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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미술과 분단미술: 작품으로 본 북한과 우리 안의 분단 트라우마

개인저자
박계리 지음
발행사항
파주 :,아트북스,,2019
형태사항
364 p. : 천연색삽화, 초상 ; 23 cm
ISBN
9788961963619
청구기호
609.11 박14ㅂ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7605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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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17605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북한을 만든 미술, 분단이 만든 미술
북한에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며,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우리 안의 분단 트라우마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2018년부터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리고, 올해는 북미정상이 비무장지대에서 만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그렇게 한반도의 냉전종식과 통일을 향한 화해와 평화의 무드가 조성되는 듯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도 빠지지 않았다. 남북의 화해를 견제하듯 일본이 경제전쟁을 도발했고,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을 빌미로 미사일을 날리며 연일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북한에 관한 다큐와 보도가 증가하는 등 북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북한미술―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2018. 9.7-11. 11), <아름다운 동행―평화, 꽃이 피다>전(2018. 9. 14-2019. 1. 31), <국회 남북미술전>(2019. 3. 11-5.10), <평화, 하나 되다>전(2019. 4. 6-6.30) 같은 북한미술을 다룬 전시회도 눈에 띄게 늘었다. 『북한미술과 분단미술』은 이런 현실에서 남북 분단이 빚은, 남북한 작가들의 미술작품을 통해 남북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분단 상황이 낳은 두 개의 미술에 주목하다
저자는 신춘문예(2003)에 북한미술을 주제로 등단한 미술평론가이자 근대미술연구자이다. 특히 북한미술에 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북한미술 관련 전시기획에도 참여해왔다. 이번 책은 저자가 그동안 천착해온 북한미술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작품을 들여다본 것이다. 덕분에, 작품으로 구현된 북한미술의 특징과 배경 이론이 생생한 실감을 얻는다.
저자의 시선은 북한미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분단 상황을 중심에 두고, 남한미술 속에서도 분단과 관련된 작품에 주목한다. 이 책은 강점은 여기에 있다. 분단에 따라 각기 다른 환경에서 전개되어온 북한미술과 남한 작가들의 미술을 함께 다루며 남북한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동안 『북한의 미술』(이일·서성록 공저, 1990), 『북한미술』(이구열 지음, 2001) 등의 북한미술 연구서가 있었지만 모두 ‘저쪽의 미술이야기’여서 일반인의 관심까지는 끌지 못했다. 이 책은 한발걸음 더 들어간다. 작품을 매개로 대중적인 눈높이를 취하되, 남한 작가들의 분단 관련 작품들도 조명하여 두 세계를 동시에 볼 수 있게 했다. 즉 북한미술이나 분단미술이 실은 한반도의 분단현실이 빚은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모습임을 직시하게 한 것이다. 더욱이 오랜 동안 우리가 외면하고 살았던, 분단으로 인한 우리 안의 트라우마를 작품을 매개로 드러내고, 일상에 깃든 분단 트라우마의 실상을 통해 휴전 중인 남북한의 현실과 북한미술도 함께 눈여겨보게 한 점은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작품으로 북한미술을 근접 조명하다
1부는 ‘북한을 만든 미술’이다. 여기서는 크게 우상화와 관련된 작품, 선군정치와 관련된 작품, 자연의 서정성을 표현한 작품, 그리고 북한미술 특유의 장르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로 나누어 소개한다. 북한미술에는 조선화, 유화, 기념비 미술, 모자이크 변화(일명 ‘쪽무이 그림’), 보석화, 수예, 우표 등 장르가 다양하다. 남한의 장르 구분에 비춰 보면 생소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남한의 한국화와 유화에 해당하는 북한의 조선화와 유화도 북쪽만의 특색으로 발전시킨 것이어서 이 역시 낯설다. 저자는 이들을 남한미술의 시각이 아닌 최대한 북한미술의 시각에서 감상한다.
북한에서 미술은, 조형적 언어로 현실을 사상·미학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형상을 통해 인민들의 미학・정서적 교양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북한미술은 인민을 교화하기 위한 선정 선동에 목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미술작품을 통해 북한 사회와 정치의 맥락 및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북한의 모든 미술품이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북한 내부에서 인민들의 교양을 목적으로 제작 및 유통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북한 사회를 읽어내는 분석틀과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36쪽)
김정일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로 제작된 ‘태양상’은 북한 사회 및 정치를 읽는 또 다른 창으로 기능한다. 저자는 ‘태양상’은 죽은 자의 위상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현실적인 최고 지도자의 자리는 김정은에게 내주는 전략의 일환으로 본다. 그리고 이들 초상화의 표정이 결의에 차 있는 것이 아니라 밝게 변한 점에 밑줄을 친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더불어 이들은 더 이상 결사옹위의 주체가 아니라, 영생하는 자로서 이미지를 표상해야 했다. 유훈통치를 통해 현실의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이미지는 무서운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친근한 모습으로의 변모가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권위적인 표정에서 따뜻한 표정으로 이미지를 변경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정면을 향하던 자세는 한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어 사선 구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사선을 따라가다 보면 감상자와 만날 수 있는 친근한 구도로 변경하게 되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29쪽)
이런 변화는 김일성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이미지에서도 확인된다. 초창기 김일성시대에는 목숨을 바쳐서 김일성에게 충성하는 전사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반면에, 김정은시대에는 새로운 이미지가 추가된다. ‘총’과 ‘군대’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이는 북한에서 선군정치가 적극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하는 시점과 연관된다.
“이처럼 김정숙의 이미지는 북한 최고 권력자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부여되어 왔으나 그것은 단순한 김일성의 아내, 김정일의 어머니로서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녀의 이미지는 김정일의 대두와 함께 그 위상이 점점 더 강화되면서 수령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결사옹위의 정신과 선군정치를 대중에게 교양하기 위한 이미지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36쪽)
북한에는 기념비 미술이 많다. 북한에 처음 세워진 혁명 전통 기념비로서 길이 30미터에 60여 명의 조각 군상이 등장하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1967)을 시작으로, 「삼지연 대기념비」(1979),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1971년 건립, 2000년에 증축),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가 제작된다. 북한에서 만드는 혁명적 기념비란 우리식 미술장르로는 ‘조소’에 해당하는데, 수령의 혁명적 작업을 폭넓고 깊이 있게 조형예술화한 수령의 기념비를 칭한다. 이들 기념비 미술의 조형적 특징은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 많은 조각상과 탑, 사적비들을 결합한 광범위한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조형적 특징 때문에 북한미술계에서는 기념비 미술을 제작하는 미술가들에게 기념비 미술의 형상적 특성인 형식의 웅장성과 선명성을 잘 드러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때 웅장성이란, 단순히 작품의 크기와 규모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념비 미술의 조형적 구성, 주위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된다.
이런 대규모 작업은 대부분 만수대창작사를 통해 진행된다. 1958(혹은 1959)년 11월에 창립된 만수대창작사는 북한에서 미술에 재능 있는 인재들을 집결시켜, 당의 직접적인 지도 아래 작품을 통일적으로 진행하도록 한 미술 분야 최고의 집단창작 단체다. 특히 만수대창작사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미술품 제작에 우선 참여함으로써 다른 창작사의 작품제작을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남한미술에는 없고 북한미술에는 있는
북한미술에서는 남한미술에는 부재하는 장르가 있다. 수예, 보석화, 모자이크 벽화 등은 북한에서만 특화된 미술 장르다.
북한의 수예는 기술적인 면에서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로정희가 있다. 로정희는 자신만의 수예기법을 창안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공식수’이다. ‘공식수’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면(面)으로 보고, 모자이크 식으로 놓는 장식수 기법이다. 흔히 수예 작품은 선(線)으로 표현되는 탓에 작품에 선의 맛이 강한데 비해, 로정희의 수예는 면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꽃병풍」(7폭, 1975)처럼 작품이 매우 사실적으로 보이는 힘은 여기서 비롯한다.
보석화는 물감 대신 천연색 돌가루를 기본 재료로 사용하는 장르다. 따라서 날씨 변화나 시간성에 영향을 덜 받아 유화나 수묵채색화에 비해 색채의 영구성을 담보할 수 있다. 또 천이나 종이, 알루미늄판이나 대리석판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를 선택할 수 있고, 야외나 실내, 자연환경과 계절에 관계없이 전시할 수도 있다. 보석화는 북한에서는 주로 야외작품에 먼저 사용했다. 저자는 이러한 효과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주목한다. 우리의 야외 건축 장식물이나 묘지 같은 야외공간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모자이크 벽화도 관심을 모은다. 북한에서는 ‘모자이크 벽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를 북한식 표현인 ‘쪽무이 그림’이라고도 한다. 여러 조각을 모아 큰 한 조각을 만드는 ‘쪽모이’의 북한식 표현이다. ‘쪽무이 그림’은 공예나 그 밖의 미술 장르에서도 부분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산 문제로 야외에 설치된 초상화 등 모든 벽화를 모자이크로 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세밀한 조형이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북한은 우표도 선전선동의 장으로 십분 활용한다. 더욱이 우표는 외국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노출되기 때문에 북한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이미지와 세계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우표들은 1946년부터 2002년까지 4,200여 종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우표 이미지의 주제는 북한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 및 초상화, 국제적 의의를 갖는 행사 및 인물 초상화, 북한의 개성이 반영된 건축물 및 문화예술적 성과들, 인민들을 교양하기 위한 표어들, 북쪽 땅에서 벌어진 유구한 역사와 문화, 자연, 지리, 동식물 등 다양하다.
이밖에도 조선화와 유화로 제작된 그림으로는 정관철의 「보천보의 횃불」, 박문협의 「전후 40일 만에 첫 쇳물을 뽑아내는 강철전사들」, 김의관의 「남강마을 녀성들」, 김성민의 「지난날의 용해공들」, 정종여의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우연일의 「난관을 뚫고」, 조철혁의 「전사들」, 정창모의 「북만의 봄」, 선우영의 「박연폭포」, 김승희의 「분계선의 달」 등이 소개된다. 작가들은 모두 북한미술의 대표선수들이고, 작품은 북한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들이다.

작품으로 우리 안의 분단 트라우마를 읽다
2부는 ‘분단이 만든 미술’이다. 분단 상황이 낳은 우리 안의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일깨우는 작품들이다. 평면작품뿐만 아니라 사진,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평온한 현실의 이면에 깃든 상처를 보여주며, 사람들의 무감각과 잠든 의식에 죽비를 내리친다. 사람들은 뜻밖의 작품을 접하면서 새삼 평온한 일상이 실은 ‘우물 안의 평온’이자 ‘외면하고 산 평온’임을 깨닫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저자에 따르면, 남북의 정치적 대치 상태가 매우 심각해진 이명박,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미술계는 남북 교류가 활발했던 그 전 10년보다 더 차분하게 우리 안의 분단 문제를 직시하는 미술작품이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문자답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술과 정치’라는 화두가 지루하다 싶을 만큼 유행하는 세계 미술계의 현상 때문일까? 덕분에, 1980년대 ‘그림마당 민’에서 용기 있게 현실에 대한 발언을 시작한 선배 작가들과 달리 이들 세대는 대표적인 미술관이나 상업화랑에서, 또 해외에서 관심을 받으며 작업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계주의의 시선에서 한반도를 바라봄으로써, 발생하는 분단 문제를 대하는 자기검열의 해체, 예술적 완성도의 다양성과 발랄함 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의 작업에서 보이는, 일상을 천착하는 진정성의 깊이에서다.”(206쪽)
비록 조·부모세대처럼 6·25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이 역사적 사건의 트라우마는 지속적으로 후세에 전이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2차적 트라우마가 한반도에서 냉전시대가 존립할 수 있는 ‘숨은 힘’으로 기능한다는데 있다.
“내가 겪지 않은 사건 때문에, 즉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사건 때문에 ‘지금 내가 다 아프다.’ 나에게도 역사적 트라우마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은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이해하는 주요 방법론이라 판단된다.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의 자장 속에서 분단에 대한 기억이 제도화되었고, 내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208-210쪽)
이는 여러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형근의 군인들을 찍은 사진들은 어떠한 폭력도 직접적으로 보여 주지 않는다. 남한과 북한은 원칙적으로 휴전 상태에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북한의 상존하는 위협 또한 부재한 듯이 보인다. 저자는 그 속에서 잠복된 역사적 트라우마의 현장을 본다. 그러니까 폭력을 예감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애쓰는 군인들의 모습에서 역사적 트라우마가 한 개인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주목한 것이다.(210쪽)
이부록은 관람자가 ‘전쟁 파병 인증샷’을 찍는 설치작업으로, 우리의 일상이 전쟁터임을 암시하고, 나아가 우리의 일상이 휴전 상태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휴전 상태란 전쟁이 종료된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전쟁이 잠시 멈춘 곳에서 살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쉽게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인증샷을 남긴 6,000여 명의 관람자들의 진지한 사진작품은 우리 일상에 드리워진 전쟁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아타의 사진 DMZ 풍경은 장노출 기법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움직이던 물체가 남기고 간 에너지의 흔적만 화면에 남아서, 풍경은 평온해 보이지만 그 표피 안에는 겹겹이 쌓인 역사적 사건이 에너지로 응축되어 있다. 저자는 이 사라짐은 분단을 극복하고 그 상처의 치유를 은유한다며, “비무장지대를 뒤덮고 있는 자연의 시선으로 보자면,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의 역사도 찰나의 순간일지 모른다. 그런데 우린 벌써 ‘분단’을 불가항력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239)고 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치유, 사라진 정체성의 대면과 화해는 이렇듯 문화적 상상력을 통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임민욱의 퍼포먼스 「비(碑)―워터마크를 찾아서」는, 철원의 옛 수도국 자리에서 죽은 300명의 친일반공인사를 찾아내는 프로젝트다. 어둑한 시간에 불빛을 비춰 300개의 워터마크를 찾는 과정을 곧 애도와 추모의 현장이 된다. 이 추모와 애도의 공간은 오랜 기간 닫혔던 기억, 그래서 망각된 사람들을 다시 불러내는 자리여서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숙연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된다. 왜냐하면 “역사적 트라우마와 대면하는 것은 내 안의 상처 뿌리를 추적하는, 내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244쪽)
한라산 자락에 모여든 사람들의 풍경을 그린, 강요배의 「한라산 자락 백성」(1992)은 아름답지만 실은 핏빛 가득한 4·3사건을 배경을 한 작품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한반도의 통일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중략) 남과 북도 서로를 더 많이 관찰하고 이해하는 단계를 부단히 거쳐야 비로소 합일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나아가 여기서 머물지 않고 다시 서로를 뛰어넘기를, 합일된 남과 북이 다시 다른 차원으로 헤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꿈의 세계, 상상의 세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275-276쪽)

우리 작가가 포착한 세계 속의 북한/북한미술
작가들은 국내를 넘어 세계 속의 북한과 북한미술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의 작품은 북한과 북한미술을 보는 우리의 뒤틀린 시각을 흔들고 바로잡아준다.
최원준의 영상 작품은 북한이 과거 1970~80년대 외교 경쟁이 한창이던 시절, 아프리카에 건설한 다양한 건축물과 기념비,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북한이 아프리카에 건설하고 있는 건축물까지 기록한다. 최원준은 아프리카에 있는 북한미술품을 탐방하며 ‘아프리카 사람들은 북한미술품을 어떻게 바라볼까?’, ‘왜 북한에게 돈을 주고 제작을 의뢰하 였을까?’ 등의 질문을 현지에서 던진다. 그리고 최원준의 영상이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곳은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다.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두 개의 남북한 기념비가 있다. 북한의 「공산주의혁명 승리탑」과 한국의 「한국전쟁 기념비」가 그것들인데, 작가는 이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분단의 증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두 개의 기념비가 공존하는 통일의 미래를 상상한다.
“최원준의 이 작품은 우리가 북한 하면 떠올리는 인식지도의 틀을 아프리카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현재를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가 사는 현재까지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는 것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 길은 이미 한반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최원준의 작품을 통해 새삼 인식하게 된다. 통일을 대비하고자 할 때, 문화적 상상력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307-308쪽)
이런 유의 작품은 또 있다. 북한의 매스게임이 1980년대에 남미에 수출된 이야기를 담은, 고석원과 권성연의 「군중과 개인: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즈」(2016)가 그것. 무려 300년간 식민통치를 받았던 남미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 이 복잡한 나라의 독립을 이끈 지도자 린덴 포브스 샘스 버넘(1923-85)이 마주한 가장 시급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다민족, 다인종으로 구성된 가이아나 국민들에게 어떻게 국가적 정체성을 심어줄 것인가 였다. 이런 고민을 가진 버넘의 눈에 북한의 매스게임이 보여준 단체의 일사불란한 모습, 카드섹션을 통해 드러나는 강력하고 동일한 메시지는 자신이 꿈꾸던 국가의 정체성이 실현된 모습이었다. 고도의 훈련을 통해, 개개인의 움직임을 조율해서 단체의 움직임으로 통합하는 매스게임은 시각적 강렬함만큼이나 지도자들을 매료시켰다. 작가는 이를 소개하며 세계 속의 북한의 흔적을 낯설게 제시한다.
작가들의 시선은 이처럼 한반도 내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로 나아가 세계주의의 시선으로 남북한을 바라본다. 우리는 이를 통해 남북한의 현실과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북한작가와의 공동작업
또 작가들은 다양한 경로로 북한 작가들과의 소통을 모색하기도 한다. 흔히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북한 작가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무의식은 금이 가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김황은 피자 레시피 등이 포함된 영상 작품 「모두를 위한 삐쟈」(2010)를 DVD로 만들어서, 북한 암시장의 불법 한국 드라마 배포 루트를 따라 500장을 북한 주민들에게 배포한다. 놀랍게도, 그 후 약 6개월 동안 북한 주민들에게 사진・메모 등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김황의 작품은 북한으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통해, 그렇게 고립적으로 보였던 북한 사회가 제도권 아래로는 우리 상상과 달리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며 바깥 사회와 소통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북한을 보는 고정된 시선을 흔든다. 이 작품을 본 북한 주민들도 그러하였을 것이다.”(333-334쪽)
이런 점은 함경아의 작품 「추상적 움직임/루이스 ‘무제’ 1960」에서도 확인된다. 작가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모리스 루이스 작품 「무제」(1960)를 밑그림으로 구성해서 누군지 알 수 없고 알 길 없는 북쪽의 장인들게 보낸다. 그런데 북한의 자수 작가들은 이를 대형 자수 작품으로 제작해서 남쪽의 작가에게 보낸다. 이 작품 앞에서 관람자들은 아름다운 작품에 수를 놓은 이름 모를 북한의 자수 작가들을, 그들이 만든 이미지를 통해 만나게 된다. “북한의 자수 작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한의 작가가 보내온 이미지들을 몇날 며칠 바라보면서 작업하는 동안, 그들 또한 이미지를 통해 남한의 작가를 상상하고 있었을 테다. 이미지는 때론 매혹적이지만, 이미지를 통한 소통은 늘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소통 가능성과 더불어 불안정한 한반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339쪽)
전소정은 영상・드로잉・오브제・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연극・영화・문학 등의 타 예술장르의 특성을 미술에 접합시켜 이야기를 만드는 미술가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관찰해서 이를 자기 내부의 충돌과 전이를 통해 작가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먼저 온 미래」(2015)는 탈북 피아니스트와 남한의 피아니스트가 만나 음악적 대화와 협의를 거쳐 함께 연주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작업이다.
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 내부에도 북한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이, 재단 위에 배치된 대형 모자이크화다. 예수와 남북한의 대표 성인 여덟 명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북한의 만수대창작사 공훈예술가들이 제작한 것이다. 압록강변 단둥 근처 시골에 작은 체육관을 빌려 만수대창작사 공훈예술가들이 40일간 제작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모자이크의 밑그림을 그려 보내면, 단둥에 있는 북한미술가들이 작업하고, 그 내용을 매일 카메라로 촬영해 인터넷으로 보내오면, 이를 다시 보완하는 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작가들은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북한작가들과 공동 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작품들을 적극 소개한다. 이들 작품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위협적인 사회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는 서로 통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우리 사회에는 분단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잠재해 있다. 그런데 이를 자극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일상 속에서 분단 트라우마는 망각된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일깨워주는 작가들의 문화적 상상력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DMZ 공간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우리 모두가 꿈꾼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유럽의 국경을 넘으면서 “왜 국경에 철조망이 없어?”라고 묻지 않는 날을 꿈꾸는 것이자, 우리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쑥불쑥 상상력의 지평선이 막혀 버리지 않는 날을 꿈꾸는 것이다. (중략) 분단 문제를 다루는 권하윤을 비롯한 젊은 세대들의 또 다른 시선이 반가운 것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후배들에게 전이되어, 그 안에 갇혀 있기보다 그들 나름의 시선으로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256쪽)
목차

005 머리말

1부
북한을 만든 미술

1. 우상화, 그리고 조각하다

021 영웅, 가장 크고 높고 진하게
정관철, 「보천보의 횃불」
026 태양이 된 부자, 권위를 벗다
김성민, 「태양상」/리성일, 「태양상」
032 김정숙, 선군의 어머니로 거듭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목숨으로 보위하시는 김정숙 동지」
037 몰골법으로 재탄생한 ‘수령영생미술’
리동건, 「언제나 인민을 위한 길에 함께 계시며」
044 북한 기념비 미술의 시원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1-건립 논쟁
048 율동적으로 형상화한 혁명의 세찬 전진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2-조형적 특징
052 빼어난 경치 속의 웅장한 기념비
「삼지연 대기념비」
057 왜 기념탑 증축인가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
062 끝나지 않은 전쟁을 추모하다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

2. 선군정치의 전사를 그리다
066 “사실주의 기법, 왜 서구에서 찾아!”
김용준, 「춤」
071 리얼리즘의 역작을 그린 노동자 화가
박문협, 「전후 40일 만에 첫 쇠물을 뽑아내는 강철전사들」
078 남강 여인, 억센 손에 장총을 부여잡고
김의관, 「남강마을의 녀성들」
083 조선화로 구현한 입체적 사실감
김성민, 「지난날의 용해공들」
088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의 전선
정종여,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093 비판적 현실주의에서 혁명적 낭만성으로
정현웅, 「누구 키가 더 큰가」
098 계급착취가 투영된 농민들의 생활상
민병제, 「딸」
103 거친 눈보라를 뚫고 올라선 남자
우연일, 「난관을 뚫고」
107 총 대신 하모니카 부는 북한군
조철혁, 「전사들」

3. 자연의 서정성을 ‘응찰’하다
112 풀, 나무, 꽃에 스민 조선의 기백
리석호, 「국화」
118 선군시대 상징이 된 민족의 영산
만수대창작사, 「백두산 3대 장군과 216봉우리」
123 북한미술이 낳은 서정적 표현의 대가
정창모, 「북만의 봄」
129 갈대꽃 흔들림에 분단의 상처를 담다
김승희, 「분계선의 달」
135 치밀한 묘사와 대담한 생략의 묘
선우영, 「박연폭포」
140 강렬한 색채로 옮긴 삼천리 금수강산
한상익, 「국화」
145 김일성을 그린 신여성
정온녀, 「아버지, 오늘의 생산 성과는?」
150 실을 튕겨 개나리를 피우다
로정희, 「개나리와 진달래」
156 “북한 풍경화, 조국 자연의 숭고함을 그려야”
최근슬, 「가을풍경」
160 조선적인 사회주의 미술
문학수, 「풍경」

4. 다양한 장르로 시대 감성을 표현하다
165 조선호랑이 기상을 한 올 한 올 꿰다
리원인, 「호랑이」
170 불변의 재료를 화폭에 담다
신봉화, 「비둘기 춤」
175 고려청자, 다시 현실로
우치선, 「쌍학장식청자꽃병」
179 고려청자에 시대감각을 불어넣다
임사준, 「화병」
183 ‘쪽무이 그림’을 아시나요?
만수대창작사, 모자이크 벽화
187 피 끓는 모성의 절절함을 빚다
조규봉, 「남녘땅의 어머니」
191 우표에 나타난 북한의 사회와 문화
루벤스 탄생 400돌 기념우표


2부
분단이 만든 미술

1. 우리 안의 분단 트라우마

199 꽃에 싸인 전사
이용백, 「엔젤 솔저」
203 P, 북한 계정 리트윗하다가 법정에 서다
옥인 콜렉티브, 「서울 데카당스」
208 ‘군인’, 우리들의 자화상
오형근, 「군인」
212 영화 같은 현실인가, 현실 같은 영화인가
정연두, 「태극기 휘날리며」 -
216 낡은 벙커의 역설적 아름다움
최원준, 「빛의 분수」
221 혼자 추는 왈츠는 왈츠인가?
전준호, 「형제의 상」
226 같은 뿌리, 다른 노래
임민욱, 「소나무야 소나무야」
231 전쟁의 땅에서 전쟁의 삶을 찍다
이부록, 「인간 불법 파병 인증샷」

2. DMZ와 전쟁의 망각
236 철조망의 시간은 찰나다!
김아타, 「온 에어 프로젝트」
240 300개의 비석, 워터마크를 찾아라
임민욱, 「비 300―워터마크를 찾아서」
245 분단시대, 기록과 망각 사이에서
노순택, 「Red House-1 펼쳐들다; 질서의 이면」
249 학이 운다, 아름답고 처연하다
조습, 「일식」 시리즈
253 금지된 땅, 가상현실로 걷다
권하윤, 「Year 489」
257 첨예한 대립 속에 ‘약속’의 시간을 되짚다
김진주, 「약속한 시간의 흐름(동송)」
262 잘린 허리로 혼자 일어설 수 없다
김봉준, 「누운 소」
267 분단체제와 평화체제를 이어주는 램프
이부록, 「평화램프」
272 상처의 한가운데에서 미래를 묻다
강요배, 「한라산 자락 백성」

3. 북한 밖에서 북한을 보다
277 탈북화가, 경계선 위에서 북한을 묻다
선무, 「김정일」
282 경계를 넘어온 여성들, 상처로 그린 산수화
임흥순, 「려행」
287 변월룡,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말하다
변월룡, 「‘해방’을 그리기 위한 습작」
293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하여
김학수, 「평양 남산현 교회」
298 진실은 생활 주변에 있다!
박고석, 「쌍계사 길」
304 아프리카에서 북한의 기념비 미술 흔적 찾기
최원준, 프로젝트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
309 남미 가이아나, 북한 매스게임에 매료되다
고원석·권성연, 「군중과 개인: 가이아나 매스게임 아카이브」
315 전쟁에 휘말린, 3개의 이름을 가진 남자
티모데우스 앙가완 쿠스노,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이야기」
320 생략된 죽음 속에서 애도의 의미를 다시 묻다
안정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짓을 합니다, 제가」
325 북한산을 오르며, 낯선 삶의 독백을 담다
임흥순, 「북한산」

4. 북한 작가들에게 손을 내밀다
330 누구를 위한 피자? 모두를 위한 삐쟈!
김황, 「모두를 위한 삐쟈」
335 한 올 한 올 꿰고 이으며 만나다
함경아, 「추상적 움직임/모리스 루이스 ‘무제’ 1960」
340 ‘빛나는 도시’는 한반도에 세워졌는가?
서현석·안창모, 「Utopias in Two」
345 남북의 피아노, 분단을 넘어선 하모니
전소정, 「먼저 온 미래」
350 함께 만든 성당, 함께하는 참회와 속죄
‘참회와 속죄의 성당’의 모자이크 벽화
354 백두대간이 품은 바위에서 분단을 보다
로저 세퍼드, 「돌강」
359 대결과 폭력, 상처의 나이테를 어루만지다
임민욱, 「절반의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