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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은 왜 붕괴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물론 이에 대한 답으로, 김정일에게 도전할 만한 정치엘리트나 군부세력이 없다는 점,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조직화된 사회세력이 성장하지 못한 점, 그리고 북한의 붕괴를 두려워하는 한국과 중국을 배후에 두고 있는 지정학적 이점 등이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여기에 보태어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시장화’가 북한의 체제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시장의 확산은 북한의 고유한 체제를 변질시키는 위협요인이지만, 동시에 붕괴의 기로에 서 있는 북한경제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다.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북한경제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중경제적 특징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상세히 추적해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고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향후 북한의 경제체제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가를, 예컨대 고전적 체제로의 복귀인가 아니면 시장경제로의 이행인가, 만일 후자라면 점진적 형태로 이행할 것인가 아니면 급진적 형태로 이행할 것인가를 전망한다. 특히 이러한 전망은 몇 가지 가설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로 확인 가능한 경제적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을 보는 또 다른 시각 :‘아래로부터의’접근
그간 북한의 체제변화와 관련된 연구는 김정일을 위시한 지도부의 ‘전략적 결단’이나 정권변화 차원에서 북한체제의 변화 가능성이나 속도를 가늠하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접근이 주종을 이루었다. ‘위로부터의’ 접근은 결국 의도 불변론과 점진적 변화론 간의 논쟁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전자는 북한 정권이 ‘그럭저럭 버티기’를 지속하든가 아니면 북한 지도부는 버티기를 지속하고자 하지만 국제사회의 제재나 김정일의 신변 이상과 같은 대내외적 변수에 의해 정권이 붕괴되는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는 두 가지 전망으로 귀결되며, 후자는 급진적 변화가 초래할 체제의 위기를 막기 위해 북한 지도부가 ‘통제 가능한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체제 전망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아무도 북한 지도부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위로부터의 시각, 의도 중심의 접근을 견지하는 한 북한의 체제변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소모적 논쟁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라 이 책은 북한의 권력현실과 지도부의 의도에 대한 예측을 가능한 배제한 상태에서, 실제로 확인이 가능한 경제적 현실에서 출발하여 북한의 체제변화 전망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는 곧 ‘아래로부터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이 책은 주민 차원에서 시작된 자생적 시장화 움직임이 정권 차원의 시장지향적 개혁을 ‘강제’하는 과정, 혹은 정권이 그러한 자생적 시장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시장화가 북한의 체제 유지에 기여
2008년 현재 북한의 식량 수급사정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 남북관계의 악화, 자연재해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여 대규모 기아사태가 발생하여 북한 체제에 커다란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은 없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대량 아사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전망의 근거를 북한경제의 시장화에서 찾고 있다. 요컨대, 돈만 있으면 시장에서 식량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 자체가 막혀 있던 과거에 비해 오히려 대규모 기아가 발생할 소지가 낮아진 셈이다.
북한에서 시장화는 경제난이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현재는 경제의 상당부분을 시장이 잠식한 상태이다. 시장화의 확산은 사회주의의 고유한 시스템을 침식하므로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경제의 붕괴를 방지하는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시장을 억압하지도 장려하지도 못하는 북한당국의 딜레마가 있다.
생산재시장까지 형성된 북한 경제의 현실
현재 북한에서는 돈이 없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돈벌이에 있다. 그 돈벌이의 공간이 바로 시장이다. 저자는 탈북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시장화된 북한경제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있는데, 거의 모든 주민들이 가능한 한 모든 형태의 시장행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랜 기간 ‘전인민의 노동계급화’를 지향했던 북한에서 ‘전인민의 상인계층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식량 등 소비재만이 아니라 생산재까지 현금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심지어 임금노동자를 고용한 불법 사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私금융 또한 확대되고 있는데, 이미 사채놀이 수준을 넘어서 자본이 국영공장과 상점, 협동농장으로까지 투자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생산물시장, 노동시장, 자본시장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맹아들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 북한경제의 이러한 특징을 사유화 없는 시장화, 혹은 ‘계획과 시장의 공존’으로 정의한다.
계획과 시장의 상호작용을 통한 시장화 확산 메커니즘
이 책은 계획과 시장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 북한경제의 실제 작동메커니즘을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살피고 있다. 그에 따라 사회주의 제2경제(the second economy)를 중심적인 분석대상으로 한다. 사회주의 제2경제란 과거 중공업 우선의 불균형 발전전략에 치중한 사회주의국가들이 식량 및 소비재 부족현상에 직면해 임시방편적으로 이를 완화시키고자 공식경제(계획경제) 바깥에 소규모 사적 생산을 허용함으로써 형성된 초보적인 시장을 기원으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제2경제는 일단 형성되면 공식경제를 보완할 뿐 아니라 침식하기 시작하는데, 근로자들이 인센티브가 낮은 계획영역에서의 생산보다는 생산물을 자유롭게 소유, 처분할 수 있는 계획영역 바깥에서의 생산에 더 큰 힘을 기울이며, 이를 위해 계획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자재와 시간을 빼돌리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북한의 시장화 확산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제2경제의 맹아가 된 1980, 1990년대의 분권화 개혁조치들에서부터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을 통해 제2경제가 급속히 확산된 과정을 살펴보고, 이후 제2경제의 공식경제 내부로의 수용 차원에서 ‘7.1경제관리개선조치’(2002년)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북한경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7.1조치를 관료적 조정메커니즘의 개선을 통한 계획경제의 정상화 시도로 정의하나, 그것이 실제적으로는 구체제로의 복귀가 아니라 이미 확산된 시장에 적응해 계획과 시장이 공식경제 내부에서 공존하는 형태로 나타났음을 증명한다.
개혁사회주의에서 시장사회주의로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향후 북한경제의 변화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저자는 현재 북한의 경제체제는 더 이상 계획이 유일적으로 지배하는 과거의 고전적 사회주의체제가 아니며,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고 나아가 부분적으로는 시장이 계획을 대체한 개혁사회주의체제로 변화되었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북한당국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향후 북한경제는 개혁사회주의에서 시장사회주의로 점진적으로 이행할 것이며, 이러한 이행은 ‘역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앞서 보았듯이 일단 제2경제가 발생하고 경제난이 상당기간 지속될 경우 계획경제에서 시장사회주의로의 이행은 국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공식경제를 복원하려는 국가의 시도를 ‘통해서’ 서서히 진전된다는 실제적인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하다 할 것이다.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북한경제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중경제적 특징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상세히 추적해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고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향후 북한의 경제체제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인가를, 예컨대 고전적 체제로의 복귀인가 아니면 시장경제로의 이행인가, 만일 후자라면 점진적 형태로 이행할 것인가 아니면 급진적 형태로 이행할 것인가를 전망한다. 특히 이러한 전망은 몇 가지 가설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로 확인 가능한 경제적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을 보는 또 다른 시각 :‘아래로부터의’접근
그간 북한의 체제변화와 관련된 연구는 김정일을 위시한 지도부의 ‘전략적 결단’이나 정권변화 차원에서 북한체제의 변화 가능성이나 속도를 가늠하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접근이 주종을 이루었다. ‘위로부터의’ 접근은 결국 의도 불변론과 점진적 변화론 간의 논쟁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전자는 북한 정권이 ‘그럭저럭 버티기’를 지속하든가 아니면 북한 지도부는 버티기를 지속하고자 하지만 국제사회의 제재나 김정일의 신변 이상과 같은 대내외적 변수에 의해 정권이 붕괴되는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는 두 가지 전망으로 귀결되며, 후자는 급진적 변화가 초래할 체제의 위기를 막기 위해 북한 지도부가 ‘통제 가능한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체제 전망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은 아무도 북한 지도부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위로부터의 시각, 의도 중심의 접근을 견지하는 한 북한의 체제변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소모적 논쟁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라 이 책은 북한의 권력현실과 지도부의 의도에 대한 예측을 가능한 배제한 상태에서, 실제로 확인이 가능한 경제적 현실에서 출발하여 북한의 체제변화 전망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는 곧 ‘아래로부터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이 책은 주민 차원에서 시작된 자생적 시장화 움직임이 정권 차원의 시장지향적 개혁을 ‘강제’하는 과정, 혹은 정권이 그러한 자생적 시장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시장화가 북한의 체제 유지에 기여
2008년 현재 북한의 식량 수급사정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 남북관계의 악화, 자연재해가 겹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여 대규모 기아사태가 발생하여 북한 체제에 커다란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은 없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대량 아사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전망의 근거를 북한경제의 시장화에서 찾고 있다. 요컨대, 돈만 있으면 시장에서 식량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 자체가 막혀 있던 과거에 비해 오히려 대규모 기아가 발생할 소지가 낮아진 셈이다.
북한에서 시장화는 경제난이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현재는 경제의 상당부분을 시장이 잠식한 상태이다. 시장화의 확산은 사회주의의 고유한 시스템을 침식하므로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경제의 붕괴를 방지하는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시장을 억압하지도 장려하지도 못하는 북한당국의 딜레마가 있다.
생산재시장까지 형성된 북한 경제의 현실
현재 북한에서는 돈이 없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돈벌이에 있다. 그 돈벌이의 공간이 바로 시장이다. 저자는 탈북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시장화된 북한경제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있는데, 거의 모든 주민들이 가능한 한 모든 형태의 시장행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랜 기간 ‘전인민의 노동계급화’를 지향했던 북한에서 ‘전인민의 상인계층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식량 등 소비재만이 아니라 생산재까지 현금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심지어 임금노동자를 고용한 불법 사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私금융 또한 확대되고 있는데, 이미 사채놀이 수준을 넘어서 자본이 국영공장과 상점, 협동농장으로까지 투자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생산물시장, 노동시장, 자본시장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맹아들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 북한경제의 이러한 특징을 사유화 없는 시장화, 혹은 ‘계획과 시장의 공존’으로 정의한다.
계획과 시장의 상호작용을 통한 시장화 확산 메커니즘
이 책은 계획과 시장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 북한경제의 실제 작동메커니즘을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살피고 있다. 그에 따라 사회주의 제2경제(the second economy)를 중심적인 분석대상으로 한다. 사회주의 제2경제란 과거 중공업 우선의 불균형 발전전략에 치중한 사회주의국가들이 식량 및 소비재 부족현상에 직면해 임시방편적으로 이를 완화시키고자 공식경제(계획경제) 바깥에 소규모 사적 생산을 허용함으로써 형성된 초보적인 시장을 기원으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제2경제는 일단 형성되면 공식경제를 보완할 뿐 아니라 침식하기 시작하는데, 근로자들이 인센티브가 낮은 계획영역에서의 생산보다는 생산물을 자유롭게 소유, 처분할 수 있는 계획영역 바깥에서의 생산에 더 큰 힘을 기울이며, 이를 위해 계획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자재와 시간을 빼돌리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북한의 시장화 확산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제2경제의 맹아가 된 1980, 1990년대의 분권화 개혁조치들에서부터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을 통해 제2경제가 급속히 확산된 과정을 살펴보고, 이후 제2경제의 공식경제 내부로의 수용 차원에서 ‘7.1경제관리개선조치’(2002년)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북한경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7.1조치를 관료적 조정메커니즘의 개선을 통한 계획경제의 정상화 시도로 정의하나, 그것이 실제적으로는 구체제로의 복귀가 아니라 이미 확산된 시장에 적응해 계획과 시장이 공식경제 내부에서 공존하는 형태로 나타났음을 증명한다.
개혁사회주의에서 시장사회주의로
그렇다면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향후 북한경제의 변화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저자는 현재 북한의 경제체제는 더 이상 계획이 유일적으로 지배하는 과거의 고전적 사회주의체제가 아니며,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고 나아가 부분적으로는 시장이 계획을 대체한 개혁사회주의체제로 변화되었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북한당국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향후 북한경제는 개혁사회주의에서 시장사회주의로 점진적으로 이행할 것이며, 이러한 이행은 ‘역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앞서 보았듯이 일단 제2경제가 발생하고 경제난이 상당기간 지속될 경우 계획경제에서 시장사회주의로의 이행은 국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공식경제를 복원하려는 국가의 시도를 ‘통해서’ 서서히 진전된다는 실제적인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하다 할 것이다.
목차
제5장 시장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