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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간: 2008-2013

개인저자
이명박
발행사항
서울 : RHK(알에이치코리아) , 2015
형태사항
798 p., 도판 [32] p. : 삽화, 초상 ; 24 cm
ISBN
9788925555102
청구기호
340.4 이34ㄷ
일반주기
색인수록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5518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5518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MB 정부 5년을 함께했던 참모들과의 집단 기억

“대통령이기에 좌절할 수 없었다!”
한.미 FTA, 광우병 사태, 4대강 살리기, 자원 외교 등
이명박 정부의 한 일과 못다 한 일

새로운 미래를 위해 우리는 쉬지 않고 달렸다!


2013년 2월 대한민국 제17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다. 그는 퇴임 후 그해 5월부터 회고록 집필에 착수하여 1년 10개월의 집필 기간을 거쳐 퇴임 후 2년 만인 다음 달 2일 회고록을 출간한다.
책 제목은 《대통령의 시간》(알에이치코리아 출간). 실용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선진화를 내걸고 쉬지 않고 달린 재임 5년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이명박 정부 5년은 출범하자마자 광우병 사태와 세계 금융위기라는 대내외적 도전에 직면한 ‘위기의 시간’이었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책으로 한국 역대 최고의 국가신용등급을 받은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4대강 살리기 사업, 해외 자원 외교, 친서민 정책 등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나아간 ‘일머리를 아는 대통령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 전 대통령은 “기억이 용탈돼 희미해지기 전에 대통령과 참모들이 생각하고 일한 기록을 가급적 생생하게 남기고 싶었다”고 그 소회를 밝혔다.
《대통령의 시간》은 정책 위주의 회고록이다. 쓰나미처럼 덮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생각과 토론을 거쳐 정책을 결정했는지, 왜 한.미 관계를 복원해야 했으며 어떻게 G20 정상회의에 동참하게 됐고 서울 회의를 유치할 수 있었는지, 대북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기 위한 철학과 대처방안은 물론 중국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4대강 살리기와 녹색성장, 세종시 문제에 대한 철학과 추진 배경, 추진 과정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에피소드나 뒷이야기도 많이 찾아내 수록했다.
책은 총 12개장 800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나는 대통령을 꿈꾸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과 현대에서 보낸 27년 그리고 통치가 아니라 경영을 하고 싶었던 대통령 이명박의 개인적인 스토리가 담겨 있다. 2장에서부터 11장까지는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 제반 정책을 설명한다. 마지막 장은 <아쉬움을 뒤로하고>로 정책의 아쉬운 점을 담았다.
《대통령의 시간》은 이명박 전 대통령 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해 구술되어 집필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퇴임 후 매주 열린 회고록 회의에 참석한 전직 장관과 수석들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발굴해낸 것이다. 회고록 집필을 위해 2013년 5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1년 6개월간 매주 회의를 가졌다. 두 차례의 워크숍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회고록이지만 개인 회고록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참모들의 집단 기억을 기록한 책이다.
선진화를 내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정 원칙처럼 IT 시대에 발맞춰 전자책이 종이책과 동시 발간된다. 대만과 중국판도 출간 예정이다.
목차

서문_ 위기 속에서 미래를 본다

1장 나는 대통령을 꿈꾸지 않았다
1. 가난과 어머니
“나는 미국에 빚진 게 없습니다” | 헌 바지를 얻어 입고 싶었던 소년 | 거지 친구가 준 교훈 | 간신히 야간 상고에 진학하다 | 한겨울의 밀짚모자 | 희망이 없는 나날들 | 청계천의 헌책방 | 시장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하다 | 학생회장에 출마하다 | 6·3 민주화운동의 주동자로 투옥되다 | 옥중에서 만난 어머니

2. 현대에서 보낸 27년
박정희 대통령 귀하 | 목숨 걸고 금고를 지킨 말단사원 | 2년 만에 현장 관리 책임자가 되다 | 부모님의 유산 | 극심한 반대 속에 시작된 경부고속도로 건설 | 일을 장악하다 | 도로를 파헤치다 | 35세 사장 | 박정희 대통령의 쓸쓸한 뒷모습 | 무소불위 국보위에 맞서다 | 북방과 교류의 문을 열다 | 고르바초프, 북한 핵 개발을 경고하다 | 정주영 회장과의 결별

3. 통치에서 경영으로
“정주영 후보의 사생활을 폭로하세요” | 서울시장 경선으로 YS와 충돌하다 | ‘정치 1번지’ 종로에서 당선되다 | 의원직을 사퇴하다 | 새옹지마, 환경에 눈 뜨다 | 사람 중심의 도시 구상 | 가난의 대를 끊어라 | 서울광장을 시민 품으로 | 내가 꿈꾼 친환경 문화 도시 서울 | 청계천을 열다 | “모든 문제는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 서울숲 조성과 시내버스 개혁 | 정책 연구 중심의 선거 | 17대 대통령에 당선되다


2장 극복하지 못할 위기는 없다
4. 내부로부터의 도전 광우병 사태
노 대통령의 거절 | 대미 수출 위기를 부른 ‘뼛조각 사건’ | 덫에 걸린 한·미 쇠고기 협상 |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 걷잡을 수 없이 퍼진 광우병 괴담 | 정치 세력의 시위 참가 | 청와대를 점령당하는 한이 있어도 | 재협상과 추가 협상 논쟁 | 가슴 아픈 1기 참모진의 퇴진 | 잃은 것과 얻은 것

5. 날벼락 같은 세계 금융위기
위기의 서막 | 또 하나의 괴담 ‘9월 위기설’ | 해외 언론도 “한국 경제 침몰 위기” | 다급한 은행들 | 일하다 발생한 실수는 면책하라 | 미 연준, “통화스와프가 뭔지나 아느냐” | 발등의 불을 끈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 때론 저돌적인 것이 효과가 있다 | 중국과 손잡고 일본과의 체결을 성공시키다

6. 선제적이고 과감하며 충분하게
거시건전성 제고 3종 세트 | 신년 업무 보고를 앞당기다 | 사상 최대 추경 | 임기 내내 계속된 비상경제대책회의 | 현장이 해결책이다 | 크게 아프다

7. 위기는 기회다
0.2퍼센트의 감격 | 교과서적 경제회복을 이룬 한국 | 이어진 유럽발 재정위기 | 통화스와프 확대 전략 | 균형 재정 선언 | 사상 최고 국가 신용등급을 받다


3장 외교의 지렛대, 한·미 관계 복원

8. 캠프 데이비드의 우정
성숙한 세계국가의 꿈 | 동심원 외교 | 세계로 향하는 첫걸음 | 부시와 쌓은 우정 | 미 대사관 앞 장사진 사라지다 | “내 친구 이명박을 소개합니다” | 일주일 만에 바로잡은 독도 표기 | 아프가니스탄 지원 요청 | 부시, 눈시울 붉히다

9. 오바마와 한·미 FTA를 완성하다
첫 통화 | 북한 주민 변화에 초점을… | 로커스(ROK+US) 형제 | 한·미 FTA 타결을 위한 노력 | 경제적·전략적 윈윈 게임 | “부패한 지도자를 지원하지 마십시오” | “의료보험 개혁, 꼭 추진하십시오” | 또다시 불거진 쇠고기 문제 | “이 대통령, 실망했습니다” | 대통령의 ‘말값’ | 오바마의 묵인하에 공화당 원내대표를 만나다 | 펜타곤에서의 안보 브리핑 | 미 상·하원 동시 처리의 파격 | 6·25 참전 의원들의 거수경례 |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팀의 야구모자

10.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전작권 연기, 2012년은 취약한 시기 | 3년 8개월 연기하다 | 오랜 숙원, 미사일 지침 개정 | 오바마, “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하라”


4장 진화하는 한·중 관계

11.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일본보다 먼저 중국을 공식 방문하다 | 한·미, 한·중 관계는 제로섬이 아니다 | 달라이 라마, 티베트 그리고 대만 | 쓰촨성 대지진 현장을 찾다 | 최초로 중국 영토에 발을 디딘 국군 수송기 | 후진타오의 첫 방한 | 서울숲에서 녹색 포옹을 하다 | 한·중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다

12. 달라지는 대북 자세
원자바오에게 북한 어뢰 설계도를 보여주다 | “얼굴 붉힐 일 없기 바랍니다” | 연평도 포격 이전과 이후 | 북한과의 관계 재설정

13. 한·중 관계의 질적 변화
한·중 FTA 협상 개시 |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문제 | 탈북자 문제의 조용한 처리 | 후진타오에게 통일 한국을 얘기하다 | “역사의 이치가 그렇게 되겠습니까?”


5장 원칙 있는 대북정책

14. 대북정책의 패러다임 변화
취임식에 북한이 온다? | 대북정책 DNA가 바뀌다 | 핵 포기와 경협은 병행해야 | 북한 인권, 대북정책의 또 하나의 축 | 금강산 박왕자 씨 피격 사건 | 실리 추구는 공산국가도 마찬가지 | 북한의 새 정부 길들이기 | PSI에 전면 참여하다 | 그랜드바겐을 제안하다 |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에 맞서 |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겠다

15.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과 천안함·연평도 도발
북한 조문단의 방문 |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있다 | 원자바오, “김정일이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다” | 싱가포르 접촉 중단 | 또다시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고 | 만남을 위한 만남은 이제 그만 | 천안함 폭침, 되풀이된 도발 | 북한 어뢰 잔해를 찾다 | 5·24 조치 발표 | 연평도 포격과 교전수칙 변경 | 추가 도발 시 몇 배로 응징하라 | 중국, “도발하면 북돕지 않겠다”

16.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
평양과 서울, 뉴욕, 베이징 3단계 접촉 | 원자바오, 또다시 남북 정상회담을 거론하다 | 충격 받은 김정일, 급거 귀국 | 김정일 사망 | 진정한 광복은 통일 | 통일비용, 지금부터 준비해야 | 포격 위협 속의 애기봉 트리 점등식 | 왜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나


6장 그래도 일본은 우방이다

17. 한걸음씩 미래로
셔틀 외교의 복원 |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한다 | 하토야마, “역사 직시할 용기 있다” | 아쉬운 퇴진 | 한국을 특정해 사과한 ‘간 나오토 담화’ | 조선왕조 의궤를 돌려받다 | 일본 원전 피해 지역 방문 | “영토의 ‘영’자만 꺼내도 정상회담 안 한다”

18. 우려스러운 일본의 우경화
천지개벽 두 번 해도 독도는 우리 땅 | ‘위안부’ 해결할 마지막 시기 | “제2, 제3의 소녀상 계속 세워질 것” | 위안부 문제 해결 9부 능선을 넘다 | 한·미·일 공조 흔드는 일본 우경화 | 대통령이 독도 땅을 처음 밟다 | 조용한 외교? 무엇을 얻었나 | 일왕이 전한 메시지

19. 정례화한 한·일·중 정상회의
3국 정상회의를 제안하다 | 갈등 있어도 계속해야


7장 외교의 새 지평을 열다

20. 러시아와 북방 개척의 꿈
옛 소련과의 인연을 다시 잇다 | 북한 경유 가스관 사업, 러시아가 설득하기로 | 천연가스 도입 양해각서 | “통일 한반도는 러시아에 도움”

21. 신아시아 외교 Ⅰ: 중앙아시아
‘신아시아 외교’를 선언하다 | 매년 만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 우즈베키스탄에 미국과의 대화를 권하다 | 카자흐스탄, 사우나 초대에 폭탄주로 답례하다 | 파격으로 일관한 나자르바예프

22. 신아시아 외교 Ⅱ: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유도요노 내외와의 만남 | 경제개발의 주 파트너는 한국 | 베트남 찌엣 주석과 형제의 의를 맺다 | 베트남 신부 살해 사건의 충격 | 미얀마에 민주화를 권하다 | 북한과의 무기 거래 중단 약속 |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만남


8장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하여

23. 세계를 경제 영토로, 동시다발 FTA
통상대국의 꿈 | 참모들도 “정치적으로 손해” | 한·미 FTA, 말 바꾼 지도자들 | 국회를 찾아가다 | 몸싸움에 최루탄 투척까지 | 미국보다 먼저 EU와 FTA 타결 | 볼가 강변의 저녁 술자리 | 가시화하는 성과들 | 세계를 경제 영토로

24. G20 정상회의 참여와 서울 유치
G14와 G20 힘겨루기 | 부시의 결심 | ‘보호무역주의 동결’을 관철하다 | 서울 G20 정상회의 유치의 숨은 공신 러드 | 프랑스가 다시 G14 체제로 가려 한다 | G20 정상을 서울에서 보다 | IMF 총재, 1997 외환위기 때 잘못을 시인하다 | 개도국 지원 패러다임을 바꾸다 | 막바지까지 미·중 갈등 | 퍼스트레이디 설득 작업 |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 도울 때는 두 손으로

25. 핵안보정상회의 유치
오바마,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를 제안하다 | 메드베데프의 제안은 거부되고

26. 원전 수출국 반열에 서다
몇 차례나 미뤄진 UAE 왕세제와의 통화 | “그렇기 때문에 뒤집을 수 있다” | 중동 왕족의 화법 | 기회의 문이 열리다 | 프랑스에 대응 시간을 주지 마라 | ‘100년의 우정’을 약속하다 | 세계 4대 원전 수출국이 되다 | 왕세제가 준 두 가지 큰 선물 | 자원 외교는 미래의 생존 문제

27. 작전명 ‘아덴만의 여명’
삼호주얼리호 피랍 | 1차 구출 작전 실패 | 잠 못 드는 밤, 대통령직의 무게 |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 테러와의 타협은 없다


9장 5년 대통령이 100년을 보다

28. ‘그린 뉴딜’ 4대강 살리기
유럽을 통합시킨 운하 | 안창호 선생과 박정희 대통령도 | 유럽에서 운하를 배우다 | 물길 따라 갈등의 벽도 무너진다 | 정치 논리에 휘둘린 대운하 | 4대강 살리기로 금융위기 해법을 찾다 | 경기 부양·일자리 창출·재정지출 확대 | 국제사회의 ‘그린 뉴딜’ 평가 | 전남 도의원들, “섬진강도 포함” | 덤프트럭 19만 대의 쓰레기 | 공세 또 공세 | 타이 총리의 기술 공유 요청 | 기록적 가뭄의 시험대 | 4개 태풍과 호우에도 범람 ‘제로’ | 센 강에 34개, 템스 강에 45개의 보가 있어 | 큰빗이끼벌레 괴담 | 유엔환경계획, 세계물협회의 4대강 평가 | 녹색강국으로, 4대강 자전거길

29. 녹색성장, 세계 언어가 되다
조지프 나이, “의제 설정 능력 갖추라” | 얼리무버의 역발상 | 경제와 환경의 공존 ‘녹색성장’ | 청계천과 서울숲 | 기후변화 대응 입법 통과 | 글로벌녹색성장기구를 창설하다 | 녹색기후기금 본부 유치에 나서다 | ‘절대 불리’를 뒤집고 | 글로벌 리더십의 지름길 | 반기문, 조국에 대한 자부심 | 그린란드 방문 | 북극항로 개척에 참여하다

30. 안타까운 세종시
균형 발전 위해 수도 옮긴다니 | 충청도의 위력 | 갈지자 행보, 한나라당 |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쁜 ‘수도 분할’ | 세종시를 명품 도시로 | 경제부처가 세종시에 있었다면 | 다수 참모들은 신중론 | 대통령의 양심으로 | 잘못 끼운 첫 단추 | 박근혜 전 대표와의 만남 | 충청도민과 국민께 사과하다 | 국민투표를 고민하고 | 과비벨트와 대기업 유치를 대안으로 | 반대또 반대 | 지방선거 충청권 참패로 동력 상실 | 판단은 역사의 몫으로


10장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

31. 친서민 중도실용을 다시 세우다
전통시장을 돌보다 | 진보의 장점을 포용한 서민금융 | 미소금융과 햇살론, 바꿔드림론 | 무상복지 논쟁 |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 양면성을 가진 부동산정책 | 거품을 걷어내니 거래가 실종되다 | 투기에서 주거로 의식 변화

32.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비가 올 때는 우산을 빼앗지 말아야 | 기업을 살리기 위한 과감한 자금 지원 | 경제위기 때 가장 힘든 것은 서민이다 | 외국 정상들도 궁금해한 일자리 나누기 | 동반성장,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 | 그 회사에는 사장실이 없다 | 경제장관들도 반대한 동반성장

33. 양날의 칼, 물가·환율·금리·감세정책
고유가, 고물가 | 저환율정책의 위험성 | 물가와의 전쟁 |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로 감세정책을 펼치다 | 최고 구간 감세는 나도 반대 |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 은행의 도덕적 해이

34. 신고졸시대를 열다
고졸 출신이 대우 받는 사회 | 독일의 명장 굴뚝청소부 | 한국형 마이스터고를 만들다 | 관건은 기업과 정부의 지속적 관심


11장 문화·과학강국이 살 길이다

35. 삼수 만에 성공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세 번 울지는 않겠다 | 이건희 사면의 승부수 | 대통령부터 김연아까지 총력전 | 먼저 아시아를 공략하라! | 2차 가면 위험, 1차에서 끝내자

36. 선진 일류 국가는 문화 국가
문화가 해법이다 |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짓다 | 산 넘어 산, 경호처와 서울시문화재위원회 | 세계는 우리를 본받겠다는데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 | 프랑스에 간 외규장각 도서가 돌아오다 | “나도 K-POP 가사 못 알아들어요”

37. 과학강국을 위한 새로운 도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 |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새로운 출범


12장 아쉬움을 뒤로하고

38. 한 일과 못다 한 일들
전봇대 뽑기 | 17년 만의 농협 개혁 | 노·사·정 대타협이 일궈낸 노동법 개정 | 소비자 편의 향상을 위한 약사법 개정 | 사회복지통합망 구축 | 기득권의 저항, 아쉬운 행정구역 개편 실패 | 공공기관 선진화 노력과 한계

39. 109번의 라디오 연설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자 | 위대한 국민의 부름 받은 5년, “영광이었습니다”

후기_ 열정은 길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