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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가속화 및 역내 평화 ‧ 번영의 신질서 형성을 위해 평화경제에 대한 창의적 활용이 필요하다. 본 연구는 평화경제의 국제협력 사례 분석을 통해 한반도 평화경제에 대한 함의와 아울러 추진 방향에 대한 시사점 도출을 목적으로 한다.
평화경제의 가장 큰 추동력은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적 대결구도가 아니라, 평화적 협력구도에 동참하게끔 유도하는 정책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고, 그 출발점은 북한 정권이 체제 위기를 느끼지 않는 가운데, 평화적 협력구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과 유인체계이다. 평화경제에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유인체계는 남한 경제의 지속적 성장이며, 남한의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노력이 결국
평화경제 실현의 강력한 추동력이다.
중국 ‧ 대만, 즉 양안관계에서 특정시기 동안 나타난 경제협력 활성화 사례가 한반도의 남북한 관계에 주는 함의는 적지 않다. 이는 중국과 대만이 잦은 정치 ‧ 군사적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협력은 꾸준히 진행해 왔다는 점, 경제협력 추진 과정에서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치‧이념적 효과도 동시에 추구했다는 점,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의 지방정부 간 경제협력 활성화 등을 포함한다. 양안 경제협력의 남북관계에 대한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양안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남북한 모두가 교류협력의 재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정치‧군사적 위기 상황에서도 민간 교류는 지속될 필요가 있다. 셋째, ‘종합국력’의 우월적 지위를 가진 일방의 포용적 자세가 필요하다. 넷째, 상호 호혜적인 교류협력 구조의 창출이 필요하다. 다섯째,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교류협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상호 간 인식의 차이를 해소하고 신뢰의 구축이 필요하다. 일곱째, 정치 ‧ 군사적 신뢰 구축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양안 경제협력을 통한 상호의존성 증대가 정치적 통합 혹은 적극적 의미에서의 평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양안 간 경제협력이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아 졌다고 해서 적대적 감정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경제적 영역에서는 소득 재분배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책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사회세력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안 간 평화는 여전히 요원하다.
중국과 대만의 지방정부 경제협력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평화경제 구상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계 기업만 북한에 진출해서는 안 되며 외국계 기업도 함께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경제 구상은 북한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투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체 능력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쌍방향의 투자가 이뤄지는 사례를 만들어
줘야 한다. 대만 진먼섬(金門島) 사례의 교훈은 각자의 정치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에 기반하여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아래로부터(bottom-up)의 방식을 통해 인문 ‧ 생태 ‧ 경제 평화를 구현하는 접경협력지대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분단 극복 과정은 국가 전략에 바탕을 두되, 접경지역의 선도적인 시범사업을 통해 교류협력을 일구고 경험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남북 키프로스는 적대국가 간 초기단계 신뢰회복 과정에 놓여있다. 1963년과 1974년 형성되었던 그리스계와 터키계 키프로스인들 간 적대감을 해소하고, 화해 ‧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정부당국자들의 협상 및 회담과 유엔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지원된 통일협상 등이 그것이다. 남북 키프로스 양측은 교류협력에 무게를 두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분계선을 개방하고 인원과 물류를 교환하고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적대해소의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평화경제를 설계하고 기반을 조성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 키프로스가 추진하고 있는 ‘그린라인 중심의 교류경제’는 평화경제의 작은 틀이기도 하다. 남북이 ‘그린라인 중심의 교류경제’를 활성화 하고 확대 ‧ 발전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남북 키프로스의 교류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면서 향후 한반도 통일에 있어서 교훈이 될 수 있다. 첫째는 단일통화 문제의 해결이다. 두 번째는 세금 문제다. 세 번째는 호혜 균등의 이익 공유 문제다. 네 번째는 불법 및 탈법 문제 해결이다.
키프로스의 통일협상은 양측의 협상 의지와 국제 사회의 주도적인 노력이 합쳐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졌으며, 몇 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일협상에 유엔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둘째, 위로부터(top-down) 및 아래로부터 회담을 정례화했다. 셋째는 통일 관련 회담의제를 도출하고 세부 과제를 만들어 추진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포용적 평화체제의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추축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국제 경제질서에 편입되어 경제적 번영은 물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실현한 성공적 경험은 미국 정책결정자로 하여금 이러한 포용적 평화체제에 대한 확신을 더욱 높이게 하였다. 전략적 이해관계와 경제관계를 전략적으로 연계짓는(tactical linkage) 접근은 미국의 통상관계에 그대로 투영되어 미국은 동맹국에는 개방된 자유무역체제를, 사회주의진영 국가들에게는 폐쇄적 무역체제를 적용하는 이원적 시스템을 적용하였다. 이는 미국의 적대국가 관계 개선에도 시사점이 있다.
미 ‧ 중 관계와 중국의 대내적 변화 및 미국의 대외정책 변동은 포용적 평화경제 모델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경제적 상호의존이 국가 간 평화정착에 ‘기여’한다는 것은 여러 이론적 ‧ 실증적 연구에 의해 지지되나 이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가져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을 정권의 이익에 맞게 통제 ‧ 조정할 수 있는 권위주의 국가의 역량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미 ‧ 중 간 경제적 상호의존은 양국 간 외교적 갈등이 군사적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는 데에 일조해 왔지만, 양국 간 국력 차가 점차 좁혀짐에 따라 미국의 많은 정책결정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은 포용적 평화경제 모델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미‧중 관계를 볼 때 경제협력을 체제전환 과정과 연계시키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미약하며, 경제협력이 필연적으로 ‘평화정착’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 역시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려운 목표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베트남 간 관계정상화 프로세스와 이후의 관계공고화 프로세스는 포괄적 평화경제 모델의 효용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우선 미국 ‧ 베트남 간 관계정상화 프로세스에서 개혁 ‧ 개방에 대한 베트남 지도부의 강한 의지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캄보디아 문제와 미군 포로 및 유해 송환 등 미국이 관계정상화의 핵심적 조건이라고 인식했던 이슈에 대한 베트남의 적극적 태도는 미국이 수용적 노선을 걷게 하는 데 핵심적 기제로 작용하였다. 둘째, 미국 ‧ 베트남 간 양자무역 협정의 체결과 베트남의 WTO 가입 등 개혁 ‧ 개방 정책의 지속은 베트남 사회의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사유 재산제 확대와 이의 보호를 위한 법제개혁은 베트남 국민들의 권리의식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다. 셋째, 트럼프 정권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포용적 평화경제 모델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경제적 상호의존이 베트남의 체제 전환을 가져오리라는 기대 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은 대중국 견제라는 양국의 안보-전략적 이해관계의 합치에도 불구하고 양자 통상관계에서 높은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북‧미 간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베트남이 경험했던 것처럼 미국 시장에서 정상 교역국 지위를 획득하는 데에는 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핵 문제로 인하여 양자 관계의 급속한 악화 요인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북 ‧ 미 관계의 경우 유사한 정책 전환이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 이는 포용적 평화경제 모델의 현실적 한계로도 볼 수 있다.
미국과 쿠바는 관계정상화 이후 약 3년 만에 다시 멀어졌다. 쿠바와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통령 의지에 따른 행정명령뿐만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 조절과 사회적 합의 도출을 통한 의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과 쿠바의 사례가 평화경제 모델에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평화경제의 창출 및 유지를 위해서는 소수의 정치지도자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관계 개선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합의에 근거한 우호적 분위기 조성 및 민간 부문의 성장과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똑같은 논리가 북 ‧ 미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가령 트럼프 대통령 또는 미래의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위원장과 양국 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도출했다고 해도 양국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교체되거나 마음이 바뀔 경우, 기존의 변화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 전반의 합의 도출과 민간 부문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평화경제의 공고화를 위한 제도화와 지원이 필요하며, 이는 양국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소수 지도자의 선도성에 의존하는 관계는 상황 변화에 따라 쉽사리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평화경제 사례의 한반도에 대한 시사점은 다의적이며 평화경제의 효용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경우 양독 간 장기간 교류협력을 통한 내적인 끈의 형성, 즉 신뢰 형성과 정서적 거리감의 완화에 성공함으로써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다. 반면 양안관계와 미국의 중국, 베트남, 쿠바와의 관계 개선 과정의 평화경제의 함의는 양면적이다. 남북관계의 평화 경험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양적 접촉의 증대가 아닌 신뢰와 지속가능성을 수반하는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접촉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경제의 추진을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평화경제는 안보적 긴장의 해소와 아울러 생활세계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적극적 평화 개념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평화와 경제의 단선적 선후 관계를 넘어 평화와 경제의 역동적인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노력은 한반도 평화경제 형성의 핵심이 될 것이다.
평화경제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긴장 해소와 경제협력의 촉진과 병행되어야 한다. 한반도 분단체제의 해소에 따라 남북 갈등관계와 전쟁 위협이 근본적으로 소멸되며, 남북은 비로소 단일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한반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해양권 간 교통 ‧ 물류 체계가 혁신적으로 촉진되어 역내 경제통합이
가속화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은 북 ‧미 및 북 ‧일 수교를 견인해 동아시아 신안보질서의 형성을 견인해 역내 평화경제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각국의 개별 구성원들이 평화 상태에서 경제 발전과 인간안보의 구현을 통해 삶의 질 향상을 공유할 때 평화경제가 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목차
요약
Ⅰ. 서론|조한범
Ⅱ. 평화경제의 개념과 여건|김영한
1. 평화경제 개념과 추진구도의 정책적 준거
2. 코로나19 이후 국제 여건과 평화경제
Ⅲ. 중국 ‧ 대만 평화경제 사례|신종호
1. 분단체제의 특징
2. 교류협력 양상
3. 양안 교류협력의 특징
4. 시사점
Ⅳ. 키프로스 평화경제 사례|조상현
1. 남북 키프로스 분단체제
2. 키프로스 남북 분단과 통일회담
3. 남북 키프로스 교류 및 협력
4. 남북 키프로스 교류협력의 성과와 과제
5. 시사점
Ⅴ. 미국의 적대국 관계 개선과 평화경제|김유철 ‧ 정기웅
1. 미 ‧ 중 관계
2. 미 ‧ 베트남 관계
3. 미 ‧ 쿠바 관계
Ⅵ. 한반도 ‧ 동아시아 평화경제의 방향|조한범
Ⅶ. 결론|조한범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