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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기후위기와 생명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 알아야 할 공동체의 철학
야마기시즘 실현지로부터 시작된 공동체의 철학과 모색의 길
알렙 그린풋 시리즈 출간
생태위기 시대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할까? 이 책은 공동체적인 대안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을 모색한다. 공동체 활동가 이태영과 생태철학자 신승철이 그린풋(생태민주주의) 시리즈 중 “우리 시대의 공동체성”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성찰을 담아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를 제안했다.
오늘날 우리 위기는 탄소기반경제와 그것을 지탱하는 산업자본주의에서 왔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실천으로서 공동체적인 대안(플랫폼, 정동)이 떠오르고 있다. 이제 새로운 시민의 덕성과, 새로운 사회계약과, 공동자원을 관리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서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공동체라는 개념에는 미래와 과거가 공존한다. 공동체는 새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경로와 결과로 다뤄지는 한편, 가부장적이고 비근대적이며 개인의 자유가 없는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공동체라는 개념을 전적으로 낭만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공동체에 대해서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다. 이 책은 그러한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대화의 과정을 담는다.
저자들은 20세기에 시작되어 21세기로 이어진 어떤 사회적 실험을 복기하는 작업을 시도해 본다. 바로 ‘야마기시즘’이라고 알려진 실험이다. 야마기시즘은 일본의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大藏, 1901-1961)가 제창한 이념으로 ‘무소유 일체 사회’를 지향한다. 이러한 이념을 실현해 무소유, 공용(共用), 공활(共活)의 사회 원리를 적용한 장소가 바로 ‘야마기시즘 실현지’이다. 1부에서 공동체 활동가 이태영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공동체의 이상과 현실로부터 여섯 가지 질문을 길어 올린다. 이태영은 10대 시절을 야마기시즘 실현지(산안마을)에서 보내고, 20대부터는 서울에서 도시 공동체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야마기시즘 공동체에서의 경험에서 공동체의 지향과 형태, 쟁점에 관한 고민들을 끄집어 낸다. 도시에서 공동체를 대안으로 호출할 때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제도화 속에서 공동체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심은 무엇일까? 2부에서는 생태철학자 신승철의 이론적 고찰이 이어진다. 저자는 커먼즈, 흐름, 배치와 같은 철학적 개념을 통해 1부에서 제기된 고민들을 다음 단계로 밀고 나간다. 공동체에 대한 이와 같은 철학적 사유는 기후위기와 생명위기 시대에 새로운 주체성과 실천을 만들어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빌려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마을공동체의 주체가 될까?
안정된 장소와 관계 맺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공동체의 주체가 되기 어렵고, 그렇다면 공동체 역시 유지되기 어렵다. 이로부터 주민들의 생활 조건과 주체성 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대두된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생명·자연·집단지성·생태적 지혜 등의 공유재 및 공유 활동을 뜻하는 ‘커먼즈’로 답한다. 관계로부터 분리된 현대인들이 커먼즈를 통해서 공동체 관계망의 깊이와 잠재성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마을공동체가 전환의 상상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을과 공동체 같은 개념들은 이제 행정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고 있다. 본래의 의미가 삭제된 마을공동체의 제도화가 오히려 전환의 상상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관해 저자들은 ‘흐름과 횡단’으로 답한다. 특히 저자들은 정동의 흐름과 커먼즈를 사적 자본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정동/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해 경계한다. 그러나 정동의 흐름이 자본에 포획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역동적인 미시정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정동의 흐름이 새로운 공동체의 지평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누가 주민인가?
주민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며,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 의견을 지니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주체로 ‘주민’을 호명할 때, 그 주민은 과연 누구인가? 이에 대한 저자들의 답은 ‘배치’라는 개념에 있다. 공동체적 관계망의 방식은 자리를 구조가 아닌 배치로 사유한다. 그리고 이때 공동체적 관계망에 들어와 있는 권력의 배치, 권력의 네트워크를 간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배치의 재배치’는 새로운 생각, 언어, 행동을 생산해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공동체는 어떻게 왜 사업이 되었는가?
언제부터인가 공동체가 제도의 혁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제 행정 어디서나 ‘공동체’를 만나고, 어느 동사무소를 가든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업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면해야 할까? 사업에서는 성과, 주인공, 의미, 가치 등이 식별되나, 공동체에서는 가장자리·곁·주변에서 모호한 주체성이라는 혼재면이 발생할 뿐이라고 저자들은 답한다. 그리고 공동체적 관계망이 향하는 바는 특이성 생산으로서의 소수자되기이다. 그리고 이때, 개인성을 억압하는 전통적 공동체와 달리 개인의 자율성이 살아 숨 쉬는 ‘따로 또 같이’의 공동체가 열릴 수 있다.
마을공동체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최전선이 될까?
마을공동체에는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지구적 한계·개인과 마을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녹색 시민’이 존재하는가? 혹은, 그와 같은 마을의 ‘녹색 시민’, 그리고 주민사회는 어떻게 조직되고 구성될 수 있을까? 생태주의자이자 철학자인 펠릭스 가타리는 생태주의의 핵심 의제로 주체성을 어떻게 구성하고 생산하는가의 문제를 꼽았다. 우리는 마음의 자리인 배치를 바꿈으로써 마음을 바꾸고, 나아가 주체성을 생산해내는 데에 이를 수 있다. 배치를 살핌으로써 감각의 재발명, 다시 말해 섬세한 생태민감성을 재창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한 삶의 전환은 곧 문명의 전환, 녹색 전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말로 공동체는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공동체는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자 미래 사회의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소환되는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구시대적인 것, 위계를 양산하고 권력의 문제를 감추는 것,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공동체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낙관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단, 공동체 그 자체가 대안적 가치를 지닌다는 환상이나,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권력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권력의 문제와 정치를 배제하지 말자. 그리고 공동체라는 대안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들까지 폭넓게 사유하자. 이것이 저자들이 말하는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이고,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대안’으로 한발 나아가는 과정이다.
낭만하는 공동체를 넘어선다는 것
이 책이 목표하는 바는, “낭만하는 공동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수많은 사회적 실험과 운동이 부침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저자들이 사회적 대안을 정치하게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성)에 관한 저자들의 비판적 사유가 기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오늘날 사회적 대안으로 주목받는 공동체를 낭만화하는 경향을 배격하고, 공동체의 철학이 현실에 발 디딜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공동체(성)을 보다 명징하게 조명할 수 있게 한다.
야마기시즘 실현지로부터 시작된 공동체의 철학과 모색의 길
알렙 그린풋 시리즈 출간
생태위기 시대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할까? 이 책은 공동체적인 대안에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을 모색한다. 공동체 활동가 이태영과 생태철학자 신승철이 그린풋(생태민주주의) 시리즈 중 “우리 시대의 공동체성”에 대한 근본적 물음과 성찰을 담아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를 제안했다.
오늘날 우리 위기는 탄소기반경제와 그것을 지탱하는 산업자본주의에서 왔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실천으로서 공동체적인 대안(플랫폼, 정동)이 떠오르고 있다. 이제 새로운 시민의 덕성과, 새로운 사회계약과, 공동자원을 관리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서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공동체라는 개념에는 미래와 과거가 공존한다. 공동체는 새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경로와 결과로 다뤄지는 한편, 가부장적이고 비근대적이며 개인의 자유가 없는 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들은 공동체라는 개념을 전적으로 낭만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공동체에 대해서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다. 이 책은 그러한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대화의 과정을 담는다.
저자들은 20세기에 시작되어 21세기로 이어진 어떤 사회적 실험을 복기하는 작업을 시도해 본다. 바로 ‘야마기시즘’이라고 알려진 실험이다. 야마기시즘은 일본의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大藏, 1901-1961)가 제창한 이념으로 ‘무소유 일체 사회’를 지향한다. 이러한 이념을 실현해 무소유, 공용(共用), 공활(共活)의 사회 원리를 적용한 장소가 바로 ‘야마기시즘 실현지’이다. 1부에서 공동체 활동가 이태영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공동체의 이상과 현실로부터 여섯 가지 질문을 길어 올린다. 이태영은 10대 시절을 야마기시즘 실현지(산안마을)에서 보내고, 20대부터는 서울에서 도시 공동체 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야마기시즘 공동체에서의 경험에서 공동체의 지향과 형태, 쟁점에 관한 고민들을 끄집어 낸다. 도시에서 공동체를 대안으로 호출할 때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제도화 속에서 공동체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중심은 무엇일까? 2부에서는 생태철학자 신승철의 이론적 고찰이 이어진다. 저자는 커먼즈, 흐름, 배치와 같은 철학적 개념을 통해 1부에서 제기된 고민들을 다음 단계로 밀고 나간다. 공동체에 대한 이와 같은 철학적 사유는 기후위기와 생명위기 시대에 새로운 주체성과 실천을 만들어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빌려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마을공동체의 주체가 될까?
안정된 장소와 관계 맺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공동체의 주체가 되기 어렵고, 그렇다면 공동체 역시 유지되기 어렵다. 이로부터 주민들의 생활 조건과 주체성 간의 관계에 관한 문제가 대두된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생명·자연·집단지성·생태적 지혜 등의 공유재 및 공유 활동을 뜻하는 ‘커먼즈’로 답한다. 관계로부터 분리된 현대인들이 커먼즈를 통해서 공동체 관계망의 깊이와 잠재성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마을공동체가 전환의 상상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마을과 공동체 같은 개념들은 이제 행정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고 있다. 본래의 의미가 삭제된 마을공동체의 제도화가 오히려 전환의 상상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관해 저자들은 ‘흐름과 횡단’으로 답한다. 특히 저자들은 정동의 흐름과 커먼즈를 사적 자본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정동/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해 경계한다. 그러나 정동의 흐름이 자본에 포획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역동적인 미시정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정동의 흐름이 새로운 공동체의 지평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누가 주민인가?
주민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며,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 의견을 지니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주체로 ‘주민’을 호명할 때, 그 주민은 과연 누구인가? 이에 대한 저자들의 답은 ‘배치’라는 개념에 있다. 공동체적 관계망의 방식은 자리를 구조가 아닌 배치로 사유한다. 그리고 이때 공동체적 관계망에 들어와 있는 권력의 배치, 권력의 네트워크를 간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배치의 재배치’는 새로운 생각, 언어, 행동을 생산해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공동체는 어떻게 왜 사업이 되었는가?
언제부터인가 공동체가 제도의 혁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제 행정 어디서나 ‘공동체’를 만나고, 어느 동사무소를 가든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업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면해야 할까? 사업에서는 성과, 주인공, 의미, 가치 등이 식별되나, 공동체에서는 가장자리·곁·주변에서 모호한 주체성이라는 혼재면이 발생할 뿐이라고 저자들은 답한다. 그리고 공동체적 관계망이 향하는 바는 특이성 생산으로서의 소수자되기이다. 그리고 이때, 개인성을 억압하는 전통적 공동체와 달리 개인의 자율성이 살아 숨 쉬는 ‘따로 또 같이’의 공동체가 열릴 수 있다.
마을공동체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최전선이 될까?
마을공동체에는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지구적 한계·개인과 마을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녹색 시민’이 존재하는가? 혹은, 그와 같은 마을의 ‘녹색 시민’, 그리고 주민사회는 어떻게 조직되고 구성될 수 있을까? 생태주의자이자 철학자인 펠릭스 가타리는 생태주의의 핵심 의제로 주체성을 어떻게 구성하고 생산하는가의 문제를 꼽았다. 우리는 마음의 자리인 배치를 바꿈으로써 마음을 바꾸고, 나아가 주체성을 생산해내는 데에 이를 수 있다. 배치를 살핌으로써 감각의 재발명, 다시 말해 섬세한 생태민감성을 재창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한 삶의 전환은 곧 문명의 전환, 녹색 전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말로 공동체는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공동체는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자 미래 사회의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소환되는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구시대적인 것, 위계를 양산하고 권력의 문제를 감추는 것,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연관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공동체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낙관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단, 공동체 그 자체가 대안적 가치를 지닌다는 환상이나,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권력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권력의 문제와 정치를 배제하지 말자. 그리고 공동체라는 대안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들까지 폭넓게 사유하자. 이것이 저자들이 말하는 ‘낭만하는 공동체 넘어서기’이고,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대안’으로 한발 나아가는 과정이다.
낭만하는 공동체를 넘어선다는 것
이 책이 목표하는 바는, “낭만하는 공동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수많은 사회적 실험과 운동이 부침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저자들이 사회적 대안을 정치하게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성)에 관한 저자들의 비판적 사유가 기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오늘날 사회적 대안으로 주목받는 공동체를 낭만화하는 경향을 배격하고, 공동체의 철학이 현실에 발 디딜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공동체(성)을 보다 명징하게 조명할 수 있게 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1부 우리 시대 공동체에 던지는 질문
1장 기후위기, 팬데믹 시대의 공동체
2장 산안마을(야마기시즘 실현지)의 실험
3장 도시와 마을공동체
2부 공동체성의 작동 원리와 전개
1장 커먼즈, 플랫폼자본주의를 넘어서
2장 흐름, 내발적 발전을 향하여
3장 배치, 동적 편성의 재배치로서의 미시정치
4장 일관성의 구도, 가장자리 상황 논증을 넘어
5장 비기표적 기호계, n분절의 기호론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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