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의 외교
- 대등서명
- Diplomacy
- 개인저자
- 헨리 키신저 지음 ; 김성훈 옮김
- 발행사항
- 서울 : 김앤김북스, 2023
- 형태사항
- 928 p. : 삽화, 지도, 초상 ; 24 cm
- ISBN
- 9788989566892
- 청구기호
- 349.42 헨239ㅎ
소장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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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다시 시작된 강대국 경쟁의 시대를 통찰하는 헨리 키신저의 역작
세계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점점 더 전략적 경쟁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냉전 시대처럼 또다시 중국과 러시아 같은 거대한 독재국가들의 팽창에 맞서기 위해 NATO를 확대하고 쿼드나 한미일 안보협력체를 구성하는 등 민주주의 국가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상하이협력기구나 브릭스를 확대하면서 미국의 진영을 균열시키고 역포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의 대전쟁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2023년 5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키신저는 “현재의 국제정세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과 비슷하다. 미국과 중국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국제질서의 원칙을 정하지 못하면 5~10년 안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키신저의 말대로, 세계는 삼국협상과 삼국동맹이라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부지불식간에 대전쟁으로 끌려들어 갔던 19세기 말 유럽의 경로를 밟게 될 것인가, 아니면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충돌 없이 오랜 기간 체제 경쟁을 벌이는 새로운 냉전의 경로를 밟게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경로로 나아가게 될 것인가. 어떤 경로가 가능성이 높을지, 대전쟁이라는 파국이 과연 일어날 것인지, 그런 대재앙을 막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깊은 통찰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 현대 외교의 거장 헨리 키신저가 쓴 기념비적인 책 『헨리 키신저의 외교(Diplomacy)』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지금의 세계질서는 미국의 질서이고 미국의 가치가 지배하는 질서이다. 그 질서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키신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자연법칙에 따르기라도 한 듯, 모든 세기마다 권력과 의지, 지적 도덕적 추진력을 갖추고 국제체제 전체를 자신의 가치에 따라 형성하는 국가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17세기에는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의 국가이성이, 18세기에는 영국이 주도한 세력균형의 개념이, 19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협조 정신이 그 시대의 지배적 가치였다. 메테르니히의 협조체제를 깨뜨린 것은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냉정한 권력정치였고, 그 권력정치의 비극적 결과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그 전쟁을 결정지은 미국은 세력균형과 권력정치에 기반한 유럽의 구질서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와 국제법, 집단안보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제시했고, 그 이후로 윌슨주의가 미국 외교의 근간이자 세계질서의 토대가 되었다.
미국 외교의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헨리 키신저는 30년전쟁 이후의 베스트팔렌 체제로부터 나폴레옹전쟁 이후의 빈 체제, 독일 통일 후의 비스마르크 체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베르사유 체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체제, 그리고 탈냉전 질서에 이르기까지 국제체제의 주요 변화들을 만들어낸 강대국들의 외교정책을 분석하면서 지난 1세기 동안 국제체제를 주도해온 미국 외교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지금의 국제정세가 키신저의 말대로 무질서와 대전쟁으로 빠지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냉전 상황으로 갈지는 상당 부분 미국의 선택과 리더십에 달려 있다. 그리고 한국 외교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도 미국의 선택에 대한 판단과 예측에 달려 있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는 다시 돌아온 강대국 경쟁 시대를 통찰하고 그 미래를 예측하는 데 가장 적절하고 절실한 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국제체제의 미래를 유추하기 위한 국제 외교의 고전
지금의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인가, 새로운 냉전의 시대인가
키신저는 다수 국가들에 기반을 둔 세계질서의 흥망의 역사는 현대 정치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이해하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며, 역사는 유추를 통해 비교가 가능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예견되는 결과를 비추어준다고 말한다. 처칠 역시 국제정치의 미래를 알고자 한다면 과거로 돌아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무정부적 국제체제 하에서 국가의 행태는 반복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다시 시작된 강대국 경쟁은 과거 어느 시점의 강대국들의 행동과 유사한가, 그리고 유사하면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거대한 파국인가, 아니면 또 다른 차가운 전쟁인가. 『헨리 키신저의 외교』는 역사를 통찰하고 현재와 미래를 유추하게 하는 놀라운 지적 요소들로 가득하다.
19세기 말 유럽의 역사는 1890년 통일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 실각 전후로 나뉜다. 비스마르크 대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통치의 전면에 나서면서 유럽의 정세는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대립으로 빠져들었다. 비스마르크가 공들여 쌓았던 모든 게 무너졌다.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영국이 균형자 역할을 포기하고 여기에 가담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 제국이라는 위태로운 동맹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누구도 거대한 파국을 예상하지 못했고 그것이 20년 후 더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질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비스마르크가 권력을 유지했더라도 파국을 막을 수 있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 책의 표지는 1878년 베를린 회의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러시아-터키 전쟁(1877년)의 결과인 산스테파노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열강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비스마르크 체제의 정점을 상징하지만 그 붕괴의 시작이기도 했다. 러시아는 독일에 원한을 품게 되었고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병합하면서 대충돌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렇지만 아직 대전쟁까지 가려면 독일의 중대한 실책들이 연달아 이어져야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동서 진영의 대결 구도가 명확해졌고 미국의 봉쇄정책이 본격화되었다. 동독 내에 위치한 베를린 문제를 놓고 몇 차례 위기가 이어졌고 쿠바 미사일 위기도 있었다. 베트남 등에서 국지전이 벌어졌지만 미국과 소련 간의 직접적인 충돌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1991년 소련이 스스로 와해되면서 냉전의 막이 내렸다. 대전쟁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련군이 언제라도 동독 국경을 넘어 밀려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고 한국전쟁마저 그러한 시도의 일환처럼 여겨졌다. 핵무기 경쟁이 끝이 없었다. 하지만 19세 말의 유럽과 달랐던 것은 미국도 소련도 상대방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두려워했고 두 진영 간에 안정적인 힘의 균형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어쩌면 대전쟁의 기억과 두려움이 새로운 대전쟁을 억제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었다.
2023년 8월 19일 한미일 3국 정상이 역사적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과 원칙에 합의했다. 사실상 중국이라는 잠재적 적국을 상대로 한국과 미국, 일본이 포괄적 안보 협력에 나서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편으로 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프랑스가 평시 동맹을 꺼려왔던 영국과 협상(entente)이란 형태의 덜 구속력 있는 제휴 관계를 수립하게 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국경을 사이에 두고 소련 진영과 대치 중이던 서독이 나토에 가입하고 서방에 결속되면서 결과적으로 양 진영의 대결 구도가 완성되어 가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전후 냉전 시대의 봉쇄정책에 관한 키신저의 분석은 예리함으로 가득 차 있다. 소련에 대한 봉쇄와 중국에 대한 봉쇄는 무엇이 다르고, 또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중국에 대한 봉쇄가 적절하고 가능한 것인가. 지금의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 강대국의 행동들을 돌아보며 유추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미국 외교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심오한 통찰
21세기에도 미국은 윌슨주의의 나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보편적 가치를 전쟁명분으로 내세웠고, 그로 인해 윌슨주의의 나라가 되었다. 그때까지 미국은 고립주의가 지배적이었다. 조지 워싱턴의 금언에 따라 유럽 국가들이 싸우든 말든 초연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미국의 외교정책이었다. 하지만 우드로우 윌슨은 고립주의적인 미국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시키기 위해 미국이 예외적인 나라라는 미국인들의 신념에 호소해야 했다. 미국인들의 도덕적 신념에 호소하지 않고는 가장 안전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머나먼 전장으로 달려가 싸우다 죽으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윌슨은 “이 위대하고 평화로운 국민을 … 가장 끔찍하고 비참한 전쟁으로 끌고 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국가에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고 마침내 세계를 자유롭게 만들어줄 자유로운 국민들의 협력에 의한 권리의 보편적 지배를 위해서 싸울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미국인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을 민주주의를 위한 성전으로 그리고 선과 악의 투쟁으로 받아들였고, 이로써 미국의 행동에 거대한 추진력과 헌신이 뒷받침되었다.
윌슨 이후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윌슨주의적 수사를 사용하지 않고는 자신의 대외적 목표를 천명할 수 없게 되었다. 트루먼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강력한 지정학적 개입 논거들이 있었지만 전쟁명분을 미국의 국익이 아닌 보편적 원칙의 수호로 설명했다. “국제문제에서 무력의 지배가 다시 시작된다면 그 여파가 광범위할 것입니다. 미국은 계속해서 법의 지배를 수호할 것입니다.” 현실정치를 추구한 닉슨조차 자신이 윌슨의 국제주의를 신봉한다고 스스로 여겼고 백악관 각료회의실에 윌슨의 초상화를 걸어두었다. 2023년 8월 미국이 주도한 한미일 3국의 캠프 데이비드 합의도 첫 문장을 “우리는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공조를 강화할 것이다.”라고 시작하고 있다.
윌슨주의의 위대한 성취들이 있었다. 불운했던 국제연맹은 국제연합으로 재현되었고, 유럽을 재건하기 위해 마셜 플랜이 실행되었으며, 한국전쟁에 대규모 유엔군이 파병되었고 냉전 시기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윌슨주의는 큰 시련을 겪기도 했다. 베트남전쟁은 윌슨주의에 대한 미국인들의 확신을 약화시키고 미국 사회를 극도로 갈라놓았다. 중동 국가들을 민주화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수많은 인명의 희생과 지역의 불안정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막을 내렸다. 오늘날 미국 내부에서는 미국의 국제적 개입을 반대하는 흐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했던 미국우선주의위원회(America First Committee)를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는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은 윌슨주의의 보편성을 거부하고 세계질서에 대한 중국적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힘과 가치가 안팍으로 도전받고 있는 상황에서 윌슨주의는 미국 외교의 지침으로 계속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일방적인 힘의 우위가 사라진 시대에 윌슨주의적 미국 외교는 어떠해야 하는가. 키신저는 2022년 7월 영국 주간지 <스펙테이터> 와의 대담에서, “역사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자신은 “미국이 많은 실패를 했지만 세계에서 선한 힘이었고, 세계 안정에 필수불가결하다는 신념의 지지자”라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선한 힘”의 원천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상주의적인 미국 외교가 실패하지 않고 미국 우위의 국제체제를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키신저의 고뇌가 담겨 있다. 키신저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윌슨주의가 국익과 세력균형에 기반한 현실정치와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윌슨주의적 동기와 현실정치적 동기가 불일치할 때 미국 외교는 곤경에 처했고, 양자가 일치할 때는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
21세기 국제체제에 대한 키신저의 관점
윌슨주의와 현실정치 그리고 미국 외교의 선택
키신저는 국제질서가 안정적으로 존재하려면 세력균형에 의한 균형상태가 존재하고 공통의 가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본다. 키신저는 나폴레옹전쟁 이후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빈 체제를 이상적인 강대국 국제질서로 보았다. 빈 체제는 승전국들의 4국동맹에 기초한 균형상태가 있었고 정통성이라는 공통의 가치에 기반했다. 패전국인 프랑스도 회의에 동등한 자격으로 초대되었다. 빈 합의가 이루어진 1814년 이후 100여 년 동안 유럽에서는 대전쟁이 없었다. 반면 1차 세계대전 이후 들어선 베르사유 체제는 불안정 그 자체였다. 패전국 독일을 억제할 수 있는 힘도, 공통의 합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베르사유 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독일의 힘과 야망이 너무 강해져서 더 이상 현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 독일은 분할되었고 일본은 점령되었지만 승전국들은 미국과 소련 진영으로 나뉘었다. 일종의 균형상태가 존재했고 어느 쪽도 근본적으로 현상을 변경하려 하지 않았다. 냉전이 끝났고 패전국인 소련은 해체되었고 러시아는 현상을 변경할 힘이 없었다. 그 사이에 중국이 부상했고, 현재의 중국은 제1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처럼 현상을 변경할 동기도, 능력도 모두 지니고 있다. 중국과 주변국들의 군비경쟁으로 불안정성이 높아가고 있고 민주주의와 독재체제라는 가치의 충돌이 존재한다.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는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발칸반도 문제처럼 미국과 중국 모두 사활적 이익으로 인식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키신저가 지금의 국제정세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과 유사하다고 본 이유다.
유럽의 30년전쟁과 나폴레옹전쟁,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깊이 연구한 키신저에게 어떻게 대전쟁을 막을 것인가는 항상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키신저가 1970년대 초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소련과의 데탕트를 이뤄낸 것도 핵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키신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압박을 통해 변화할 것이라거나 약화될 것으로 보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 중국은 세계가 아닌, 아시아에서 지배적인 세력이 되길 바라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이 모두 동참할 만한 세계질서를 제시하고 균형점을 찾는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키신저의 사고는 자신이 1970년대 초 핵전쟁의 위기에서 소련과의 데탕트를 추진하던 시점과 연결되어 있다. 두 적대적 진영 간의 평화적 공존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키신저는 미국이 중국을 민주주의로 개종하려 하지 말고 적정한 세력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대충돌을 피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고 있다. 이는 사실상 중국이 주장하는 신형대국관계론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만 키신저의 경우는 대전쟁을 막기 위해 수단이라면, 중국의 경우는 미국의 패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위장 전략일 수 있다. 중국은 윌슨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키신저는 어느 정도 윌슨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키신저는 미국이 여러 강대국 중 하나일 뿐이며, 더 이상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질서를 강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 외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미국이 “민주주의에 안전한 세계”라는 윌슨주의의 이상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가. 민주주의와 민족자결, 국제법, 집단안보에 기초한 세계질서라는 윌슨주의의 목표를 포기한다는 것은 미국인 스스로 자신들의 예외주의와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어떤 구체적 이익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현실주의자로서 키신저는 윌슨주의가 미국이 불완전한 세계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 요소라고 말한다. 윌슨주의의 목표는 윌슨주의적 방식보다는 현실주의적 방식으로 달성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대통령들은 윌슨주의자처럼 말하고 현실주의자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도덕적 가치 이상으로 세력균형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히틀러를 파괴하기 위해 공산주의 소련과 손을 잡았고, 닉슨은 소련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산주의 중국과 손을 잡았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면서도 소련과의 대화를 마다하지 않았다. 조 바이든은 한미일 안보협력체, 쿼드 같은 다자동맹체제를 구축하면서 중국을 억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힘의 계산이 불확실하고 유동적일 때 국가들은 힘을 시험해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다자동맹체제를 통해 힘의 우위를 유지하는 전략은 역내 갈등을 조장하기 보다는 중국의 모험적 행동을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군을 투입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미국이 윌슨주의의 나라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태도다. 냉전 시기에 서베를린이 소련에 의해 점령되었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윌슨주의는 지정학적 위협만큼이나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을 방관했을 경우, 그로 인한 규범과 가치의 붕괴를 더 두려워한다. 이는 미국이 섣불리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와 타협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냉전을 끝낸 것은 키신저의 데탕트 전략이 아니라 레이건의 압박 전략이었다. 윌슨주의의 나라로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이 유지된다면 현재의 국제체제는 19세기 말의 유럽보다는 냉전 시대와 더 유사한 양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윌슨주의와 거리를 두게 된다면, 히틀러의 독일처럼 중국은 교묘하게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군사적 모험을 감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가올 대전쟁에 대한 키신저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는 냉전과 봉쇄정책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분석서 중 하나이다. 새로운 냉전 상황에서 봉쇄정책이 작동 가능한지, 딜레마가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
미중 경쟁과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
한국은 지금 역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 현상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힘과 현상을 변경하려는 중국의 힘이 충돌하고 있다. 두 힘의 충돌 양상과 결과에 따라 한국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어느 한쪽이 무너질 수도 있고, 장기간 또 다른 냉전이 전개될 수도 있고, 키신저의 우려대로 대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동아시아의 유력한 행위자로서 한국의 선택과 전략에 따라 동아시아의 판세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2023년 8월 19일 한국은 역사적이고 의미심장한 선택을 했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기반한 한미일 다자안보협력체를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윌슨주의가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동아시아판 NATO의 시작이 될 것이다. 양자 관계를 넘어서는 다자 안보협력체는 윌슨주의적 집단안보에 부합하고,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는 데 있어 우세한 입장에 서게 할 것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체는 또한 중국을 견제하면서 일본의 행동을 제약하는 제도적 틀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키신저는 일본이 중국에 대응해 머지않아 자체적인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신저는 장기적으로 일본의 독자적 행동을 억제하는 것을 중국을 견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보고 있다. 초대 NATO 사무총장인 이스메이 영국 장군은 NATO의 목적을 “러시아인을 몰아내고, 미국인을 불러들이며, 독일인을 억누른다.”라고 말한 바 있다. 동아시아판 NATO가 한국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인 이유이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게 있어 미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균형을 잡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략적 지렛대이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는 미국의 고립주의적 성향으로부터 한미 동맹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일찍이 오바마 대통령에 이어 조 바이든이 한국을 미국의 안보 린치핀(핵심축)이라고 불렀던 그 상황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유럽 관계에 있어 영국이 린치핀인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영국에게 있어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는 미국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유럽 대륙에 대한 균형을 잡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영국은 미국이 세계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지나치게 관여하는 것보다 영국의 국익에 훨씬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계의 안정과 국익을 위해 미국을 혼자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면, 아시아에서 그 역할을 할 국가는 한국일 것이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의 또 다른 의미는 한국이 세력균형의 논리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이다. 세력균형은 지역 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국가를 견제하기 위해 여타 국가들이 동맹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지배적 국가가 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를 통해 한국은 오랜 적대 감정을 뛰어넘어 일본과 대중국 연합을 도모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과 프랑스는 오랜 숙적이었으나, 독일의 팽창에 맞서 영불협상이라는 느슨한 형태의 동맹을 체결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이어졌다. 2차대전의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의 단결이 냉전 승리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되었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의 마지막 의미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지지가 국제적인 문서에 처음으로 담긴 것이다.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담대한 구상의 목표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지지한다.”라고 나와 있다. 이는 장차 한국이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받게 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동서독 통일과 함께 소련 제국이 붕괴되었듯이, 한반도 통일이 전략적으로 고려될 가능성이 있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는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전략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담고 있다. 키신저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기로 결정했을 때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어느 지점에 방어선을 구축할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한반도 상황에서의 통일 전략을 위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근대의 역사는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지도자들의 고뇌와 결단으로 가득하다. 30년전쟁의 와중에 프랑스의 리슐리외가 그랬고, 1814년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그랬고, 1871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그랬다. 1914년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이 그랬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는 외교적 선택지들을 눈 앞에 둔 수많은 국가 지도자들의 고뇌와 딜레마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을 통해 근대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때로는 불가피했고 때로는 탁월했고 때로는 어리석었다. 『헨리 키신저의 외교』는 국가의 운명을 걸고 외교적 선택을 해야 하는 이 시대의 국가 지도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목차
01 신세계질서
02 경첩: 시어도어 루스벨트 혹은 우드로우 윌슨
03 보편성에서 균형상태로: 리슐리외, 윌리엄 오렌지공, 피트
04 유럽협조체제: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05 두 혁명가: 비스마르크와 나폴레옹 3세
06 자승자박의 현실정치
07 정치적 인류파멸 장치: 제1차 세계대전 전의 유럽 외교
08 소용돌이 속으로: 군사적 인류파멸 장치
09 외교의 새로운 얼굴: 윌슨과 베르사유 조약
10 승자들의 딜레마
11 슈트레제만과 패배자들의 재등장
12 환상의 종말: 히틀러와 베르사유체제의 파멸
13 스탈린의 바자회
14 나치-소련 조약
15 미국의 무대 재등장: 프랭클린 루스벨트
16 평화를 향한 세 가지 접근법: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17 냉전의 시작
18 봉쇄정책의 성공과 고통
19 봉쇄정책의 딜레마: 한국전쟁
20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 아데나워, 처칠, 아이젠하워
21 봉쇄 뛰어넘기: 수에즈 운하 위기
22 헝가리: 제국 내부의 격변
23 흐루쇼프의 최후통첩: 1958-1963 베를린 위기
24 서방 단결의 개념: 맥밀런, 드골, 아이젠하워, 케네디
25 베트남: 수렁 속으로.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26 베트남: 절망으로 향하는 길에서. 케네디와 존슨
27 베트남: 탈출. 닉슨
28 지정학으로서 외교정책: 닉슨의 삼각 외교
29 데탕트와 이에 대한 불만
30 냉전의 종식: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31 되짚어보는 신세계질서
감사의 말
사진목록과 출처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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