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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냉전: 인류학으로 본 냉전의 역사

발행사항
서울 : 민음사, 2013
형태사항
254 p. ; 23 cm
ISBN
9788937487804
청구기호
349.95 권93ㄸ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4795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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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14795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과연 냉전은 두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 총소리가 나지 않는 상상의 전쟁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한반도 해방공간의 역사는 이러한 냉전과 틀을 같이하는가 아니면 달리하는가·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 안에 있는가 아니면 밖에 있는가· 1945년 조지 오웰이 처음 언급한 이후 세계인에게 익숙한 단어가 된 냉전이란 말 속에 아주 기초적인 모순이 있지는 않은가·” - 본문 중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냉전이란 무엇인가

1955년 12월, 미국의 여론조사 회사 갤럽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냉전의 의미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냉전’이란 말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조사원들은 “말로 하는 전쟁, 열전(熱戰)이 아닌 것, 외교전, 무혈 전쟁” 등을 정답으로 분류한 반면, 다음과 같은 답변들은 오답으로 분류했다. “너무 일찍 부모가 되어 없이 사는 아이들, 한 둥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추운 날씨, 한국에서처럼 많은 청년들이 죽어 가고 있는 뜨거운 전쟁, 군복무 중인 내 형제들의 목숨, 모두가 전쟁 중인 곳, 내전.”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히려 저 오답들이 냉전을 더욱 잘 설명해 주는 말처럼 보인다. 이 책 『또 하나의 냉전』은 미국에서 오답으로 분류된 저 반응들이 사실은 전혀 틀리지 않았으며, 냉전은 단 하나의 충돌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중심부에서는 상상의 전쟁이자 평화의 시대로 냉전을 경험했다면 주변부에서는 비공식 전쟁들과 폭력의 시대로 경험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과 제주 4·3 사건, 베트남전쟁, 1965년의 발리 대학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의 역사를 통해 냉전 역사의 안과 밖을 두루 살핀 이 책은 한반도의 미래를 상상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참여관찰법을 통해 살핀 냉전의 역사

이 책의 저자 권헌익은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생생한 현장연구와 구체적인 지역에 기반을 둔 독특한 시각으로 서구 중심 지식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세계적인 인류학자이다. 권헌익은 이 책에서 인류학의 핵심 조사방법인 참여관찰법을 이용해 한국과 베트남이 경험한 냉전이 실제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려 낸다.
그는 이 두 지역에서 세계 정치의 주요 이슈가 일상적인 공동체 생활에서 얼마나 친숙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냉전을 인간의 경험으로 보고, 그 역사를 죽은 이들에 대한 해결되지 않은 기억과 이웃과의 풀리지 않은 관계와 떼어 놓을 수 없는 지역 기반의 지속적인 ‘역사들’로 보게 된 것은 한국과 베트남에서 만나 함께 대화를 나눈 분들 덕분”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는 베트남 중부에 있는 한 마을에 오래 머물며 그 마을의 역사를 쓰는 노력을 하다가 세계냉전에 대한 문헌들을 읽게 되었다. 글로벌 역사의 맥락에서 이야기하지 않고는 그 마을의 역사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마을의 현대사는 세계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한 마을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들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전 당시 벌어진 양민학살을 종교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전작 『학살, 그 이후』를 쓰면서는 베트남 동굴의 학살 현장을 답사하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베트남 경찰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추모할 권리를 박탈하는 폭력과 고통의 시대

유럽에서는 냉전을 상상의 전쟁이자 평화의 시대로 경험했고 한국, 베트남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폭력의 시대이자 비공식 전쟁으로 경험했다. 냉전을 실제 내전으로 경험한 사회에서 냉전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권헌익은 이 책에서 특히 제례 행위에 주목하면서 냉전 시기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냉전으로 인한 상처로 고통받는 사회들을 조망한다.
이 책에는 베트남전쟁 당시 형은 이쪽 편(‘벤따’라고 하며 혁명군 편이다.)에 가담하고 동생은 저쪽 편(‘벤끼아’라고 하며 미국 편이다.)으로 끌려간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상황은 비극적이고 결과는 대개 뼈아팠다. 둘 다 살아서 집에 돌아오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도 동생은 추모 행위를 통해서도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이 형제의 어머니는 죽기 직전 방에 숨겨둔 동생의 영정을 형의 영정 옆으로 옮기며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깐 삼촌은 딴 삼촌을 우러러봤단다. 딴 삼촌은 어린 깐 삼촌을 아꼈고 말이야. 그래서 두 삼촌은 전장에서 만날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라. 나는 산신령께 내 두 자식이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단다. 여신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셨지. 두 삼촌은 아예 만나질 못했으니까. 여신께서 둘이 만나지 못하게 아주 다른 데로 데려가 버리신 거야. 내 기도를 듣고 걱정을 하셨던 게지. 이 세상에서는 절대 못 만나게 둘 다 그분 세상으로 데려가셨으니까. 이제 우리는 여기 모였고, 내 두 자식도 드디어 만나게 됐단다. 난 얼마 더 못 살아. 그러니 얘들아 너희가 두 삼촌을 돌봐 주렴.(117쪽)

이 지역의 많은 개인과 가족은 친족 내의 전사자를 추모하는 가족적 의무와 조국의 혁명 과업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가족을 추모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의무 사이에서 가슴이 미어져야 하는 『안티고네』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는 국가의 법보다는 가족의 법을 택함으로써 죽음을 맞는다. 이와는 반대로 전후 남한의 많은 집안에서 생존은 국가의 법을 따르는 것과, 그럼으로써 친족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를 희생하는 것을 의미했다. 국가가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이 애도할 권리를 억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행동이 아닌 사상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 혈연관계인 모든 사람을 범인 취급함으로써 개인의 사상을 처벌하는 연좌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고통의 역사다.

제주 4·3 사건으로 상처 입은 하귀리의 화해 노력


이 책에는 한국의 제주도에서 4·3 사건으로 분열된 하귀리의 마을 사람들을 만나 복원해 낸 그 마을의 역사와 화해 노력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자는 4·3 사건으로 인한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화해 노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로 하귀리를 꼽고 있다. 하귀리에는 2003년 초 위령단(慰靈壇)이라 쓴 높은 비석이 세워졌는데, 4·3 혼란기 때 남편을 잃었던 할머니들, 빨치산들에 학살당한 마을사람의 장남으로 서울에 정착하여 성공한 사업가 등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내 설치한 화해의 기념물이었다.
제주 4.3 사건은 최근에야 공적으로 인정된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이제야 그 시기에 학살되거나 실종된 친족들을 기리는 추모제를 매년 자유롭게 열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정치적 저항 문화에서 죽은 이를 위한 애도의례는 매우 중요하다. 근래에 폭력에 의한 전쟁 희생자들의 진술이 확산되는 현·의한지난 수십 년 동안 대량살상의 역사가 억눌려 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냉전을 폭력적 내전과 그에 관련된 반공주의 역사라는 형태로 경험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이 대량학살의 역사가 공적 담론으로 떠오른 현·을 한국 정치 민주T있다핵심적인 특징으로 보는 연구자들이 많은데, 제주는 이러한 발전의 차원에서 볼 때 모범이 되는 지역이다.
대량살상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는 좌우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다. 1990년대 초 이후 제주에서 일어난 노력들은 그런 점에서 희망적이다. 제주도는 4·3 사건 때 잔혹행위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기록보존사업과 지자체 차원의 기념사업을 선도해 왔다. 또한 집단 암매장지로 추정되는 곳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으며, 그런 곳들을 역사적 기념지로 보존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죽은 이들을 기리고 위로할 권리를 강화하는 일은 좌우를 넘어서 사회발전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누구의 냉전이며 어떤 냉전인가?


냉전은 끝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이 말하는 충돌이 어떤 차원을 뜻하느냐에 달려 있다. 냉전의 역사를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인 역사로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누군가가 냉전이 끝났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누구의 냉전이며 어떤 냉전인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는 일일 것이다. 또한 냉전이라는 이름하에 20세기 후반부에 국가폭력의 힘에 스러져 간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려 애쓰는 것이다. 냉전은 우리가 그런 비참한 삶과 그들의 썩어 가는 유해의 역사에 주목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2013년은 한국전쟁 정전 60주기가 되는 때이다. 한반도의 해방공간이 그러했듯이 한국전쟁의 역사는 냉전의 역사 안에도 있고 또 밖에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가 세계사의 영역에서는 생경해지는 상황은 불행한 일이며 이제는 이 잘못된 구도가 고쳐져야 한다. 그 첫걸음은 냉전의 역사에 안과 밖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즉 또 하나의 냉전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전쟁의 역사는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의 역사인 것이다.(7쪽, 「한국어 판 서문―오늘날 우리에게 냉전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한국의 정치적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한국전쟁의 기원을 어디에 위치시키는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냉전은 단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수많은 ‘또 하나의 냉전들’로 이루어진 복합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아가 그 글로벌 냉전사 위에 한국전쟁을 적절히 위치시키는 과정이야말로 한국전쟁 정전 60주기를 맞는 2013년 이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목차
서론 1 냉전은 끝났는가 2 20세기 두 컬러 라인 3 미국의 오리엔탈리즘 4 양손잡이 사회 5 민주적 가족 6 다시 보는 탈식민의 역사 7 냉전의 문화란 결론 주 참고문헌 감사의 말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