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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폭력의 예감>은 오키나와(沖繩)와 ‘오키나와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하 후유의 사상을 통해 ‘폭력’이라는 주제를 고찰하는 책이다. 오키나와와 오키나와 이민을 주로 연구해 온 도미야마 이치로는 이 책에서 기존의 역사학이나 사회학의 식민주의 논의에서 드러나지 않는 ‘폭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직접적인 형태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키나와인’ 혹은 ‘류큐인’이라고 언급될 때의 위화감, 관동대지진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조선인’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취해야 하는 ‘방어태세’, 일본인으로 동화되고자 하면서 끊임없이 조선인, 타이완의 생번, 남양군도의 ‘토인’을 타자화하는 언설들. 바로 이런 예감된 폭력의 증후들을 읽어내면서 저자는 자신만의 언어로 일상에 내재한 폭력의 모습을 밝혀내고, 바로 그 지점에서 폭력에 저항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일상에 내재한 폭력에 저항하라!!
‘오키나와’라는 표상을 통해 본 폭력에 대한 새로운 고찰!
2002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전장의 기억>(이산)을 통해 이미 ‘전장에 대한 기억’과 ‘일상화된 전장’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었던 도미야마 이치로(富山一郞)가 이 책 <폭력의 예감>(暴力の予感)에서 주로 천착하는 것은 바로 ‘폭력’이라는 주제다. 그가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폭력’은 기존의 역사학이나 사회학에서처럼, 가해와 피해가 명확한 구체적인 ‘폭력’이 아니다. 일본에 가장 먼저 병합되어 일본의 대외확장에 복무했지만 지금까지도 내부의 식민지로 취급되고 있는 오키나와(沖繩, 류큐)를 사상의 준거점으로 삼고 있는 도미야마는, 기존의 식민주의 논의에서 드러나지 않는 폭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주로 ‘예감하다’라는 동사로 대표되는 도미야마의 폭력에 대한 논의는 폭력에 몸이 노출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태에 주목한다. 폭력이 실제로 행사되고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폭력에 노출된 상태, 즉 폭력을 대기(待機)하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사태에서 이미 폭력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력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폭력을 예감하고 있는 자의 신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도미야마의 핵심적인 논지이다.
따라서 폭력에 대한 도미야마의 고찰은 특정 시기나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행사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어떤 이들이 폭력을 예감하고, 그에 대해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폭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식민주의, 전쟁, 독재라는 ‘폭력’의 기억들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게다가 경제적 위기와 군사적 위기가 임박한 ‘폭력’을 예고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반도에서 도미야마가 <폭력의 예감>을 통해 말하고 있는 ‘저항 가능성’의 의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폭력을 예감한다는 것
관동대지진 당시 표준어를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조선인이 살해되었다. 너희들도 자칫 오인되어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본문, 26쪽)
「서장」에서 인용되고 있는 이 소학교 교사의 발언은 도미야마가 말하는 ‘폭력의 예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위 인용문에 대한 분석이 식민지배의 계층구조라든가, 오키나와의 일본으로의 동화라든가, 아니면 오키나와와 조선 모두 마찬가지로 식민지였다는 식의 난폭한 유형론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교사의 발언에서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과 언어행위를 통해(곧, 다르다는 언명을 통해)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극한의 기대감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발언은 이미 바로 옆에서 폭력이 행사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을 회로로 하여 살해하는 자 쪽에 서게 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저자는 바로 이런 절박한 순간에 폭력에 저항할 가능성을 발견해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미야마가 ‘오키나와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하 후유(伊波普猷)의 사상궤적을 추적하면서, 준거로 삼는 것 역시 바로 이 ‘예감된 폭력’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한 이하 후유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오키나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접해야만 하는 학자다. 근대 일본에 의해 폭력적으로 병합되고 동화가 추진되던 류큐에서 자라났으며, 도쿄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오키나와로 돌아가 오키나와에 대한 중요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한 이하 후유는, 관찰자이면서도 관찰 대상이라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독특한 위치로 인해 오키나와를 기술(記述)하면서도 항상 식민지에 가해지는 폭력과 타자화를 감지해야 했던 것이다.
‘개성’이라는 이하 후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애매함을 잘 드러내 준다. 이하 후유가 류큐 병합 이후의 식민지 확장과 식민주의의 폭력에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도미야마는 이 ‘개성’이라는 개념에서 폭력을 감지하고 그것에 대한 저항 방법을 모색하는 이하의 노력을 엿본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일부이지만, 완벽히 통합될 수는 없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하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도미야마는 이에 대해서, 이하 후유가 이 개념을 사용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식민주의의 폭력’이며, 대만의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하 후유는 다른 식민지와의 연대를 구성하기보다는 ‘오키나와의 독자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 ‘개성’이라는 개념마저도 1920년대 세계적인 설탕 가격 하락에 의해 오키나와 경제가 무너진 ‘소철지옥’(蘇?地獄) 이후에는 쓰이지 않게 된다. 오키나와 경제의 붕괴와 함께, 많은 오키나와인들이 오사카로 남양군도(南洋群島)로 ‘노동력’이 되어 출향(出鄕)했고, 잔류한 이들 역시 프롤레타리아화와 오키나와에 대한 법적?경제적 구제의 영향으로 점차 ‘개성’이라 할 만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오키나와를 보는 준거점
도미야마는 식민주의로 오키나와를 분석하는 동시에, 자본주의라는 또 하나의 틀을 끌어들여 오키나와에 관한 논의를 펼친다. 그는 우선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포섭은 ‘계약적 합의에 따른 노동력 상품’이라는 측면과, 합의 없이 이루어지는 ‘강제성’이라는 측면의 두 얼굴을 가진다는 점을 전제한 후, 식민주의를 ‘강제적’ 노동력 포섭 쪽에 위치시킨다. 이는 곧 식민주의가 언제나 별도의 생산양식의 문제, 다시 말해 ‘계약에 기반한 순수한 자본주의’의 ‘타자’로서 발견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본주의’라는 준거점을 가지고 ‘오키나와’를 분석한다고 할 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1920년대의 소철지옥이다. 애당초 식민화의 과정은 식민지의 주민들을 점령하고 국가에 등기하는 과정이었으나, 식민지의 주민들을 평준화된 노동력으로 동화시키는 과정은 바로 소철지옥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소철지옥으로 오키나와 경제가 붕괴한 후 오키나와 사람들은 급격히 본토의 노동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거나, 일본이 새롭게 막 영유한 남양군도의 농업노동자로 포섭되어 갔다.
저자는 우선, 노동력으로 자본에 포섭될 때 오키나와인들 대부분은 강제성을 띠지 않은 계약적 합의에 기반했다는 점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 계약적 합의를 자유로운 임금노동으로, 강제를 식민지 노동으로 설정한다면 오키나와와 관련된 자본주의 전개는 ‘자유로운 노동’의 범주로 포섭되고 만다는 점을 또한 지적한다. 그러나 오키나와로부터 유출된 많은 노동력이 아무리 계약과 합의를 통해 노동과정에 포섭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포섭에는 노동과정 밖에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언어나 관습적 행위에 대한 감시가 수반된다. 이들의 오키나와적인 행위들은, 남양군도의 토착민이나 타이완 원주민인 생번(生蕃)의 ‘게으름’과 마찬가지로 ‘생활개선’의 항목으로 설정되며, 이런 감시와 생활개선에 대한 강요에 대치하는 자들은 결국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침묵하는 자의 신체에서 다시 한번 ‘오인되어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이 발견된다. ‘오인되어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행위에 주의를 기울일 것. 이렇게 프롤레타리아화된 오키나와인들이 접하게 되는 ‘노동규율’ 또한 폭력을 감지하면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겁쟁이들이 맺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
일본 현지에서 출간될 당시, <폭력의 예감>은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료를 해석하여 이른바 ‘오키나와 연구’라는 영역을 쇄신한 것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그러나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등 어느 분야의 책으로도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학문에서는 기술될 수 없는 지점들을, 혹은 기술되었으나 그 이상을 함의하고 있는 지점들을 도미야마 자신만의 언어로 파헤쳐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도미야마가 부각시킨 ‘기술될 수 없는 지점’, 또 ‘기술되었으나 그 이상을 함의하고 있는 지점’들은 바로 도망친 자, 전향한 자, 침묵한 자, 한 마디로 말해서 ‘겁쟁이’들이 서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용감한 비전향자는 늘 역사의 주인공으로 떠받들어지지만, 겁쟁이는 극복해야 할 역사의 장해물로 취급되는 틀에 박힌 평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그 겁쟁이 자신을 중심에 놓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신체에는 상처와 관련된 상상력이 흘러넘치고 있으며, ‘폭력’이 ‘예감’되고 있다. 바로 그 두려움이 ‘병역거부’와 ‘전쟁참가’라는 양극단의 동일한 기원이라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질서를 받아들이지만,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무효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저항의 순간 또한 찾아오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은 ‘겁쟁이’라는 것이 도미야마의 주장이다. 따라서 결기한 자들이 엿보았던 미래와 유토피아를 ‘겁쟁이’를 배제한 채 그들만의 독점물로 삼아서는 안 되며, 도망치고 배신한 ‘겁쟁이’의 신체를 매개로 해서, 그 겁쟁이들이 사는 미래로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상을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옳은 사상과 옳지 않은 사상을 구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겁쟁이가 ‘병역을 거부할지 모를 가능성’의 미래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가 사상에서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탈색된 투명한 연구자의 말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겁쟁이인지를 삶에서 깨닫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관계성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 관계성 속에서 폭력에 저항할 절박할 가능성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이 가능성이 도미야마가 이 책을 통해 폭력을 예감하는 자들의 떨림과 침묵을 기술(記述)하고 있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일상에 내재한 폭력에 저항하라!!
‘오키나와’라는 표상을 통해 본 폭력에 대한 새로운 고찰!
2002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전장의 기억>(이산)을 통해 이미 ‘전장에 대한 기억’과 ‘일상화된 전장’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었던 도미야마 이치로(富山一郞)가 이 책 <폭력의 예감>(暴力の予感)에서 주로 천착하는 것은 바로 ‘폭력’이라는 주제다. 그가 이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폭력’은 기존의 역사학이나 사회학에서처럼, 가해와 피해가 명확한 구체적인 ‘폭력’이 아니다. 일본에 가장 먼저 병합되어 일본의 대외확장에 복무했지만 지금까지도 내부의 식민지로 취급되고 있는 오키나와(沖繩, 류큐)를 사상의 준거점으로 삼고 있는 도미야마는, 기존의 식민주의 논의에서 드러나지 않는 폭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주로 ‘예감하다’라는 동사로 대표되는 도미야마의 폭력에 대한 논의는 폭력에 몸이 노출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태에 주목한다. 폭력이 실제로 행사되고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폭력에 노출된 상태, 즉 폭력을 대기(待機)하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사태에서 이미 폭력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폭력의 작동을 멈추게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폭력을 예감하고 있는 자의 신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도미야마의 핵심적인 논지이다.
따라서 폭력에 대한 도미야마의 고찰은 특정 시기나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행사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어떤 이들이 폭력을 예감하고, 그에 대해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폭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식민주의, 전쟁, 독재라는 ‘폭력’의 기억들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게다가 경제적 위기와 군사적 위기가 임박한 ‘폭력’을 예고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반도에서 도미야마가 <폭력의 예감>을 통해 말하고 있는 ‘저항 가능성’의 의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폭력을 예감한다는 것
관동대지진 당시 표준어를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조선인이 살해되었다. 너희들도 자칫 오인되어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본문, 26쪽)
「서장」에서 인용되고 있는 이 소학교 교사의 발언은 도미야마가 말하는 ‘폭력의 예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위 인용문에 대한 분석이 식민지배의 계층구조라든가, 오키나와의 일본으로의 동화라든가, 아니면 오키나와와 조선 모두 마찬가지로 식민지였다는 식의 난폭한 유형론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교사의 발언에서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과 언어행위를 통해(곧, 다르다는 언명을 통해)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극한의 기대감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 발언은 이미 바로 옆에서 폭력이 행사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을 회로로 하여 살해하는 자 쪽에 서게 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저자는 바로 이런 절박한 순간에 폭력에 저항할 가능성을 발견해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미야마가 ‘오키나와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하 후유(伊波普猷)의 사상궤적을 추적하면서, 준거로 삼는 것 역시 바로 이 ‘예감된 폭력’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한 이하 후유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오키나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접해야만 하는 학자다. 근대 일본에 의해 폭력적으로 병합되고 동화가 추진되던 류큐에서 자라났으며, 도쿄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오키나와로 돌아가 오키나와에 대한 중요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한 이하 후유는, 관찰자이면서도 관찰 대상이라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독특한 위치로 인해 오키나와를 기술(記述)하면서도 항상 식민지에 가해지는 폭력과 타자화를 감지해야 했던 것이다.
‘개성’이라는 이하 후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애매함을 잘 드러내 준다. 이하 후유가 류큐 병합 이후의 식민지 확장과 식민주의의 폭력에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도미야마는 이 ‘개성’이라는 개념에서 폭력을 감지하고 그것에 대한 저항 방법을 모색하는 이하의 노력을 엿본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일부이지만, 완벽히 통합될 수는 없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하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도미야마는 이에 대해서, 이하 후유가 이 개념을 사용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식민주의의 폭력’이며, 대만의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하 후유는 다른 식민지와의 연대를 구성하기보다는 ‘오키나와의 독자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 ‘개성’이라는 개념마저도 1920년대 세계적인 설탕 가격 하락에 의해 오키나와 경제가 무너진 ‘소철지옥’(蘇?地獄) 이후에는 쓰이지 않게 된다. 오키나와 경제의 붕괴와 함께, 많은 오키나와인들이 오사카로 남양군도(南洋群島)로 ‘노동력’이 되어 출향(出鄕)했고, 잔류한 이들 역시 프롤레타리아화와 오키나와에 대한 법적?경제적 구제의 영향으로 점차 ‘개성’이라 할 만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오키나와를 보는 준거점
도미야마는 식민주의로 오키나와를 분석하는 동시에, 자본주의라는 또 하나의 틀을 끌어들여 오키나와에 관한 논의를 펼친다. 그는 우선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포섭은 ‘계약적 합의에 따른 노동력 상품’이라는 측면과, 합의 없이 이루어지는 ‘강제성’이라는 측면의 두 얼굴을 가진다는 점을 전제한 후, 식민주의를 ‘강제적’ 노동력 포섭 쪽에 위치시킨다. 이는 곧 식민주의가 언제나 별도의 생산양식의 문제, 다시 말해 ‘계약에 기반한 순수한 자본주의’의 ‘타자’로서 발견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본주의’라는 준거점을 가지고 ‘오키나와’를 분석한다고 할 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1920년대의 소철지옥이다. 애당초 식민화의 과정은 식민지의 주민들을 점령하고 국가에 등기하는 과정이었으나, 식민지의 주민들을 평준화된 노동력으로 동화시키는 과정은 바로 소철지옥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소철지옥으로 오키나와 경제가 붕괴한 후 오키나와 사람들은 급격히 본토의 노동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거나, 일본이 새롭게 막 영유한 남양군도의 농업노동자로 포섭되어 갔다.
저자는 우선, 노동력으로 자본에 포섭될 때 오키나와인들 대부분은 강제성을 띠지 않은 계약적 합의에 기반했다는 점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 계약적 합의를 자유로운 임금노동으로, 강제를 식민지 노동으로 설정한다면 오키나와와 관련된 자본주의 전개는 ‘자유로운 노동’의 범주로 포섭되고 만다는 점을 또한 지적한다. 그러나 오키나와로부터 유출된 많은 노동력이 아무리 계약과 합의를 통해 노동과정에 포섭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포섭에는 노동과정 밖에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언어나 관습적 행위에 대한 감시가 수반된다. 이들의 오키나와적인 행위들은, 남양군도의 토착민이나 타이완 원주민인 생번(生蕃)의 ‘게으름’과 마찬가지로 ‘생활개선’의 항목으로 설정되며, 이런 감시와 생활개선에 대한 강요에 대치하는 자들은 결국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침묵하는 자의 신체에서 다시 한번 ‘오인되어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방어태세를 갖추는 것이 발견된다. ‘오인되어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의 행위에 주의를 기울일 것. 이렇게 프롤레타리아화된 오키나와인들이 접하게 되는 ‘노동규율’ 또한 폭력을 감지하면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겁쟁이들이 맺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
일본 현지에서 출간될 당시, <폭력의 예감>은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료를 해석하여 이른바 ‘오키나와 연구’라는 영역을 쇄신한 것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그러나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등 어느 분야의 책으로도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학문에서는 기술될 수 없는 지점들을, 혹은 기술되었으나 그 이상을 함의하고 있는 지점들을 도미야마 자신만의 언어로 파헤쳐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도미야마가 부각시킨 ‘기술될 수 없는 지점’, 또 ‘기술되었으나 그 이상을 함의하고 있는 지점’들은 바로 도망친 자, 전향한 자, 침묵한 자, 한 마디로 말해서 ‘겁쟁이’들이 서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용감한 비전향자는 늘 역사의 주인공으로 떠받들어지지만, 겁쟁이는 극복해야 할 역사의 장해물로 취급되는 틀에 박힌 평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그 겁쟁이 자신을 중심에 놓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신체에는 상처와 관련된 상상력이 흘러넘치고 있으며, ‘폭력’이 ‘예감’되고 있다. 바로 그 두려움이 ‘병역거부’와 ‘전쟁참가’라는 양극단의 동일한 기원이라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질서를 받아들이지만,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무효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저항의 순간 또한 찾아오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사람은 ‘겁쟁이’라는 것이 도미야마의 주장이다. 따라서 결기한 자들이 엿보았던 미래와 유토피아를 ‘겁쟁이’를 배제한 채 그들만의 독점물로 삼아서는 안 되며, 도망치고 배신한 ‘겁쟁이’의 신체를 매개로 해서, 그 겁쟁이들이 사는 미래로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상을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옳은 사상과 옳지 않은 사상을 구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겁쟁이가 ‘병역을 거부할지 모를 가능성’의 미래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가 사상에서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탈색된 투명한 연구자의 말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겁쟁이인지를 삶에서 깨닫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관계성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 관계성 속에서 폭력에 저항할 절박할 가능성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이 가능성이 도미야마가 이 책을 통해 폭력을 예감하는 자들의 떨림과 침묵을 기술(記述)하고 있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목차
서문을 대신하여―겁쟁이들
서장 _ 예감이라는 문제
1_앙금
2_예감하다
3_다시 이하 후유로
1장 _ 증후학(症候學)
1_점령과 등기(登記)
2_일본인종론
3_‘미개’의 개량ㆍ재정의
4_하수도
2장 _ 내세우는 자
1_점령
2_관찰ㆍ교도ㆍ폭력
3_내세우는 자
4_아넷타이/아열대
3장 _ 공동체와 노동력
1_열대과학
2_공동체와 노동력
3_노동력의 낭비
4_히노마루 깃발 아래서
4장 _ 출향자의 꿈
1_노동력으로서의 경험
2_류큐의 바다/대동아의 바다
3_자치
종장 _ 신청하는 자
1_법과 폭력
2_위기와 구제
3_계속되는 위기
후기
옮긴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