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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가족에 매인 몸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이 된,
잊기로 했거나 삭제된 이름들
현대 중국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가정 경제와 가족 부양은 물론 중국의 산업 발전과 자본주의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양한 이름으로 차별받는 ‘주변인’에 머물러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소수자이고 비주류이며, 농촌에서 도시로 온 이민자, 농민공으로 ‘다궁메이(打工妹)’라 불린다. 이제 중국 여성노동자들은 본래 몸 바쳐 일했던 자신의 가정뿐만 아니라 다른 가정, 즉 사회를 위해서도 몸 바쳐야 하는 가장 값싼 노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단 한 번도 안정과 보장을 누려본 적이 없는 노동자이자 생산자로 기능한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것과 상관없이 줄곧 존재해 온 이들의 목소리야말로 전 지구적 자본주의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진실하게 메아리치고 있다.
이 책의 여공 이야기는 저층, 계급, 노동, 여성에 관한 것이며 계급과 여성의 명제가 다시금 만나는 현실을 드러낸다. 서문을 쓴 베이징대학교 다이진화 교수는 “계급과 여성이라는 두 이름은 여전히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의제”이지만, 양자가 서로 융합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 때문에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두 의제가 서로 동등함을 잊어버렸다(혹은 잊기로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저자가 인터뷰한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궤적은 제각각이고 주관적이지만, 이는 시대라는 거대한 조류 속 세밀하고도 면면히 이어진,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역사의 흔적이다. 점점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에 눈뜨는 이 여성들, 즉 신노동자들이 쟁취해 만질 수 있었던 사회의 지평선은 바로 생존이었고 이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보장 요구로 나타났다.
소박한 서술 안에 선명하게 드러난 계급과 여성,
겹겹이 둘러싼 가난과 절망의 굴레에도
마주치고 연결되며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가다
1951년생인 뤼슈위부터 1994년생인 쥔제에 이르기까지 각자 다른 시기에 태어나 상황도 처지도 제각각인 여성들은 저자를 만나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전족을 한 할머니 세대를 보고 자라, 사회주의 시기 국유기업에서 일한 50년대생 여성들은 돈을 좇지 않던 그 시기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노동의 성취를 긍정하고 모두가 솔선했던 당시에 비해 현재는 노동자가 고통스러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도시 이주노동자 1세대이자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6,70년대생 이후 여성노동자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이들에게 자아의 성취나 삶의 목표에 관한 고민은 사치였다. 십 대에 도시로 이주해 생산직, 서비스직, 일용직 등 일자리를 전전하며 온갖 역경을 겪었고, 결혼 후에도 가부장적인 남편과의 갈등이나 가사 및 육아 문제에서의 불평등이 가중됐다. 도시민은 아니지만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는 현실에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굴곡마다 머뭇거리고 인내할지언정 이들은 비겁하거나 슬픔에 빠지지 않았다. 때로는 결연하게 도전할 줄 알았고, 차별에 순응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1971년생인 아롱과 1974년생 후이란 등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여섯 명은 회사를 상대로 사회보험 보장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벌인다. 1975년생 정센은 동료들이 해고되자 모두를 위해 할 말을 해야겠다고, “그들을 해고해도 우리가 또 여기 있다”고 소리친다. 1976년생 자오는 노동자 대표로 활동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다 설령 해고되더라도 조금의 후회나 미련도 없을 거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여성들의 말이 이따금 빛을 발하는 순간은 제각기 흩어져 떠돌다가 이처럼 서로 마주치고 연결되어 동료를 대변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전환을 보여줄 때다.
나아가 여성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베이징 노동자의 집에서 활동하는 저자가 인터뷰한 이들 중에는 노동자의 집에서 교육받거나 활동가가 된 80년대생 여성노동자들의 사례가 여럿 등장한다. 1981년생 차이윈과 1986년생 자쥔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여성노동자센터를 설립해 여성노동자들의 여가와 권익활동을 지원한다. 1985년생 돤위는 더 이상 속박을 겪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여성주의 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전업주부가 된 후 느끼던 고통에서 벗어난다. 지독한 차별의 굴레 속에서 절망했던 1987년생 샤오멍은 노동자대학을 이수하고 공익기구에서 일한다. 1988년생 주주는 자신처럼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도서관을 열었다. 서서히 다른 삶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게 된 80년대 이후 출생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점차 노동계급으로 성장하고 있는 신노동자 집단, 그중에서도 여성노동자 집단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운명이 부여한 수난을 깨뜨리는 여성들
생존하기에 존엄하다는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로 늘 전태일을 꼽는 저자는 중국에서 ‘신노동자’의 변화 발전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사회학자이자 활동가다. 중국 신노동자 연구서인 두 전작을 통해 저자는 개인의 운명과 사회 변화의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거듭했고, 노동자의 인생 이야기가 가진 생명력이 집단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의 희망은 하늘에서 나타난 올바른 지도자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보통 사람이 진보 역량을 모아 사회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즉 보통 사람들에게서 생명력과 역량을 볼 수 없다면, 그 사회엔 희망이 없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숙원이던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펴낸 것은 “여성이 받는 억압이 모든 억압 가운데 가장 무겁다”는 말을 늘 기억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과 ‘노동자’가 유기적인 전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른 네 명의 이야기로 추려내기 위해 저자는 100여 명의 여성노동자를 만났고, 이들의 지역과 생활공간에 직접 방문했으며, 총 인터뷰 기간은 6년에 이른다. 대부분의 인터뷰 대상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여성노동자이기에 가난한 가정 형편, 교육 수준, 노동 경력, 결혼과 육아 등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많지만,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운명을 바꾸려는 의지와 갈망이 각자 생생하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 부분에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덧붙였다. 유럽에서 발전사회학을 전공했고 외교관의 부인이던 엘리트가 연구를 위해 만난 활동가를 따라 베이징의 노동자 밀집 지역인 피춘에 자리 잡고, 노동자의 집에서 동고동락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노동자 집단을 향한 저자의 기대와 애정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일생 동안 겪은 모든 일이 노동자의 집에서 일하는 이 인생을 위한 준비 과정 같다”고 하는 저자 뤼투는 여성노동자들의 이름을 부른 이 책을 출간하면서 “이제야 여성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목차
서문 여성노동자 이야기와 주체의 이름 ?다이진화(베이징대학교 중문과 교수)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삶을 증명하고 창조하는 생명력
1951년생 뤼슈위: 지난 시대의 주인공
1955년생 쉐제: 직공들을 위해 중책을 맡다
1957년생 싼제: 생명을 다루는 사명감
1962년생 쑤제: 눈부신 결말을 따라가다
1968년생 쥐란: 18년의 급여명세서
1968년생 아후이: 쓰디쓴 삶과 사랑
1970년생 자오제: 단순하고 평범한 삶
1971년생 아잉: 목걸이와 월급
1971년생 아룽: 우리들은 정당하다
1972년생 리잉: 내 생애 가장 잘한 일
1974년생 후이란: 사랑받는 아내
1975년생 정센: 집과 아이
1976년생 자오: 20년의 세월
1976년생 천위: 자유와 안전
1978년생 루위: 아들을 못 낳으면 어쩌나
1978년생 옌샤: 이혼의 대가
1979년생 아펀: 아름다운 고뇌
1981년생 아젠: 행복과 불행은 함께 온다
1981년생 차이윈 : 모두를 위해 일한 바보
1985년생 돤위: 함께 성장하다
1985년생 광샤: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다
1986년생 펑샤: 말하기 힘든 성과 사랑
1986년생 샤오타오: 길들여지는 것
1986년생 위안위안: 평등의 대가
1986년생 자쥔: 해바라기처럼
1987년생 위원: 얼떨결에 여기까지 오다
1987년생 샤오멍: 병의 원인
1987년생 샤오베이: 혼자인 삶을 선택하다
1987년생 샤오춘: 자책은 가장 큰 고통
1988년생 민옌: 즐거운 신부
1988년생 주주: 특별한 여성
1990년생 샤오링: 반항과 의존, 탐색과 추구
1993년생 왕치: 가방을 메고 출발
1994년생 쥔제: 결혼 준비를 하다
후기 대화의 시작
뤼투 이야기: 네 번의 내 인생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