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백범어록: 평화통일의 첫걸음, 백범의 마지막 말과 글
- 발행사항
- 서울:,돌베개,,2007
- 형태사항
- 437 p. : 삽화, 초상 ; 23 cm
- ISBN
- 9788971992944
- 청구기호
- 340.99 김17ㅂ
- 서지주기
- 참고문헌: p. 433, 색인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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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 가능 (1) | ||||
1자료실 | 00018446 | 대출가능 | - |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 00018446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1945년 8월 15일의 감격스런 해방을 중국 충칭(重慶)에서 맞이한 백범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은 미군정에 의해 ‘대한민국 정부’로서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11월에야 겨우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후 기자회견을 통해 백범은 “한갓 평민의 자격으로 입국했다”고 말했는데, 그의 착잡한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표현이다. 이후 49년 6월 안두희의 저격으로 암살당할 때까지, 백범은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반탁운동의 기수로, 열강의 간섭 없는 자주독립과 좌우합작을 모색하는 정치가로, 사상의 나눔 없는 통일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끊임없이 조국의 통일을 위해 싸웠다. 이 책은 45년 11월부터 49년 6월까지의 백범의 행적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그의 만년(晩年) 어록이다.
백범 만년의 사상과 실천이 담긴 책 , 『백범어록』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광복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민족의 지도자이다. 백범의 평생 사적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와 궤적을 같이하며, 그의 저서 『백범일지』는 백범의 평생의 활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제 『백범일지』는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고액권 인물로 백범이 선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백범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이는 그의 최후의 면모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백범어록』은 일지(逸志)에 담겨 있지 않은 백범의 만년(晩年) 행적이 담겨 있다.
이 책은 1945년 9월 3일 백범이 임시정부 주석 명의로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을 발표하던 시점부터 1949년 암살당하는 시점까지 백범의 모든 행적을 각종 신문과 잡지, 방송을 통해 발굴하여 수록하였다. 『백범일지』가 해방 전 독립운동의 전 과정을 담고 있는 자료라면, 이 책은 혼란한 해방정국의 와중에 조국이 분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 외세의 간섭 없는 진정한 자주독립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분투했던 백범의 헌신적인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백범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지’와 함께 최후의 백범을 기록한 ‘어록’ 또한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백범일지』가 비교적 널리 읽힌 데 비해 백범의 어록(語錄)은 그간 몇 권의 단행본으로 정리되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경시되었다. 『백범일지』는 백범이 생존할 당시 스스로 정리해서 출간하여 일관된 체제로 정비되어 있는 반면, 『백범어록』은 백범의 급작스런 서거 이후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편집되어 비체계적이고 산만하여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록이 일지보다 중시되지 않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정신세계가 지니는 시대적 한계와 관련 있을 것이다. 개항기에서 항일독립운동기를 주 대상으로 하는 『백범일지』의 내용은 기존의 우리 사회가 포괄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데 비해, 분단과 통일 문제를 직접 다루고 있는 『백범어록』의 상당부분은 냉전적 분단의 질곡을 넘어서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백범은 조명을 받고 있지만 통일 민족주의자로서의 백범은 바로 이 책을 통해서만 바로 조명될 수 있다. 백범의 만년 어록은 파란만장한 백범 생애의 총결산이자 그가 암살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보여 주며, 그리하여 백범을 바로 추모하는 출발점을 드러낼 수 있다.
올해는 『백범일지』 간행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백범일지』 집필 80년이 되는 해이다.
1947년 “金九 自敍傳 白凡逸志”라는 표제로 국사원에서 간행되었던 『백범일지』가 올해로 발간 60주년이 되었다. 그간 『백범일지』는 60여 종 이상 출간, 1,000만 부 이상 판매의 기록을 세웠는데, 우리 민족의 최장기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범일지』의 출간사를 쓴 날이 1947년 11월 15일이며, 올해 11월 15일은 백범이 출간사를 쓴 지 정확하게 60년이 되는 날이다.
평화통일의 첫걸음, 백범 김구의 마지막 말과 글
2000년 6월 15일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역사적인 날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마주 잡고 6·15남북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7년 후인 올해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행기가 아닌 차량을 이용해 평양으로 갔으며, 38선을 걸어서 지나갔다. 이러한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평화통일의 첫걸음은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 백범은 북한의 김두봉과 김일성에게 협상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조국은 좌니 우니 하는 사상의 경계를 만들고 서로 물어뜯는 형국이었으며 언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시기였다. 권력 쟁탈을 일삼던 이들은 백범을 두고 파시스트니 협상파니 하며 비판했지만, 백범은 사상, 정치권력 이 모든 것을 접어두고 한민족이니 무조건 만나야 한다는 장문의 편지를 김두봉에게 보냈다.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져야 민족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던 백범! 비록 백범의 마지막 소원은 그의 급작스런 죽음과 함께 수포로 돌아갔지만,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했던 그의 기백은 6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는 2008년은 백범이 참여한 남북연석회의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통일이 운위되는 오늘날,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백범어록』은 그 필요성만큼이나 바른 읽기가 더욱 요청된다 할 것이다.
<느낌표!> 『백범일지』의 주해자 도진순의 심혈을 기울인 역저
<느낌표!>의 도서로 선정되어 전국민의 필독서가 된 돌베개의 『백범일지』는 원본은 물론 등사본·필사본·추가본과 수많은 출간본을 검토하고, 옛 문헌과 자료들을 수집·분석하는 등 도진순 교수의 4년 여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 정본(定本)이다.
이 책 『백범어록』은 사학자이며 백범 전문 연구자인 도진순 교수가 『백범일지』 주해본 다음으로 심혈을 기울인 연구서이다. 백범 김구가 고액권의 초상 인물로 선정된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기만 하다. 백범의 만년 어록은 백범의 최후의 면모를 집중 조명해 줌으로써, 백범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도진순 교수는 ‘일지’와 ‘어록’의 주해에 이어 ‘평전’(評傳)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 ‘일지’, ‘어록’, ‘평전’으로 이어지는 도 교수의 연구 성과는 백범 바로 알기의 커다란 지표가 될 것이다.
이 책의 구성
◎ 해제를 통한 역사적 맥락 잇기
그간 『백범어록』이 몇 종 출간되기는 했지만, 『백범일지』에 비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았다. 백범의 만년 어록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6·25가 발발하기 직전인 1949년까지의 해방 정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방 정국의 역사는 항일독립운동기에 비해 학문적으로도 아직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하였고, 독자들에게도 낯선 시기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가장 유의한 부분은 백범의 만년 어록을 당대의 역사적 맥락과 결합시키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수록된 자료마다 간단한 해제를 달아서, 역사적 배경 지식, 그리고 이 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가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 현장감을 더하는 다양한 자료의 수록
이 책은 1945년 8월 해방 이후 정치, 경제, 교육, 민생 등에 대한 백범의 성명이나 어록이 자료의 근간을 이루지만, 때에 따라서는 백범의 내면을 바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터뷰, 전문(電文), 휘호(揮毫) 등도 포함하였고, 다른 사람의 기사도 몇 편 수록하였다. 이러한 자료들 중에는 기존에 한 번도 소개되지 못한 귀중한 어록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어록의 내용과 직접 관련되는 사진을 일일이 찾아 총 100여 장을 수록하여, 어록에 현장감을 더하였다.
◎ 최후 백범의 면모를 보여주는 시기별 구분
백범의 어록을 그의 통일운동 과정과 보조를 맞추어 시기별로 구분했다. ‘환국과 환영’ ‘반탁독립의 길’ ‘자주독립과 좌우합작’ ‘좌절과 모색’ ‘통일 민족주의의 기수’ ‘평양 남북연석회의’ ‘서울로 돌아와서’ ‘UN 외교와 여순사건’ ‘서울에서 2차 남북회담을’ ‘최후의 내면 풍경’ 등 총 10개의 장으로 구분했는데, 『백범일지』에 포괄할 수 없는 최후 백범의 면모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기별 배열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 민족주의자로 전환하게 되는 1948년 이후의 자료를 대폭 보강하였고, 서거하고 난 이후 발표된 유고들도 수록하였다. 백범에 대한 추종이나 비판을 떠나서 그의 최후 면모를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현대어 교열 및 중요 자료 원문 첨부
어록의 원 자료는 한문과 고어로 해독이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어서 현대문으로 일일이 교열하였다. 그리고 사료적 가치가 있는 자료의 경우에는 그 원문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 별도로 첨부하였다. 원문 자료 중에는 김일성과 김두봉이 김구와 김규식에게 보낸 답신이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 무초(John Joseph Mucho) 주한 미국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백범의 UN한국위원회에서의 진술 전문도 영어 원문으로 첨부하였다.
엮고보탠이 도진순都珍淳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초빙교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백범김구선생 시해 진상규명 위원회’ 전문자문위원, ‘백범김구선생전집 편찬위원회’ 의원,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이사,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 관계: 이승만·김구 시대의 정치사』(1997)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주해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정본 『백범일지』(돌베개, 1997)가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된 데 이어,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어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백범에 관한 논문으로는 「백범일지의 원본·필사본·출간본 비교 연구」, 「휘호로 본 백범 김구, 그 삶의 궤적과 진수」, 「백범 김구의 평화통일운동, 그 연원과 생명력」 「1948∼49년 김구 평화통일론의 내면과 외연」 등 다수가 있다.
백범 만년의 사상과 실천이 담긴 책 , 『백범어록』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이며, 광복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조국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바친 민족의 지도자이다. 백범의 평생 사적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와 궤적을 같이하며, 그의 저서 『백범일지』는 백범의 평생의 활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제 『백범일지』는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고액권 인물로 백범이 선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백범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이는 그의 최후의 면모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백범어록』은 일지(逸志)에 담겨 있지 않은 백범의 만년(晩年) 행적이 담겨 있다.
이 책은 1945년 9월 3일 백범이 임시정부 주석 명의로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을 발표하던 시점부터 1949년 암살당하는 시점까지 백범의 모든 행적을 각종 신문과 잡지, 방송을 통해 발굴하여 수록하였다. 『백범일지』가 해방 전 독립운동의 전 과정을 담고 있는 자료라면, 이 책은 혼란한 해방정국의 와중에 조국이 분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 외세의 간섭 없는 진정한 자주독립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분투했던 백범의 헌신적인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백범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지’와 함께 최후의 백범을 기록한 ‘어록’ 또한 중요한 자료인 것이다.
『백범일지』가 비교적 널리 읽힌 데 비해 백범의 어록(語錄)은 그간 몇 권의 단행본으로 정리되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경시되었다. 『백범일지』는 백범이 생존할 당시 스스로 정리해서 출간하여 일관된 체제로 정비되어 있는 반면, 『백범어록』은 백범의 급작스런 서거 이후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편집되어 비체계적이고 산만하여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록이 일지보다 중시되지 않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정신세계가 지니는 시대적 한계와 관련 있을 것이다. 개항기에서 항일독립운동기를 주 대상으로 하는 『백범일지』의 내용은 기존의 우리 사회가 포괄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데 비해, 분단과 통일 문제를 직접 다루고 있는 『백범어록』의 상당부분은 냉전적 분단의 질곡을 넘어서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백범은 조명을 받고 있지만 통일 민족주의자로서의 백범은 바로 이 책을 통해서만 바로 조명될 수 있다. 백범의 만년 어록은 파란만장한 백범 생애의 총결산이자 그가 암살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보여 주며, 그리하여 백범을 바로 추모하는 출발점을 드러낼 수 있다.
올해는 『백범일지』 간행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백범일지』 집필 80년이 되는 해이다.
1947년 “金九 自敍傳 白凡逸志”라는 표제로 국사원에서 간행되었던 『백범일지』가 올해로 발간 60주년이 되었다. 그간 『백범일지』는 60여 종 이상 출간, 1,000만 부 이상 판매의 기록을 세웠는데, 우리 민족의 최장기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백범일지』의 출간사를 쓴 날이 1947년 11월 15일이며, 올해 11월 15일은 백범이 출간사를 쓴 지 정확하게 60년이 되는 날이다.
평화통일의 첫걸음, 백범 김구의 마지막 말과 글
2000년 6월 15일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역사적인 날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손을 마주 잡고 6·15남북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7년 후인 올해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행기가 아닌 차량을 이용해 평양으로 갔으며, 38선을 걸어서 지나갔다. 이러한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평화통일의 첫걸음은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 백범은 북한의 김두봉과 김일성에게 협상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조국은 좌니 우니 하는 사상의 경계를 만들고 서로 물어뜯는 형국이었으며 언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시기였다. 권력 쟁탈을 일삼던 이들은 백범을 두고 파시스트니 협상파니 하며 비판했지만, 백범은 사상, 정치권력 이 모든 것을 접어두고 한민족이니 무조건 만나야 한다는 장문의 편지를 김두봉에게 보냈다.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져야 민족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던 백범! 비록 백범의 마지막 소원은 그의 급작스런 죽음과 함께 수포로 돌아갔지만,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했던 그의 기백은 6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는 2008년은 백범이 참여한 남북연석회의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통일이 운위되는 오늘날,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백범어록』은 그 필요성만큼이나 바른 읽기가 더욱 요청된다 할 것이다.
<느낌표!> 『백범일지』의 주해자 도진순의 심혈을 기울인 역저
<느낌표!>의 도서로 선정되어 전국민의 필독서가 된 돌베개의 『백범일지』는 원본은 물론 등사본·필사본·추가본과 수많은 출간본을 검토하고, 옛 문헌과 자료들을 수집·분석하는 등 도진순 교수의 4년 여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 정본(定本)이다.
이 책 『백범어록』은 사학자이며 백범 전문 연구자인 도진순 교수가 『백범일지』 주해본 다음으로 심혈을 기울인 연구서이다. 백범 김구가 고액권의 초상 인물로 선정된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기만 하다. 백범의 만년 어록은 백범의 최후의 면모를 집중 조명해 줌으로써, 백범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도진순 교수는 ‘일지’와 ‘어록’의 주해에 이어 ‘평전’(評傳)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 ‘일지’, ‘어록’, ‘평전’으로 이어지는 도 교수의 연구 성과는 백범 바로 알기의 커다란 지표가 될 것이다.
이 책의 구성
◎ 해제를 통한 역사적 맥락 잇기
그간 『백범어록』이 몇 종 출간되기는 했지만, 『백범일지』에 비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았다. 백범의 만년 어록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6·25가 발발하기 직전인 1949년까지의 해방 정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방 정국의 역사는 항일독립운동기에 비해 학문적으로도 아직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하였고, 독자들에게도 낯선 시기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가장 유의한 부분은 백범의 만년 어록을 당대의 역사적 맥락과 결합시키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수록된 자료마다 간단한 해제를 달아서, 역사적 배경 지식, 그리고 이 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알아가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 현장감을 더하는 다양한 자료의 수록
이 책은 1945년 8월 해방 이후 정치, 경제, 교육, 민생 등에 대한 백범의 성명이나 어록이 자료의 근간을 이루지만, 때에 따라서는 백범의 내면을 바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터뷰, 전문(電文), 휘호(揮毫) 등도 포함하였고, 다른 사람의 기사도 몇 편 수록하였다. 이러한 자료들 중에는 기존에 한 번도 소개되지 못한 귀중한 어록들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어록의 내용과 직접 관련되는 사진을 일일이 찾아 총 100여 장을 수록하여, 어록에 현장감을 더하였다.
◎ 최후 백범의 면모를 보여주는 시기별 구분
백범의 어록을 그의 통일운동 과정과 보조를 맞추어 시기별로 구분했다. ‘환국과 환영’ ‘반탁독립의 길’ ‘자주독립과 좌우합작’ ‘좌절과 모색’ ‘통일 민족주의의 기수’ ‘평양 남북연석회의’ ‘서울로 돌아와서’ ‘UN 외교와 여순사건’ ‘서울에서 2차 남북회담을’ ‘최후의 내면 풍경’ 등 총 10개의 장으로 구분했는데, 『백범일지』에 포괄할 수 없는 최후 백범의 면모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기별 배열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 민족주의자로 전환하게 되는 1948년 이후의 자료를 대폭 보강하였고, 서거하고 난 이후 발표된 유고들도 수록하였다. 백범에 대한 추종이나 비판을 떠나서 그의 최후 면모를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현대어 교열 및 중요 자료 원문 첨부
어록의 원 자료는 한문과 고어로 해독이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어서 현대문으로 일일이 교열하였다. 그리고 사료적 가치가 있는 자료의 경우에는 그 원문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 별도로 첨부하였다. 원문 자료 중에는 김일성과 김두봉이 김구와 김규식에게 보낸 답신이 포함되어 있으며, 당시 무초(John Joseph Mucho) 주한 미국 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백범의 UN한국위원회에서의 진술 전문도 영어 원문으로 첨부하였다.
엮고보탠이 도진순都珍淳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초빙교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백범김구선생 시해 진상규명 위원회’ 전문자문위원, ‘백범김구선생전집 편찬위원회’ 의원,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이사,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 『한국 민족주의와 남북 관계: 이승만·김구 시대의 정치사』(1997)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주해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정본 『백범일지』(돌베개, 1997)가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된 데 이어,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에 선정되어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백범에 관한 논문으로는 「백범일지의 원본·필사본·출간본 비교 연구」, 「휘호로 본 백범 김구, 그 삶의 궤적과 진수」, 「백범 김구의 평화통일운동, 그 연원과 생명력」 「1948∼49년 김구 평화통일론의 내면과 외연」 등 다수가 있다.
목차
환국과 환영(1945. 11.∼12.)
반탁독립의 길(1946. 1∼8)
자주독립과 좌우합작(1946. 9∼12)
좌절과 모색(1947. 1∼12)
통일 민족주의의 기수(1948. 1∼3)
평양 남북연석회의(1948. 4)
서울로 돌아와서(1948. 5~9)
UN 외교와 여순사건(1948. 9∼12)
서울에서 2차 남북회담을(1949. 1∼3)
최후의 내면 풍경(1949.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