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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정당론 클래식

절반의 인민주권

발행사항
서울 : 후마니타스, 2008
형태사항
243 p.; 24 cm
ISBN
9788990106704
청구기호
340.942 샤88ㅈ
서지주기
색인 수록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1040대출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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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번호
    00011040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아무리 민주주의 정치체제라 할지라도 정당 정치가 사회 갈등을 폭 넓게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하지 못한다면 그때의 ‘인민 주권’(popular sovereignty)은 사실상 그 절반밖에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갈등’은 없애야 하고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정당은 정치계급들의 특권 조직처럼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책에서 사회 갈등이 민주주의의 동력으로, 정당이 사회 갈등의 조직자이든 통합자로 정의되는 것 자체가 다소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갈등이란, 지역?종교?소득?직업?성?고용형태 등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회적 차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며, 한미 FTA 찬성이냐 반대냐 국가 개입과 시장 자유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등등의 사안마다 사회구성원을 이런 저런 형식으로 분기시키는 요인을 말한다. 요컨대 사회 갈등 없이 그 누구도 사회 속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갈등 때문에 불러 들여진 정치체제이고 또 갈등 때문에 존재한다. 갈등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는 갈등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갈등의 구조와 정치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갈등의 구조가 큰 격차를 갖는다면 어떻게 될까? 특정 인종이 사회적으로 큰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동원되거나 조직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용조건이나 임금에서 큰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의 문제가 정치의 영역에서 다퉈지고 있지 않다면, 시민으로서 그들의 주권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인민’(demos, people) 즉 보통의 시민이나 일반 대중이 자신의 이익을 ‘직접’ 조직하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면 되지 않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적 이익집단이든 공익적 사회집단이든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사회 갈등의 범위(scope)는 그리 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협소한 이익과 관심의 범위를 넘어 갈등을 폭 넓게 조직하려고 해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자니 참여자가 줄고 참여자를 늘리자니 갈등의 범위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 ‘사회집단에 의한 정치적 동원의 불완전성 법칙’이라 부른다.
또 다른 문제는, 사회집단들이 정부를 향해 경쟁적인 압력 행사를 최대한 조직한다 하더라도 실제 직면하게 되는 귀결은 ‘상층편향적인’(upper class biased) 정치체제라는 데 있다. 이 책이 다원주의(pluralism: 사회 여러 집단 이익들의 경합이 만들어 낸 결과를 민주주의로 보고 정치와 정당의 적극적 역할을 부정하는 이론)에 시종일관 비판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원주의의 이상에 가까워진다고 해도 가난한 보통 시민의 주권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권력을 강화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렇다면 인민 주권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갈등의 사회화’를 말한다. 달리 말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갈등에 관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 곧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정규직 문제를 개별 사업장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구조나 경제체제의 내용을 둘러싼 갈등으로 바꾸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혹은 미국의 오바마처럼 백인과 흑인 사이의 인종문제를 어느 한 편에서 접근하기보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인종문제로 고통 받는 미국 시민이 해결해야 할 사회개혁의 중심 과제로 접근함으로써 더 넓게 갈등을 조직하는 것도 이런 사례에 속한다.
상층계급은 갈등의 사사화(privatization) 즉, 기업이든 시장이든 자신이 관장하는 사적 영역으로 국지화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이 영역에서는 자신들이 강자 집단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범위가 기업과 시장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약자들이다. 그들은 갈등의 문제에 더 많은 사람들과 집단이 관여하게 됨으로써 사적 영역에서 자신들의 약한 지위가 달라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에서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하는 것은 정치의 기능이다. 그리고 정치의 핵심 기구는 정당이다. 그러나 사회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상층계급은 이를 막으려 하고, 그래서 공적 영역과 정치, 정당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동원하는 데 열심이기 때문이다. “정치?정치인?정당을 공격하고 비당파성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갈등의 규모를 통제하려는” 이들의 대표적인 전략이다.
다수의 사회 약자들의 주권을 강화하려면, 정치가 왜 중요한지 나아가 정치가 어떤 조건을 갖출 때 인민 주권의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있어 좋은 정책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 6장의 마지막 문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공공정책이다”로 끝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3. 민주주의는 왜 좋은 정당을 필요로 하는가
이 책이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소박하다. “사회 하층의 요구와 경험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일을 다른 어떤 통치체제보다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이 책의 대답은 ‘정당’이다. 평소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정당이며, 정당 없는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해 온 저자는 정당이야말로 “다수의 동원에 적합한 특수한 형태의 정치조직”, 갈등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위계화하여 가장 큰 규모의 대중을 동원함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정당이 공직자를 선출하는 데 머무를 뿐 대안을 조직하고 정치가 무엇을 둘러싼 것인가를 결정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면 “시민은 온전한 주권자가 아니라 절반의 주권자일 수밖에 없다.” 그 경우 이들은 정치를 버리고 기권을 선택함으로써 주권자임을 포기한다. 기권은 바로 이들이 원하는 선택지와 정당 대안이 억압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은 것, 그로 인해 엉뚱한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두고 그 “책임을 인민의 무지?무관심?무기력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동체 내의 좀 더 부유한 계층이 보여 주는 매우 전형적인 행태이다. 이는 어떤 정치체제에서나 늘 하층계급의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던 논리다.” 좋은 정치, 좋은 정당이 기능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인민 주권은 억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 경우 시민으로서의 제 역할은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샤츠슈나이더는 “내가 나의 학문 분야에서 한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그것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랫동안 더 열심히 더 일관되게 더 열정적으로 정당에 대해 말해 왔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4. 보통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학
이 책의 미덕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보통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론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술 용어에 의존한 정치학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슨 복잡한 이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흑인 병사와 백인 경찰 간의 싸움이 예기치 않게 폭동으로 확대되는 이야기로 시작하며, 그것으로부터 민주주의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설명해 간다.
보통의 시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만들어졌지,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학자연하는 이들이 인민의 자격을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된 정치체제이다.”
흥미로운 것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는 이 책이 ‘정치학의 고전’으로 다뤄진다는 사실이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정당론 연구자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은 피터 마이어(Peter Mair)이다. 그는 현대 정당론의 중심 이론을 대표하는 두 접근을 꼽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다른 하나는 립셋과 로칸Lipset & Rokkan의 논문으로, 우리 시리즈 가운데 피터 마이어가 편집한 책, ??서구 정당체제론??에 실려 있다).
샤츠슈나이더는 실제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기존 민주주의 정치학은 명백히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민주정치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이론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로 있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대학원 수업을 하지 않았고 학부생을 가르쳤다. 또한 수많은 시민 정치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미국 정치학회장을 맡는 동안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을 보고서로 제출할 만큼 적극적인 실천가였다. 정치학자란 자신이 연구하는 문제와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고 본 그는 한 학생 기자가 정치학자로서 자신이 개밋둑을 연구하는 곤충학자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느냐고 묻자, “아니, 그보다는 개밋둑을 연구하는 한 마리 개미 같은 기분이지”라고 답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실제의 민주주의 정치가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체계적이고 또 생생하게 서술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따라서 샤츠슈나이더는 그 어떤 정치학계의 계보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또 계보를 만들지도 않았지만,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5.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이 논쟁적일 수 있는 이유
오늘의 한국적 맥락에서 이 책은 논쟁의 주제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첫째, 이 책은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대중과 민주주의를 이상화하는 그 모든 이론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현실주의 민주주의론의 구축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른바 ‘운동정치론’와 같은 민주주의 이해 방식과는 매우 다른 민주주의론을 개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이 책보다 확실한 태도를 갖는 경우도 드물다. 시민의 숫자가 많았을 때 기껏 몇 만 명 정도였던 그리스 사례를 두고 민주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인민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인민에 의한 통치자의 선택’의 체제라고 정의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결과적으로 직접 민주주의론이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잘못 실천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민이 통치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잘못될 질문에 매달리게 함으로써, 대의 민주주의에서 어떻게 인민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텔레비전을 구입하기 위해 텔레비전의 제조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듯이 또 시민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될 필요가 없듯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대중 권력의 한계를 감안하면서도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를 조직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주의에서 인민의 권력은 유권자들이 만들어 내는 결정의 중요성에 달려” 있도록 정치를 재조직하는 일, 즉시민이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당 대안이 있는 정치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문제로 집약되는 일이다. 정당 대안을 갖는 인민만이 주권자로서 권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도덕적인 인간을 민주주의의 전제로 보거나, 민주주의를 이상화된 어떤 규범적 질서로 이해하는 접근과는 달리, 이 책에서 민주주의는 갈등에 기반을 둔 혹은 갈등을 둘러싼 갈등의 체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공동체적 통합을 구축할 것이냐에 있지, 서로 나뉘어 갈등하고 다툰다는 이유로 정치를 혐오하는 그런 식의 접근과는 다르다. 그래서 “민주주의란 스스로가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라는 정의는 그가 얼마나 정치를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시민과 대중을 이상화하는 논의에 대한 비판은 이 책의 백미 가운데 하나다. 기존의 민주주의 이론은 ‘인민’이라고 불리는 보통의 시민을 민주주의의 보루로 이상화해 놓고는 정작 현실에서 민주주의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그 책임을 이들에게 떠넘기는 일을 반복해 왔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동안은 시민을 상찬하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 결과를 놓고는 다시 또 시민의 무지를 질타하고, 이제는 시민의 정치 무관심을 냉소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은 대중 예찬과 대중 경멸의 정치 이론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해석들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매우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 이 책의 중심 주장 가운데 하나는, 시민운동 내지 사회운동의 실제 영향력이 생각과는 달리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의사 표출과 정부에 대한 압력 행사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 운동론적 접근은 현실에서 생존의 압박에 덜 시달리는 중산층에 편향적인 정치 참여의 방법이라는 사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이들에 의해 주도될 경우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과 열정은 오히려 더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공익 집단들의 참여를 추적한 경험 분석은 그 한 예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자발적 조직의 참여자들이 사회경제적 상위 집단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는 압도적으로 많다. 즉 상위 계층의 참여율은 다른 계층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 역시 왜 주장과는 달리 제한적인가 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증거도 제시한다. 결국 각각의 개별 갈등을 사회적으로 직접 표출하고 정부를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는 제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 갈등을 가장 넓게 조직(사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정당정치이며, 보통의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 대안의 분포가 좁다면 주권자로서 인민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책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이다.
목차

저자서문
데이비드 아더매니의 1975년판 서문

1장 갈등의 전염성
2장 이익집단 체제의 범위와 편향성
3장 이익집단 정치와 정당 정치
4장 갈등의 치환
5장 정치의 전국화:정치 범위의 변화에 관한 사례연구
6장 정치체제의 한계:투표 불참-정치 갈등의 범위에 관한 사례연구
7장 변화와 양상:정부 권력과 기업 권력의 갈등
8장 절반의 인민주권

옮긴이 후기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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