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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야만의 시대에 인권을 개척한 주인공들의 대장정
그들이 외친 인권이 바로 지금 여기 우리 인권을 깨운다
인권의 역사성과 현재성, 보편성과 구체성을 총망라한 단 한 권의 인권 아카이브
인권의 보편성과 구체성을 보여주는 인권의 고전들과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권의 현주소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책 《인권을 외치다》를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했다. ‘가장 낮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열망으로 바꿔온 인권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연구소 창’의 활동가 류은숙이 직접 발굴하고 번역한 37개 문헌들과 이 문헌에 담긴 진정한 의미, 문헌을 둘러싼 생생한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인권의 고전과 오늘의 인권이 한데 모여 과거를 통해 오늘을, 문헌을 통해 현실을 읽을 수 있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3백여 년 전 영국의 인신보호법, 2백여 년 전 프랑스에서 폐지된 단결금지법, 그리고 시민불복종, 표현의 자유, 국가인권기구 원칙 등 이미 세계가 약속하고 인정한 권리들이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 인권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미국 <독립 선언서> 등 인권의 기념비가 된 문헌들을 소개하면서 문헌이 담고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게 되었고 어떤 정치적인 목적과 한계가 있었는지, 그리고 선언은 역사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에서 소외되었던 노예, 여성, 노동자 등이 저마다 자신들의 인권을 얻기 위해 외쳤던 문헌들이 함께 등장한다. 유엔이나 각종 국제기구에 ‘국가대표’들이 모여 만든 문헌뿐 아니라 흑인여성, 여성노동자, 빈민, 아이들이 바로 제 목소리로 스스로의 인권을 주장한 연설과 노래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투박하지만 절실한 그들의 목소리는 인권의 주인공, 인권의 저자란 언제나 자기 현실에 깨어 있고 그 현실을 개척했던 이들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주체들마다 누려야 할 권리,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권리를 보여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추상적인 가치로만 여겨왔던 ‘인권’의 다양성과 구체성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구체성은 인권이란 시민으로서 저마다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타인을 위해 실천해야 할 우리들의 의무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인권의 다양한 가치들은 언제나 가장 낮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외침과 노래와 약속으로 전해져왔음을 전하는 이 책은 시민 개개인이 저마다 인권의 주체임을, 인권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수정하고 강화해야 할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인권의 거의 모든 것을 담은 문헌의 보고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일했고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 류은숙은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권 문헌들을 발굴하고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낮에는 인권 현장에서 활동하고 밤에는 그 현장에서 위협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이미 세계가 약속했던 조약들, 이미 수세기 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들을 찾아내 지금 그들의 주장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권리임을 밝히고 알리는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발굴해 인권신문인 <인권오름(구 인권하루소식)>에 연재한 선언과 조약, 노래와 시, 연설과 책 등 인권문헌 가운데 37편을 추려 이 책에 담았다.
인권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자주 인용되는 문헌들이 있다. 당대 인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울림이 있고, 치열한 토론의 결실인 국제적 합의가 있고, 인권을 우습게 아는 권력을 속시원히 비웃어주고, 인권의 핵심을 한 방에 꿰는 그런 문헌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건 한두 줄의 인용이거나 그에 대한 해석뿐이다. (……)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전문 연구자가 아니지만 나와 인권 활동가 동료들이 나서서 그런 문헌을 함께 찾고 공부를 했다. 국내에 번역문이 조금이라도 소개된 것이 있으면 찾아서 이어붙이고, 원문을 찾으면 실력이 허락하는 만큼만 번역을 하고,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문헌은 ‘우리 같은 상황을 다른 누군가도 겪었을 테니 분명 한마디쯤 남겨놓았을 거야’란 생각으로 무턱대고 찾아보기도 했다. (저자 서문, 6~7쪽)
우리가 평소 ‘이런 건 참을 수 없다’, ‘왜 우리 정부는 이런 걸 존중해주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문서라 하니 기운이 솟았다. ‘그래, 우리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어. 든든한 빽이 생겼네’ 하는 기분이었다. (18쪽)
다양한 문헌을 인권론의 흐름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주창한 1세대 인권론(1장-인권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사회권’이라 불리는 2세대 인권론(2장-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 ‘연대’에 기초한 3세대 인권론(3장-인권으로 미래를 약속하다), 그리고 우리 인권의 현주소(4장-지금, 여기, 우리, 인권) 4개 장으로 묶어 인권의 어제와 오늘, 인권의 보편성과 구체성을 입체적으로 엮어 사상과 역사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인권을 이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
특히 <런던 부랑인의 절규>나 <평등파의 선언> 같은 문헌이나 <요그야카르타 원칙>, <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권 조약들을 저자가 직접 발굴하여 국내에 소개한 문헌들이 있다. 저자는 그동안 국제기구의 조약이나 선언을 중심으로 한 저명한 인권 문헌들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 되찾기 위해 외쳤던 이들의 목소리를 캐내어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인권의 이름으로 역사와 현재가 만났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들의 인권에서 우리의 인권을, 인권의 역사에서 오늘의 인권을 끄집어내 현재진행형의 인권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인권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프랑스 선언), 미국 <독립선언서> 등 우리가 익히 아는 문헌들은 구시대의 억압, 차별, 소외 대신 자유와 평등과 연대가 세계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원리라고 주장한다. 그 새로운 역사를 열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 바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였다.
그러나 선언이 말하는 ‘모든 인간’에서 여전히 배제된 이들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에 여성, 농민, 노동자는 없었다. 미국 독립선언에서도 역시 ‘천부인권’을 주장했지만 여성과 특히 흑인노예들의 권리는 담지 않았다. 이 책은 인권의 역사와 인권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빈민의 입으로 빈민의 권리를, 노동자의 말로 노동자의 요구를 외친 생생한 인권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빈민이 사는 ‘집(home)’의 조건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들짐승의 굴과 비교할 때 동물이 사는 굴이 더 안락하고 건강한 곳으로 여겨질 정도라면 어떻게 집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 썩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꺽거리고, 일부는 이미 무너져 내려 방심하면 팔다리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구멍이 있다. 해충이 기어오르는 어둡고 더러운 복도를 더듬어 가야만 한다. 그러고 나면, 당신이 참을 수 없는 악취에도 물러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가 대속한 인종에 속하는 수천 명의 존재가 무리지어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
_<런던 부랑인의 절규>(153쪽)
태곳적부터 우리에게 위선적으로 되풀이해온 말은 ‘인간은 평등하다’이다. 그러나 태곳적부터 가장 타락하고 야만적인 불평등이 오만하게 인류를 압박해왔다.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권리는 이의 없이 인정되어왔지만, 지금껏 실현된 적은 오직 한 번밖에 없다. 즉, 평등은 세련되고 무익한 법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더 강해진 목소리로 평등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런 말을 듣는다. “입 다물어라, 이 가난뱅이들아! 사실상 평등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조건부 평등에 만족해라. 너희 모두는 법 앞에 평등하다. 너희 천박한 폭도들아, 뭘 더 필요로 하느냐?”
평등과 우리 사이에 서서 우리와 충돌하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이렇게 굳게 선언한 바람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_<평등파의 선언>>(81~82쪽)
그래,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우지.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가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
반면에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 _<빵과 장미>(275쪽)
저자가 이들 문헌을 발굴하고 소개한 까닭 역시 인권의 역사에서 가려졌던 이들의 말과 노래를 알리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보다 중요한 가치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 역동적인 역사를 통해 인권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했던 이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져 왔음을 보이는 데 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런던 부랑인의 현실을 통해 대한민국의 빈곤층을, <빵과 장미>를 외쳤던 20세기 초 미국 여성 노동자들을 통해 대한민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매카시즘의 위대한 반대자 윌리엄 더글러스 판사의 말로써 우리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되돌아보고, 인권은 마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각이 전제될 때에야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전체 풀타임 노동자 중위 임금의 2/3 이하를 저임금이라 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1/3이 저임금 노동자이다. 게다가 평균 임금의 50퍼센트 이하를 받는 초저임금 노동자가 빠르게 늘어나 전체 노동자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다. 당연히 비정규직이 저임금 노동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여성일수록, 50세 이상 고령자일수록, 저학력일수록 저임금 노동자가 될 확률이 높다. 이들은 일을 하면서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노동빈곤층이다. (……)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모자람에서 찾으며, 가치 있는 빈민과 그렇지 않은 빈민을 구별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발견되어야 할 것은 빈곤이 아니다. 발견되어야 할 것도 치유해야 할 것도 우리 사회의 양심이고 구조이다. (150~151쪽)
사용자는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노동자는 해고의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잘리지’ 않으려면 화장실도 안 가면서 버티고, 근무 시간 내내 서서 일하면서도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온 식구의 밥줄이 달려 있으니 참아야 한다. 비정규직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먼 나라 이야기이다. 생존 그 자체인 일자리마저 늘 불안한 처지에 놓인 탓이다. (269~270쪽)
구체적이고 다양한 인권을 만난다
일반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인권이란 자유, 평등, 평화처럼 지고지순한 가치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삶의 국면이 다양한 만큼 저마다 처한 사회적 현실이 다르고, 그에 따라 사회가 그들을 위해 보장해야 할 인권도 다양하다. 또 우리가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는 이들의 인권을 생각할 때 그저 배불리 먹는 것이 최선이라는 정도로 모호하게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양한 인권의 주체와 인권의 조건들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 이주노동자, 성 소수자 등 우리가 이른바 사회적 약자라고 부르는 이들의 권리를 담은 다양한 문헌을 소개함과 동시에 식량주권, 사회보장, 발전권 등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본 위원회는 기아와 영양실조 문제가 대개 개발도상국에서 특히 심각하지만, 영양실조, 영양결핍 및 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와 기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 관련된 기타 문제가 일부 경제 선진국에도 존재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근본적으로 기아와 영양실조 문제는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특히 빈곤으로 인해 잉여 가능한 식량에 대한 접근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_<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263쪽)
제3세계의 많은 아동은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학령기 아동은 무조건 일하지 않고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아동의 교육도 노동도 보호할 수 없다. 일하고 배우는 ‘주경야독’ 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아동의 노동 시간을 6시간 정도로 제한해 적어도 2시간 이상을 교육받을 수 있게 하고, 그 비용을 고용주에게 지불하도록 하는 국가도 있다. 빈곤한 가정에서 아동을 학교에 보내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시도도 있다. 즉, 교육에서의 적응성이란 학교 밖의 교육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61~162쪽)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서로 연대해야 한다. ‘사회권’에서 ‘사회적(social)’의 어원인 ‘socialis’는 ‘결연’했다는 뜻으로, 사회의 모든 시민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연대라 할 때 ‘연대(solidarity)’의 어원 ‘in solidum’은 채무자의 연대 책임을 말하는 것으로, ‘전체로부터 부분을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채무자 각자가 전체로서 빚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훗날 공동체 관계, 상호 의존과 부조, 구제와 지원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게 되었다. (212쪽)
또한 그러한 권리와 조건들을 따라 읽다보면 우리가 인권의 주체라고 흔히 말할 때 주체라는 말 안에는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지키는 것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인권이란 바로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인권 기준은 상대방에게 적용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약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선(善)’으로 주장하는 것은 지배와 다를 바 없다. 공동선의 관점에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정한 인권의 주장이다. 상대방의 차이를 ‘존중’하지는 못할지라도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이 인권을 위한 대화와 노력의 출발점이다.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지 않는 인권은 힘의 횡포요 강자의 위선일 뿐이다. (222~223쪽)
그들이 외친 인권이 바로 지금 여기 우리 인권을 깨운다
인권의 역사성과 현재성, 보편성과 구체성을 총망라한 단 한 권의 인권 아카이브
인권의 보편성과 구체성을 보여주는 인권의 고전들과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인권의 현주소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책 《인권을 외치다》를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출간했다. ‘가장 낮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열망으로 바꿔온 인권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연구소 창’의 활동가 류은숙이 직접 발굴하고 번역한 37개 문헌들과 이 문헌에 담긴 진정한 의미, 문헌을 둘러싼 생생한 역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인권의 고전과 오늘의 인권이 한데 모여 과거를 통해 오늘을, 문헌을 통해 현실을 읽을 수 있는 틀을 제시하고 있다. 3백여 년 전 영국의 인신보호법, 2백여 년 전 프랑스에서 폐지된 단결금지법, 그리고 시민불복종, 표현의 자유, 국가인권기구 원칙 등 이미 세계가 약속하고 인정한 권리들이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계 인권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미국 <독립 선언서> 등 인권의 기념비가 된 문헌들을 소개하면서 문헌이 담고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란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게 되었고 어떤 정치적인 목적과 한계가 있었는지, 그리고 선언은 역사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에서 소외되었던 노예, 여성, 노동자 등이 저마다 자신들의 인권을 얻기 위해 외쳤던 문헌들이 함께 등장한다. 유엔이나 각종 국제기구에 ‘국가대표’들이 모여 만든 문헌뿐 아니라 흑인여성, 여성노동자, 빈민, 아이들이 바로 제 목소리로 스스로의 인권을 주장한 연설과 노래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투박하지만 절실한 그들의 목소리는 인권의 주인공, 인권의 저자란 언제나 자기 현실에 깨어 있고 그 현실을 개척했던 이들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주체들마다 누려야 할 권리,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권리를 보여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추상적인 가치로만 여겨왔던 ‘인권’의 다양성과 구체성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구체성은 인권이란 시민으로서 저마다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타인을 위해 실천해야 할 우리들의 의무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인권의 다양한 가치들은 언제나 가장 낮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열망을 담은 외침과 노래와 약속으로 전해져왔음을 전하는 이 책은 시민 개개인이 저마다 인권의 주체임을, 인권을 끊임없이 보완하고 수정하고 강화해야 할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인권의 거의 모든 것을 담은 문헌의 보고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일했고 ‘인권연구소 창’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 류은숙은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권 문헌들을 발굴하고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낮에는 인권 현장에서 활동하고 밤에는 그 현장에서 위협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이미 세계가 약속했던 조약들, 이미 수세기 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들을 찾아내 지금 그들의 주장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권리임을 밝히고 알리는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발굴해 인권신문인 <인권오름(구 인권하루소식)>에 연재한 선언과 조약, 노래와 시, 연설과 책 등 인권문헌 가운데 37편을 추려 이 책에 담았다.
인권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자주 인용되는 문헌들이 있다. 당대 인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울림이 있고, 치열한 토론의 결실인 국제적 합의가 있고, 인권을 우습게 아는 권력을 속시원히 비웃어주고, 인권의 핵심을 한 방에 꿰는 그런 문헌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건 한두 줄의 인용이거나 그에 대한 해석뿐이다. (……)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전문 연구자가 아니지만 나와 인권 활동가 동료들이 나서서 그런 문헌을 함께 찾고 공부를 했다. 국내에 번역문이 조금이라도 소개된 것이 있으면 찾아서 이어붙이고, 원문을 찾으면 실력이 허락하는 만큼만 번역을 하고,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문헌은 ‘우리 같은 상황을 다른 누군가도 겪었을 테니 분명 한마디쯤 남겨놓았을 거야’란 생각으로 무턱대고 찾아보기도 했다. (저자 서문, 6~7쪽)
우리가 평소 ‘이런 건 참을 수 없다’, ‘왜 우리 정부는 이런 걸 존중해주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문서라 하니 기운이 솟았다. ‘그래, 우리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어. 든든한 빽이 생겼네’ 하는 기분이었다. (18쪽)
다양한 문헌을 인권론의 흐름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주창한 1세대 인권론(1장-인권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사회권’이라 불리는 2세대 인권론(2장-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 ‘연대’에 기초한 3세대 인권론(3장-인권으로 미래를 약속하다), 그리고 우리 인권의 현주소(4장-지금, 여기, 우리, 인권) 4개 장으로 묶어 인권의 어제와 오늘, 인권의 보편성과 구체성을 입체적으로 엮어 사상과 역사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인권을 이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
특히 <런던 부랑인의 절규>나 <평등파의 선언> 같은 문헌이나 <요그야카르타 원칙>, <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권 조약들을 저자가 직접 발굴하여 국내에 소개한 문헌들이 있다. 저자는 그동안 국제기구의 조약이나 선언을 중심으로 한 저명한 인권 문헌들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 되찾기 위해 외쳤던 이들의 목소리를 캐내어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인권의 이름으로 역사와 현재가 만났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들의 인권에서 우리의 인권을, 인권의 역사에서 오늘의 인권을 끄집어내 현재진행형의 인권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인권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프랑스 선언), 미국 <독립선언서> 등 우리가 익히 아는 문헌들은 구시대의 억압, 차별, 소외 대신 자유와 평등과 연대가 세계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원리라고 주장한다. 그 새로운 역사를 열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 바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였다.
그러나 선언이 말하는 ‘모든 인간’에서 여전히 배제된 이들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에 여성, 농민, 노동자는 없었다. 미국 독립선언에서도 역시 ‘천부인권’을 주장했지만 여성과 특히 흑인노예들의 권리는 담지 않았다. 이 책은 인권의 역사와 인권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빈민의 입으로 빈민의 권리를, 노동자의 말로 노동자의 요구를 외친 생생한 인권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빈민이 사는 ‘집(home)’의 조건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들짐승의 굴과 비교할 때 동물이 사는 굴이 더 안락하고 건강한 곳으로 여겨질 정도라면 어떻게 집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 썩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꺽거리고, 일부는 이미 무너져 내려 방심하면 팔다리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구멍이 있다. 해충이 기어오르는 어둡고 더러운 복도를 더듬어 가야만 한다. 그러고 나면, 당신이 참을 수 없는 악취에도 물러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가 대속한 인종에 속하는 수천 명의 존재가 무리지어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
_<런던 부랑인의 절규>(153쪽)
태곳적부터 우리에게 위선적으로 되풀이해온 말은 ‘인간은 평등하다’이다. 그러나 태곳적부터 가장 타락하고 야만적인 불평등이 오만하게 인류를 압박해왔다.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권리는 이의 없이 인정되어왔지만, 지금껏 실현된 적은 오직 한 번밖에 없다. 즉, 평등은 세련되고 무익한 법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더 강해진 목소리로 평등을 요구할 때 우리는 이런 말을 듣는다. “입 다물어라, 이 가난뱅이들아! 사실상 평등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조건부 평등에 만족해라. 너희 모두는 법 앞에 평등하다. 너희 천박한 폭도들아, 뭘 더 필요로 하느냐?”
평등과 우리 사이에 서서 우리와 충돌하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이렇게 굳게 선언한 바람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_<평등파의 선언>>(81~82쪽)
그래,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우지.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가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
반면에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 _<빵과 장미>(275쪽)
저자가 이들 문헌을 발굴하고 소개한 까닭 역시 인권의 역사에서 가려졌던 이들의 말과 노래를 알리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보다 중요한 가치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 역동적인 역사를 통해 인권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현했던 이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져 왔음을 보이는 데 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런던 부랑인의 현실을 통해 대한민국의 빈곤층을, <빵과 장미>를 외쳤던 20세기 초 미국 여성 노동자들을 통해 대한민국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매카시즘의 위대한 반대자 윌리엄 더글러스 판사의 말로써 우리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되돌아보고, 인권은 마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각이 전제될 때에야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전체 풀타임 노동자 중위 임금의 2/3 이하를 저임금이라 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1/3이 저임금 노동자이다. 게다가 평균 임금의 50퍼센트 이하를 받는 초저임금 노동자가 빠르게 늘어나 전체 노동자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다. 당연히 비정규직이 저임금 노동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여성일수록, 50세 이상 고령자일수록, 저학력일수록 저임금 노동자가 될 확률이 높다. 이들은 일을 하면서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노동빈곤층이다. (……)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모자람에서 찾으며, 가치 있는 빈민과 그렇지 않은 빈민을 구별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발견되어야 할 것은 빈곤이 아니다. 발견되어야 할 것도 치유해야 할 것도 우리 사회의 양심이고 구조이다. (150~151쪽)
사용자는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노동자는 해고의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잘리지’ 않으려면 화장실도 안 가면서 버티고, 근무 시간 내내 서서 일하면서도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형편없는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온 식구의 밥줄이 달려 있으니 참아야 한다. 비정규직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먼 나라 이야기이다. 생존 그 자체인 일자리마저 늘 불안한 처지에 놓인 탓이다. (269~270쪽)
구체적이고 다양한 인권을 만난다
일반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인권이란 자유, 평등, 평화처럼 지고지순한 가치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삶의 국면이 다양한 만큼 저마다 처한 사회적 현실이 다르고, 그에 따라 사회가 그들을 위해 보장해야 할 인권도 다양하다. 또 우리가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는 이들의 인권을 생각할 때 그저 배불리 먹는 것이 최선이라는 정도로 모호하게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양한 인권의 주체와 인권의 조건들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 이주노동자, 성 소수자 등 우리가 이른바 사회적 약자라고 부르는 이들의 권리를 담은 다양한 문헌을 소개함과 동시에 식량주권, 사회보장, 발전권 등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본 위원회는 기아와 영양실조 문제가 대개 개발도상국에서 특히 심각하지만, 영양실조, 영양결핍 및 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와 기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에 관련된 기타 문제가 일부 경제 선진국에도 존재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근본적으로 기아와 영양실조 문제는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특히 빈곤으로 인해 잉여 가능한 식량에 대한 접근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_<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263쪽)
제3세계의 많은 아동은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학령기 아동은 무조건 일하지 않고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아동의 교육도 노동도 보호할 수 없다. 일하고 배우는 ‘주경야독’ 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아동의 노동 시간을 6시간 정도로 제한해 적어도 2시간 이상을 교육받을 수 있게 하고, 그 비용을 고용주에게 지불하도록 하는 국가도 있다. 빈곤한 가정에서 아동을 학교에 보내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시도도 있다. 즉, 교육에서의 적응성이란 학교 밖의 교육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61~162쪽)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서로 연대해야 한다. ‘사회권’에서 ‘사회적(social)’의 어원인 ‘socialis’는 ‘결연’했다는 뜻으로, 사회의 모든 시민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연대라 할 때 ‘연대(solidarity)’의 어원 ‘in solidum’은 채무자의 연대 책임을 말하는 것으로, ‘전체로부터 부분을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채무자 각자가 전체로서 빚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훗날 공동체 관계, 상호 의존과 부조, 구제와 지원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게 되었다. (212쪽)
또한 그러한 권리와 조건들을 따라 읽다보면 우리가 인권의 주체라고 흔히 말할 때 주체라는 말 안에는 자신의 권리를 누리고 지키는 것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인권이란 바로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인권 기준은 상대방에게 적용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약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선(善)’으로 주장하는 것은 지배와 다를 바 없다. 공동선의 관점에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정한 인권의 주장이다. 상대방의 차이를 ‘존중’하지는 못할지라도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이 인권을 위한 대화와 노력의 출발점이다.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지 않는 인권은 힘의 횡포요 강자의 위선일 뿐이다. (222~223쪽)
목차
서문 - 인권의 저자들에게 바친다
1장 인권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2장 인권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
3장 인권으로 미래를 약속하다
4장 지금, 여기, 우리, 인권