아니라 정확한 비판도 필요하다」 「공인계급은 말한다」 등의 사설을 실었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연이어 날카롭게 칼끝을 세운 비판대회가 열렸다. 6월 13일, 장보쥔은 결국 『광밍일보』에 「나는 중대한 정치적 잘못을 범했다」라는 글을 발표하고, 공산당 통전부에서 소집한 좌담회에서도 자신이 사상적으로 중대한 잘못을 범했다고 인정해야 했다.

하루아침에 우파로 몰린 사람들
한편 스량은 6월 14일에 열린 민맹 회의 연설에서 “우파 세력의 반공산당·반사회주의를 향한 기도가 온 천하에 드러났다. 이와 함께 민중 사이에서 일어난 반우파 투쟁은 일면 사회주의와 당의 지도를 옹호하는 것인 한편, 사회주의와 당의 지도에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가르치며 자산계급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불씨를 되살려놓기도 했다”면서 민주당파 안에도 이런 유형의 사람이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는 ‘추안핑’의 ‘당천하黨天下’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어 장보쥔의 ‘정치설계원’ 발언과 더불어 ‘뤄룽지’에 대한 공격도 가하면서 장보쥔과 뤄룽지를 ‘장·뤄 연맹’으로 싸잡아 비판했다. 세 인물의 발언은 중국 우파의 3대 반동 이론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러나 장이허는 자신의 아버지를 배신했다고 볼 수 있는 스량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다지 나쁘게 다루고 있지 않다. 스량이 매우 유능한 여성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집에 놀러왔던 일이나 수건을 새로 사다주었던 일 등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함께 보태며 그녀를 추억한다.
장이허가 ‘추안핑’에 대한 글을 남기기로 한 것은 아버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첫째 양심을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친구를 얻는 것이지. 1957년 반우파 투쟁 때문에 미안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추안핑에게 가장 미안하구나.” 미안함에 이유는 이러했다. 장보쥔이 추안핑에게 『광밍일보』 편집장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는 바람에 그가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우파라는 낙인이 찍혔으며, 마침내 홀로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광밍일보』는 1949년 창간되어 장보쥔이 사장을 맡은 민맹 기관지다. 그러나 민주당파의 서명을 중국공산당의 서명보다 앞에 배치했다는 이유로 상부에서 회수를 명령하고 소각, 재발행을 명했다. 『광밍일보』는 민맹 기관지였지만 사실상 중국공산당의 관리하에 있었던 것이다. 추안핑과 장보쥔은 성격도 경력도 달랐지만 신문에 대한 관점과 이해만은 서로 일치했다.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언론 보도를 위해 힘썼다. 그들은 『광밍일보』가 민주당파 지식인들의 논의가 이루어지는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으며, 신문이란 ‘일반 민중의 의견을 대변하고, 정치적 감독 역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장보쥔은 사상적으로 자유인이자 신분상으로는 언론인이었다. 여기에 기자로서의 직업적 본성까지 더해져 사회 현상과 문제를 밝혀내 당과 정부로 하여금 문제를 개선하고 결점을 보완하게 하는, 일종의 정치적 소망이자 신념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추안핑의 ‘당천하’ 발언은 정계를 발칵 뒤집었다. 전통 왕조가 황제 일가의 지배 아래 ‘가천하家天下’였다면, 인민민주공화국을 표방한 현대 중국에서 공산당이 다른 모든 목소리를 억압하는 절대권력으로 군림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발언으로 그는 반인민·반공산당·반사회주의 우파 분자로 지목되었고 『광밍일보』 편집장직도 그만두었다. 이후 추안핑과 장보쥔은 대대적인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비판 대회는 계속되었다. 뤄룽지는 “공산당과 민주당파가 공동으로 위원회를 건립하여 삼반三反, 오반五反, 숙반 사업 중의 잘못을 검사하자”라는 주장으로 우파로 분류되었다. 중공 기관지 『런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민맹과 농공을 비판했고 장보쥔과 뤄룽지를 묶어 ‘장·뤄 연맹’이라 불렀지만 사실 그런 건 없었다. 두 사람은 연맹은커녕 서로 원수처럼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후 두 사람은 한 정치학습 회의에서 만난 뒤 본격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냈다. 두 사람은 정치적 발언 때문에 곤혹을 치렀으면서도 만나면 여전히 국내외 소식은 물론 국제 정세를 아우르는 정치 이야기를 나눴다. 뤄룽지는 자신의 처지가 좋지 않음에 분개했다. 반우파 이야기를 나눌 때면 늘 푸시슈를 언급했다. 푸시슈는 뤄룽지와 10년을 동거한 그의 전 연인으로, 그를 배신하고 우파로 지목하는 데 한몫한 여인이었다. 뤄룽지의 여성 편력 또한 대단했는데, 푸시슈를 비롯해 스량, 뤄이펑, 류왕리밍 등 여러 여성과 데이트했다. 시간이 흘러 중공 측에서 우파 혐의자들의 혐의를 벗겨주기로 했다는 복권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막상 발표된 사면 대상에 우파는 없었다. 그들의 삶은 그런 식으로 계속 흘러갔고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도 우파 신분을 벗지 못했지만, 그 대신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풍파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킨 사람들
반우파 투쟁 이후 장보쥔의 삶에는 많은 부분 변화가 있었다. 1958년 1월, 장보쥔 부부는 우파로 분류되어 직무와 월급을 강등당했고, 아홉 개의 직함을 상실했다. 정치적으로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생활은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그나마 나은 조치였지만,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 멀어져갔고 그의 삶은 무너져내렸다. 당시 어렸던 장이허는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어머니에게 붓글씨를 배웠으며, 그림 선생님을 찾던 중 ‘장보쥐’와 만났다. 장보쥐는 은화, 금괴, 패물 같은 것을 팔아서 여러 희귀한 진품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를 국가에 모두 헌납했다. 그는 골동품 모으는 취미로 나라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었다. 장이허는 장보쥐의 부인인 판쑤에게 그림을 배우며 집에 드나들면서 그들과 점점 친분이 깊어졌다. 장이허는 장보쥐와 바둑, 시, 글씨, 경극 등 다방면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정치라는 것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우파라는 낙인 앞에서 많은 사람이 굴복했고, 다들 장보쥔과 거리를 두려 했지만 장보쥐는 세간의 이목에 연연하지 않고 태연하고도 담담하게 장보쥔의 가족을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도 우파로 지목되는 사건이 있었다. 경극에 관심이 많았던 장보쥐는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신념으로 경극인들과 함께 매주 한 편씩 무대에 극을 올리기로 계획했다. 그는 「마사원」이라는 작품 준비로 시간을 보냈는데, 이는 문화부에서 지정한 금지작품이었기에 베이징 시 당국으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분노를 금할 길 없었던 장보쥐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비판했고, 이 논란은 급기야 ‘마사원 사건’으로 확대되며 그 중심인물인 장보쥐는 우파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장보쥐를 대하는 국가의 이와 같은 대응에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가진 금전과 지위, 사회적 영향력과 문화적 안목 등 물질적·사회적·문화적 재산을 총동원해 안타깝게 사라져가는 문화와 문물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사람이었다.
반우파 투쟁이 끝난 직후, 몇 안 되는 우파들끼리의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 우파가 아닌 사람은 딱 2명이 있었는데, 캉퉁비와 그녀의 딸 뤄이펑이었다. 캉퉁비는 캉유웨이의 둘째 딸로, 장이허는 캉퉁비와 뤄이펑의 집에 피신해 살면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저자의 아버지는 홍위병에게 붙잡혀간 장나이치와 만나고 싶었지만 우파라는 이유로 쉽지 않았다. 캉퉁비는 아주 진취적이고 용감한 여성이었다. 캉퉁비는 자신의 집을 기꺼이 만남의 장소로 내어주며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우파는 다 좋은 사람들이야. 그러니 대우파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지. 좌파건 우파건 우리 집에 온 사람은 모두 대접해야 할 손님이야. 더군다나 너희 아버지와 장나이치는 그냥 손님도 아니고 아주 귀한 손님인걸. ‘문화’가 쏙 빠져 있는데 가당치도 않게 문화대혁명이라니…….” 장이허는 캉퉁비 모녀를 순수한 가치와 신성한 의미를 잃어버린 이 시대에 ‘마지막 남아 있는 귀족’이었다고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