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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9790 | 대출중 | 2024.10.21 |
지금 이용 불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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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19790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중
- 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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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미국 아시아학회에서 수여하는 제임스 팔레 한국학 도서상 수상작
미군의 북조선 노획 문서 아카이브를 토대로, 구술사를 결합함으로써, 농부, 노동자, 여성의 시각에서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0년까지 북조선에서 진행된 사회혁명에 대한 생생한 모자이크를 제공한다.
★
최근 한국에서 북한 사회의 일상에 대한 소개가 늘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젊은 층을 비롯한 대중의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지상파 종편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북한 사회의 일상과 문화에 대한 정보가 많이 소개되고 다뤄지고 있는데, 이 같은 프로그램들은 남북 간의 이해를 증진하고 민족 동질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널리 권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방송 프로그램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북조선 사회에 대해, 또 그곳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방송들 가운데 나타나는 일부 특정 경향들에 대한 우려의 시선 역시 존재한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젊은 탈북민의 경험을 중심으로 북한의 ‘일상생활’과 문화, 음식, 연애, 놀이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을 “여성화”하거나 “미성숙한 존재”로 그리고 “전근대적인 국가”로 묘사함으로써, 북한을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옛 시절에 대한 “향수와 낭만의 대상으로 의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이 같은 경향은 북한 사회 지도층의 부정과 부패, 사익 추구 행위 등과 결합해, 북한을 비정상적이면서도 왜곡된 기이한 나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북한은 대체로 자본주의 한국의 우월성을 보여 주는 대조점으로서만 주로 소환 ․ 환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이런 모습을 통해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출발점을 없을까?
★ 북조선,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 책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1945년부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1950년까지 북조선에서 진행된 사회혁명의 시기를 살았던 농민과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북조선은 식민지적 근대성과 자본주의적 근대성 모두와 대립하는, 사회주의적 근대성이라는 대안적 경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일제 식민 통치의 갑작스런 종언과 더불어 ‘집단적 흥분’을 자아낸 해방의 열기, 토지개혁,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선거, 문맹퇴치 운동 등을 통해 세상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한반도 이북 지역의 사람들은 당시를 어떻게 경험했고 또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이 책은 바로 북조선 역사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당시 한반도 이북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당시 전개된 사회혁명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사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할되어, 남쪽에는 미군, 북쪽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게 된 상황에는 매우 얄궂은 측면이 있다. 당시 한반도에서 조선공산당을 필두로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집중되어 있었던 지역은 당시 경성(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이남 지역이었다. 반면,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듯 기독교 성향의 반공주의적 민족주의 진영의 핵심은 이북 지역이었다. 이 같은 역설적 상황에서, 그간 해방 전후사에 대한 연구는 한반도 이남을 중심으로, 강고했던 좌익 사회주의 운동이 미군정하에서 어떤 투쟁을 벌였고, 미군정과 1948년 수립된 이승만 정부하에서 어떻게 진압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한다. 말하자면,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기존 연구들은 남한 지역의 ‘해방 공간’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한 반공주의 우파 진영을 중심으로 닫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왔다.
반면, 한반도 이북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소련과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던 김일성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뒤이어 어떻게 동족상잔의 전쟁이 벌어졌는지, 나아가 전쟁 이후 기존의 정적과 주요 정치 세력들을 제거하고 김일성이 어떻게 최고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점에서 북조선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소련의 영향력하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기괴한 국가의 형성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물론, 북조선의 정치사는 본질적으로 한 사람, 곧 김일성이 부상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북조선의 역사를 김일성을 중심으로 단순화해 서술하는 것의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조선은 우리가 지금까지 간과해 온 복잡한 역사 속에서 출현했으며,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역사의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특히 북조선의 복잡한 역사적 기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나아가 해방 직후 사회주의혁명과 더불어 북조선 인민들이 전망했던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북조선은 김일성 일가와 이들의 지배하에 있는 기괴한 국가기구와 같이 영원히 ‘타자’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듯, 북조선의 역사는 한 사람이나 특정 정당의 역사가 아니라 근대성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며, “시간이 멈춰진” 역사가 아니라 탈식민화라는 세계사적 과정의 일부분이다. 북조선에서 전개된 혁명의 역사는 혁명 지도자와 대중들이 사회혁명을 위해 영웅적으로 똘똘 뭉친 승리의 역사도 아니고, 혁명 지도자가 권력을 잡기 위해 대중을 배신한 비극의 역사도 아니다. 북조선 혁명을 김일성의 단독 프로젝트로 보는 하향식 혁명 모델이나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으로 보는 상향식 혁명 모델 모두 정확하지 않다.
★ 중앙이 아닌, 지방의 경험을 보라
이 책은 외부의 힘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진 해방, 이후 이어진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사회주의 항일 무장투쟁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경험, 항일 민족주의 운동의 전통 등이 빚어낸 ‘해방 공간’을 이북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히 이 시기에 이루어진 북조선의 국가 형성은 소련을 모방한 중앙집권적 과정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다 보니 해방 직후 이북 지역에서 벌어졌던 모든 정책이나 정치적 과정들이 모두 소련이 뒤에서 조정했다거나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연히 이런 시각에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중앙 정치가 부각된다.
하지만 이 책이 적절히 지적하듯, 지방 수준으로까지 소련의 정책이 일관되게 전달되지는 못했으며, 적어도 1948년 중앙정부 수립과 1950년 전쟁으로 치닫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앙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갖고 지역이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 시기였다. 이 책은 바로 이 같은 시공간에 주목하며 미국국가기록관리청에 보관돼 있던 북조선 노획 문서들(편지, 일기, 인사 서류철, 다양한 조직의 회의록, 교육 자료, 신분, 잡지, 사진 등의 방대한 자료)을 활용함과 동시에, 특히 그 가운데서도 소련의 권력이 힘을 미치지 못했던 인제군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경험한 사회혁명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고 있다. 여기에 오늘날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이들의 구술사 자료, 저자의 구술 인터뷰 등을 포함해, 당시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 보완함으로써, 해방 직후 한반도 이북의 상황을 모자이크처럼 재현하고 있다.
★ 국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목소리에 주목하라
좀 더 구체적으로는, 1945년 해방 다음 날부터 1948년 한반도 남과 북 양측에 정부가 수립되고, 양 진영이 열전과 냉전으로 치닫기 직전까지 열려 있는 한반도 이북 지역의 ‘해방 공간’에서 펼쳐졌던 토지개혁, 인민위원회 선거, 문맹퇴치 운동을 중심으로 대안적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향한 실험이 어떻게 준비되고, 또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북조선 인민들은 이를 어떻게 경험했는지에 대한 생생한 미시사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5장, 6장, 7장의, 사회주의혁명을 경험한 개인들의 목소리에 대한 소개와 섬세한 분석일 것이다. 문맹퇴치 운동의 결실로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친 농민, 노동자들이 북조선에서 진행된 사회혁명을 겪으며 생생히 기록한 회의록, 수많은 개인들이 당과 사회단체에 가입하기 위해 제출한 이력서들과 자서전, 저자가 여러 차례 인터뷰한 남한의 출소 장기수 정치범들의 구술 기록, 여성 빨치산 전사들이 전한 기존의 구술 기록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추가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북조선에서 전개된 사회혁명은 어떤 모습으로 비쳤고, 이들은 또한 사회주의혁명이라는 거대한 내러티브 속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혁명에 동참하려 했는지, 당시 이들이 품었던 꿈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5장에서는 “노동자” “농민”과 같이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사무원”(사무직 노동자, 또는 점원)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지칭되는 이들이 자서전 쓰기와 이력서 작성 등과 같은 실천을 통해 어떻게 혁명적인 주체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본다. 이런 집단적인 자서전 쓰기를 통해, 이북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생사를 사회혁명의 내러티브 속에 어떻게 끼워 넣으려 했는지뿐만 아니라, 과거 친일 부역 행위를 했던 이들이나 그런 집안 출신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희석시키기 위해 어떤 담론 전략을 활용했는지, 또 이 같은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등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양 진영이 전쟁으로 치닫게 되면서, 일상생활의 역동성과 창의성이 어떻게 축소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며, 또 그 과정에서 혁명 당시 북조선 인민들이 표출하고 기대했던 희망이 어떻게 좌절되어 갔는지를 분석하고, 현재 북조선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서구 사회가 기괴한 정치 체계를 가진, 자신의 국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 개발과 무장에만 열중하는 북조선이라는 ‘국가’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국가 형성기에 북조선에 살았던 개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역설한다.
★ 민족사로서의 남성들의 인생사 vs. 여전히 주변부에 남은 여성들의 인생사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 가운데 하나는, 해방 직후의 경험을 말하는 남성들의 내러티브와 여성들의 내러티브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대, 남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인생사를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해방을 비롯한 민족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자기 삶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으로 그리며, 민족사와 나란히 자신의 인생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 같은 특징은 이북 지역에서 쓰인 수많은 자서전들에서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석헌, 오영진, 리영희 등과 같이 이남 지역에서 출간된 회고록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남성들의 경우 의식적으로 민족사의 연대기에 자신의 삶을 끼워 넣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반면, 여성들이 말하는 인생사는 민족사의 분기점들과 이어지면서도, 그 과정에서 특유의 양가적 감정을 자아낸다. 예컨대, 여성들의 기억은, 항일 무장 투쟁과 빨치산 운동에 동등하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의 환희뿐만 아니라 좌절감이나 안타까움 같은 양가적 감정으로 채색돼 있었다. 사실, 남성들은 자신의 인생사를 이야기할 때 가족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들의 인생사에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주요 변곡점에서 중요한 굴레나 제약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점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인생사를 민족사의 흐름들과 쉽게 동일시할 수 없었고,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해방 공간에서도 좌절감이나 불안감 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해방 공간에서 자신들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남기려 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해방 공간이 남성의 경험과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경험을 조형한 시기이기도 했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간단히 말해 두자면, 이는 이북 지역에서는 김일성의 개인적 경험을, 이남 지역에서는 남성들의 특정한 경험을 (그것이 가진 특수성을 간과한 채) 포괄적인 민족사로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이 책은 북조선 인민들이 체험한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어떻게 젠더화된 형태로 축소되고 집단적으로 기억되어 왔는지 보여 주며, 반식민주의 투쟁에서든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향한 투쟁에서든 잘려 나가거나 잊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 장별 주요 내용
1장에서는 일상the everyday을 자연스러운 시간의 단위로 간주하는 대신, 산업자본주의 경험으로부터 출현한 근대적 개념으로 역사화하며, 일상이란 무엇인지 살펴본다. 나아가 사회주의적 일상이, 자본주의적 근대성 아래에서의 일상과 달리, 또한 그것과는 대립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행위 주체성들을 접합해 어떤 특정한 종류의 행위 주체성을 접합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일상을 그와 같은 접합의 장소로 제시한다. 소련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중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북 지역에서 발생한 혁명이 일상적인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이 같은 흐름들 내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장에서는 일제하의 식민지 시기를 되짚어 본다. 이를 통해 북조선의 사회주의적 근대성이 어떤 점에서 식민지적 근대성과 자본주의적 근대성(이 둘은 모두 근대적 주체들에 대한 인정 없이 근대성의 형식을 한반도에 도입했다)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었는지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인제군을 중심으로 혁명 기간 동안 어떻게 일상생활이 변화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근대적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인제군은 38도선을 따라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이북 지역 가운데 가장 풍부한 기록 자료가 남아 있어 면밀한 연구가 가능했다. 특히 3장에서는 사회관계, 정치 참여 및 문화생활의 토대를 새롭게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세 가지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사건이란 사회관계를 재구성한 급진적 토지개혁, 인민위원회 선거, 교육의 기회를 가져다 준 문맹 퇴치 운동을 가리킨다.
4장에서는 혁명을 제도화하는 다양한 조직들에 초점을 맞춘다. 제아무리 획기적인 사건이라 해도, 기념비적 사건들은 그런 사건들의 핵심 교의들을 일상 안에 제도화하는 항구적인 조직과 꾸준한 실천을 통해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매일매일의 습관을 구조화하는 수많은 회의와 학습 모임 같은 다양한 조직에 개인들이 참여하게 됨에 따라 출현한 단체 생활을 일상생활에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다.
5장에서는 “노동자” “농민”과 같이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사무원”(사무직 노동자, 또는 점원)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지칭되는 이들이 자서전 쓰기와 이력서 작성 등과 같은 실천을 통해 어떻게 혁명적 주체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본다. 혁명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개인은 특정 집단의 일부로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노동자와 농민 같은 추상적인 범주들은 그 안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같은 내러티브 구축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 김호철이라는 인물이 쓴 세 가지 다른 종류의 자서전을 심층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6장에서는 해방 후 북조선에서 발행된 유일한 여성 잡지인 『조선녀성』을 분석해 혁명 기간 동안 “여성 문제”가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혁명적 주체성에 대한 젠더화된 담론을 검토한다. 공산주의 도상학圖像學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났던 남성 중심 혁명적 형제애의 이미지들과 달리, 혁명적 모성은 북조선 사회의 모델로 옛것과 새것을 융합하는 혁명적 주체성의 전형적 상징이 되었다.
7장은 “해방 공간”이라는 좀 더 넓은 틀 안에서 해방 직후의 기간을 살펴보며 혁명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 남과 북 양쪽에서 나온 구술 자료와 회고록을 통합해, 이 장에서는 해방에 대한 남성의 내러티브와 여성의 내러티브의 차이를 지적하는데, 이는 해방 경험이 의미를 지니고 생생하게 기억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 조직과 단체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실제로 집단 기억은 개인이 가진 정체성의 강력한 원천이기도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7장은 여성과 같이 주변화된 집단에게 단체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한다.
미군의 북조선 노획 문서 아카이브를 토대로, 구술사를 결합함으로써, 농부, 노동자, 여성의 시각에서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0년까지 북조선에서 진행된 사회혁명에 대한 생생한 모자이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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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북한 사회의 일상에 대한 소개가 늘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젊은 층을 비롯한 대중의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지상파 종편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북한 사회의 일상과 문화에 대한 정보가 많이 소개되고 다뤄지고 있는데, 이 같은 프로그램들은 남북 간의 이해를 증진하고 민족 동질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널리 권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방송 프로그램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북조선 사회에 대해, 또 그곳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방송들 가운데 나타나는 일부 특정 경향들에 대한 우려의 시선 역시 존재한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젊은 탈북민의 경험을 중심으로 북한의 ‘일상생활’과 문화, 음식, 연애, 놀이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을 “여성화”하거나 “미성숙한 존재”로 그리고 “전근대적인 국가”로 묘사함으로써, 북한을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옛 시절에 대한 “향수와 낭만의 대상으로 의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이 같은 경향은 북한 사회 지도층의 부정과 부패, 사익 추구 행위 등과 결합해, 북한을 비정상적이면서도 왜곡된 기이한 나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북한은 대체로 자본주의 한국의 우월성을 보여 주는 대조점으로서만 주로 소환 ․ 환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이런 모습을 통해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출발점을 없을까?
★ 북조선,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 책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1945년부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1950년까지 북조선에서 진행된 사회혁명의 시기를 살았던 농민과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북조선은 식민지적 근대성과 자본주의적 근대성 모두와 대립하는, 사회주의적 근대성이라는 대안적 경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일제 식민 통치의 갑작스런 종언과 더불어 ‘집단적 흥분’을 자아낸 해방의 열기, 토지개혁,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치러진 선거, 문맹퇴치 운동 등을 통해 세상을 스스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한반도 이북 지역의 사람들은 당시를 어떻게 경험했고 또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이 책은 바로 북조선 역사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당시 한반도 이북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당시 전개된 사회혁명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사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할되어, 남쪽에는 미군, 북쪽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게 된 상황에는 매우 얄궂은 측면이 있다. 당시 한반도에서 조선공산당을 필두로 공산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집중되어 있었던 지역은 당시 경성(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이남 지역이었다. 반면,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듯 기독교 성향의 반공주의적 민족주의 진영의 핵심은 이북 지역이었다. 이 같은 역설적 상황에서, 그간 해방 전후사에 대한 연구는 한반도 이남을 중심으로, 강고했던 좌익 사회주의 운동이 미군정하에서 어떤 투쟁을 벌였고, 미군정과 1948년 수립된 이승만 정부하에서 어떻게 진압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한다. 말하자면,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기존 연구들은 남한 지역의 ‘해방 공간’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한 반공주의 우파 진영을 중심으로 닫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왔다.
반면, 한반도 이북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소련과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던 김일성을 중심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뒤이어 어떻게 동족상잔의 전쟁이 벌어졌는지, 나아가 전쟁 이후 기존의 정적과 주요 정치 세력들을 제거하고 김일성이 어떻게 최고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점에서 북조선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소련의 영향력하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기괴한 국가의 형성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물론, 북조선의 정치사는 본질적으로 한 사람, 곧 김일성이 부상하는 과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북조선의 역사를 김일성을 중심으로 단순화해 서술하는 것의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조선은 우리가 지금까지 간과해 온 복잡한 역사 속에서 출현했으며,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역사의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특히 북조선의 복잡한 역사적 기원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나아가 해방 직후 사회주의혁명과 더불어 북조선 인민들이 전망했던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북조선은 김일성 일가와 이들의 지배하에 있는 기괴한 국가기구와 같이 영원히 ‘타자’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듯, 북조선의 역사는 한 사람이나 특정 정당의 역사가 아니라 근대성이라는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며, “시간이 멈춰진” 역사가 아니라 탈식민화라는 세계사적 과정의 일부분이다. 북조선에서 전개된 혁명의 역사는 혁명 지도자와 대중들이 사회혁명을 위해 영웅적으로 똘똘 뭉친 승리의 역사도 아니고, 혁명 지도자가 권력을 잡기 위해 대중을 배신한 비극의 역사도 아니다. 북조선 혁명을 김일성의 단독 프로젝트로 보는 하향식 혁명 모델이나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으로 보는 상향식 혁명 모델 모두 정확하지 않다.
★ 중앙이 아닌, 지방의 경험을 보라
이 책은 외부의 힘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진 해방, 이후 이어진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사회주의 항일 무장투쟁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경험, 항일 민족주의 운동의 전통 등이 빚어낸 ‘해방 공간’을 이북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히 이 시기에 이루어진 북조선의 국가 형성은 소련을 모방한 중앙집권적 과정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다 보니 해방 직후 이북 지역에서 벌어졌던 모든 정책이나 정치적 과정들이 모두 소련이 뒤에서 조정했다거나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연히 이런 시각에서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중앙 정치가 부각된다.
하지만 이 책이 적절히 지적하듯, 지방 수준으로까지 소련의 정책이 일관되게 전달되지는 못했으며, 적어도 1948년 중앙정부 수립과 1950년 전쟁으로 치닫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앙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갖고 지역이 처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 시기였다. 이 책은 바로 이 같은 시공간에 주목하며 미국국가기록관리청에 보관돼 있던 북조선 노획 문서들(편지, 일기, 인사 서류철, 다양한 조직의 회의록, 교육 자료, 신분, 잡지, 사진 등의 방대한 자료)을 활용함과 동시에, 특히 그 가운데서도 소련의 권력이 힘을 미치지 못했던 인제군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경험한 사회혁명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고 있다. 여기에 오늘날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이들의 구술사 자료, 저자의 구술 인터뷰 등을 포함해, 당시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집단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 보완함으로써, 해방 직후 한반도 이북의 상황을 모자이크처럼 재현하고 있다.
★ 국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목소리에 주목하라
좀 더 구체적으로는, 1945년 해방 다음 날부터 1948년 한반도 남과 북 양측에 정부가 수립되고, 양 진영이 열전과 냉전으로 치닫기 직전까지 열려 있는 한반도 이북 지역의 ‘해방 공간’에서 펼쳐졌던 토지개혁, 인민위원회 선거, 문맹퇴치 운동을 중심으로 대안적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향한 실험이 어떻게 준비되고, 또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북조선 인민들은 이를 어떻게 경험했는지에 대한 생생한 미시사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5장, 6장, 7장의, 사회주의혁명을 경험한 개인들의 목소리에 대한 소개와 섬세한 분석일 것이다. 문맹퇴치 운동의 결실로 이제 막 한글을 깨우친 농민, 노동자들이 북조선에서 진행된 사회혁명을 겪으며 생생히 기록한 회의록, 수많은 개인들이 당과 사회단체에 가입하기 위해 제출한 이력서들과 자서전, 저자가 여러 차례 인터뷰한 남한의 출소 장기수 정치범들의 구술 기록, 여성 빨치산 전사들이 전한 기존의 구술 기록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추가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북조선에서 전개된 사회혁명은 어떤 모습으로 비쳤고, 이들은 또한 사회주의혁명이라는 거대한 내러티브 속에서 자신의 인생사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혁명에 동참하려 했는지, 당시 이들이 품었던 꿈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5장에서는 “노동자” “농민”과 같이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사무원”(사무직 노동자, 또는 점원)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지칭되는 이들이 자서전 쓰기와 이력서 작성 등과 같은 실천을 통해 어떻게 혁명적인 주체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본다. 이런 집단적인 자서전 쓰기를 통해, 이북에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생사를 사회혁명의 내러티브 속에 어떻게 끼워 넣으려 했는지뿐만 아니라, 과거 친일 부역 행위를 했던 이들이나 그런 집안 출신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희석시키기 위해 어떤 담론 전략을 활용했는지, 또 이 같은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등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1948년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양 진영이 전쟁으로 치닫게 되면서, 일상생활의 역동성과 창의성이 어떻게 축소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보며, 또 그 과정에서 혁명 당시 북조선 인민들이 표출하고 기대했던 희망이 어떻게 좌절되어 갔는지를 분석하고, 현재 북조선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서구 사회가 기괴한 정치 체계를 가진, 자신의 국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 개발과 무장에만 열중하는 북조선이라는 ‘국가’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국가 형성기에 북조선에 살았던 개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역설한다.
★ 민족사로서의 남성들의 인생사 vs. 여전히 주변부에 남은 여성들의 인생사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 가운데 하나는, 해방 직후의 경험을 말하는 남성들의 내러티브와 여성들의 내러티브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대, 남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인생사를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해방을 비롯한 민족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자기 삶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으로 그리며, 민족사와 나란히 자신의 인생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 같은 특징은 이북 지역에서 쓰인 수많은 자서전들에서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함석헌, 오영진, 리영희 등과 같이 이남 지역에서 출간된 회고록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남성들의 경우 의식적으로 민족사의 연대기에 자신의 삶을 끼워 넣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반면, 여성들이 말하는 인생사는 민족사의 분기점들과 이어지면서도, 그 과정에서 특유의 양가적 감정을 자아낸다. 예컨대, 여성들의 기억은, 항일 무장 투쟁과 빨치산 운동에 동등하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의 환희뿐만 아니라 좌절감이나 안타까움 같은 양가적 감정으로 채색돼 있었다. 사실, 남성들은 자신의 인생사를 이야기할 때 가족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들의 인생사에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주요 변곡점에서 중요한 굴레나 제약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점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인생사를 민족사의 흐름들과 쉽게 동일시할 수 없었고,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해방 공간에서도 좌절감이나 불안감 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해방 공간에서 자신들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남기려 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해방 공간이 남성의 경험과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경험을 조형한 시기이기도 했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간단히 말해 두자면, 이는 이북 지역에서는 김일성의 개인적 경험을, 이남 지역에서는 남성들의 특정한 경험을 (그것이 가진 특수성을 간과한 채) 포괄적인 민족사로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이 책은 북조선 인민들이 체험한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어떻게 젠더화된 형태로 축소되고 집단적으로 기억되어 왔는지 보여 주며, 반식민주의 투쟁에서든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향한 투쟁에서든 잘려 나가거나 잊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 장별 주요 내용
1장에서는 일상the everyday을 자연스러운 시간의 단위로 간주하는 대신, 산업자본주의 경험으로부터 출현한 근대적 개념으로 역사화하며, 일상이란 무엇인지 살펴본다. 나아가 사회주의적 일상이, 자본주의적 근대성 아래에서의 일상과 달리, 또한 그것과는 대립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행위 주체성들을 접합해 어떤 특정한 종류의 행위 주체성을 접합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일상을 그와 같은 접합의 장소로 제시한다. 소련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중국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북 지역에서 발생한 혁명이 일상적인 사회주의적 근대성의 이 같은 흐름들 내에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장에서는 일제하의 식민지 시기를 되짚어 본다. 이를 통해 북조선의 사회주의적 근대성이 어떤 점에서 식민지적 근대성과 자본주의적 근대성(이 둘은 모두 근대적 주체들에 대한 인정 없이 근대성의 형식을 한반도에 도입했다)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었는지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인제군을 중심으로 혁명 기간 동안 어떻게 일상생활이 변화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근대적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인제군은 38도선을 따라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이북 지역 가운데 가장 풍부한 기록 자료가 남아 있어 면밀한 연구가 가능했다. 특히 3장에서는 사회관계, 정치 참여 및 문화생활의 토대를 새롭게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세 가지 사건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사건이란 사회관계를 재구성한 급진적 토지개혁, 인민위원회 선거, 교육의 기회를 가져다 준 문맹 퇴치 운동을 가리킨다.
4장에서는 혁명을 제도화하는 다양한 조직들에 초점을 맞춘다. 제아무리 획기적인 사건이라 해도, 기념비적 사건들은 그런 사건들의 핵심 교의들을 일상 안에 제도화하는 항구적인 조직과 꾸준한 실천을 통해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매일매일의 습관을 구조화하는 수많은 회의와 학습 모임 같은 다양한 조직에 개인들이 참여하게 됨에 따라 출현한 단체 생활을 일상생활에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다.
5장에서는 “노동자” “농민”과 같이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사무원”(사무직 노동자, 또는 점원)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지칭되는 이들이 자서전 쓰기와 이력서 작성 등과 같은 실천을 통해 어떻게 혁명적 주체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본다. 혁명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개인은 특정 집단의 일부로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노동자와 농민 같은 추상적인 범주들은 그 안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같은 내러티브 구축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 김호철이라는 인물이 쓴 세 가지 다른 종류의 자서전을 심층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6장에서는 해방 후 북조선에서 발행된 유일한 여성 잡지인 『조선녀성』을 분석해 혁명 기간 동안 “여성 문제”가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혁명적 주체성에 대한 젠더화된 담론을 검토한다. 공산주의 도상학圖像學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났던 남성 중심 혁명적 형제애의 이미지들과 달리, 혁명적 모성은 북조선 사회의 모델로 옛것과 새것을 융합하는 혁명적 주체성의 전형적 상징이 되었다.
7장은 “해방 공간”이라는 좀 더 넓은 틀 안에서 해방 직후의 기간을 살펴보며 혁명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한다. 남과 북 양쪽에서 나온 구술 자료와 회고록을 통합해, 이 장에서는 해방에 대한 남성의 내러티브와 여성의 내러티브의 차이를 지적하는데, 이는 해방 경험이 의미를 지니고 생생하게 기억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 조직과 단체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실제로 집단 기억은 개인이 가진 정체성의 강력한 원천이기도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7장은 여성과 같이 주변화된 집단에게 단체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확인한다.
목차
한국어판을 출간하며 11
감사의 말 18
서론 21
1장 일상생활: 혁명의 시공간 41
2장 식민지 근대성의 유산: 혁명의 불씨 83
3장 세 가지 개혁: 혁명의 시작 123
4장 사회단체: 혁명의 실행 169
5장 자서전: 혁명의 내러티브 215
6장 혁명적 모성: 혁명의 젠더 265
7장 해방 공간: 혁명의 기억 307
결론 358
부록 373
미주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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