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프론티어21 지적대안 담론 9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21세기의 계보
- 대등서명
- Adam Smith in Beijing: Lineages of the Twenty-First Century
- 개인저자
- 조반니 아리기 지음 강진아 옮김
- 발행사항
- 서울: 길, 2009
- 형태사항
- 603 p.; 24 cm
- 총서사항
- 프론티어21 지적대안 담론
- ISBN
- 9788964450000
- 청구기호
- 320.905 아239ㅂ
- 일반주기
- 원저자: Giovanni Arrighi
- 서지주기
- 참고문헌(p,573-596) 및 색인 수록
소장정보
위치 | 등록번호 | 청구기호 / 출력 | 상태 | 반납예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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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료실 | 00012041 | 대출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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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번호
- 00012041
- 상태/반납예정일
- 대출가능
- -
- 위치/청구기호(출력)
- 1자료실
책 소개
지난 2009년 6월 18일 작고한 세계적 학자 조반니 아리기의 최후 역작!
이제는 누구나 미국 패권의 몰락을 이야기한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생각하지 못한 현상이다.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불안정,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한 국제 경찰로서의 역할론에 대한 부정적 시각, 거기에 더해 중국의 부상은 21세기에 패권국으로서의 미국 지위에 대한 강력한 위협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몰락에 대한 세계체제론적 시각에서 흥미롭게 분석한 세계적인 학자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1937~2009)의 최후의 역작이다. 이미 국내에 그의 대표작 『장기 20세기』(백승욱 옮김, 그린비, 2008)로 잘 알려진 그는, 이 책에서 아주 도발적인 주제로 우리를 ‘중국 문제’로 끌어들인다. 우리에게 중국은 이제 단순한 경제교역과 북한 문제를 다루는 대상이 아닌 미국을 대체할 또 하나의 패권국이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한 축인 중국과의 문제가 지정학적으로도 우리에게 중요한 이때에, 이 책은 분명 서구학자의 시각으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트로이트의 카를 마르크스,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이 책에서 저자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통해 중국의 성장을 바라본다. 흔히 진보학계에서라면 의아하게 할 출발점이다. 그 지점은 바로 애덤 스미스가 예견한 “용기와 무력에서 평등해지고 상호 존중하는” 세계가 21세기에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에서 그렇다. 그 평등과 상호 존중의 축으로 중국을 바라본 것이다.
흔히 미국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와 비서구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처방을 따라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오늘날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은 워싱턴이 권한 신자유주의의 충격 요법을 따르지 않은 덕분이다. 이 점은 중국의 경제 발전이 서구식 모델을 따른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발전이 남긴 국내적인 병리현상으로서의 부패와 빈부격차 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중국에 사회주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중국 경제가 서구식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논란이 시장경제, 자본주의, 경제 발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오해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 책의 목표는 현 단계 중국 경제에 대한 이론적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라 말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에 대한 분석과 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해 비판
그 출발선상에 저자는 애덤 스미스를 갖다놓는다. 책제목이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을 디트로이트의 카를 마르크스와 연관지어 살펴보자. 마리오 트론티는 1960년대 말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맹위를 떨칠 때, 혁명 정서가 고양된 곳은 유럽일지 몰라도, 그런 사상적 영향력이 없는 미국이야말로 노자(勞資) 관계가 마르크스주의적인 곳이라고 주장했다. 즉 자본과 노동이 치열한 계급투쟁을 벌이고 있었던 곳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 디트로이트의 포드 공장 작업장이었다. 저자는 트론티를 이용해 마르크스와 관계없어 보이는 현대 미국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 이론이었음을 들어, 애덤 스미스의 시장경제 이론이야말로 스미스와 관계없어 보이는 중국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마르크스 자본주의 개념으로는 중국을 잘 설명할 수 없으며, 중국에서 보듯이 시장 형성과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팽창 이후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동아시아의 부흥을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까. 아리기는 일본학자 스기하라 가오루의 테제를 중요한 토대로 삼는다. 스기하라는 아시아가 근면혁명(勤勉革命)을 겪으며 인적 자본을 활용하는 발전 경로를 개척했으며, 이는 서구의 산업문명과 비인적(非人的) 자본 활용의 경로와는 다르다고 양자를 대비했다. 아시아는 이후 서구화 과정에서도 인적 자본 활용의 전통을 결합하여 “노동 집약적 산업화”를 탄생시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즉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경제의 부활은 바로 서구 경로와 노동 집약적 에너지 절약형의 동아시아 경로를 결합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산업혁명이 “생산의 기적”이지만, 동아시아의 경로는 자본과 자원을 절약하고 많은 이들에게 생산 증가의 혜택을 나눠주는 “분배의 기적”을 이루었음을 증명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왜 저자에게 애덤 스미스는 중요한가. 저자는 스미스에 대한 세 가지 신화를 깨면서, 스미스 이론을 나름대로 재조명한다. 첫째 스미스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이론가가 아니라, 국가와 입법자가 잘 통치하기 위해 시장을 이용하라고 했으며 시장을 통치 도구로 파악하고 완전한 자유무역은 오히려 국익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둘째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이론가와 옹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그는 노동 분업의 이론가와 옹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서구적 발전 경로를 찬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스미스는 풍요나 경제적 성숙으로 가는 두 가지 길을 제시했는데, 즉 ‘자연스러운’ 중국식 경로와 ‘부자연스럽고 퇴보적인’ 서구(네덜란드) 경로로 나누어, 이 가운데 서구 경로는 외국무역>제조업>농업 순으로 중시하고, 중국은 거꾸로 농업과 제조업 및 국내무역을 외국무역보다 중시한다고 봄과 동시에 그는 농업 발전을 중시했으며 자본가들을 경계했음을 아리기는 적시한다. 우리에게 덧씌워진 이런 애덤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올바로 정초한 다음, 아리기는 다시금 스미스의 이론을 카를 마르크스와 요제프 슘페터의 경제이론을 토대로 비판적으로 확대ㆍ적용시킨다. 즉 스미스가 그려낸 경제 발전 개념에서는 경제 경로 자체에 한계를 극복하거나 구조를 바꿀 내재적 동력이 없지만, 마르크스와 슘페터가 그린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마르크스적 시장 경제)은 창조적 파괴를 거쳐 한계를 뛰어넘어 돌파하여 새로운 구조를 창출하는 동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은 베네치아/제네바 → 네덜란드 → 영국 → 미국으로 연쇄적으로 옮겨갔다. 바로 장기 16세기, 장기 17세기, 장기 19세기, 장기 20세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1세기가 도래한 지금, 중국이 바로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중국의 부상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는 그럼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토대로 그 위기를 “신호적 위기”와 “최종적 위기”로 나누어 살펴보는데, 신호적 위기의 진원지는 바로 베트남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의 실패,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정치적 신뢰 상실,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 혁명 세력의 득세, 미국의 세계 통화 체제에 대한 통제력 상실(브레턴 우즈 체제의 붕괴) 등이 바로 신호적 위기의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최종적 위기는? 그렇다. 21세기 들어 9ㆍ11사태와 이라크 침공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가 그를 예증한다. 이제 미국은 세계의 각국들에게서 반드시 필요한 보호자가 아니라 “없어도 되는 나라”가 될 정도로 된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이동을 부(富)와 힘의 역동적 구조로 파헤친 문제작!
아리기는 에필로그 부분에서 이 책의 집필 동기와 사상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즉 아리기는 중국과 동아시아의 부상이,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전쟁으로 점철된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앞서 언급한 ‘부자연스러운’ 서구 경로)를 수정하고 동아시아 경로의 장점인 경제적으로 보다 평등하고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1세기 들어 중국은 경제적 부상에 이어 정치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미국이 부가 아닌 힘, 즉 군사력만으로 헤게모니를 주도하려 했다면, 중국식 모델이 21세기의 새로운 헤게모니 주도 세력이 될 것인가에 대해 아리기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만약 이 방향 전환이 중국의 자국 중심적 시장 기반 발전, 강탈 없는 축적, 비인적 자원보다 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대중의 참여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정부 등과 같은 중국의 전통을 부활시키고 공고히 하는 데 성공한다면, 중국은 문화적 차이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문명연방을 출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지적대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경제사 연구에 머물렀던 캘리포니아학파(간략히 말해 동아시아로부터 세계사를 다시 쓰는 그룹)의 연구, 그리고 하부 구조의 연구에 몰두하여 상부 구조의 역동성에 소홀한 마르크스주의 학파의 연구를 뛰어넘어, 스미스의 표현대로 부(富)와 힘의 역동적 구조를 파헤친 점이다. 저자가 반복해서 비판하는 로버트 브레너처럼 자본가 간 경쟁이나 계급 관계가 세계 정치경제를 모두 규정하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계의 발전 구조와 헤게모니 체계의 발전 구조를 결합하여 어느 하나도 종속적이지 않은 대등한 체계로서 취급하는 학문적 분석 방법은 주목할 만하다.
이제는 누구나 미국 패권의 몰락을 이야기한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생각하지 못한 현상이다.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불안정,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한 국제 경찰로서의 역할론에 대한 부정적 시각, 거기에 더해 중국의 부상은 21세기에 패권국으로서의 미국 지위에 대한 강력한 위협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몰락에 대한 세계체제론적 시각에서 흥미롭게 분석한 세계적인 학자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1937~2009)의 최후의 역작이다. 이미 국내에 그의 대표작 『장기 20세기』(백승욱 옮김, 그린비, 2008)로 잘 알려진 그는, 이 책에서 아주 도발적인 주제로 우리를 ‘중국 문제’로 끌어들인다. 우리에게 중국은 이제 단순한 경제교역과 북한 문제를 다루는 대상이 아닌 미국을 대체할 또 하나의 패권국이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한 축인 중국과의 문제가 지정학적으로도 우리에게 중요한 이때에, 이 책은 분명 서구학자의 시각으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트로이트의 카를 마르크스,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이 책에서 저자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통해 중국의 성장을 바라본다. 흔히 진보학계에서라면 의아하게 할 출발점이다. 그 지점은 바로 애덤 스미스가 예견한 “용기와 무력에서 평등해지고 상호 존중하는” 세계가 21세기에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에서 그렇다. 그 평등과 상호 존중의 축으로 중국을 바라본 것이다.
흔히 미국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와 비서구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처방을 따라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오늘날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은 워싱턴이 권한 신자유주의의 충격 요법을 따르지 않은 덕분이다. 이 점은 중국의 경제 발전이 서구식 모델을 따른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발전이 남긴 국내적인 병리현상으로서의 부패와 빈부격차 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중국에 사회주의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중국 경제가 서구식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논란이 시장경제, 자본주의, 경제 발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오해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 책의 목표는 현 단계 중국 경제에 대한 이론적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라 말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 경로에 대한 분석과 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해 비판
그 출발선상에 저자는 애덤 스미스를 갖다놓는다. 책제목이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을 디트로이트의 카를 마르크스와 연관지어 살펴보자. 마리오 트론티는 1960년대 말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맹위를 떨칠 때, 혁명 정서가 고양된 곳은 유럽일지 몰라도, 그런 사상적 영향력이 없는 미국이야말로 노자(勞資) 관계가 마르크스주의적인 곳이라고 주장했다. 즉 자본과 노동이 치열한 계급투쟁을 벌이고 있었던 곳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 디트로이트의 포드 공장 작업장이었다. 저자는 트론티를 이용해 마르크스와 관계없어 보이는 현대 미국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 이론이었음을 들어, 애덤 스미스의 시장경제 이론이야말로 스미스와 관계없어 보이는 중국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마르크스 자본주의 개념으로는 중국을 잘 설명할 수 없으며, 중국에서 보듯이 시장 형성과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팽창 이후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동아시아의 부흥을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까. 아리기는 일본학자 스기하라 가오루의 테제를 중요한 토대로 삼는다. 스기하라는 아시아가 근면혁명(勤勉革命)을 겪으며 인적 자본을 활용하는 발전 경로를 개척했으며, 이는 서구의 산업문명과 비인적(非人的) 자본 활용의 경로와는 다르다고 양자를 대비했다. 아시아는 이후 서구화 과정에서도 인적 자본 활용의 전통을 결합하여 “노동 집약적 산업화”를 탄생시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즉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경제의 부활은 바로 서구 경로와 노동 집약적 에너지 절약형의 동아시아 경로를 결합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산업혁명이 “생산의 기적”이지만, 동아시아의 경로는 자본과 자원을 절약하고 많은 이들에게 생산 증가의 혜택을 나눠주는 “분배의 기적”을 이루었음을 증명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왜 저자에게 애덤 스미스는 중요한가. 저자는 스미스에 대한 세 가지 신화를 깨면서, 스미스 이론을 나름대로 재조명한다. 첫째 스미스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이론가가 아니라, 국가와 입법자가 잘 통치하기 위해 시장을 이용하라고 했으며 시장을 통치 도구로 파악하고 완전한 자유무역은 오히려 국익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둘째 스미스는 자본주의의 이론가와 옹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그는 노동 분업의 이론가와 옹호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서구적 발전 경로를 찬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스미스는 풍요나 경제적 성숙으로 가는 두 가지 길을 제시했는데, 즉 ‘자연스러운’ 중국식 경로와 ‘부자연스럽고 퇴보적인’ 서구(네덜란드) 경로로 나누어, 이 가운데 서구 경로는 외국무역>제조업>농업 순으로 중시하고, 중국은 거꾸로 농업과 제조업 및 국내무역을 외국무역보다 중시한다고 봄과 동시에 그는 농업 발전을 중시했으며 자본가들을 경계했음을 아리기는 적시한다. 우리에게 덧씌워진 이런 애덤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올바로 정초한 다음, 아리기는 다시금 스미스의 이론을 카를 마르크스와 요제프 슘페터의 경제이론을 토대로 비판적으로 확대ㆍ적용시킨다. 즉 스미스가 그려낸 경제 발전 개념에서는 경제 경로 자체에 한계를 극복하거나 구조를 바꿀 내재적 동력이 없지만, 마르크스와 슘페터가 그린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마르크스적 시장 경제)은 창조적 파괴를 거쳐 한계를 뛰어넘어 돌파하여 새로운 구조를 창출하는 동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은 베네치아/제네바 → 네덜란드 → 영국 → 미국으로 연쇄적으로 옮겨갔다. 바로 장기 16세기, 장기 17세기, 장기 19세기, 장기 20세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1세기가 도래한 지금, 중국이 바로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에 서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중국의 부상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는 그럼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토대로 그 위기를 “신호적 위기”와 “최종적 위기”로 나누어 살펴보는데, 신호적 위기의 진원지는 바로 베트남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의 실패,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정치적 신뢰 상실,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 혁명 세력의 득세, 미국의 세계 통화 체제에 대한 통제력 상실(브레턴 우즈 체제의 붕괴) 등이 바로 신호적 위기의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최종적 위기는? 그렇다. 21세기 들어 9ㆍ11사태와 이라크 침공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가 그를 예증한다. 이제 미국은 세계의 각국들에게서 반드시 필요한 보호자가 아니라 “없어도 되는 나라”가 될 정도로 된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이동을 부(富)와 힘의 역동적 구조로 파헤친 문제작!
아리기는 에필로그 부분에서 이 책의 집필 동기와 사상을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즉 아리기는 중국과 동아시아의 부상이,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전쟁으로 점철된 자본주의적 발전 경로(앞서 언급한 ‘부자연스러운’ 서구 경로)를 수정하고 동아시아 경로의 장점인 경제적으로 보다 평등하고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1세기 들어 중국은 경제적 부상에 이어 정치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미국이 부가 아닌 힘, 즉 군사력만으로 헤게모니를 주도하려 했다면, 중국식 모델이 21세기의 새로운 헤게모니 주도 세력이 될 것인가에 대해 아리기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만약 이 방향 전환이 중국의 자국 중심적 시장 기반 발전, 강탈 없는 축적, 비인적 자원보다 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대중의 참여를 통해 정책을 만들어가는 정부 등과 같은 중국의 전통을 부활시키고 공고히 하는 데 성공한다면, 중국은 문화적 차이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문명연방을 출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지적대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 경제사 연구에 머물렀던 캘리포니아학파(간략히 말해 동아시아로부터 세계사를 다시 쓰는 그룹)의 연구, 그리고 하부 구조의 연구에 몰두하여 상부 구조의 역동성에 소홀한 마르크스주의 학파의 연구를 뛰어넘어, 스미스의 표현대로 부(富)와 힘의 역동적 구조를 파헤친 점이다. 저자가 반복해서 비판하는 로버트 브레너처럼 자본가 간 경쟁이나 계급 관계가 세계 정치경제를 모두 규정하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계의 발전 구조와 헤게모니 체계의 발전 구조를 결합하여 어느 하나도 종속적이지 않은 대등한 체계로서 취급하는 학문적 분석 방법은 주목할 만하다.
목차
서문과 감사의 말 7
서론 13
제1부 애덤 스미스와 신(新)아시아 시대
제1장 디트로이트의 마르크스, 베이징의 스미스 31
제2장 애덤 스미스의 역사사회학 69
제3장 마르크스, 슘페터 그리고 자본과 권력의 ‘끝없는’ 축적 107
제2부 전 지구적 혼돈을 쫓아서
제4장 전 지구적 혼돈의 경제학 145
제5장 전 지구적 혼돈의 사회적 동학 173
제6장 헤게모니의 위기 211
제3부 헤게모니의 해체
제7장 헤게모니 없는 지배 245
제8장 역사적 자본주의의 영토적 논리 295
제9장 미증유의 세계국가 347
제4부 신(新)아시아 시대의 계보
제10장 ‘화평굴기’의 도전 383
제11장 국가, 시장 그리고 자본주의, 동양과 서양 427
제12장 중국 부상의 기원과 동력 483
에필로그 521
옮긴이 해제 537
참고문헌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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