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봄의 제전: 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
- 대등서명
- Rites of spring
- 발행사항
- 파주 : 글항아리, 2022
- 형태사항
- 591 p. ; 21 cm
- ISBN
- 9788967359447
- 청구기호
- 909.51 엑58ㅂ
- 일반주기
- 원저자명: Modris Eksteins
- 서지주기
- 참고문헌과 색인 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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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용 불가 (1) | ||||
1자료실 | 00019577 | 대출중 | 2023.04.15 |
지금 이용 불가 (1)
- 등록번호
- 00019577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중
- 2023.04.15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역사가 지워버린 행동 패턴들을 파헤치는
통찰력과 재치, 독창성이 빛나는 책!
모더니즘에 대한 도발적이고 불온한 재평가
★월러스퍼거슨상,
★트릴리움 북어워드 수상
★뉴욕타임스, 글로브앤드메일 올해의 책 결선작
현대는 전력 질주하는 삶으로 특징지어진다. 속도를 내는 이유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전통적인 신념 체계를 무너뜨린 뒤 일시적인 것에 열중한다. 새로움과 발전 속에서 재조명해봐야 할 주제는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은 ‘현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봄의 제전』은 현대 예술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시작해 전장 깊숙이 들어간다. 제1차 세계대전은 피와 살의 싸움만이 아니었다. 폭발음과 함께 병사들의 살은 너덜너덜해지고 뼈도 봉분처럼 쌓였지만, 이는 병사들이 주로 중간계급 출신이란 점에서 차이가 났고, 그들의 머릿속은 이상적이고 고상한 것, 추상적 이념이라는 ‘현대성’이 지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엑스타인스는 예술과 전쟁을 한 책에 담아내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한다. 제목은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발레에서 따왔으며, 이는 책의 주요 주제인 ‘움직임movement’을 암시하기도 한다. 전쟁 발발 1년여 전인 1913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봄의 제전」은 반란의 에너지와 희생된 제물의 죽음을 통해 삶을 찬미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술로 서막이 열리지만 독자들은 곧 900만 명의 희생을 목격하게 된다. 기존의 전쟁사는 늘 전략과 무기, 장군과 탱크, 조직과 정치가를 중심에 두고 서술해왔다. 전쟁과 문화 사이의 관계를 살피려는 관점은 거의 없었으며 일반 병사들 역시 가려져 있었다. 반면 이 책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이름 없는 병사들로, 바로 스트라빈스키가 내세운 희생 ‘제물’이다.
이 책은 20세기를 삶과 예술이 섞인 시대, 존재가 미학화된 시대로 규정한다. 저자는 역사 사료뿐 아니라 무용, 음악, 문학 등 현대 예술의 여러 장르를 분석해 하나의 정신이 관통하는 서사를 직조해낸다. 책 전체를 막과 장으로 진행시키면서 죽음과 파괴, 묘지를 지나 생성에 관한 논의를 한꺼번에 펼쳐놓는다.
동료의 터진 뇌수는 “시적 산물” 같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됐고, 이는 현대를 폭발적으로 알리는 기제가 되었다. 현대의 관객은 역사가들에게 예술작품의 주인공보다 문화적 정체성을 더 잘 보여주는 증거의 원천이었다. 이에 저자는 현대 문화의 역사란 ‘반응의 역사’ ‘독자에 관한 이야기’ ‘관객의 이야기’라고 보며 1장의 상당 부분을 관객 묘사에 할애한다.
예술은 교훈, 도덕, 합리성을 초월해 도발과 이벤트가 되었다. 이것은 삶을 북돋는 종교적 힘을 지니며, 개인을 통해 달성되지만 개인보다 훨씬 크다. 러시아 발레단 단장 댜길레프는 프루스트나 지드처럼 예술가는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고 봤다. 아방가르드에서 흔히 말하듯 도덕은 추醜의 복수이며, 미를 향한 해방은 사회적 집단의 노력이 아니라 개인적인 구원을 통해서 오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병사가 죽어나가는 가운데 당대의 예술가나 비평가들은 이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사람의 뇌수가 동료의 모자에 튀는 광경을 보고 마치 “시적인 산물” 같다고 말했다. 윈 그리피스는 아침에 울리는 포격 소리를 듣고는 음악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선율과 관습적인 화성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음악 말이다. 자크 블랑슈는 파리 공습과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머릿속에 그렸다. 이처럼 예술계 사람들은 전쟁의 광경 및 폭음을 예술과 연결시켰다. 그들이 보기에 이 전쟁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술로, 이전의 창작 규칙을 폐기하며, 삶과 함께 움직이는 경험이 되는 대단한 무엇이었다.
최초의 부르주아들의 전쟁이자 거대한 노력
1914년 프랑스와 영국, 독일에서 전장에 나간 이들은 봉사와 의무 관념으로 충만한 중간계급이었다. 이전 전쟁들이 왕조 간의 전쟁, 봉건적·귀족적 이해관계의 전쟁, 군주 간 대립에 기인한 전쟁이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은 최초의 대규모 부르주아 전쟁이었다. 따라서 이들 계급의 가치가 전쟁에서 병사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군사 조직 전체, 나아가 전략·전술까지 결정하는 지배적 가치가 됐다.
영국은 중간계급의 가치들이 사회 구석까지 침투한 사회였다. 진보라는 세속 종교, 효용과 성공, 예의범절에 대한 집착, 근면·인내·도덕적 헌신, 노력과 봉사에 대한 존경은 영국이 이룬 핵심이자 또한 영국의 전쟁 수행 노력의 중심이었다. 프랑스의 부르주아 르네 조아네도 “부르주아지는 본질적으로 노력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도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노력이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독일은 재빨리 영국을 주적으로 삼았다. 그들이 보기에 영국은 속임수를 쓰는 부르주아 사업가의 나라였다. 개인 이득을 좇는 사업가처럼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1914년 7월 위기 때 처음부터 중립이나 프랑스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으므로 전쟁 책임이 있다고 비난받았다. 즉 행동해야 할 때 하지 않아서 잘못했다는 뜻인데, 저자는 여기서 현대 미학에 버금가는 논리를 발견한다. 즉 살인자가 아니라 희생자에게 죄를 묻는 것으로, 당시 행동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만, 계산성, 불성실을 암시했다. 반대로 행동은 해방적이며, 삶이고, 따라서 행동하는 자는 잘못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었다. 이런 논리는 주로 독일인으로부터 나왔는데 그들에게 전쟁은 미美와 동의어였고, 점점 커지는 전쟁 참화는 미학적 의미의 심화로 간주되었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은 전쟁에 대한 전망을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들은 눈먼 장님처럼 오로지 코앞을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에 처했고, 잡무(참호 보수, 변소 파기, 철조망 작업, 보초, 장비 청소, 쥐와 이 잡기)에 치여 전쟁의 의미와 목적은 생각해볼 틈도 없었다.
전쟁의 목적이 점점 추상적으로 흐르고 전통적 이미지에 들어맞지 않게 될수록 승리의 의미도 추상적으로 변했다. 병사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상상에 내맡겼고, 전쟁은 갈수록 개인적 해석 능력의 문제가 됐다.
전쟁에서 생기와 덕성을 발견한 독일
저자는 문화를 사회 현상으로 보고, 모더니즘을 20세기의 주요 충동으로 여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독일이 우리 세기의 뛰어난 모더니즘 국가였다고 주장한다. 보통 아방가르드는 긍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돌격대는 무서운 의미를 띤다. 저자는 이 두 표현 사이에 단순한 군사적 어원을 넘어서는 친연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오후에 수영.” 이것은 전쟁이 벌어진 1914년 8월 2일 카프카의 일기의 간결한 도입부였다.
그해 여름날은 길고 햇빛이 찬란했다. 밤은 포근하고 달은 휘영청 밝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와 자신의 감정과 편견을 공개 장소에서 드러냈다. 그리고 대중 정서의 이 같은 대규모 표명은 유럽의 명운을 좌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좋은 날씨에 시민들은 호전적 애국주의를 품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으며, 독일은 폭풍의 근원이 되었다. 사실 독일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잡은 것은 군중으로, 저자는 이들이 신중한 태도를 완전히 내던졌다고 말한다.
1914년 8월, 대부분의 독일인은 전쟁이 하나의 관념일 뿐 남의 나라 영토를 탐내며 꾀한 음모가 아니라고 이해했다. 다시 말해 독일의 확장은 승리의 소산, 전략적 필요성, 독일의 권리 주장의 부산물일 뿐 영토 따위가 핵심은 아니었다.
저자는 독일인의 문학, 철학, 예술과 국민의 사고방식을 들며 이를 문화사와 연결한다. 독일에서 “전쟁이란 바로 시, 예술, 철학, 문화에 대한 것이다. 문화는 바로 전쟁의 문제다”라고 주장됐다. 헤르만 헤세도 “나는 전쟁의 가치들을 대체로 꽤 높이 평가한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그것은 생기와 에너지, 덕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영국, 우월함과 도덕적 목적의식으로 치른 전쟁
한편 영국인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훨씬 더 넓은 목표를 띤 전쟁이었다. 이는 영국의 질서 체제, 다시 말해 독일과 독일의 내향적 문화가 대변하는 모든 것에 의해 공격받는 듯한 국가 및 국제 체제를 보존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저자는 영국군이 문명의 기본인 ‘타협’이라고는 모른 채 우월감과 도덕적 목적의식에서 적과 친목활동까지 했음을 중요하게 다룬다(1914년 크리스마스는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 형제처럼 어울리고 잠시 휴전한 너무나 이례적인 기념일이었다. 저자는 병사들의 편지를 통해 이 기이한 크리스마스의 상황을 주목한다). 독일인에게 예의범절이 뭔지를, 신뢰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가르쳐주겠다는 오만함이었다. 실제로 독일군과 대면해서도 에드워드 헐스 같은 영국인은 독일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파멸에 대한 불길한 예감과 얼마간의 예술적·지적 활기에도 불구하고, 순응과 현실 안주, 나아가 자부심은 영국에서 가장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고, 체면과 예의, 노력이라는 여러 가치가 전쟁의 상황과 얽혀 드러났다.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방어가 곧 승리였다. 공격은 방어보다 훨씬 더 취약한 상태로 병사들을 내몰았기에 전통적인 관념은 뒤집혔다. 공격을 감행하다 무인지대에서 무더기로 희생자가 된 병사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됐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공격할 때면 패했지만, 독일군의 공격에 맞서 수비할 때면 적을 종이인형처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러한 전쟁에서 영웅은 ‘제물’이 되었다.
방어의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그리고 소모전의 이념을 실천함으로써 독일인이 가장 먼저 전쟁의 규칙들을 뒤집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일은 전쟁 전부터 서구의 사회 문화적·정치적 규범들을 쉽게 의문시하며, 오래된 확실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도래를 기꺼이 옹호하는 나라였다. 따라서 독일인은 전쟁 규칙들을 확대해석하는 데 거리낌이 덜했고, 국제적 관행을 끊어내는 데도 떳떳했다.
독일 병사들의 의무 관념은 관념론으로 가득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의무가 역사의식에 뿌리를 둔다면, 독일의 의무는 신화로서의 역사,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적 정당화로서의 역사라는 시각을 대들보로 삼았다. 괴테, 바그너 및 독일 문화의 만신전萬神殿에 모셔진 모두가 전쟁의 제왕이 됐다. 전쟁은 자체의 도덕적 가치를 지녔다.
참전군인 일부가 아예 공격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도 이 전쟁의 특징이다. 장기간 전방 복무에도 불구하고 적을 구경조차 못하거나, 어떤 병사들은 4년 반 동안 경미한 부상만 입고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전선의 일부 지역은 아주 잠잠했다. 그런 까닭에 비판가들은 베르됭과 솜, 이프르에서조차 대규모 포격과 공격은 드물었으니 참상만 강조하는 것은 왜곡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병사들이 느낀 건 지루함이었다면서.
저자는 이처럼 제1차 세계대전을 ‘공포 대 지루함’의 이분법적 논쟁으로 보는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1916~1917년 전쟁 국면의 더 넓은 맥락적 의미, 그 국면과 이전 전쟁의 형태들과의 관계, 가치 및 기대 체계와의 관계다. 그리고 여기서 (느낌보다는) ‘전방front’ 경험이 실제로 ‘변경지대적frontier’ 경험, 다시 말해 그 함의에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경험이라는 게 핵심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통적인 패턴들을 바꿔놓았다. 우선 함대가 잠수함으로 뒷받침되던 전쟁 양상에서 이들은 잠수함을 부각시킴으로써 전략적 사고의 패턴을 변화시켰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의 의존과 더불어 군인과 민간인, 중립국과 교전국 구분을 거부함으로써 독일은 전쟁을 총력전의 영역으로 끌고 갔다. 도덕률의 국제적 기준도 고무줄처럼 늘여놓았다. 그러므로 1915년은 ‘이행의 해’였다. 가스, 잠수함 전쟁 등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시도됐기 때문이다. 1916년은 새로운 전쟁의 도래와 수용을 목격하게 되는 가장 놀라운 해였다. 구조와 전복, 독일은 이것을 원했고, 이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핵심이었다.
***
전쟁은 시작부터 상상력을 자극했다. 역사상 어떤 4년도 공적 사건과 관련해 이토록 많은 증언을 낳지는 못했다. 화가, 작가, 성직자, 역사가, 철학자 등이 눈앞에 펼쳐지는 드라마에 참여했다. 전쟁 전만 해도 희망의 문화이자 종합의 비전이었던 모더니즘은 악몽과 부정의 문화로 탈바꿈했다.
전쟁은 그 거대한 기념비적 특성으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어마어마한 형용 불가능성으로 독특한 매혹을 자아냈다. 하지만 900만 명이 죽고 2100만 명이 부상당했다. 전쟁이 그런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생각에 직면하자 사람들은 사고 자체를 회피하더니 금세 정치적 책임이 있는 자들과 군인 정치꾼들에게 거부감을 느꼈다. 이로써 어디서나 세를 얻게 된 것은 좌파였다. 좌파의 성장은 구질서의 파산으로 간주되는 현실과 그에 따른 급진적 변화에 대한 욕망을 반영했다. 좌파의 이런 급부상은 그러나 결국 더 오른쪽 극단으로 움직인 우파의 ‘신보수주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삶의 의미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할 수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의미가 삶 자체에, 순간의 생생함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1920년대에는 향락주의와 나르시시즘이 나타났다. 러시아 발레는 한물갔고, 전쟁 이전에 나타났던 모더니즘은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으며, 월가는 ‘언제나 행동하며 뒤돌아보는 법이 없는’ 대담무쌍한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
이 전쟁의 진실은 무엇일까? 목소리들은 여기저기로 갈라졌지만, 그 안에서 일치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비극적이고 무익한 유럽의 내전이었으며,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전쟁이라는 목소리였다. 전쟁은 이후 파시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며,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 전쟁 문학 붐을 일으킨다. 여기서 전쟁은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예술의 문제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모더니즘 전반에 있어 심리적 전환점이었다. 창조하려는 충동과 파괴하려는 충동은 자리를 맞바꿨다. 진짜 전쟁은 1918년에 끝났다. 그 뒤로는 기억으로 위장한 상상이 전쟁을 집어삼켰다. 많은 이에게 전쟁은 어처구니없던 짓이 됐는데, 그러나 그것은 전쟁 경험 자체 때문이 아니라 전후 경험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상주의는 니힐리즘으로 끝났고, 생명으로 시작했던 것은 죽음으로 끝났다. 그리고 1914~1918년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시각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히틀러다.
통찰력과 재치, 독창성이 빛나는 책!
모더니즘에 대한 도발적이고 불온한 재평가
★월러스퍼거슨상,
★트릴리움 북어워드 수상
★뉴욕타임스, 글로브앤드메일 올해의 책 결선작
현대는 전력 질주하는 삶으로 특징지어진다. 속도를 내는 이유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전통적인 신념 체계를 무너뜨린 뒤 일시적인 것에 열중한다. 새로움과 발전 속에서 재조명해봐야 할 주제는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 전쟁은 ‘현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봄의 제전』은 현대 예술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시작해 전장 깊숙이 들어간다. 제1차 세계대전은 피와 살의 싸움만이 아니었다. 폭발음과 함께 병사들의 살은 너덜너덜해지고 뼈도 봉분처럼 쌓였지만, 이는 병사들이 주로 중간계급 출신이란 점에서 차이가 났고, 그들의 머릿속은 이상적이고 고상한 것, 추상적 이념이라는 ‘현대성’이 지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엑스타인스는 예술과 전쟁을 한 책에 담아내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한다. 제목은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발레에서 따왔으며, 이는 책의 주요 주제인 ‘움직임movement’을 암시하기도 한다. 전쟁 발발 1년여 전인 1913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봄의 제전」은 반란의 에너지와 희생된 제물의 죽음을 통해 삶을 찬미한다는 내용이었다. 예술로 서막이 열리지만 독자들은 곧 900만 명의 희생을 목격하게 된다. 기존의 전쟁사는 늘 전략과 무기, 장군과 탱크, 조직과 정치가를 중심에 두고 서술해왔다. 전쟁과 문화 사이의 관계를 살피려는 관점은 거의 없었으며 일반 병사들 역시 가려져 있었다. 반면 이 책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이름 없는 병사들로, 바로 스트라빈스키가 내세운 희생 ‘제물’이다.
이 책은 20세기를 삶과 예술이 섞인 시대, 존재가 미학화된 시대로 규정한다. 저자는 역사 사료뿐 아니라 무용, 음악, 문학 등 현대 예술의 여러 장르를 분석해 하나의 정신이 관통하는 서사를 직조해낸다. 책 전체를 막과 장으로 진행시키면서 죽음과 파괴, 묘지를 지나 생성에 관한 논의를 한꺼번에 펼쳐놓는다.
동료의 터진 뇌수는 “시적 산물” 같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됐고, 이는 현대를 폭발적으로 알리는 기제가 되었다. 현대의 관객은 역사가들에게 예술작품의 주인공보다 문화적 정체성을 더 잘 보여주는 증거의 원천이었다. 이에 저자는 현대 문화의 역사란 ‘반응의 역사’ ‘독자에 관한 이야기’ ‘관객의 이야기’라고 보며 1장의 상당 부분을 관객 묘사에 할애한다.
예술은 교훈, 도덕, 합리성을 초월해 도발과 이벤트가 되었다. 이것은 삶을 북돋는 종교적 힘을 지니며, 개인을 통해 달성되지만 개인보다 훨씬 크다. 러시아 발레단 단장 댜길레프는 프루스트나 지드처럼 예술가는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고 봤다. 아방가르드에서 흔히 말하듯 도덕은 추醜의 복수이며, 미를 향한 해방은 사회적 집단의 노력이 아니라 개인적인 구원을 통해서 오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병사가 죽어나가는 가운데 당대의 예술가나 비평가들은 이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사람의 뇌수가 동료의 모자에 튀는 광경을 보고 마치 “시적인 산물” 같다고 말했다. 윈 그리피스는 아침에 울리는 포격 소리를 듣고는 음악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선율과 관습적인 화성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음악 말이다. 자크 블랑슈는 파리 공습과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머릿속에 그렸다. 이처럼 예술계 사람들은 전쟁의 광경 및 폭음을 예술과 연결시켰다. 그들이 보기에 이 전쟁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술로, 이전의 창작 규칙을 폐기하며, 삶과 함께 움직이는 경험이 되는 대단한 무엇이었다.
최초의 부르주아들의 전쟁이자 거대한 노력
1914년 프랑스와 영국, 독일에서 전장에 나간 이들은 봉사와 의무 관념으로 충만한 중간계급이었다. 이전 전쟁들이 왕조 간의 전쟁, 봉건적·귀족적 이해관계의 전쟁, 군주 간 대립에 기인한 전쟁이었다면, 제1차 세계대전은 최초의 대규모 부르주아 전쟁이었다. 따라서 이들 계급의 가치가 전쟁에서 병사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군사 조직 전체, 나아가 전략·전술까지 결정하는 지배적 가치가 됐다.
영국은 중간계급의 가치들이 사회 구석까지 침투한 사회였다. 진보라는 세속 종교, 효용과 성공, 예의범절에 대한 집착, 근면·인내·도덕적 헌신, 노력과 봉사에 대한 존경은 영국이 이룬 핵심이자 또한 영국의 전쟁 수행 노력의 중심이었다. 프랑스의 부르주아 르네 조아네도 “부르주아지는 본질적으로 노력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제1차 세계대전도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노력이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독일은 재빨리 영국을 주적으로 삼았다. 그들이 보기에 영국은 속임수를 쓰는 부르주아 사업가의 나라였다. 개인 이득을 좇는 사업가처럼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1914년 7월 위기 때 처음부터 중립이나 프랑스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으므로 전쟁 책임이 있다고 비난받았다. 즉 행동해야 할 때 하지 않아서 잘못했다는 뜻인데, 저자는 여기서 현대 미학에 버금가는 논리를 발견한다. 즉 살인자가 아니라 희생자에게 죄를 묻는 것으로, 당시 행동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만, 계산성, 불성실을 암시했다. 반대로 행동은 해방적이며, 삶이고, 따라서 행동하는 자는 잘못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었다. 이런 논리는 주로 독일인으로부터 나왔는데 그들에게 전쟁은 미美와 동의어였고, 점점 커지는 전쟁 참화는 미학적 의미의 심화로 간주되었다.
전장에 나간 병사들은 전쟁에 대한 전망을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들은 눈먼 장님처럼 오로지 코앞을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에 처했고, 잡무(참호 보수, 변소 파기, 철조망 작업, 보초, 장비 청소, 쥐와 이 잡기)에 치여 전쟁의 의미와 목적은 생각해볼 틈도 없었다.
전쟁의 목적이 점점 추상적으로 흐르고 전통적 이미지에 들어맞지 않게 될수록 승리의 의미도 추상적으로 변했다. 병사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상상에 내맡겼고, 전쟁은 갈수록 개인적 해석 능력의 문제가 됐다.
전쟁에서 생기와 덕성을 발견한 독일
저자는 문화를 사회 현상으로 보고, 모더니즘을 20세기의 주요 충동으로 여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독일이 우리 세기의 뛰어난 모더니즘 국가였다고 주장한다. 보통 아방가르드는 긍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돌격대는 무서운 의미를 띤다. 저자는 이 두 표현 사이에 단순한 군사적 어원을 넘어서는 친연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오후에 수영.” 이것은 전쟁이 벌어진 1914년 8월 2일 카프카의 일기의 간결한 도입부였다.
그해 여름날은 길고 햇빛이 찬란했다. 밤은 포근하고 달은 휘영청 밝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와 자신의 감정과 편견을 공개 장소에서 드러냈다. 그리고 대중 정서의 이 같은 대규모 표명은 유럽의 명운을 좌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좋은 날씨에 시민들은 호전적 애국주의를 품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으며, 독일은 폭풍의 근원이 되었다. 사실 독일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잡은 것은 군중으로, 저자는 이들이 신중한 태도를 완전히 내던졌다고 말한다.
1914년 8월, 대부분의 독일인은 전쟁이 하나의 관념일 뿐 남의 나라 영토를 탐내며 꾀한 음모가 아니라고 이해했다. 다시 말해 독일의 확장은 승리의 소산, 전략적 필요성, 독일의 권리 주장의 부산물일 뿐 영토 따위가 핵심은 아니었다.
저자는 독일인의 문학, 철학, 예술과 국민의 사고방식을 들며 이를 문화사와 연결한다. 독일에서 “전쟁이란 바로 시, 예술, 철학, 문화에 대한 것이다. 문화는 바로 전쟁의 문제다”라고 주장됐다. 헤르만 헤세도 “나는 전쟁의 가치들을 대체로 꽤 높이 평가한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그것은 생기와 에너지, 덕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영국, 우월함과 도덕적 목적의식으로 치른 전쟁
한편 영국인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훨씬 더 넓은 목표를 띤 전쟁이었다. 이는 영국의 질서 체제, 다시 말해 독일과 독일의 내향적 문화가 대변하는 모든 것에 의해 공격받는 듯한 국가 및 국제 체제를 보존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저자는 영국군이 문명의 기본인 ‘타협’이라고는 모른 채 우월감과 도덕적 목적의식에서 적과 친목활동까지 했음을 중요하게 다룬다(1914년 크리스마스는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로 형제처럼 어울리고 잠시 휴전한 너무나 이례적인 기념일이었다. 저자는 병사들의 편지를 통해 이 기이한 크리스마스의 상황을 주목한다). 독일인에게 예의범절이 뭔지를, 신뢰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가르쳐주겠다는 오만함이었다. 실제로 독일군과 대면해서도 에드워드 헐스 같은 영국인은 독일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파멸에 대한 불길한 예감과 얼마간의 예술적·지적 활기에도 불구하고, 순응과 현실 안주, 나아가 자부심은 영국에서 가장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고, 체면과 예의, 노력이라는 여러 가치가 전쟁의 상황과 얽혀 드러났다.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방어가 곧 승리였다. 공격은 방어보다 훨씬 더 취약한 상태로 병사들을 내몰았기에 전통적인 관념은 뒤집혔다. 공격을 감행하다 무인지대에서 무더기로 희생자가 된 병사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됐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공격할 때면 패했지만, 독일군의 공격에 맞서 수비할 때면 적을 종이인형처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이러한 전쟁에서 영웅은 ‘제물’이 되었다.
방어의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그리고 소모전의 이념을 실천함으로써 독일인이 가장 먼저 전쟁의 규칙들을 뒤집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일은 전쟁 전부터 서구의 사회 문화적·정치적 규범들을 쉽게 의문시하며, 오래된 확실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도래를 기꺼이 옹호하는 나라였다. 따라서 독일인은 전쟁 규칙들을 확대해석하는 데 거리낌이 덜했고, 국제적 관행을 끊어내는 데도 떳떳했다.
독일 병사들의 의무 관념은 관념론으로 가득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의무가 역사의식에 뿌리를 둔다면, 독일의 의무는 신화로서의 역사,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적 정당화로서의 역사라는 시각을 대들보로 삼았다. 괴테, 바그너 및 독일 문화의 만신전萬神殿에 모셔진 모두가 전쟁의 제왕이 됐다. 전쟁은 자체의 도덕적 가치를 지녔다.
참전군인 일부가 아예 공격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도 이 전쟁의 특징이다. 장기간 전방 복무에도 불구하고 적을 구경조차 못하거나, 어떤 병사들은 4년 반 동안 경미한 부상만 입고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전선의 일부 지역은 아주 잠잠했다. 그런 까닭에 비판가들은 베르됭과 솜, 이프르에서조차 대규모 포격과 공격은 드물었으니 참상만 강조하는 것은 왜곡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병사들이 느낀 건 지루함이었다면서.
저자는 이처럼 제1차 세계대전을 ‘공포 대 지루함’의 이분법적 논쟁으로 보는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1916~1917년 전쟁 국면의 더 넓은 맥락적 의미, 그 국면과 이전 전쟁의 형태들과의 관계, 가치 및 기대 체계와의 관계다. 그리고 여기서 (느낌보다는) ‘전방front’ 경험이 실제로 ‘변경지대적frontier’ 경험, 다시 말해 그 함의에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경험이라는 게 핵심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통적인 패턴들을 바꿔놓았다. 우선 함대가 잠수함으로 뒷받침되던 전쟁 양상에서 이들은 잠수함을 부각시킴으로써 전략적 사고의 패턴을 변화시켰다.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의 의존과 더불어 군인과 민간인, 중립국과 교전국 구분을 거부함으로써 독일은 전쟁을 총력전의 영역으로 끌고 갔다. 도덕률의 국제적 기준도 고무줄처럼 늘여놓았다. 그러므로 1915년은 ‘이행의 해’였다. 가스, 잠수함 전쟁 등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시도됐기 때문이다. 1916년은 새로운 전쟁의 도래와 수용을 목격하게 되는 가장 놀라운 해였다. 구조와 전복, 독일은 이것을 원했고, 이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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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시작부터 상상력을 자극했다. 역사상 어떤 4년도 공적 사건과 관련해 이토록 많은 증언을 낳지는 못했다. 화가, 작가, 성직자, 역사가, 철학자 등이 눈앞에 펼쳐지는 드라마에 참여했다. 전쟁 전만 해도 희망의 문화이자 종합의 비전이었던 모더니즘은 악몽과 부정의 문화로 탈바꿈했다.
전쟁은 그 거대한 기념비적 특성으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어마어마한 형용 불가능성으로 독특한 매혹을 자아냈다. 하지만 900만 명이 죽고 2100만 명이 부상당했다. 전쟁이 그런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생각에 직면하자 사람들은 사고 자체를 회피하더니 금세 정치적 책임이 있는 자들과 군인 정치꾼들에게 거부감을 느꼈다. 이로써 어디서나 세를 얻게 된 것은 좌파였다. 좌파의 성장은 구질서의 파산으로 간주되는 현실과 그에 따른 급진적 변화에 대한 욕망을 반영했다. 좌파의 이런 급부상은 그러나 결국 더 오른쪽 극단으로 움직인 우파의 ‘신보수주의’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삶의 의미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할 수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의미가 삶 자체에, 순간의 생생함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1920년대에는 향락주의와 나르시시즘이 나타났다. 러시아 발레는 한물갔고, 전쟁 이전에 나타났던 모더니즘은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으며, 월가는 ‘언제나 행동하며 뒤돌아보는 법이 없는’ 대담무쌍한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
이 전쟁의 진실은 무엇일까? 목소리들은 여기저기로 갈라졌지만, 그 안에서 일치하는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비극적이고 무익한 유럽의 내전이었으며,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전쟁이라는 목소리였다. 전쟁은 이후 파시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며,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초 전쟁 문학 붐을 일으킨다. 여기서 전쟁은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예술의 문제가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모더니즘 전반에 있어 심리적 전환점이었다. 창조하려는 충동과 파괴하려는 충동은 자리를 맞바꿨다. 진짜 전쟁은 1918년에 끝났다. 그 뒤로는 기억으로 위장한 상상이 전쟁을 집어삼켰다. 많은 이에게 전쟁은 어처구니없던 짓이 됐는데, 그러나 그것은 전쟁 경험 자체 때문이 아니라 전후 경험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상주의는 니힐리즘으로 끝났고, 생명으로 시작했던 것은 죽음으로 끝났다. 그리고 1914~1918년의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시각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히틀러다.
목차
서부전선
시작하며
프롤로그 베네치아
1막
제1장 파리
비전 | 1913년 5월 29일 | 샹젤리제 극장 | 댜길레프와 발레뤼스 | 반란 | 대립과 해방 | 관객 | 성공으로서의 스캔들
제2장 베를린
베르 사크룸 | 서곡 | 테크닉 | 수도 | 문화 | 문화와 반란 | 문화로서의 전쟁
제3장 플랑드르 벌판
낯선 땅 한 귀퉁이 | 8월의 포성 | 땅 위의 평화 | 그 이유는 | 빅토리안 종합 | 차에 넣을 꿀이 아직 남아 있는가?
2막
제4장 전쟁의 제전
배틀 발레 | 테마 | 가치 전환
제5장 광기 안의 이성
그들은 이유를 따질 수 없었다 | 의무
제6장 성스러운 춤
전쟁의 신 | 무리
제7장 내면으로의 여행
예술로서의 전쟁 | 형식으로서의 예술 | 예술과 도덕률 | 아방가르드
3막
제8장 나이트 댄서
새로운 그리스도 | 스타 | 우리 잊지 말자 | 순회와 상징 | 신세계와 구세계 | 연상들
제9장 기억
전쟁 붐 | 죽음의 삶 | 명성 | 구름 곡예사
제10장 끝없는 봄
독일이여, 깨어나라! | 희생자 영웅 | 삶으로서의 예술 | 현실로서의 신화 | 끝없는 봄이다!
감사의 말
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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