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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을 읽기 전에 ‘악의 평범성’을 말하지 말라!
집단범죄 가해자 심리분석의 결정판. 김동춘, 우석균, 정희진 강력 추천!
나치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고, 오랜 추적 끝에 검거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서독은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외면했지만,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사죄한 이후 198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나치의 역사를 가르쳤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독일 사회가 과거를 뉘우치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이 독일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남겨졌던 군인들만 처형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했을 뿐, 주요 전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과거를 외면한 채, 군국주의를 추구하던 군인들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회사인간’으로 변모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권위적인 남성으로서 자만에 찬 일생을 산’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노병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섰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한나 아렌트는 성실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의 잔학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심리학자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서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8장에서 밀그램 실험의 의의를 분석하고 일본군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이 책 전반에서 저자의 분석은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와 문화를 향한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은 현대 한국과 같다.
식량과 물자 보급 없이 약탈을 전제로, 자국보다 훨씬 더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중국을 상대로 한 ‘15년 전쟁’에서, 동남아시아 각국과 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전쟁이란 더 이상 ‘총을 든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정규전보다는 비무장 주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731부대가 아닌 일반 부대에서도 군의관들이 일상적으로 농민들을 생체 해부하고, 초보 병사들은 살아 있는 포로들을 상대로 총검술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일본군의 ‘전쟁신경증’ 발생률은 베트남전 참전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참전 소련군에 비해 극도로 낮았다(17장). 다만 일종의 거식증인 ‘전쟁 영양실조증(104쪽)’으로 미라처럼 말라 죽어가는 군인들이 있었다.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는 ‘정신주의’를 강조하며 정신적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환자들의 고통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용기를 내어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전쟁 당시 직접 자기 손으로 생체 해부하고 여성들을 고문하고 아이들을 학살하면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전혀 겪지 않았고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다. 난징대학살을 폭로한 군인들의 일기에서는 2만 명의 포로를 학살하면서 감정의 동요 없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도취하거나 쇠고기 튀김 등 식욕을 나타낸 기록들이 보인다(451~452쪽). 감정이 왜곡된 사람들은 깊은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상에 쉽게 빠지거나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저자는 전범들에게 당시에 어떻게 느꼈는지, 살해한 대상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등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동명의 원서 『戦争と罪責』 초판은 1998년 출간되었고, 2000년 『전쟁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 『전쟁과 죄책』은 초판을 번역한 서혜영 번역자가 2022년 출간된 문고판을 기준으로 표현을 다듬고 설명을 추가하는 한편, 저자가 한국과 관련해서 펼친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 집필한 한국어판 서문과 초판 발행 후 독자 편지나 강연 등을 통해 느낀 점을 담은 2022년 문고판 후기를 수록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탈북민, 사할린의 조선인,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북미 한인 등 수많은 한인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서 비롯된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인들이 서로 깊이 교류하고 디아스포라를 뛰어넘는 문화를 창조하기를 염원한다. 그 시작점은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본떠,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 사람들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는지, 다시 타자와 교류하는 정신을 되찾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내면을 분석한 것이다.” 나치에 대한 자료와 분석은 넘치는데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극히 드물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군국주의 문화가 남성성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주목,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소감을 토로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이코패스 같은 잔학행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군국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우리들의 초상!
밀그램 실험은 집단에 동화되고 강력한 권위 뒤에 숨어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을 유보하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낸다. 『전쟁과 죄책』은 그러한 보편적인 인간적 약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본군 전범들의 정신세계를 한 명 한 명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들은 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왜 피해자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군대에서도 그렇게 잘 적응하고, 패전 후에도 성실한 직장인으로 잘 적응하고 살았을까?
전범들은 어려서부터 가족 속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졌다. 정체성이 형성될 때부터 천황과 국가를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해, 효율과 타산의 관점으로만 인간을 대하게 되었다(358쪽). 그런 성장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은 더더욱 공감하지 못하는 ‘상처 입지 않는 인간’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갔다. 가령 저자는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 다섯 명의 가족과 사별했던 도미나가를 인터뷰하며 어린 소년의 무력감, 그 무력감을 돌보려 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반성이나 회의 없이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청년’을 키웠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한다(249쪽).
어려서 자신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던 도미나가는 중국인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난생처음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동료와 부하들 앞에서 볼썽사납지 않게 보이는 데만 급급해한다. 그리고 단번에 목을 치는 데 성공하자,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고 한다(220쪽). 군의관으로서 생체 해부를 하게 된 유아사 역시 그런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나 ‘실습 재료’가 된 농부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동료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지 않는 데만 집착한다(38쪽). 자신과 같은 계급,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과의 관계만이 중요하다.
특히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선량한 청년 쓰치야(12~13장)의 변신은 섬뜩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헌병대에서 물고문을 처음 접하고 그만두려고 하다가 승진 후 그만두자고 생각이 바뀌고, 나중에는 ‘특고(정치·사상 분야를 담당한 경찰)의 신’이 되어 온갖 사건을 조작하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최대치의 고통을 가하는 ‘고문의 달인’이 되어 버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전범들이 대체로 업무를 수행하며 잔학행위를 저질렀던 데 반해, 자발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 나가토미는 가학적인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몸이 약하고 민감한 소년을 억지로 ‘강한 남자’로 키워낸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학교 교육이 주입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쉽게 사디즘으로 전화되었다. ‘그의 감정은 이데올로기적인 질서를 갖게 된다. 명예나 수치와 관련된 감정은 비대해지는 반면, 자신이나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는 냉담해진다.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간관계는 늘 상하관계가 된다(279쪽).’
이들의 모습은 왜 이렇게 익숙할까?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군부 독재를 거치며 군사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현대 한국의 민간인 학살은 만주국의 항일세력 토벌과 방식이 흡사하다. 만주국 판사로 자유를 탄압하다가 푸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되었을 때는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데 앞장서고 귀국 후에는 극우 논객으로 변신한 이모리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다. 저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작하고, 타인도 조작 대상으로 보는 이모리 같은 사람들이 일본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질타한다(296쪽). 그들은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사상을 바꾸며 스스로를 세뇌한다.
감정이 마비된 전범들은 패전 후 중국의 전범관리소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일제에 협력한 중국인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했지만, 저우언라이 총리의 관용 정책에 따라 일본 전범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142쪽).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온, 꼭두각시 만주국 황제 푸이를 수용했던 푸순전범관리소가 중심이 되어 전범들의 사상 개조에 주력했다. 중국 당국은 전범들의 자백과 피해자들의 고발장을 대조하고, 전범들이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는지 살펴 1956년 전범 대부분을 기소 면제로 석방하고, 유기형을 선고한 사람들도 1964년까지는 모두 귀국시켰다(148쪽). 중국 귀환자들 상당수는 공산 국가에서 세뇌당한 사람들이라는 비난 속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전쟁범죄에 대한 증언을 지속하고 중국을 방문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 속죄하고자 했다. 물론 이모리처럼 사회의 기대에 과잉 적응하는 엘리트는 끝내 다른 길을 걸었다.
끝까지 양심을 지킨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인간성 상실을 막기 위한 사회적, 개인적 조건
이 책에는 부도덕한 전쟁에 휘말렸으나 끝까지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군의관 오가와(2~3장)와 병사 오노시타(14장)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도 죄의식 없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던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타협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총검술 연습을 위해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몇몇 승려 출신 군인이 있었다. 속세의 질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한 사례는 밀그램 실험에서도 나타난다. 오가와 역시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며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은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 기독교 주류는 군국주의와 타협하고 전쟁을 정당화했다. 종교적 가치와 현실의 괴리를 인식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뇌하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종교의 힘으로 양심을 지킨다.
무엇보다도 오가와와 오노시타가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주에서 태어난 오가와는 만주를 사랑하고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고자 더 많은 고통을 맛보려고 군의관으로서 장교가 될 수 있었으나 일부러 일반 병사로 입대했고, 패전 후에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병든 일본군과 중국인 곁에 머물렀다. 중국국민당 치하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한 일본군들의 주검을 수습하며 무의미한 전쟁으로 자신들을 내몬 국가와 상관을 질타하는 그들의 유서를 읽었다. 그는 귀국 후 의료봉사를 펼치며 살았지만, 전쟁을 일으켰던 지배층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전몰자들의 유해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며 신격화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선다.
오노시타는 일본 군대가 약탈과 방화, 강간을 일삼는 강도 무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 후 동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그는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했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는 비사야어를,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어를 익히며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바랐다. 귀국 후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우익의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군인연금을 받지 않고 강도 무리에 속했던 과거를 금전으로 보상받기를 거부했다.
저자는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기 위한 선택지를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막강한 권위인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병역 거부를 허용하기 어려우므로 이 방법은 한계가 있다. 제3의 선택지는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국가의 세속적 권위를 넘어서는 권위(종교적 권위)를 따르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단이나 교회는 대개 권력과 타협해 왔으므로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236~239쪽).
집단범죄 가해자 심리분석의 결정판. 김동춘, 우석균, 정희진 강력 추천!
나치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고, 오랜 추적 끝에 검거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서독은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외면했지만,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사죄한 이후 1980년대부터는 적극적으로 나치의 역사를 가르쳤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독일 사회가 과거를 뉘우치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이 독일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남겨졌던 군인들만 처형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했을 뿐, 주요 전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과거를 외면한 채, 군국주의를 추구하던 군인들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회사인간’으로 변모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권위적인 남성으로서 자만에 찬 일생을 산’ 아버지는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저자는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아버지뻘의 노병들을 인터뷰하며 인간성 회복의 길을 찾아 나섰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한나 아렌트는 성실하고 평범해 보이는 그의 잔학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심리학자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서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8장에서 밀그램 실험의 의의를 분석하고 일본군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이 책 전반에서 저자의 분석은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와 문화를 향한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은 현대 한국과 같다.
식량과 물자 보급 없이 약탈을 전제로, 자국보다 훨씬 더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지닌 중국을 상대로 한 ‘15년 전쟁’에서, 동남아시아 각국과 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전쟁이란 더 이상 ‘총을 든 군인들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정규전보다는 비무장 주민들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731부대가 아닌 일반 부대에서도 군의관들이 일상적으로 농민들을 생체 해부하고, 초보 병사들은 살아 있는 포로들을 상대로 총검술 연습을 했다. 그런데도 일본군의 ‘전쟁신경증’ 발생률은 베트남전 참전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참전 소련군에 비해 극도로 낮았다(17장). 다만 일종의 거식증인 ‘전쟁 영양실조증(104쪽)’으로 미라처럼 말라 죽어가는 군인들이 있었다.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는 ‘정신주의’를 강조하며 정신적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환자들의 고통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
저자가 인터뷰한 전범들은 용기를 내어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전쟁 당시 직접 자기 손으로 생체 해부하고 여성들을 고문하고 아이들을 학살하면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전혀 겪지 않았고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다. 난징대학살을 폭로한 군인들의 일기에서는 2만 명의 포로를 학살하면서 감정의 동요 없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도취하거나 쇠고기 튀김 등 식욕을 나타낸 기록들이 보인다(451~452쪽). 감정이 왜곡된 사람들은 깊은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상에 쉽게 빠지거나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저자는 전범들에게 당시에 어떻게 느꼈는지, 살해한 대상의 얼굴을 기억하는지 등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동명의 원서 『戦争と罪責』 초판은 1998년 출간되었고, 2000년 『전쟁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 책 『전쟁과 죄책』은 초판을 번역한 서혜영 번역자가 2022년 출간된 문고판을 기준으로 표현을 다듬고 설명을 추가하는 한편, 저자가 한국과 관련해서 펼친 활동을 중심으로 새로 집필한 한국어판 서문과 초판 발행 후 독자 편지나 강연 등을 통해 느낀 점을 담은 2022년 문고판 후기를 수록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탈북민, 사할린의 조선인,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북미 한인 등 수많은 한인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서 비롯된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인들이 서로 깊이 교류하고 디아스포라를 뛰어넘는 문화를 창조하기를 염원한다. 그 시작점은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본떠,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 사람들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는지, 다시 타자와 교류하는 정신을 되찾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내면을 분석한 것이다.” 나치에 대한 자료와 분석은 넘치는데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극히 드물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한국 독자들은 가해 군인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군국주의 문화가 남성성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에 주목, “이 책은 남성성이 실체가 아니라 규범임을 증명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군사력 등 공사 영역에 걸쳐 세계 최고의 무장 국가인 한국사회의 필독서”라며 강력추천했고,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운영위원장은 “전범들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정신분석에까지 나아간다. 충격적인 동시에 감동적이고 희망의 울림이 있는 역작”이라고 격찬했다. 『전쟁과 사회』 『대한민국은 왜?』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과거 저자와 만나 대담할 때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해 이야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쩌면 죄책 없는 일본보다 죄책 없는 한국이 훨씬 더 중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소감을 토로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이코패스 같은 잔학행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군국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우리들의 초상!
밀그램 실험은 집단에 동화되고 강력한 권위 뒤에 숨어 스스로의 판단과 양심을 유보하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낸다. 『전쟁과 죄책』은 그러한 보편적인 인간적 약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본군 전범들의 정신세계를 한 명 한 명 깊숙이 들여다본다. 그들은 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왜 피해자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했을까? 어떻게 군대에서도 그렇게 잘 적응하고, 패전 후에도 성실한 직장인으로 잘 적응하고 살았을까?
전범들은 어려서부터 가족 속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졌다. 정체성이 형성될 때부터 천황과 국가를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해, 효율과 타산의 관점으로만 인간을 대하게 되었다(358쪽). 그런 성장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은 더더욱 공감하지 못하는 ‘상처 입지 않는 인간’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갔다. 가령 저자는 어려서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 다섯 명의 가족과 사별했던 도미나가를 인터뷰하며 어린 소년의 무력감, 그 무력감을 돌보려 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반성이나 회의 없이 ‘그대로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청년’을 키웠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타자의 슬픔을 감싸 안는 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평화는 없다고 생각한다(249쪽).
어려서 자신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던 도미나가는 중국인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난생처음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동료와 부하들 앞에서 볼썽사납지 않게 보이는 데만 급급해한다. 그리고 단번에 목을 치는 데 성공하자, ‘이제 제대로 된 군인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고 한다(220쪽). 군의관으로서 생체 해부를 하게 된 유아사 역시 그런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나 ‘실습 재료’가 된 농부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동료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지 않는 데만 집착한다(38쪽). 자신과 같은 계급,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과의 관계만이 중요하다.
특히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선량한 청년 쓰치야(12~13장)의 변신은 섬뜩하다. 가난하고 못 배운 청년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헌병대에서 물고문을 처음 접하고 그만두려고 하다가 승진 후 그만두자고 생각이 바뀌고, 나중에는 ‘특고(정치·사상 분야를 담당한 경찰)의 신’이 되어 온갖 사건을 조작하고,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최대치의 고통을 가하는 ‘고문의 달인’이 되어 버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전범들이 대체로 업무를 수행하며 잔학행위를 저질렀던 데 반해, 자발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 나가토미는 가학적인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몸이 약하고 민감한 소년을 억지로 ‘강한 남자’로 키워낸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학교 교육이 주입한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쉽게 사디즘으로 전화되었다. ‘그의 감정은 이데올로기적인 질서를 갖게 된다. 명예나 수치와 관련된 감정은 비대해지는 반면, 자신이나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는 냉담해진다. 타자와 대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간관계는 늘 상하관계가 된다(279쪽).’
이들의 모습은 왜 이렇게 익숙할까?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 군부 독재를 거치며 군사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도 일본과 다르지 않다. 현대 한국의 민간인 학살은 만주국의 항일세력 토벌과 방식이 흡사하다. 만주국 판사로 자유를 탄압하다가 푸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되었을 때는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하는 데 앞장서고 귀국 후에는 극우 논객으로 변신한 이모리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다. 저자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조작하고, 타인도 조작 대상으로 보는 이모리 같은 사람들이 일본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질타한다(296쪽). 그들은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사상을 바꾸며 스스로를 세뇌한다.
감정이 마비된 전범들은 패전 후 중국의 전범관리소에서 비로소 자기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일제에 협력한 중국인들은 가차없이 처형당했지만, 저우언라이 총리의 관용 정책에 따라 일본 전범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142쪽). 영화 <마지막 황제>에 나온, 꼭두각시 만주국 황제 푸이를 수용했던 푸순전범관리소가 중심이 되어 전범들의 사상 개조에 주력했다. 중국 당국은 전범들의 자백과 피해자들의 고발장을 대조하고, 전범들이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는지 살펴 1956년 전범 대부분을 기소 면제로 석방하고, 유기형을 선고한 사람들도 1964년까지는 모두 귀국시켰다(148쪽). 중국 귀환자들 상당수는 공산 국가에서 세뇌당한 사람들이라는 비난 속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전쟁범죄에 대한 증언을 지속하고 중국을 방문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 속죄하고자 했다. 물론 이모리처럼 사회의 기대에 과잉 적응하는 엘리트는 끝내 다른 길을 걸었다.
끝까지 양심을 지킨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인간성 상실을 막기 위한 사회적, 개인적 조건
이 책에는 부도덕한 전쟁에 휘말렸으나 끝까지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군의관 오가와(2~3장)와 병사 오노시타(14장)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도 죄의식 없이 전쟁범죄를 저지르던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타협하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총검술 연습을 위해 포로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몇몇 승려 출신 군인이 있었다. 속세의 질서보다 더 높은 차원의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한 사례는 밀그램 실험에서도 나타난다. 오가와 역시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며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이것은 종교인이 비종교인보다 더 도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 기독교 주류는 군국주의와 타협하고 전쟁을 정당화했다. 종교적 가치와 현실의 괴리를 인식하고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뇌하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종교의 힘으로 양심을 지킨다.
무엇보다도 오가와와 오노시타가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만주에서 태어난 오가와는 만주를 사랑하고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고자 더 많은 고통을 맛보려고 군의관으로서 장교가 될 수 있었으나 일부러 일반 병사로 입대했고, 패전 후에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병든 일본군과 중국인 곁에 머물렀다. 중국국민당 치하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한 일본군들의 주검을 수습하며 무의미한 전쟁으로 자신들을 내몬 국가와 상관을 질타하는 그들의 유서를 읽었다. 그는 귀국 후 의료봉사를 펼치며 살았지만, 전쟁을 일으켰던 지배층이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전몰자들의 유해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며 신격화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선다.
오노시타는 일본 군대가 약탈과 방화, 강간을 일삼는 강도 무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 후 동료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그는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했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는 비사야어를,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어를 익히며 그들과 더불어 살기를 바랐다. 귀국 후에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우익의 압박과 비난 속에서도 군인연금을 받지 않고 강도 무리에 속했던 과거를 금전으로 보상받기를 거부했다.
저자는 부도덕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기 위한 선택지를 몇 가지 제시한다. 우선 막강한 권위인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를 허용한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병역 거부를 허용하기 어려우므로 이 방법은 한계가 있다. 제3의 선택지는 비인도적인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국가의 세속적 권위를 넘어서는 권위(종교적 권위)를 따르거나 자신의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단이나 교회는 대개 권력과 타협해 왔으므로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236~239쪽).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장 죄의식을 억압해온 문화
제1장 의사와 전쟁
제2장 길 아닌 길
제3장 마음이 병드는 장병들
제4장 전범 처리
제5장 탄바이, 죄를 인정하다
제6장 슬퍼하는 마음
제7장 과잉 적응
제8장 복종으로의 도피
제9장 죄의식 없는 악인
제10장 세뇌
제11장 ‘시켜서 한 전쟁’에서 ‘스스로 한 전쟁’으로
제12장 공명심
제13장 탈 세뇌
제14장 양식(良識)
제15장 아버지의 전쟁
제16장 계승되는 감정의 왜곡
제17장 감정을 되찾기 위해
초판 후기
문고판 후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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