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 전자도서관

로그인

통일연구원 전자도서관

소장자료검색

  1. 메인
  2. 소장자료검색
  3. 신착자료

신착자료

단행본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개인저자
권혁범 지음
발행사항
서울:,생각의나무,,2009
형태사항
192p.; 21cm
ISBN
9788984989597
청구기호
340.21 권94ㅁ
소장정보
위치등록번호청구기호 / 출력상태반납예정일
이용 가능 (1)
1자료실00011835대출가능-
이용 가능 (1)
  • 등록번호
    00011835
    상태/반납예정일
    대출가능
    -
    위치/청구기호(출력)
    1자료실
책 소개
극단에 서 있는 민족담론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길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억압과 배제를 넘어선
배려와 연대의 세계시민주의는 꿈일까?


나는 이번 책에서 민족의 정의, 민족주의의 기원과 등장배경, 그것이 갖는 위험성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민족주의와 페미니즘 간의 충돌을 해부하며 ‘진보적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유효한 이론적?현실적 틀인지를 검토해보려 했다. 또한 민족이 다른 중요한 사회적 범주를 압도하며 민족주의가 진보적 세계주의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지 설명하려 했을 뿐이다. 나로서는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신화를 넘어서 그것과 관련된 문제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거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진보적 민족주의’가 제기하는 유효성의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머리글」 중에서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핏줄, 하나의 뿌리’라는 단일민족 관념에 깊이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하나의 ‘공리’처럼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졌으며, 절대적 신화로 굳혀져 있었다. 1999년 임지현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통해 한국사회의 집단심성에 깊게 자리한 민족주의의 신화에 대하여 강력한 문제제기를 했다. 현 민족주의의 폐악을 넘어서기 위해 ‘혈연중심의 민족주의’에서 시민민족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민족주의를 신주 모시듯 했던 진영의 반발은 말할 나위 없었으며, 이후 민족담론에 대한 논의의 장이 증폭되었다.
저자인 정치학자 권혁범은 이미 숨 막히는 국가주의의 집단주술에서 벗어나 ‘국민’에서 주체적인 ‘개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국민으로부터 탈퇴’를 선언한 바 있으며, ‘나, 남성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권위주의, 발전주의, 집단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와 싸우면서 한국사회에서 소외받는 소수자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권혁범의 『민족주의는 죄악인가』는 그러한 자신의 입장을 바탕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폭발적으로 증대된 민족주의 담론은 다분히 그것의 유용성과 폐기성의 양분화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정치학자 권혁범은 『민족주의는 죄악인가』를 통해 이러한 극단의 상황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동안 자신이 전개해온 민족담론의 연속선상에서 최근까지 전개된 민족담론을 종합적으로 비판하여 재구성하였다. 저자는 일련의 문제의식에서는 포스트계열과 같은 입장에서 기존의 민족주의 담론을 분석하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민족주의가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것을 어떻게 제대로 인식하고 이끌어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현 시점에서 민족주의의 부정적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이라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기에, 그것을 견제하고 제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논의의 틀은 현재 진행되는 민족주의 담론에 균형적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한국사회는 제국주의 침략기, 식민시기, 분단기를 거치면서 근대적 민족국가(nation building)를 열망하였다.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으며, 좌와 우를 넘어서서 깊은 동의를 이끌어냈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국가발전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전 세계와 풍성하게 교류를 하는 현재 상황 속에서 기존의 민족담론은 산재한 문제들을 풀어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세계화 속의 국내기업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 소수자 문제, 환경 문제 등과 관련해 현안을 직시할 때 기존의 민족담론은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미 유엔은 한국사회의 폐쇄적인 민족정서에 대해서 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한국사회는 이제 깊게 드리워졌던 개발지상주의, 발전주의를 넘어서 사회정치적 발전을 모색해야 하며, 그러한 변화의 노정에서 민족주의 문제를 성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의 주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 앞에 선 민족.민족주의 신화 넘어서기

“‘한국인’이라는 것은 ‘한국’의 통치하에 있는 사람들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고대 및 중세에서 다양한 부족.종족들이 갈라지고 합치며 근대민족들의 복수적 싹을 마련했던 역사의 우연성과 복잡성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민족은 대다수의 주관적 관념에 기초한 의식이고 국가에 의해서 지탱되는 범주다. 그래서 서두에 인용했듯이 민족의 정의는 “매일 매일의 국민투표”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민족주의란 특정한 역사, 문화, 언어, 혈통, 이익을 공유한다고 ‘생각’하고 국가를 열망하거나 유지하려는 정신적 태도다. 많은 사람들이 코리안은 단일민족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일본, 중국, 거란, 여진, 말갈, 심지어 아랍계 등의 피가 섞여 있다. 삼국시대를 ‘우리’ 역사의 기원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백제가 살아남아서 ‘백제민국’이 되었다면 한국인들은 오늘날 충청도 일대의 지역을 ‘외국’으로 인식하고 충청도 사람들을 ‘다른’ 민족으로, 충청도 사투리를 ‘외국어’로 생각했을 것이다. 역사의 우연과 현재의 관점을 과거로 투여하는 국사 덕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삼국을 하나의 정치적 단위로 인식한다.
저자는 민족 구성원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그 구성원을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상상력’ 때문이라고 한다. 국사, 국어 등을 통해서 이러한 상상력을 만들어내고 부추긴 것은 근대민족국가의 공통된 특성이다. 이런 이유로 근대 이전에 민족의식이 존재했다고 착각한다. 여기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개념을 차용한다.
민족이란 의식은 ‘우리’의 형성에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구성원들의 평등 의식을 필요로 한다. 신분제의 철폐는 민족의식의 결정적인 전제가 된다. 가령 노비가 양반을 ‘우리’에 포함시켰을까? 양반이 상민이나 노비를 ‘우리’라고 느꼈을까? 임진왜란 초기 단계에 많은 노비들이 왜군 편에 가담하고 그 일부가 경복궁에 불을 지른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노비에게는 양반이 ‘우리’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이었을 뿐이다. “민족주의가 농민을 프랑스인으로 만들었다”는 유명한 얘기는 여기에도 해당된다. 한반도에서는 조선말 신분제 폐지와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민족의식의 발흥이 비로소 노비, 상민, 양반을 ‘조선인’으로 만든 것이다. 민족은 이처럼 역사적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특수성 속에서 혈연중심적 민족주의로 강하게 자리잡으면서 절대적이고 선험적으로 인식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민족과 민족주의의 신화적 요소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민족.민족주의의 폐해와 위험성 넘어서기

개인은 여전히 민족/국가적 규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그러한 구속성에 대한 저항은 문화적으로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은 어느새 이기적이고 서구편향적인 것으로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민족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은 진보나 보수 양쪽 모두에게 지탄의 대상이다.

‘종군위안부’는 ‘민족적 치욕’이 되었고 운동가 임수경은 ‘통일의 꽃’으로 중학생 효순과 미선은 ‘통일조국의 꽃’으로 기지촌 여성 윤금이는 ‘순결한 민족의 누이’가 되었다.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여성은 민족 그 자체가 되지 못하고 오로지 그것을 상징하는 표지에 머문다는 점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개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세대 젊은이들의 머리와 가슴속에조차 국가주의적 민족주의 가치가 깊게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고, 그것이 그들에게도 여전히 최고의 가치이며 성역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한다. 민족주의 개념을 지극히 단순화한다면 민족이 강해지고 잘사는 게 최대의 목표고 그것이 민족 구성원들의 최대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그것을 위해서는 다른 민족은 물론이고 민족 내부의 ‘일부’ 희생도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민족주의적 세계관의 요체다. 그것이 여러 가지 폐해를 낳았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결국 민족주의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개인들에게 민족적 정체성만을 강요하거나 그것을 최상위 가치로 두고 그 밑에 다른 정체성을 서열화하며 종속시키기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 예를 들어 성별적·성적·지역적·계급적·계층적·취향 정체성 등은 억눌리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모든 판단과 결정에서 ‘민족적인 것’이 항상 우위에 서고, 그것을 위해 개인은 수단화되며 개인의 이익과 행복은 ‘이기적인 것’으로 매도되며 죄책감의 원천으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여기서 사라지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이성이다. 예를 들어 생명, 자유, 평화, 평등, 환경 등의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이성적 고려와 그것을 축으로 하는 세계관은 강렬한 민족주의의 감정 속에서 증발한다. 그 안에서 ‘보편성’은 ‘서구적인 가치,’ ‘선진국의 음모’나 ‘제국주의 논리’로 쉽게 규정된다. 과거에 식민지화를 경험한 제3세계, 거기에 분단까지 강요당한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민족주의의 요구는 강할 수밖에 없다.
저항적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국가의 민족주의와 다른 성격을 갖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오히려 전자는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과신으로 그것의 부정적 측면이 가려지는 문제를 갖는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특수하며 도덕적 정당성과 진보성을 내포한다는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민족주의가 그러한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전반이 갖는 획일주의적 강박과 보편적 이성을 압도하는 배타적 세계관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진정한’ 민족주의, ‘열린’ 민족주의를 얘기하기에는 그것은 이미 너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민족주의가 악의 근원이라는 식의 단순한 주장을 전개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아직도 부분적으로 유효하고 국제 정치현실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신조화되고 일반 사회 구성원들의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세계관이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패권주의적 국제질서와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견제와 관점의 필요성이 민족주의를 자동적으로 요청하는 현실적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그것의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 ‘민족 이익’을 지상 최대과제로 삼는 민족주의는 또한 발전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공허한 관념만으로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근대의 민족국가는 부의 무한정한 확대를 꾀하면서 생존과 번영을 도모한다. 그것은 민족 구성원들에게 실제 생활에서 요구되는 물질적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강화한다. 혜택은 역으로 민족주의적 논리와 정서를 강화한다. 부의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통합력에 의해 완화된다. 과거에 개발독재가 유발하는 계급적 갈등 속에서 예외 없이 민족주의적 수사가 동원된 이유다. 민족주의는 전통적 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 진보적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발전주의를 뒷받침하며 그것이 유발하는 모순을 정당화하고 덮어버리는 기능을 한다. 이처럼 저자가 진단한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넘어서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과연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세계시민주의로의 길을 찾아서

나는 개인의 정체성 중에서 민족적 차원을 억압하길, 또는 그것을 부정하기를, 또는 충분한 자기인식에 대하여 그것의 적법성과 그것의 권리를 인정하기를 거절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단지 민족성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 가정의 다른 측면, 인류와 인간 권리의 다른 측면을 억압하려는 종류의 정치적 관념을 거부한다.
― 바츨라프 하벨

지금 요구되는 것은 민족국가와 세계화의 틀을 동시에 넘어서며 비민족적/초민족적 작은 공동체를 살려내고 재구성하는 시민사회 간의 국제주의적 연대다. 사람, 자본, 상품이 국경을 넘나들며 전 지구를 순환하는 상황에서 월경적 주체로서 여성과 생태주의자들이 맡을 역할이 매우 커 보인다. 민족/국가적 선 긋기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

민족이라는 범주를 고민하면서도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즉 페미니즘, 인권, 환경 등을 축으로 한 세계주의 차원에서 보는 것은 가능하고 민족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탈민족주의를 즉각 민족을 무시하는 비현실적 흐름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개념 혼동에 기인한 것이거나 감정적 차원의 대응인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결국 이 책의 제목으로 돌아와 ‘민족주의는 죄악인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다만 현 시점에서 그것의 부정적 영향이 클 뿐이며, 기본적으로 민족이라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기에, 그것을 견제하고 제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노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방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민족주의 특히 종족민족주의를 경계하기 위해서 ‘민족’을 상대화하고 그것이 근대에 발명된 정치공동체적 개념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국사’는 한국사로 바뀌어야 하고 그것을 세계사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를 자꾸 특수한 것으로만 규정하지 말고 그것의 보편성과 특수성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민족에 대한 정의도 혈통의 신화와 본질주의가 혼합된 기존의 것은 폐기해야 한다.
둘째, 민족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에서 민주주의, 인권, 환경권, 개인 및 생명의 권리와 존엄성 등을 확산하려는 운동이 강해져야 한다.
셋째, 민족주의가 지배적 담론의 장에서 약화될 수 있도록 다른 가치체계, 가령 사회정의론, 세계시민주의, 페미니즘 등을 확산, 보편화해야 한다.
넷째, 다른 정체성, 특히 계급적 정체성이 민족적 정체성에 압도되기 보다는 그것과 경합하거나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나는 한국인이기에 앞서 노동자다, 여성이다, 장애인이다, 혹은 동성애자다 등.
다섯째, 민족/국민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가 가까운 미래에 법적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민족국가가 사라지기 전에는 쉽게 실현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이중/다중 국적을 수용하고 특정한 국적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확산이 필요하다. 여섯째,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범주보다는 ‘주민’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경제적 공동체를 생성, 유지해가는 게 필요하다.
목차
1장 ‘우리’, 민족, 민족주의 1. 누가 ‘우리’인가? 2. ‘우리’ 민족의 신화 3. 민족이란 무엇인가? 2장 민족과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1. 민족과 민족주의의 생성 2. 민족은 왜 탄생했는가? 3. 민족/국민에서 시민 및 주민으로 3장 민족의 ‘안’과 ‘밖’: 위험한 민족주의 1. 민족주의는 진보적이다? 2. 민족주의와 보편적 가치는 충돌하는가? 3. 민족 ‘내부’는 동질적인가? 4. 집단주의로서의 민족주의와 개인은 만날 수 있을까? 5. 주변부의 민족적 정체성과 타자에 대한 관용성 6. ‘우리’와 타자들 만들기 4장 민족주의와 젠더 1. 민족주의와 페미니즘 2. 민족주의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가치 3. 민족주체인 남성, 민족상징인 여성 4. 일본군 ‘성노예’와 민족담론 5. 여성문제는 서구적인가? 6. 민족주의와 여성주의는 충돌하는가? 5장 진보적 민족주의 논쟁 1. 진보적 민족주의란? 2. 진보적 민족주의론 비판 6장 민족주의, 유효기간이 끝나다 1. 제3세계 민족주의의 진보성 2. 저항적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적 민족주의 3. 진보적 민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4.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쟁점과 핵심어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