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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분화와 전문화의 논리에 갇힌 근대적 학문에 대한 반성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나눈 초학제적 대화의 기록
전문성을 얻는 대신 전인성을 상실한다는 것이 근대적 인간의 운명이며, 이것은 근대적 학문의 운명이기도 하다. 근대적 학문은 분과 학문이고, 분과 학문은 사고를 가두는 상자와 같다. 상자 안에 갇힌 학자는 삶의 세계로부터 고립된다. 따라서 근대적 분화 및 전문화의 논리가 드리우는 짙은 그늘을 생각할 때 오늘날 초학제 연구나 융합 학문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융합 학문은 이러한 분화적 사고의 한계를 타파하자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2012년에 출범한 고등과학원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의 패러다임-독립연구단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유도하고 가급적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에서 융합 연구의 길을 개척한다는 과제를 설정했다. 이런 과제를 위해 패러다임-독립연구단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분리되기 이전으로, 나아가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가 분화되기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동서의 사유 패러다임이 서로 교차, 충돌, 순화되는 기회를 실험하여 새로운 보편성의 유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제는 '분류-상상-창조'로 집약되었고 이 세 가지 범주 각각을 매년 초학제 연구를 이끌어갈 선도 주제로 삼았다. 이번에 출간되는 두 권의 책은 '분류'를 화두로 지난 1년 동안 개최한 세미나, 심포지엄, 학술대회의 성과를 보충 정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의 대표 학자들(김우창, 장회익, 이태수, 김남두, 이준규, 한자경, 장석만, 김진석, 김상환, 이용주, 심경호 등)이 나눈 초학제적 대화를 담고 있으며, 넓은 관점에서 분류의 문제에 접근한 귀한 사례로서, 향후 국내외 초학제 연구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초학제연구인가?
융합 연구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세부 학문 분야 내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연구, 다른 학문 분야 사이의 다학제 연구, 융합의 정도가 더 심화된 학제간 연구 등이 있다. 학제간 연구가 성숙하면 물리화학, 생화학, 인지과학, 생물물리와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지향하는 초학제 연구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의 융합 연구를 지향한다. 초학제 연구는 사고방식마저도 다른 '먼' 학문 분야 사이의 융합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 새로운 학문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다학제 연구와 학제간 연구의 결과물을 비빔밥이나 샐러드에 비유한다면, 초학제 연구는 음식 재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고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는 스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초학제 연구는 태생적으로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진화하기 전 단계에서 수행되는 활동이어서 기존의 대학 조직이나 연구 지원 체계에서 제도적으로 안착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협동 과정이나 융합 연구 조직으로도 아직 미흡하다. 국내에서는 대학과 연구 기관들에서 많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 내에서는 연구자들 사이의 구속력이 적어서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지 못한 한계가 있다. 외국에서는 대학 부설 고등연구원 같은 조직이 일회적인 연구의 한계점을 극복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현재 고등과학원이 초학제 연구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고등과학원은 수개월 단위로 방문하는 국내외 교수와 고등과학원에 채용된 연구원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초학제 연구의 결과물이다.
'분류'의 논리에 대한 검토는 융합의 논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
초학제 연구의 1차 주제로 분류를 선택한 이유는 분류가 합리적 사고의 모태일 뿐만 아니라 학문 분화의 논리 자체를 지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합의 논리는 분석의 논리를 토대로 하고, 해체의 논리는 구성의 논리를 반복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분류의 논리에 대한 검토 없이 융합의 논리를 도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융합의 방법론적 안정성은 분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무르익을 때만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초학제 연구의 길을 개척할 때는 분류의 문제부터 공략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분류는 가장 초보적인 과학적 행위이므로 모든 학문 분야에서 똑같이 제기되는 주제이고, 따라서 서로 다른 학문들을 이어주는 가교가 될 수 있다. 분류의 문제는 다양한 학문이 만나고 헤어지는 교차로 혹은 섬이라 할 수 있다.
2권 『분류와 합류: 새로운 지식과 방법의 모색』
― 분류의 문제를 통해 분과 학문들의 보다 넓고 깊은 합류의 가능성을 개척한다
이 책은 분류의 문제를 둘러싼 과학과 인문사회예술 등 다양한 관점의 맞물림 관계에 접근하기 위해 11명의 각 분야 대표 학자들이 '언어', '인과', '통합', '문화', '상상', '창조' 등의 1차적 주제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총론 성격의 제1부 「주제 강연」 (초학제 연구의 문제들: 분류, 상상, 창조)에서 김상환은 초학제 연구를 과거의 통합 학문(통섭)의 이념과 구별하면서 초학제 연구가 부딪히는 방법론적 난점의 해결 방안을 논구한다. 그리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립, 나아가 동서 사유의 대립을 뮈토스와 로고스의 대립으로 옮기되 그 이중적인 대립의 간극을 동시에 횡단할 인식론적 가능성을 정보가 범주(분류의 단위)로, 나아가 과학적 개념(설명의 단위)으로, 그리고 마침내 은유적 도식(융합의 단위)으로 진화하는 논리적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모색한다.
제2부 「분류와 언어」는 범주론과 언어관의 맞물림 관계를 다루는데, 먼저 심경호는 "한 언어의 문법, 그중에도 문장법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구체적 사유 형식이나 사유 방법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것을 규정지어주기도 할 것이다."라는 관점 아래 한문의 구조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되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예를 제시했다. 다른 한편 이태수는 서양 언어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사이의 상호 관련성을 공시적 관점과 통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이 그리스어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립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분석적 성찰을 통해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제3부 「분류와 인과」는 동서의 분류법의 배후에 있는 인과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먼저 동양의 인과론을 맡은 한자경은 인과론이 원자론적 세계관 위에 서 있다면, 연기론은 상호 연관적 세계관 위에 서 있으며, 우리의 표층적 사유(학문적 사유)는 고립된 개체성을 중심으로 한 분별 논리인 반면, 석가가 깨달은 연기는 표층의 고립된 개체성을 넘어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심층 에너지의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서양의 인과론을 맡은 김준성은 데이비드 흄의 인과론 비판에 대한 검토에서 출발하여 인과론에 대한 현대적 논의를 주요한 두 이론적 축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결정론에 토대한 이론'과 '비결정론에 토대한 이론'이 그것인데, 인과는 원인과 결과라는 두 항으로만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라 집단과 배경 조건이 그 핵심적 구성 요인이 되는 관계임을 역설한다.
제4부 「분류와 통합」에서는 먼저 김우창이 윤리적 질서의 문제를 중심에 두면서 동서고금에 따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인식 정형화의 큰 테두리(패러다임이나 에피스테메)가 어떻게 달라져왔는지를 논한다. 윤리적 질서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이 될 수 없고 현실과의 관계에 따라, 또는 그것에 상응하는 진리의 체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론물리학자인 이준규는 현대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지배하는 환원주의적 관점과 여기서 받아들여졌던 상향식 인과관계로 말미암은 이론적 위계 구조를 상세하게 재조명한 후, 앞으로의 과학 이론에서는 상향식 인과관계뿐 아니라 하향식 인과관계에 대한 고려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제5부 「분류와 문화」에서 종교학자인 장석만은 근대 한국에서 세속-종교의 이분법이 형성되는 맥락에 대해 논의하면서 세속과 종교를 상호 의존적인 하나의 개념 쌍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종교에 대한 분석은 종교와 짝을 이루되 종교보다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세속의 의미 영역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반면 사회학자인 김홍중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융합의 논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생(寄生)의 패러다임'이라 명명한다. 융합은 각각의 학문이 마치 기생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학문의 장으로 숨어들어가 그곳의 언어와 규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변형, 표출되는 일련의 예기치 않은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6부 「분류와 상상」에서 먼저 동양철학자인 이용주는 동아시아의 사유를 관통하는 '잡(雜)의 상상력'에 대해 논한다. 동아시아에서는 분류의 단위인 '명(名)'의 논리를 넘어서는 '도(道) 혹은 잡(雜)'이 끊임없이 강조되어왔으며, 잡의 상상력이 쌓아온 유구한 전통은 미래의 초학제 연구를 위해 반드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 서양철학자인 김진석은 소외, 극-소외, 소내(疎內) 등과 같은 독특한 개념들을 활용하여 근대의 정치적 영역에서 인간과 공동체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추적하였고, 마침내 현대는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자유와 폭력이 괴이하게 병존하는 데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겹치고 교차하면서 세계의 내부를 만들어가는 시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총서(KIAS Transdisciplinary Research Library)]
고등과학원은 기존 학문 제도와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다 창조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각 학문 분야의 연구 주제 및 방법 간의 대화와 교류를 통해 과학 연구와 과학 문화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총서는 기초이론과학과 인문사회예술 등 다양한 분야 사이의 1차적이고 수준 높은 대화를 모색하는 초학제 연구의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나눈 초학제적 대화의 기록
전문성을 얻는 대신 전인성을 상실한다는 것이 근대적 인간의 운명이며, 이것은 근대적 학문의 운명이기도 하다. 근대적 학문은 분과 학문이고, 분과 학문은 사고를 가두는 상자와 같다. 상자 안에 갇힌 학자는 삶의 세계로부터 고립된다. 따라서 근대적 분화 및 전문화의 논리가 드리우는 짙은 그늘을 생각할 때 오늘날 초학제 연구나 융합 학문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융합 학문은 이러한 분화적 사고의 한계를 타파하자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2012년에 출범한 고등과학원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의 패러다임-독립연구단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유도하고 가급적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에서 융합 연구의 길을 개척한다는 과제를 설정했다. 이런 과제를 위해 패러다임-독립연구단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분리되기 이전으로, 나아가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가 분화되기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동서의 사유 패러다임이 서로 교차, 충돌, 순화되는 기회를 실험하여 새로운 보편성의 유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제는 '분류-상상-창조'로 집약되었고 이 세 가지 범주 각각을 매년 초학제 연구를 이끌어갈 선도 주제로 삼았다. 이번에 출간되는 두 권의 책은 '분류'를 화두로 지난 1년 동안 개최한 세미나, 심포지엄, 학술대회의 성과를 보충 정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의 대표 학자들(김우창, 장회익, 이태수, 김남두, 이준규, 한자경, 장석만, 김진석, 김상환, 이용주, 심경호 등)이 나눈 초학제적 대화를 담고 있으며, 넓은 관점에서 분류의 문제에 접근한 귀한 사례로서, 향후 국내외 초학제 연구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초학제연구인가?
융합 연구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세부 학문 분야 내에서 이루어지는 공동 연구, 다른 학문 분야 사이의 다학제 연구, 융합의 정도가 더 심화된 학제간 연구 등이 있다. 학제간 연구가 성숙하면 물리화학, 생화학, 인지과학, 생물물리와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지향하는 초학제 연구는 이보다 더 넓은 의미의 융합 연구를 지향한다. 초학제 연구는 사고방식마저도 다른 '먼' 학문 분야 사이의 융합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 새로운 학문을 창출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다학제 연구와 학제간 연구의 결과물을 비빔밥이나 샐러드에 비유한다면, 초학제 연구는 음식 재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고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는 스프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초학제 연구는 태생적으로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진화하기 전 단계에서 수행되는 활동이어서 기존의 대학 조직이나 연구 지원 체계에서 제도적으로 안착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협동 과정이나 융합 연구 조직으로도 아직 미흡하다. 국내에서는 대학과 연구 기관들에서 많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 내에서는 연구자들 사이의 구속력이 적어서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지 못한 한계가 있다. 외국에서는 대학 부설 고등연구원 같은 조직이 일회적인 연구의 한계점을 극복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현재 고등과학원이 초학제 연구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고등과학원은 수개월 단위로 방문하는 국내외 교수와 고등과학원에 채용된 연구원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초학제 연구의 결과물이다.
'분류'의 논리에 대한 검토는 융합의 논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
초학제 연구의 1차 주제로 분류를 선택한 이유는 분류가 합리적 사고의 모태일 뿐만 아니라 학문 분화의 논리 자체를 지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합의 논리는 분석의 논리를 토대로 하고, 해체의 논리는 구성의 논리를 반복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분류의 논리에 대한 검토 없이 융합의 논리를 도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융합의 방법론적 안정성은 분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무르익을 때만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초학제 연구의 길을 개척할 때는 분류의 문제부터 공략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분류는 가장 초보적인 과학적 행위이므로 모든 학문 분야에서 똑같이 제기되는 주제이고, 따라서 서로 다른 학문들을 이어주는 가교가 될 수 있다. 분류의 문제는 다양한 학문이 만나고 헤어지는 교차로 혹은 섬이라 할 수 있다.
2권 『분류와 합류: 새로운 지식과 방법의 모색』
― 분류의 문제를 통해 분과 학문들의 보다 넓고 깊은 합류의 가능성을 개척한다
이 책은 분류의 문제를 둘러싼 과학과 인문사회예술 등 다양한 관점의 맞물림 관계에 접근하기 위해 11명의 각 분야 대표 학자들이 '언어', '인과', '통합', '문화', '상상', '창조' 등의 1차적 주제에 대해 고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총론 성격의 제1부 「주제 강연」 (초학제 연구의 문제들: 분류, 상상, 창조)에서 김상환은 초학제 연구를 과거의 통합 학문(통섭)의 이념과 구별하면서 초학제 연구가 부딪히는 방법론적 난점의 해결 방안을 논구한다. 그리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립, 나아가 동서 사유의 대립을 뮈토스와 로고스의 대립으로 옮기되 그 이중적인 대립의 간극을 동시에 횡단할 인식론적 가능성을 정보가 범주(분류의 단위)로, 나아가 과학적 개념(설명의 단위)으로, 그리고 마침내 은유적 도식(융합의 단위)으로 진화하는 논리적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모색한다.
제2부 「분류와 언어」는 범주론과 언어관의 맞물림 관계를 다루는데, 먼저 심경호는 "한 언어의 문법, 그중에도 문장법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구체적 사유 형식이나 사유 방법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것을 규정지어주기도 할 것이다."라는 관점 아래 한문의 구조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되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예를 제시했다. 다른 한편 이태수는 서양 언어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사이의 상호 관련성을 공시적 관점과 통시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이 그리스어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립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분석적 성찰을 통해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제3부 「분류와 인과」는 동서의 분류법의 배후에 있는 인과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먼저 동양의 인과론을 맡은 한자경은 인과론이 원자론적 세계관 위에 서 있다면, 연기론은 상호 연관적 세계관 위에 서 있으며, 우리의 표층적 사유(학문적 사유)는 고립된 개체성을 중심으로 한 분별 논리인 반면, 석가가 깨달은 연기는 표층의 고립된 개체성을 넘어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심층 에너지의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서양의 인과론을 맡은 김준성은 데이비드 흄의 인과론 비판에 대한 검토에서 출발하여 인과론에 대한 현대적 논의를 주요한 두 이론적 축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결정론에 토대한 이론'과 '비결정론에 토대한 이론'이 그것인데, 인과는 원인과 결과라는 두 항으로만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라 집단과 배경 조건이 그 핵심적 구성 요인이 되는 관계임을 역설한다.
제4부 「분류와 통합」에서는 먼저 김우창이 윤리적 질서의 문제를 중심에 두면서 동서고금에 따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인식 정형화의 큰 테두리(패러다임이나 에피스테메)가 어떻게 달라져왔는지를 논한다. 윤리적 질서는 그 자체로 온전한 것이 될 수 없고 현실과의 관계에 따라, 또는 그것에 상응하는 진리의 체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론물리학자인 이준규는 현대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지배하는 환원주의적 관점과 여기서 받아들여졌던 상향식 인과관계로 말미암은 이론적 위계 구조를 상세하게 재조명한 후, 앞으로의 과학 이론에서는 상향식 인과관계뿐 아니라 하향식 인과관계에 대한 고려도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제5부 「분류와 문화」에서 종교학자인 장석만은 근대 한국에서 세속-종교의 이분법이 형성되는 맥락에 대해 논의하면서 세속과 종교를 상호 의존적인 하나의 개념 쌍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종교에 대한 분석은 종교와 짝을 이루되 종교보다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세속의 의미 영역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반면 사회학자인 김홍중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융합의 논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생(寄生)의 패러다임'이라 명명한다. 융합은 각각의 학문이 마치 기생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학문의 장으로 숨어들어가 그곳의 언어와 규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변형, 표출되는 일련의 예기치 않은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6부 「분류와 상상」에서 먼저 동양철학자인 이용주는 동아시아의 사유를 관통하는 '잡(雜)의 상상력'에 대해 논한다. 동아시아에서는 분류의 단위인 '명(名)'의 논리를 넘어서는 '도(道) 혹은 잡(雜)'이 끊임없이 강조되어왔으며, 잡의 상상력이 쌓아온 유구한 전통은 미래의 초학제 연구를 위해 반드시 되살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 서양철학자인 김진석은 소외, 극-소외, 소내(疎內) 등과 같은 독특한 개념들을 활용하여 근대의 정치적 영역에서 인간과 공동체의 관계가 변화되는 과정을 추적하였고, 마침내 현대는 서로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자유와 폭력이 괴이하게 병존하는 데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겹치고 교차하면서 세계의 내부를 만들어가는 시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총서(KIAS Transdisciplinary Research Library)]
고등과학원은 기존 학문 제도와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다 창조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각 학문 분야의 연구 주제 및 방법 간의 대화와 교류를 통해 과학 연구와 과학 문화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총서는 기초이론과학과 인문사회예술 등 다양한 분야 사이의 1차적이고 수준 높은 대화를 모색하는 초학제 연구의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주제 강연
초학제 연구의 문제들: 분류, 상상, 창조 | 김상환
제2부 분류와 언어
한문 문언 행문 관습과 동아시아 사물 분류 방식의 상관관계 | 심경호
범주 분류 체계와 언어적 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중심으로 | 이태수
제3부 분류와 인과
불교의 연기론에 담긴 '표층-심층 존재론' 해명 | 한자경
인과에 대한 형이상학과 과학: 어떻게 분류하고, 무엇을 조건화해야 하는가? | 김준성
제4부 분류와 통합
문명의 에피스테메: 윤리와 진리 | 김우창
과학의 위계 구조와 계층 간 상향식/하향식 작용 | 이준규
제5부 분류와 문화
세속-종교의 이분법 형성과 근대적 분류 체계의 문제 | 장석만
융합인가 기생인가?: 『무진기행』의 몇 가지 모티프를 통한 성찰 | 김홍중
제6부 분류와 상상
동아시아 분류 사유와 '잡'의 상상력 | 이용주
초월/포월, 소외되기/소내되기/소내하기: 한국어 개념으로 철학하기 | 김진석
엮은이 및 글쓴이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