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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한국의 탄생

개인저자
조우석
발행사항
파주: 살림, 2009
형태사항
422 p.: 사진; 23 cm
ISBN
9788952212412
청구기호
340.99 조67ㅂ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1970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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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11970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외면과 찬양의 양극단을 넘어 박정희를 다시 읽는다
- 과연 우리는 박정희 시대와 화해할 수 없는가?

왜 한국의 탄생인가? 왜 박정희 시대인가?

“6070시대는 우리 현대사의 청년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의 뼈대와 얼굴 그리고 체질이 이때 형성됐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그때만큼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연출했던 시기는 없을 것이다.” --- 저자의 셀프 인터뷰(p.414)

대한민국의 탄생은 이승만 정권이 아니냐고? 『박정희, 한국의 탄생』의 저자 조우석은 감히 ‘한국의 탄생’은 박정희시대라고 주장한다. 그 6070시대 18년의 기간 동안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근간이 거의 모두 완성됐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부문의 진보는 경이로운데, 영국이 131년, 일본이 72년이 걸렸던 경제성장을 불과 20년 만에 이루어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의 “세발자전거도 만들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제트기를 제작하는 것과도 같다.”는 비유가 그보다 더 적절할 수 없어 보인다. 특히 70년대 유신 이후 계획된 조선업, 반도체, 원자력 발전과 같은 중화학 공업은,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경제강국으로 이끌고 있다.
과연 이런 6070시대의 놀라운 진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자는 박정희 정권 청와대 경제2수석을 지냈던 오원철의 입을 빌어, 조국의 근대화라는 꿈을 위해 모든 것을 올인했던 6070세대의 열정을 얘기한다.

“내가 어떻게 부정 따위에 손대지 않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구식 한국인이고 징고이스트(맹목적 애국주의자)여서 ‘부정 탄다’는 말을 믿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그것이 중화학공업 프로그램이건 율곡 사업이건 간에 내 자신이 부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도록 우선 준비했다. 뇌물을 받는다든가, 술을 마신다든가 심지어 아내와 동침하는 것조차도 피했다.” --- 오원철 (p.22)

그때는 그랬던 것이다. 새마을노래 한 구절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말처럼 가난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보겠다는 강렬한 열정이 온 사회를 뒤덮고 있었다. 1964년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눈물환영을 받으며 입국한 독일에서, 박정희가 에르하르트 총리에게 했던 호소는 아직도 강렬하다.

“사실 우리가 서독을 방문한 목적은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발전상을 배우기 위한 것도 있지만, 돈을 빌리기 위해서입니다. 빌려만 주시면 그것을 국가 재건에 힘쓰겠습니다. 우리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은 강하지 못했습니다. 세계를 몰랐고 기회를 놓쳤습니다…….” --- 박정희 (p.110)

자부심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스러진 지 30년이 흘렀다. 그럼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박정희의 경제 개발 계획은 이후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두 차례의 군사정권을 경험한 뒤에 드디어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36년간의 식민지 경험과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나라, 경이로운 경제성장으로 전 세계가 존경과 경탄의 눈길을 보내는 나라, 당당히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그런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6070시대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가? 50년만의 압축성장으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솟은 오늘날의 코리아에 자부심을 갖는가? 선뜻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힘들다. 무언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386세대 이후의 젊은층들은 대한민국을 보는 눈이 곱지 않은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왜 세계가 높이 평가하고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을 정작 우리들은 자랑스러워하지 못하는가?

박정희를 둘러싼 부정적 담론 : 공백으로 남은 6070시대

이 책의 저자 조우석은 우리 세대가 자부심을 잃어버린 단초가 박정희를 둘러싼 왜곡된 담론에 있다고 생각한다. 친일파, 독재자, 지역차별의 원조, 공작정치에 능했던 정치꾼, 전사회의 군사문화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했다는 비판 등 박정희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젊은 세대는 넘치도록 들어왔다. 반면 경제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을 유사 이래 가장 부유한 국가로 만든 공로에 대해서는 이미 다 짜여져 있는 계획을 단순히 실행만 했다는 식으로 깎아 내리거나 외면하기 일쑤였다.

“박정희는 메이지 시대의 계몽독재를 영남출신 군인의 개발독재로 개작하고, 메이지의 어용재벌 못지않은 재벌을 키워내는가 하면, 북한 문제를 이용하여 일제에 버금가는 전사회의 군사화를 이루고 한국 전쟁 특수로 치부한 50년대의 일본에 질세라 베트남 전쟁을 틈타 건설과 정책적 대미수출의 ‘땡’도 잡았다.”(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위 내용은 많은 젊은이들이 읽는 베스트셀러 역사서에 나온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묘사다. 일군의 386세대 지식인, 학자들의 책에서는 이 같은 평가가 즐비하다. 그러나 그같은 평가를 내릴 때, 정작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피치못했던 곡절은 건너뛴다. 결국 우리 젊은 세대들은 역사상 가장 에너지 넘치고 역동적인 시대를 부패와 권위주의로 점철된 오욕의 역사로 치부하며, 그 시대를 부정하고 희화화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정희, 한국의 탄생』은 바로 진보학자들이 박정희시대에 대해 만든 통념에 도전하는 작업이다. 또한 독자들에게 공정한 판단을 유도하는 작업이자, 공백으로 놓인 6070시대에 대한 복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제 맨얼굴의 박정희를 만나서 그를 제대로 평가하자고 말하며, 인간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뒤섞일 수밖에 없는 돌멩이를 침소봉대하여 보석을 내팽개치지 말 것을 제안한다.

박정희와 그의 시대, 다시 자리매김할 때
저자가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에서 언급하는 몇 가지 주장들은 박정희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일깨우고 있다. 과연 그 주장들은 온전히 정당한가? 저자는 그 논쟁들 뒤편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살펴볼 것을 얘기한다.

1) 유신개헌 어떻게 볼 것인가?
: 장기독재의 발판인가, 중화학공업으로의 빅 푸시였나?
1972년 10월 17일 국회 해산과 비상계엄령 선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신이란 이것이 박정희의 장기집권의 음모이자 기도라는 것, 그리고 유신을 통해 대통령의 무한권력이 제도화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통념을 반박하며 박정희 정권에 경제2수석 오원철의 주장을 인용한다.

“요사이 많은 사람들이 박대통령은 경제는 성공했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실패했다고들 말한다. 심지어는 박대통령 아래서 장관을 지냈던 이들조차 공개적으로 중화학공업과 유신개혁을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중화학공업화가 유신이고, 유신이 곧 중화학공업화라는 것이 곧 쓰라린 진실이라고……. 하나 없이는 다른 하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비양심적이다.”(p.278)

박정희에게 ‘장기집권’의 결정은 중화학공업을 위한 필요악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박정희시대의 경제담당관과 연구가들의 입을 빌려, ‘앞으로 얼마가 더 걸릴지 모르는 국가 전체의 산업구조 변경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주의체제를 만들어야만 했’고, 그것이 유신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30여년이 지난 2009년의 오늘, 우리사회는 중화학공업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으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많은 험담을 늘어놓고 있는 유신이 없었다면, 60년대의 작은 경제 도약에 만족하고 경공업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중화학공업으로의 빅 푸시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번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2) 박정희는 지역차별의 원조인가?
: 영남 위주의 성장 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박정희 시대의 부정적 유산의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지역차별이고, 호남 푸대접론이다. 호남 푸대접론은 호남지역 출신 인사들에 대한 인사상의 불이익, 그리고 6070시대 초기 서울과 부산을 축으로 하는 개발에 대한 호남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나왔다.
실제 1986년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에 다니는 종업원 수가 영남 52.4퍼센트, 전라·충청이 13.89퍼센트에 불과하여 그 불균형이 매우 컸다. 지역차별이 실제인 것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이런 통계 자료로 인해 박정희가 일부러 호남을 차별했다는 식의 오해는 경계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저자는 이런 불균형에 대해, 박정희가 의도했다기보다 미필적고의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의견을 내비친다. 실제 부산이나 포항 등 영남의 항구도시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섬, 도로와 철도의 발달, 깊은 수심 등 공장 입지조건의 유리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출지향 정책을 내세웠던 60~70년대에, 미국과 일본과 교역하기 위해서도 지리적인 이점이 있었다.
이런 호남 푸대접론을 인지하고 있던 박정희도 현실적으로 이런 호남 지역 사람들의 서운함을 풀고자 제2종합제철을 광양에 짓고, 석유화학 단지를 여천에 자리잡게 하는 등의 현실적인 노력도 기울였다. 조국재건을 위해 밤낮없이 뛰던 박정희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호남 차별을 했다는 것은 전략적으로라도 어불성실이란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제 편만 챙기는 정책을 썼다면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 상모리가 한국에서 가장 늦게 전기가 들어왔다는 사실도 참 설명하기 힘든 대목이다.

3) 박정희는 친일파인가?
: 한일정상회담 추진, 관동군 장교 이력 어떻게 볼 것인가?
박정희를 둘러싼 쟁점 중에 하나는 바로 박정희의 친일 논란이다.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관동군 장교를 거쳐 일본 육사에서 위탁교육을 받았다. 또 만주지?에서 초급장교 생활을 1년 가량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박정희의 청년 시절 일본 장교 교육 경력을 들어, 그를 ‘식민화된 군인’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것은 너무 단선적인 논리라고 얘기한다. 소위 동북아 엘리트 교육인 만주관동군 장교는, 식민지의 빈농의 가계에서 태어난 박정희에게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회였고 더 넓은 세계를 욕망하던 20대 청년의 선택이었다.
저자는 박정희의 친일논란이 이어지는 근저에, 식민지 시절의 아픔을 ‘무균질의’ 정치 지도자를 통해 씻고 싶은 대중들의 심리도 깔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박정희가 잔 다르크나 여느 신화에 나오는 전설적인 인물도 아니고, 자신의 위치에서 늘 더 큰 이상을 꿈꾼 인물일 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다만 저자는 박정희의 인물됨의 가장 큰 특징으로 좁은 의미의 정치윤리나 통념을 뛰어 넘은 원대한 스케일에 있다고 얘기한다. 박정희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하는 게 지사적 선택이라는 식의 닫힌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술자리에서 일본 한시를 거리낌없이 읊었고, 일본 젊은 우익들이 궐기했던 2·26사건에서 5·16 쿠데타를 구상했다. 또 전국적인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던 ‘한·일국교정상화’를 끝까지 밀어붙여 관철시켰다. 단지 일본의 것이기 때문에 죄다 부정하는 것은 편협하고,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이 비록 식민지 지배국의 것이라도 배운다는 것, 또한 국가재건의 자금을 위해서는 선조들의 죗값으로 성에 차지 않더라도 받겠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박정희에게 좁은 의미의 민족주의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그의 진면목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여전히 한일회담은 논란이 많다. 일제 36년의 침탈에 비해 청구금액이 너무 적다는 얘기부터 타이밍 문제까지. 그러나 박정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이 그 돈으로 만들어졌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포항제철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박태준 회장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우리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요.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 모두 저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 박태준 (p.352)

또한 저자는 박정희의 군장교 시절 만주체험이 대한민국의 근대화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육사 출신의 엘리트 장교로 구성된 참모부는 거대 만주를 효율적으로 움직이던 관동군의 머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1930년대와 40년대 초반 일본이라는 동북아 선진 모델의 심장부에 들어가 그 시스템을 체득한 것은 선인가 악인가? 결국 박정희의 그런 일제로부터 흡수한 교육과 체험들이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단순한 반일감정과 좁은 민족주의로, 식민지 상황과 박정희를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박정희 이제는 화해의 이름이다

역대 대통령 선호도와 공적 평가에 대한 여론 조사를 하면 늘 1위를 하는 인물이 박정희다. 그런데 이런 대중적인 정서와는 달리 지식인들 사이에서 박정희란 쉬쉬해야 하는 이름이고, 그를 언급하는 이는 눈치 없는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1960~1970년대 내내 반 박정희 정서를 주도했던 지식인들이 지금도 그 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박정희를 둘러싼 극단적인 평가야말로, 대중과 지식인들의 이런 인식적 괴리야말로 오늘날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 혹은 무관심을 드러내는 또 다른 증거다.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브루스 커밍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는 86퍼센트의 해외의존도를 지닌 남한이 세계 경제의 아가리에서 산업적 자립을 쟁취해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공업 추진정책은 멋진 성공인 동시에 한국의 독립선언이었다. 그때부터 한국인들은 어깨를 펴고 자신 있게 걷기 시작했다.”(브루스 커밍스)

또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사람에게 주는 레옹티예프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는 6070년대 경제발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부자나라,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꼭 한국처럼만 하라! 뒷마당에 심어진 뽕나무나 올리브나무만 기르거나 봉제품을 만지작거리지 말고, 초일류에 도전하는 ‘미친 짓’을 벌여야 하며, 이때 반드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괴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박정희를 욕하는 한국 지식사회는 일종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박정희시대가 만들어 놓은 경제개발의 과실은 양껏 누리면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침묵하거나 지엽말단만으로 폄하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목청 큰 역사책’, 그러니까 지난 시절 학문의 이름으로 고정관념과 편견을 증폭시켰던 숱한 박정희 평가가 아닌 맨얼굴의 박정희를 보자고 제안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찬양 일색이 아니다. 우리가 박정희에게서 흠 없는 성인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열린 마음으로 박정희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가 추진해낸 대한민국의 기적의 역사 또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박정희에 비유하는 아카시아 나무의 운명은 경청할 만하다. 아카시아 나무는 다른 수목의 성장을 방해하고, 제멋대로 온 산을 뒤덮는 악성수종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카시아에는 뿌리혹 박테리아가 있어 비료 없이도 잘 자라고, 풍부한 나뭇잎이 거름 역할을 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며, 그냥 내버려둬도 50년쯤 지나면 숲의 주인인 참나무 등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는 유익한 나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 아카시아를 우리 숲에 심은 장본인인 박정희의 운명이 그 아카시아 나무와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지식인들과 학자들이 그 가치를 모르고 편견과 험담, 저항만을 일삼을 때 그걸 묵묵히 견디며 조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거대한 산업의 숲을 만들었던 박정희의 가치, 그건 말할 필요도 없이, 30여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가치일 것이다.
목차
01 한반도 모더니즘 혁명 6070시대 우리는 로켓처럼 날았다 빵빵한 경제의 펀더멘털 세계 최강 탱크 ‘흑표’를 아시나요? 민주화 트로피, 올림픽 트로피 고대인, 산업시대 엔지니어로 진화하다 |테마 6070| 박정희의 민족문화, 한창기의 토박이문화 그런데 장발·미니스커트 단속은 왜 했지? 02 햄릿형 시인, 마키아벨리 정치인 “모든 술은 다 좋다” 천하무적 주당 울보 대통령의 맨얼굴 스무 편 서정시 남긴 ‘문학청년’ 이병철 스타일과 정주영 스타일의 사이 숨겨진 폭력정치 기질 대쪽선비 정구영의 또 다른 길 |테마 6070| 토종 와인 마주앙 탄생비화를 아세요? ‘금오산’ 등 박정희 작사 대중가요 두편 그 시절의 조연들, 김재규·차지철·전두환 03 그 남자 출생의 비밀 상모리는 왜 고향이되 고향이 아닌가 대구사범 때 그는 행복한 청년이었나 제3의 탈출구 만주 발견 함석헌·장준하의 길, 박정희의 선택 지옥의 문턱 ‘남로당’ 체험 그의 베아트리체 육영수의 등장 |테마 6070| 소년 박정희의 ‘근대로 열린 창’, 교회 박정희는 과연 식민화된 군인 맞나? 04 박정희 18년의 A to Z 쿠데타, 총 아닌 마음으로 했다 18년 정치, 탄탄대로인가 살얼음판인가 마지막 비상구 유신체제 중남미 회전문 쿠데타와는 너무나 달랐다 부국강병 꿈의 완성 라이벌 김일성을 제친 역전 대승부 |테마 6070| 너무도 달랐던 5·16과 김옥균의 갑신정변 필리핀과 한국의 뒤바뀐 나라 운명 05 논란 속의 6070시대 ‘지뢰밭’ 민주주의, 본질인가 하이패션인가 지역차별의 멍에 지식인과 언론은 왜 등을 돌렸나 한일회담, 월남 파병 대차대조표 아킬레스건으로 남은 공작정치 10·26과 핵개발, 그리고 ‘미국 변수’ |테마 6070| 한국의 보배 함병춘, 상처받은 지식인 김형효 극과 극의 스타일, 카터와 레이건 06 그와의 싸움, 그와의 화해 ‘성남 얼굴로 돌아보라’ 민중문화운동 학계 검투사들, 반 박정희 칼 뽑다 제3의 목소리, 경제학자 장하준 |테마 6070| 이시형, 김동길, 손학규, 김문수의 박정희 재발견 에필로그| 박정희는 이제 치유와 화해의 이름이다 부록 : 나는 왜 이 책을 썼나? - 저자의 셀프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